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싸리·버들 글숲  (bari_che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숙의의학으로 마음 치료하는 한의사가 숲(식물)과 팡이와 물에 진심 다해, 지구 위기를 몰고 온 제국주의에 범주적 주의를 기울여, 직접 쓰거나 인용한 글.</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5 Sep 2026 12:51:03 +0900</lastBuildDate><image><title>bari_che</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2844469_63919292718758669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ari_che</description></image><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뒷전풀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9521</link><pubDate>Fri, 11 Sep 2026 14: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952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지난 5년 숲을 중심으로 “강력한 시간”, 그러니까 영성과 미학이 공존하는 고밀도 시간을 보냈다. 최근 3~4개월은 인생 내림굿으로 그 5년과 인생 70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지금은 말하자면 마지막 과장 뒷전풀이 시간이다. 느슨하게 일정을 잡아 가벼이 걷고 일상에서 제의 효과가 펼쳐지도록 복귀, 재배치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마지막일지도 모를 새로운 발견 이야기를 하려 한다.  &nbsp;  지난 일요일 오전, 광화문 교보에 들러 신간 서적을 둘러본 뒤 불광동으로 향했다. 불광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흔히 구기터널 계곡이라 부르는-내게는 미르골- 작은 골짜기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스마트폰 지도에는 영업 중이라고 떠 있는 식당 문이 굳게 닫혔다. 하릴없이 골목을 따라 걷다가 쌈밥이라 써놓은 곳으로 불쑥 들어갔다. 혼자서는 쌈밥을 먹을 수 없단다. 된장찌개나 주문하자, 된장~!  &nbsp;  그래서 특별히~! 밥만이라도 돌솥밥을 먹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들여다볼 요량으로 스마트폰을 여는 순간 전혀 맥락 없이 질문 하나가 홀연히 떠오른다: 모유와 미음 중 아기에게 어느 것이 더 달게 느껴질까? 몰상식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뭔가에 홀리듯 나는 그 질문을 검색란에 올렸다. 돌아온 답 방향은 예상대로인데 그 내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내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는 정보를 담았다.   &nbsp;  모유에 다량 들어 있는 유당(Lactose)이 강한 단맛을 내고 따라서 인간 원초 미각은 단맛에 끌린다. 단순히 “맛있어서” 끌리는 게 아니다. 그 단맛은 아기에게 생명 안전감과 존재 유온감-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부여한다. 이렇게 모유는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 생존 토대까지 세운다. 장내 미생물과 네트워킹을 이루기 전, 인간 생명 자체가 일으키는 사건이다. 모유 결핍 어두움은 여기서부터 깔린다.  &nbsp;  내가 단 음식에 진저리 치고, 쓰거나 담백한 음식에 기울어지는 곡절이 좀 더 정확하게 드러났다; 모유 대신 먹은 미음이 실제 영향을 끼친 일에 이치상 선행하는 원인이 밝혀진 셈이다. 그동안 내가 “빙의 불안”이라 부른 원초 불안과 “빙의 우울”이라 할 원초 우울이 같은 데서 발원했음을 알고 나니 이제야 진정한 해방이 왔구나, 싶었다. 홀가분했다. 때마침 돌솥밥이 나왔다. 밥 퍼내고 물을 부었다.   &nbsp;  먼저 뽀얀 막걸리부터 한 양재기 가득 따라 모유로 모시어 꿀떡꿀떡 마신다. 오늘따라 다디달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돌솥 바닥에 있던 밥이 물에 불어 흰죽처럼 되었을 때 그 표면에 뜬 미음을 걷어내 한 숟가락 떠먹는다. 오늘따라 심심하디심심하다. 눈시울이 적셔진다.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며 70년 세월을 접어 찰나에 모은다. 눈시울이 뜨거운 물로 흘러넘치자, 고개 숙여 절한다: 고맙디고맙습니다! <br>우리 생명 팡이시질(networking)은 다 계획이 있으시어따. 미르골 향하기, 문 닫은 식당 검색해 정하기, 쌈밥집 가나 쌈밥 못 먹기, 된장찌개라서 밥이라도 돌솥밥 먹기, 모유와 미음 떠올리기···. 우연이 제곱 되면 섭리다. 이렇게 복귀와 재배치를 일구며 뒷전풀이 삼매로 들어간다. 삼매경에서 생은 감화한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들여다볼 때만 보이는 찬란함”(『자연은 퀴어하다』)을 살아간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1/pimg_6392473369142001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952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존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6992</link><pubDate>Thu, 10 Sep 2026 1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6992</guid><description><![CDATA[<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0/pimg_63924638418515664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699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파병 반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3015</link><pubDate>Tue, 08 Sep 2026 16: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3015</guid><description><![CDATA[<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08/pimg_63924482252814546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503015</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빈 중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78515</link><pubDate>Sat, 29 Aug 2026 1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78515</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9/pimg_63923596348177078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78515</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공공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61133</link><pubDate>Thu, 20 Aug 2026 0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61133</guid><description><![CDATA[<br>* 이주혁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br>결국 한국의 모든 모순점은 과도한 민간 쏠림에 있었다. 그렇게 밖에 볼 수가 없다. 공공 (public)부문의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다. 때문에 부동산 버블도 잡기 어렵고 교육의 질서도 없어지고 지방 응급실 뺑뺑이같은 의료 공백도 생긴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이다. <br>한국 군부 정권은 과거 경제 개발 과정에서 민간에 '외주화'를 시켰다. 마땅히 공공의 힘으로 인프라를 놓아야 할 교육과 의료같은 부문까지 민간에 완전 외주화를 시켰다. 당시 군부 독재 정부는 자기들 말을 잘 듣는 재벌과 법인들과 유착하여 강력한 특혜를 부여했다. 건설사, 사학재단과 의료법인, 복지 법인도 그랬다.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토지 수용권도 잘 내 줬다. <br>민간 재단 설립 인허가, 금융 특혜, 이런 것들이 군부 정권 친화적 인사나 자본가들에게 잇권으로 선물처럼 부여된 것이다. 그 댓가로 정치 자금이 오고 갔다. 중요한 경제 개발 시대를 그렇게 수십 년을 지냈다. 이 구조가 고착화된 대가로, 사학재단은 부실 운영되고 횡령 , 비리가 난무했음에도 굳건히 유지될 수 있던 것이다. 병원들 등 기타 인프라들도 민간이 죄다 짓고 운영하게 되었다. <br>군부 독재 권력층은 기업에게 법인세 소득세도 낮게 해주니 세수가 부족해, 공공의 인프라를 만들고 서민을 위한 대규모 임대 주택을 지을 돈도 당연히 없었다. 세금이 적으니 기업들은 그로 인해 손에 쥔 막대한 이윤의 일부를 정치 헌금으로 Pay back했다. 이게 한국형 개발 경제 정경유착이 었다.  수서 지구 택지 특혜 분양 비리 사건같은 건 그 끝물이었다. <br>이렇게 '공공 인프라'가 부족한 그 댓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 공기업이 임대 주택을 지으려 해도 공공의 토지가 없다. 공공 부문에서 쥐고 있는 토지는 거의 다 임야나 습지 하천 주변 땅 등이다. 서울 수도권 도심 주변의 땅은 거의 다 민간 소유인 것이다. 이러니 어떻게 인구 밀집 지역에 임대 주택을 지어서 수도권 집값을 떨어뜨린단 말인가? <br>의료도 똑같다. 응급실 뺑뻉이, 지방의료 소멸같은 건 근본적으로 왜 생기는가? 공공이 짓고 공공에서 갖고 있는 병상이 한자리수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별로인 나라라도 공공이 30~40%는 갖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 북유럽은 60% 이상이 공공 병상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당연히 license를 따면 공공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로 생각하고 일한다. 개인 의원도 주치의 등록제에 의거, 공공 의료 시스템의 일축으로 작동하게끔 돌아간다. 의료나 복지, 교육은 그 개념 자체가 사회의 공공 인프라로서 국민 모두가 혜택을 받게 만들기 위한 구조여야 당연한 것이다. 허나 한국에선 애초 개발 단계부터 국가가 돈을 쓰지 않고 죄다 민간한테 넘겨서 돌려 왔다. <br>이렇게 '장사'해 온 민간 법인 민간 병원들이 국가의 요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리가 없다. "왜 내 돈으로 내가 빚 내서 세운 병원에 병상을 비워라 마라 하는 거지?" 이런 소리가 당연히 나온다. 코로나 때가 대표적이었다. <br>수도권 집값을 떨어뜨리려면 수도권의 법인, 공공기관 등을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있어야 지방에 내려가기 때문이다. 근데 그것만 갖고 안 된다. 학교와 병원같은 인프라도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인프라가 다 가야 한다. 근데 공공 기관과 정부 기관은 가라면 가겠지만, 민간 기업 민간 법인 민간 병원들이 대체 왜 내려가겠는가? 병원이나 학교는 내려가는 순간 적자에 시달리고 끝나버릴 게 뻔한데 말이다.  <br>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건 단지 서울 아파트값 버블 빼기라는 목적만 있는 건 아니다. 제아무리 서울에 인프라가 좋다고 해도, 꾸역꾸역 몰아 넣은 닭장 속에 서로 들어가려고 난리를 치는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행복이 담보될 리가 없다. <br>수도권이 갈수록 과밀화되면서 사람들은 자꾸 불행해진다. 지독하게 빡빢하게 몰아 넣은 닭장에서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자꾸 죽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배려와 이해심이 없어지고 온통 민원과 소송, 고발만 하며 날을 새고 쉽게 자살해 버린다. 대전, 춘천, 대구, 부산, 광주, 전주, 청주 등의 도시들에 인구가 더 분산화되어야 한다. 적당한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너무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가야 수많은 사회적 갈등도 해결될 법하다. <br>그리고 서울에는 아파트 이제는 그만 지어야 한다. 지으면 그거 토지 수용, 건축원가 상승,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갈등으로 엄청난 아귀다툼이 나고, 안 지으면 주택 없어서 집값 올라간다고 또 난리가 날 것이다. 서울에 저렴한 공공 주택을 대규모로 수십만 호 지을 것 아닌 다음에야 그건 차라리 포기하고, 서울에 일자리를 지방으로 자꾸 옮기고 인프라도 가도록, 인센티브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br>만약 그래도 안 통한다면? 그래도 수도권 기업들 법인들이 꿈쩍도 안 하고 다들 버티고 부동산값 더 더 올리고 있다면? 그때는 정말 지독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주식시장처럼 부동산 거래 사이드카를 발동시킬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일정 금액 이상의 주택은 아예 거래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정책이겠지만, 백약이 무반응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나. <br>아예 일정 금액 이상의, 비정상적 버블을 조장하는 아파트는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해 버리라는 것이다. 주식시장 사이드카도 "내 돈 주고 주식 사겠다는데 왜 못하게 해?" 라며 사유재산 통제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부동산은 그거보다 지금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한국은 공공의 인프라가 지독하게 부족한 나라다. 그러니 정책적 선의를 갖고 뭘 하려 해도 자꾸 의도대로 잘 안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과거 군부정권 개발 시대의 유물이다. 가축을 키우는데 무조건 체중만 늘려서 고기를 많이 파는 데만 집중해 온 것이다. 겉보기에는 "와 저 농장 돼지 진짜 잘 키웠네?" 이러겠지만, 그 가축의 실제 장기와 근육들은 그 기간동안 지독히 병들어 썩어가고 있던 것이다. <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제국주의의 황혼과 다극 질서의 역설—투기적 순환과 실물적 교역을 넘어 자율적 자기-관리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5567</link><pubDate>Mon, 17 Aug 2026 13: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5567</guid><description><![CDATA[<br><br>* 강내희(전 중앙대 교수/ '문화연대' 공동대표)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지난 수백 년, 콜럼버스 일행이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원주민 언어로는 과나하니—섬에 상륙하며 개시된 유럽의 아메리카 침공(1492년)을 기점으로 500년이 넘는 기간 세계질서는 서유럽 중심의 서방 세력이 지배해 왔다. 서방이 15세기 말에 바로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18세기까지도 중국의 청과 인도의 무굴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 등 세계에는 유럽의 개별 국가들을 능가하는 군사적 경제적 힘을 보유한 세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발견의 시대’ 이후 ‘기타 세계’, 즉 수많은 비유럽 지역과 사회들을 침략하며 식민지로 삼고 수탈과 착취를 자행하는 제국주의적 지배를 이어온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일찍 발달시킨 서유럽 세력이다. 그 결과 지난 500년 이상의 근대 역사에서 서구 문명이 헤게모니를 행사해 왔고, 그런 흐름은 미국이 서구 세력의 적자로서 세계 헤게몬으로 군림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과거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에 이어 헤게모니 국가로 등극한 20세기 중반 이후 온갖 패악질과 침략 행위 등 초-국제법적 행태를 일삼아 왔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남미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내외를 불법 납치하여 자국 법정에 세우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며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암살했다.하지만 서방 세력이 세계질서를 유린할 수 있던 제국주의적 지배의 역사는 끝나고 있다. 자신의 동맹과 속국들로 형성된 집단 서방을 주도·지휘하며 세계의 지리정치경제적 질서를 통제하려는 미국의 일극 지배는 이제 글로벌 다수 국가 또는 비서방 세력의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최근 자신이 주도한 동유럽과 서아시아에서의 두 전쟁에서 미국과 그 동맹이 형편없는 패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점을 방증한다.2022년 2월에 시작되어 여태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서 일어났다는 것이 집단 서방이 ‘사실’인 양 세계적으로 유포한 내용이다. 하지만 전쟁의 근본 원인은 미국 중심의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부추겨 러시아를 압박한 데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신나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만든 2014년의 마이단 쿠데타를 획책한 것이나, 이후 일어난 우크라이나 내전 종식을 위해 맺은 민스크 협정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의 군사화를 추진해 러시아를 협박한 것은 미국과 서방 세력이다. 하지만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를 분해해 서방의 자원 식민지로 만들고자 러시아의 전략적 패퇴를 노리며 자신들이 유발한 전쟁에서 미국과 나토 및 EU,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무참한 패배를 앞두고 있다. 개전 4년 반이 지난 지금도 서방의 주류 언론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압도하거나 적어도 전황을 교착상태로 이끌고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그런 가짜뉴스와는 달리, 우크라이나는 지금 동서남북, 육해공 전면에서 수세에 몰려 조만간 수도 키예프가 러시아의 공격권에 들어갈 전망이며, 바다로의 진출이 막힌 내륙 국가로 전락할 처지에 빠졌다. 이는 미국과 서유럽 군사 강국들이 전력을 다해 지원한 결과라는 점에서 서방 군사력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준다.미국의 쇠퇴는 올 2월에 이스라엘과 함께 벌인 대이란 전쟁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미나브의 초등학교를 폭격하여 어린 여학생 170여 명을 죽이고, 이란 지도부에 대한 ‘참수작전’을 통해 최고지도자와 그의 어린 손녀를 살해하고, 병원과 사원, 체육시설 등 이란의 민간 시설을 대거 파괴하며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이란 공격의 실질적 목표인 석유 자원 약탈 야욕은 숨긴 채, 이란 지도부 제거 및 정권 교체, 핵 프로그램 종식, 군사적 위협 제거 및 군사 인프라 파괴 등을 공식적 목표로 내세웠으나, 어느 것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반대로 페르시아만 일대에 배치된 미군기지들의 고가 레이더 시설과 각종 군사 자원이 이란의 막강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아 대거 파괴되고 미군 병력이 피신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을 뿐이다. 애초 미국은 안보 보장을 약속하며 페만 제후국들(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에 군사기지를 건설했으나, 그들 국가는 영토 일부를 미국의 대이란 공격 발진 기지로 내준 탓에 미사일 공격의 주된 대상으로 전락해 산유 및 정유시설 피격, 호르무즈 해협 통제로 인한 수출길 봉쇄, 석유 수출과 연동된 페트로달러 체제의 해체 위기, 식수 안보 위협 등을 겪게 되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한 대가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은 페만 국가들은 이제 지역 내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국이 먼저 이란에 휴전 협상을 요청하고, 이란의 요구를 담은 양해각서(MOU)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을 끌수록 이란의 전략적 승리와 자국의 패배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양해각서를 무시하며 여전히 이란 응징을 떠든다. 하지만 패트리엇 등 정밀유도 미사일이 바닥나고 인도양에 배치된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서 병사들의 자살 시도 증가가 보고되는 등 미군의 전쟁 수행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바야흐로 서세동점의 시대, 즉 서방 제국주의가 세계질서를 유린하던 역사적 시대는 저물고 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시작된 일극적 세계질서의 시대—미국이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내세우며 초강대국으로서 세계를 호령하던 시대—역시 종언을 고하는 중이다. 그 대신 ‘다극 질서’가 떠오르는 역사적 변곡점을 맞아 미국은 지금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근래에 미국이 글로벌 다수 국가에 폭력적 침탈을 일삼는 것도 자신의 헤게모니가 이전 같지 않아서 비롯된 행태일 것이다. 하지만 동유럽에서 나토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패전을 거듭하며 내륙 국가로 전락할 처지에 빠졌고, 서아시아에서 미국이 자국의 ‘공격견’ 이스라엘과 힘을 합쳐 이란을 침공했으나 이란의 완강한 저항을 맞아 진퇴양난에 빠진 것을 보면, 일극적 세계질서는 한계에 봉착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세계질서가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징표가 아닌가 한다. 헤게몬이 일방적으로 국제질서를 유린하던 제국주의적 질서가 후퇴하면, 세계는 더 평화롭고 더 정의로우며, 공영 발전을 이룰 더 좋은 조건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 주도 서방 세력의 군사적·지정학적 패퇴 밑바탕에는 일극적 세계질서 아래 작동해 온 경제적 모순이 자리한다. 오늘날 제국주의의 쇠퇴는 서방 자본주의가 추구한 축적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강력한 징후다. 최근 중국의 굴기로 대표되는 브릭스(BRICS) 등 비서방 다수의 경제적 부상도 그런 점을 말해주고 있다. 다극 질서의 부상은 단순히 패권의 이동을 넘어, 세계 인류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적 물질대사’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물질대사, 즉 화폐가 화폐를 낳는 가공자본의 투기적 순환(M—M’)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반면, 브릭스가 추진하는 다극 질서는 산업자본의 운동이 중심이 되는 실물적 자본 순환(M—C—M’)이 지배하는 질서다.양자의 차이는 명확하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적 대사는 차관 형태의 부채와 이자율이라는 추상적 굴레로 교역 관계를 압도한다. 미국은 경제 위기에 처한 국가에 자국이 유일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통제하는 IMF의 구제금융을 빌미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해, 천연자원과 핵심 공적 자산을 강제로 민영화하게 만든다. 한국도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각종 공적 자산을 민영화했고, 또 외국 금융자본을 위해 국내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해야만 했다. 미국은 IMF 등을 통해 획득한 각종 자산, 자원에서 발생하는 현금 흐름을 증권화하여 월가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탈취 기제를 작동시킨다. 그 과정에서 피수령국에 강제되는 살인적인 재정 긴축은 공공부문 사영화와 노동 유연화를 낳아 소자본을 파산시키고 하층 노동자 계급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IMF 위기를 겪으며 한국의 인민도 그런 고통을 충분히 겪었다. 미국 금융자본의 행태는 구제금융 수령국의 사회적 기반을 유린하며 그 인민의 삶을 처참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미국 내부에서도 탈산업화와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참담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이 과정에서 대금융자본가에 의한 세계 부의 탈취가 일어나는 점도 외면할 수 없다. 오늘날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갈수록 부가 극소수의 수중에 집중되는 추세다. 일론 머스크라는 개인의 보유 자산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믿지 못할 보도가 최근 나온 바도 있다. <br>반면, 브릭스 및 글로벌 남부 국가들 내부의 교역은 가공자본의 폭주가 억제되고 구체적인 사용가치의 교환을 중심에 두는 실물 중심의 지정학적 형태를 띤다. 이러한 실물적 교역망 구축은 근본적으로 그들 체제가 비자본주의적이어서라기보다, 서방의 고압적인 금융 제재 및 달러 무기화에 맞서서 자국의 산업자본과 실물경제를 방어해야 하는 지정학적 생존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최근 급증하는 러시아와 중국 간의 교역 방식을 살펴보자. 러시아가 중국에 주로 수출하는 것은 에너지다. 양국의 교환에서 러시아는 이 에너지(C)를 수출하여 획득한 자국 통화나 위안화(M)로 중국의 실물 공산품(C)을 수입한다. 이 교환에서 화폐(M)는 표면적으로 구체적 사용가치의 맞교환을 성사하는 회계적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는 점에서, 가치 증식(M—C—M’)의 강박보다는 본원적인 단순 상품유통(C—M—C)이나 물물교환(C—C)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실물적 성격이 짙다. 2024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16차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제안하여 현재 설립 준비 중인 브릭스 곡물 거래소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최대 소비국인 중국·인도가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의 달러화 가격 지표에 의존하지 않고, 물리적 물량과 필요에 기반해 직접 곡물과 비료를 거래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서 현란하게 나타나는 달러(M) 수치가 세계 빈국 인민의 기아 상황을 규정하는 식량 가격을 지배하는 작태가 M—M’의 논리로 실물을 통제하는 구조라면, 브릭스 곡물 거래소는 곡물 가격의 결정 기준을 가상의 신용에서 물리적 물량과 신체적 필요, 즉 사용가치의 실물적 기초 위로 옮겨오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고 할 수 있다.최근 급증한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교역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방의 고압적인 금융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해 통화 스와프와 직거래 비중을 높이며 달러 패권을 우회하는 이 대안적 교역의 전형적 사례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시코마인스(Sicomines) 합작 사업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이 구리와 코발트 같은 천연자원을 담보로 제공하고, 중국이 그 대가로 도로·철도·발전소 등 필수 인프라를 지어주는 이 교환 방식은 투기적 가공자본 운동(M—M’)과는 전혀 다르게 물물교환(C—C)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실물적 성격이 짙다.물론 이러한 새로운 교역 역시 자국의 산업적 축적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비자본주의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순환 구조(M—C—M’) 안에서 화폐는 자기 증식하며 지대를 수취하는 가공자본으로 군림하는 대신, 양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용가치의 생산과 조달을 위한 매개체로 철저히 통제된다. 금융자본주의의 추상적이고 파괴적인 폭력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궤적이다. 결국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의 쇠퇴, 그리고 브릭스를 위시한 비서방 다극 질서의 수립은 폭력적인 M—M’의 굴레를 끊어내고 실물과 사용가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와 대안적 물질대사가 싹트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일극 질서가 해체되고 다극 질서가 수립되면 새로운 세계질서가 만들어지고 평화공존의 시대가 열릴까? 오늘날 다극 질서를 추진하는 브릭스 등 글로벌 다수 국가의 부상이 지난 500년 이상 세계를 유린해 온 서방 제국주의 지배를 극복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현실이 어떻게 전개될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국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버리지 않고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세계대전을 일으킬 우려도 없지 않다. 게다가 다극 질서가 구축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저절로 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다극 질서를 추진한다는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는 소련의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했고, 인도에서는 신자유주의적 파시즘의 지배가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적 지배가 작동한다. 그래도 M—M’의 약탈적 자본 운동이 지배하는 것보다는 그 내부에 C—M—C와 C—C 순환을 내장한 M—C—M’의 순환이 지배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길을 앞당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질서 아래 사회적 물질대사를 지배하는 M—M’ 순환이 전적으로 투기적이고 약탈적이라면, 다극 질서를 지향하며 이뤄지는 물질대사(M—C—M’)는 사용가치의 생산과 그것을 둘러싼 교역을 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단, 비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앞당기려면 다극 질서를 추진하는 각국에서 내부 개혁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거대 국가 자본의 주도로 구축되고 있는 이 대안적 실물 인프라와 자산들이 훗날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통제’로 넘어갈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될 때만 다극화는 진정한 체제 변혁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스트번 메자로스가 한 말을 기억하고 싶다. 메자로스는 『자본을 넘어(Beyond Capital)』에서 오늘날의 사회적 물질대사 양식을 지배하는 자본의 지배를 넘어서려면 “공동체적 생산과 소비의 물질적·제도적 형태를 실천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핵심이며, 그래야만 “대중 속에서 사회주의적 의식의 발전이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때 기존의 구질서가 가동시킨 “위로부터의 의사결정 구조”(레닌주의 정당, 현실 사회주의 국가 등)가 수행할 수 있는 “역사적 기능은 자율적 자기-관리의 탄생을 돕는 산파 역할”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중국이다. 중국의 사회주의 국가는 대중의 사회주의적 의식 고양을 위해 자신의 역사적 기능을 “자율적 자기-관리의 탄생을 돕는 산파 역할”에 국한할 수 있을까? 즉 국가로서의 자기 해체를 주도할 수 있을까? 결국 그 대답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선의가 아니라, 국가 주도의 톱다운 경제 구조 아래서 억눌려 온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과 협동조합적 실천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얼마나 거세게 자율적 관리를 요구해 낼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받들어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1860</link><pubDate>Sat, 15 Aug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1860</guid><description><![CDATA[<br>&nbsp; &nbsp;<br><br><br><br>  &nbsp;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5/pimg_63922380600798328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186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철학의 빈곤, 역사 의식의 빈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8041</link><pubDate>Thu, 13 Aug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8041</guid><description><![CDATA[<br>* 이주혁(성형외과 전문의)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br>SNS, 인별이나 스레드 등에 이런 말들이 참 많았다. "내가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일제는 싫지만 그래도 체제에 순응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았을 것같다. 내가 독립운동가가 될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독립운동 영웅 vs 체제 순응 일반"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으로 당시 상황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보아 온 영웅들은 몇몇 안 되는 소수일 뿐이지만, 영웅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적어도 소극적으로라도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사실 대다수였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당연히 이름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정신까지 망각해선 안 된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일제 강점 말기로 갈수록 3.1운동처럼 대중적인 대규모 집회나 노출된 독립 운동이 급감하고 대다수 민중이 체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극적 저항이나 비밀 지원조차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형태를 바꾸어 밑바닥에서 집요하게 항일 저항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br style="font-size: inherit;">우리 조상들은 겉으로는 일제의 잔인한 압박과 통제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물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제의 전시 동원과 강압에 침묵으로 거부하거나 태업으로 맞섰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일제가 놋그릇, 숟가락, 곡식, 짚신까지 공출해 가자, 농민들은 곡식을 땅속에나 벽 속에 숨기고 놋그릇도 산속에 들어가서 묻어 버렸다.(일제의 전쟁에 도움을 주느니, 차라리 내가 안 쓰고 만다는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쌀 공출에 있어서도 일부러 나쁜 품질의 곡식을 내놓는 등 소극적 비협조 운동이 전국적으로 만연했었다. 이걸 독립운동이고 영웅적 행동이라고 역사에 기록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제대로 된 조선인이라면 일제의 전쟁 놀음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대세였다는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태평양 전쟁때 징용이나 학병. 징병 통지서가 나와도 조선 민중은 잘 응하지 않으려 했다. 산속으로 깊이 숨어들어가 피신을 하거나, 병을 핑계로 도피하는 청년들이 수두룩했다. 전북, 전남, 강원도 등의 깊은 산중에는 징용을 피한 청년들이 무리를 이뤄 은신하기도 했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창씨 개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거에 앞장서서 자기 이름부터 일본식으로 고친 자들은 친일행각을 했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부분의 조선 민중은 이를 마지막 날까지 미루거나, 일제 당국을 비꼬는 이름 - 예를 들어 '개자식'이라는 뜻을 담거나 - 자신의 가문 성씨를 잊지 않겠다는 은밀한 뜻을 넣은 이름으로 신청하곤 하였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일제가 언론을 장악하고 미군과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다며 학도들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은 겉으로는 믿는 척했지,만 결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소리방송이나 임시정부의 단파 라디오 방송을 몰래 듣고 "일본이 미국에게 밀리고 있고 곧 망한다"는 소문들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일제는 이런 운동에 굉장히 고민이 깊었고 어떻게든 색출하려 난리를 쳤었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1944년 몽양 여운형 선생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 바로 밑에서, 조선내 전국적 비밀 조직을 결성한다. '조선 건국동맹'이다. 이 밑에서 농민 동맹, 학병 거부 운동, 유사시 무장 투쟁까지 준비했다. 이 조직은 광복 직후 즉각적인 국가 건설 활동으로 이어졌다. 맥아더 미 군정이 이를 무시하고 억눌렀을 뿐이다. 이런 건국동맹에 참여하고 또 자금을 보태고, 아니면 적극 참여를 못한다 해도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조선인들이 대부분이었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어째서 자기 조상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모두 버리고 매국의 뒷줄에 쫄래쫄래 서 있었다고 자꾸 말하고 싶어하는 걸가? 어째서 당시에 친일매국이 대세였다고 자꾸 무지하고 무식한 말들만 자꾸 늘어놓는 건가? 우리 조상들은 강제적으로 병합을 당했을 뿐, 절대 일본이 우리 모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포기하지도 않았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극소수의,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던 분들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지만, 영웅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비타협적으로 태업하고 일제의 동원과 공출에 저항하며 속으로 언제나 우리 민족만의 국가를 염원하며 살아갔다. 그런데 그 후손이라는 것들이 "당시엔 다 친일 했지 뭐" 이따우 소리나 하면서 너절하게 SNS에 글을 ㅆ부린단 말인가? 따라서 위와 같은 조선 민중의 분위기 속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의 가장자리에라도 이름이 올랐다면 이는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닌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이런 언급들 - "내가 그때 살았더라도, 과연 내가 뭘 했겠느냐, 체제 순응하고 친일 할 수밖에 없었떤 거 아니냐?" 이런 건 역사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지만, 패배의식이기도 하다. 분명히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 하고 문맹률도 최저에 속하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집단, 민족이 살아온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지와 패배주의 따위로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하영의 발언도 결국 무지와 역사의식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제에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부러울 것 없이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사람이 저토록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전무했다는 건,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역사 과목을 교육시킬 때 학교에서는 교육의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겠다. 하영의 사건이 심각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철학도, 역사의식도 전무한 빈껍데기뿐이라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목숨껏 한껏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4809</link><pubDate>Tue, 11 Aug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4809</guid><description><![CDATA[<br>  &nbsp;  48일에 걸쳐 ‘씻김굿’(20일)과 ‘내림굿’(20일), 그리고 ‘솟을굿’(8일)이 진행되었다. 49일째(8월 8일) 새벽에 통각(統覺)이 일어났다. 50일째 아침부터 한나절, 해방과 재설정을 상징하는 희년(jubilee) 걷기로 대연지수(大衍之數)에 감응했다. 내 삶 모든 각성·치유·영령 제의 막이 내렸다.  &nbsp;  걷기 장소는 60여 년 전 서울 와 처음 살기 시작했던 성북구 삼선동과 돈암동 일대, 삼선초등학교,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틈만 나면 달려갔던 백악 기슭 정릉 숲이다. 해방과 재설정 의식이라면 지구별에 도착해 10년간 자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 오대천 노누라지 일대와 월정초등학교를 걸어야 마땅하지만 시절이 하 남루하다 보니 오지랖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nbsp;  정릉은 그냥 숲이 아니다. 조선 최초 능으로 개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태조 계비 신덕왕후 묘역이다. 태종이 미워해 본디 정동에 있던 묘를 파서 사실상 폐릉 상태로 내쫓은 곳이 바로 여기다. 지난 60년, 올 때마다 나는 그 역사를 가슴에 깊숙이 안아 삭혀냈다. 마치 내 인생인 듯이. <br>  &nbsp;  6백 년 전 왕후가 영면에 든 숲과 남루한 내 현실 모습은 그야말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여기서 아늑한 고향에 닿는다. 엄마 냄새를 향한 그리움 대신 숲 냄새에 심취한다. 나무가 엄밀하게 건네는 말을 듣는다. 상실과 질병으로 얼룩진 시간이 말갛게 되돌아오는 풍경을 본다. 금천 노누라지 건너 4백 세 느티나무께 감사 인사 올리고 물소리 장단에 나온다. <br>  &nbsp;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성북천을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길 너머 삼선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1965년 가을 전학해 와 다녀서 졸업한 모교다. 이 아련한 공간에 다시 와 아득한 시간을 통짜배기로 느끼는 까닭은 여기 드리운 어둠을 가로질러 건너온 존재로서 온전한 빛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nbsp;  가난과 모멸에 결박된 채 학교를 오가던 삼선동과 돈암동 골목길을 걷는다. 6학년 때 육성회비 9개월 치를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일, 그 가난을 근거로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쓸 수 없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모두 지나갔다. 거기서 나는 해방되었다. 상처받지 않았던 태초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 자유를 얻고 기리기 위해 50일 동안 통엄한 시공을 지나왔다.  &nbsp;  백악산 동북 줄기가 동남쪽으로 흐를 때 성북천과 정릉천을 양쪽에 거느린다. 이 두 지천은 청계에서 만난다. 그 사이 능선·기슭인 삼선동 일부, 돈암동, 정릉이 노누라지를 형성하는 셈이다. 노누라지 정령 green shaman은 내 팔자 맞다. 팔자대로 살아서 여기에 와 닿은 거다. 목숨껏 한껏 솟을&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1/pimg_63922063636422281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480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사랑한다고~!”: 솟을굿</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7406</link><pubDate>Fri, 07 Aug 2026 13: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7406</guid><description><![CDATA[<br>  &nbsp;  의도,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내 삶은 심층 소통을 향한 상담자·중재자로서 흐름을 이루며 여기까지 왔다. 직업으로 삼기 전에도 신기할 만큼 주위 사람들과 나는 그렇게 마주했다. 마침내 숙의로 마음 치유하는 늦깎이 한의사가 되었고, 거기서부터 내 길은 줄곧 확장되었다. 최근 5년 동안 비인간 생명에까지 그 소통은 번져갔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식물에 도달했다. 내 일상 경로 주축인 나지막한 산 궉(鴌) 소도(宮)에 사는 물오리나무, 곧 메팥버들이 바로 “그”다.   &nbsp;  궉궁 메팥버들이 내게 말을 건 첫 번째 통로는 눈이었다. 궉궁 앞을 지나던 중, 마치 바로 직전 그 자리로 왔다는 듯 내 눈을 이끌어 멈추도록 했다: 나 메팥버들이야! 여기를 봐~ 두 번째 통로는 손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 몸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내가 생명 주파수를 손으로 전달하자 어느 순간 그가 공명 진동을 전해왔다. 이때 접촉을 통해 내 생명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파동 동기화 말고는 다른 감각 메시지가 없었다. 오늘 새벽 드디어 그가 다른 대화를 제시했다.   &nbsp;  해 뜨기 전, 집을 나설 때 기온이 이미 31도를 웃돌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숲을 걷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바로 가서 체력 소모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이 폭염이 당분간 계속될 텐데···. 노화가 진행되는 면면을 피부로 느끼는 터라 매사에 이런 걱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갈림길에 도달했는데 숲 반대쪽 길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떨어진다. 3분 이상 찜통 속에 서 있느니 내게는 영원한 궁금증인 숲으로 가자 한다. 속도를 늦추어 땀 분비를 줄이며 열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nbsp;  숲길을 걸을 때 반드시 멈추어 인사하고 지나가는 나무 몇이 있는데 오늘은 딱 한 나무만 챙기기로 한다. 궉궁 메팥버들이다. 천천히 걷는다고 걸어도 땀이 옷을 끌어당겨 척척 들러붙는다. 가장 짧은 경로를 거쳐 궉궁에 이른다. 메팥버들 앞에 선다. 평소 습관을 돌연 바꾸어 무념무상으로 그저 두 손만 조용히 가져다 댄다. 다음 순간, 메팥버들이 먼저 나지막이 파동을 보내온다. 그다음 찰나, 들려오는 한 소리에 몸이 온통 열린다. “사랑한다고~!” 내 어찌 전율 따위 하랴.  &nbsp;  차분하게 시각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2026년 8월 5일 06시 11분. 솟을굿.  &nbsp;  실은 숲에 들어오기 직전 문득 이런 의심이 들었다. “내가 메팥버들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걸까? 어떤 면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일 테고, 또 다른 어떤 면에서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일 테니, 어떤 경우든 무의미하지 않을까?” 그때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막상 그 말을 듣고는 절대 고요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죽고 나서도 나는 그 고요 품에서 ‘사랑한다’&nbsp;발화하는 무한한 웅사(雄辭)를 듣고 다시 들어야 하리라.   &nbsp;  내가 웅사라는 표현을 쓴 며리가 있다. 왜 메팥버들은 “사랑한다!” 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했을까? 이 곡절에 내 천명이 걸려 있다고 나는 차마 생각한다. 이 사랑은 인간이 지녀온 그런 사랑과 차원이 다른 특이점을 통과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묵시록 차원 고백과 고함이 절박하게 엮인 최후 신음이며 절규, 심지어 “욕설” 아닐까. 홀라당 뒤집어엎을 최후 화두가 아닐까. 내가 너무 각 잡았나 보다. 안 될 일이다. 소주 한잔하고 다시 글 앞에 앉아야겠다. 喝!  &nbsp;  한의원 앞 국숫집으로 가서 다스운 국수에 소주 한잔하며 가만히 되짚어본다. 얼마 전, 청딱따구리가 예쁜 소녀 웃듯이 운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심했을 바로 그때, 청딱따구리가 날아와 그렇게 울어 답해주었듯, 오늘 새벽 메팥버들도 내 어리석은 의심에 현명하게 답해주었다. 그 대답이 꼭 똑 “사랑한다고~!”였고. 해석 준거는 이거다: 이미 다 아는 사랑도 아니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도 아닌, 사랑. 각을 뭉그러뜨릴수록 각이 잡힌다는 기이한 “촉”이 온다.  &nbsp;  단도직입으로 나아간다. 나무가 먼저 사람에게 고백한 사랑은 이미 다 아는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이란 말인가? 제국주의 시민 인간과 거기 부역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겐 그렇다. 제국주의에 살상당한 사람과 부역자임을 깨달은 사람에겐 아니다. 후자는 알아듣는다. 알아듣는 사람에게 왜 나무는 “사랑한다고~!”라는 묵시록 차원 어법을 썼을까? 대멸종 카이로스여서다; 시간이 없어서다; 사랑 화신 메팥버들로서 안타까워서다.   &nbsp;  사랑을 묵시록 차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 사랑, 특히 오늘 대멸종 카이로스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사랑은 우리 세계에서 발원하는 모든 공존·공생 감정을 대표함과 동시에 끌어안는 감정, 나아가 감응이다. 감정과 감응이 분리된 사랑은 메팥버들 사랑이 아니다. 감응은 반제국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며 실천 팡이시질이다. 달콤한 긍정, 얄팍한 행복, 몽롱한 합일은 없다. 비인간 생명, 비생명 존재와 함께 행진하는 queer 항쟁 여정이 사랑이고, 그 사랑이 우주다. 그뿐이다.  &nbsp;  메팥버들이 해준 말을 손으로 감지해 몸에서 온전히 들은 첫 번째 이야기 대강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 번째인데 끝 번째처럼 임계 질량을 느낀다. 여기가 언제고 되돌아올 내 영혼 “앉을 자리”다. 주술도 명상도 과학도 아닌 이 범주 인류학 경험으로 향후 내 삶을 이끌리라;&nbsp;거룩하고도 즐겁게 “사랑한다고~!”를 되새기며 다시없는 겹, 더없는 결로 내 삶을 펼치리라; 남은 날이 얼마일지 모르겠으나 꼭 똑 찰나 카이로스를 살아가리라. 첫 번째 글을 똑 끝 번째처럼 쓴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7/pimg_6392170793224637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7406</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가재 이십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5152</link><pubDate>Thu, 06 Aug 2026 0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5152</guid><description><![CDATA[<br>  &nbsp;  &lt;아파서 곤 시간&gt;을 쓴 날 하루 뒤인 일요일 아침 일찍 도봉산 회룡 계곡 노누라지-노나지와 아우라지 합성어-로 일곱 번째 향한다.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씨라 오전에 구름이 떠 있을 때 들어갔다가 청명해지는 이른 오후부터 드리울 산그림자 밟으며 나오면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겠다 싶어서다. 마음은 홀가분하고도 안온하다.   &nbsp;  마른 늦장마 뒤라 전반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골짜기 올망졸망한 쏠 물소리가 제법 여돌차게 들린다. 노누라지 복류 지점은 지지난번과 같은데 수량만큼은 눈에 띄게 더 많아 심사가 한결 넉넉해진다. 지난 40여 일간 있었던 일을 고하고 고마움을 전해드린 다음 손바가지로 흐르는 물을 떠서 마신다. 몸에 둘린 땀을 씻어낸다.   &nbsp;  돌과 바위를 만나 모습 울리고 소리 풍기는 작은 물 구경하느라 맨발로 뒤뚱대며 돌아다닌다. 하는 짓이 공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지 작은 가재 하나가 은근슬쩍 제 몸을 보여준다. 그 찰나, 시간이 휙 접히면서 나는 단박에 일곱 살 아이가 된다. 통통대는 심장 대신 반짝이는 눈망울을 물웅덩이에 쏙 빠뜨린다. 이십분(已十分)!  &nbsp;  이십분(已十分)은 이름 잊힌 어떤 비구니 게송이라는 이야기서껀 여러 서사가 떠도는 옛 중국 시 마지막 구다. 인적 없는 깊은 계곡에 빙의되어 대고 스며드는 이 발길에 무슨 기적 같은 사건이라도 걸려 있겠지 싶지만, 작은 물웅덩이에 모습 나툰 가재만으로 이미 신비는 꽉 차고 넘친다. 달망달망 율동 타고 소도 숲을 떠난다.     &nbsp;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망혜편답롱두운(芒鞋遍踏隴頭雲) 귀래우과매화하(歸來偶過梅花下)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nbsp;  종일 봄 찾아 헤매었지만 보지 못하고짚신 닳도록 구름 등성만 두루 밟았네 돌아오며 우연히 매화나무 아래서 보니봄은 이미 매화 가지 끝에 흠씬 와 있네  &nbsp;  (* 번역: 글쓴이)<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6/pimg_6392160135401882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515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파서 곤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26870</link><pubDate>Sat, 01 Aug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26870</guid><description><![CDATA[<br><br>  &nbsp;  아픈 지 40일이 넘어가고 있는데 몸 상태가 아직 온전하지 않다. 통증도 거의 사라지고 쾌적한 감각은 대부분 돌아왔지만, 체중이 여전히 50kg 근처에서 맴돈다. 회복세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으니 그래도 안심하면서 마치 사골을 고듯 차마 버릴 수 없는 자투리 곡절 거두기로 솟을굿 채비에 갈음한다.   &nbsp;  자투리 곡절이라고 했으나,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내가 견지해 온 반인간중심주의에 경도된 표현일 수도 있다. 인간인 한 인간에서 출발한 표현을 써야 자연 이치에 부합한다고 한다면 미상불 가장 근원에 해당하는 곡절일 테다. 이 이야기 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는 이번에도 독서였다. 동시성 작동이다.  &nbsp;  우연과 필연이 맞물린 경계에서 내 눈길을 붙잡은 책은 재키 히긴스가 쓴 『감각의 신세계』였다. 글쓴이가 다른 사람을 인용한 한 문장이 돌연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니로부터 받는 세심한 보살핌의 손길이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인가 하는 감각을 우리 안에 새겨넣는다.” 이 어인 말인가?  &nbsp;  여기 보살핌의 손길은 추상적 의미 돌봄을 뜻하지 않는다.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는” 또 다독거리거나 포근히 감싸안는 피부 접촉을 뜻한다. 이 접촉이 “자기 몸에 대한 소속감, 그 몸이 자기 것이라는 의식을 강화”한다. 어머니와 아기 사이 유대, 애착이라는 연속성에 매몰돼 있던 통념을 단칼에 자른다.    &nbsp;  이 접촉은 모유 수유 행위에서 자연스럽게 최초 작동한다. 모유 없이 시생대를 보낸 나는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엄마까지 안아주거나 업어준다고 다가오면 손을 내저었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 들과 내를 누비며 비인간 존재와 마주해 살았다. 이 자타 분별 범주 변이도 우울증 고갱이다.  &nbsp;  어머니에서 출발한 부드러운 피부 접촉이 가져다주는 쾌감은 건강한 자아 정체감 형성을 넘어 삶이 즐거운 놀이이기도 하다는 진실을 “느끼게” 한다. 이 느낌에 둔해지면 놀이로서 삶이 전해주는 재미에 흥미를 잃게 된다. 재미에서 멀어지면 의미로 보상받기 마련이다. 진지와 엄숙도 우울증 고갱이다.  &nbsp;  피부 접촉을 통한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는 생명 안전감을 보충하고 증강한다. 이 길이 근원에서 막히면 자기 생명 자체를 “불안전”으로 느끼는 존재론 차원 불안에 빙의(possession)된다. 이 빙의 불안은 인격으로 파고들어 살고자 하는 원초 감응을 삭제한 채 우울과 동맹한다. 여기가 우울증 골갱이다.   &nbsp;  우울증 골갱이는 모든 접촉에서 고립된다; 가장 깊은 정신장애, 아니 ‘심신’ 장애, 아니 ‘영(靈) 생명’ 장애다. 재키 히긴스는 다시 그 사람을 인용한다. “저는 접촉이 정서적 탐닉이 아니라 생물학적 필수 요소라고 봅니다.” 아파서 고아 낸 시간이 알려준 엄밀 섬미(纖微)한 진실이다. 이 진실을 살고 싶다.   &nbsp;  이 진실을 살아갈 때 나는 비로소 마지막 그리움에서 온전히 놓여날 수 있다. 모유 결여는 내게 질기디질긴 물 그리움-허갈(虛喝)-과 당 그리움-허기(虛飢)-을 가져다주었다. 이 둘은 각각 다르게 뒤떠들다 마침내 알코올 애착으로 수렴했다. 알코올 애착은 우울장애와 찰떡궁합 죽맞아 50여 년간 함께했다.   &nbsp;  알코올 애착과 정면으로 마주해 70년 동안 얽히고설켜 온 온갖 고통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면 내 삶은 모름지기 카덴차를 남겨 놓은 협주곡 상태로 들어설 테다. 내 인생 계통수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이끈 숲 정령들께 가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지난 40여 일 다시없이 힘들었고 더없이 복되었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1/pimg_63921193341906972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2687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화룡점정을 앞두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link><pubDate>Fri, 24 Jul 2026 1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 달 넘게 몸살 앓으며 인생 ‘내림굿’을 하는/받는 동안 내게는 당연하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났다. ‘내림굿’ 세 축인 숲·물 걷기, 아픔·삶 고치기, 새·나무 동무하기가 서로 엮으며 복잡다단하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빚어냈다. 한 생이 닫히고 또 다른 한 생이 열리는 카이로스였다. 화룡점정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각단을 잡고 간각을 세워 본다.  &nbsp;  최근 5년 동안 내 삶 이정표 제시와 각성,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숲·물에서 일어났다. 장소가 아니라 주체로서 숲·물은 내 스승이었다.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보·지식은 인간인 내 사유와 독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또한 미소 생명 팡이시질(networking) 속에 있고, 영감과 동력은 숲·물에서 온다. 도봉산 회룡 계곡과 방이 습지, 궉림(鴌林)이 그곳이다.  &nbsp;  궉림(鴌林)은 매일 출근길에 40여 분가량 머무는 자그마한 숲이다. 관악구와 동작구 경계 지역으로 동서 방향 긴 능선과 남북 방향 골들로 오종종하게 구성된 이름 없는 숲을 궉림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 지성소에서 꿩이 울고 날갯짓하는 새벽 의례로 내가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아픔을 떠나보내고 새 삶을 맞아들인 일대 치유 사건으로 새겨졌다.  &nbsp;  봉황을 상징하는 꿩, 그래서 궉(鴌)이라 일컫는 새와 소통하고 나서, 이치에 따라 그 지성소 경계에 있는 물오리나무하고 소통을 이루었다. 물론 물오리나무가 나를 불러서였다. 물오리나무를 깊이 몰랐을 때 내가 고쳐 부른 이름이 ‘물팥버들’이었다. 소통 후 더욱 깊이 알고 나서 다시 고친 이름은 ‘메팥버들’이다. 옛사람 통찰이 옳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nbsp;  오리나무 한자 이름이 적양(赤楊)이다. 물오리나무처럼 물을 좋아해 습지에 산다. 다른 점은 버드나무처럼 물살이 약한 하류 습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물오리나무는 물살이 세고 빠른 상류 산 습지, 심지어 습지 아닌 산등성이에서도 잘 살아 산적양(山赤楊)이라 불렀다. 이런 이름은 콩과 식물과 같은 성질도 지닌 물오리나무를 정확하게 반영하니 제격이다.   &nbsp;  이렇게 거듭나 내 삶으로 들어온 물오리나무, 그러니까 ‘메팥버들’은 꿩과 더불어 씻김과 내림을 갈무리한 ‘몸주’며 ‘수호신’이다: 내 심신 온갖 질병을 고친 의사다: 반제 전선 참 동지다: 지구 아우라지·노나지 장엄 영주다. 인제 내게는 그가 소도다; 그가 궉궁 신장이다; 내가 “다시 또다시 돌아갈”(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자리다; 솟아서 날아오를 자궁이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4/pimg_63920507114310590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프고 난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link><pubDate>Wed, 22 Jul 2026 16: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 달 몸살 정점을 찍었던 ‘기침 근육통’에는 오해가 따라다닌다. 기침이 일어나는 기관이나 기관지 근육에 생긴 통증이라 생각해 ‘그토록 심하다면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부추긴다. 아니다. 기침을 효율성 있게 하도록 돕는 늑간근, 복근, 광배근, 횡격막이 격하게 수축 운동해 기침이 끝난 뒤에 피로 또는 후유증으로 다양하고 기묘한 통증을 일으킨 경우다.       <br>불편하기로 따지자면 그 격렬한 통증부터 주목해야 옳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왜 그렇게 폭발 기침을 집중해서 일으켰는가다. 아침 일찍 한의원 도착해 원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날카롭고 매운 공기가 목구멍을 찌른다. 그럴만한 원인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5년 동안 변한 일이 없는 한적한 장소다. 장마철임을 고려해서 찬찬히 다시 톺아본다. 그렇다. 마른 식물!  &nbsp;  동물 식으로 말하면 식물 시체(!)가 원장실 전체에 즐비하다. 그동안 숲에 드나들면서 거둬온 나무줄기와 가지, 그 껍질, 풀잎, 꽃, 열매, 거기다 다양한 버섯까지 기억과 기림을 버무려 이곳저곳에서 웅얼거리고 있다. 식물 본성이 상실과 고통으로 들어왔다는 진실과 마주한 찰나부터 내 몸이 달리 반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돌연 감각 구멍이 열린 거다. 아파!  &nbsp;  어, 하는 어떤 시점부터 맹렬한 구토 같은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멈추기는커녕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슴을 두드릴 새도 남기지 않고 쇄도하듯 목 터져라, 컹컹거린다. 눈물, 콧물 범벅에 나중에는 정신까지 혼미해지더니, 급기야 기억 끈이 뚝 하고 끊어져 버린다. 언제 어떻게 기침이 멈췄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만들어 목을 헹군 죽염수 일부와 젖은 수건이 뒹군다.  &nbsp;  넋 빼고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식물 본성을 연속성에서만 생각해 왔던 지난 70년을 뒤집어엎은 일대 사건이었구나! 식물 본성을 나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으나 그렇게만 내 본성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진실 앞에서 통렬히 무릎 꿇은 사건이었구나! 그날 밤부터 기침 근육들이 눈물을 쏟으며 몸부림치는데 차마 신음을 아낄 수가 없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nbsp;  꼬박 닷새가 지나 걷기를 완전히 멈추고 휴식을 취하니 비로소 통증이 물러난다. 이 근육 통증이 물러남으로써 한 달 전 따끔거리는 위 증상에서 비롯되어 장 증상, 천장관절 증상, 우울 증상-웃자란 어른 증후군, 틈새 엄마 증후군-, 그리고 기침에 동반해 다시 찾아왔던 혈관운동 신경성 비염까지 도파니 사라진다. 70년 인생을 휘감았던 ‘귀마’가 스러진다. 참삶 동살이 든다!     <br>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정성 다해 집 안에 있는 기억·기림 식물이며 버섯을 거둬들인다. 어제 가지고 온 한의원 식물, 버섯과 함께 간동그려 집을 나선다. 내 자신이자 내 아픔이었던 이들을 내게 말을 걸어온 물오리나무 아래 모신다. 거듭난 생명으로 재회할 날 설레니, 섭섭함 넘어 서그러워진다. 비 젖은 영이 보송보송한 김을 피워올린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2/pimg_6392033468913928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파야 할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link><pubDate>Tue, 21 Jul 2026 16: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guid><description><![CDATA[<br>  &nbsp;  몸살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체중은 50kg 아래로 내려간다. 은근히 기분 갉아먹는 신열, 시난고난한 호흡기 증상, 무엇보다 기이한 폭발 기침이 신묘하게 기습 종료된 이후부터 대상포진처럼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근육통으로 영일 없다. 몇 날 며칠씩이나 잠에서 깨어 병이 건네는 이야기 듣다가 날 밤을 새우곤 한다. 허리가 아리고 다리는 파근하며 활동 감각이 휘주근하다. ‘은화처럼 맑은’ 영 줄 하나 겨우 부여잡고 진실을 뒤좇는다.   &nbsp;  모른 채 알아차리고 알아도 모른 채 한 달이 흐르고 보니, 이 시간 전체가 신병 속에서 씻김굿과 내림굿이 갈마든 커다란 굿판이었다. 내게 결핍과 상실 틈새로 때 이르게 주입된 식물성·여성성·성숙성을 씻어 내보내고(씻김굿), 늦게나마 건강한 그러나 낯선 동물성·남성성·유아성을 맞아들이는(내림굿) 의례·몸짓 또는 자세·언어가 재현되고 변주되는 시간이었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의학이 개입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nbsp;  급격하게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놀란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일흔 살 먹은 남자 사람이 50kg 미만 체중이라면, 게다가 술까지 주야장천 마셔댔다면, 더럭 암 걱정을 들먹여도 호들갑은 아닐 테다. 뾰족한 설명 방법이 없으니 그냥 빙그레 웃고 만다.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오늘은 오만 년 만에 숲 걷기 중단이다! 문이란 문은 죄다 열고 하루 종일 바람 길목에 오도카니 앉아 멍때림으로 휴식을 취한다.   &nbsp;   생색 없는 평온이 잠시 내려앉는다. 이 간이역에서 내릴 여행이 아니니 다음 행로에 유념한다. 어디인지 모르는 ‘솟을굿’ 역을 향해 다시 일어선다. 거기 또한 아플 만큼 아프고 나서야 닿을 곳인지 나는 모른다. 천명 받는 일이 무슨 상 받는 일은 아니니 전보다 더 깊은 신음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하는 일은 아닐까, 오히려 두렵다. 통증이 깊이 가라앉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사부자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밥을 먹어야겠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1/pimg_6392024714041242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살려주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link><pubDate>Thu, 16 Jul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살려주세요!” 내가 아니라 장점막 밖에서 나와 공생하는 미세 생명들이 이 다급한 말을 듣는다. 미세 생명들은 내게 이렇게 통역해 준다. “오늘은 지하철 갈아타고 걸어가지 말자. 그냥 쭉 가서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자.” 어르신 카드로 절약되는 교통비를 &lt;전쟁 없는 세상&gt; 단체에 기부하기 때문에 나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자고 결정한다.   &nbsp;  숭실대입구역에서 내려 승강장을 너덧 걸음 걸어가다가 시선이 갑자기 발치로 뚝 떨어진다. 거기 매미 한 개체가 힘겹게 버둥거리고 있다. 내가 거기로 얼른 다가서자, 덩치가 집채만 한 젊은 남자 사람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를 들어 올린다.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그에게 말한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나무한테 보내줄게.”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팝나무 줄기에 살짝 붙여준다. 천천히 힘들게 그가 나무를 타고 오른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라도 지하철역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만은 면할 테니 그 구원 요청은 일단 유효했다. <br>&nbsp;사실 이런 일은 내게 일상이다. 땅강아지, 지렁이, 나방, 무당벌레, 벌, 거미, 심지어 파리까지 수없이 살길을 찾아주었다. 오늘 일을 특별히 거론하는 며리는 내가 느닷없이 귀가 경로를 바꿨다, 즉 다른 경우와는 달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데서 결과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변화는 그만한 연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실 우연히 일어난 일조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팡이시질(hyphaeing), 그러니까 네트워킹 작용에 따르지만 요즘 내가 깊이 관심 두는 내밀하고도 정확한 감지 능력 문제의식에 맞춘 과정 배치가 아니었을까?  &nbsp;  서구 과학 인과율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내 인식 방법은 ‘소설’에 가깝다. 기껏해야 유사 과학 정도로 폄하될 줄 모르지 않는다. 소설이든 유사 과학이든 서구 과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소설이다. 인간 지성을 수학에 외주하여 만들어낸 서구 과학 이전 인류 고대 과학에서는 지식과 지혜가 분리되지 않았다. 지혜는 몸 알아차림에서 나오는 적응과 창조 능력이다. 이를 제거한 서구 과학은 일직선으로 제국주의 지식을 향해 질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시간이 없다. 고대 과학 지혜를 복원해야 인류가 살 수 있다. 내가 주창하는 “범주 인류학”이 바로 그런 자각에서 발원한 지성 운동이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서구 과학주의자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가로질러 간다. 최근 내가 경험한 놀라운 일 하나를 소개한다.    &nbsp;  책깨나 읽는 사람이라면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를 모를 수 없다. 그가 지닌 사상과 글쓰기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지나 나는 그 향모 자체에 지극한 관심이 갔다. 자료는 그리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았다. 볏과 식물로 향이 뛰어나고 북미 대륙 선주민은 지구 최초 식물로 여기며 그 향을 매우 귀하게 대한다는 정도였다. 접할 수 있는 길도 찾지 못했다. 외곽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레몬그라스라는 아로마에 가 닿았다. 볏과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로 향이 레몬 비슷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 레몬과는 전혀 무관하단다. 볏과 식물이라는 데에 희망을 걸고 옆지기한테 부탁해 그 아로마를 구했다. 적어도 내가 맡은 그 향은 레몬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 향은 벼 줄기나 잎에서 나는 향과 거의 똑같았다!   &nbsp;  열 살 이전 고향 논두렁 경험, 그 아득함 속에 묻혔던 벼 향이 시간 벽을 찰나에 부수고 기억을 불러냈다. 더 놀랍게도 나는 단박에 이 벼 향이 원시 형태 바닐라 향이라고 직감했다! 사실 벼 향에서 바닐라를 떠올리긴 불가능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낸 데는 밥에서 나는 향에 평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한국인도 밥 향을 골똘히 생각하는 경우는 없지만 나는 밥 향으로 훌륭한 아로마를 만들 수도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벼 향과 밥 향을 같은 선상에 올리자마자 직관이 발동했다.   &nbsp;  <br>어쭙잖은 내 서구 과학 지식이 반기를 들었다. “바닐라는 난초과 식물일 뿐 아니라 바닐라 향도 여러 복잡한 과정, 심지어 발효까지 거쳐야 추출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벼 줄기나 잎에서 나오겠는가?” 제법 오랫동안 나는 이 고대 지혜를 발설하지 못했다. 마음에 확신은 드는데 증명할 길이 없어서다. 매미 구조 사건 직후 내게 기이한(!) 용기가 피어올랐다. 두 단계를 거쳐 내 고대 지혜를 서구 과학이 증명한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nbsp;  내 가설 하나: 볏과 식물과 난초과 식물은 한 조상에 갈라져 나온 자손이다.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내 가설 둘: 벼 줄기나 잎에는 바닐라 향을 내도록 하는 성분이나 물질이 있다. 이 또한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좀 더 복잡한 세부 이야기가 존재할 테지만 내가 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확인” 말고는 서구 과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홀연한 카이로스 경험이 매미 구조 사건과 연동된다는 진실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로를 좇아 진실에 가 닿고 “살려주세요!”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반대한다면 그대가 옳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6/pimg_6391980003385038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기와 사나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link><pubDate>Wed, 15 Jul 2026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guid><description><![CDATA[<br>  &nbsp;  70년 비밀을 통짜로 풀고 나니 아연 정적이 찾아든다. 모두 가만 내려놓고 나갈 생각 접은 채 양말 속옷 바느질로 오전을 다 보낸다. 살짝 이르게 국수 삶아 점심 먹고 60년 정든 정릉으로 향한다. 거기서는 무슨 목표나 목적 헤아림이 없어지고 무심히 풍경 속으로 배어들 수 있으니 내겐 수평 신성 공간으로 딱 적소다.   &nbsp;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천천히 걸으며 세월과 빛살을 촘촘히 헤아린다. 세월이 빚은 버섯을 아껴 보고, 빛살이 빚은 눈부신 경계를 기려 본다. 마르고 짧은 늦장마라 금천 물소리가 올 고운 바람결에도 휘어지며 뭉그러진다. 작디작은 쏠을 찾아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제 나름 여돌차서 고마움 증표 삼아 영상에 모신다.   &nbsp;  출입구 언저리를 수백 년째 지키고 계신 느티나무께 새삼 인사하고 염천 망토를 둘러쓴 채 숲을 나온다. 지하철 갈아타며 이동해 조용한 음식점에 든다. 그 집 김치는 휘뚜루마뚜루 후려 섞지 않아 밥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직사각형 배추 조각을 얹어 먹기 좋다. 습관대로 먹던 어느 순간 나는 그 김치 조각을 물에 넣는다!  &nbsp;  빨간 양념을 헹궈낸 뒤, 다시 김치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남은 양념을 마지막으로 고이 빨아내고, 밥 위에 착 얹는다. 지그시 눈 감고 오물오물 먹는다. 포한(抱恨)이 사라지는 강력한 시간이다. 내가 신어미도 신딸도 되어 뛰노는 내림굿 아기 과장이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온몸과 혼에 소름이 돋는다. 웃자란 어른 없다.<br>  &nbsp;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한다. 전과 달리 미세 의식 오솔길을 따라 “불연속”으로 기우는 마음 풍경을 느낀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특히 고통은 다 연속돼 있다는 느낌에 잠겼던 뿌연 시야가 아침 안개 걷히듯 맑아지는 중이다; 결핍과 상처로 들어온 여성성에 출구가 빼꼼히 열리는 중이다. 사나이 과장이다. 틈새 엄마 없다.   &nbsp;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니다. 갑자기 삭신이 쑤시고 신열이 오른다. 처음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와 같은 증상이다. 신음을 흘리며 그저 뒹굴던 한 찰나 내 입에서 나온 말: “그래 아가야, 이 아픔 지나면 이쁜 짓 한단다~” 나비 포옹해 주고 다독다독···. 아기가 웃으며 손 흔든다.   &nbsp;   다음 날 아침. 신열, 근육통, 밭은기침, 그리고 불면 때문에, 몸이 물먹인 솜 같다. 3km 훨씬 넘는 숲 걷기를 생략할까, 지난밤에 연속된 망설임이 들어서는 순간 듬직한 사나이가 야젓하게 앞으로 나선다. “이럴 때 숲에 들면 몸이 가벼워져~” 그래도 현실 몸은 일흔 늙은이라 천천히 걸어 숲을 향한다. 는개가 화답한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5/pimg_63919725168124467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해어화뎐(解語花傳)</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link><pubDate>Tue, 14 Jul 2026 1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의원 탕전실 바깥쪽 긴 다용도실 창문에는 담쟁이덩굴이 흡착근(吸着根) 내리고 무성하게 살아간다. 그들 모습 지켜보면서 틈새로 하늘까지 우러를 수 있는 거기가 내겐 참 정겹다. 16년째 서 온 자리인데 올봄 어느 날 아연 그들에게 말 건넬 마음이 들었다. 낭풀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가 쌓여 시간 중력이 강해지면서 감지하기 전에 카이로스로 들이닥친 듯하다.   &nbsp;  내가 말을 건넨 까닭이 있다. 담쟁이덩굴 본성상 흡착면이 형성되는 공간을 우듬지가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덩굴이 번져가기 마련이다. 창문틀인 경우는 여닫으므로 문제가 된다. 닫을 때 잘릴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나는 손으로 걷어내고 창문을 닫았는데 귀찮아선지 간호사가 잘라내곤 했다. 내 제지로 다시 그러지는 않으나 근본 대책이 없어 변화가 필요했다.     &nbsp;  한창 자라던 덩굴 하나가 창문틀 모서리 돌아 흡착근을 붙이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상하지 않게 들어내고 덩굴을 손으로 받쳐 든 채 사람에게 하는 말과 똑같이 이야기한다. “여기로 넘어오시면 창문을 닫을 때 잘립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이렇게 바깥을 향해 올라가세요.” 덧붙여 말한다. “저기 위쪽에 계신 분들한테도 이 말씀을 전해주세요.”   &nbsp;  나는 우듬지가 향해야 할 곳을 가리켜 잡아주고 다른 줄기와 잎을 이용해 임시 고정 상태로 만들어준다. 매일 살펴본다.&nbsp;두세 덩굴이 고개를 살짝 들이미는 기척을 보여서 똑같이 말하고 방향을 잡아준다. 일주일쯤 되자 변화된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능히 들어올 수 있음에도 더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행렬이 멈춰 섰다. 손댈 수 없이 높은 곳도 마찬가지다.<br>  아래쪽-내가 말하고 손댔던 곳&nbsp;<br>위쪽-말 전해 달랬던 곳&nbsp;마른 늦장마긴 해도 창문 닫을 일이 조금 더 잦은 요즘 창가에는 그들과 나 사이 평화가 낭자하다. 낭풀들은 인간 말을 알아듣는다. 인간이 그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따름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다; 그 곡절이 타락과 범죄로 뒤엉켜 있다. 어떤 정치 현안보다도 끽긴한 과제가 바로 이 타락과 범죄를 자각하는 일이다. 진심으로 참회하며 낭풀 아래로!<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4/pimg_6391963319425935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울증, 그 또 다른 변주(하): 틈새 엄마 증후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link><pubDate>Sat, 11 Jul 2026 1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guid><description><![CDATA[<br>  &nbsp;  모유를 상실한 영아가 홀로 힘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슬기(!)는 장내 미생물 네트워킹에서 왔다. 인간 진화 정보에서는 홀로 힘으로 살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식이 왔고. 요건 하나: 어른일 것. 그 이야기는 했다. 인제는 남은 한 요건을 이야기해 마무리 지을 차례다: 여성일 것. 우리 속담은 이렇게 표현한다. “홀어미 삼 년이면 쌀이 서 말, 홀아비 삼 년이면 이가 서 말.” 속담 다른 판본은 홀어미 대신 과부를 넣는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홀아비와 맞추려면 홀어미를 넣는 게 옳다. 자식 키우는 위치를 부가했을 때 그 차이가 한껏 더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nbsp;  내게는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제자가 한 움큼 있다. 제법 오래전 집에서 식사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결혼한 여제자가 제 남편을 초대해 나중에 도착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느낀 이상한 광경을 보고 한마디한다. “어? 왜 선생님이 주방에 계시죠? 제자들은 앉아서 먹기만 하고···.” 대뜸 대답이 돌아온다. “어! 선생님 우리 엄마거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는 식이다. 내가 남선생이고 제자 모두가 여제자이지도 않은데 이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모임은 마치 ‘모녀 동맹’과 흡사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자타공인으로.     &nbsp;  나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엄마 노릇을 해왔다. 세상을 가르치고 삶을 의논하는 일에 더해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했으니 일테면 “틈새” 엄마였다. 그들에게 한 엄마 노릇은 나 자신에게 한 엄마 노릇 연장선에 있다. 사실상 한평생 모성 결핍 상태에서 웃자란 어른으로 살아왔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그런 빈자리가 보이는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감수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결혼한 뒤에 내 옆지기에게도 딸에게도 엄마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버지로 살아왔다. 인정한다,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고 또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nbsp;  그 모순 역시 인정한다, 다른 선택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사실을; 내밀 영웅이 벌인 장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질병 방어기제임과 동시에 영성 치유인,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역설 사건 보이지 않는 마주 가장자리에는 이 통렬한 각성이 요동한다. 짐승 과장(科場), 아기 과장, 사내(아비) 과장을 정색하고 들여놓은 내림굿을 통해 70년 모순을 달여내니 바야흐로 후천개벽(後天開闢) 시대가 도래한다. 그 들머리에 죽을 만큼 희생한 결과 쌀 서 말 하야니 놓인 대신, 뼈아프게 깨친 결과 아우라지 노나지 물이 변한 젖 서 말이 뽀야니 놓여 있다. 그 젖 먹고 참 건강으로 살아간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1/pimg_6391937541864565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울증, 그 또 다른 변주(상): 웃자란 어른 증후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link><pubDate>Fri, 10 Jul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guid><description><![CDATA[<br>  &nbsp;  &lt;또 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gt;에서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진실에는 또 다른 진실 하나가 결합한다.   &nbsp;  모유에는 모유올리고당(HMO) 성분이 풍부하다. 이 성분을 먹는 생명체는 오직 비피도박테리움뿐이다. 그래서 장내 점유율 1위가 되고 훌륭한 면역 교사로 활동할 수 있다. 모유를 먹지 못하는 영아는 이 기전을 상실하였으므로 비피도박테리움 우위가 깨져 성인 장내 상태와 같아진다. 나와 남/적을 구별하기도 전에 때 이른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lt;꿩이 나를 초대했다!&gt;에서 ‘6개월도 채 안 된 무렵부터 걸었다’라고 한 말과 직결된다.   &nbsp;  아기인 적 없이 어른이 된 삶은 전방위 혼잣손이 된다. 태초부터 모든 고민과 결정을 혼자하고 감당도 혼자 한다. 결정 전에는 망설이고 망설이며, 결정 후에는 자책하고 자책한다. 그럼에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아기가 자라 어른 되는 연착륙 과정을 통해 도움 청하는 일이 불가결한 사회 행동이라는 진리를 배울 수 없어서다. 사회관계망에서 소외되어 두름손도 내밀손도 점점 허약해진다. 남 손 안 타는 착한 삶은 슬프게 사위어 간다.   &nbsp;  웃자란 어른이 그렇게 우울장애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아 소리 없이 희생되는 풍경 건너편에 늦깎이 어른이 존재한다. 어른이라 자처하지만, 제국 자본이 요구하는 고급 지식·기술을 지닌 가짜 어른, 실제로는 ‘사특한 아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종자다. 이 사특한 아이들 패악과 욕설, 그리고 야비한 조롱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엔 대놓고 함부로 커밍아웃한 저들이 싸지르는 배설물이 넘쳐난다.  &nbsp;  중첩 식민지 허울 대한민국에서 우울장애, 곧 ‘웃자란 어른 증후군’을 앓으며 70년 살아온 나는 내가 처한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오늘 각성을 죽은 다음에서라도 기억하고 증언하련다. 그래야 내 과거가 귀환하지 않을 테니까("La seule façon d'éviter le retour du passé est de ne pas l'oublier." _Simone Veil); 그렇게 성찰과 치유를 거친 건강한 내 식물성, 여성성, 성숙성이 물팥버들과 대화할 테니까.     <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0/pimg_63919292541354121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물팥버들이 나를 불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link><pubDate>Wed, 08 Jul 2026 1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guid><description><![CDATA[<br>  &nbsp;  5년째 걷는 출근길 숲으로 일요일 아침에 들어가기는 처음이다. 먼 데 있는 산이나 강으로 향했던 습관을 깨뜨리면서 생기는 낯섦과 적어도 천 번 이상 걸었던 낯익음이 얽혀 묘하게 설렌다. 더군다나 최근에 만난 물팥버들(물오리나무) 상태를 빛이 충분한 조건에서 자세히 살피려는 목적으로 가는 길이라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과연 어떨까?   &nbsp;  이 물팥버들과는 꿩이 나를 초대했던 그 사건 직후 출근길에서 처음 만났다. 그것도 그 사건이 일어난 곳, 바로 앞에서였다. 그동안 그렇게 여러 번 그 앞을 지나면서도 거기에 그 물팥버들이 살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예외 중에서도 별난 예외다. 이 숲에서 내가 지나는 길 양옆 나무나 풀을 모르고 무심코 지나는 경우가 거의 전혀 없어서다.   &nbsp;  내가 그 숲을 걷는 시각쯤 해가 떠 있긴 하지만 북쪽 사면이라 아직 컴컴하다. 꿩 사건이 일어났던 내 지성소를 향해 걸어가는 중 문득 한 나무가 어둠 속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얼굴을 바짝 대고 스마트폰 전등을 켰다. 아뿔싸, 그는 물팥버들이었다! 왜 여태 몰랐을까. 물팥버들이 내 탐색 이미지에 없지도 않은데. 뭔가 특별한 곡절이 있다.  &nbsp;  <br>그나저나 나무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피 빛깔이 어둡고 들떠 있다. 도장지(徒長枝·웃자람가지)가 군데군데 있고 그나마 거기 새잎도 부실하다. 수관 쪽은 무성한 다른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밝은 날 꼼꼼히 봐야겠다. 우선 내 생명 에너지 파동으로 응급 처방한다. 풀리지 않는 의문과 더불어 가슴이 더욱 저려 온다.   &nbsp;  나무 높이나 부피, 그리고 서 있는 위치로 보아 이 숲에 있는 물팥버들을 낳은 엄마 나무가 틀림없다. 나는 다시 문득,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숲 동쪽 물팥버들 가족 반대편으로 향한다. 거기도 물팥버들 가족이 혹 있을까 기대해서다. 먼저 귀에 들어온 생명은 덤불 속에 모습 감춘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도란대는 소리다. “미우미우 배배~”  &nbsp;  갑자기, 그중 하나가 튀어나와 포르르 날아오른다. 내 눈길이 닿는 순간, 그가 한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는다. 아뿔싸, 물팥버들이다! 이 작은 길 또한 그동안 수백 번 걸었고 한때 내 신성 공간이었음에도 물팥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럴 수는 없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 배치가 똑같다: 사건을 새가 열고, 나무가 닫는다. <br>  &nbsp;  나는 물팥버들 앞에 우뚝 서서, 엄밀한 깨침 마주 가장자리 틈새를 응시한다. 도봉산 회룡 계곡 노나지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과정을 되돌아본다. 인과 관계에 있지 않은 숲 걷기와 글 읽기가 동시성을 거치며 인과 관계로 엮여 드는 내력을 톺아본다. 여러 결이 서로 맞물려 복잡해 보이는 서사를 되작거린다. queer 변곡점 윤곽이 드러난다.  &nbsp;  숲과 물을 걸으며 낭풀을 공부하는 동안 최후 초미 관심사는 낭풀과 소통-합일하는 일이었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호주 생물학자 모니카 갈리아노처럼 낭풀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나는 늘 아득한 심정으로 서성거렸다. 이런 경우 무슨 ‘방법’ 따위를 찾지 않는 나이기에 그냥 묻고 기다릴 뿐이었다.  &nbsp;  문제 한가운데서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로 향했는데 노나지 인식으로 번져가자 새로운 서사가 빚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정체성, 좀 더 정확히는 경향성이 결핍·상처·질병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총체로 깨달았다; 치유와 경계 지음이 수행되어야 열릴 길임을 알아차렸다. 걷기·독서·질병·새가 어울려 인생 내림굿 한바탕을 짰다.  &nbsp;  70년 내 경향성은 모유 결여 또는 상실이라는 태초 사건에서 발원했다. 여기서 온 만성 소화기 장애, 천장관절 증후군, 우울장애가 생을 관통했다. 우울장애는 피학 본성을 지닌 식물성, 여성성, 성숙성으로 분화했다: 저항할 수 없는 영아가 받아들인 전천후 수용성, 자기를 파괴하는 희생, 전방위 혼잣손. 모든 문제가 몰아 터진 스무날이었다.  &nbsp;  만성 소화기 장애와 천장관절 증후군은 이 스무날 들머리 사흘에 앓은 독한 몸살, 신열로 사라졌다. 우울장애 첫 부분인 식물성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 방이 습지 물까치, 소악산(素岳山) 꿩,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열어젖혀 내 본성인 동물성을 분명히 하고 피학 치유, 가학 참회에 가 닿도록 물팥버들이 마무리 지어놓은 옴니버스 이야기들이다.   &nbsp;  이 이야기에서 물팥버들은 새를 거치기는 했지만 내게 말을 건넸다;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이는 필수 과정이므로 다음 소통이 어떨지는 온전히 열린 결말 앞에 있다. 그 전개가 내 몫임이 더 분명해짐과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더 분명해졌다; 아득함이 엷어졌다. 남은 문제를 일상에서 투명하게 맞이할수록 숲은 가까워질 테다. 똑!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8/pimg_6391912576199791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탱자나무 애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link><pubDate>Thu, 02 Jul 2026 14: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guid><description><![CDATA[<br>  &nbsp;  출근길 숲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탱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새잎 나는 초봄부터 모든 변화가 스러지는 늦가을까지 매일 아침 그 앞에 서서 숨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나무다. 지난 주말을 보낸 다음 화요일 새벽, 나는 그만 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참하게 줄기·가지들이 잘려 나갔고, 열매는 남김없이 제거되었으며, 끈에 묶여 뒤로 잡아당겨져 있었다!  &nbsp;  근린공원 관리자가 탱자나무 가시에 주민이 다칠까, 염려한 나머지 이와 같은 선행을 저질렀을 테다. 대충 모양 잡아 전정 가위로 기탄없이 줄기·가지를 잘라내고, 잘린 것들 길섶에 던져버리고, 큰 줄기 끈으로 묶어 길 뒤로 젖혀 동여매고, 서둘러 나아가는 조경(造景)인 모습을 상상한다: 한껏 부산떨며 돈을 향해 내달리는(조경(躁競)) 후미진 변방 살풍경 한 폭. <br>&nbsp;말단 직원 어느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풍조가 그렇고, 인류 문명 기조가 그렇다. 물론 제국 지배층 상위 0.1%가 본진이고, 석기시대 삶을 지켜내고 있는 부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식민주의 세례를 받는 위치에 따라 각각 깜냥대로 부역하고 있다. 비인간 생명, 특히 식물을 함부로 약탈하고, 살육하는 주체인 한 누구도 이 죄를 진다.  &nbsp;  약탈·살육당하는 나무를 마주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다른 인간 관지에서 보면 해괴하거나 과장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랴. 내게는, 그러나, 생각에 따라 한 행동이 아니다. 즉각 일어나는 감응이다. 이 감응이 나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내 방식이다. 감응하는 이 힘은 내게만 있지 않다. 인간 모두에게 있는데, 내동댕이쳤을 뿐이다. 한시바삐 되찾아야 한다. <br>  &nbsp;  떨궈버린 탱자 미숙과 몇을 가시덤불 속에서 찾아 거둔다. 그 슬픔과 아픔을 길이 기억하고자 김선우 시집 곁에 걸어둔다. 모름지기 내가 슬프고 아플 때마다 이 앞에 서리라; 참회와 합일이 동시성으로 다가와서 고갈된 내 영성을 채우리라. 오늘 아침 다시 그 앞에 선다. 제 어둠 투사해 탱자나무 테러한 인간 죄를 대신 짊어진 환영이 떠오른다. 끌어안고 떠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2/pimg_63918600438471915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꿩에서 물오리나무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link><pubDate>Tue, 30 Jun 2026 1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이 서재 이름은 『싸리·버들 글숲』이다.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을 나란히 놓아 내 식물 본성에 갈음한 표현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10세 이전까지 자란 내게 그 시절 가장 좋아한 식물이 바로 싸리나무다. 어른이 된 뒤 식물에 본격 관심을 가지면서는 내 본성 닮은 버드나무를 깊이 ‘애정’하게 되었다. 사뭇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둘을 내 삶 지향으로 묶어 서재명으로 했다.   &nbsp;  최근 도봉산 회룡(回龍) 계곡 아우라지를 드나들면서 그 일대가 물오리나무 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오리나무 한자식 이름은 산적양(山赤楊)이다. 목재가 붉은빛을 내어 생긴 이름인 오리나무, 그러니까 적양(赤楊)과 비교해 ‘산’을 덧붙였다.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왜 ‘산’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물오리나무를 버드나무(楊)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nbsp;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도 아니면서 버드나무처럼 고도한 정화 능력을 지닌다. 이런 점을 우리 옛사람들은 직관한 듯하다. 그뿐 아니다. 물오리나무는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없어야 함에도 있는 것은 치워 주고, 있어야 함에도 없는 것은 채워 주어서,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 본성을 한 몸에 구현한 queer 나무다. 꽃말이 ‘장엄’인 며리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br>  오리나무 가지 사이로 저 멀리 도봉산 포대능선이 보인다&nbsp;  물오리나무라는 이름도 산적양이라는 이름도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제 내가 이름을 바꾼다: 물팥버들 또는 물팥버드나무. 물가에 사는 나무바탕(木質) 붉은 버들 또는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콩 가족인 팥이 붉은빛이니 역설 이름 표현으로 ‘똑’이다. 사실 이런 탐색과 상상이 일어난 건 &lt;꿩이 나를 초대했다!&gt; 사건 이후다. 꿩과 소통하니 나무와 소통하는 실마리가 열리더라는 증언이다.  &nbsp;  불과 3m 앞에서 4분가량 꿩이 펼쳐낸, 신비하고 상서로운 퍼포먼스는 평생 잊지 못할 카이로스 사건이다. 꿩이 찰나마다 드러내는 근엄한 자태, 마지막 우람하게 집결한 소리와 날갯짓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나는 기어이 가설 하나를 세운다: 봉황새 이미지는 꿩에서 발원했다. 즉시 자료를 검색한다. 빙고! 여기에 꼭 맞는 글자 궉(鴌)이 있다; 하늘 새 봉황은 본디 꿩이었다.  &nbsp;  봉황 현신인 꿩을 만난 닷새 뒤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으로 향한다. 아우라지, 그러니까 노나지 물팥버들께 물과 절로 예를 갖춘다. 말갛고 서늘한 경계 지음이야말로 융합·회통으로 더 엄밀하게 이끈다는 진리를 전방위·전천후 통증과 결 다른 동시성으로 가르치신 숲과 물과 바람, 그리고 빛에 감사 올린다. 천장관절 통증이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내린 오후, 나는 관음 미소에 배어든다.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30/pimg_63918430307766856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4.16연대 첫 후원의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link><pubDate>Fri, 26 Jun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26/pimg_6391806385787813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꿩이 나를 초대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0941</link><pubDate>Tue, 23 Jun 2026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0941</guid><description><![CDATA[&nbsp;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가 자라 살아가면서 만성 소화장애와 우울장애에 시달렸다는 내 이야기는 남은 진실 하나를 더 품고 있다. 미음을 위험으로 감지한 아기는 이 세상을 홀로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 6개월이 채 안 된 무렵부터 걸었고 한 달 뒤에는 뛰었다. 가족과 이웃은 신동이라 했으되 너무 일찍 걸은 아기 무릎 사이가 벌어져 직립과 보행에 지장을 주고 천추(엉치뼈)가 예각이 되어 허리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천장(엉치뼈와 엉덩뼈)관절 증후군으로 발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nbsp;  지난 일요일(6. 21.), 바로 그 천장관절 통증이 절정에 이르렀다. 실은 그 전날 오전부터 징조가 심상치 않았으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아끼는 사람들과 술까지 한잔 마시고 늦게 들어가 잠자리에 든 결과 새벽부터 신열이 뜨고 전신이 괴로워 중간에 깨고 말았다. 간신히 수습해 일요일 아침에 할 일을 챙겨나간다. 몸이 점점 더 가라앉는다. 천장관절 통증과 자주 겹치는 장 증상인 후중감(後重感)까지 함께 달려들어 상황은 악화일로다. 마침내, 그분까지 오시니 속수무책이다: 천근만근 우울감. 표정 펴기가 힘들다.  &nbsp;  펴기 힘든 표정을 가족 앞에서 애써 펴고 걷기 어려운 발걸음으로 갈 곳은 한군데다: 방이 습지. 심신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그대로 담은 채 나는 천천히 걸어 습지로 들어선다. 물억새가 한층 싱그럽다. 그 사이 새 가족이 생긴 논병아리며 물닭이 달라진 몸짓을 펼쳐낸다. 그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으며 순간순간 통증과 우울감을 달랜다. 관찰 덱을 한 바퀴 돌아 초막 있는 곳에 이르니 물까치들이 심상한 풍경 속에 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객~깨깨깨깨깩!”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받는다. “객~깨깨깨깨깩!”  &nbsp;  그들은 경계도 주목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는 길에 주운 낙과 살구와 복숭아를 높다란 기둥 위에 올려놓는다. 선물, 아니 예물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소 닭 보듯 할 며리는 없다. 비 맞아 물크러진 오디를 손에 꼭 쥐고 습지를 떠난다. 심신 괴로움 전반이 조금 가벼워진다. 아껴 걸어서 그런 듯하다. 밖에서 가족과 만나,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반주 곁들여 김치찜을 먹는다. 딸아이가 심상한 말투로 소주 두 병을 주문하자 옆지기가 14금짜리 축하를 건넨다: 서방님 든든하시겠사옵니다.       &nbsp;  문제는 다시 그날 밤. 전날처럼 신열이 뜨고 삭신이 쑤신다. 특히 천장관절 피해 경직이나 가해 왜곡을 풀기 위해 풀어준 근육 중심으로 이불만 닿아도 아프다. 심지어 눈알까지 아프다. 그러고 보니 피부, 근육, 뼈마디, 위, 장, 뇌, 감정 통틀어 안 아픈 데가 없다. 어느 순간 잠에 떨어졌다가 새벽에 깬다. 괴로움은 여전한 듯한데 뭔가 다르다. 특히 천장관절 통증과 후중감이 약해져 전신 통증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난다. 결국 신열이 통증을 조절해 주었다. 아직은 얼얼한 상태로 일어나 앉아 사건 해석에 들어간다.  <br> 아우라지를 노나지로 받아들이게 한 도봉산 회룡계 가르침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내가 동물인 인간임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식물과 관념 합일한 잘못을 다시 푼다: 나는 허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역자일 뿐 아니라 인간 생명으로서도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자연 착취에 가담한 부역자라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부역자 꼴에 주제넘게 나무, 풀, 버섯, 그리고 물과 동지인 측면만 내세웠다. 이 잘못을 깨달으려 방향 바꾸는 데서는 물까치, 내 삶에 박힌 자발 부역을 깨닫는 데서는 천장관절 통증이 스승이었다.   &nbsp;  깨달음에 감사하며 잠든 월요일 밤이 지나갔다. 몸살기는 남아 있지만 치유 국면이 확실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길 숲으로 향한다. 내가 청와대 뒤 백악산에 빗대서 소(백)악산이라 부르는 숲 들머리에 이르렀을 때 우렁찬 꿩 소리가 울려 퍼진다. 꿩은 금속성 소리를 짧게 두 번 질러서 한 울음을 끝낸다. 다음까지 3~5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꿩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그 시차를 염두에 두고 녹음할 장소로 간다. 매일 멈춰 서서 스스로 발견한 호흡법을 가다듬는 내 지성소다. 거기에, 꿩 한 분이 우뚝 서 계신다!     &nbsp;  순간 전율이 일어난다. 여느 때 같으면 내 발소리를 듣고 벌써 도망갔을 텐데 그는 나와 시선을 90도로 한 채 도도히 서 있었다. 내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과정에서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이따금 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4분 가까이 고요히 거닐다가 멈춰 서서 나를 다시 응시하더니 앞뒤 깃 고르기를 새삼스럽게 한다. 뭔가 결행에 옮길 시점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 그는 헌걸찬 소리를 두 번 내지르더니 뒷날개를 힘차게 푸드덕거린다. 나는 머리를 깊이 숙인다: 저를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br>  왕국 경계를 선언하고 왕비가 알현할 시각임을 선포한(時報) 뒤 제왕은 다시 처음 도도한 자세로 돌아가 고요에 깃든다. 나는 바람 흐르듯 숲에서 나온다. 소리만이라도 듣겠다는 소원 넘어 그 자태까지 보여주신 장엄 융해, queer 합일로 ‘제대로 노누면 반드시 아우라진다’는 가르침이 일단락된다. 몸살 맘살 남은 기운이 역력해도 나는 바야흐로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현실 삶, 그 구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아직 잘 모른다. 남은 병기를 잘 다독거리며 더 엄밀·섬밀한 삶으로 나아간다. 다시 니마 고마다.<br><br> ]]></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queer 공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link><pubDate>Thu, 18 Jun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guid><description><![CDATA[<br>  &nbsp;  칠고습지(七顧濕地)랄까. 무슨 기대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궁금해서 방이 습지로 7번째 향한다. 매번 무작위로 바뀌는 queer 세계를 힘닿는 대로 섬세하게 탐색하여, 멀찌막이나마 참여할 기회에 가 닿으려 해서다. 관찰 덱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어 갑갑하긴 하지만 작은 생명들을 보호하려면 불가피한 제한이기도 할 테니 거기서 멈춘다.   &nbsp;  꽃창포, 개구리밥, 노랑어리연, 수련, 갈대들이 그때그때 변하는 모습을 기억과 감탄에 버무려 담아둔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검보라빛 오디를 따거나 주워서 먹는다. 이드거니 서서 논병아리가 한가로이 깃 고르는 풍경에 잠겨 든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우거진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 선다. 물까치 가족이 사부작사부작 가지를 넘나든다.<br>  &nbsp;  영민하고 경계심 많은 물까치가 내 존재를 모를 리 없음에도 사뭇 고요하다. 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은 물까치가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어느 순간 그가 “객~깨깨깨깨깩!” 말을 건넨다. 이는 지난번 길게 되풀이했던 경계에 찬 질문 투, “크르르르르~!?”와 다르다. 경계를 푼 음조다. 나도 따라 한다. “객~깨깨깨깨깩!”   &nbsp;  잠시 뒤 이곳저곳에서 여러 물까치가 “객~깨깨깨깨깩!”을 마치 돌림노래처럼 불러댄다. 자유로움과 안전감이 전해진다. queer 생명으로 낭자한 이 습지에서 우리는 queer 공명으로 삶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조절한다. 나를 품은 생명 파동이 습지 숲에 물결쳐 간다. 우리는 숲에서 나와 제국의 개들이 왜자기는 올림픽공원역을 가로지른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8/pimg_781606115515729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