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싸리·버들 글숲  (bari_che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숙의의학으로 마음 치료하는 한의사가 숲(식물)과 팡이와 물에 진심 다해, 지구 위기를 몰고 온 제국주의에 범주적 주의를 기울여, 직접 쓰거나 인용한 글.</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5 Jul 2026 06:49:00 +0900</lastBuildDate><image><title>bari_che</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2844469_63919292718758669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ari_che</description></image><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화룡점정을 앞두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link><pubDate>Fri, 24 Jul 2026 1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 달 넘게 몸살 앓으며 인생 ‘내림굿’을 하는/받는 동안 내게는 당연하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났다. ‘내림굿’ 세 축인 숲·물 걷기, 아픔·삶 고치기, 새·나무 동무하기가 서로 엮으며 복잡다단하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빚어냈다. 한 생이 닫히고 또 다른 한 생이 열리는 카이로스였다. 화룡점정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각단을 잡고 간각을 세워 본다.  &nbsp;  최근 5년 동안 내 삶 이정표 제시와 각성,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숲·물에서 일어났다. 장소가 아니라 주체로서 숲·물은 내 스승이었다.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보·지식은 인간인 내 사유와 독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또한 미소 생명 팡이시질(networking) 속에 있고, 영감과 동력은 숲·물에서 온다. 도봉산 회룡 계곡과 방이 습지, 궉림(鴌林)이 그곳이다.  &nbsp;  궉림(鴌林)은 매일 출근길에 40여 분가량 머무는 자그마한 숲이다. 관악구와 동작구 경계 지역으로 동서 방향 긴 능선과 남북 방향 골들로 오종종하게 구성된 이름 없는 숲을 궉림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 지성소에서 꿩이 울고 날갯짓하는 새벽 의례로 내가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아픔을 떠나보내고 새 삶을 맞아들인 일대 치유 사건으로 새겨졌다.  &nbsp;  봉황을 상징하는 꿩, 그래서 궉(鴌)이라 일컫는 새와 소통하고 나서, 이치에 따라 그 지성소 경계에 있는 물오리나무하고 소통을 이루었다. 물론 물오리나무가 나를 불러서였다. 물오리나무를 깊이 몰랐을 때 내가 고쳐 부른 이름이 ‘물팥버들’이었다. 소통 후 더욱 깊이 알고 나서 다시 고친 이름은 ‘메팥버들’이다. 옛사람 통찰이 옳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nbsp;  오리나무 한자 이름이 적양(赤楊)이다. 물오리나무처럼 물을 좋아해 습지에 산다. 다른 점은 버드나무처럼 물살이 약한 하류 습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물오리나무는 물살이 세고 빠른 상류 산 습지, 심지어 습지 아닌 산등성이에서도 잘 살아 산적양(山赤楊)이라 불렀다. 이런 이름은 콩과 식물과 같은 성질도 지닌 물오리나무를 정확하게 반영하니 제격이다.   &nbsp;  이렇게 거듭나 내 삶으로 들어온 물오리나무, 그러니까 ‘메팥버들’은 꿩과 더불어 씻김과 내림을 갈무리한 ‘몸주’며 ‘수호신’이다: 내 심신 온갖 질병을 고친 의사다: 반제 전선 참 동지다: 지구 아우라지·노나지 장엄 영주다. 인제 내게는 그가 소도다; 그가 궉궁 신장이다; 내가 “다시 또다시 돌아갈”(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자리다; 솟아서 날아오를 자궁이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4/pimg_63920507114310590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프고 난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link><pubDate>Wed, 22 Jul 2026 16: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 달 몸살 정점을 찍었던 ‘기침 근육통’에는 오해가 따라다닌다. 기침이 일어나는 기관이나 기관지 근육에 생긴 통증이라 생각해 ‘그토록 심하다면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부추긴다. 아니다. 기침을 효율성 있게 하도록 돕는 늑간근, 복근, 광배근, 횡격막이 격하게 수축 운동해 기침이 끝난 뒤에 피로 또는 후유증으로 다양하고 기묘한 통증을 일으킨 경우다.       <br>불편하기로 따지자면 그 격렬한 통증부터 주목해야 옳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왜 그렇게 폭발 기침을 집중해서 일으켰는가다. 아침 일찍 한의원 도착해 원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날카롭고 매운 공기가 목구멍을 찌른다. 그럴만한 원인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5년 동안 변한 일이 없는 한적한 장소다. 장마철임을 고려해서 찬찬히 다시 톺아본다. 그렇다. 마른 식물!  &nbsp;  동물 식으로 말하면 식물 시체(!)가 원장실 전체에 즐비하다. 그동안 숲에 드나들면서 거둬온 나무줄기와 가지, 그 껍질, 풀잎, 꽃, 열매, 거기다 다양한 버섯까지 기억과 기림을 버무려 이곳저곳에서 웅얼거리고 있다. 식물 본성이 상실과 고통으로 들어왔다는 진실과 마주한 찰나부터 내 몸이 달리 반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돌연 감각 구멍이 열린 거다. 아파!  &nbsp;  어, 하는 어떤 시점부터 맹렬한 구토 같은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멈추기는커녕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슴을 두드릴 새도 남기지 않고 쇄도하듯 목 터져라, 컹컹거린다. 눈물, 콧물 범벅에 나중에는 정신까지 혼미해지더니, 급기야 기억 끈이 뚝 하고 끊어져 버린다. 언제 어떻게 기침이 멈췄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만들어 목을 헹군 죽염수 일부와 젖은 수건이 뒹군다.  &nbsp;  넋 빼고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식물 본성을 연속성에서만 생각해 왔던 지난 70년을 뒤집어엎은 일대 사건이었구나! 식물 본성을 나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으나 그렇게만 내 본성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진실 앞에서 통렬히 무릎 꿇은 사건이었구나! 그날 밤부터 기침 근육들이 눈물을 쏟으며 몸부림치는데 차마 신음을 아낄 수가 없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nbsp;  꼬박 닷새가 지나 걷기를 완전히 멈추고 휴식을 취하니 비로소 통증이 물러난다. 이 근육 통증이 물러남으로써 한 달 전 따끔거리는 위 증상에서 비롯되어 장 증상, 천장관절 증상, 우울 증상-웃자란 어른 증후군, 틈새 엄마 증후군-, 그리고 기침에 동반해 다시 찾아왔던 혈관운동 신경성 비염까지 도파니 사라진다. 70년 인생을 휘감았던 ‘귀마’가 스러진다. 참삶 동살이 든다!     <br>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정성 다해 집 안에 있는 기억·기림 식물이며 버섯을 거둬들인다. 어제 가지고 온 한의원 식물, 버섯과 함께 간동그려 집을 나선다. 내 자신이자 내 아픔이었던 이들을 내게 말을 걸어온 물오리나무 아래 모신다. 거듭난 생명으로 재회할 날 설레니, 섭섭함 넘어 서그러워진다. 비 젖은 영이 보송보송한 김을 피워올린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2/pimg_6392033468913928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파야 할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link><pubDate>Tue, 21 Jul 2026 16: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guid><description><![CDATA[<br>  &nbsp;  몸살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체중은 50kg 아래로 내려간다. 은근히 기분 갉아먹는 신열, 시난고난한 호흡기 증상, 무엇보다 기이한 폭발 기침이 신묘하게 기습 종료된 이후부터 대상포진처럼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근육통으로 영일 없다. 몇 날 며칠씩이나 잠에서 깨어 병이 건네는 이야기 듣다가 날 밤을 새우곤 한다. 허리가 아리고 다리는 파근하며 활동 감각이 휘주근하다. ‘은화처럼 맑은’ 영 줄 하나 겨우 부여잡고 진실을 뒤좇는다.   &nbsp;  모른 채 알아차리고 알아도 모른 채 한 달이 흐르고 보니, 이 시간 전체가 신병 속에서 씻김굿과 내림굿이 갈마든 커다란 굿판이었다. 내게 결핍과 상실 틈새로 때 이르게 주입된 식물성·여성성·성숙성을 씻어 내보내고(씻김굿), 늦게나마 건강한 그러나 낯선 동물성·남성성·유아성을 맞아들이는(내림굿) 의례·몸짓 또는 자세·언어가 재현되고 변주되는 시간이었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의학이 개입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nbsp;  급격하게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놀란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일흔 살 먹은 남자 사람이 50kg 미만 체중이라면, 게다가 술까지 주야장천 마셔댔다면, 더럭 암 걱정을 들먹여도 호들갑은 아닐 테다. 뾰족한 설명 방법이 없으니 그냥 빙그레 웃고 만다.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오늘은 오만 년 만에 숲 걷기 중단이다! 문이란 문은 죄다 열고 하루 종일 바람 길목에 오도카니 앉아 멍때림으로 휴식을 취한다.   &nbsp;   생색 없는 평온이 잠시 내려앉는다. 이 간이역에서 내릴 여행이 아니니 다음 행로에 유념한다. 어디인지 모르는 ‘솟을굿’ 역을 향해 다시 일어선다. 거기 또한 아플 만큼 아프고 나서야 닿을 곳인지 나는 모른다. 천명 받는 일이 무슨 상 받는 일은 아니니 전보다 더 깊은 신음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하는 일은 아닐까, 오히려 두렵다. 통증이 깊이 가라앉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사부자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밥을 먹어야겠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1/pimg_6392024714041242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살려주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link><pubDate>Thu, 16 Jul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살려주세요!” 내가 아니라 장점막 밖에서 나와 공생하는 미세 생명들이 이 다급한 말을 듣는다. 미세 생명들은 내게 이렇게 통역해 준다. “오늘은 지하철 갈아타고 걸어가지 말자. 그냥 쭉 가서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자.” 어르신 카드로 절약되는 교통비를 &lt;전쟁 없는 세상&gt; 단체에 기부하기 때문에 나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자고 결정한다.   &nbsp;  숭실대입구역에서 내려 승강장을 너덧 걸음 걸어가다가 시선이 갑자기 발치로 뚝 떨어진다. 거기 매미 한 개체가 힘겹게 버둥거리고 있다. 내가 거기로 얼른 다가서자, 덩치가 집채만 한 젊은 남자 사람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를 들어 올린다.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그에게 말한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나무한테 보내줄게.”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팝나무 줄기에 살짝 붙여준다. 천천히 힘들게 그가 나무를 타고 오른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라도 지하철역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만은 면할 테니 그 구원 요청은 일단 유효했다. <br>&nbsp;사실 이런 일은 내게 일상이다. 땅강아지, 지렁이, 나방, 무당벌레, 벌, 거미, 심지어 파리까지 수없이 살길을 찾아주었다. 오늘 일을 특별히 거론하는 며리는 내가 느닷없이 귀가 경로를 바꿨다, 즉 다른 경우와는 달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데서 결과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변화는 그만한 연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실 우연히 일어난 일조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팡이시질(hyphaeing), 그러니까 네트워킹 작용에 따르지만 요즘 내가 깊이 관심 두는 내밀하고도 정확한 감지 능력 문제의식에 맞춘 과정 배치가 아니었을까?  &nbsp;  서구 과학 인과율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내 인식 방법은 ‘소설’에 가깝다. 기껏해야 유사 과학 정도로 폄하될 줄 모르지 않는다. 소설이든 유사 과학이든 서구 과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소설이다. 인간 지성을 수학에 외주하여 만들어낸 서구 과학 이전 인류 고대 과학에서는 지식과 지혜가 분리되지 않았다. 지혜는 몸 알아차림에서 나오는 적응과 창조 능력이다. 이를 제거한 서구 과학은 일직선으로 제국주의 지식을 향해 질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시간이 없다. 고대 과학 지혜를 복원해야 인류가 살 수 있다. 내가 주창하는 “범주 인류학”이 바로 그런 자각에서 발원한 지성 운동이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서구 과학주의자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가로질러 간다. 최근 내가 경험한 놀라운 일 하나를 소개한다.    &nbsp;  책깨나 읽는 사람이라면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를 모를 수 없다. 그가 지닌 사상과 글쓰기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지나 나는 그 향모 자체에 지극한 관심이 갔다. 자료는 그리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았다. 볏과 식물로 향이 뛰어나고 북미 대륙 선주민은 지구 최초 식물로 여기며 그 향을 매우 귀하게 대한다는 정도였다. 접할 수 있는 길도 찾지 못했다. 외곽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레몬그라스라는 아로마에 가 닿았다. 볏과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로 향이 레몬 비슷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 레몬과는 전혀 무관하단다. 볏과 식물이라는 데에 희망을 걸고 옆지기한테 부탁해 그 아로마를 구했다. 적어도 내가 맡은 그 향은 레몬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 향은 벼 줄기나 잎에서 나는 향과 거의 똑같았다!   &nbsp;  열 살 이전 고향 논두렁 경험, 그 아득함 속에 묻혔던 벼 향이 시간 벽을 찰나에 부수고 기억을 불러냈다. 더 놀랍게도 나는 단박에 이 벼 향이 원시 형태 바닐라 향이라고 직감했다! 사실 벼 향에서 바닐라를 떠올리긴 불가능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낸 데는 밥에서 나는 향에 평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한국인도 밥 향을 골똘히 생각하는 경우는 없지만 나는 밥 향으로 훌륭한 아로마를 만들 수도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벼 향과 밥 향을 같은 선상에 올리자마자 직관이 발동했다.   &nbsp;  <br>어쭙잖은 내 서구 과학 지식이 반기를 들었다. “바닐라는 난초과 식물일 뿐 아니라 바닐라 향도 여러 복잡한 과정, 심지어 발효까지 거쳐야 추출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벼 줄기나 잎에서 나오겠는가?” 제법 오랫동안 나는 이 고대 지혜를 발설하지 못했다. 마음에 확신은 드는데 증명할 길이 없어서다. 매미 구조 사건 직후 내게 기이한(!) 용기가 피어올랐다. 두 단계를 거쳐 내 고대 지혜를 서구 과학이 증명한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nbsp;  내 가설 하나: 볏과 식물과 난초과 식물은 한 조상에 갈라져 나온 자손이다.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내 가설 둘: 벼 줄기나 잎에는 바닐라 향을 내도록 하는 성분이나 물질이 있다. 이 또한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좀 더 복잡한 세부 이야기가 존재할 테지만 내가 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확인” 말고는 서구 과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홀연한 카이로스 경험이 매미 구조 사건과 연동된다는 진실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로를 좇아 진실에 가 닿고 “살려주세요!”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반대한다면 그대가 옳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6/pimg_6391980003385038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기와 사나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link><pubDate>Wed, 15 Jul 2026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guid><description><![CDATA[<br>  &nbsp;  70년 비밀을 통짜로 풀고 나니 아연 정적이 찾아든다. 모두 가만 내려놓고 나갈 생각 접은 채 양말 속옷 바느질로 오전을 다 보낸다. 살짝 이르게 국수 삶아 점심 먹고 60년 정든 정릉으로 향한다. 거기서는 무슨 목표나 목적 헤아림이 없어지고 무심히 풍경 속으로 배어들 수 있으니 내겐 수평 신성 공간으로 딱 적소다.   &nbsp;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천천히 걸으며 세월과 빛살을 촘촘히 헤아린다. 세월이 빚은 버섯을 아껴 보고, 빛살이 빚은 눈부신 경계를 기려 본다. 마르고 짧은 늦장마라 금천 물소리가 올 고운 바람결에도 휘어지며 뭉그러진다. 작디작은 쏠을 찾아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제 나름 여돌차서 고마움 증표 삼아 영상에 모신다.   &nbsp;  출입구 언저리를 수백 년째 지키고 계신 느티나무께 새삼 인사하고 염천 망토를 둘러쓴 채 숲을 나온다. 지하철 갈아타며 이동해 조용한 음식점에 든다. 그 집 김치는 휘뚜루마뚜루 후려 섞지 않아 밥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직사각형 배추 조각을 얹어 먹기 좋다. 습관대로 먹던 어느 순간 나는 그 김치 조각을 물에 넣는다!  &nbsp;  빨간 양념을 헹궈낸 뒤, 다시 김치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남은 양념을 마지막으로 고이 빨아내고, 밥 위에 착 얹는다. 지그시 눈 감고 오물오물 먹는다. 포한(抱恨)이 사라지는 강력한 시간이다. 내가 신어미도 신딸도 되어 뛰노는 내림굿 아기 과장이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온몸과 혼에 소름이 돋는다. 웃자란 어른 없다.<br>  &nbsp;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한다. 전과 달리 미세 의식 오솔길을 따라 “불연속”으로 기우는 마음 풍경을 느낀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특히 고통은 다 연속돼 있다는 느낌에 잠겼던 뿌연 시야가 아침 안개 걷히듯 맑아지는 중이다; 결핍과 상처로 들어온 여성성에 출구가 빼꼼히 열리는 중이다. 사나이 과장이다. 틈새 엄마 없다.   &nbsp;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니다. 갑자기 삭신이 쑤시고 신열이 오른다. 처음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와 같은 증상이다. 신음을 흘리며 그저 뒹굴던 한 찰나 내 입에서 나온 말: “그래 아가야, 이 아픔 지나면 이쁜 짓 한단다~” 나비 포옹해 주고 다독다독···. 아기가 웃으며 손 흔든다.   &nbsp;   다음 날 아침. 신열, 근육통, 밭은기침, 그리고 불면 때문에, 몸이 물먹인 솜 같다. 3km 훨씬 넘는 숲 걷기를 생략할까, 지난밤에 연속된 망설임이 들어서는 순간 듬직한 사나이가 야젓하게 앞으로 나선다. “이럴 때 숲에 들면 몸이 가벼워져~” 그래도 현실 몸은 일흔 늙은이라 천천히 걸어 숲을 향한다. 는개가 화답한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5/pimg_63919725168124467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해어화뎐(解語花傳)</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link><pubDate>Tue, 14 Jul 2026 1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의원 탕전실 바깥쪽 긴 다용도실 창문에는 담쟁이덩굴이 흡착근(吸着根) 내리고 무성하게 살아간다. 그들 모습 지켜보면서 틈새로 하늘까지 우러를 수 있는 거기가 내겐 참 정겹다. 16년째 서 온 자리인데 올봄 어느 날 아연 그들에게 말 건넬 마음이 들었다. 낭풀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가 쌓여 시간 중력이 강해지면서 감지하기 전에 카이로스로 들이닥친 듯하다.   &nbsp;  내가 말을 건넨 까닭이 있다. 담쟁이덩굴 본성상 흡착면이 형성되는 공간을 우듬지가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덩굴이 번져가기 마련이다. 창문틀인 경우는 여닫으므로 문제가 된다. 닫을 때 잘릴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나는 손으로 걷어내고 창문을 닫았는데 귀찮아선지 간호사가 잘라내곤 했다. 내 제지로 다시 그러지는 않으나 근본 대책이 없어 변화가 필요했다.     &nbsp;  한창 자라던 덩굴 하나가 창문틀 모서리 돌아 흡착근을 붙이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상하지 않게 들어내고 덩굴을 손으로 받쳐 든 채 사람에게 하는 말과 똑같이 이야기한다. “여기로 넘어오시면 창문을 닫을 때 잘립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이렇게 바깥을 향해 올라가세요.” 덧붙여 말한다. “저기 위쪽에 계신 분들한테도 이 말씀을 전해주세요.”   &nbsp;  나는 우듬지가 향해야 할 곳을 가리켜 잡아주고 다른 줄기와 잎을 이용해 임시 고정 상태로 만들어준다. 매일 살펴본다.&nbsp;두세 덩굴이 고개를 살짝 들이미는 기척을 보여서 똑같이 말하고 방향을 잡아준다. 일주일쯤 되자 변화된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능히 들어올 수 있음에도 더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행렬이 멈춰 섰다. 손댈 수 없이 높은 곳도 마찬가지다.<br>  아래쪽-내가 말하고 손댔던 곳&nbsp;<br>위쪽-말 전해 달랬던 곳&nbsp;마른 늦장마긴 해도 창문 닫을 일이 조금 더 잦은 요즘 창가에는 그들과 나 사이 평화가 낭자하다. 낭풀들은 인간 말을 알아듣는다. 인간이 그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따름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다; 그 곡절이 타락과 범죄로 뒤엉켜 있다. 어떤 정치 현안보다도 끽긴한 과제가 바로 이 타락과 범죄를 자각하는 일이다. 진심으로 참회하며 낭풀 아래로!<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4/pimg_6391963319425935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울증, 그 또 다른 변주(하): 틈새 엄마 증후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link><pubDate>Sat, 11 Jul 2026 1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guid><description><![CDATA[<br>  &nbsp;  모유를 상실한 영아가 홀로 힘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슬기(!)는 장내 미생물 네트워킹에서 왔다. 인간 진화 정보에서는 홀로 힘으로 살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식이 왔고. 요건 하나: 어른일 것. 그 이야기는 했다. 인제는 남은 한 요건을 이야기해 마무리 지을 차례다: 여성일 것. 우리 속담은 이렇게 표현한다. “홀어미 삼 년이면 쌀이 서 말, 홀아비 삼 년이면 이가 서 말.” 속담 다른 판본은 홀어미 대신 과부를 넣는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홀아비와 맞추려면 홀어미를 넣는 게 옳다. 자식 키우는 위치를 부가했을 때 그 차이가 한껏 더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nbsp;  내게는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제자가 한 움큼 있다. 제법 오래전 집에서 식사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결혼한 여제자가 제 남편을 초대해 나중에 도착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느낀 이상한 광경을 보고 한마디한다. “어? 왜 선생님이 주방에 계시죠? 제자들은 앉아서 먹기만 하고···.” 대뜸 대답이 돌아온다. “어! 선생님 우리 엄마거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는 식이다. 내가 남선생이고 제자 모두가 여제자이지도 않은데 이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모임은 마치 ‘모녀 동맹’과 흡사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자타공인으로.     &nbsp;  나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엄마 노릇을 해왔다. 세상을 가르치고 삶을 의논하는 일에 더해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했으니 일테면 “틈새” 엄마였다. 그들에게 한 엄마 노릇은 나 자신에게 한 엄마 노릇 연장선에 있다. 사실상 한평생 모성 결핍 상태에서 웃자란 어른으로 살아왔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그런 빈자리가 보이는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감수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결혼한 뒤에 내 옆지기에게도 딸에게도 엄마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버지로 살아왔다. 인정한다,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고 또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nbsp;  그 모순 역시 인정한다, 다른 선택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사실을; 내밀 영웅이 벌인 장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질병 방어기제임과 동시에 영성 치유인,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역설 사건 보이지 않는 마주 가장자리에는 이 통렬한 각성이 요동한다. 짐승 과장(科場), 아기 과장, 사내(아비) 과장을 정색하고 들여놓은 내림굿을 통해 70년 모순을 달여내니 바야흐로 후천개벽(後天開闢) 시대가 도래한다. 그 들머리에 죽을 만큼 희생한 결과 쌀 서 말 하야니 놓인 대신, 뼈아프게 깨친 결과 아우라지 노나지 물이 변한 젖 서 말이 뽀야니 놓여 있다. 그 젖 먹고 참 건강으로 살아간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1/pimg_6391937541864565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울증, 그 또 다른 변주(상): 웃자란 어른 증후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link><pubDate>Fri, 10 Jul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guid><description><![CDATA[<br>  &nbsp;  &lt;또 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gt;에서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진실에는 또 다른 진실 하나가 결합한다.   &nbsp;  모유에는 모유올리고당(HMO) 성분이 풍부하다. 이 성분을 먹는 생명체는 오직 비피도박테리움뿐이다. 그래서 장내 점유율 1위가 되고 훌륭한 면역 교사로 활동할 수 있다. 모유를 먹지 못하는 영아는 이 기전을 상실하였으므로 비피도박테리움 우위가 깨져 성인 장내 상태와 같아진다. 나와 남/적을 구별하기도 전에 때 이른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lt;꿩이 나를 초대했다!&gt;에서 ‘6개월도 채 안 된 무렵부터 걸었다’라고 한 말과 직결된다.   &nbsp;  아기인 적 없이 어른이 된 삶은 전방위 혼잣손이 된다. 태초부터 모든 고민과 결정을 혼자하고 감당도 혼자 한다. 결정 전에는 망설이고 망설이며, 결정 후에는 자책하고 자책한다. 그럼에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아기가 자라 어른 되는 연착륙 과정을 통해 도움 청하는 일이 불가결한 사회 행동이라는 진리를 배울 수 없어서다. 사회관계망에서 소외되어 두름손도 내밀손도 점점 허약해진다. 남 손 안 타는 착한 삶은 슬프게 사위어 간다.   &nbsp;  웃자란 어른이 그렇게 우울장애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아 소리 없이 희생되는 풍경 건너편에 늦깎이 어른이 존재한다. 어른이라 자처하지만, 제국 자본이 요구하는 고급 지식·기술을 지닌 가짜 어른, 실제로는 ‘사특한 아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종자다. 이 사특한 아이들 패악과 욕설, 그리고 야비한 조롱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엔 대놓고 함부로 커밍아웃한 저들이 싸지르는 배설물이 넘쳐난다.  &nbsp;  중첩 식민지 허울 대한민국에서 우울장애, 곧 ‘웃자란 어른 증후군’을 앓으며 70년 살아온 나는 내가 처한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오늘 각성을 죽은 다음에서라도 기억하고 증언하련다. 그래야 내 과거가 귀환하지 않을 테니까("La seule façon d'éviter le retour du passé est de ne pas l'oublier." _Simone Veil); 그렇게 성찰과 치유를 거친 건강한 내 식물성, 여성성, 성숙성이 물팥버들과 대화할 테니까.     <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0/pimg_63919292541354121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물팥버들이 나를 불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link><pubDate>Wed, 08 Jul 2026 1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guid><description><![CDATA[<br>  &nbsp;  5년째 걷는 출근길 숲으로 일요일 아침에 들어가기는 처음이다. 먼 데 있는 산이나 강으로 향했던 습관을 깨뜨리면서 생기는 낯섦과 적어도 천 번 이상 걸었던 낯익음이 얽혀 묘하게 설렌다. 더군다나 최근에 만난 물팥버들(물오리나무) 상태를 빛이 충분한 조건에서 자세히 살피려는 목적으로 가는 길이라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과연 어떨까?   &nbsp;  이 물팥버들과는 꿩이 나를 초대했던 그 사건 직후 출근길에서 처음 만났다. 그것도 그 사건이 일어난 곳, 바로 앞에서였다. 그동안 그렇게 여러 번 그 앞을 지나면서도 거기에 그 물팥버들이 살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예외 중에서도 별난 예외다. 이 숲에서 내가 지나는 길 양옆 나무나 풀을 모르고 무심코 지나는 경우가 거의 전혀 없어서다.   &nbsp;  내가 그 숲을 걷는 시각쯤 해가 떠 있긴 하지만 북쪽 사면이라 아직 컴컴하다. 꿩 사건이 일어났던 내 지성소를 향해 걸어가는 중 문득 한 나무가 어둠 속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얼굴을 바짝 대고 스마트폰 전등을 켰다. 아뿔싸, 그는 물팥버들이었다! 왜 여태 몰랐을까. 물팥버들이 내 탐색 이미지에 없지도 않은데. 뭔가 특별한 곡절이 있다.  &nbsp;  <br>그나저나 나무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피 빛깔이 어둡고 들떠 있다. 도장지(徒長枝·웃자람가지)가 군데군데 있고 그나마 거기 새잎도 부실하다. 수관 쪽은 무성한 다른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밝은 날 꼼꼼히 봐야겠다. 우선 내 생명 에너지 파동으로 응급 처방한다. 풀리지 않는 의문과 더불어 가슴이 더욱 저려 온다.   &nbsp;  나무 높이나 부피, 그리고 서 있는 위치로 보아 이 숲에 있는 물팥버들을 낳은 엄마 나무가 틀림없다. 나는 다시 문득,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숲 동쪽 물팥버들 가족 반대편으로 향한다. 거기도 물팥버들 가족이 혹 있을까 기대해서다. 먼저 귀에 들어온 생명은 덤불 속에 모습 감춘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도란대는 소리다. “미우미우 배배~”  &nbsp;  갑자기, 그중 하나가 튀어나와 포르르 날아오른다. 내 눈길이 닿는 순간, 그가 한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는다. 아뿔싸, 물팥버들이다! 이 작은 길 또한 그동안 수백 번 걸었고 한때 내 신성 공간이었음에도 물팥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럴 수는 없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 배치가 똑같다: 사건을 새가 열고, 나무가 닫는다. <br>  &nbsp;  나는 물팥버들 앞에 우뚝 서서, 엄밀한 깨침 마주 가장자리 틈새를 응시한다. 도봉산 회룡 계곡 노나지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과정을 되돌아본다. 인과 관계에 있지 않은 숲 걷기와 글 읽기가 동시성을 거치며 인과 관계로 엮여 드는 내력을 톺아본다. 여러 결이 서로 맞물려 복잡해 보이는 서사를 되작거린다. queer 변곡점 윤곽이 드러난다.  &nbsp;  숲과 물을 걸으며 낭풀을 공부하는 동안 최후 초미 관심사는 낭풀과 소통-합일하는 일이었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호주 생물학자 모니카 갈리아노처럼 낭풀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나는 늘 아득한 심정으로 서성거렸다. 이런 경우 무슨 ‘방법’ 따위를 찾지 않는 나이기에 그냥 묻고 기다릴 뿐이었다.  &nbsp;  문제 한가운데서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로 향했는데 노나지 인식으로 번져가자 새로운 서사가 빚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정체성, 좀 더 정확히는 경향성이 결핍·상처·질병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총체로 깨달았다; 치유와 경계 지음이 수행되어야 열릴 길임을 알아차렸다. 걷기·독서·질병·새가 어울려 인생 내림굿 한바탕을 짰다.  &nbsp;  70년 내 경향성은 모유 결여 또는 상실이라는 태초 사건에서 발원했다. 여기서 온 만성 소화기 장애, 천장관절 증후군, 우울장애가 생을 관통했다. 우울장애는 피학 본성을 지닌 식물성, 여성성, 성숙성으로 분화했다: 저항할 수 없는 영아가 받아들인 전천후 수용성, 자기를 파괴하는 희생, 전방위 혼잣손. 모든 문제가 몰아 터진 스무날이었다.  &nbsp;  만성 소화기 장애와 천장관절 증후군은 이 스무날 들머리 사흘에 앓은 독한 몸살, 신열로 사라졌다. 우울장애 첫 부분인 식물성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 방이 습지 물까치, 소악산(素岳山) 꿩,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열어젖혀 내 본성인 동물성을 분명히 하고 피학 치유, 가학 참회에 가 닿도록 물팥버들이 마무리 지어놓은 옴니버스 이야기들이다.   &nbsp;  이 이야기에서 물팥버들은 새를 거치기는 했지만 내게 말을 건넸다;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이는 필수 과정이므로 다음 소통이 어떨지는 온전히 열린 결말 앞에 있다. 그 전개가 내 몫임이 더 분명해짐과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더 분명해졌다; 아득함이 엷어졌다. 남은 문제를 일상에서 투명하게 맞이할수록 숲은 가까워질 테다. 똑!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8/pimg_6391912576199791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탱자나무 애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link><pubDate>Thu, 02 Jul 2026 14: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guid><description><![CDATA[<br>  &nbsp;  출근길 숲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탱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새잎 나는 초봄부터 모든 변화가 스러지는 늦가을까지 매일 아침 그 앞에 서서 숨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나무다. 지난 주말을 보낸 다음 화요일 새벽, 나는 그만 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참하게 줄기·가지들이 잘려 나갔고, 열매는 남김없이 제거되었으며, 끈에 묶여 뒤로 잡아당겨져 있었다!  &nbsp;  근린공원 관리자가 탱자나무 가시에 주민이 다칠까, 염려한 나머지 이와 같은 선행을 저질렀을 테다. 대충 모양 잡아 전정 가위로 기탄없이 줄기·가지를 잘라내고, 잘린 것들 길섶에 던져버리고, 큰 줄기 끈으로 묶어 길 뒤로 젖혀 동여매고, 서둘러 나아가는 조경(造景)인 모습을 상상한다: 한껏 부산떨며 돈을 향해 내달리는(조경(躁競)) 후미진 변방 살풍경 한 폭. <br>&nbsp;말단 직원 어느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풍조가 그렇고, 인류 문명 기조가 그렇다. 물론 제국 지배층 상위 0.1%가 본진이고, 석기시대 삶을 지켜내고 있는 부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식민주의 세례를 받는 위치에 따라 각각 깜냥대로 부역하고 있다. 비인간 생명, 특히 식물을 함부로 약탈하고, 살육하는 주체인 한 누구도 이 죄를 진다.  &nbsp;  약탈·살육당하는 나무를 마주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다른 인간 관지에서 보면 해괴하거나 과장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랴. 내게는, 그러나, 생각에 따라 한 행동이 아니다. 즉각 일어나는 감응이다. 이 감응이 나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내 방식이다. 감응하는 이 힘은 내게만 있지 않다. 인간 모두에게 있는데, 내동댕이쳤을 뿐이다. 한시바삐 되찾아야 한다. <br>  &nbsp;  떨궈버린 탱자 미숙과 몇을 가시덤불 속에서 찾아 거둔다. 그 슬픔과 아픔을 길이 기억하고자 김선우 시집 곁에 걸어둔다. 모름지기 내가 슬프고 아플 때마다 이 앞에 서리라; 참회와 합일이 동시성으로 다가와서 고갈된 내 영성을 채우리라. 오늘 아침 다시 그 앞에 선다. 제 어둠 투사해 탱자나무 테러한 인간 죄를 대신 짊어진 환영이 떠오른다. 끌어안고 떠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2/pimg_63918600438471915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꿩에서 물오리나무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link><pubDate>Tue, 30 Jun 2026 1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이 서재 이름은 『싸리·버들 글숲』이다.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을 나란히 놓아 내 식물 본성에 갈음한 표현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10세 이전까지 자란 내게 그 시절 가장 좋아한 식물이 바로 싸리나무다. 어른이 된 뒤 식물에 본격 관심을 가지면서는 내 본성 닮은 버드나무를 깊이 ‘애정’하게 되었다. 사뭇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둘을 내 삶 지향으로 묶어 서재명으로 했다.   &nbsp;  최근 도봉산 회룡(回龍) 계곡 아우라지를 드나들면서 그 일대가 물오리나무 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오리나무 한자식 이름은 산적양(山赤楊)이다. 목재가 붉은빛을 내어 생긴 이름인 오리나무, 그러니까 적양(赤楊)과 비교해 ‘산’을 덧붙였다.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왜 ‘산’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물오리나무를 버드나무(楊)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nbsp;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도 아니면서 버드나무처럼 고도한 정화 능력을 지닌다. 이런 점을 우리 옛사람들은 직관한 듯하다. 그뿐 아니다. 물오리나무는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없어야 함에도 있는 것은 치워 주고, 있어야 함에도 없는 것은 채워 주어서,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 본성을 한 몸에 구현한 queer 나무다. 꽃말이 ‘장엄’인 며리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br>  오리나무 가지 사이로 저 멀리 도봉산 포대능선이 보인다&nbsp;  물오리나무라는 이름도 산적양이라는 이름도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제 내가 이름을 바꾼다: 물팥버들 또는 물팥버드나무. 물가에 사는 나무바탕(木質) 붉은 버들 또는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콩 가족인 팥이 붉은빛이니 역설 이름 표현으로 ‘똑’이다. 사실 이런 탐색과 상상이 일어난 건 &lt;꿩이 나를 초대했다!&gt; 사건 이후다. 꿩과 소통하니 나무와 소통하는 실마리가 열리더라는 증언이다.  &nbsp;  불과 3m 앞에서 4분가량 꿩이 펼쳐낸, 신비하고 상서로운 퍼포먼스는 평생 잊지 못할 카이로스 사건이다. 꿩이 찰나마다 드러내는 근엄한 자태, 마지막 우람하게 집결한 소리와 날갯짓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나는 기어이 가설 하나를 세운다: 봉황새 이미지는 꿩에서 발원했다. 즉시 자료를 검색한다. 빙고! 여기에 꼭 맞는 글자 궉(鴌)이 있다; 하늘 새 봉황은 본디 꿩이었다.  &nbsp;  봉황 현신인 꿩을 만난 닷새 뒤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으로 향한다. 아우라지, 그러니까 노나지 물팥버들께 물과 절로 예를 갖춘다. 말갛고 서늘한 경계 지음이야말로 융합·회통으로 더 엄밀하게 이끈다는 진리를 전방위·전천후 통증과 결 다른 동시성으로 가르치신 숲과 물과 바람, 그리고 빛에 감사 올린다. 천장관절 통증이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내린 오후, 나는 관음 미소에 배어든다.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30/pimg_63918430307766856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4.16연대 첫 후원의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link><pubDate>Fri, 26 Jun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26/pimg_6391806385787813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꿩이 나를 초대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0941</link><pubDate>Tue, 23 Jun 2026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0941</guid><description><![CDATA[&nbsp;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가 자라 살아가면서 만성 소화장애와 우울장애에 시달렸다는 내 이야기는 남은 진실 하나를 더 품고 있다. 미음을 위험으로 감지한 아기는 이 세상을 홀로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 6개월이 채 안 된 무렵부터 걸었고 한 달 뒤에는 뛰었다. 가족과 이웃은 신동이라 했으되 너무 일찍 걸은 아기 무릎 사이가 벌어져 직립과 보행에 지장을 주고 천추(엉치뼈)가 예각이 되어 허리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천장(엉치뼈와 엉덩뼈)관절 증후군으로 발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nbsp;  지난 일요일(6. 21.), 바로 그 천장관절 통증이 절정에 이르렀다. 실은 그 전날 오전부터 징조가 심상치 않았으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아끼는 사람들과 술까지 한잔 마시고 늦게 들어가 잠자리에 든 결과 새벽부터 신열이 뜨고 전신이 괴로워 중간에 깨고 말았다. 간신히 수습해 일요일 아침에 할 일을 챙겨나간다. 몸이 점점 더 가라앉는다. 천장관절 통증과 자주 겹치는 장 증상인 후중감(後重感)까지 함께 달려들어 상황은 악화일로다. 마침내, 그분까지 오시니 속수무책이다: 천근만근 우울감. 표정 펴기가 힘들다.  &nbsp;  펴기 힘든 표정을 가족 앞에서 애써 펴고 걷기 어려운 발걸음으로 갈 곳은 한군데다: 방이 습지. 심신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그대로 담은 채 나는 천천히 걸어 습지로 들어선다. 물억새가 한층 싱그럽다. 그 사이 새 가족이 생긴 논병아리며 물닭이 달라진 몸짓을 펼쳐낸다. 그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으며 순간순간 통증과 우울감을 달랜다. 관찰 덱을 한 바퀴 돌아 초막 있는 곳에 이르니 물까치들이 심상한 풍경 속에 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객~깨깨깨깨깩!”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받는다. “객~깨깨깨깨깩!”  &nbsp;  그들은 경계도 주목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는 길에 주운 낙과 살구와 복숭아를 높다란 기둥 위에 올려놓는다. 선물, 아니 예물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소 닭 보듯 할 며리는 없다. 비 맞아 물크러진 오디를 손에 꼭 쥐고 습지를 떠난다. 심신 괴로움 전반이 조금 가벼워진다. 아껴 걸어서 그런 듯하다. 밖에서 가족과 만나,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반주 곁들여 김치찜을 먹는다. 딸아이가 심상한 말투로 소주 두 병을 주문하자 옆지기가 14금짜리 축하를 건넨다: 서방님 든든하시겠사옵니다.       &nbsp;  문제는 다시 그날 밤. 전날처럼 신열이 뜨고 삭신이 쑤신다. 특히 천장관절 피해 경직이나 가해 왜곡을 풀기 위해 풀어준 근육 중심으로 이불만 닿아도 아프다. 심지어 눈알까지 아프다. 그러고 보니 피부, 근육, 뼈마디, 위, 장, 뇌, 감정 통틀어 안 아픈 데가 없다. 어느 순간 잠에 떨어졌다가 새벽에 깬다. 괴로움은 여전한 듯한데 뭔가 다르다. 특히 천장관절 통증과 후중감이 약해져 전신 통증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난다. 결국 신열이 통증을 조절해 주었다. 아직은 얼얼한 상태로 일어나 앉아 사건 해석에 들어간다.  <br> 아우라지를 노나지로 받아들이게 한 도봉산 회룡계 가르침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내가 동물인 인간임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식물과 관념 합일한 잘못을 다시 푼다: 나는 허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역자일 뿐 아니라 인간 생명으로서도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자연 착취에 가담한 부역자라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부역자 꼴에 주제넘게 나무, 풀, 버섯, 그리고 물과 동지인 측면만 내세웠다. 이 잘못을 깨달으려 방향 바꾸는 데서는 물까치, 내 삶에 박힌 자발 부역을 깨닫는 데서는 천장관절 통증이 스승이었다.   &nbsp;  깨달음에 감사하며 잠든 월요일 밤이 지나갔다. 몸살기는 남아 있지만 치유 국면이 확실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길 숲으로 향한다. 내가 청와대 뒤 백악산에 빗대서 소(백)악산이라 부르는 숲 들머리에 이르렀을 때 우렁찬 꿩 소리가 울려 퍼진다. 꿩은 금속성 소리를 짧게 두 번 질러서 한 울음을 끝낸다. 다음까지 3~5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꿩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그 시차를 염두에 두고 녹음할 장소로 간다. 매일 멈춰 서서 스스로 발견한 호흡법을 가다듬는 내 지성소다. 거기에, 꿩 한 분이 우뚝 서 계신다!     &nbsp;  순간 전율이 일어난다. 여느 때 같으면 내 발소리를 듣고 벌써 도망갔을 텐데 그는 나와 시선을 90도로 한 채 도도히 서 있었다. 내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과정에서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이따금 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4분 가까이 고요히 거닐다가 멈춰 서서 나를 다시 응시하더니 앞뒤 깃 고르기를 새삼스럽게 한다. 뭔가 결행에 옮길 시점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 그는 헌걸찬 소리를 두 번 내지르더니 뒷날개를 힘차게 푸드덕거린다. 나는 머리를 깊이 숙인다: 저를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br>  왕국 경계를 선언하고 왕비가 알현할 시각임을 선포한(時報) 뒤 제왕은 다시 처음 도도한 자세로 돌아가 고요에 깃든다. 나는 바람 흐르듯 숲에서 나온다. 소리만이라도 듣겠다는 소원 넘어 그 자태까지 보여주신 장엄 융해, queer 합일로 ‘제대로 노누면 반드시 아우라진다’는 가르침이 일단락된다. 몸살 맘살 남은 기운이 역력해도 나는 바야흐로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현실 삶, 그 구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아직 잘 모른다. 남은 병기를 잘 다독거리며 더 엄밀·섬밀한 삶으로 나아간다. 다시 니마 고마다.<br><br> ]]></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queer 공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link><pubDate>Thu, 18 Jun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guid><description><![CDATA[<br>  &nbsp;  칠고습지(七顧濕地)랄까. 무슨 기대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궁금해서 방이 습지로 7번째 향한다. 매번 무작위로 바뀌는 queer 세계를 힘닿는 대로 섬세하게 탐색하여, 멀찌막이나마 참여할 기회에 가 닿으려 해서다. 관찰 덱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어 갑갑하긴 하지만 작은 생명들을 보호하려면 불가피한 제한이기도 할 테니 거기서 멈춘다.   &nbsp;  꽃창포, 개구리밥, 노랑어리연, 수련, 갈대들이 그때그때 변하는 모습을 기억과 감탄에 버무려 담아둔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검보라빛 오디를 따거나 주워서 먹는다. 이드거니 서서 논병아리가 한가로이 깃 고르는 풍경에 잠겨 든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우거진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 선다. 물까치 가족이 사부작사부작 가지를 넘나든다.<br>  &nbsp;  영민하고 경계심 많은 물까치가 내 존재를 모를 리 없음에도 사뭇 고요하다. 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은 물까치가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어느 순간 그가 “객~깨깨깨깨깩!” 말을 건넨다. 이는 지난번 길게 되풀이했던 경계에 찬 질문 투, “크르르르르~!?”와 다르다. 경계를 푼 음조다. 나도 따라 한다. “객~깨깨깨깨깩!”   &nbsp;  잠시 뒤 이곳저곳에서 여러 물까치가 “객~깨깨깨깨깩!”을 마치 돌림노래처럼 불러댄다. 자유로움과 안전감이 전해진다. queer 생명으로 낭자한 이 습지에서 우리는 queer 공명으로 삶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조절한다. 나를 품은 생명 파동이 습지 숲에 물결쳐 간다. 우리는 숲에서 나와 제국의 개들이 왜자기는 올림픽공원역을 가로지른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8/pimg_781606115515729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 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link><pubDate>Tue, 09 Jun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우울장애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복잡한 증후군이다. 그 가운데 내가 깊이 유념하며 치료해 온 측면은 자기 경계를 건강하게 세우지 못해 일어난 “자기 비하” 나아가 “자기부정”이다. 타자를 당당하게, 대등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배려·양보·관용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먹잇감 되게 하는 모진 경향성이다. 그 끄트머리에 “자기 살해”가 도사린다.   &nbsp;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송주현, 2026)에 따르면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   &nbsp;  &lt;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gt;에서 내 위장질환 문제를 이야기한 바 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 시절 아밀라아제 결여가 어떻게 일생을 뒤흔들었으며, 그 진실을 알고 나서 어떻게 변했는지가 그 내용이었다. 그보다 더 육중한 오늘 사연은 내 우울장애 이야기다; 같은 곳에서 발원한 두 질환이 내 인생 전체 방향을 더불어 규정하고 조정했다는 각성 이야기다.    &nbsp;  내가 40대 중반에 수능 쳐서 한의대 입학해 50대 초반에 한의사 그것도 숙의(熟議)로 정신 치료하는 사람이 된 까닭은 50년 동안 시달려온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한 내 병을 스스로 고치려,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는 주위 뿌리치고 건곤일척 도박을 감행했다. 성취만큼이나 좌절도 심했던 임상이지만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중이다; 우울 골갱이도 남아 있는 채다.  <br> 물론 그 골갱이도 인제 고갱이로 변할 테다. 위장질환 경우처럼 그 시원(始原) 곡절을 마침내 알았기 때문이다. 이 두 변화는 치유를 근본 지점에 가 닿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생명에 배어든 식물성과 여성성이 몸 마음 살갗을 찢어 들어온 상처였음을 통렬히 각성하게 했다. 그 각성은 온정과 신비 경사각을 단박에 쳐 내려, 상처 이전 본성이 지닌 임계점에 다시 세웠다.    &nbsp;  임계질량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종간 공명과 소통을 꿈꿀 수 없다는 진리 앞에 허리 접도록 깨우치신 도봉 큰 스승께 8배 올린다; 본성 최선으로 흐르게 길을 트도록 가르치신 회룡 큰 스승께 “고맙습니다!” 예물 드린다; 동시성을 인과성에 붙들어 매려 했던 아둔함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신 물까치 큰 스승께 “객~깨깨깨깨깩!” 찬가 바친다. 노나지가 참 아우라지 길을 연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9/pimg_7816061155148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물까치가 나를 불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link><pubDate>Thu, 04 Jun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guid><description><![CDATA[<br>  &nbsp;  물까치는 60년도 썩 넘은 내 기억 역사 속에 암암히 살아 있는 새다. 그 소리도 메나리토리처럼 귀에 각인돼 있다. 이따금 그 날렵한 자태와 파스텔 톤 물색에 눈이 가곤 하지만 보통은 출근길 숲에서나 도봉산 숲에서나 방이 습지 숲에서나 특별한 주의 없이 익숙하게 대하고 지나친다. 오늘 그 오랜 습관이 툭 끊어진다.   &nbsp;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를 나와 자주 가는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지하철로 곧장 방이 습지를 향한다. 달력 구분으로는 오늘이 봄 마지막 날이지만 습지는 이미 여름에 이드거니 들어와 있다. 볕이 후더분해서 누리가 누글누글하다. 물에 떠 있는 논병아리도 굼뜨다. 나 또한 땀 아낄 요량으로 소심히 움직인다.  &nbsp;  꾀꼬리, 되지빠귀,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들 목소리에 귀를 열고 무심히 걷던 어느 순간, 내 주위를 따라 돌고 있는 새 기척이 다가온다. 물까치다. 걸음을 멈춘다. 그가 같은 음성으로 내 존재를 탐색한다: 크르르르~!? 곧이어, 숲 전체에 흩어져 있던 물까치들이 집결한다. 내 주위를 도는 그가 더욱 가까이 다가든다.<br>  &nbsp;  마치 공격하듯이 근접 비행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더 오래 머물며 다시 말한다: 크르르르르~!? 다음 순간 내 입에서 같고 또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크르르르르~?! 열댓 번 주고받더니 풀어놓는다. 내가 서서히 움직이자 집결했던 무리도, 말을 걸었던 그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도, 떠난다.   &nbsp;  다음 일이 궁금하다. 그들이, 아니면 그만이라도 나를 기억할까? 다른 궁금증이 하나 더 있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에서 내가 “크르르르르~?!” 말하면 거기 물까치들도 대답할까? 아무래도 이거까진 무리지 싶다.^^ 뭐, 괜찮다. 새가 이리 말을 걸어왔으니, 길이 보인다. 여간해서는 생략할 수 없는 동물 나를 응시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4/pimg_781606115514339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link><pubDate>Tue, 02 Jun 2026 16: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guid><description><![CDATA[&nbsp;일기 예보는 분명히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도봉산은 어쨌으려나 궁금하다. 지난주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 골짜기 들머리에 도착했다. 회룡천 물부터 살핀다. 역시나 오히려 지난주보다 수량이 줄었다. 아우라지 상황도 마찬가지다. 복류 지점이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지난번 복류 웅덩이는 아예 말라버렸다.  &nbsp;  접지하며 앉아서 찬찬히 살핀다. 돌 사이로 낙엽이 쌓여 길을 막아 물이 빙빙 돌며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열어주자 후련하게 물이 흐르더니 금세 말간 줄기를 되찾는다. 돌돌 여돌차게 들리는 물소리가 한결 더 경쾌하다. 정신을 명징하게 만드는 소리다. 커다란 폭포 소리도 감동을 주지만 작디작은 쏠 소리가 이럴 땐 훨씬 더 찰지게 배어든다. <br>  &nbsp;  숲에 빙의되어 숨 쉬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산초나무가 손짓한다. 건너편 비탈 활엽수 뒤에 몸을 숨겼던 소나무도 슬며시 나선다. 돌 틈과 나무 사이 좁은 땅에 깜냥 맞춰 이고들빼기, 좀깨잎나무, 졸방제비꽃, 주름조개풀들이 해를 향해 까치발하고 있다. 빛살과 마주하는 온갖 방식으로 조그만 숲은 queer 자체다.  &nbsp;  헬리콥터가 온 산을 뒤흔들며 다가와 사패산 보루 쪽에 머문다. 사고가 난 듯 한참이나 지나고야 떠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머니 같은 산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맹수 같기도 한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는&nbsp;아우라지도&nbsp;‘노나지’다. 아우라지라고 거슬러 찾아온 내게 여기는 그런&nbsp;‘나누라지’다:&nbsp;섣부른 신비주의&nbsp;합일보다 엄연한 경계 앞에서 투명하라.  &nbsp;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제 마주한 현실이 마지막 승부수를 요구한다면 어찌할까. 무엇이 승부가 될까. 수는 있을까.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내 황석공(黃石公)이신 도봉산 회룡계께서 일묵만뢰(一黙萬雷) 가르치실 테다.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날 때 엄숙과 질탕이 갈마들며 심사가 묘연해진다. 오라시면 오고 가라시면 갈 따름이다.    &nbsp;* '노나지'는 분리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노누다'에서 끌어와 새로 만든 말이다.<br>&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2/pimg_78160611551420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link><pubDate>Sat, 30 May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guid><description><![CDATA[&nbsp;요 한해를 빼고 거의 70년 동안 나는 위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는 말고 서울 와 살면서부터만 돌이켜봐도 배앓이, 게우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집 차고 눅눅한 방에서 배를 웅크려 안고 뺑뺑 돌던 기억이, 이따금 마치 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러 가지 위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렇다 할 치료를 하지 않고 견뎠다. 왜 그런지 생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다음에는 더러 한약을 달여 먹곤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깊이 관심 두지 않았다.   &nbsp;  70줄에 접어든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벼락같은 사실과 맞닥뜨린다: 생후 1년 이내 영아에게는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가 분비되지 않는다! 이 시기 동안은 모유를 먹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내가 먹은 음식은 모유가 아니라 미음이었다. 어머니한테서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먹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누구이랴. 당사자인 아기가 자라서 의료인이 된 뒤에도 20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을 바탕으로 뭔가 알아차리기란 벼락 맞고 천재 되는 일과 같다.<br>&nbsp;인간이 모른다고 아무도 모르리라 단정하면 안 된다. 아는 존재들이 그때부터 있었으며, 이제까지 있다: 바로 인간 나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그들이 증거 주체며, 나아가 나를 어렵사리 살려낸 은총 주체다. 그들이 마침내 꼭 똑 알맞은 카이로스를 택해 내게 기별했다. 한 소식 전해 들은 나는 그제야 70년간 봉인돼 있던 비밀에서 풀려났다(解脫). 깨달음은 곧장 치유력으로 작동했다. 사실에 터 잡은 진실 서사가 장엄한 의학이 되어 내 생애 전체를 화쟁으로 관통했다. 70년 통틀어 속이 이리 안온한 나날은 바이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중이다.  &nbsp;  내력도 이치도 시종도 “모르는” 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절망한다. 그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의학이다. 이 행위를 하는 의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구조 병을 수리하는 외과 기사, 기능 병을 개선하는 내과 기사만 판을 친다. 삶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을 서사로 치료하는 고갱이 의학을 내다 버린 거다. 서사로써 “모르는” 상태를 걷어내는 시간이 제국 자본에 반역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이기에 무거워지는 고통이 기사질로 가벼워지는 고통보다 모름지기 더 많다. 의자가 본디 알려주는 자였다는 역사를 신화에 내어주면 찐 손해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30/pimg_78160611551389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부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link><pubDate>Wed, 27 May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guid><description><![CDATA[<br>  &nbsp;  부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 남녀가 지하철 노약자석 셋을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다. 가운데 좌석을 비우고 양 끝에 떨어져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가운데 좌석에 앉자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구태여 그 의아함을 풀 까닭까진 없어서 이내 눈길을 돌리다가 여자가 하는 행동 때문에 멈칫한다.   &nbsp;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뜯고 까는 손길 더한 다음 남자에게 건넨다. 초코파이를 비롯한 음식물이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받아 우물우물 먹는다. 다 먹고 남은 봉지를 여자에게 준다. 봉지를 받아 든 여자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거두어 먹는다. 이런 행동을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20분가량 지났을까, 남자가 잠을 청한다.  &nbsp;  여자는 봉지 포함 이런저런 쓰레기를 정리한 뒤 등을 젖혀 기댄다. 아주 잠깐 허공을 향한 그 눈빛이 보였다. 현실에서든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든 그렇게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그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내 시선에는 여전히 그 아득한 눈빛이 걸려 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저들 행동이 내 심사를 흔들어댄다.<br><br>모든 진실을 다 알 듯도 하고 대체 어쩌면 저렇게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교조화된 조선 후기 유교 사회를 거쳐 왜 식민지, 미군정, 내전, 다양한 형태 독재를 겪으면서 내재화된 가부장 심리 기제라고 설명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우라 잘못 불리는 쓰레기들한테 온 나라가 휘둘리는 이 뒤틀린 현실에서.  &nbsp;  저녁 식사 때 충분히(!) 마신 반주로 얼얼했는데 그 아득한 눈빛에 찔려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지고 만다. 우환에 나로 말미암아 내 옆지기가 그런 눈빛을 지은 적은 없을까, 까지 살을 파고드니 발걸음이 아연 허든댄다. 따지고 보면 결이 같아서 내가 자꾸 되작거리는 거다. 가리산지리산 헤매는 내 삶부터 아득한데 무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81606115513613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다시, 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link><pubDate>Wed, 27 May 2026 09: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부처님오신날이다. 골짜기마다 절집이 있는 우리나라 풍경을 떠올린다면 오늘 같은 날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더군다나 절집 앞까지 포장도로가 있다면 두말할 여지조차 없다. 한 주 뒤로 미룰까, 잠시 고민한다. 주초 하루 가웃 비 온 사실이 기억나자, 가기로 한다. 회룡천과 아우라지 특히 아우라지 앞뒤 마른 내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몹시 궁금해서다. 복잡해질 교통 상황을 고려해 이른 아침 먹고 서둘러 나서보지만 벌써 지하철부터 빛 다른 날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노약자석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아뿔싸  &nbsp;  회룡사 들머리에 순찰차가 서 있다. 금세 까맣게 잊고 뭔 사고 났나, 한다. 뱀처럼 늘어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서야 아이고 다행이다, 한다. 개인 승용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그나마 숨 막히는 일은 없을 테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들 소리 때문에 쏠 동영상을 더러 포기한다. 회룡사 안내방송, 독송, 종성이 골짜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비구니 독송이 낭랑은 한데 그리 유장하지 않아 귓등만 때리고 되돌아간다. 예불문(禮佛文)도 나올 뭣이 안 나오고 지나가는 듯하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내가 메운다.  &nbsp;  그만한 비에도 회룡천 수량이 확실히 불어나고 물때들도 대부분 걷혀 있다. 물소리도 제법 우렁차다. 회룡사 지나서부터는 물소리가 아연 잦아든다. 아우라지 직전에 이미 마른 내 상태가 된다.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아선지 내 바닥 특성 때문인지 고요한 복류 상태를 유지한다. 복류는 어디쯤에서 비롯했을까. 아우라지에 이르러보니 사패산 쪽 물은 아예 적요다. 도봉산 쪽 불길을 따라 들어간다. 작은 섬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아, 저 소리 내는 물 마지막 지점이 복류 진원지이겠구나. 궁금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만다.<br>  &nbsp;  물을 발견하고는 곧장 합장하고 동영상에 담는다. 손 종지 만들어 물을 마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접지한다. 발이 시려 더는 견딜 수 없어 일어서면서 내려다보니 발 담근 작은 웅덩이 밖으로 물이 흘러 나가지 않는다! 위에서 좔좔거리며 세찬 물이 내려오는데 작은 웅덩이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기이하다. 나는 얼른 물 밖으로 나온다. 가만히 웅덩이를 들여다본다. 미세한 소용돌이 여러 개가 무작위로 나타난다. 물이 빠르게 밑으로 빠져나간다는 증거다. 땅 밑 물길이 이미 있지 싶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넋 빠뜨린 채 바라본다.   &nbsp;  몰입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나는 찬찬히 섬 주위를 다시 살핀다. 병꽃나무를 포함해 몇 가지 나무를 더 확인한다. 이 작은 섬 안팎에 내가 아는 식물만도 15종이 넘는다. 이끼나 돌꽃까지 헤아리면 여기도 어엿한 생태 단위임이 틀림없다. 다음 주에는 더 큰비가 온다 하니 어떤 변화를 지을까 자못 기대된다. 아우라지에 인사하고, 마른 내 바위를 이리저리 건너뛰어 백여 미터 내려오다 보니 용천이 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 경계를 이렇게 무작위로 넘나들며 회룡 물은 중랑천 거쳐 한강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바다 되어 지구늪을 이룬다.   &nbsp;  지구늪에서 구름으로 올라간 물방울은 바람 타고 도봉산 회룡계로 되돌아올 테니 참으로 queer networking 그 자체다. 작디작은 아우라지가 빚어내는 묘하디묘한 변화에 겸허히 참여하는 찰나마다 내 상(相)은 사라지고 공생 이행 과정, 잠정 실재로만 진동한다; 이 장엄을 약탈하는 사악한 제국 앞에 무릎 꿇은 무지렁이 부역자임을 통감하고 무고히 희생당하는 숭고 존재와 늪 재생 항쟁 동지이기를 차마 앙망한다. 바리데기들이 “끝까지 웃으며 다 함께!” 싸우는 일 없이 장엄은 오지 않는다. 장엄은 지극 헌신이다. 부처님오신날 참뜻이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81606115513603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다시, 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link><pubDate>Wed, 20 May 2026 1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guid><description><![CDATA[<br>  &nbsp;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어 다시 회룡천 아우라지로 향한다. 다시 가는 며리가 아우라지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오가는 골짜기 풍경 또한 거기 포함된다. 경험 횟수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숲과 물이 달리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건네고 내음을 피워서 내 감각을 두드리는지 살피며 천천히 들어간다. 사진으로 담아낼 때도 전과 달리 색깔보다 빛살에 더 유념한다. <br>지난주 진입한 지점을 조금 지나자, 금지선이 해제되어 자연스럽고 쉽게 물길로 접근할 수 있는 샛길이 나온다. 스마트 지도로 미리 확인한 바와 다르나 가시에 찔리거나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사패산 쪽 물줄기로 내려간다. 큰비 온 뒤를 상상하며 더 안전한 경로를 눈대중해 둔다. 내 조그만 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잡아챈 변화 하나: 돌탑이 허물어져 있다.  &nbsp;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 손이나 발길질 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든 아니든 문득 든 생각은 여기가 돌탑 있을 자리는 아니다, 다. 좀 더 맑은 마음으로 엄밀한 자리 보아 새로운 돌탑을 쌓는다. 앉아서 무작위로 기이하게 펼쳐질 존재 향연을 호흡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든다. 섬과 물길 둘레 땅을 돌며, 나무와 풀을 깜냥대로 살핀다. 생태가 대강 들어온다.<br>  &nbsp;  물가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버드나무가 전혀 없다. 물살이 거센 상류라서 뿌리를 얕게 뻗고 나뭇결이 부드러운 버드나무는 살기 어렵다. 도린곁이라 땅이나 물을 정화하는 버드나무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당연하게 여기는 물오리나무 영지다. 물 좋아하는 본성을 같이 지녔으나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와 달리 깊게 뿌리 내리고 나뭇결이 단단하므로 딱이다.   &nbsp;  물오리나무는 참 특별하다.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때때로 거센 물에 시달릴지언정 뿌리가 진흙을 어느 만큼만 품을 수 있다면 모래땅이라도 다른 식물이 살 조건을 만들어준다. 이 섬 중 가장 큰 식물로서 층층나무가 늠름히 서 있는 근거다. 그런 보익 작용은 물론이고,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뭇과 식물도 아니면서 해독 작용까지 한다.  &nbsp;  전천후 능력을 지닌 물오리나무 힘입어 이 아우라지에는 무작위로 기이하게 인연 맺은 싸리나무, 국수나무, 뽕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나무, 머루나무, 누리장나무, 개옻나무까지 한껏 어울려 살아간다. 칠십 년 버드나무로 살았으니 인제부터 우리로 살아보라고 물오리나무가 빙 둘러서서 권하며 응원한다. 물오리나무 꽃말이 “장엄”이다. 두 손 모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0/pimg_781606115512952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대한민국 만악 뿌리에는 언제나 왜놈 제국이 있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link><pubDate>Tue, 19 May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guid><description><![CDATA[<br>*주강현(민속학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그대로 싣는다<br><br><br>정용진의 뿌리. 그의 할배 정상희는 메이지대학 출신으로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체육회이사. 대학 시절의 일본인 인맥이 그의 출세에 도움을 줌. 1936년 손기정선수가 동백림마라톤에 우승하도록 돕고 베를린까지 갔다. 전쟁 막바지에 만주로 사업차 떠났는데 그의 송별식이 반도호텔에서 거창하게 열려 정무총감 등 당대 조선을 지배하던 발군의 인물이 모였다.친일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 이상이었던 인물. 연전 &lt;양정인물평전&gt; 발간하면서 대선배인 그를 인물군에서 뺐다. <br>해방 이후 정치계에 투신,국회의원으로 리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에 가담,감옥을 다녀온다. 일제말기부터 이병철과 가까운 사업파트너로 사돈을 맺게되며, 이병철의 딸인 이명희가 정상진의 아들 정재은과 결혼하여 정용진의 모친이 된다. 사람들은 막연히 신세계가 삼성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만 알지만 정용진의 조부가 일제말과 자유당정권의 막강한 실세로 이병철에 막강한 도움을 주었고 딸을 시집 보내어 사돈을 맺은 것은 생략한다. 한마디로 정상희는 친일에서 미군정을 거쳐 자유당정권 부패신화의 조연으로 활약했다. 그 손자가 정용진으로 5.18에 탱크데이를 선포하고 도마뱀 꼬리자르기로 스타벅스 사장만 사표받고 끝. <br>평소에 멸콩을 부르짖던 정용진 ‘가문의 영광’이 이처럼 오랜 뿌리를 지닌 것이니, 5.18탱크데이로 흥분할 거 하나도 없다. 한국근현대사의 모순이며 근현대 재벌의 부의 축적이 이루어진 적나라한 정경유착의 과정, 그리고 어쩌면 하나도 변치않게 손주에게까지 유전된 친일 반민주 사업가의 전통이 멸콩놀이 일베놀이로 이어지는 DNA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9/pimg_781606115512852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71711</link><pubDate>Tue, 12 May 2026 1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71711</guid><description><![CDATA[<br>  &nbsp;  도봉산 회룡천은 두 물이 만나 어우러진다: 도봉산 포대 능선 산불 감시초소 기점 북쪽에서 발원한 남쪽 물줄기와 사패산 회룡바위 근처에서 발원해 도봉산·사패산 경계를 따라 흐르는 북쪽 물줄기. 이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거니와 남쪽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이 없어 거기 숲과 내는 사람 타지 않은 태고 골짜기로 남아 있다.   &nbsp;  2023년 1월, 나는 눈 덮인 그 골짜기로 혼자 올라가다가 실패해 죽을 고비 넘겨 가며 도로 내려왔다. 2023년 8월, 거꾸로 포대 능선 산불 감시초소 기점 부근에서 출발해 내려가다가 수직 벽 아래로 세 번이나 굴러떨어지면서도 기어이 지난겨울 실패 기점을 밟았다. 두 사건 이후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을 스승으로 섬긴다.  &nbsp;  스승은 앞 실패를 이끌며 나 또한 ‘순혈(純血)’ 반제 전사일 수 없는 부역자라는 진실을 통렬하게 가르쳤다; 뒤 성공을 이끌며 나와 스승이 생사를 나누는 동지임을 통곡으로 가르쳤다. 이 두 사건을 통해 나는 비인간 생명, 나아가 비생명 존재가 나와 더불어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우라는 진실을 심장에 새길 수 있었다.   &nbsp;  이 기억에 터 해 사는 삶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기회가 홀연히 찾아왔다. ‘홀연히’라는 표현은 무작위 팡이시질(networking)이 작동했다는 뜻이다. 현재 내 고뇌와 시절 인연을 이루는 한 사람은 제임스 브라이들이다. 그가 쓴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는 내가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열어나갈 길을 예시했다.  &nbsp;  또 한 사람은 &lt;습지가 부른다&gt;에서 스치듯 인용한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다. 그가 쓴 『자연은 퀴어하다』를 나는 여러 번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같은 결 영혼을 느끼는 매우 귀한 사람임을 살갑디살갑게 감지한다. 그가 수행하는 “앉을 자리(SIT SPOT)”가 내 숲·물 걷기에 “다시 또다시 돌아가는” 방향을 보탰다. <br>&nbsp;나는 오전에 방이 습지를 세 번째 걸은 다음 회룡 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 발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회룡천 아우라지/두물머리로 향한다. 2023년 여름에 나온 냇가 건너편 숲으로 들어선다. 물론 길이 아니다. 방향만 가늠한 채 무작정 나아간다. 건천이 된 북쪽 물줄기를 건너 두 줄기가 만나는 곳 땅으로 올라간다.   &nbsp;  잠시 사위를 둘러보고 남쪽 물줄기를 따라 더 들어간다. 드릴락 말락 소리를 내는 조그만 용천을 발견하고 물 모심 한다. 되돌아 나오면서 보니 남쪽 물줄기가 끄트머리에서 살짝 나뉘어 합류한다.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와 영락없이 같은&nbsp;섬을 이룬다. 전율이 온다. 나는 합장하고 돌탑을 쌓은 뒤 군데군데 밤, 도토리를 심는다.  &nbsp;  남한강이 발원한 오대천 아우라지에서 태어나 70년 뒤에 회룡천 아우라지에 선 이 사건을 나는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여기가 “다시 또다시 돌아가는” “앉을 자리”라면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queer) 변화를 겪게 될 테다. 실은 그런 이치를 따라,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 그리고 기이한 자연을 따라 여기 왔다.   &nbsp;  내가 태어난 오대천 아우라지처럼 나는 여기를 그리워할 테며, 그리워 다시 또다시 돌아올 테다; 차마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늪처럼 질퍽하고 즈런즈런하진 않을지라도 뻐근하고 두렵고 설레는 지성소로 스며들 테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을 남겨둔다. 해가 기울어 색깔보다 빛살이 찬란해질 무렵 절하고 무르와간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2/pimg_781606115512122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7171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부뚜막과 도토리나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2210</link><pubDate>Fri, 01 May 2026 14: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2210</guid><description><![CDATA[<br>  &nbsp;  4월 26일, 방이 습지에서 “공동체의 시간”(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과 잠시 만나고 나는 삼성동으로 가 봉은사를 걸었다. 봉은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1972년) 봄 소풍으로 처음 다녀간 이래 50여 년 동안 아주 여러 번 걸은 곳이다. 특히 한의사가 된 뒤부터는 보수교육을 대부분 코엑스에서 받는지라 매번 찾았다.   &nbsp;  넓지 않으나 오히려 아기자기한 맛이 쏠쏠하다. 뒤쪽 야산에 명상길까지 가꾸어 놓아 찾는 이가 많다. 다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불사, 그러니까 토건이 돈을 향해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켜서 갈 때마다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뭐 하나 세우고 그 앞에다 불전함 놓고 이런 식이라 걸태질 같아 보이니 말이다.  &nbsp;  봉은사뿐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 모든 절 풍경이 그렇다. 불심으로 보면 남루하고 너절해 보일 텐데 이 무슨 아이러닌지. 부처님오신날 가까워서 더욱 야단스럽다. 신심과 욕심 사이 구별이 없어 보이는 풍경을 휘적휘적 가로지른다. 오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놀랍게도 공양간이다; 거기 모셔진, 조왕신(竈王神)이다.<br>&nbsp;조왕신은 우리 토속신앙에서 부뚜막 또는 부엌신이다. 나도 어린 시절 그 이름을 들었고, 할머니께서 치성(致誠) 올리는 일을 수없이 보았다. 이제 와 홀연히 다시 맞닥뜨리니 대뜸 시간이 접힌다. 어디 부뚜막/부엌뿐인가. 우물, 길, 들, 풀, 심지어 뒷간에까지 수호신이 있다-측신(廁神)-. 가히 즈런즈런한 다신론이다.   &nbsp;  불교는 이런 토속신 104위를 품어 신중(神衆) 신앙과 융합했다. 맹랑한 음모론 유일신교 관지에서 보면 뒤죽박죽 미신이거나 열등한 ‘종교’일 테지만 엄밀하게 보면 이렇게 촘촘한 다신(多神)이야말로 무작위 퀴어 우주 본성에 한층 더 다가간 숭고다. 나는 불교 자체가 더욱 섬세한 평등 networking 다신교가 되기를 빈다.  &nbsp;  조왕신께 합장하고 명상길로 들어선다. 지난해 잘려 나갈 위기에 몰렸다가 내 기지로 목숨 건진 여린 도토리나무 앞에 선다. 기울어지긴 했으나 흠씬 자란 그분께 신명을 헌정한다: 회신(栃神). 우주를 구성하는 삼라만상 모두가 신이다. 얽히고설켜 서로 장엄을 축하하는 존재 사건이다. 도토리나무께서 나를 초대한 신비다.<br>화면 전체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가로지른 호리호리한 나무가 도토리나무(栃)신<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1/pimg_781606115511125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221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노동절에도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1839</link><pubDate>Fri, 01 May 2026 08: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1839</guid><description><![CDATA[<br><br>* 김주대(시인/문인화가)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br>삼성전자 노조원 같은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회사의 어마어마하게 큰 이익을 같이 나누자는 것(성과급 투명화, 상한제 폐지 등) 이해가 간다. 거기에 대해 의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들이 받는 성과급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액수라고 해도 말이다. 다만, 오늘 같은 날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고령 노동자 등 조직되지 못한, 조직되기 힘든 노동자들에게 더 눈길을 돌려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일해도 대기업 노동자 보너스 만큼도 못 받는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기 힘드니 잘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을 무단히 원망하기도 한다. 옳지 못한 원망이지만 그 원망을 무작정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죽했으면 그러겠는가 하는 마음이다.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 해당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대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해본다. 어떤 연대의 방식이 있을까? 욕설 범벅인 시 한 편 올린다. ..[모계 유전]석 달 넘게 일한 돈 못 받아 겨울 풀처럼 말라 가는 엄마와 외제 차 자랑한다는 업주에게 하소연 전화하는 엄마 옆에서 업주에게 들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혀가 식칼이 된 아들 전화기 속으로 고함 소리 잘 들어가도록 폰 마이크를 켜는 저녁이다 그 씨발새끼한테 찾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말해 줘요오오— 책상을 치고 스텐 냄비 두드리며 피 끓는 응원을 보내는 아들과 조용히 하라면서도 손짓 발짓 아들의 함성을 부추기는 엄마 눈 껌벅이며 신호를 주고받다가 아들의 고함 가까이 전화기를 대주는 전화기 이쪽의 애끓는 저녁이다 아저씨 흥분하지 마시라 하라고 소곤거리는 전화기 저쪽의 간사한 저녁이다 씨발새끼가 여자라고 사람을 우습게 봐 혼자 산다고 우습게 봐? 남편 아니고 아들이라고 말해 줘요 식칼 들고 찾아간다고 말해 줘요오 엄마는 웃으면서 우는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아들이 무슨 일 저지를까 무섭다고 능청스럽게 흐느낀다 바람 불고 전등 깜박거리던 저녁이 지나간 이튿날 식전 통장에 엄마 월급이 들어왔다고 한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1/pimg_781606115511108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5183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습지가 부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48342</link><pubDate>Thu, 30 Apr 2026 0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48342</guid><description><![CDATA[<br><br><br>  &nbsp;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옛 이름은 ‘방잇골’이었다. 개나리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 이름으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병자호란 때 오랑캐를 막았다는 뜻, 곧 방이(防夷)가 등장했다. 후대에 선비들이 뜻을 문제 삼아 방이(芳荑)로 바꾸었다고 마무리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부분 그렇듯 먹물들이 지어낸 그럴듯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  &nbsp;  방잇골은 백제 첫 도읍인 위례성 권역으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안말내(성내천)와 단내(감천, 나중에 감이천)가 합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농사가 성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 특히 1960년대 말부터 사나운 변화 대열에 휩쓸린다. 정치적 계략이 사회경제적 현실을 부추겨서 거대한 토건을 이른바 영동지구에서 일으킨 것이다.   &nbsp;  영동은 영등포 동쪽이란 뜻으로 1, 2차에 걸쳐 엄청난 부동산 쇼가 온 나라를 뒤흔들며 펼쳐졌다. 흔히 이 사태를 ‘강남 개발’이라 불렀다. 이 광풍 언저리에 놓여 있던 방이동, 안말내와 단내 사이 농지에 1970년 벽돌공장이 들어섰다. 1997년에 문을 닫을 때까지 토사를 마구잡이로 퍼낸 결과 그 자리에 커다란 웅덩이가 형성됐다.   &nbsp;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웅덩이는 인근 물과 강우가 쌓이면서 습지로 변해 갔다. 숲이 생기고 물고기와 각종 동물이 보금자리를 꾸몄다. “방이 습지”다. 2002년 서울시는 방이 습지를 생태·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했다. 2011년에는 방이동생태학습관도 열었다. 현재 식물 114종, 조류 45종, 어류 6종이 서식하고 있다(2021년 통계 자료).&nbsp;<br><br>지난 일요일(4월&nbsp;26일)&nbsp;나는 방이 습지로 향했다.&nbsp;올림픽공원역에서 진입하는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귀살쩍다.&nbsp;여전히 방치 상태다.&nbsp;도시 개발이 빚어내는 그림자로 궁뚱망뚱한 살풍경 전형이다.&nbsp;서둘러 지나쳐 생태학습관에 이른다.&nbsp;아무도 없다.&nbsp;관찰 길도 마찬가지다.&nbsp;적요에 아뜩해졌으나 곧 고요에 깃든다.&nbsp;천천히 걷다 섰다 앉았다 하며 쩍말없이&nbsp;‘홀로’라는 습지,&nbsp;그 물컹한 늪으로 빠져든다.&nbsp;여태까지 걸었던 숲이나 물 발길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질퍽거린다.&nbsp;시간이 흐를수록 음탕해지는 개구리 연가를 속귀 열어 듣는다.&nbsp;홀연히 꿩이 울리라는 육감에 따라 스마트폰 앱을 연다.&nbsp;이어서 울지 않고 끊는 그 우렁찬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는다.&nbsp;이런 시간을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nbsp;『자연은 퀴어하다』에서 말한&nbsp;“공동체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nbsp;사실 내가 여기 온 며리가 그러하다.&nbsp;내 걷기는 중대한 변곡점을 향해 가는 중이다.&nbsp;무작위성과 퀴어함에 나를 열어,&nbsp;듣지 못해서 듣는 세계로 들어가고자 해서다.&nbsp;마법이 과학인,&nbsp;과학이 마법인 삶에 잠기기 위해서다.&nbsp;새,&nbsp;나무,&nbsp;풀,&nbsp;버섯,&nbsp;흙,&nbsp;물,&nbsp;볕,&nbsp;바람을 반제·반식민 동지로 모시는 일이 더없이 엄밀해지려면 더 자주 더 이드거니 만나야 한다.&nbsp;여럿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여러 번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nbsp;인간과 과학 경계를 가로질러 시공을&nbsp;‘접는’&nbsp;마법이 필요하다.&nbsp;유의미한 고뇌는 유의미한 결과를 창조하는 법이다.&nbsp;습지에 홀로 앉아 영에 깃든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30/pimg_78160611551099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4834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