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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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나를 드러내는 게 좀 창피했어요. 누가 나를 칭찬해도 창피하기만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높임을 받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가진 신앙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할머니 때부터 기독교 집안이에요.·······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우리 아이 일 이후에 달라지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 지성이가 나의 교사다.(234쪽-문지성 엄마 안명미)


문지성 엄마 안명미의 전반부 인생은 가부장적 기독교가 억누른 “창피” 프레임에 갇혔었다. 416 이후에는 교사 문지성이 열어준 “표현” 프레임으로 해방한다. 프레임이 생을 가른다. 프레임이 생사를 가른다. 프레임이 세상을 가른다.


이른바 조국전쟁은 조국 법무장관이 사퇴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조국 사퇴 소식을 듣는 순간 내 뇌리에 떠오른 것은 문지성 엄마 안명미의 이름이었다. 명망가 중수中手 지식인들을 동원해 온갖 ‘기레기’ 매체들이 조국전쟁과 서초동 촛불을 호도하고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서초동으로 향했던 마음과 단원고등학교 기억교실로 향했던 마음이 다르지 않았다. 국가를 사유화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매판독재분단세력을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같을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정치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사학개혁, 교회개혁과 대체 어떻게 왜 다른가. 지식인들이 똑똑한 개소리를 지껄이는 까닭은 단 하나다: 잘못된 프레임.


잘못된 프레임에 저들이 갇힐 수밖에 없는 연유가 있다. 저들 대부분의 지식 기반은 서구 학문을 뒤좇는 국내 대학 교육과 유학에서 구축되었다. 서구 학문은 서구 경험에서 일어났으므로 당연히 그런 특수성·지역성을 지닌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서구의 패권이 확립된 이래 서구 학문은 보편성·세계성을 전유하고 제3세계 지식인에게 이식되어 왔다. 국내 유수의 대학을 나오든, 유학을 갔다 오든 우리사회 지식인의 대부분은 그들에게서 가져온 이 가짜 보편성·세계성을 종지 삼고 우리사회 특수성·지역성을 하위에 두거나 아예 누락시킨다. 식민지와 그로 말미암은 분단 상황이 야기한 중첩 모순 속에 있는 자기 경험을 선순위에 두지 않고 성립하는 학문과 지식은 그 자체로 매판이다. 식민지·분단 상황이 조국전쟁 해석과 무슨 상관있느냐고 묻는 그 무지가 바로 이 땅 지식인 집단이 매판의 견고한 한 축임을 압도적으로 증언해준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뜨르르한 지식인들의 현란한 수사 그 어디에도 매판성을 관통한 파천황은 보이지 않는다. 관제민족주의, 진보의 위선, 살아 있는 권력의 피해자 코스프레, 서초동과 광화문 너머, 깊은 상처 통합 정치로 치유해야 운운, 이 모두가 자유한국당-검찰-언론, 그러니까 매판독재분단세력, 다시 그러니까 실제로 살아 있는 권력이 짜놓은 프레임에 걸려든 지식인의 정체를 폭로한다.


이 부역지식인들은 하사받은 프레임 안에서 똑똑하고 올바른 소리를 해대고는 자신의 지식과 자신,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로 일치시킨다. 논리도 완벽하고 윤리도 지순하다고 굳게 믿는다. 서초동촛불 폄훼하는 글을 쓰면서 해고노동자 투쟁 현장에 결합한 인증 샷을 올렸다면 그 ‘완벽’과 ‘지고’를 인정해주겠건만 저들은 결코 거기로도 가지 않는다. 실제로 거기로 간 제대로 된 지식인은 서초동촛불을 폄훼하지 않는다. 지식과 실천의 지평이 융해되는 실재 세계는 모순이 서로 맞물리며 뒤섞이는 역설운동이라는 진리를 알기 때문이다. 매판 지식인이 베껴온 서구 형식논리 지식체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불순의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없다. 이렇게 자신을 지순한 윤리성에 자리매긴 지식인은 저열한 패륜집단이 짠 프레임 안으로 찰나에 떨어진다. 조국의 언행불일치 “보도”를 듣는 순간 꼭지가 돌아버리는 것이다. 진위를 가릴 틈이 없다. 투사 병리를 사용한 심리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투사만 하면 자신의 비 윤리는 0이 되고 타인의 비 윤리는 1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은 지식인을 즉각 실천에서 면제해 초월자로 등극시킨다.


초월자가 먼저 할 일은 깔끔하게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다. 저열한 패륜집단의 잘못을 전제하고 언행불일치에 빠진 위선적 진보를 호되게 꾸짖는다. 과연 정의롭다. 과연 공평하다. 됐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점잖은 훈계다: 촛불정신 계승한 문재인 정권 똑바로 해라. 결론이 문재인 정권에게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지식인은 양비론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프레임이 가장 저열한 패륜집단에게서 나왔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런 치명적 무지가 집적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인집단은 매판독재분단세력, 그러니까 실제로 살아 있는 영원한 권력카르텔의 강고한 한 축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이른바 조국전쟁을 지켜보면서 내가 그 무엇보다도 고통스럽게 확인한 것은 바로 우리사회 지식인, 더군다나 진보 또는 좌파로 분류되는 집단의 정체와 수준이었다. 검찰과 언론보다 지식인집단의 부패 실상이 내게는 더욱 충격이었다. 나 또한 대학 두 개와 대학원 두 개를 다녔으니 지식인이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변방 마을에서 무명의 임상의로 찌그러져 살면서 저간 바라본 저 뜨르르한 지식인들은 마치 박정희 새마을 깃발이나 이명박 4대강 보와 같았다. 416을 겪으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지식인 부패를 조국전쟁에서 발견한 것이 나만의 착시는 아닐 것이다. 엉터리 토건지식인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식인 스스로 프레임 전환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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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기가 일곱 살 때 이혼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제가 데리고 있다가 웅기가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빠한테 보냈어요.·······대외적으로 보면·······참사 이후에 엄마가 나타난 거잖아요. 아이들 키우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이러는 것처럼·······

  ·······저를 이혼하고 아이들 다 버리고 나간 엄마로 보지만 저는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잘못 살았다고 말 들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보내기 전까지 저는 세상에 다시없을 엄마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아이들한테만 죄인이에요. 그것만이 진실이에요.(231쪽-김웅기 엄마 윤옥희)


“식민주의의 권력자들은 삶을 통제하기 전에 먼저 삶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물론 이 일은 도시 안에서도 일어나고 한 사람의 도시민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황현산 선생 생전의 트위터 글이다. 마치 오늘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쓴 듯 송연한 글이다. 식민주의의 권력자들은 그렇게 416가족을 수치로 덧씌웠다. 식민주의의 권력자들은 그렇게 조국 가족을 수치로 덧씌웠다. 조국은 사퇴했다. 김웅기 엄마 윤옥희는 사퇴란 걸 할 수 없다. 엄마니까. 진실 하나를 부여잡고 죽음 저 너머로까지 행진할 수만 있다.


오늘로 416학살이 일어난 지 2008일째다.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식민주의 권력 시스템이 얼마나 강고한지 검찰‘청’장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상관인 법무장관을 저격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자유당은 선동했고, 언론은 개 노릇 했으며, 개신교는 장단 맞춰 춤추었고, 지식인은 ‘똑똑한’ 논리로 뒷받침해주었다. 이런 세상인데 416에 전선이 형성되겠나. 아득하다.


아무리 아득해도 주저앉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이들한테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노란리본 하나라도 달고 다닌다. 하다못해 아이들 이름 하나라도 불러준다. 하다못해 예은 아빠 유경근씨 페북 글을 공유라도 한다. 하다못해 416연대 사무실에 차 한 상자라도 보낸다. 하다못해 ‘잊지 않으마.’ 중얼거리기라도 한다.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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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제가 간병을 해야 했어요. 엄마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싶으니까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다리에 금이 갔다 그러더라고··· 애 아빠가 시댁 가자고 하는데 막 꼭지가 도는 거예요. 저희 부부가 열 살 차이거든요. 남편은 제가 안 따라주면 막 짜증내는 스타일이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냥 끌려가야 하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퇴원하시고는 계속 술만 드시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돌아가셨어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댁 집을 수리하는 동안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어요. 그런데 시어머니 수발을 못 들겠더라고. 나는 광화문에 가야 하는데, 애 아빠는 못 가게 하죠. 미쳐 죽을 거 같더라고··· (227~228쪽-김주아 엄마 정유은)


누구랄 것도 없이 정신 줄 놓지 않은 사람이라면 416 이전과 이후는 다른 사회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다만 안전과 책임이라는 좁은 문제의식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건 직후 국가권력의 최상층부터 사회 모든 분야 기득권층, 그러니까 매판독재분단세력이 보여준 행태는 416이 저들이 저지른 수탈의 결정판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반증해주었다. 요컨대 416은 우리사회 시스템 전반을 전복해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다.


416유족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가부장제 살풍경이 분노를 자아낸다. 똑같이 자식을 잃었는데 떠안아야 하는 삶의 고단함은 왜 엄마에게 더 가혹한가. 왜 아내는 남편에게 “그냥 끌려가야 하는”가. 이 살풍경은 김주아 엄마 정유은에게 국한된 것인가. 생각을 펼쳐갈수록 가슴은 답답해지고 슬픔이 밀려든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들어섰을 뿐, 416가족이 본디부터 대한민국 여느 가족보다 더 뛰어난 윤리성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김주아 엄마 정유은이 겪는 일들이 일어나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가부장 논리가 내재화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죽음이 이것을 깨닫고 깨치는 죽비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강자가 약자를 억압·수탈·살해하는 모든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가부장제를 포함하여 전쟁, 상속자본주의, 아동학대, 인종·지역차별, 성소수자차별, 자연파괴, 일극구조종교 들이 전방위·전천후 해방운동을 기다리고 있다. 416운동은 이 놀라운 물결의 중심이며 발원지다. 섬세하고도 치열한 통찰과 실천의 지성소다.


해방운동은 일단 이렇게 구체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일상에서 시작한다. “참사 나고 나서 시댁을 한 번도 안 갔어요. 제가 맏며느리인데. 시어머니는 아직 모르시는데 제가 시누이, 동서들, 재강이 아빠한테 선언했어요. 나는 앞으로 제사는 안 지내겠다.·······그러고 나서 이제 아무도 저한테 제사에 대한 얘기는 안 해요. 재강이 아빠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230쪽-허재강 엄마 양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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