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월백삼경천(梨花月白三更天)

제혈성성원두견(啼血聲聲怨杜鵑)

진각다정원시병(儘覺多情原是病)

불관인사불성면(不關人事不成眠)

 

배꽃으로 달 밝힌 깊디깊은 밤

두견새 피 울음 내 원망이리

살가움이 병 되는 사무친 깨침

인간사 무심해도 잠 못 이루네

 

(★ 자하 신위 (紫霞 申緯)가 이조년의 아래 시조를 한역하고 그 한역시를 강용원이 번역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ㅇㄹㅇ가 왔다. 앞으로 읽어도 ㅇㄹㅇ 뒤로 읽어도 ㅇㄹㅇ가 이상한 변호사 ㅇㅇㅇ처럼 불쑥 나타났다. 불쑥 와야 반갑죠, 아버지! 그렇다. ㅇㄹㅇ는 내 딸이다. 낳아주어서가 아니라 죽기 직전에 세 번이나 살려내어서 나는 아비다. 물론 ㅇㄹㅇ 기억에서는 사라졌을 테다. 기억하지 못해서 더욱 애틋하다. 애틋함은 언제나 그 고운 목소리를 타고 낭창거리는 슬픔으로 온다.

 

ㅇㄹㅇ는 똑 아픈 사람 어조를 지녔다. 웃으며 말해도 아픔에 겨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손짓도 거의 없다. 말하는 일, 아니 그 전에 사는 일 자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은 어떻게 바꾸어도 모두 같은 이미지로 번역된다. 하다못해 담벼락에라도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좌우명을 지닌 사람처럼 한껏 몸을 움츠린 채 사부자기 다가들어 나직나직 도란댄다.

 

내 앞에서 펼쳐내는 이런 모습만으로는 그가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남편에게도 딸에게도 제풀에 기절할 정도로 화를 낸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사람이 이토록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십수 년째 풀지 못한다. 나는 안다. 그 분노가 두려움에서 오고, 두려움은 심각한살가움에서 온다는 진실을.

 

심각한살가움은 정확히 말하면 병인 또는 병으로서살가움이다. 이 정도 살가움은 마치 화상 입어 한 겹 벗겨낸 피부와도 같다. 지극히 사소한 침습조차 견디지 못한다. 살가움에 지극히 사소한 침습은 살천스러움이 아니라 둔함이다. 따스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마음결을 상대가 뚱하고 멍하게 지나칠 때 살가움은 관통상을 입는다. 죽음 냄새가 가차 없이 스며든다.

 

한가위 인사차 와서는 또 한참을 도란대던 ㅇㄹㅇ가 떠나기 전 나는 말해주었다. “얘야, 네가 여전히 아픔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 너무 진지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진지함은 곧장 심각함, 그러니까 질병 상태로 넘어간다. 네 살가움은 언제든 그 선을 넘어갈 준비가 돼 있어서 위험하다. 맨살 드러낸 살가움은 널 죽일 수도 있고 상대를 병들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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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將除去無非草(약장제거무비초) 如取看來總是朶(여취간래총시타)

 

나는 이 시/문구를 초서로 휘갈긴 서예 작품에서 20여 년 전 처음 만났다. 초서를 배운 적이 없는 나로서는 대부분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호기심에 못 이겨 붓이 움직여간 순서를 따라가며 그 이상한 글씨 하나하나를 독해해 갔다. 이 독해에는 작은 옥편이 큰 도움을 주었다. 큰 도움은 물론 작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세 글자를 잘못 읽었다. 원문은 이렇다.

 

惡將除去無非草(오장제거무비초) 好取看來總是花(호취간래총시화)

 

저 뜨르르한 주희 작품이라 한다. 그 뜻은 싫어해 베기로 하면 풀 아닐 리 없지만 좋게 보면 모두 다 꽃이라네.”. ()(), ()()가 대구를 이룬다는 사실을 모른 나는 () 대신 (), 그러니까 만일로 읽고, () 대신 (),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로 읽었다. ()를 잘못 읽은 ()는 옥편에 꽃봉오리로 나와 있으니 거의 불가피한 오독이었다.

 

잘못 읽은 대로 풀면 이렇다: 만일 베기로 하면 풀 아닐 리 없지만 있는 그대로 보면 모두 다 꽃봉오리라네. 대강에서 뜻은 다르지 않으니 큰 오독이라 볼 수 없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는 옥편에 적혀 있는 뜻과 달리 정확히 말하면 꽃을 세는 단위라고 하므로 바로잡아야 옳다. ()를 꽃봉오리로 쓴 옛 그림 하나를 기억하고 읽었으니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 ()()와 대구를 이룰 수 있는가. 통상 생각하는 대구로 치면 그럴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잘못 읽은 대로 글을 썼더니 어느 후배가 ()()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해 주었다. 나는 생각이 달라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호오는 인간 관지(觀地)고 그에 따라 그만큼 풀이든 꽃이든 인간중심주의 그물에 걸리기 때문이다.

 

()가 지닌 넓은 의미에서 좋다는 말은 아름답다’, ‘사랑스럽다라는 뜻까지 포괄하고 있으므로 인간중심주의는 자연스럽게 의인법으로 나아간다. 의인법이 꽃을 사람처럼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라 할 때에도 극진히 제한해 비인간 생명을 인간 시선에서 한껏 해방해야 한다. (),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꽃을 꽃에서도 해방할 수 있다. 왜 하필 꽃이어야 하는가?

 

주희가 무슨 목적으로 이 글을 남겼는지 몰라서 톺아보는 게 아니다. 구태여 그가 지닌 한계를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읽어도 괜찮다. 이 글을 긍정주의 독본으로 써먹는 장사치들이 나타날 때는 문제가 다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세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논의할 때 비판 독본으로 삼을 수도 있다. 고전을 대하는 자세다. 공동체 지혜는 열린 순환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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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별다른 생각 더 하지 않고 그냥 광장으로 간다. 집회 시각을 염두에 두고 여느 때처럼 김치찌개 집으로 향한다. 늘 혼자라서 우그러진 구석 자리에 앉는다. 지난주 건너편 구나방이 앉았던 자리에 오늘도 몇이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조용하다. 얘기 소리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나지막이 두런두런 들려올 뿐이다. 내가 한창 식사를 하는 중에 그 일행이 일어서 나간다. 누군가 주인장을 보며 역시 나지막이 말한다. “나라 구합시다.”

 

손이 사라진 직후 식당 직원 하나가 말한다. “우리는 못 구하지.” 내가 짐짓 궁금증을 일으켜 주인장에게 묻는다. “나라 구하자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주인장이 시큰둥하게 답한다. “낸들 아나요.” 더는 말을 섞을 수 없다. 촛불 대행진 참여자일 가능성이 큰데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겪었을 광화문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부류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개독 패거리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려나. 글쎄, 이런 의문 자체가 부질없다 싶다.

 

집회는 최근 한국인 체포 감금 사태 때문에 반제국주의 외침으로 크게 쏠려 있다. 때마침 남미 활동가가 연대 발언하는 중이다. 세부 상황이 사뭇 다르겠지만 제국 USA가 저지르는 깡패짓에 피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남미 여러 나라와 우리는 같다. 함께 손잡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일반인에게 익숙하지도 않은 베네수엘라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으니 말이다. ‘베네수엘라 사람광화문 사람보다 얼마나 더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여기 왔나.


 

연대란 말을 들으면 운동권을 떠올리며 무슨 부가된 행위처럼 여기지만 연대는 문화가 아니다. 자연이며 본성이다. 포유류 생존 전략이자 무기다. 연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파충류에게나 가당하다. 먹고사느라 정치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말은 실상 자기기만이다. 예술가는 정치 백치일 수밖에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정치가 바로 먹고사는 문제 자체며 살벌한 예술 행동 본진인데 그 무슨 맹랑한 소린가. 위장된 자학과 자만일 뿐이다.

 

정색하고 집회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 얼굴과 행색을 살핀다. 도저히 이런 데 나올 수 없는 얼굴과 행색들이 각막을 가르고 들이닥친다. 따지고 보면 내 얼굴 내 행색은 뭐 그리 다르겠나. 다들 시난고난 앓으면서 그나마 눈 마주치는 길을 찾아 더듬더듬 오지 않았나. 누군들 여유 있어 능력 좋아 열정 뻗쳐 의분 넘쳐 여기 왔겠나. 장삼이사 무지렁이들이 살고 싶어서 종주먹 불끈 쥐고 오늘을 기다리지 않았나. 그렇게 살아서 연대가 연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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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은 조선 태조 계비인 신덕왕후를 모신 조선 최초 능이다. 정릉은 본디 중구 정동에 있었다. 부부 사이가 남달랐던 태조는 신덕왕후가 승하하자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능을 사대문 안에 조성하고 수시로 드나들며 애틋함과 그리움을 표했다. 생전에 신덕왕후 정적이었던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곧 정릉을 지금 자리로 옮겨 폐릉(廢陵) 상태로 만들었다. 후대 송시열 상소로 복권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런 역사를 알고 있었던 나는 정릉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채 60년 동안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최근 어떤 글을 읽다가 본디 정릉이 덕수궁 안 어디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실제 장소가 부쩍 궁금해졌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지금 미국대사 관저쯤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직접 거기로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시간에 덕수궁길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두루 살폈다. 마침내 한 장소를 특정했다.

 

덕수궁 돈덕전과 중명전 사이 미국대사 관저는 덕수궁길을 가로지르는 나지막한 능선 위에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능선 정상에서 남서쪽 아래로 살짝 내려온 곳이다. 그 반대편 북동쪽 아래로 살짝 내려온 곳은 그 방향에서 직선으로 경복궁이 보인다. 이를테면 신덕왕후의 시선이다. 경복궁에서 서남쪽을 보아 가장 가까운 산 능선 바로 아래 아늑한 영면 터전이 보인다. 이를테면 태조의 시선이다. 바로 여기가 본디 정릉 자리다.


덕수궁길-고개마루 직전 오른쪽에 돈덕전, 왼쪽에 미국대사 관저가 보인다


신덕왕후의 시선


태조의 시선

 

태조의 시선을 기준 삼고 광화문을 나서 세종대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으로 틀어 새문안로로 들어선다. 조금 가다가 왼쪽 덕수궁길로 접어들어 완만한 산길을 오른다. 능선을 넘어가기 직전에 넓고 안온하게 들어앉은 정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길이 바로 신덕왕후를 찾아오던 태조의 길이다. “태조의 길은 명성황후를 잃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했던 고종의 길에 상응해 역사가 지닌 절묘한 서사성을 의식하며 내가 붙인 이름이다.


태조의 길


정릉 본디 자리-신덕왕후와 태조가 처음 만난 버들잎 서사를 떠올리게 하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하필 두 길은 거의 직각을 이루며 맞닿는다. 조선을 일으킨 왕이 왕후를 잃고 걷던 길과 조선을 사실상 무너뜨린 왕이 왕후를 잃고 걷던 길이 이렇게 만난다. 태조의 길은 흥륭(興隆) 시대를 열었고, 고종의 길은 멸망으로 이어졌다. 나는 오늘 태조의 길을 따라 고종의 길을 가로지른다. 토착 왜구들이 다시 한번 나라를 팔아먹으려 총궐기 반란을 일으킨 통렬한 세월을 사는 동안 이 길은 내게 인생 순례길일 수밖에 없다. 오늘이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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