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싸리·버들 글숲  (bari_che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숙의의학으로 마음 치료하는 한의사가 숲(식물)과 팡이와 물에 진심 다해, 지구 위기를 몰고 온 제국주의에 범주적 주의를 기울여, 직접 쓰거나 인용한 글.</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0 Jun 2026 06:47:29 +0900</lastBuildDate><image><title>bari_che</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81606115484004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ari_che</description></image><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 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link><pubDate>Tue, 09 Jun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우울장애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복잡한 증후군이다. 그 가운데 내가 깊이 유념하며 치료해 온 측면은 자기 경계를 건강하게 세우지 못해 일어난 “자기 비하” 나아가 “자기부정”이다. 타자를 당당하게, 대등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배려·양보·관용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먹잇감 되게 하는 모진 경향성이다. 그 끄트머리에 “자기 살해”가 도사린다.   &nbsp;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송주현, 2026)에 따르면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   &nbsp;  &lt;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gt;에서 내 위장질환 문제를 이야기한 바 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 시절 아밀라아제 결여가 어떻게 일생을 뒤흔들었으며, 그 진실을 알고 나서 어떻게 변했는지가 그 내용이었다. 그보다 더 육중한 오늘 사연은 내 우울장애 이야기다; 같은 곳에서 발원한 두 질환이 내 인생 전체 방향을 더불어 규정하고 조정했다는 각성 이야기다.    &nbsp;  내가 40대 중반에 수능 쳐서 한의대 입학해 50대 초반에 한의사 그것도 숙의(熟議)로 정신 치료하는 사람이 된 까닭은 50년 동안 시달려온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한 내 병을 스스로 고치려,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는 주위 뿌리치고 건곤일척 도박을 감행했다. 성취만큼이나 좌절도 심했던 임상이지만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중이다; 우울 골갱이도 남아 있는 채다.  <br> 물론 그 골갱이도 인제 고갱이로 변할 테다. 위장질환 경우처럼 그 시원(始原) 곡절을 마침내 알았기 때문이다. 이 두 변화는 치유를 근본 지점에 가 닿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생명에 배어든 식물성과 여성성이 몸 마음 살갗을 찢어 들어온 상처였음을 통렬히 각성하게 했다. 그 각성은 온정과 신비 경사각을 단박에 쳐 내려, 상처 이전 본성이 지닌 임계점에 다시 세웠다.    &nbsp;  임계질량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종간 공명과 소통을 꿈꿀 수 없다는 진리 앞에 허리 접도록 깨우치신 도봉 큰 스승께 8배 올린다; 본성 최선으로 흐르게 길을 트도록 가르치신 회룡 큰 스승께 “고맙습니다!” 예물 드린다; 동시성을 인과성에 붙들어 매려 했던 아둔함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신 물까치 큰 스승께 “객~깨깨깨깨깩!” 찬가 바친다. 노나지가 참 아우라지 길을 연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9/pimg_7816061155148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물까치가 나를 불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link><pubDate>Thu, 04 Jun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guid><description><![CDATA[<br>  &nbsp;  물까치는 60년도 썩 넘은 내 기억 역사 속에 암암히 살아 있는 새다. 그 소리도 메나리토리처럼 귀에 각인돼 있다. 이따금 그 날렵한 자태와 파스텔 톤 물색에 눈이 가곤 하지만 보통은 출근길 숲에서나 도봉산 숲에서나 방이 습지 숲에서나 특별한 주의 없이 익숙하게 대하고 지나친다. 오늘 그 오랜 습관이 툭 끊어진다.   &nbsp;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를 나와 자주 가는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지하철로 곧장 방이 습지를 향한다. 달력 구분으로는 오늘이 봄 마지막 날이지만 습지는 이미 여름에 이드거니 들어와 있다. 볕이 후더분해서 누리가 누글누글하다. 물에 떠 있는 논병아리도 굼뜨다. 나 또한 땀 아낄 요량으로 소심히 움직인다.  &nbsp;  꾀꼬리, 되지빠귀,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들 목소리에 귀를 열고 무심히 걷던 어느 순간, 내 주위를 따라 돌고 있는 새 기척이 다가온다. 물까치다. 걸음을 멈춘다. 그가 같은 음성으로 내 존재를 탐색한다: 크르르르~!? 곧이어, 숲 전체에 흩어져 있던 물까치들이 집결한다. 내 주위를 도는 그가 더욱 가까이 다가든다.<br>  &nbsp;  마치 공격하듯이 근접 비행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더 오래 머물며 다시 말한다: 크르르르르~!? 다음 순간 내 입에서 같고 또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크르르르르~?! 열댓 번 주고받더니 풀어놓는다. 내가 서서히 움직이자 집결했던 무리도, 말을 걸었던 그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도, 떠난다.   &nbsp;  다음 일이 궁금하다. 그들이, 아니면 그만이라도 나를 기억할까? 다른 궁금증이 하나 더 있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에서 내가 “크르르르르~?!” 말하면 거기 물까치들도 대답할까? 아무래도 이거까진 무리지 싶다.^^ 뭐, 괜찮다. 새가 이리 말을 걸어왔으니, 길이 보인다. 여간해서는 생략할 수 없는 동물 나를 응시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4/pimg_781606115514339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link><pubDate>Tue, 02 Jun 2026 16: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guid><description><![CDATA[&nbsp;일기 예보는 분명히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도봉산은 어쨌으려나 궁금하다. 지난주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 골짜기 들머리에 도착했다. 회룡천 물부터 살핀다. 역시나 오히려 지난주보다 수량이 줄었다. 아우라지 상황도 마찬가지다. 복류 지점이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지난번 복류 웅덩이는 아예 말라버렸다.  &nbsp;  접지하며 앉아서 찬찬히 살핀다. 돌 사이로 낙엽이 쌓여 길을 막아 물이 빙빙 돌며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열어주자 후련하게 물이 흐르더니 금세 말간 줄기를 되찾는다. 돌돌 여돌차게 들리는 물소리가 한결 더 경쾌하다. 정신을 명징하게 만드는 소리다. 커다란 폭포 소리도 감동을 주지만 작디작은 쏠 소리가 이럴 땐 훨씬 더 찰지게 배어든다. <br>  &nbsp;  숲에 빙의되어 숨 쉬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산초나무가 손짓한다. 건너편 비탈 활엽수 뒤에 몸을 숨겼던 소나무도 슬며시 나선다. 돌 틈과 나무 사이 좁은 땅에 깜냥 맞춰 이고들빼기, 좀깨잎나무, 졸방제비꽃, 주름조개풀들이 해를 향해 까치발하고 있다. 빛살과 마주하는 온갖 방식으로 조그만 숲은 queer 자체다.  &nbsp;  헬리콥터가 온 산을 뒤흔들며 다가와 사패산 보루 쪽에 머문다. 사고가 난 듯 한참이나 지나고야 떠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머니 같은 산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맹수 같기도 한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는&nbsp;아우라지도&nbsp;‘노나지’다. 아우라지라고 거슬러 찾아온 내게 여기는 그런&nbsp;‘나누라지’다:&nbsp;섣부른 신비주의&nbsp;합일보다 엄연한 경계 앞에서 투명하라.  &nbsp;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제 마주한 현실이 마지막 승부수를 요구한다면 어찌할까. 무엇이 승부가 될까. 수는 있을까.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내 황석공(黃石公)이신 도봉산 회룡계께서 일묵만뢰(一黙萬雷) 가르치실 테다.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날 때 엄숙과 질탕이 갈마들며 심사가 묘연해진다. 오라시면 오고 가라시면 갈 따름이다.    &nbsp;* '노나지'는 분리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노누다'에서 끌어와 새로 만든 말이다.<br>&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2/pimg_78160611551420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link><pubDate>Sat, 30 May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guid><description><![CDATA[&nbsp;요 한해를 빼고 거의 70년 동안 나는 위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는 말고 서울 와 살면서부터만 돌이켜봐도 배앓이, 게우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집 차고 눅눅한 방에서 배를 웅크려 안고 뺑뺑 돌던 기억이, 이따금 마치 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러 가지 위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렇다 할 치료를 하지 않고 견뎠다. 왜 그런지 생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다음에는 더러 한약을 달여 먹곤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깊이 관심 두지 않았다.   &nbsp;  70줄에 접어든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벼락같은 사실과 맞닥뜨린다: 생후 1년 이내 영아에게는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가 분비되지 않는다! 이 시기 동안은 모유를 먹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내가 먹은 음식은 모유가 아니라 미음이었다. 어머니한테서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먹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누구이랴. 당사자인 아기가 자라서 의료인이 된 뒤에도 20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을 바탕으로 뭔가 알아차리기란 벼락 맞고 천재 되는 일과 같다.<br>&nbsp;인간이 모른다고 아무도 모르리라 단정하면 안 된다. 아는 존재들이 그때부터 있었으며, 이제까지 있다: 바로 인간 나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그들이 증거 주체며, 나아가 나를 어렵사리 살려낸 은총 주체다. 그들이 마침내 꼭 똑 알맞은 카이로스를 택해 내게 기별했다. 한 소식 전해 들은 나는 그제야 70년간 봉인돼 있던 비밀에서 풀려났다(解脫). 깨달음은 곧장 치유력으로 작동했다. 사실에 터 잡은 진실 서사가 장엄한 의학이 되어 내 생애 전체를 화쟁으로 관통했다. 70년 통틀어 속이 이리 안온한 나날은 바이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중이다.  &nbsp;  내력도 이치도 시종도 “모르는” 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절망한다. 그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의학이다. 이 행위를 하는 의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구조 병을 수리하는 외과 기사, 기능 병을 개선하는 내과 기사만 판을 친다. 삶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을 서사로 치료하는 고갱이 의학을 내다 버린 거다. 서사로써 “모르는” 상태를 걷어내는 시간이 제국 자본에 반역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이기에 무거워지는 고통이 기사질로 가벼워지는 고통보다 모름지기 더 많다. 의자가 본디 알려주는 자였다는 역사를 신화에 내어주면 찐 손해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30/pimg_78160611551389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부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link><pubDate>Wed, 27 May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guid><description><![CDATA[<br>  &nbsp;  부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 남녀가 지하철 노약자석 셋을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다. 가운데 좌석을 비우고 양 끝에 떨어져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가운데 좌석에 앉자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구태여 그 의아함을 풀 까닭까진 없어서 이내 눈길을 돌리다가 여자가 하는 행동 때문에 멈칫한다.   &nbsp;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뜯고 까는 손길 더한 다음 남자에게 건넨다. 초코파이를 비롯한 음식물이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받아 우물우물 먹는다. 다 먹고 남은 봉지를 여자에게 준다. 봉지를 받아 든 여자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거두어 먹는다. 이런 행동을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20분가량 지났을까, 남자가 잠을 청한다.  &nbsp;  여자는 봉지 포함 이런저런 쓰레기를 정리한 뒤 등을 젖혀 기댄다. 아주 잠깐 허공을 향한 그 눈빛이 보였다. 현실에서든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든 그렇게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그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내 시선에는 여전히 그 아득한 눈빛이 걸려 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저들 행동이 내 심사를 흔들어댄다.<br><br>모든 진실을 다 알 듯도 하고 대체 어쩌면 저렇게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교조화된 조선 후기 유교 사회를 거쳐 왜 식민지, 미군정, 내전, 다양한 형태 독재를 겪으면서 내재화된 가부장 심리 기제라고 설명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우라 잘못 불리는 쓰레기들한테 온 나라가 휘둘리는 이 뒤틀린 현실에서.  &nbsp;  저녁 식사 때 충분히(!) 마신 반주로 얼얼했는데 그 아득한 눈빛에 찔려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지고 만다. 우환에 나로 말미암아 내 옆지기가 그런 눈빛을 지은 적은 없을까, 까지 살을 파고드니 발걸음이 아연 허든댄다. 따지고 보면 결이 같아서 내가 자꾸 되작거리는 거다. 가리산지리산 헤매는 내 삶부터 아득한데 무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81606115513613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다시, 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link><pubDate>Wed, 27 May 2026 09: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부처님오신날이다. 골짜기마다 절집이 있는 우리나라 풍경을 떠올린다면 오늘 같은 날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더군다나 절집 앞까지 포장도로가 있다면 두말할 여지조차 없다. 한 주 뒤로 미룰까, 잠시 고민한다. 주초 하루 가웃 비 온 사실이 기억나자, 가기로 한다. 회룡천과 아우라지 특히 아우라지 앞뒤 마른 내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몹시 궁금해서다. 복잡해질 교통 상황을 고려해 이른 아침 먹고 서둘러 나서보지만 벌써 지하철부터 빛 다른 날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노약자석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아뿔싸  &nbsp;  회룡사 들머리에 순찰차가 서 있다. 금세 까맣게 잊고 뭔 사고 났나, 한다. 뱀처럼 늘어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서야 아이고 다행이다, 한다. 개인 승용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그나마 숨 막히는 일은 없을 테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들 소리 때문에 쏠 동영상을 더러 포기한다. 회룡사 안내방송, 독송, 종성이 골짜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비구니 독송이 낭랑은 한데 그리 유장하지 않아 귓등만 때리고 되돌아간다. 예불문(禮佛文)도 나올 뭣이 안 나오고 지나가는 듯하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내가 메운다.  &nbsp;  그만한 비에도 회룡천 수량이 확실히 불어나고 물때들도 대부분 걷혀 있다. 물소리도 제법 우렁차다. 회룡사 지나서부터는 물소리가 아연 잦아든다. 아우라지 직전에 이미 마른 내 상태가 된다.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아선지 내 바닥 특성 때문인지 고요한 복류 상태를 유지한다. 복류는 어디쯤에서 비롯했을까. 아우라지에 이르러보니 사패산 쪽 물은 아예 적요다. 도봉산 쪽 불길을 따라 들어간다. 작은 섬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아, 저 소리 내는 물 마지막 지점이 복류 진원지이겠구나. 궁금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만다.<br>  &nbsp;  물을 발견하고는 곧장 합장하고 동영상에 담는다. 손 종지 만들어 물을 마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접지한다. 발이 시려 더는 견딜 수 없어 일어서면서 내려다보니 발 담근 작은 웅덩이 밖으로 물이 흘러 나가지 않는다! 위에서 좔좔거리며 세찬 물이 내려오는데 작은 웅덩이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기이하다. 나는 얼른 물 밖으로 나온다. 가만히 웅덩이를 들여다본다. 미세한 소용돌이 여러 개가 무작위로 나타난다. 물이 빠르게 밑으로 빠져나간다는 증거다. 땅 밑 물길이 이미 있지 싶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넋 빠뜨린 채 바라본다.   &nbsp;  몰입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나는 찬찬히 섬 주위를 다시 살핀다. 병꽃나무를 포함해 몇 가지 나무를 더 확인한다. 이 작은 섬 안팎에 내가 아는 식물만도 15종이 넘는다. 이끼나 돌꽃까지 헤아리면 여기도 어엿한 생태 단위임이 틀림없다. 다음 주에는 더 큰비가 온다 하니 어떤 변화를 지을까 자못 기대된다. 아우라지에 인사하고, 마른 내 바위를 이리저리 건너뛰어 백여 미터 내려오다 보니 용천이 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 경계를 이렇게 무작위로 넘나들며 회룡 물은 중랑천 거쳐 한강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바다 되어 지구늪을 이룬다.   &nbsp;  지구늪에서 구름으로 올라간 물방울은 바람 타고 도봉산 회룡계로 되돌아올 테니 참으로 queer networking 그 자체다. 작디작은 아우라지가 빚어내는 묘하디묘한 변화에 겸허히 참여하는 찰나마다 내 상(相)은 사라지고 공생 이행 과정, 잠정 실재로만 진동한다; 이 장엄을 약탈하는 사악한 제국 앞에 무릎 꿇은 무지렁이 부역자임을 통감하고 무고히 희생당하는 숭고 존재와 늪 재생 항쟁 동지이기를 차마 앙망한다. 바리데기들이 “끝까지 웃으며 다 함께!” 싸우는 일 없이 장엄은 오지 않는다. 장엄은 지극 헌신이다. 부처님오신날 참뜻이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81606115513603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다시, 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link><pubDate>Wed, 20 May 2026 1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guid><description><![CDATA[<br>  &nbsp;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어 다시 회룡천 아우라지로 향한다. 다시 가는 며리가 아우라지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오가는 골짜기 풍경 또한 거기 포함된다. 경험 횟수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숲과 물이 달리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건네고 내음을 피워서 내 감각을 두드리는지 살피며 천천히 들어간다. 사진으로 담아낼 때도 전과 달리 색깔보다 빛살에 더 유념한다. <br>지난주 진입한 지점을 조금 지나자, 금지선이 해제되어 자연스럽고 쉽게 물길로 접근할 수 있는 샛길이 나온다. 스마트 지도로 미리 확인한 바와 다르나 가시에 찔리거나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사패산 쪽 물줄기로 내려간다. 큰비 온 뒤를 상상하며 더 안전한 경로를 눈대중해 둔다. 내 조그만 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잡아챈 변화 하나: 돌탑이 허물어져 있다.  &nbsp;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 손이나 발길질 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든 아니든 문득 든 생각은 여기가 돌탑 있을 자리는 아니다, 다. 좀 더 맑은 마음으로 엄밀한 자리 보아 새로운 돌탑을 쌓는다. 앉아서 무작위로 기이하게 펼쳐질 존재 향연을 호흡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든다. 섬과 물길 둘레 땅을 돌며, 나무와 풀을 깜냥대로 살핀다. 생태가 대강 들어온다.<br>  &nbsp;  물가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버드나무가 전혀 없다. 물살이 거센 상류라서 뿌리를 얕게 뻗고 나뭇결이 부드러운 버드나무는 살기 어렵다. 도린곁이라 땅이나 물을 정화하는 버드나무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당연하게 여기는 물오리나무 영지다. 물 좋아하는 본성을 같이 지녔으나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와 달리 깊게 뿌리 내리고 나뭇결이 단단하므로 딱이다.   &nbsp;  물오리나무는 참 특별하다.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때때로 거센 물에 시달릴지언정 뿌리가 진흙을 어느 만큼만 품을 수 있다면 모래땅이라도 다른 식물이 살 조건을 만들어준다. 이 섬 중 가장 큰 식물로서 층층나무가 늠름히 서 있는 근거다. 그런 보익 작용은 물론이고,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뭇과 식물도 아니면서 해독 작용까지 한다.  &nbsp;  전천후 능력을 지닌 물오리나무 힘입어 이 아우라지에는 무작위로 기이하게 인연 맺은 싸리나무, 국수나무, 뽕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나무, 머루나무, 누리장나무, 개옻나무까지 한껏 어울려 살아간다. 칠십 년 버드나무로 살았으니 인제부터 우리로 살아보라고 물오리나무가 빙 둘러서서 권하며 응원한다. 물오리나무 꽃말이 “장엄”이다. 두 손 모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0/pimg_781606115512952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대한민국 만악 뿌리에는 언제나 왜놈 제국이 있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link><pubDate>Tue, 19 May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guid><description><![CDATA[<br>*주강현(민속학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그대로 싣는다<br><br><br>정용진의 뿌리. 그의 할배 정상희는 메이지대학 출신으로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체육회이사. 대학 시절의 일본인 인맥이 그의 출세에 도움을 줌. 1936년 손기정선수가 동백림마라톤에 우승하도록 돕고 베를린까지 갔다. 전쟁 막바지에 만주로 사업차 떠났는데 그의 송별식이 반도호텔에서 거창하게 열려 정무총감 등 당대 조선을 지배하던 발군의 인물이 모였다.친일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 이상이었던 인물. 연전 &lt;양정인물평전&gt; 발간하면서 대선배인 그를 인물군에서 뺐다. <br>해방 이후 정치계에 투신,국회의원으로 리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에 가담,감옥을 다녀온다. 일제말기부터 이병철과 가까운 사업파트너로 사돈을 맺게되며, 이병철의 딸인 이명희가 정상진의 아들 정재은과 결혼하여 정용진의 모친이 된다. 사람들은 막연히 신세계가 삼성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만 알지만 정용진의 조부가 일제말과 자유당정권의 막강한 실세로 이병철에 막강한 도움을 주었고 딸을 시집 보내어 사돈을 맺은 것은 생략한다. 한마디로 정상희는 친일에서 미군정을 거쳐 자유당정권 부패신화의 조연으로 활약했다. 그 손자가 정용진으로 5.18에 탱크데이를 선포하고 도마뱀 꼬리자르기로 스타벅스 사장만 사표받고 끝. <br>평소에 멸콩을 부르짖던 정용진 ‘가문의 영광’이 이처럼 오랜 뿌리를 지닌 것이니, 5.18탱크데이로 흥분할 거 하나도 없다. 한국근현대사의 모순이며 근현대 재벌의 부의 축적이 이루어진 적나라한 정경유착의 과정, 그리고 어쩌면 하나도 변치않게 손주에게까지 유전된 친일 반민주 사업가의 전통이 멸콩놀이 일베놀이로 이어지는 DNA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9/pimg_781606115512852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71711</link><pubDate>Tue, 12 May 2026 1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71711</guid><description><![CDATA[<br>  &nbsp;  도봉산 회룡천은 두 물이 만나 어우러진다: 도봉산 포대 능선 산불 감시초소 기점 북쪽에서 발원한 남쪽 물줄기와 사패산 회룡바위 근처에서 발원해 도봉산·사패산 경계를 따라 흐르는 북쪽 물줄기. 이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거니와 남쪽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이 없어 거기 숲과 내는 사람 타지 않은 태고 골짜기로 남아 있다.   &nbsp;  2023년 1월, 나는 눈 덮인 그 골짜기로 혼자 올라가다가 실패해 죽을 고비 넘겨 가며 도로 내려왔다. 2023년 8월, 거꾸로 포대 능선 산불 감시초소 기점 부근에서 출발해 내려가다가 수직 벽 아래로 세 번이나 굴러떨어지면서도 기어이 지난겨울 실패 기점을 밟았다. 두 사건 이후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을 스승으로 섬긴다.  &nbsp;  스승은 앞 실패를 이끌며 나 또한 ‘순혈(純血)’ 반제 전사일 수 없는 부역자라는 진실을 통렬하게 가르쳤다; 뒤 성공을 이끌며 나와 스승이 생사를 나누는 동지임을 통곡으로 가르쳤다. 이 두 사건을 통해 나는 비인간 생명, 나아가 비생명 존재가 나와 더불어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우라는 진실을 심장에 새길 수 있었다.   &nbsp;  이 기억에 터 해 사는 삶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기회가 홀연히 찾아왔다. ‘홀연히’라는 표현은 무작위 팡이시질(networking)이 작동했다는 뜻이다. 현재 내 고뇌와 시절 인연을 이루는 한 사람은 제임스 브라이들이다. 그가 쓴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는 내가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열어나갈 길을 예시했다.  &nbsp;  또 한 사람은 &lt;습지가 부른다&gt;에서 스치듯 인용한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다. 그가 쓴 『자연은 퀴어하다』를 나는 여러 번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같은 결 영혼을 느끼는 매우 귀한 사람임을 살갑디살갑게 감지한다. 그가 수행하는 “앉을 자리(SIT SPOT)”가 내 숲·물 걷기에 “다시 또다시 돌아가는” 방향을 보탰다. <br>&nbsp;나는 오전에 방이 습지를 세 번째 걸은 다음 회룡 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 발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회룡천 아우라지/두물머리로 향한다. 2023년 여름에 나온 냇가 건너편 숲으로 들어선다. 물론 길이 아니다. 방향만 가늠한 채 무작정 나아간다. 건천이 된 북쪽 물줄기를 건너 두 줄기가 만나는 곳 땅으로 올라간다.   &nbsp;  잠시 사위를 둘러보고 남쪽 물줄기를 따라 더 들어간다. 드릴락 말락 소리를 내는 조그만 용천을 발견하고 물 모심 한다. 되돌아 나오면서 보니 남쪽 물줄기가 끄트머리에서 살짝 나뉘어 합류한다.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와 영락없이 같은&nbsp;섬을 이룬다. 전율이 온다. 나는 합장하고 돌탑을 쌓은 뒤 군데군데 밤, 도토리를 심는다.  &nbsp;  남한강이 발원한 오대천 아우라지에서 태어나 70년 뒤에 회룡천 아우라지에 선 이 사건을 나는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여기가 “다시 또다시 돌아가는” “앉을 자리”라면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queer) 변화를 겪게 될 테다. 실은 그런 이치를 따라,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 그리고 기이한 자연을 따라 여기 왔다.   &nbsp;  내가 태어난 오대천 아우라지처럼 나는 여기를 그리워할 테며, 그리워 다시 또다시 돌아올 테다; 차마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늪처럼 질퍽하고 즈런즈런하진 않을지라도 뻐근하고 두렵고 설레는 지성소로 스며들 테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을 남겨둔다. 해가 기울어 색깔보다 빛살이 찬란해질 무렵 절하고 무르와간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2/pimg_781606115512122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7171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부뚜막과 도토리나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2210</link><pubDate>Fri, 01 May 2026 14: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2210</guid><description><![CDATA[<br>  &nbsp;  4월 26일, 방이 습지에서 “공동체의 시간”(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과 잠시 만나고 나는 삼성동으로 가 봉은사를 걸었다. 봉은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1972년) 봄 소풍으로 처음 다녀간 이래 50여 년 동안 아주 여러 번 걸은 곳이다. 특히 한의사가 된 뒤부터는 보수교육을 대부분 코엑스에서 받는지라 매번 찾았다.   &nbsp;  넓지 않으나 오히려 아기자기한 맛이 쏠쏠하다. 뒤쪽 야산에 명상길까지 가꾸어 놓아 찾는 이가 많다. 다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불사, 그러니까 토건이 돈을 향해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켜서 갈 때마다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뭐 하나 세우고 그 앞에다 불전함 놓고 이런 식이라 걸태질 같아 보이니 말이다.  &nbsp;  봉은사뿐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 모든 절 풍경이 그렇다. 불심으로 보면 남루하고 너절해 보일 텐데 이 무슨 아이러닌지. 부처님오신날 가까워서 더욱 야단스럽다. 신심과 욕심 사이 구별이 없어 보이는 풍경을 휘적휘적 가로지른다. 오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놀랍게도 공양간이다; 거기 모셔진, 조왕신(竈王神)이다.<br>&nbsp;조왕신은 우리 토속신앙에서 부뚜막 또는 부엌신이다. 나도 어린 시절 그 이름을 들었고, 할머니께서 치성(致誠) 올리는 일을 수없이 보았다. 이제 와 홀연히 다시 맞닥뜨리니 대뜸 시간이 접힌다. 어디 부뚜막/부엌뿐인가. 우물, 길, 들, 풀, 심지어 뒷간에까지 수호신이 있다-측신(廁神)-. 가히 즈런즈런한 다신론이다.   &nbsp;  불교는 이런 토속신 104위를 품어 신중(神衆) 신앙과 융합했다. 맹랑한 음모론 유일신교 관지에서 보면 뒤죽박죽 미신이거나 열등한 ‘종교’일 테지만 엄밀하게 보면 이렇게 촘촘한 다신(多神)이야말로 무작위 퀴어 우주 본성에 한층 더 다가간 숭고다. 나는 불교 자체가 더욱 섬세한 평등 networking 다신교가 되기를 빈다.  &nbsp;  조왕신께 합장하고 명상길로 들어선다. 지난해 잘려 나갈 위기에 몰렸다가 내 기지로 목숨 건진 여린 도토리나무 앞에 선다. 기울어지긴 했으나 흠씬 자란 그분께 신명을 헌정한다: 회신(栃神). 우주를 구성하는 삼라만상 모두가 신이다. 얽히고설켜 서로 장엄을 축하하는 존재 사건이다. 도토리나무께서 나를 초대한 신비다.<br>화면 전체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가로지른 호리호리한 나무가 도토리나무(栃)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1/pimg_781606115511125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221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노동절에도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1839</link><pubDate>Fri, 01 May 2026 08: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1839</guid><description><![CDATA[<br><br>* 김주대(시인/문인화가)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br>삼성전자 노조원 같은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회사의 어마어마하게 큰 이익을 같이 나누자는 것(성과급 투명화, 상한제 폐지 등) 이해가 간다. 거기에 대해 의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들이 받는 성과급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액수라고 해도 말이다. 다만, 오늘 같은 날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고령 노동자 등 조직되지 못한, 조직되기 힘든 노동자들에게 더 눈길을 돌려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일해도 대기업 노동자 보너스 만큼도 못 받는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기 힘드니 잘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을 무단히 원망하기도 한다. 옳지 못한 원망이지만 그 원망을 무작정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죽했으면 그러겠는가 하는 마음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 해당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대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해본다. 어떤 연대의 방식이 있을까? 욕설 범벅인 시 한 편 올린다. ..[모계 유전]석 달 넘게 일한 돈 못 받아 겨울 풀처럼 말라 가는 엄마와 외제 차 자랑한다는 업주에게 하소연 전화하는 엄마 옆에서 업주에게 들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혀가 식칼이 된 아들 전화기 속으로 고함 소리 잘 들어가도록 폰 마이크를 켜는 저녁이다 그 씨발새끼한테 찾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말해 줘요오오— 책상을 치고 스텐 냄비 두드리며 피 끓는 응원을 보내는 아들과 조용히 하라면서도 손짓 발짓 아들의 함성을 부추기는 엄마 눈 껌벅이며 신호를 주고받다가 아들의 고함 가까이 전화기를 대주는 전화기 이쪽의 애끓는 저녁이다 아저씨 흥분하지 마시라 하라고 소곤거리는 전화기 저쪽의 간사한 저녁이다 씨발새끼가 여자라고 사람을 우습게 봐 혼자 산다고 우습게 봐? 남편 아니고 아들이라고 말해 줘요 식칼 들고 찾아간다고 말해 줘요오 엄마는 웃으면서 우는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아들이 무슨 일 저지를까 무섭다고 능청스럽게 흐느낀다 바람 불고 전등 깜박거리던 저녁이 지나간 이튿날 식전 통장에 엄마 월급이 들어왔다고 한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1/pimg_781606115511108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183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습지가 부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48342</link><pubDate>Thu, 30 Apr 2026 0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48342</guid><description><![CDATA[<br><br><br>  &nbsp;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옛 이름은 ‘방잇골’이었다. 개나리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 이름으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병자호란 때 오랑캐를 막았다는 뜻, 곧 방이(防夷)가 등장했다. 후대에 선비들이 뜻을 문제 삼아 방이(芳荑)로 바꾸었다고 마무리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부분 그렇듯 먹물들이 지어낸 그럴듯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  &nbsp;  방잇골은 백제 첫 도읍인 위례성 권역으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안말내(성내천)와 단내(감천, 나중에 감이천)가 합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농사가 성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 특히 1960년대 말부터 사나운 변화 대열에 휩쓸린다. 정치적 계략이 사회경제적 현실을 부추겨서 거대한 토건을 이른바 영동지구에서 일으킨 것이다.   &nbsp;  영동은 영등포 동쪽이란 뜻으로 1, 2차에 걸쳐 엄청난 부동산 쇼가 온 나라를 뒤흔들며 펼쳐졌다. 흔히 이 사태를 ‘강남 개발’이라 불렀다. 이 광풍 언저리에 놓여 있던 방이동, 안말내와 단내 사이 농지에 1970년 벽돌공장이 들어섰다. 1997년에 문을 닫을 때까지 토사를 마구잡이로 퍼낸 결과 그 자리에 커다란 웅덩이가 형성됐다.   &nbsp;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웅덩이는 인근 물과 강우가 쌓이면서 습지로 변해 갔다. 숲이 생기고 물고기와 각종 동물이 보금자리를 꾸몄다. “방이 습지”다. 2002년 서울시는 방이 습지를 생태·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했다. 2011년에는 방이동생태학습관도 열었다. 현재 식물 114종, 조류 45종, 어류 6종이 서식하고 있다(2021년 통계 자료).&nbsp;<br><br>지난 일요일(4월&nbsp;26일)&nbsp;나는 방이 습지로 향했다.&nbsp;올림픽공원역에서 진입하는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귀살쩍다.&nbsp;여전히 방치 상태다.&nbsp;도시 개발이 빚어내는 그림자로 궁뚱망뚱한 살풍경 전형이다.&nbsp;서둘러 지나쳐 생태학습관에 이른다.&nbsp;아무도 없다.&nbsp;관찰 길도 마찬가지다.&nbsp;적요에 아뜩해졌으나 곧 고요에 깃든다.&nbsp;천천히 걷다 섰다 앉았다 하며 쩍말없이&nbsp;‘홀로’라는 습지,&nbsp;그 물컹한 늪으로 빠져든다.&nbsp;여태까지 걸었던 숲이나 물 발길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질퍽거린다.&nbsp;시간이 흐를수록 음탕해지는 개구리 연가를 속귀 열어 듣는다.&nbsp;홀연히 꿩이 울리라는 육감에 따라 스마트폰 앱을 연다.&nbsp;이어서 울지 않고 끊는 그 우렁찬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는다.&nbsp;이런 시간을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nbsp;『자연은 퀴어하다』에서 말한&nbsp;“공동체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nbsp;사실 내가 여기 온 며리가 그러하다.&nbsp;내 걷기는 중대한 변곡점을 향해 가는 중이다.&nbsp;무작위성과 퀴어함에 나를 열어,&nbsp;듣지 못해서 듣는 세계로 들어가고자 해서다.&nbsp;마법이 과학인,&nbsp;과학이 마법인 삶에 잠기기 위해서다.&nbsp;새,&nbsp;나무,&nbsp;풀,&nbsp;버섯,&nbsp;흙,&nbsp;물,&nbsp;볕,&nbsp;바람을 반제·반식민 동지로 모시는 일이 더없이 엄밀해지려면 더 자주 더 이드거니 만나야 한다.&nbsp;여럿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여러 번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nbsp;인간과 과학 경계를 가로질러 시공을&nbsp;‘접는’&nbsp;마법이 필요하다.&nbsp;유의미한 고뇌는 유의미한 결과를 창조하는 법이다.&nbsp;습지에 홀로 앉아 영에 깃든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30/pimg_78160611551099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4834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2014.4.16.-438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9932</link><pubDate>Thu, 16 Apr 2026 0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9932</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6/pimg_78160611550955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993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길 잃으러 숲에 든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8132</link><pubDate>Wed, 15 Apr 2026 13: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8132</guid><description><![CDATA[&nbsp;&nbsp;오늘은 느지막이 도봉산 무수골로 향한다. 다른 계획을 잡기 어려울 때 가곤 하던 곳이다. 지난번 내린 봄비로 무수천 물도 물소리도 깨끔하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 전에 어귀 밤나무집 가서 점심 식사부터 한다. 새콤하니 익은 열무김치 곁들여 잔치국수를 먹는 중에 바깥일 하던 여주인이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듣는다.   &nbsp;  여기서 태어나 60년 가까이 살았으나 골짜기 이름을 무수골이라고 부른 적이 없단다. 심지어 보문사 계곡이란 말은 처음 듣는단다. 토박이들은 골 위쪽을 ‘밤나무골’이라 부르고 아래쪽을 ‘굿골’이라 불렀단다. 물론 밤나무와 무속인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실현 가능성이 작으나 한자로 표기한 관료식 이름을 모두 본디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nbsp;  도봉산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 창건된 도봉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설이나 조선 개국과 관련해 도봉산이 됐다는 설은 모두 지배층 중심 사후 서사다. 도봉에서 ‘도’는 ‘돌’에서 왔다고 본다. 자운봉을 비롯해 그 주위 암벽들이 지니는 압도적 위상서껀 이어지는 오봉·포대·다락 암릉(巖稜) 길을 가리키는 우리말 이름이 모름지기 엄존했을 테니까.   &nbsp;  특정 목적에 따라 작위로 지은 이름과 달리 민중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름은 무작위 소산이다. 인간으로서 산, 물, 들과 상호작용 하며 살아가는 맥락에 딱 알맞은 표상을 누구랄 수조차 없이, 너나 함께 입에 올려서, 사실상 자연발생 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시원에 닿은 평등과 자유 팡이시질(networking) 영성을 머금고 있다. 되살려야 할 며리다.  &nbsp;  길 잃고 헤매기 직전에 담았다고 추정하는 숲 풍경<br>밤나무골 길을 찾은 뒤 처음 담은 물 풍경&nbsp;  <br>식사가 끝나갈 무렵 여주인이 허리 아픈 이야기를 한다.&nbsp;먹다 말고 나는 침을 꺼내 든다.&nbsp;침 치료를 받은 그가 고마움을 표하며 전을 부쳐준다.&nbsp;맛나게 먹고 길을 나선다.&nbsp;지도에서 확인한바 다른 길과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 비탈길로 들어선다.&nbsp;길 잃기로 작정한다.&nbsp;마침내 어디선지 알 수 없이 길을 잃고&nbsp;‘무작위’로 헤맨다.&nbsp;숲에 왜 드는지 알고야 말리.<br>어떻게 해서 밤나무골 길을 찾아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지점을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은 걸 보니 넋을 놓은 상태로 떠돌았음에 틀림없다. 정신 차리고 담아 놓은 물 사진이 서른 장 가까이 된다. 밤나무골 물 모심은 제대로 한 듯하다. 새로운, 아니, 본디 이름을 찾아 다시 부를 일 없는 이름 ‘무수골’은 이제 어떤 격상을 앞두고 있다.    &nbsp;  실은 몇 주 전부터 해월(海月) 스승 유택이 있는 원적산을 탐색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숲에 드는 게 맞는지 스스로 다시 물었다. 기나긴 여정 뒤라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확실히 비어 있다고 느껴서 끈덕지게 물었다. 원적산을 보류하고 위험성이 덜한 밤나무골 어디선가 길 잃기로 돌렸다. 숲이 어떤 슬기를 줄는지 기다린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5/pimg_781606115509453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813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마주 열어 저 너머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0179</link><pubDate>Sat, 11 Apr 2026 14: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0179</guid><description><![CDATA[<br><br>지난 5일까지 창덕궁은 &lt;빛, 바람 들이기&gt;라는 이름으로 문과 창문을 열어 놓는 행사를 했다. 본디 의도와는 무관하게 방문객은 그 마주 열리는 문과 창문을 액자 삼아 건너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통 한옥이 품은 이른바 차경(借景) 효과를 누리는 각별한 시공으로 들어간다. <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1/pimg_78160611550898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1017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가시 각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96117</link><pubDate>Sat, 04 Apr 2026 13: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96117</guid><description><![CDATA[<br>  &nbsp;  지난 3월 청량산 안말골 들어가 길 잃고 헤매다가 손가락 몇 군데 가시에 찔린 적이 있다. 다른 데는 얼마 되지 않아 다 아물었으나 유독 가운뎃손가락 끄트머리 상처가 여태껏 남았었다. 검은색이니 부러진 가시가 박혀 있음이 분명한데 아프지도 성가시지도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날카로운 통증이 들이닥치기에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신기하게 가시가 염증 없는 상태로 살과 공존(!)하고 있다. 주위 살을 살짝 밀어 올리고 단침(短針)으로 파내주니 작디작은 구멍 하나 남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가락 생명체는 무감으로 돌아갔다. <br><br>&nbsp;‘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려 했는데 불쑥 의문이 든다. 어째서 염증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갑자기 달려든 가시를 검문한 결과 지닌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적은 아니라고 판단해 일단 내치지 않고 공생(!)을 시도한다. 얼마간 시간을 두고 좀 더 세심히 살핀바 무기만 없는 게 아니라 주고받을 생명 건더기조차 없다. 공생은커녕 공존할 존재도 아니라고 최종 결론 내린다.” 내 상상력은 여기까지다. 공생하는 통 생명체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인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아프지도 성가시지도 않아서’라는 근거는 얼마나 아둔하고 덜퉁한가?  &nbsp;  그러하다. ‘나’라고 뻐기지만 본디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나들’(김선우) 팡이시질(networking)이 가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 삼가 참여하려면 ‘나들 속 나’는 끝 없이 조프린 얼(靈) 눈으로 ‘나들’ 통 생명 사건 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틈에서 빛이 나온다(레너드 코언). 그 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피상성과 진부함, 그리고 엉성함에서 인간 또는 인류가 저지르는 온갖 악이 나온다(한나 아렌트). 찰나마다 깨어서 섬세 치밀하게 감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련다. 거대 장엄은 얼핏 본 짝퉁이고, 미세 장엄이야말로 촘촘히 본 진품이기 때문이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4/pimg_78160611550815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9611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임꺽정과 중랑천 사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90344</link><pubDate>Wed, 01 Apr 2026 1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903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신라 승 도선이 창건한 불곡사(佛谷寺)에서 이름을 딴 산이 양주 불곡산이다. 물론 거꾸로 된 서사다. 회양목이 무성해서 겨울이면 산 전체가 붉게 물들었으므로 이를 한자로 음차해 절 이름을 지었다. 곡(谷)이 붙은 까닭은 골짜기가 많아서일 테다. 북서-남동 방향 일직선으로 늘어선 바위 봉우리 셋과 그들을 이으며 늘어선 바위 등성이가 거느린 골짜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천(千)골’이라는 이름까지 있다. 사패산보다 낮은 산인데 지도에 표기된 골짜기 이름만도 3배 이상이다.   &nbsp;  지난번에 걸은 사패산 인근을 살피다가 불곡산을 재발견했다. 경강(京江) 지천을 걷던 중 중랑천 발원지가 불곡산이라는 사실만 잠시 확인했는데 그땐 이렇게 다시 마주할 줄 몰랐다. 양주역에서 내려 바로 중랑천 산책로로 들어선다. 정북 방향으로 따라가다가 샘내고개 바로 앞에서 서쪽으로 꺾이는 물길로 접어든다. ‘중랑천 발원지 샘내’라는 홍보 겸 안내 기둥이 서 있다. 여기서 샘내라고 부르는 물이 흘러 중랑천이 되고 마침내 한강으로 흘러든다. 샘내 샘 찾기 출발이다. <br>  양주에서 처음 마주한 중랑천&nbsp;  <br>지도에 청량골이라고 되어 있는 부근에서 왼쪽으로 틀어 물소리를 들으며 더듬어간다. 자료에 따라서는 청량골 또는 청엽굴 고개를 발원지라 한 것이 있으나 확증 없이 쓴 듯하다. 내가 물 따라 들어가고 있는 이 골짜기는 임꺽정봉과 상투봉 사이 골짜기다. 이게 청량골인지, 청엽굴은 어딘지 확인이 안 된다. 나는 내 식으로 샘내골이라 부르기로 한다. 샘내골 물방울 처음 맺는 곳이 중랑천 발원지임은 분명하다. 이 깊은 골 끝에 닿을 때까지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br>  샘내골 가장 높은 곳에서 본 물&nbsp;  등성이에 닿아 임꺽정봉을 향해 난 험한 길을 오른다. 정상 직전에서 멈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나는 산 정상을 밟지 않는다. 등정(登頂) 또는 등반(登攀)은 정복자 위상 은유인 제국주의 alpinism에 복종하는 식민지 행태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역사로 보아도 오늘날 무심코 즐기는 통속한 ‘등산’은 일제가 만들어낸 짝퉁 제국주의에 무릎 꿇는 부역 행위다. 나는 이내 되돌아와 지도에 없는 골짜기 길로 들어선다. 샘내골과 더불어 고개 이룬 여기 이름은 원심이골이다. <br>  임꺽정봉 오르기를 멈추고 돌아본 능선&nbsp;  원심이골도 인기 좋은 경로는 아니다. 인적이 바래져 길이 설다. 물 말린 긴 너덜겅 멈춘 곳에 임꺽정 생가터 가는 자락 길 안내판이 서 있다. 이리 반가울 수가! 자락 길 걸어 골짜기 둘을 가로지르니 임꺽정 생가(터) 보존비가 나타난다. 알다시피 임꺽정은 명종조에 뜨르르했던 백정 출신 의적이다. 지배자에게는 한낱 도적일 뿐이나 피지배자에게는 보존비 표현대로 “민중의 횃불”로 기억되는 영웅이다. 어쩌면 불곡산 붉은빛이란 임꺽정 횃불 빛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nbsp;  임꺽정 관련 자료를 읽다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백정은 직업에 따라 분류된 단순 천민 계층이 아니다. 고려시대 중앙아시아에서 흘러든 튀르키예 계통 유목민 타타르-달단 또는 달달-족이다. 세종조에 농경 생활로 이끌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목 생활을 고수하며 점차 고립되는 과정에서 불가촉천민 집단으로 내몰렸지, 싶다. 신분제 혁파로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알알이 박혀 오늘 K-민주주의 불씨가 되지 않았을까.<br>  임꺽정 생가터 보존비<br>높지는 않으나 언틀먼틀한 골산인 불곡산&nbsp;  불곡산은 이렇게 해서 내게 지우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섬세하게 따지면 중랑천과 내가 맺은 인연은 60년도 넘었다. 1965년 서울로 와 중랑천 지천 성북천을 건너다니며 20년간 살았다. 2011년 다시 중랑천 3백여m 거리에 진료소를 차려 돌아와 16년째 살고 있다. 2023년 1월 중랑천 지천 회룡천에서 마침내 생애 정점에 달하는 깨달음을 얻고 그 연장선에서 반제국주의 전사로 살아가다가 민중의 횃불 임꺽정을 중랑천 발원지 불곡산에서 기린다. 억지 서사일 수 없다.   &nbsp;  지난 5년 동안 서울 안팎 해발 200m급 이상 산 30개를 걸었다. 히말라야는 언감생심이고 백두대간만 보더라도 내가 걸은 산들은 낮다. 등산이 아니니 욕심도 자부도 없다. 평일에 출퇴근하는 옷차림으로 보호 장구는 물론 상비약조차 없이 홀로 걷는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내 걷기 자체가 반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 운명이기 때문이다. 운명을 천명으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숲이고 물이고 땅이고 바람이고 볕이다. 연거푸 3번 20km 이상 걸었으니 좀 줄여도 될 테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01/pimg_78160611550784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90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쓰레기봉투 사재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6642</link><pubDate>Fri, 27 Mar 2026 0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6642</guid><description><![CDATA[<br>*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쓰레기봉투 사재기가 일어난다고 한다. 세계에서 한국이 분리수거를 제일 잘한다더니, 이 정도면 전쟁이 일어나도 분리수거를 먼저 걱정하겠다. 무슨 식품 사재기를 하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쓰레기봉투가 먼저라니 확실히 착한 시민 되기에 정박된 순응주의. 석유 봉쇄가 된 쿠바에선 지금 거리거리마다 쓰레기가 넘친다. 이걸 미국 유투버들이 찍어서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는 이렇게 더럽다며 주접을 떨고 있다. 당연히 미국이 석유를 봉쇄해서 쓰레기 청소차가 멈춘 것이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비닐 원료인 나프타의 60%를 공급받는다고 한다. 이게 막혀서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 난리가 났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떠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 쓰레기봉투도 못 만들 정도면 석유와 가스에 기반한 모든 상품들도 생산하지 못한다. 당장 먹는 것들이 문제가 된다. 쓰레기봉투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상황이 그 정도로 악화되면 쓰레기 수거차의 연료도 제한되겠다. 정부가 3개월 정도 쓰레기봉투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해도 이 난리. 만약 쓰레기봉투 못 만들 정도면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그냥 비닐 봉지에 넣어도 된다고 하겠지. 아니면, 임시방편으로 종이로 봉지를 만들어 내겠지. 이도저도 아니면 예전처럼 일정의 수거료를 받고 받아가든지. 아니면 각자 장바구니에 쓰레기를 모아 특정 장소에 갖다 놓게 한다든지. 위기를 어떻게 공동체가 함께 극복할까 고민하기보다, 그저 각자도생과 착한 시민 되기에만 골몰하는 어떤 풍경.<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몰염치와 부끄러움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4787</link><pubDate>Thu, 26 Mar 2026 1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4787</guid><description><![CDATA[<br><br>*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br><br>유엔 총회에서 노예무역을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는 결의안이 막 통과됐다. 123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도 찬성표다. 그런데 반대한 나라가 셋. 미국, 이스라엘 ,아르헨티나. 파시즘 국가들답다.이 결의안은 가나와 팔레스타인 등이 공동으로 제안한 것이다. 대서양 노예무역과 노예매매를 규탄하고, 그에 대해 '식민 배상'을 하라는 요구다. 최근 아프리카를 필두로 식민 배상 요구 운동을 펼쳐 왔었다. 한편으로 이 결의안은 여기 글로벌 자본주의가 제국-식민주의의 불평등에 기초해 있다는 걸 공유하는 취지도 담겨 있다. 1500년에서 1800년 사이, 얼마나 많은 흑인노예들이 대서양을 건넜을까? 대략 1500만 명.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략 2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노예무역과 노예 플랜테이션이 없었다면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 수많은 노예들이 혹독한 채찍질 속에서 채굴하고 수확한 은, 목화, 설탕, 인디고 등이 유럽으로 실려가 자본 축적의 원천을 제공한 것이다. 파란색이 찬성한 국가들, 빨간색이 반대한 국가들, 살구색이 기권한 나라들. 결의안에 반대한 미국과 이스라엘, 이 두 나라가 오늘날 얼마나 악의 축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19세기 목화밭에서 노예를 부리며 부를 축적했고, 지금에 와서도 그 남부 이데올로기를 질료 삼아 백인우월주의를 확대재생산하는 미국답다. 물론 기권표를 던진 유럽도 한심하긴 마찬가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이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최근 가자와 이란 전쟁에 대한 소신 발언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15세기 말부터 수백년 동안 가장 지독하게 인종학살과 노예무역을 주도했던 스페인이 가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꾹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유럽중심주의의 한계다. 피식민 국가였던 한국이 결의안에 찬성을 던진 건 당연한 일. 옆나라 일본이 염치 없이 기권표를 던진 것도 인상적이다.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26/pimg_781606115507133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478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질서있는 패권퇴각의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미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1998</link><pubDate>Wed, 25 Mar 2026 1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71998</guid><description><![CDATA[<br><br>*한설(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모든 전쟁은 그 역사적 시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전쟁이란 그 자체가 인간이 직면한 역사적 시대적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모순이 어떻게 해소되는가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성격도 또한 규정되는 법이다. 그래서 전쟁을 단순하게 군사적 충돌로만 보면 안된다.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전황, 특히 걸프지역과 이스라엘지역의 피해상황에 대한 보도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주 강력한 보도통제가 시행되는 것같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정부가 허용하지 않는 보도를 할 경우 중범죄로 다스린다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런 피해상황이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텔아비브의 사진을 보면 매우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워낙 강력한 보도통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관련 당사자의 발언과 보도를 통해 전쟁이 무슨 이유로 발생했으며, 그 본질이 무엇이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비교적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정황과 근거들이 하나씩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전쟁의 본질을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패권방어 전쟁으로 파악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패권도전을 방어하기 위해 중국의 외곽으로부터 압박을 해나가기로 하고 베네주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제거하고, 그 뒤를 이어서 이란에 대한 압박과 공세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부추겨서 전쟁을 시작했다고 하는 것은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소음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서 미국의 자본이 국가의 운명을 이스라엘에 맡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미국 금융자본의 실질적인 주인은 유태계가 아니라 록펠러 가문이다. 현재 미국의 주인은 록펠러인 것이다. 유태인과 로스차일드는 록펠러의 하수인 정도로 보는 것이 현재 미국과 서구의 정치체제 그리고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금융자본의 강력한 지원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국가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간밤에 그런 구상을 가능하게 하는 두가지의 기사가 올라왔다. 하나는 JP 모건의 다이먼 회장이 트럼프의 전쟁수행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조선일보가 25일자로 보도한 ‘월가 황제’ 다이먼 “이란, ‘당장의 위협’ 아닌 돌진하는 살인자들”이라는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다이먼은 이란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다이먼의 이런 발언은 미국 금융자본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발언을 통해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말한 것 같은 휴전과 같은 상황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자본이 이란을 결국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를 예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다이먼이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미국 금융자본은 이란이 승리한 서아시아와 걸프지역의 새로운 지정학적 상황변화를 수용할 수없다고 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미국 금융자본은 페트로달러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독자적인 정책수행을 하기 어렵다. 트럼프도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런 상황을 통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미국 금융자본의 전쟁수행은 철저하게 미국 대중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번째는 중앙일보가 오늘 25일자로 보도한 “사우디 왕세자, 트럼프에 ‘전쟁 지속해야…이란 정권 붕괴’ 촉구”이다. 사우디의 빈살만 왕세자는 이란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하야 하며, 이로 인한 유가문제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우디는 이런 보도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원인에 대한 여러 보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가 이란을 타격할 것을 요청했다는 보도는 여러번 있었다. 아마도 트럼프가 이란 전쟁을 감행하게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입장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전쟁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의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필자는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가 했다는 이런 발언이 결국은 미국 금융자본의 입장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우디는 원유를 수출한 대금을 거의 미국의 월스트리트에 투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결국 사우디도 미국 금융자본의 인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심각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이번 전쟁이 이란이 요구하는대로 종결된다면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지역 왕정국가의 실존적인 위기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미국이 이란의 요구를 수용하여 미군기지를 철수하고 위완화로 석유대금을 결재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 관리하게 되면 걸프국가들은 이란의 지역패권에 모두 종속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걸프국가의 왕정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존재론적 위기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국가들이 미국의 전쟁수행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처음에는 미군에게 자국내 기지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얼마전부터는 모두 허용했다.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경우는 절박하다. 그들이 미국과 같이 전쟁을 수행하겠다고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은 이란의 핵무기능력을 제거하고 말고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란에게는 서아시아 지역패권을 차지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이고, 미국에게는 이지역의 영향력 상실이 곧바로 전지구적 패권상실로 이어지는 도미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걸프국가들은 왕정이 붕괴하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트럼프가 말한 앞으로 5일간의 공세유예는 평화를 위한 시도가 미국이 어쩔수 없이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군사작전을 계속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미국이 진정 이 지역에서 영예로운 퇴진을 하려고 했다면 이란과 보다 진지한 대화를 했어야 한다. 이미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이 이란이라는 것이 다 드러나 있다. 미국이 실리는 양보하고 명분이라고 지킬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런 기회도 상실하는 것 같다. 제국은 항상 이렇게 무너진다. 그러고 보면 영국이 제국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그야 말로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질서있는 퇴각이었다.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모든 골짜기로 들어가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9930</link><pubDate>Tue, 24 Mar 2026 1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9930</guid><description><![CDATA[<br>  &nbsp;  사패(賜牌)는 조선 시대 임금이 궁가(宮家)나 공신에게 산림이나 토지를 하사하는 일이다. 경기도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 있는 산이 사패산인데, 선조가 6번째 공주인 정휘옹주에게 혼인 선물로 이 산을 주어서 생긴 이름이다. 해발 552m 화강암 덩어리 골산(骨山)이다. 그동안 마치 오봉산처럼 도봉산 일부로 여겨 따로 걸을 생각 내지 않다가 지도에서 골짜기들을 발견하고는 작심한다. 사패산은 골짜기 넷을 거느린다: 범골, 안골, 울띄골, 오야골. 오늘 이 넷 모두를 걷기로 한다. 20km가 넘을 듯하니 시간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nbsp;  회룡역에서 내려 호암사 가는 길을 따라 먼저 범골로 들어간다. 골짜기 이름이 왜 범일까? 다른 자료는 없고 호암사 호암(虎巖)이 범바위니까 아마도 이 골짜기에 범이 살았나보다 추측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호암사 바로 뒤에 범이 살았을 만한 바위굴이 있다. 절에서 그랬는지 출입을 막아 놓았다. 굳이 들어갈 생각은 없다. 조금 가파르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을 걸어 범골 능선에 다다른다. 지도로 확인하니 사패산 정상을 오른쪽에 두고 오야골로 내려가 송추역 근처에서 점심 먹은 뒤 울띄골로 들어가는 일은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길을 바꾼다.<br>  &nbsp;  사패 능선과 만나는 지점 1/3쯤 전에서 오른쪽 작은 능선을 타고 안골로 내려간다. 골바닥에 닿아 왼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성불사가 나온다. 절을 구경 생각은 없으나 안골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 보려고 절집을 가로지른다. 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하릴없이 내려오다가 안골 폭포를 만난다. 신기하게 하얀 암반 위로 조그만 물줄기가 재잘거리며 흘러내린다. 철이 철이니만큼 아쉽지만 한참이나 눈에 담아두고 음식점을 찾아 내려간다. 혼자 먹을 음식이 없는 유원지 식당 몇을 지나 겨우 설렁탕집을 발견한다. 시장이 반찬이라던가, 역대급 맛이다.<br>  &nbsp;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안골로 되들어가다가 오른쪽 능선 산너미길을 따라간다. 바로 여기가 북한산 둘레길 14구간인데 풍경 좋다고 소문 자자한 길이다. 나는 능선길을 본능으로 싫어하나 이 길에서는 그런 마음이 피어오르지 않는다. 울띄골로 내려가는 지점부터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직은 바싹 마른 겨울 모습이지만 물과 돌, 그리고 나무가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이 참으로 정겹고 곱다. 다른 철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풍요롭지는 않으나 돌돌 흐르는 도랑물로 오랜만에 ‘물 모심’까지 한다. 물이 가는 길에서 멀어지는 인간 언덕길로 올라간다. <br>  &nbsp;  다시 숨 고르고 지도를 열어 살핀다. 오야골 가는 길을 살피기 위해서다. 어라?! 내 발밑에 굴 하나가 지나간다: 사패산 터널. 산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가는 광폭(편도 4차) 쌍굴 터널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환경 단체, 불교계가 일제히 들고일어나 반대한 까닭이다. 과연 얼마나 중요한 도로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박정희 이후부터 사악한 제국 부역자 집단이 장악한 대한민국 토건 현실에서 볼 때 흑막은 없을 수 없다고 본다. 본디 길이 지니는 쌍방 소통은 가로막히고 효능과 권위만이 일방으로 질주하는 터널 위에서 나는 돌연 허공으로 둥둥 떠오른다. <br>  &nbsp;  정신을 다시 주워 담고 내려와 오야골로 들어간다. 자두 옛말인 ‘오얏’과 관련된 이름 아닐까, 짐작하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잘 닦여진 길 왼쪽으로 내려다뵈는 제법 깊은 골짜기 내는 돌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닥이라 건천(乾川) 상태다. 한참 올라가니 원각사가 나온다. 흔히들 부르는 이 골짜기 이름이 기원한 절이다. 그냥 지나친다. 조금 뒤에 쏠 하나가 나타난다. 여기도 자질자질하나 물 많을 때 드러낼 모습과 소리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힘에 이끌려 이슥히 바라본다. 사패 능선 향해 더 올라갈 며리는 없다고 판단해 발길을 거둔다. 5시간 걸어 마무리다.  &nbsp;  오늘 골짜기 넷을 더하면 5년간 서울 안팎 계곡 60곳을 걸었다. 놓친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모든 골짜기로 들어가라”라는 말에 여정히 값하는 여정이었다. 왜 굳이 골짜기를 걸었나? 능선과 달리 계곡에서는 비인간 생명인 버섯(곰팡이)·돌꽃·풀·나무, 그리고 비생명 흙·물·볕·바람들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마주하여 교감할 수 있어서다. 이런 내 행동은 제국주의 생활 양식 가운데 하나인 ‘등산’이 아니다; 내 몸에서 공생하는 섬세 생명과 더불어 더 널리 생명과 우주를 만나는 ‘잔치’며 ‘제의’다. 숲에 홀로 들 때, 함께 들 인간 벗을 그리는 며리가 여기에 있다.  <br>  <br>&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24/pimg_781606115506877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993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스리랑카의 인도주의적 결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3669</link><pubDate>Sat, 21 Mar 2026 1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3669</guid><description><![CDATA[<br><br>*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br><br><br>역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결국 미군의 영국 기지 사용을 허가했다. 아침저녁으로 말 바꾸는 게 간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엡스타인 영국 정부라는 조롱에 부합하는 결정이겠다. 반면에 미국의 요청의 나라를 거절한 나라도 있다. 스리랑카. 오늘, 아누라 쿠마라 스리랑카 대통령은 전투기의 착륙을 허가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작은 나라의 용기를 상찬하는 말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란 전쟁 초반에도 이미 그 용기를 국제 사회에 보여줬다. 트럼프가 순전히 '재미를 위해' 스리랑카 인근에 있던 이란의 군함을 격침시키고 수십 명의 목숨을 빼앗았을 때, 재빨리 200명이 넘는 이란 선원을 구출했었다. 중립을 표방하는 스리랑카지만 순전히 인도주의적 결단에 의한 행보였다. 스리랑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세계인들이 그 행보에 존중을 표했다. 세계 열강들이 미국 눈치를 보면서 주접을 떠는 동안, 작은 나라 스리랑카는 이렇게 인도주의적 실천을 단행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황이 좋은 게 아니냐고 할 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서 스리랑카는 현재 매주 수요일마다 휴일로 정한 상태다. 높은 유가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제 언론들은 스리랑카의 '용기'만 부각하고 스리랑카의 이런 결단을 가능케 한 내막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령, 이런 결정을 내린 아누라 쿠라마 대통령이 스리랑카 역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라는 사실 같은 것들. 2022년 봉기를 통해 부패한 대통령을 내쫓은 스리랑카 주권자들은 핑퐁게임하듯 수십 년 동안 정권을 나눠 가지던 양당 엘리트들에 넌더리를 내고 3%의 지지율을 보이던 한줌의 좌파 세력을 지지했다. 한때 무장혁명을 지향했던 JVP는 이제 다른 좌파들과 연합해 좌파연합 NPP로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며 여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젊은 나이에 JVP 당원이었던 아누라 쿠라마는 늘 정부 암살단에 쫓기는 신세였다. 자기 때문에 부모집도 홀라당 불에 탈 정도였다. 온갖 역경을 딛고, 또 2022년 혁명에 힘입어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이다. 역사상 처음 좌파가 정권을 잡았는지라 곧바로 주저앉을 거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무너지던 경제를 다시 세우고 있고 2026년 2월 기준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65%에 육박한다. 요컨대 스리랑카의 인도주의적 결단은 이처럼 주권자들이 만들어낸 좌파 정부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가난한 소국이지만, 지금 현재 그 품위와 자존심과 인류애를 드러내는 나라. 주식 걱정, 유가 걱정에 전쟁과 살육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에게 미덕을 보여준다 하겠다. 인간의 품위는 얼마나 인간다운가에 있지 돈이 많은가에 있지 않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전쟁을 하면서 동시에 기후-생태를 보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1695</link><pubDate>Fri, 20 Mar 2026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61695</guid><description><![CDATA[<br><br>*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이란 전쟁에 관한 포스팅을 여러 번 했더니 이란 전쟁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이 연달아 온다. 정중이 고사했다.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다. 더구나 전쟁과 생태를 분리해서 말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을 계속 지켜보는 이유는 이 정치적 재앙이 곧 생태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의 기저에 흐르는 석유 지정학이 곧 기후 지정학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둘은 한 몸이다. 미군과 이스라엘을 폭격하는 사이, 미국에는 대형 산불이 나고 40도가 넘는 3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작 3월인데도 40도가 넘는다. 그런데 이건 약과다. 올해 늦여름부터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할 폭염이 지구를 덮칠 개연성이 높다. 간단한 과학 이야기다. 2023, 2024, 2025년. 이렇게 3년의 기온은 인류 역사상 최정점을 찍었다. 2024년의 경우 12만 년 동안 중 가장 더운 해였다. 왜 이렇게 더운 것인가를 놓고 과학자들이 지금도 박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정말 에어로졸 감소 때문인가? 알베도 감소의 충격 때문인가? 또는 우리가 모르는 복잡한 지구생태계가 온난화를 더욱 상승시키는 건가? 하지만 문제는 이 3년의 더위가 라니냐 기간에 펼쳐졌다는 점이다. 라니냐는 0.4~0.6도 가량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린다. 라니냐 기간이었기 때문에 기온이 떨어졌어야 정상이었다. 반면에 엘니뇨는 지구의 기온을 끌어올린다. 바로 올해 늦여름부터 엘니뇨가 온다. 말하자면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3년 후에 엘니뇨가 오기 때문에, 막대한 폭염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미국의 3월 폭염에서 보듯 벌써부터 조짐이 안 좋다. 한쪽에선 정유 시설과 가스전이 불타오른다. 또 한쪽에서는 지구가 불타오른다. 왼쪽 사진은 이란이고, 오른쪽 사진은 미국의 래브라스카다. 이 둘은 다른 이야기인가? 화석연료 제국주의가 19세기 말부터 중동의 모든 땅자락에 경계를 그어가며 지정학적 갈등과 제노사이드와 전쟁을 유발해 왔고, 그렇게 유혈의 쟁탈전을 경유하며 추출한 석유와 가스를 불태운 결과 지구가 점점 더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결국 송유관이다. 세계 석유의 20%를 배출하는 송유관. 그곳이 막히니 줄지어 유조선도 늘어서고, 유가 상승 때문에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인질이 된 채 질질 끌려 다니고 있다. 말하자면 트럼프로 표상되는 화석연료 제국주의의 인질이 된 셈이다. 요즘 스페인이 가장 목소리 높여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한다. 매일 비판이다. 전 세계에서 산체스 총리에게 팬레터가 쇄도하고 있단다. 스페인 내부의 정치적 지형에 따른 효과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덕분이기도 하다. 산체스 정부는 지난 6년간 태양광과 풍력 발전 용량을 두 배로 늘렸다. 콜롬비아와 함께 요근래 가장 빠른 속도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기 가격을 가스 시장과 구조적으로 분리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근 조사 결과, 스페인에서 가스 가격이 전기 가격을 결정하는 시간은 전체 시간의 15%에 불과하다. 이는 이탈리아의 90%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즉, 재생에너지에 투자함으로써 화석연료 가격 변동에 훨씬 덜 취약하게 된 것이다. 가스의 9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는 독일이 트럼프에 꿈벅 죽는 것에 비해, 스페인이 지금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따질 수 있는 데는 이런 에너지 전환이 나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터다. 재생에너지는 어떻게 전환하고 어떤 속도로 전환하냐에 따라, 자립이 될 수 있고, 평화의 자원이 될 수 있으며, 정의와 평등의 밑천이 될 수 있고, 또 민주주의와 반권위의 밑천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러시아에 가스를 의존하던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흐지부지됐다. 러시아산 가스가 아니라 미국산 가스를 구입했다. 미국 화석연료 기업들만 배가 터지도록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란 전쟁이 나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산 가스 구입으로 선회하고 있다. 푸틴이 내적 어깨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일부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 기회주의자인 프랑스 마크롱이 최근에 한 말은 그래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졌다며 지금 받고 있는 피해가 "바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의 대가"라고 공언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우리가 화석연료를 소비할 때마다 전쟁과 분쟁과 피로 점철된 비극들을 소비한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반전평화를 외치는 것과 화석연료 근절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한하게 작동하며 이윤을 축적하려는 이 전쟁 기계에 윤활유를 공급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하면서 동시에 기후-생태를 보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가 상승과 방산주 잭팟 타령 좀 제발 그만했으면.<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하버마스의 죽음과 ‘유럽 부족 철학’의 종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7266</link><pubDate>Wed, 18 Mar 2026 10: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7266</guid><description><![CDATA[<br>*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위르겐 하버마스가 96세의 고령으로 며칠 전 사망한 뒤 국내 학계에서 그를 “기리는” 글들이 쏟아졌다. 내가 접해본 글들은 대체로 “냉정한 우호”에 가까운 내용이었던 것 같다. 호의적 애도 가운데는 “젊었을” 사회이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동기가 하버마스의 글을 읽은 것이었다는 내용이 더러 있었다. 나도 “젊었을” 때 그의 글들을 접했었고 상당 부분 공감한 적도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련된 그의 글을 읽고서는 부정적 평가로 돌아섰다고 기억된다. 그의 사후, 2023년 10월 가자의 하마스 세력이 벌인 ‘알 학사 홍수 작전’--이에 관해서는 시온주의가 기획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종족 학살을 자행하는 것에 대해 그가 동료들과 발표한 친-이스라엘 입장문(「연대 원칙에 대하여(Grundsätze der Solidarität)」)을 환기하는 언급이 다수 나왔다. 하버마스는 거기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하고,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반유대주의를 경계하고 인도적 가이드라인—이스라엘의 반격은 국제법과 인류애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가 제시한 인도적 가이드라인은 빈말에 불과했고,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데 주력한 입장문이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하버마스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지식인은 눈에 많이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를 비판이론의 대가로 보는 데에는 대체로 공통적이다.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이며, 그런 정도의 대우는 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란 무엇인가? 내가 페이스북 등에서 접한 글들에서 그 표현의 의미라고 느낀 것은 그래도 그는 ‘서구 이성’을 대표하는 발군의 이론가이며, 그만큼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의 의미는 그와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AI 도움을 받아 번역해서 올리는 아래의 글은 2년 전 하버마스의 입장문이 논란이 되었을 때 바로 나온 것이다. 필자 하미드 다바시(Hamid Dabashi)는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비교문학, 세계 영화사, 포스트식민주의 비평 이론을 가르치는 ‘이란학 및 비교문학 담당 하고프 케보르키안(Hagop Kevorkian) 석좌교수’다. 최신 저서로 『두 가지 환상의 미래: 서구 이후의 이슬람』(2022), 『마지막 무슬림 지식인: 잘랄 알레 아흐마드의 삶과 유산』(2021), 『식민지적 시선의 역전: 페르시아인들의 해외 여행기』(2020), 『벌거벗은 임금님: 민족국가의 필연적 종말에 관하여』(2020) 등이 있다. 다바시의 하버마스 비판은 국내에서 자주 접하는, 하버마스에 대해 비판적 우호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라고 여겨져서 그의 글을 공유한다. *****************&lt;가자 사태를 계기로 폭로된 유럽 철학의 도덕적 파산&gt;이란, 시리아, 레바논, 혹은 터키가—러시아와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무기 공급, 그리고 외교적 보호를 받으며—오늘날의 가자지구처럼 텔아비브를 세 달 동안 밤낮으로 폭격하고, 수만 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불구로 만들며, 수백만 명을 노숙자로 전락시켜 도시를 살 수 없는 폐허 더미로 만들 의지와 수단을 가졌다고 상상해 보라.단 몇 초만이라도 그것을 상상해 보라. 이란과 그 동맹국들이 민간인 사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텔아비브의 인구 밀집 지역, 병원, 유대교 회당, 학교, 대학교, 도서관—실제로 인구가 밀집된 그 어떤 장소라도—을 의도적으로 겨냥한다. 그러고는 세계를 향해 그저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그의 전쟁 내각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이러한 가상의 시나리오가 맹렬히 전개된 지 24시간 이내에 미국, 영국, EU, 캐나다, 호주, 그리고 특히 독일이 무엇을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라. [2023년] 10월 7일 이후(그리고 그 이전 수십 년 동안), 텔아비브의 서구 동맹국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른 일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 장비와 폭탄, 탄약을 제공하고 외교적 비호까지 해주었으며, 그동안 미국 언론 매체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도륙과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해 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라.앞서 언급한 가상의 시나리오는 현존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단 하루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유럽, 호주, 캐나다의 군사적 폭압이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세계의 민초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현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서구”라고 부르는 그 무엇의 도덕적 상상력 및 철학적 우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유럽의 도덕적 상상력의 영역 밖에 있는 우리 같은 이들은 그들의 철학적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랍인, 이란인, 무슬림, 혹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우리는 유럽 철학자들에게 그 어떤 존재론적 실재성(ontological reality)도 갖지 못하며, 단지 정복되고 잠재워져야 할 형이상학적 위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임마누엘 칸트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서 시작하여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슬라보예 지젝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기이한 것, 물건, 혹은 동양학자들이 해독해야 할 과업을 부여받았던 지식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이나 미국, 그리고 그 유럽 동맹국들에 의해 우리 중 수만 명이 살해당한다 해도 유럽 철학자들의 마음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생기지 않는다.유럽의 부족적 청중들의구심이 든다면, 현대 유럽의 대표적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와 그의 동료 몇 명을 보라.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뻔뻔하게도, 잔인하고 저속한 행태를 보이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도륙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제 질문은 더 이상 현재 94세인 하버마스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다. 질문은 그를 사회과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비판적 사상가로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다. 그의 생각이—과연 그랬던 적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여전히 세계에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가?세계는 나치즘과의 악독한 결탁에 비춰서 또 다른 주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 대해 유사한 질문들을 던져왔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제 하버마스의 폭력적인 시온주의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그의 철학적 기획 전체를 평가하는 데 미칠 중대한 결과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야만 한다. 하버마스의 도덕적 상상력 안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 단 한 조각도 없다면, 과연 우리가 그의 철학적 기획 전체를 그의 부족적인 유럽 청중들을 넘어 인류의 나머지 부분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간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하버마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저명한 이란 사회학자 아세프 바야트는 가자 상황에 관해 그가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와 모순된다”고 말했다. 정중히 말하건대,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팔레스타인 생명을 무시하는 하버마스의 태도는 그의 시온주의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는 비유럽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거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선언했듯 그들을 “인간 짐승”으로 보는 세계관과 정확히 일치한다.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무시는 독일과 유럽의 철학적 상상력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통념상 독일인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그러나 이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출한 그 웅장한 문건이 입증하듯, 나머지 세계가 보기에 나치 시대의 독일이 행했던 일과 그들이 지금 시오니즘 시대에 행하고 있는 일 사이에는 완벽한 일관성이 존재한다.필자는 하버마스의 입장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시오니즘적 도륙에 가담하는 독일의 국가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고 믿는다. 또한 아랍인과 무슬림에 대해 똑같이 인종차별적이고 이슬람 혐오적이며 외국인 혐오적인 증오를 품고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지의 집단학살 행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이른바 “독일 좌파”의 입장과도 일치한다.오늘날 독일이 가진 것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집단학살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한다 해도 우리는 용서받아야 할 것이다. 독일은 지난 100일뿐만 아니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도륙에 대리 만족하며 탐닉해 왔기 때문이다.도덕적 타락유럽 철학자들의 세계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유럽 중심주의’라는 비판은 단순히 그들의 사고에 있는 인식론적 결함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타락의 일관된 징후다. 필자는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 유럽 철학적 사고의 중심과 오늘날 그들의 가장 찬양받는 대표자들에게 깃든 치유 불가능한 인종차별을 지적해 왔다.이 도덕적 타락은 단순한 정치적 실수나 이데올로기적 맹점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치유되지 않는 부족주의로 남아 있는 그들의 철학적 상상력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여기서 우리는 마르티니크의 위대한 시인 에메 세제르의 유명한 선언을 되새겨야 한다.“그렇다, 히틀러와 히틀러주의가 밟아온 단계를 임상적으로 상세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아주 고결하고 인문주의적이며 기독교적인 부르주아들에게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에 히틀러가 살고 있으며, 히틀러가 그들의 악귀라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그들이 히틀러를 비난한다 해도 그것은 모순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히틀러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죄악이나 인간에 가해진 굴욕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백인’에 대한 죄악이며 백인에게 가해진 굴욕이기 때문이다. 즉, 그때까지 아랍인, 인도인, 아프리카인들에게만 전적으로 유보되었던 식민주의적 수법을 히틀러가 유럽에 적용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오늘날 팔레스타인은 세제르가 이 구절에서 언급한 식민지 만행의 연장선에 있다. 하버마스는 팔레스타인 도륙을 승인하는 자신의 태도가, 자신의 조상이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와 나마쿠아 집단학살을 저질렀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속담 속의 타조처럼, 독일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유럽적 망상 속에 머리를 처박고 세계가 그들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궁극적으로 필자가 보기에 하버마스는 놀랍거나 모순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보편적인 자세를 거짓으로 취해왔던 자신의 철학적 계보가 지닌, 치유 불가능한 부족주의를 철저히 지켰을 뿐이다.이제 세계는 그 거짓된 보편성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났다. 콩고민주공화국의 V.Y. 무딤베, 아르헨티나의 월터 미뇰로나 엔리케 두셀, 혹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과 같은 철학자들이 하버마스와 그 일당들보다 훨씬 더 정당한 보편성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필자의 의견으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하버마스 성명서의 도덕적 파산은 유럽 철학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식민지적 관계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계는 유럽의 ‘종족 철학(ethno-philosophy)’이라는 거짓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해방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은 이들이 겪는 세계적인 고통에 빚지고 있다. 그들의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영웅주의와 희생은 마침내 “서구 문명”의 기초에 깔린 노골적인 야만성을 해체했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계곡이 스승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5747</link><pubDate>Tue, 17 Mar 2026 14: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5747</guid><description><![CDATA[<br>&nbsp;2024년 9월 1일 나는 성내천을 거슬러 걸었다. 청량산 허리께까지 닿아 그 발원지를 가늠만 한 뒤 시간에 쫓겨 되돌아왔다. 그 정도면 됐다고 여겨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길”을 내려왔다고 썼다. 오늘 그 길에 다시 선다.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계곡을 다 걷고 그 너머에 있는 고골 계곡까지 걸어 나올 참이다. 지하철 5호선은 강동역에서 갈라져 마천역과 하남 검단산역을 종점으로 하는 두 노선이 있다. 마천역에서 출발해 계곡 둘을 걸어 하남 검단산역으로 가는 경로다. &nbsp;  다시 성내천 계곡을 향한 며리가 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어 끊어진 인연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람 하나 있다. ‘모든 인연은 배반으로 끝난다(김종철 선생)’니, 누구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려우나 꼭 그러자면 내 잘못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바 나는 미숙했고 투미했다. 못된 탐욕이 있지는 않았으나 숙의에 실패했다. 오늘 아침 홀연 그와 그가 살던 곳이 떠올랐다. 그가 내 생에 남긴 무늬를 기리며 내가 그 생에 남긴 얼룩을 뉘우치고자 하는 결심이 서늘 포근 들었다. &nbsp;  그가 건강하게 살아가길 삼가 빌면서 발걸음 기억 좇아 청량산 성내천 발원지로 가는 계곡에 든다. 쉽게 가는 능선길을 마다하고 계곡 물길을 따른다. 어느 순간 길은 능선으로 방향을 튼다. 물을 따라가서는 길이 안 된다고 먼저 간 이들이 판단한 결과일 테다. 나는 결연히 물소리를 따르기로 한다. 늘 그렇듯 이렇게 일부러 길 밖으로 나가는 찰나부터 두려움, 아뜩함, 그리고 기이한 설렘이 갈마든다. 비와 땀에 젖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 발원지를 향해 길을 만든다. &nbsp;  안말내(성내천) 습원<br>&nbsp;  얼마나 헤맸을까,&nbsp;깨진 기왓장 하나가 눈으로 와락 뛰어든다.&nbsp;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능선 이룬 남한산성이 저 멀리 어룽어룽 보인다.&nbsp;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주위를 찬찬히 살피니 뚜렷하지는 않으나 성내천 처음 물을 머금어 흘려보낼 만한 조그만 습원 있다.&nbsp;예를 표하자 편안한 심사가 되어서는 쉽게 에돌아가는 비탈길로 방향을 튼다.&nbsp;드디어 연주봉 옹성 암문 근처에 다다른다.&nbsp;이렇게 헤맨 탓으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다.&nbsp;내쳐 고골 계곡으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br>전승문(남한산성 북문)&nbsp;  북문 아래 식당에서 산나물 없는&nbsp;‘산나물’&nbsp;비빔밥으로 점심을 먹는다.&nbsp;주인장은 손님에 별 관심이 없고 식당 한복판에 친구들과 앉아 낮술 판 벌이며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해댄다.&nbsp;이렇게 번 돈으로 그렇게 누리는가 보다.&nbsp;아무렴.&nbsp;남한산성이야 한낱 유원지지 역사는 무슨.&nbsp;무심히 일어나 북문으로 간다.&nbsp;정조대왕이 전승문(全勝門)이란 이름은 내렸으나 현액을 내리지 않아 나중에 채자(採字)로 달았다고 한다.&nbsp;역사는 종종 이렇게 아퀴를 나중에 맞추며 흘러가기도 하는가보다.<br><br>북문에서 내려가는 고골은 광주 옛 읍치(邑治)라는 뜻이다. 한강을 끼고 있어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온조가 세운 백제 요지기도 하다. 고려 건국공신 왕규가 본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조선 때는 남양주 둔지나루, 광주 창모루를 통해 모인 식량을 고골 사창(司倉)에 보관했다가 등짐으로 남한산성까지 날랐다. 그 길이 세미(稅米)길이다. 세미길을 내어준 골짜기가 바로 고골 골짜기다. 고골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내가 오늘날 덕풍천이다. 고골은 유구한 역사 그 자체다.<br>고골내(덕풍천) 물소리를 처음 들은곳<br>골짜기 아래 펼쳐진 벌은 둔전(屯田)이 있었을 만큼 넓다. 그런 역사와 지정학이 사라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안정된 농촌도 아니고 가지런한 도시도 아니며 하다못해 무슨 공업단지도 아니다. 건성드뭇이 자리 잡은 각종 건물 탓에 어수선하고 너절하기까지 하다. 식민 통치와 부역 국가 난개발 과정에서 교통 주변부로 내몰리며 눈 밖으로 밀려난 듯하다. 최근 공공주택 지구로 지정되어 목하 폐허가 되고 있다. 덕풍천 중상류 살풍경도 똑같다.<br>이 폐허는 또 다른 폐허를 낳지 않을까?&nbsp;  <br>덕풍천을 따라 걷는 내내 심사가 편치 않다. 성내천에 이름 빼앗긴 “안말내”처럼 여기 “고골내”도 웅숭깊은 역사를 되살려 내기에는 너무도 살뜰히 더럽혀졌다. 공공주택 지구 토건이 끝난 다음 여기는 어찌 변해 있을까. 이 토건에 공공연히 침투했을 부역 자본 정체를 아는 나로서는 몹시도 비관할 수밖에 없다. 저들이 역사와 자연을 공경할 리 없다. 오히려 망가뜨려야 종주국에 바치는 충성이 되니 기를 쓰고 압살하리라. 각성한 시민이 굳세게 맞서 싸우기를 간절히 빈다. &nbsp;  다섯 시간 동안 안말내, 고골내 골짜기를 잇는 해발 500m 고개를 넘어 물경 20km를 걸었다. 천추 아래 모든 근육이 아프지만 내일 피곤을 걱정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살아간다. 오히려 내가 숲과 더불어 반제 전선을 이루는 이 제의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검찰개혁이 그런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개혁 대상한테 개혁을 맡겨 놓고 휘청댄 개혁 주체는 아직도 저들이 혼을 제국에 판 악령 존재라는 진실에 귀 닫고 있다.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nbsp;  숲으로 떠날 때는 사사로운 계기가 작동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게 숲은 사사로움 너머까지 번지는 지평이므로 서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질문과 공부가 더해져 내 삶을 확장하고 증언하는 일이 빠져서는 안 된다. 당연히 돈 되는 일과 반대 방향이다. 아도르노가 말했듯 고결을 내려놓고 ‘각별한 수치심을 지닌 채 안절부절못하면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삶이 선한 사람을 만든다. 비록 순댓국에 소주 한 잔일 테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를 빛접게 그리며 지하철에 올랐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17/pimg_781606115506172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574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난데 없는 중국 위완화 지불조건의 의미와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수 없는 이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3164</link><pubDate>Mon, 16 Mar 2026 08: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53164</guid><description><![CDATA[<br>* 한설(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바둑에는 형세판단이 중요하다. 전쟁은 더욱 그렇다. 형세판단을 하지 못하면 전쟁의 향방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지엽적인 문제에 빠지면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지금 이란 전쟁을 파악하는데도 전체적인 형세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전히 국내의 여러 소셜 미디어를 보니 형세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필자는 이런 현상 뒤에는 인지전이란 의도가 작동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현대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심리전이다. 전쟁은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것이기 때문에 우국의 대중으로부터 전쟁 지지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한국의 대중을 미국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유투버와 언론인들이 그런 공작의 에셋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전쟁이 2주가 지나면서 이란은 점점 더 전쟁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란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핵심적인 고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의 조건을 몇가지 밝히고 있다. 이전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사를 추방하는 조건이었다. 어제는 석유대금을 위완화로 지불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국의 페트로 달러 체제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의 조건으로 위완화 지불방식을 요구한 것은 미국에게 있어서 뼈아픈 일격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가고 점점 더 유가가 상승하면 하나둘씩 위완화로 석유를 구매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걸프지역 산유국이나 석유 수입국가나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견딜 수 없는 임계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석유를 위완화로 결재하라는 이란의 요구가 현실화되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한꺼번에 붕괴할수도 있다. 걸프지역 국가들은 석유를 판 위완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국채를 살것인가 아니면 달러로 바꾸어서 다시 미국 국채를 살것인가? 걸프 산유국들은 공산품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중국제 공산품을 수입할 것이고 남는 돈은 금을 사던 중국 국채를 사던 해야 할 것이다. 산유국의 자금이 월스트리트로 가지 않으면 미국은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석유를 위환화로 결재하라고 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석유를 살 위완화를 구하는 일이 우선 어렵다. 중국이 수입국가로 변하지 않는한 위완화는 달러처럼 널리 퍼지기가 어렵다. 위완화를 달러와 같은 페트로 위완화로 만들려면 중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미국이 페트로 달러체제를 유지하려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위완화 지불 조건은 현재의 페트로 달러 체제에 심각한 일격을 가한 것은 분명하다. 이란의 위완화 지불 조건은 아마도 중국과의 상당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을 추정하게 한다. 중국도 미국의 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안으로 이란에게 위완화 지불조건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란의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중국과 이란이 전쟁수행과정에 전략적인 측면부터 전투현장에서까지 매우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전쟁의 핵심적인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가 될 것이다. 모든 작전과 전투행위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가 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려면 공군과 해군으로는 불가능하다. 워낙 좁은 해협이기 때문에 해안의 주요지역을 장악하고 이란군을 그 지역에서 몰아내야 한다. 결국 지상전이 필수적이다. 언론에서 보니 오키나와에서 가는 미해병 25000명이 호르무즈 해협의 섬을 점령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섬을 통제해서 이란의 소형군함이 활동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생각인 모양인데 해안의 주요지역을 통제하지 못하면 섬에 있는 미해병은 아주 좋은 표적에 불과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섬을 장악한다고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상당히 넓은 지역의 해안지역의 주요 고지군 일대를 장악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정도 지역을 장악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지상군 부대가 필수적으로 상시 주둔해야 한다.  그러니 미국이 해병부대를 투입한다면 그것은 전면적인 지상전쟁으로 확대되는 전초전이 될뿐이다. 필자는 전면적인 전쟁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미국의 여론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보다 미국의 전쟁수행을 지지하는 여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들도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미국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 생각이 바뀔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한편, 중국은 지구 반대편에서 대만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중국 국방부는 대만을 무력통일할 수 있다고 공언을 했고 최근 군함을 대만해협에 보내기도 했다. 만일 미국이 이란에 전면적인 지상전을 시작하게 되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힘이 분산된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지나서 일본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사력을 강화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중국은 이런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전쟁수행여건을 보자면 미국은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어 가고 있다. 공격과 방어용 미사일은 거의 소진되어 가고 있으며, 걸프지역에서 공군작전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6대의 공중급유가 파손되었다. 이란 공격을 위한 교두보인 이라크는 점점 시아파의 영향력하에 들어가고 있다. 걸프지역의 공군기지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군기지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이 며칠전부터 B-2, B-52 같은 전략폭격기를 동원하여 폭격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반면 이란은 지속적으로 일정하게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하여 미국 중부사령부의 작전지속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표적을 강타하고 있다. 이란 미사일과 드론은 요격을 피해서 표적을 효과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미국과 미군의 능력으로는 이란과 지금과 같은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 어렵다. 미국이 전쟁을 하려면 전시징병제와 같은 전면적인 전시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의 이란은 과거의 베트남보다 더 강력하다. 그렇게 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장담은 하기 어렵고, 설사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패권은 중국에게 완전하게 상실하게 된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전황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전형적인 전쟁의 양상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란 전쟁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49722</link><pubDate>Sat, 14 Mar 2026 13: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49722</guid><description><![CDATA[<br><br>* 한설(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전쟁이 시작된지 2주가 넘었다. 최근의 전쟁상황을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그동안 미국은 전쟁의 정치적 목표를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상황은 정반대로 되어서 이란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 시간은 이란편이다. 전쟁이건 무슨 일이든 조급해지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미국은 조급하고 이란은 느긋하다. 이란은 지금같은 상황을 계속 유지하면 된다. 전략적 여건뿐만 아니라 작전수행에 있어서도 이란은 미국보다 성공적이다. 미국이 공중과 화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예상했던 바다. 통상 생각했던 것은 미국이 강력하게 타격하면 이란이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고 찌글어 들어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를 대상으로 수행한 전쟁이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예외도 있었다. 미국은 약소국가를 상대로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데 최적화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방식의 전쟁수행방식을 추구했다. 그것은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로 인해 가능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해 미국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드론과 미사일의 발전 때문이었다. 이런 경향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분명했다. 미군의 실책은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시작된 전쟁수행 방식의 변화를 도외시하고 자신들이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는 항상 최근 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군인의 전사연구는 항상 가장 최근에 일어난 전쟁을 살펴보는 것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양상은 전략에서 작전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누가 전략적 우위를 주도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군사작전의 수행양상에 따라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작전상황을 보면 미국이 너무 불리하다. 미국이나 이란이나 지금 모두 나름대로 한계에 봉착해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이란과 전면전을 수행할 정도로 준비를 하지 않고 전쟁에 뛰어 들었다. 앞으로 작전지속능력이 문제가 될 것이다. 사드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부족은 작전지속능력의 한계를 의미한다. 지상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지상전을 고려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미국은 일본에 있는 해병원정단의 병력을 중부사령부로 이동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오까나와에 있는 해병원정단의 병력일 것인데 그 병력은 한반도 유사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전략예비로 투입될수도 있고 반격작전시 조선에 대한 상륙작전에 동원되는 병력이다. 게다가 대만유사시에도 투입될 것이다. 이런 병력이 빠진다는 것은 동북아 지역의 안보환경이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럴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도 미국은 대응할 방법이 없다.간밤에 미중부사는 이란 석유수출의 핵심지역인 하르그 섬을 강력하게 폭격했다. 트럼프는 석유시설은 건드리지 않고 군사시설만 파괴했다고 한다. 이란은 즉각 미국과 걸프지역의 석유시설 파괴를 시사했다. 이번 미중부사의 하르그 섬 폭격은 미국의 전쟁수행이 체계적인 계획이 아니라 임기응변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미중부사가 어떤 개념과 목적 달성을 위해 하르그 섬을 폭격했는지 모르겠다. 하르그 섬을 폭격하는 이유는 이란의 석유수출을 차단하는 목적 이외에는 없다. 그런데 주변의 군사시설을 폭격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모르겠다. 오히려 이란에게 걸프지역의 석유시설 폭격의 빌미만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하르그 섬의 폭격은 미국의 전쟁목적이 아니라 이란의 전쟁목적에 기여하는 행동이었다. 미국이 하르그 섬의 석유시설을 파괴하지 못한 것은 이로 인한 유가상승으로 오히려 미국을 옥죌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미국 중부사가 이란의 제약회사, 담수화시설, 석유시설, 학교와 같은 시설을 표적으로 선정한 것은 그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초보적인 계획조차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미국은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언론이 말하는대로 표적을 선정하고 폭격을 하는 것 같다. 미중부사가 선정하고 파괴한 표적중에서 미국의 전쟁수행에 도움되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란이 무차별적 전쟁수행 빌리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보도와 분석을 보면 이란은 여전히 강력한 대공방어기능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걸프지역 국가에 대한 지속적인 드론 및 미사일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피해는 심각한 것 같다. 네타냐후, 모사드 책임자 및 주요 각료들도 사망했다는 소식이 떠돌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확인보도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후 한번도 겪은적이 없는 가장 강력한 저항을 경험하고 있다. 강력한 공군에 바탕한 미국의 군사능력은 이란을 굴복시키는데 그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작전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 타격 능력은 미국도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인 것 같다. 미국은 이번 전쟁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전략레이다와 사드체제 그리고 공중급유기와 3대의 전투기를 상실했다. 고가의 무인항공기는 상당수 손실을 보았다. 미국이 이정도의 피해를 본 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중재와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시점은 지나버렸다. 미국은 성공했다고 하지만 하메이니를 사망하게 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 서방에서는 하메이니를 독재자라고 보았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는 매우 온건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국은 이란의 진짜 강경파와 상대를 해야 한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점점 지상군부대 투입에 가까이 가는 것도 현재의 작전양상으로는 전황을 뒤집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면 중재할 국가도 없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는 것이 너무나 고맙기만 할 뿐이다. 전쟁을 중단하라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직 여전히 한국에서는 미국이 이란을 이기고 있으며 혼내주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전쟁은 이제 전형적인 군사작전의 양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전황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전형적인 전쟁의 양상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이란의 무조건 항복 요구와 미국 내부의 붕괴로 인한 전쟁종결 가능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45837</link><pubDate>Thu, 12 Mar 2026 13: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145837</guid><description><![CDATA[<br>* 한설(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패권국은 전쟁으로 무너지고 또 새로 생겨난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패권이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이란전쟁이 미국패권 붕괴의 결정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란이 미국의 가장 핵심적인 이익인 전략적 중심(center of gravity)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중심은 금융을 기반으로 한 전세계적인 경제체제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걸프지역 국가들을 압박함으로써 미국 경제체제의 중요한 한축을 붕괴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레바논 친 헤즈볼라 방송을 통해 미국과 협상을 위한 다음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번째, 향후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두번째, 이란 핵시설에서 완전한 핵연료 순환을 보장할 것이라는 합의세번째, 전쟁배상이란이 미국에 제시한 조건은 사실상 무조건 항복이다. 첫번째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인데 첫째는 걸프지역에서 미군기지의 철수이고 둘째는 이스라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키니 그것을 못하게 하라는 것인데 사실상 그것은 이스라엘군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란은 걸프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두번째 핵연료 순환보장 요구는 이란이 사실상 핵무기 보유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은 미국이 자신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란은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가와 상관없이 핵무장의 길로 갈 것이라고 전망된다. 이란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여러번 있었다.세번째 배상문제다. 배상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하는 것이다. 이란이 미국에게 배상을 요구한 것은 패전국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배상이란 강화조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이란이 요구하는 배상은 단순하게 돈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한 새로운 질서의 공식적인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 휴전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종전을 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의 이런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이란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놀랍다. 이미 걸프지역에서 군사적인 균형은 무너지고 있다. 기존의 미사일과 드론으로 하는 군사작전은 이란이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점점 더 강력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 방공망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최근의 전쟁상황을 보면서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방공미사일의 기능적 한계다. 방공미사일은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에는 효과적이지만 드론과 같은 체계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기술적 발달로 레이다가 드론과 항공기 그리고 탄도미사일을 구분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미국의 국방전략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든 고가의 방공무기들이 무기체계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수적인 우세가 질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고갈을 주장하는데 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럴 상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이란은 깊숙한 지하갱도에서 미사일과 드론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고 그 생산량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게다가 이란은 부족하면 받아올 국가라고 있지만, 미국은 자체적으로 급속하게 생산을 늘릴 능력도 없고 어디서 받아올 국가도 마땅치 않다. 이란의 내부 혼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처럼 이란 혁명수비대가 확고하게 전쟁을 하겠다고 나서면 내부혼란이란 별 의미가 없다. 어떤 사회적 동요도 군대가 확고하게 대응하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사회적 동요가 체제를 흔드는 것은 군대의 태도와 입장이 어정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으면 그 어떤 사회변혁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란은 대중소요를 적대행위로 규정했다. 앞으로 이란에서 대중소요는 당분간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금 내부가 위태위태하다. 강력하던 이스라엘 대중의 결속력도 흐트러지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자 네타냐후에 대한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도 내부 단속하기 어렵다. 지금 미국 경제는 점점 더 위기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되면 미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부에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다. 이란 전쟁이 끝나는 경우의 하나가 미국내부에서 경제적 붕괴가 발생하여 전쟁에서 물러나는 것도 될 수가 있을것이다. 이번 전쟁이 어떻게 끝나던 그 후과는 예상하던 것보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미국이 붕괴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br>]]></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