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싸리·버들 글숲  (bari_che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숙의의학으로 마음 치료하는 한의사가 숲(식물)과 팡이와 물에 진심 다해, 지구 위기를 몰고 온 제국주의에 범주적 주의를 기울여, 직접 쓰거나 인용한 글.</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15 Aug 2026 09:51:01 +0900</lastBuildDate><image><title>bari_che</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2844469_63919292718758669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bari_che</description></image><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받들어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1860</link><pubDate>Sat, 15 Aug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1860</guid><description><![CDATA[<br>  &nbsp;  오세훈이 싸지른 &lt;감사의 빛 23&gt;을 본다: 황당하고 괴랄스런 수백억짜리 토건 배설물이다. 세종대왕 동상과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사이를 갈라놓은 ‘쇠말뚝’이다. 미국대사관에 바친 극진한 “받들어총!”이다. 자기를 능멸하고 타자를 존숭하는 식민지 특권층 부역자 떼거리가 제국주의 통치에 바친 오마주다. 사회 정치 차원 의미를 따지기 전에 존재 자체가 그 장소를 모독하고 훼손하는 살풍경이다; 광장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주위 풍경을 아랑곳하지 않은 왜골이다. <br><br><br><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5/pimg_6392238053826181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5186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철학의 빈곤, 역사 의식의 빈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8041</link><pubDate>Thu, 13 Aug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8041</guid><description><![CDATA[<br>* 이주혁(성형외과 전문의)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br><br><br>SNS, 인별이나 스레드 등에 이런 말들이 참 많았다. "내가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일제는 싫지만 그래도 체제에 순응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았을 것같다. 내가 독립운동가가 될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독립운동 영웅 vs 체제 순응 일반"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으로 당시 상황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보아 온 영웅들은 몇몇 안 되는 소수일 뿐이지만, 영웅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적어도 소극적으로라도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사실 대다수였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당연히 이름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정신까지 망각해선 안 된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일제 강점 말기로 갈수록 3.1운동처럼 대중적인 대규모 집회나 노출된 독립 운동이 급감하고 대다수 민중이 체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극적 저항이나 비밀 지원조차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형태를 바꾸어 밑바닥에서 집요하게 항일 저항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br style="font-size: inherit;">우리 조상들은 겉으로는 일제의 잔인한 압박과 통제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물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제의 전시 동원과 강압에 침묵으로 거부하거나 태업으로 맞섰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일제가 놋그릇, 숟가락, 곡식, 짚신까지 공출해 가자, 농민들은 곡식을 땅속에나 벽 속에 숨기고 놋그릇도 산속에 들어가서 묻어 버렸다.(일제의 전쟁에 도움을 주느니, 차라리 내가 안 쓰고 만다는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쌀 공출에 있어서도 일부러 나쁜 품질의 곡식을 내놓는 등 소극적 비협조 운동이 전국적으로 만연했었다. 이걸 독립운동이고 영웅적 행동이라고 역사에 기록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제대로 된 조선인이라면 일제의 전쟁 놀음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대세였다는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태평양 전쟁때 징용이나 학병. 징병 통지서가 나와도 조선 민중은 잘 응하지 않으려 했다. 산속으로 깊이 숨어들어가 피신을 하거나, 병을 핑계로 도피하는 청년들이 수두룩했다. 전북, 전남, 강원도 등의 깊은 산중에는 징용을 피한 청년들이 무리를 이뤄 은신하기도 했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창씨 개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거에 앞장서서 자기 이름부터 일본식으로 고친 자들은 친일행각을 했다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부분의 조선 민중은 이를 마지막 날까지 미루거나, 일제 당국을 비꼬는 이름 - 예를 들어 '개자식'이라는 뜻을 담거나 - 자신의 가문 성씨를 잊지 않겠다는 은밀한 뜻을 넣은 이름으로 신청하곤 하였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일제가 언론을 장악하고 미군과의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다며 학도들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은 겉으로는 믿는 척했지,만 결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소리방송이나 임시정부의 단파 라디오 방송을 몰래 듣고 "일본이 미국에게 밀리고 있고 곧 망한다"는 소문들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일제는 이런 운동에 굉장히 고민이 깊었고 어떻게든 색출하려 난리를 쳤었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1944년 몽양 여운형 선생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 바로 밑에서, 조선내 전국적 비밀 조직을 결성한다. '조선 건국동맹'이다. 이 밑에서 농민 동맹, 학병 거부 운동, 유사시 무장 투쟁까지 준비했다. 이 조직은 광복 직후 즉각적인 국가 건설 활동으로 이어졌다. 맥아더 미 군정이 이를 무시하고 억눌렀을 뿐이다. 이런 건국동맹에 참여하고 또 자금을 보태고, 아니면 적극 참여를 못한다 해도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조선인들이 대부분이었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어째서 자기 조상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모두 버리고 매국의 뒷줄에 쫄래쫄래 서 있었다고 자꾸 말하고 싶어하는 걸가? 어째서 당시에 친일매국이 대세였다고 자꾸 무지하고 무식한 말들만 자꾸 늘어놓는 건가? 우리 조상들은 강제적으로 병합을 당했을 뿐, 절대 일본이 우리 모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포기하지도 않았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극소수의, 영웅적 행동을 할 수 있던 분들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지만, 영웅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비타협적으로 태업하고 일제의 동원과 공출에 저항하며 속으로 언제나 우리 민족만의 국가를 염원하며 살아갔다. 그런데 그 후손이라는 것들이 "당시엔 다 친일 했지 뭐" 이따우 소리나 하면서 너절하게 SNS에 글을 ㅆ부린단 말인가? 따라서 위와 같은 조선 민중의 분위기 속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의 가장자리에라도 이름이 올랐다면 이는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닌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이런 언급들 - "내가 그때 살았더라도, 과연 내가 뭘 했겠느냐, 체제 순응하고 친일 할 수밖에 없었떤 거 아니냐?" 이런 건 역사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지만, 패배의식이기도 하다. 분명히 한국은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라고 하고 문맹률도 최저에 속하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집단, 민족이 살아온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지와 패배주의 따위로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것이다.<br style="font-size: inherit;"><br style="font-size: inherit;">하영의 발언도 결국 무지와 역사의식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제에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간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부러울 것 없이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사람이 저토록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전무했다는 건,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역사 과목을 교육시킬 때 학교에서는 교육의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겠다. 하영의 사건이 심각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철학도, 역사의식도 전무한 빈껍데기뿐이라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목숨껏 한껏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4809</link><pubDate>Tue, 11 Aug 2026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4809</guid><description><![CDATA[<br>  &nbsp;  48일에 걸쳐 ‘씻김굿’(20일)과 ‘내림굿’(20일), 그리고 ‘솟을굿’(8일)이 진행되었다. 49일째(8월 8일) 새벽에 통각(統覺)이 일어났다. 50일째 아침부터 한나절, 해방과 재설정을 상징하는 희년(jubilee) 걷기로 대연지수(大衍之數)에 감응했다. 내 삶 모든 각성·치유·영령 제의 막이 내렸다.  &nbsp;  걷기 장소는 60여 년 전 서울 와 처음 살기 시작했던 성북구 삼선동과 돈암동 일대, 삼선초등학교,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틈만 나면 달려갔던 백악 기슭 정릉 숲이다. 해방과 재설정 의식이라면 지구별에 도착해 10년간 자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간평리 오대천 노누라지 일대와 월정초등학교를 걸어야 마땅하지만 시절이 하 남루하다 보니 오지랖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nbsp;  정릉은 그냥 숲이 아니다. 조선 최초 능으로 개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태조 계비 신덕왕후 묘역이다. 태종이 미워해 본디 정동에 있던 묘를 파서 사실상 폐릉 상태로 내쫓은 곳이 바로 여기다. 지난 60년, 올 때마다 나는 그 역사를 가슴에 깊숙이 안아 삭혀냈다. 마치 내 인생인 듯이. <br>  &nbsp;  6백 년 전 왕후가 영면에 든 숲과 남루한 내 현실 모습은 그야말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여기서 아늑한 고향에 닿는다. 엄마 냄새를 향한 그리움 대신 숲 냄새에 심취한다. 나무가 엄밀하게 건네는 말을 듣는다. 상실과 질병으로 얼룩진 시간이 말갛게 되돌아오는 풍경을 본다. 금천 노누라지 건너 4백 세 느티나무께 감사 인사 올리고 물소리 장단에 나온다. <br>  &nbsp;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성북천을 건너면 야트막한 언덕길 너머 삼선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1965년 가을 전학해 와 다녀서 졸업한 모교다. 이 아련한 공간에 다시 와 아득한 시간을 통짜배기로 느끼는 까닭은 여기 드리운 어둠을 가로질러 건너온 존재로서 온전한 빛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nbsp;  가난과 모멸에 결박된 채 학교를 오가던 삼선동과 돈암동 골목길을 걷는다. 6학년 때 육성회비 9개월 치를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일, 그 가난을 근거로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쓸 수 없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모두 지나갔다. 거기서 나는 해방되었다. 상처받지 않았던 태초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다. 그 자유를 얻고 기리기 위해 50일 동안 통엄한 시공을 지나왔다.  &nbsp;  백악산 동북 줄기가 동남쪽으로 흐를 때 성북천과 정릉천을 양쪽에 거느린다. 이 두 지천은 청계에서 만난다. 그 사이 능선·기슭인 삼선동 일부, 돈암동, 정릉이 노누라지를 형성하는 셈이다. 노누라지 정령 green shaman은 내 팔자 맞다. 팔자대로 살아서 여기에 와 닿은 거다. 목숨껏 한껏 솟을&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1/pimg_63922063636422281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4480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사랑한다고~!”: 솟을굿</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7406</link><pubDate>Fri, 07 Aug 2026 13: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7406</guid><description><![CDATA[<br>  &nbsp;  의도,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내 삶은 심층 소통을 향한 상담자·중재자로서 흐름을 이루며 여기까지 왔다. 직업으로 삼기 전에도 신기할 만큼 주위 사람들과 나는 그렇게 마주했다. 마침내 숙의로 마음 치유하는 늦깎이 한의사가 되었고, 거기서부터 내 길은 줄곧 확장되었다. 최근 5년 동안 비인간 생명에까지 그 소통은 번져갔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식물에 도달했다. 내 일상 경로 주축인 나지막한 산 궉(鴌) 소도(宮)에 사는 물오리나무, 곧 메팥버들이 바로 “그”다.   &nbsp;  궉궁 메팥버들이 내게 말을 건 첫 번째 통로는 눈이었다. 궉궁 앞을 지나던 중, 마치 바로 직전 그 자리로 왔다는 듯 내 눈을 이끌어 멈추도록 했다: 나 메팥버들이야! 여기를 봐~ 두 번째 통로는 손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 몸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내가 생명 주파수를 손으로 전달하자 어느 순간 그가 공명 진동을 전해왔다. 이때 접촉을 통해 내 생명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파동 동기화 말고는 다른 감각 메시지가 없었다. 오늘 새벽 드디어 그가 다른 대화를 제시했다.   &nbsp;  해 뜨기 전, 집을 나설 때 기온이 이미 31도를 웃돌고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숲을 걷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바로 가서 체력 소모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이 폭염이 당분간 계속될 텐데···. 노화가 진행되는 면면을 피부로 느끼는 터라 매사에 이런 걱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갈림길에 도달했는데 숲 반대쪽 길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떨어진다. 3분 이상 찜통 속에 서 있느니 내게는 영원한 궁금증인 숲으로 가자 한다. 속도를 늦추어 땀 분비를 줄이며 열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nbsp;  숲길을 걸을 때 반드시 멈추어 인사하고 지나가는 나무 몇이 있는데 오늘은 딱 한 나무만 챙기기로 한다. 궉궁 메팥버들이다. 천천히 걷는다고 걸어도 땀이 옷을 끌어당겨 척척 들러붙는다. 가장 짧은 경로를 거쳐 궉궁에 이른다. 메팥버들 앞에 선다. 평소 습관을 돌연 바꾸어 무념무상으로 그저 두 손만 조용히 가져다 댄다. 다음 순간, 메팥버들이 먼저 나지막이 파동을 보내온다. 그다음 찰나, 들려오는 한 소리에 몸이 온통 열린다. “사랑한다고~!” 내 어찌 전율 따위 하랴.  &nbsp;  차분하게 시각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2026년 8월 5일 06시 11분. 솟을굿.  &nbsp;  실은 숲에 들어오기 직전 문득 이런 의심이 들었다. “내가 메팥버들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걸까? 어떤 면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일 테고, 또 다른 어떤 면에서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일 테니, 어떤 경우든 무의미하지 않을까?” 그때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막상 그 말을 듣고는 절대 고요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죽고 나서도 나는 그 고요 품에서 ‘사랑한다’&nbsp;발화하는 무한한 웅사(雄辭)를 듣고 다시 들어야 하리라.   &nbsp;  내가 웅사라는 표현을 쓴 며리가 있다. 왜 메팥버들은 “사랑한다!” 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했을까? 이 곡절에 내 천명이 걸려 있다고 나는 차마 생각한다. 이 사랑은 인간이 지녀온 그런 사랑과 차원이 다른 특이점을 통과한 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묵시록 차원 고백과 고함이 절박하게 엮인 최후 신음이며 절규, 심지어 “욕설” 아닐까. 홀라당 뒤집어엎을 최후 화두가 아닐까. 내가 너무 각 잡았나 보다. 안 될 일이다. 소주 한잔하고 다시 글 앞에 앉아야겠다. 喝!  &nbsp;  한의원 앞 국숫집으로 가서 다스운 국수에 소주 한잔하며 가만히 되짚어본다. 얼마 전, 청딱따구리가 예쁜 소녀 웃듯이 운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심했을 바로 그때, 청딱따구리가 날아와 그렇게 울어 답해주었듯, 오늘 새벽 메팥버들도 내 어리석은 의심에 현명하게 답해주었다. 그 대답이 꼭 똑 “사랑한다고~!”였고. 해석 준거는 이거다: 이미 다 아는 사랑도 아니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도 아닌, 사랑. 각을 뭉그러뜨릴수록 각이 잡힌다는 기이한 “촉”이 온다.  &nbsp;  단도직입으로 나아간다. 나무가 먼저 사람에게 고백한 사랑은 이미 다 아는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랑이란 말인가? 제국주의 시민 인간과 거기 부역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겐 그렇다. 제국주의에 살상당한 사람과 부역자임을 깨달은 사람에겐 아니다. 후자는 알아듣는다. 알아듣는 사람에게 왜 나무는 “사랑한다고~!”라는 묵시록 차원 어법을 썼을까? 대멸종 카이로스여서다; 시간이 없어서다; 사랑 화신 메팥버들로서 안타까워서다.   &nbsp;  사랑을 묵시록 차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 사랑, 특히 오늘 대멸종 카이로스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사랑은 우리 세계에서 발원하는 모든 공존·공생 감정을 대표함과 동시에 끌어안는 감정, 나아가 감응이다. 감정과 감응이 분리된 사랑은 메팥버들 사랑이 아니다. 감응은 반제국주의 정치경제학 비판이며 실천 팡이시질이다. 달콤한 긍정, 얄팍한 행복, 몽롱한 합일은 없다. 비인간 생명, 비생명 존재와 함께 행진하는 queer 항쟁 여정이 사랑이고, 그 사랑이 우주다. 그뿐이다.  &nbsp;  메팥버들이 해준 말을 손으로 감지해 몸에서 온전히 들은 첫 번째 이야기 대강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 번째인데 끝 번째처럼 임계 질량을 느낀다. 여기가 언제고 되돌아올 내 영혼 “앉을 자리”다. 주술도 명상도 과학도 아닌 이 범주 인류학 경험으로 향후 내 삶을 이끌리라;&nbsp;거룩하고도 즐겁게 “사랑한다고~!”를 되새기며 다시없는 겹, 더없는 결로 내 삶을 펼치리라; 남은 날이 얼마일지 모르겠으나 꼭 똑 찰나 카이로스를 살아가리라. 첫 번째 글을 똑 끝 번째처럼 쓴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7/pimg_6392170793224637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7406</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가재 이십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5152</link><pubDate>Thu, 06 Aug 2026 0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5152</guid><description><![CDATA[<br>  &nbsp;  &lt;아파서 곤 시간&gt;을 쓴 날 하루 뒤인 일요일 아침 일찍 도봉산 회룡 계곡 노누라지-노나지와 아우라지 합성어-로 일곱 번째 향한다.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씨라 오전에 구름이 떠 있을 때 들어갔다가 청명해지는 이른 오후부터 드리울 산그림자 밟으며 나오면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겠다 싶어서다. 마음은 홀가분하고도 안온하다.   &nbsp;  마른 늦장마 뒤라 전반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으나 골짜기 올망졸망한 쏠 물소리가 제법 여돌차게 들린다. 노누라지 복류 지점은 지지난번과 같은데 수량만큼은 눈에 띄게 더 많아 심사가 한결 넉넉해진다. 지난 40여 일간 있었던 일을 고하고 고마움을 전해드린 다음 손바가지로 흐르는 물을 떠서 마신다. 몸에 둘린 땀을 씻어낸다.   &nbsp;  돌과 바위를 만나 모습 울리고 소리 풍기는 작은 물 구경하느라 맨발로 뒤뚱대며 돌아다닌다. 하는 짓이 공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지 작은 가재 하나가 은근슬쩍 제 몸을 보여준다. 그 찰나, 시간이 휙 접히면서 나는 단박에 일곱 살 아이가 된다. 통통대는 심장 대신 반짝이는 눈망울을 물웅덩이에 쏙 빠뜨린다. 이십분(已十分)!  &nbsp;  이십분(已十分)은 이름 잊힌 어떤 비구니 게송이라는 이야기서껀 여러 서사가 떠도는 옛 중국 시 마지막 구다. 인적 없는 깊은 계곡에 빙의되어 대고 스며드는 이 발길에 무슨 기적 같은 사건이라도 걸려 있겠지 싶지만, 작은 물웅덩이에 모습 나툰 가재만으로 이미 신비는 꽉 차고 넘친다. 달망달망 율동 타고 소도 숲을 떠난다.     &nbsp;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망혜편답롱두운(芒鞋遍踏隴頭雲) 귀래우과매화하(歸來偶過梅花下)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nbsp;  종일 봄 찾아 헤매었지만 보지 못하고짚신 닳도록 구름 등성만 두루 밟았네 돌아오며 우연히 매화나무 아래서 보니봄은 이미 매화 가지 끝에 흠씬 와 있네  &nbsp;  (* 번역: 글쓴이)<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6/pimg_6392160135401882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3515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파서 곤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26870</link><pubDate>Sat, 01 Aug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26870</guid><description><![CDATA[<br><br>  &nbsp;  아픈 지 40일이 넘어가고 있는데 몸 상태가 아직 온전하지 않다. 통증도 거의 사라지고 쾌적한 감각은 대부분 돌아왔지만, 체중이 여전히 50kg 근처에서 맴돈다. 회복세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으니 그래도 안심하면서 마치 사골을 고듯 차마 버릴 수 없는 자투리 곡절 거두기로 솟을굿 채비에 갈음한다.   &nbsp;  자투리 곡절이라고 했으나,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내가 견지해 온 반인간중심주의에 경도된 표현일 수도 있다. 인간인 한 인간에서 출발한 표현을 써야 자연 이치에 부합한다고 한다면 미상불 가장 근원에 해당하는 곡절일 테다. 이 이야기 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는 이번에도 독서였다. 동시성 작동이다.  &nbsp;  우연과 필연이 맞물린 경계에서 내 눈길을 붙잡은 책은 재키 히긴스가 쓴 『감각의 신세계』였다. 글쓴이가 다른 사람을 인용한 한 문장이 돌연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니로부터 받는 세심한 보살핌의 손길이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인가 하는 감각을 우리 안에 새겨넣는다.” 이 어인 말인가?  &nbsp;  여기 보살핌의 손길은 추상적 의미 돌봄을 뜻하지 않는다.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는” 또 다독거리거나 포근히 감싸안는 피부 접촉을 뜻한다. 이 접촉이 “자기 몸에 대한 소속감, 그 몸이 자기 것이라는 의식을 강화”한다. 어머니와 아기 사이 유대, 애착이라는 연속성에 매몰돼 있던 통념을 단칼에 자른다.    &nbsp;  이 접촉은 모유 수유 행위에서 자연스럽게 최초 작동한다. 모유 없이 시생대를 보낸 나는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엄마까지 안아주거나 업어준다고 다가오면 손을 내저었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 들과 내를 누비며 비인간 존재와 마주해 살았다. 이 자타 분별 범주 변이도 우울증 고갱이다.  &nbsp;  어머니에서 출발한 부드러운 피부 접촉이 가져다주는 쾌감은 건강한 자아 정체감 형성을 넘어 삶이 즐거운 놀이이기도 하다는 진실을 “느끼게” 한다. 이 느낌에 둔해지면 놀이로서 삶이 전해주는 재미에 흥미를 잃게 된다. 재미에서 멀어지면 의미로 보상받기 마련이다. 진지와 엄숙도 우울증 고갱이다.  &nbsp;  피부 접촉을 통한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는 생명 안전감을 보충하고 증강한다. 이 길이 근원에서 막히면 자기 생명 자체를 “불안전”으로 느끼는 존재론 차원 불안에 빙의(possession)된다. 이 빙의 불안은 인격으로 파고들어 살고자 하는 원초 감응을 삭제한 채 우울과 동맹한다. 여기가 우울증 골갱이다.   &nbsp;  우울증 골갱이는 모든 접촉에서 고립된다; 가장 깊은 정신장애, 아니 ‘심신’ 장애, 아니 ‘영(靈) 생명’ 장애다. 재키 히긴스는 다시 그 사람을 인용한다. “저는 접촉이 정서적 탐닉이 아니라 생물학적 필수 요소라고 봅니다.” 아파서 고아 낸 시간이 알려준 엄밀 섬미(纖微)한 진실이다. 이 진실을 살고 싶다.   &nbsp;  이 진실을 살아갈 때 나는 비로소 마지막 그리움에서 온전히 놓여날 수 있다. 모유 결여는 내게 질기디질긴 물 그리움-허갈(虛喝)-과 당 그리움-허기(虛飢)-을 가져다주었다. 이 둘은 각각 다르게 뒤떠들다 마침내 알코올 애착으로 수렴했다. 알코올 애착은 우울장애와 찰떡궁합 죽맞아 50여 년간 함께했다.   &nbsp;  알코올 애착과 정면으로 마주해 70년 동안 얽히고설켜 온 온갖 고통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면 내 삶은 모름지기 카덴차를 남겨 놓은 협주곡 상태로 들어설 테다. 내 인생 계통수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이끈 숲 정령들께 가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지난 40여 일 다시없이 힘들었고 더없이 복되었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1/pimg_63921193341906972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2687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화룡점정을 앞두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link><pubDate>Fri, 24 Jul 2026 16: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 달 넘게 몸살 앓으며 인생 ‘내림굿’을 하는/받는 동안 내게는 당연하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났다. ‘내림굿’ 세 축인 숲·물 걷기, 아픔·삶 고치기, 새·나무 동무하기가 서로 엮으며 복잡다단하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빚어냈다. 한 생이 닫히고 또 다른 한 생이 열리는 카이로스였다. 화룡점정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각단을 잡고 간각을 세워 본다.  &nbsp;  최근 5년 동안 내 삶 이정표 제시와 각성,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숲·물에서 일어났다. 장소가 아니라 주체로서 숲·물은 내 스승이었다.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보·지식은 인간인 내 사유와 독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또한 미소 생명 팡이시질(networking) 속에 있고, 영감과 동력은 숲·물에서 온다. 도봉산 회룡 계곡과 방이 습지, 궉림(鴌林)이 그곳이다.  &nbsp;  궉림(鴌林)은 매일 출근길에 40여 분가량 머무는 자그마한 숲이다. 관악구와 동작구 경계 지역으로 동서 방향 긴 능선과 남북 방향 골들로 오종종하게 구성된 이름 없는 숲을 궉림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 지성소에서 꿩이 울고 날갯짓하는 새벽 의례로 내가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아픔을 떠나보내고 새 삶을 맞아들인 일대 치유 사건으로 새겨졌다.  &nbsp;  봉황을 상징하는 꿩, 그래서 궉(鴌)이라 일컫는 새와 소통하고 나서, 이치에 따라 그 지성소 경계에 있는 물오리나무하고 소통을 이루었다. 물론 물오리나무가 나를 불러서였다. 물오리나무를 깊이 몰랐을 때 내가 고쳐 부른 이름이 ‘물팥버들’이었다. 소통 후 더욱 깊이 알고 나서 다시 고친 이름은 ‘메팥버들’이다. 옛사람 통찰이 옳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nbsp;  오리나무 한자 이름이 적양(赤楊)이다. 물오리나무처럼 물을 좋아해 습지에 산다. 다른 점은 버드나무처럼 물살이 약한 하류 습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물오리나무는 물살이 세고 빠른 상류 산 습지, 심지어 습지 아닌 산등성이에서도 잘 살아 산적양(山赤楊)이라 불렀다. 이런 이름은 콩과 식물과 같은 성질도 지닌 물오리나무를 정확하게 반영하니 제격이다.   &nbsp;  이렇게 거듭나 내 삶으로 들어온 물오리나무, 그러니까 ‘메팥버들’은 꿩과 더불어 씻김과 내림을 갈무리한 ‘몸주’며 ‘수호신’이다: 내 심신 온갖 질병을 고친 의사다: 반제 전선 참 동지다: 지구 아우라지·노나지 장엄 영주다. 인제 내게는 그가 소도다; 그가 궉궁 신장이다; 내가 “다시 또다시 돌아갈”(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자리다; 솟아서 날아오를 자궁이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4/pimg_63920507114310590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946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프고 난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link><pubDate>Wed, 22 Jul 2026 16: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 달 몸살 정점을 찍었던 ‘기침 근육통’에는 오해가 따라다닌다. 기침이 일어나는 기관이나 기관지 근육에 생긴 통증이라 생각해 ‘그토록 심하다면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부추긴다. 아니다. 기침을 효율성 있게 하도록 돕는 늑간근, 복근, 광배근, 횡격막이 격하게 수축 운동해 기침이 끝난 뒤에 피로 또는 후유증으로 다양하고 기묘한 통증을 일으킨 경우다.       <br>불편하기로 따지자면 그 격렬한 통증부터 주목해야 옳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왜 그렇게 폭발 기침을 집중해서 일으켰는가다. 아침 일찍 한의원 도착해 원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날카롭고 매운 공기가 목구멍을 찌른다. 그럴만한 원인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5년 동안 변한 일이 없는 한적한 장소다. 장마철임을 고려해서 찬찬히 다시 톺아본다. 그렇다. 마른 식물!  &nbsp;  동물 식으로 말하면 식물 시체(!)가 원장실 전체에 즐비하다. 그동안 숲에 드나들면서 거둬온 나무줄기와 가지, 그 껍질, 풀잎, 꽃, 열매, 거기다 다양한 버섯까지 기억과 기림을 버무려 이곳저곳에서 웅얼거리고 있다. 식물 본성이 상실과 고통으로 들어왔다는 진실과 마주한 찰나부터 내 몸이 달리 반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돌연 감각 구멍이 열린 거다. 아파!  &nbsp;  어, 하는 어떤 시점부터 맹렬한 구토 같은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멈추기는커녕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슴을 두드릴 새도 남기지 않고 쇄도하듯 목 터져라, 컹컹거린다. 눈물, 콧물 범벅에 나중에는 정신까지 혼미해지더니, 급기야 기억 끈이 뚝 하고 끊어져 버린다. 언제 어떻게 기침이 멈췄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만들어 목을 헹군 죽염수 일부와 젖은 수건이 뒹군다.  &nbsp;  넋 빼고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식물 본성을 연속성에서만 생각해 왔던 지난 70년을 뒤집어엎은 일대 사건이었구나! 식물 본성을 나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으나 그렇게만 내 본성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진실 앞에서 통렬히 무릎 꿇은 사건이었구나! 그날 밤부터 기침 근육들이 눈물을 쏟으며 몸부림치는데 차마 신음을 아낄 수가 없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nbsp;  꼬박 닷새가 지나 걷기를 완전히 멈추고 휴식을 취하니 비로소 통증이 물러난다. 이 근육 통증이 물러남으로써 한 달 전 따끔거리는 위 증상에서 비롯되어 장 증상, 천장관절 증상, 우울 증상-웃자란 어른 증후군, 틈새 엄마 증후군-, 그리고 기침에 동반해 다시 찾아왔던 혈관운동 신경성 비염까지 도파니 사라진다. 70년 인생을 휘감았던 ‘귀마’가 스러진다. 참삶 동살이 든다!     <br>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정성 다해 집 안에 있는 기억·기림 식물이며 버섯을 거둬들인다. 어제 가지고 온 한의원 식물, 버섯과 함께 간동그려 집을 나선다. 내 자신이자 내 아픔이었던 이들을 내게 말을 걸어온 물오리나무 아래 모신다. 거듭난 생명으로 재회할 날 설레니, 섭섭함 넘어 서그러워진다. 비 젖은 영이 보송보송한 김을 피워올린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2/pimg_6392033468913928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592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파야 할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link><pubDate>Tue, 21 Jul 2026 16: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guid><description><![CDATA[<br>  &nbsp;  몸살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체중은 50kg 아래로 내려간다. 은근히 기분 갉아먹는 신열, 시난고난한 호흡기 증상, 무엇보다 기이한 폭발 기침이 신묘하게 기습 종료된 이후부터 대상포진처럼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근육통으로 영일 없다. 몇 날 며칠씩이나 잠에서 깨어 병이 건네는 이야기 듣다가 날 밤을 새우곤 한다. 허리가 아리고 다리는 파근하며 활동 감각이 휘주근하다. ‘은화처럼 맑은’ 영 줄 하나 겨우 부여잡고 진실을 뒤좇는다.   &nbsp;  모른 채 알아차리고 알아도 모른 채 한 달이 흐르고 보니, 이 시간 전체가 신병 속에서 씻김굿과 내림굿이 갈마든 커다란 굿판이었다. 내게 결핍과 상실 틈새로 때 이르게 주입된 식물성·여성성·성숙성을 씻어 내보내고(씻김굿), 늦게나마 건강한 그러나 낯선 동물성·남성성·유아성을 맞아들이는(내림굿) 의례·몸짓 또는 자세·언어가 재현되고 변주되는 시간이었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의학이 개입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nbsp;  급격하게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놀란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일흔 살 먹은 남자 사람이 50kg 미만 체중이라면, 게다가 술까지 주야장천 마셔댔다면, 더럭 암 걱정을 들먹여도 호들갑은 아닐 테다. 뾰족한 설명 방법이 없으니 그냥 빙그레 웃고 만다.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오늘은 오만 년 만에 숲 걷기 중단이다! 문이란 문은 죄다 열고 하루 종일 바람 길목에 오도카니 앉아 멍때림으로 휴식을 취한다.   &nbsp;   생색 없는 평온이 잠시 내려앉는다. 이 간이역에서 내릴 여행이 아니니 다음 행로에 유념한다. 어디인지 모르는 ‘솟을굿’ 역을 향해 다시 일어선다. 거기 또한 아플 만큼 아프고 나서야 닿을 곳인지 나는 모른다. 천명 받는 일이 무슨 상 받는 일은 아니니 전보다 더 깊은 신음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하는 일은 아닐까, 오히려 두렵다. 통증이 깊이 가라앉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사부자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밥을 먹어야겠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1/pimg_6392024714041242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403983</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살려주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link><pubDate>Thu, 16 Jul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살려주세요!” 내가 아니라 장점막 밖에서 나와 공생하는 미세 생명들이 이 다급한 말을 듣는다. 미세 생명들은 내게 이렇게 통역해 준다. “오늘은 지하철 갈아타고 걸어가지 말자. 그냥 쭉 가서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자.” 어르신 카드로 절약되는 교통비를 &lt;전쟁 없는 세상&gt; 단체에 기부하기 때문에 나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자고 결정한다.   &nbsp;  숭실대입구역에서 내려 승강장을 너덧 걸음 걸어가다가 시선이 갑자기 발치로 뚝 떨어진다. 거기 매미 한 개체가 힘겹게 버둥거리고 있다. 내가 거기로 얼른 다가서자, 덩치가 집채만 한 젊은 남자 사람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를 들어 올린다.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그에게 말한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나무한테 보내줄게.”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팝나무 줄기에 살짝 붙여준다. 천천히 힘들게 그가 나무를 타고 오른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라도 지하철역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만은 면할 테니 그 구원 요청은 일단 유효했다. <br>&nbsp;사실 이런 일은 내게 일상이다. 땅강아지, 지렁이, 나방, 무당벌레, 벌, 거미, 심지어 파리까지 수없이 살길을 찾아주었다. 오늘 일을 특별히 거론하는 며리는 내가 느닷없이 귀가 경로를 바꿨다, 즉 다른 경우와는 달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데서 결과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변화는 그만한 연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실 우연히 일어난 일조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팡이시질(hyphaeing), 그러니까 네트워킹 작용에 따르지만 요즘 내가 깊이 관심 두는 내밀하고도 정확한 감지 능력 문제의식에 맞춘 과정 배치가 아니었을까?  &nbsp;  서구 과학 인과율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내 인식 방법은 ‘소설’에 가깝다. 기껏해야 유사 과학 정도로 폄하될 줄 모르지 않는다. 소설이든 유사 과학이든 서구 과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소설이다. 인간 지성을 수학에 외주하여 만들어낸 서구 과학 이전 인류 고대 과학에서는 지식과 지혜가 분리되지 않았다. 지혜는 몸 알아차림에서 나오는 적응과 창조 능력이다. 이를 제거한 서구 과학은 일직선으로 제국주의 지식을 향해 질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시간이 없다. 고대 과학 지혜를 복원해야 인류가 살 수 있다. 내가 주창하는 “범주 인류학”이 바로 그런 자각에서 발원한 지성 운동이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서구 과학주의자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가로질러 간다. 최근 내가 경험한 놀라운 일 하나를 소개한다.    &nbsp;  책깨나 읽는 사람이라면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를 모를 수 없다. 그가 지닌 사상과 글쓰기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지나 나는 그 향모 자체에 지극한 관심이 갔다. 자료는 그리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았다. 볏과 식물로 향이 뛰어나고 북미 대륙 선주민은 지구 최초 식물로 여기며 그 향을 매우 귀하게 대한다는 정도였다. 접할 수 있는 길도 찾지 못했다. 외곽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레몬그라스라는 아로마에 가 닿았다. 볏과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로 향이 레몬 비슷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 레몬과는 전혀 무관하단다. 볏과 식물이라는 데에 희망을 걸고 옆지기한테 부탁해 그 아로마를 구했다. 적어도 내가 맡은 그 향은 레몬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 향은 벼 줄기나 잎에서 나는 향과 거의 똑같았다!   &nbsp;  열 살 이전 고향 논두렁 경험, 그 아득함 속에 묻혔던 벼 향이 시간 벽을 찰나에 부수고 기억을 불러냈다. 더 놀랍게도 나는 단박에 이 벼 향이 원시 형태 바닐라 향이라고 직감했다! 사실 벼 향에서 바닐라를 떠올리긴 불가능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낸 데는 밥에서 나는 향에 평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한국인도 밥 향을 골똘히 생각하는 경우는 없지만 나는 밥 향으로 훌륭한 아로마를 만들 수도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벼 향과 밥 향을 같은 선상에 올리자마자 직관이 발동했다.   &nbsp;  <br>어쭙잖은 내 서구 과학 지식이 반기를 들었다. “바닐라는 난초과 식물일 뿐 아니라 바닐라 향도 여러 복잡한 과정, 심지어 발효까지 거쳐야 추출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벼 줄기나 잎에서 나오겠는가?” 제법 오랫동안 나는 이 고대 지혜를 발설하지 못했다. 마음에 확신은 드는데 증명할 길이 없어서다. 매미 구조 사건 직후 내게 기이한(!) 용기가 피어올랐다. 두 단계를 거쳐 내 고대 지혜를 서구 과학이 증명한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nbsp;  내 가설 하나: 볏과 식물과 난초과 식물은 한 조상에 갈라져 나온 자손이다.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내 가설 둘: 벼 줄기나 잎에는 바닐라 향을 내도록 하는 성분이나 물질이 있다. 이 또한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좀 더 복잡한 세부 이야기가 존재할 테지만 내가 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확인” 말고는 서구 과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홀연한 카이로스 경험이 매미 구조 사건과 연동된다는 진실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로를 좇아 진실에 가 닿고 “살려주세요!”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반대한다면 그대가 옳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6/pimg_6391980003385038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49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아기와 사나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link><pubDate>Wed, 15 Jul 2026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guid><description><![CDATA[<br>  &nbsp;  70년 비밀을 통짜로 풀고 나니 아연 정적이 찾아든다. 모두 가만 내려놓고 나갈 생각 접은 채 양말 속옷 바느질로 오전을 다 보낸다. 살짝 이르게 국수 삶아 점심 먹고 60년 정든 정릉으로 향한다. 거기서는 무슨 목표나 목적 헤아림이 없어지고 무심히 풍경 속으로 배어들 수 있으니 내겐 수평 신성 공간으로 딱 적소다.   &nbsp;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천천히 걸으며 세월과 빛살을 촘촘히 헤아린다. 세월이 빚은 버섯을 아껴 보고, 빛살이 빚은 눈부신 경계를 기려 본다. 마르고 짧은 늦장마라 금천 물소리가 올 고운 바람결에도 휘어지며 뭉그러진다. 작디작은 쏠을 찾아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제 나름 여돌차서 고마움 증표 삼아 영상에 모신다.   &nbsp;  출입구 언저리를 수백 년째 지키고 계신 느티나무께 새삼 인사하고 염천 망토를 둘러쓴 채 숲을 나온다. 지하철 갈아타며 이동해 조용한 음식점에 든다. 그 집 김치는 휘뚜루마뚜루 후려 섞지 않아 밥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직사각형 배추 조각을 얹어 먹기 좋다. 습관대로 먹던 어느 순간 나는 그 김치 조각을 물에 넣는다!  &nbsp;  빨간 양념을 헹궈낸 뒤, 다시 김치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남은 양념을 마지막으로 고이 빨아내고, 밥 위에 착 얹는다. 지그시 눈 감고 오물오물 먹는다. 포한(抱恨)이 사라지는 강력한 시간이다. 내가 신어미도 신딸도 되어 뛰노는 내림굿 아기 과장이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온몸과 혼에 소름이 돋는다. 웃자란 어른 없다.<br>  &nbsp;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한다. 전과 달리 미세 의식 오솔길을 따라 “불연속”으로 기우는 마음 풍경을 느낀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특히 고통은 다 연속돼 있다는 느낌에 잠겼던 뿌연 시야가 아침 안개 걷히듯 맑아지는 중이다; 결핍과 상처로 들어온 여성성에 출구가 빼꼼히 열리는 중이다. 사나이 과장이다. 틈새 엄마 없다.   &nbsp;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니다. 갑자기 삭신이 쑤시고 신열이 오른다. 처음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와 같은 증상이다. 신음을 흘리며 그저 뒹굴던 한 찰나 내 입에서 나온 말: “그래 아가야, 이 아픔 지나면 이쁜 짓 한단다~” 나비 포옹해 주고 다독다독···. 아기가 웃으며 손 흔든다.   &nbsp;   다음 날 아침. 신열, 근육통, 밭은기침, 그리고 불면 때문에, 몸이 물먹인 솜 같다. 3km 훨씬 넘는 숲 걷기를 생략할까, 지난밤에 연속된 망설임이 들어서는 순간 듬직한 사나이가 야젓하게 앞으로 나선다. “이럴 때 숲에 들면 몸이 가벼워져~” 그래도 현실 몸은 일흔 늙은이라 천천히 걸어 숲을 향한다. 는개가 화답한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5/pimg_63919725168124467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3196</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해어화뎐(解語花傳)</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link><pubDate>Tue, 14 Jul 2026 1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guid><description><![CDATA[<br>  &nbsp;  한의원 탕전실 바깥쪽 긴 다용도실 창문에는 담쟁이덩굴이 흡착근(吸着根) 내리고 무성하게 살아간다. 그들 모습 지켜보면서 틈새로 하늘까지 우러를 수 있는 거기가 내겐 참 정겹다. 16년째 서 온 자리인데 올봄 어느 날 아연 그들에게 말 건넬 마음이 들었다. 낭풀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가 쌓여 시간 중력이 강해지면서 감지하기 전에 카이로스로 들이닥친 듯하다.   &nbsp;  내가 말을 건넨 까닭이 있다. 담쟁이덩굴 본성상 흡착면이 형성되는 공간을 우듬지가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덩굴이 번져가기 마련이다. 창문틀인 경우는 여닫으므로 문제가 된다. 닫을 때 잘릴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나는 손으로 걷어내고 창문을 닫았는데 귀찮아선지 간호사가 잘라내곤 했다. 내 제지로 다시 그러지는 않으나 근본 대책이 없어 변화가 필요했다.     &nbsp;  한창 자라던 덩굴 하나가 창문틀 모서리 돌아 흡착근을 붙이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상하지 않게 들어내고 덩굴을 손으로 받쳐 든 채 사람에게 하는 말과 똑같이 이야기한다. “여기로 넘어오시면 창문을 닫을 때 잘립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이렇게 바깥을 향해 올라가세요.” 덧붙여 말한다. “저기 위쪽에 계신 분들한테도 이 말씀을 전해주세요.”   &nbsp;  나는 우듬지가 향해야 할 곳을 가리켜 잡아주고 다른 줄기와 잎을 이용해 임시 고정 상태로 만들어준다. 매일 살펴본다.&nbsp;두세 덩굴이 고개를 살짝 들이미는 기척을 보여서 똑같이 말하고 방향을 잡아준다. 일주일쯤 되자 변화된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능히 들어올 수 있음에도 더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행렬이 멈춰 섰다. 손댈 수 없이 높은 곳도 마찬가지다.<br>  아래쪽-내가 말하고 손댔던 곳&nbsp;<br>위쪽-말 전해 달랬던 곳&nbsp;마른 늦장마긴 해도 창문 닫을 일이 조금 더 잦은 요즘 창가에는 그들과 나 사이 평화가 낭자하다. 낭풀들은 인간 말을 알아듣는다. 인간이 그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따름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다; 그 곡절이 타락과 범죄로 뒤엉켜 있다. 어떤 정치 현안보다도 끽긴한 과제가 바로 이 타락과 범죄를 자각하는 일이다. 진심으로 참회하며 낭풀 아래로!<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4/pimg_63919633194259351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91132</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울증, 그 또 다른 변주(하): 틈새 엄마 증후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link><pubDate>Sat, 11 Jul 2026 1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guid><description><![CDATA[<br>  &nbsp;  모유를 상실한 영아가 홀로 힘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슬기(!)는 장내 미생물 네트워킹에서 왔다. 인간 진화 정보에서는 홀로 힘으로 살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식이 왔고. 요건 하나: 어른일 것. 그 이야기는 했다. 인제는 남은 한 요건을 이야기해 마무리 지을 차례다: 여성일 것. 우리 속담은 이렇게 표현한다. “홀어미 삼 년이면 쌀이 서 말, 홀아비 삼 년이면 이가 서 말.” 속담 다른 판본은 홀어미 대신 과부를 넣는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홀아비와 맞추려면 홀어미를 넣는 게 옳다. 자식 키우는 위치를 부가했을 때 그 차이가 한껏 더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nbsp;  내게는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제자가 한 움큼 있다. 제법 오래전 집에서 식사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결혼한 여제자가 제 남편을 초대해 나중에 도착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느낀 이상한 광경을 보고 한마디한다. “어? 왜 선생님이 주방에 계시죠? 제자들은 앉아서 먹기만 하고···.” 대뜸 대답이 돌아온다. “어! 선생님 우리 엄마거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는 식이다. 내가 남선생이고 제자 모두가 여제자이지도 않은데 이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모임은 마치 ‘모녀 동맹’과 흡사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자타공인으로.     &nbsp;  나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엄마 노릇을 해왔다. 세상을 가르치고 삶을 의논하는 일에 더해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했으니 일테면 “틈새” 엄마였다. 그들에게 한 엄마 노릇은 나 자신에게 한 엄마 노릇 연장선에 있다. 사실상 한평생 모성 결핍 상태에서 웃자란 어른으로 살아왔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그런 빈자리가 보이는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감수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결혼한 뒤에 내 옆지기에게도 딸에게도 엄마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버지로 살아왔다. 인정한다,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고 또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nbsp;  그 모순 역시 인정한다, 다른 선택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사실을; 내밀 영웅이 벌인 장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질병 방어기제임과 동시에 영성 치유인,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역설 사건 보이지 않는 마주 가장자리에는 이 통렬한 각성이 요동한다. 짐승 과장(科場), 아기 과장, 사내(아비) 과장을 정색하고 들여놓은 내림굿을 통해 70년 모순을 달여내니 바야흐로 후천개벽(後天開闢) 시대가 도래한다. 그 들머리에 죽을 만큼 희생한 결과 쌀 서 말 하야니 놓인 대신, 뼈아프게 깨친 결과 아우라지 노나지 물이 변한 젖 서 말이 뽀야니 놓여 있다. 그 젖 먹고 참 건강으로 살아간다.<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1/pimg_6391937541864565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5818</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울증, 그 또 다른 변주(상): 웃자란 어른 증후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link><pubDate>Fri, 10 Jul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guid><description><![CDATA[<br>  &nbsp;  &lt;또 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gt;에서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진실에는 또 다른 진실 하나가 결합한다.   &nbsp;  모유에는 모유올리고당(HMO) 성분이 풍부하다. 이 성분을 먹는 생명체는 오직 비피도박테리움뿐이다. 그래서 장내 점유율 1위가 되고 훌륭한 면역 교사로 활동할 수 있다. 모유를 먹지 못하는 영아는 이 기전을 상실하였으므로 비피도박테리움 우위가 깨져 성인 장내 상태와 같아진다. 나와 남/적을 구별하기도 전에 때 이른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lt;꿩이 나를 초대했다!&gt;에서 ‘6개월도 채 안 된 무렵부터 걸었다’라고 한 말과 직결된다.   &nbsp;  아기인 적 없이 어른이 된 삶은 전방위 혼잣손이 된다. 태초부터 모든 고민과 결정을 혼자하고 감당도 혼자 한다. 결정 전에는 망설이고 망설이며, 결정 후에는 자책하고 자책한다. 그럼에도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아기가 자라 어른 되는 연착륙 과정을 통해 도움 청하는 일이 불가결한 사회 행동이라는 진리를 배울 수 없어서다. 사회관계망에서 소외되어 두름손도 내밀손도 점점 허약해진다. 남 손 안 타는 착한 삶은 슬프게 사위어 간다.   &nbsp;  웃자란 어른이 그렇게 우울장애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아 소리 없이 희생되는 풍경 건너편에 늦깎이 어른이 존재한다. 어른이라 자처하지만, 제국 자본이 요구하는 고급 지식·기술을 지닌 가짜 어른, 실제로는 ‘사특한 아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종자다. 이 사특한 아이들 패악과 욕설, 그리고 야비한 조롱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대한민국엔 대놓고 함부로 커밍아웃한 저들이 싸지르는 배설물이 넘쳐난다.  &nbsp;  중첩 식민지 허울 대한민국에서 우울장애, 곧 ‘웃자란 어른 증후군’을 앓으며 70년 살아온 나는 내가 처한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오늘 각성을 죽은 다음에서라도 기억하고 증언하련다. 그래야 내 과거가 귀환하지 않을 테니까("La seule façon d'éviter le retour du passé est de ne pas l'oublier." _Simone Veil); 그렇게 성찰과 치유를 거친 건강한 내 식물성, 여성성, 성숙성이 물팥버들과 대화할 테니까.     <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0/pimg_63919292541354121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428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물팥버들이 나를 불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link><pubDate>Wed, 08 Jul 2026 16: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guid><description><![CDATA[<br>  &nbsp;  5년째 걷는 출근길 숲으로 일요일 아침에 들어가기는 처음이다. 먼 데 있는 산이나 강으로 향했던 습관을 깨뜨리면서 생기는 낯섦과 적어도 천 번 이상 걸었던 낯익음이 얽혀 묘하게 설렌다. 더군다나 최근에 만난 물팥버들(물오리나무) 상태를 빛이 충분한 조건에서 자세히 살피려는 목적으로 가는 길이라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과연 어떨까?   &nbsp;  이 물팥버들과는 꿩이 나를 초대했던 그 사건 직후 출근길에서 처음 만났다. 그것도 그 사건이 일어난 곳, 바로 앞에서였다. 그동안 그렇게 여러 번 그 앞을 지나면서도 거기에 그 물팥버들이 살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예외 중에서도 별난 예외다. 이 숲에서 내가 지나는 길 양옆 나무나 풀을 모르고 무심코 지나는 경우가 거의 전혀 없어서다.   &nbsp;  내가 그 숲을 걷는 시각쯤 해가 떠 있긴 하지만 북쪽 사면이라 아직 컴컴하다. 꿩 사건이 일어났던 내 지성소를 향해 걸어가는 중 문득 한 나무가 어둠 속에서 나를 멈춰 세웠다. 얼굴을 바짝 대고 스마트폰 전등을 켰다. 아뿔싸, 그는 물팥버들이었다! 왜 여태 몰랐을까. 물팥버들이 내 탐색 이미지에 없지도 않은데. 뭔가 특별한 곡절이 있다.  &nbsp;  <br>그나저나 나무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피 빛깔이 어둡고 들떠 있다. 도장지(徒長枝·웃자람가지)가 군데군데 있고 그나마 거기 새잎도 부실하다. 수관 쪽은 무성한 다른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밝은 날 꼼꼼히 봐야겠다. 우선 내 생명 에너지 파동으로 응급 처방한다. 풀리지 않는 의문과 더불어 가슴이 더욱 저려 온다.   &nbsp;  나무 높이나 부피, 그리고 서 있는 위치로 보아 이 숲에 있는 물팥버들을 낳은 엄마 나무가 틀림없다. 나는 다시 문득,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숲 동쪽 물팥버들 가족 반대편으로 향한다. 거기도 물팥버들 가족이 혹 있을까 기대해서다. 먼저 귀에 들어온 생명은 덤불 속에 모습 감춘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도란대는 소리다. “미우미우 배배~”  &nbsp;  갑자기, 그중 하나가 튀어나와 포르르 날아오른다. 내 눈길이 닿는 순간, 그가 한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는다. 아뿔싸, 물팥버들이다! 이 작은 길 또한 그동안 수백 번 걸었고 한때 내 신성 공간이었음에도 물팥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럴 수는 없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 배치가 똑같다: 사건을 새가 열고, 나무가 닫는다. <br>  &nbsp;  나는 물팥버들 앞에 우뚝 서서, 엄밀한 깨침 마주 가장자리 틈새를 응시한다. 도봉산 회룡 계곡 노나지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과정을 되돌아본다. 인과 관계에 있지 않은 숲 걷기와 글 읽기가 동시성을 거치며 인과 관계로 엮여 드는 내력을 톺아본다. 여러 결이 서로 맞물려 복잡해 보이는 서사를 되작거린다. queer 변곡점 윤곽이 드러난다.  &nbsp;  숲과 물을 걸으며 낭풀을 공부하는 동안 최후 초미 관심사는 낭풀과 소통-합일하는 일이었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호주 생물학자 모니카 갈리아노처럼 낭풀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지점에서 나는 늘 아득한 심정으로 서성거렸다. 이런 경우 무슨 ‘방법’ 따위를 찾지 않는 나이기에 그냥 묻고 기다릴 뿐이었다.  &nbsp;  문제 한가운데서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로 향했는데 노나지 인식으로 번져가자 새로운 서사가 빚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정체성, 좀 더 정확히는 경향성이 결핍·상처·질병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총체로 깨달았다; 치유와 경계 지음이 수행되어야 열릴 길임을 알아차렸다. 걷기·독서·질병·새가 어울려 인생 내림굿 한바탕을 짰다.  &nbsp;  70년 내 경향성은 모유 결여 또는 상실이라는 태초 사건에서 발원했다. 여기서 온 만성 소화기 장애, 천장관절 증후군, 우울장애가 생을 관통했다. 우울장애는 피학 본성을 지닌 식물성, 여성성, 성숙성으로 분화했다: 저항할 수 없는 영아가 받아들인 전천후 수용성, 자기를 파괴하는 희생, 전방위 혼잣손. 모든 문제가 몰아 터진 스무날이었다.  &nbsp;  만성 소화기 장애와 천장관절 증후군은 이 스무날 들머리 사흘에 앓은 독한 몸살, 신열로 사라졌다. 우울장애 첫 부분인 식물성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 방이 습지 물까치, 소악산(素岳山) 꿩,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열어젖혀 내 본성인 동물성을 분명히 하고 피학 치유, 가학 참회에 가 닿도록 물팥버들이 마무리 지어놓은 옴니버스 이야기들이다.   &nbsp;  이 이야기에서 물팥버들은 새를 거치기는 했지만 내게 말을 건넸다;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이는 필수 과정이므로 다음 소통이 어떨지는 온전히 열린 결말 앞에 있다. 그 전개가 내 몫임이 더 분명해짐과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더 분명해졌다; 아득함이 엷어졌다. 남은 문제를 일상에서 투명하게 맞이할수록 숲은 가까워질 테다. 똑!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8/pimg_6391912576199791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8071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탱자나무 애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link><pubDate>Thu, 02 Jul 2026 14: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guid><description><![CDATA[<br>  &nbsp;  출근길 숲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탱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새잎 나는 초봄부터 모든 변화가 스러지는 늦가을까지 매일 아침 그 앞에 서서 숨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나무다. 지난 주말을 보낸 다음 화요일 새벽, 나는 그만 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참하게 줄기·가지들이 잘려 나갔고, 열매는 남김없이 제거되었으며, 끈에 묶여 뒤로 잡아당겨져 있었다!  &nbsp;  근린공원 관리자가 탱자나무 가시에 주민이 다칠까, 염려한 나머지 이와 같은 선행을 저질렀을 테다. 대충 모양 잡아 전정 가위로 기탄없이 줄기·가지를 잘라내고, 잘린 것들 길섶에 던져버리고, 큰 줄기 끈으로 묶어 길 뒤로 젖혀 동여매고, 서둘러 나아가는 조경(造景)인 모습을 상상한다: 한껏 부산떨며 돈을 향해 내달리는(조경(躁競)) 후미진 변방 살풍경 한 폭. <br>&nbsp;말단 직원 어느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풍조가 그렇고, 인류 문명 기조가 그렇다. 물론 제국 지배층 상위 0.1%가 본진이고, 석기시대 삶을 지켜내고 있는 부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식민주의 세례를 받는 위치에 따라 각각 깜냥대로 부역하고 있다. 비인간 생명, 특히 식물을 함부로 약탈하고, 살육하는 주체인 한 누구도 이 죄를 진다.  &nbsp;  약탈·살육당하는 나무를 마주하고 눈물 흘리는 일이 다른 인간 관지에서 보면 해괴하거나 과장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랴. 내게는, 그러나, 생각에 따라 한 행동이 아니다. 즉각 일어나는 감응이다. 이 감응이 나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내 방식이다. 감응하는 이 힘은 내게만 있지 않다. 인간 모두에게 있는데, 내동댕이쳤을 뿐이다. 한시바삐 되찾아야 한다. <br>  &nbsp;  떨궈버린 탱자 미숙과 몇을 가시덤불 속에서 찾아 거둔다. 그 슬픔과 아픔을 길이 기억하고자 김선우 시집 곁에 걸어둔다. 모름지기 내가 슬프고 아플 때마다 이 앞에 서리라; 참회와 합일이 동시성으로 다가와서 고갈된 내 영성을 채우리라. 오늘 아침 다시 그 앞에 선다. 제 어둠 투사해 탱자나무 테러한 인간 죄를 대신 짊어진 환영이 떠오른다. 끌어안고 떠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2/pimg_63918600438471915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988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꿩에서 물오리나무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link><pubDate>Tue, 30 Jun 2026 1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이 서재 이름은 『싸리·버들 글숲』이다.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을 나란히 놓아 내 식물 본성에 갈음한 표현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10세 이전까지 자란 내게 그 시절 가장 좋아한 식물이 바로 싸리나무다. 어른이 된 뒤 식물에 본격 관심을 가지면서는 내 본성 닮은 버드나무를 깊이 ‘애정’하게 되었다. 사뭇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둘을 내 삶 지향으로 묶어 서재명으로 했다.   &nbsp;  최근 도봉산 회룡(回龍) 계곡 아우라지를 드나들면서 그 일대가 물오리나무 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오리나무 한자식 이름은 산적양(山赤楊)이다. 목재가 붉은빛을 내어 생긴 이름인 오리나무, 그러니까 적양(赤楊)과 비교해 ‘산’을 덧붙였다.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왜 ‘산’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물오리나무를 버드나무(楊)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nbsp;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도 아니면서 버드나무처럼 고도한 정화 능력을 지닌다. 이런 점을 우리 옛사람들은 직관한 듯하다. 그뿐 아니다. 물오리나무는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없어야 함에도 있는 것은 치워 주고, 있어야 함에도 없는 것은 채워 주어서,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 본성을 한 몸에 구현한 queer 나무다. 꽃말이 ‘장엄’인 며리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br>  오리나무 가지 사이로 저 멀리 도봉산 포대능선이 보인다&nbsp;  물오리나무라는 이름도 산적양이라는 이름도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제 내가 이름을 바꾼다: 물팥버들 또는 물팥버드나무. 물가에 사는 나무바탕(木質) 붉은 버들 또는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콩 가족인 팥이 붉은빛이니 역설 이름 표현으로 ‘똑’이다. 사실 이런 탐색과 상상이 일어난 건 &lt;꿩이 나를 초대했다!&gt; 사건 이후다. 꿩과 소통하니 나무와 소통하는 실마리가 열리더라는 증언이다.  &nbsp;  불과 3m 앞에서 4분가량 꿩이 펼쳐낸, 신비하고 상서로운 퍼포먼스는 평생 잊지 못할 카이로스 사건이다. 꿩이 찰나마다 드러내는 근엄한 자태, 마지막 우람하게 집결한 소리와 날갯짓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나는 기어이 가설 하나를 세운다: 봉황새 이미지는 꿩에서 발원했다. 즉시 자료를 검색한다. 빙고! 여기에 꼭 맞는 글자 궉(鴌)이 있다; 하늘 새 봉황은 본디 꿩이었다.  &nbsp;  봉황 현신인 꿩을 만난 닷새 뒤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으로 향한다. 아우라지, 그러니까 노나지 물팥버들께 물과 절로 예를 갖춘다. 말갛고 서늘한 경계 지음이야말로 융합·회통으로 더 엄밀하게 이끈다는 진리를 전방위·전천후 통증과 결 다른 동시성으로 가르치신 숲과 물과 바람, 그리고 빛에 감사 올린다. 천장관절 통증이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내린 오후, 나는 관음 미소에 배어든다.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30/pimg_63918430307766856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6467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4.16연대 첫 후원의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link><pubDate>Fri, 26 Jun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26/pimg_6391806385787813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604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꿩이 나를 초대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0941</link><pubDate>Tue, 23 Jun 2026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50941</guid><description><![CDATA[&nbsp;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가 자라 살아가면서 만성 소화장애와 우울장애에 시달렸다는 내 이야기는 남은 진실 하나를 더 품고 있다. 미음을 위험으로 감지한 아기는 이 세상을 홀로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 6개월이 채 안 된 무렵부터 걸었고 한 달 뒤에는 뛰었다. 가족과 이웃은 신동이라 했으되 너무 일찍 걸은 아기 무릎 사이가 벌어져 직립과 보행에 지장을 주고 천추(엉치뼈)가 예각이 되어 허리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천장(엉치뼈와 엉덩뼈)관절 증후군으로 발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nbsp;  지난 일요일(6. 21.), 바로 그 천장관절 통증이 절정에 이르렀다. 실은 그 전날 오전부터 징조가 심상치 않았으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아끼는 사람들과 술까지 한잔 마시고 늦게 들어가 잠자리에 든 결과 새벽부터 신열이 뜨고 전신이 괴로워 중간에 깨고 말았다. 간신히 수습해 일요일 아침에 할 일을 챙겨나간다. 몸이 점점 더 가라앉는다. 천장관절 통증과 자주 겹치는 장 증상인 후중감(後重感)까지 함께 달려들어 상황은 악화일로다. 마침내, 그분까지 오시니 속수무책이다: 천근만근 우울감. 표정 펴기가 힘들다.  &nbsp;  펴기 힘든 표정을 가족 앞에서 애써 펴고 걷기 어려운 발걸음으로 갈 곳은 한군데다: 방이 습지. 심신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그대로 담은 채 나는 천천히 걸어 습지로 들어선다. 물억새가 한층 싱그럽다. 그 사이 새 가족이 생긴 논병아리며 물닭이 달라진 몸짓을 펼쳐낸다. 그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으며 순간순간 통증과 우울감을 달랜다. 관찰 덱을 한 바퀴 돌아 초막 있는 곳에 이르니 물까치들이 심상한 풍경 속에 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넨다. “객~깨깨깨깨깩!”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받는다. “객~깨깨깨깨깩!”  &nbsp;  그들은 경계도 주목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는 길에 주운 낙과 살구와 복숭아를 높다란 기둥 위에 올려놓는다. 선물, 아니 예물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소 닭 보듯 할 며리는 없다. 비 맞아 물크러진 오디를 손에 꼭 쥐고 습지를 떠난다. 심신 괴로움 전반이 조금 가벼워진다. 아껴 걸어서 그런 듯하다. 밖에서 가족과 만나,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반주 곁들여 김치찜을 먹는다. 딸아이가 심상한 말투로 소주 두 병을 주문하자 옆지기가 14금짜리 축하를 건넨다: 서방님 든든하시겠사옵니다.       &nbsp;  문제는 다시 그날 밤. 전날처럼 신열이 뜨고 삭신이 쑤신다. 특히 천장관절 피해 경직이나 가해 왜곡을 풀기 위해 풀어준 근육 중심으로 이불만 닿아도 아프다. 심지어 눈알까지 아프다. 그러고 보니 피부, 근육, 뼈마디, 위, 장, 뇌, 감정 통틀어 안 아픈 데가 없다. 어느 순간 잠에 떨어졌다가 새벽에 깬다. 괴로움은 여전한 듯한데 뭔가 다르다. 특히 천장관절 통증과 후중감이 약해져 전신 통증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난다. 결국 신열이 통증을 조절해 주었다. 아직은 얼얼한 상태로 일어나 앉아 사건 해석에 들어간다.  <br> 아우라지를 노나지로 받아들이게 한 도봉산 회룡계 가르침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내가 동물인 인간임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식물과 관념 합일한 잘못을 다시 푼다: 나는 허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역자일 뿐 아니라 인간 생명으로서도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자연 착취에 가담한 부역자라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부역자 꼴에 주제넘게 나무, 풀, 버섯, 그리고 물과 동지인 측면만 내세웠다. 이 잘못을 깨달으려 방향 바꾸는 데서는 물까치, 내 삶에 박힌 자발 부역을 깨닫는 데서는 천장관절 통증이 스승이었다.   &nbsp;  깨달음에 감사하며 잠든 월요일 밤이 지나갔다. 몸살기는 남아 있지만 치유 국면이 확실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길 숲으로 향한다. 내가 청와대 뒤 백악산에 빗대서 소(백)악산이라 부르는 숲 들머리에 이르렀을 때 우렁찬 꿩 소리가 울려 퍼진다. 꿩은 금속성 소리를 짧게 두 번 질러서 한 울음을 끝낸다. 다음까지 3~5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꿩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그 시차를 염두에 두고 녹음할 장소로 간다. 매일 멈춰 서서 스스로 발견한 호흡법을 가다듬는 내 지성소다. 거기에, 꿩 한 분이 우뚝 서 계신다!     &nbsp;  순간 전율이 일어난다. 여느 때 같으면 내 발소리를 듣고 벌써 도망갔을 텐데 그는 나와 시선을 90도로 한 채 도도히 서 있었다. 내가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과정에서 전혀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이따금 나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4분 가까이 고요히 거닐다가 멈춰 서서 나를 다시 응시하더니 앞뒤 깃 고르기를 새삼스럽게 한다. 뭔가 결행에 옮길 시점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 그는 헌걸찬 소리를 두 번 내지르더니 뒷날개를 힘차게 푸드덕거린다. 나는 머리를 깊이 숙인다: 저를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br>  왕국 경계를 선언하고 왕비가 알현할 시각임을 선포한(時報) 뒤 제왕은 다시 처음 도도한 자세로 돌아가 고요에 깃든다. 나는 바람 흐르듯 숲에서 나온다. 소리만이라도 듣겠다는 소원 넘어 그 자태까지 보여주신 장엄 융해, queer 합일로 ‘제대로 노누면 반드시 아우라진다’는 가르침이 일단락된다. 몸살 맘살 남은 기운이 역력해도 나는 바야흐로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현실 삶, 그 구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아직 잘 모른다. 남은 병기를 잘 다독거리며 더 엄밀·섬밀한 삶으로 나아간다. 다시 니마 고마다.<br><br> ]]></description></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queer 공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link><pubDate>Thu, 18 Jun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guid><description><![CDATA[<br>  &nbsp;  칠고습지(七顧濕地)랄까. 무슨 기대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궁금해서 방이 습지로 7번째 향한다. 매번 무작위로 바뀌는 queer 세계를 힘닿는 대로 섬세하게 탐색하여, 멀찌막이나마 참여할 기회에 가 닿으려 해서다. 관찰 덱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어 갑갑하긴 하지만 작은 생명들을 보호하려면 불가피한 제한이기도 할 테니 거기서 멈춘다.   &nbsp;  꽃창포, 개구리밥, 노랑어리연, 수련, 갈대들이 그때그때 변하는 모습을 기억과 감탄에 버무려 담아둔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검보라빛 오디를 따거나 주워서 먹는다. 이드거니 서서 논병아리가 한가로이 깃 고르는 풍경에 잠겨 든다. 천천히 한 바퀴 돌아 우거진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 선다. 물까치 가족이 사부작사부작 가지를 넘나든다.<br>  &nbsp;  영민하고 경계심 많은 물까치가 내 존재를 모를 리 없음에도 사뭇 고요하다. 내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은 물까치가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어느 순간 그가 “객~깨깨깨깨깩!” 말을 건넨다. 이는 지난번 길게 되풀이했던 경계에 찬 질문 투, “크르르르르~!?”와 다르다. 경계를 푼 음조다. 나도 따라 한다. “객~깨깨깨깨깩!”   &nbsp;  잠시 뒤 이곳저곳에서 여러 물까치가 “객~깨깨깨깨깩!”을 마치 돌림노래처럼 불러댄다. 자유로움과 안전감이 전해진다. queer 생명으로 낭자한 이 습지에서 우리는 queer 공명으로 삶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조절한다. 나를 품은 생명 파동이 습지 숲에 물결쳐 간다. 우리는 숲에서 나와 제국의 개들이 왜자기는 올림픽공원역을 가로지른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8/pimg_781606115515729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41629</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 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link><pubDate>Tue, 09 Jun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guid><description><![CDATA[<br>  &nbsp;  우울장애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복잡한 증후군이다. 그 가운데 내가 깊이 유념하며 치료해 온 측면은 자기 경계를 건강하게 세우지 못해 일어난 “자기 비하” 나아가 “자기부정”이다. 타자를 당당하게, 대등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배려·양보·관용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먹잇감 되게 하는 모진 경향성이다. 그 끄트머리에 “자기 살해”가 도사린다.   &nbsp;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송주현, 2026)에 따르면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   &nbsp;  &lt;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gt;에서 내 위장질환 문제를 이야기한 바 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 시절 아밀라아제 결여가 어떻게 일생을 뒤흔들었으며, 그 진실을 알고 나서 어떻게 변했는지가 그 내용이었다. 그보다 더 육중한 오늘 사연은 내 우울장애 이야기다; 같은 곳에서 발원한 두 질환이 내 인생 전체 방향을 더불어 규정하고 조정했다는 각성 이야기다.    &nbsp;  내가 40대 중반에 수능 쳐서 한의대 입학해 50대 초반에 한의사 그것도 숙의(熟議)로 정신 치료하는 사람이 된 까닭은 50년 동안 시달려온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한 내 병을 스스로 고치려,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는 주위 뿌리치고 건곤일척 도박을 감행했다. 성취만큼이나 좌절도 심했던 임상이지만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중이다; 우울 골갱이도 남아 있는 채다.  <br> 물론 그 골갱이도 인제 고갱이로 변할 테다. 위장질환 경우처럼 그 시원(始原) 곡절을 마침내 알았기 때문이다. 이 두 변화는 치유를 근본 지점에 가 닿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생명에 배어든 식물성과 여성성이 몸 마음 살갗을 찢어 들어온 상처였음을 통렬히 각성하게 했다. 그 각성은 온정과 신비 경사각을 단박에 쳐 내려, 상처 이전 본성이 지닌 임계점에 다시 세웠다.    &nbsp;  임계질량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종간 공명과 소통을 꿈꿀 수 없다는 진리 앞에 허리 접도록 깨우치신 도봉 큰 스승께 8배 올린다; 본성 최선으로 흐르게 길을 트도록 가르치신 회룡 큰 스승께 “고맙습니다!” 예물 드린다; 동시성을 인과성에 붙들어 매려 했던 아둔함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신 물까치 큰 스승께 “객~깨깨깨깨깩!” 찬가 바친다. 노나지가 참 아우라지 길을 연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9/pimg_781606115514841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2515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물까치가 나를 불렀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link><pubDate>Thu, 04 Jun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guid><description><![CDATA[<br>  &nbsp;  물까치는 60년도 썩 넘은 내 기억 역사 속에 암암히 살아 있는 새다. 그 소리도 메나리토리처럼 귀에 각인돼 있다. 이따금 그 날렵한 자태와 파스텔 톤 물색에 눈이 가곤 하지만 보통은 출근길 숲에서나 도봉산 숲에서나 방이 습지 숲에서나 특별한 주의 없이 익숙하게 대하고 지나친다. 오늘 그 오랜 습관이 툭 끊어진다.   &nbsp;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를 나와 자주 가는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지하철로 곧장 방이 습지를 향한다. 달력 구분으로는 오늘이 봄 마지막 날이지만 습지는 이미 여름에 이드거니 들어와 있다. 볕이 후더분해서 누리가 누글누글하다. 물에 떠 있는 논병아리도 굼뜨다. 나 또한 땀 아낄 요량으로 소심히 움직인다.  &nbsp;  꾀꼬리, 되지빠귀,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들 목소리에 귀를 열고 무심히 걷던 어느 순간, 내 주위를 따라 돌고 있는 새 기척이 다가온다. 물까치다. 걸음을 멈춘다. 그가 같은 음성으로 내 존재를 탐색한다: 크르르르~!? 곧이어, 숲 전체에 흩어져 있던 물까치들이 집결한다. 내 주위를 도는 그가 더욱 가까이 다가든다.<br>  &nbsp;  마치 공격하듯이 근접 비행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더 오래 머물며 다시 말한다: 크르르르르~!? 다음 순간 내 입에서 같고 또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크르르르르~?! 열댓 번 주고받더니 풀어놓는다. 내가 서서히 움직이자 집결했던 무리도, 말을 걸었던 그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도, 떠난다.   &nbsp;  다음 일이 궁금하다. 그들이, 아니면 그만이라도 나를 기억할까? 다른 궁금증이 하나 더 있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에서 내가 “크르르르르~?!” 말하면 거기 물까치들도 대답할까? 아무래도 이거까진 무리지 싶다.^^ 뭐, 괜찮다. 새가 이리 말을 걸어왔으니, 길이 보인다. 여간해서는 생략할 수 없는 동물 나를 응시한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4/pimg_781606115514339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6281</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 또다시, 인생 아우라지 혹은 노나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link><pubDate>Tue, 02 Jun 2026 16: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guid><description><![CDATA[&nbsp;일기 예보는 분명히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도봉산은 어쨌으려나 궁금하다. 지난주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 골짜기 들머리에 도착했다. 회룡천 물부터 살핀다. 역시나 오히려 지난주보다 수량이 줄었다. 아우라지 상황도 마찬가지다. 복류 지점이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지난번 복류 웅덩이는 아예 말라버렸다.  &nbsp;  접지하며 앉아서 찬찬히 살핀다. 돌 사이로 낙엽이 쌓여 길을 막아 물이 빙빙 돌며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열어주자 후련하게 물이 흐르더니 금세 말간 줄기를 되찾는다. 돌돌 여돌차게 들리는 물소리가 한결 더 경쾌하다. 정신을 명징하게 만드는 소리다. 커다란 폭포 소리도 감동을 주지만 작디작은 쏠 소리가 이럴 땐 훨씬 더 찰지게 배어든다. <br>  &nbsp;  숲에 빙의되어 숨 쉬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산초나무가 손짓한다. 건너편 비탈 활엽수 뒤에 몸을 숨겼던 소나무도 슬며시 나선다. 돌 틈과 나무 사이 좁은 땅에 깜냥 맞춰 이고들빼기, 좀깨잎나무, 졸방제비꽃, 주름조개풀들이 해를 향해 까치발하고 있다. 빛살과 마주하는 온갖 방식으로 조그만 숲은 queer 자체다.  &nbsp;  헬리콥터가 온 산을 뒤흔들며 다가와 사패산 보루 쪽에 머문다. 사고가 난 듯 한참이나 지나고야 떠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머니 같은 산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맹수 같기도 한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는&nbsp;아우라지도&nbsp;‘노나지’다. 아우라지라고 거슬러 찾아온 내게 여기는 그런&nbsp;‘나누라지’다:&nbsp;섣부른 신비주의&nbsp;합일보다 엄연한 경계 앞에서 투명하라.  &nbsp;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제 마주한 현실이 마지막 승부수를 요구한다면 어찌할까. 무엇이 승부가 될까. 수는 있을까.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내 황석공(黃石公)이신 도봉산 회룡계께서 일묵만뢰(一黙萬雷) 가르치실 테다.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날 때 엄숙과 질탕이 갈마들며 심사가 묘연해진다. 오라시면 오고 가라시면 갈 따름이다.    &nbsp;* '노나지'는 분리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노누다'에서 끌어와 새로 만든 말이다.<br>&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2/pimg_781606115514202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13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link><pubDate>Sat, 30 May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guid><description><![CDATA[&nbsp;요 한해를 빼고 거의 70년 동안 나는 위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는 말고 서울 와 살면서부터만 돌이켜봐도 배앓이, 게우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집 차고 눅눅한 방에서 배를 웅크려 안고 뺑뺑 돌던 기억이, 이따금 마치 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러 가지 위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렇다 할 치료를 하지 않고 견뎠다. 왜 그런지 생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다음에는 더러 한약을 달여 먹곤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깊이 관심 두지 않았다.   &nbsp;  70줄에 접어든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벼락같은 사실과 맞닥뜨린다: 생후 1년 이내 영아에게는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가 분비되지 않는다! 이 시기 동안은 모유를 먹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내가 먹은 음식은 모유가 아니라 미음이었다. 어머니한테서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먹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누구이랴. 당사자인 아기가 자라서 의료인이 된 뒤에도 20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을 바탕으로 뭔가 알아차리기란 벼락 맞고 천재 되는 일과 같다.<br>&nbsp;인간이 모른다고 아무도 모르리라 단정하면 안 된다. 아는 존재들이 그때부터 있었으며, 이제까지 있다: 바로 인간 나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그들이 증거 주체며, 나아가 나를 어렵사리 살려낸 은총 주체다. 그들이 마침내 꼭 똑 알맞은 카이로스를 택해 내게 기별했다. 한 소식 전해 들은 나는 그제야 70년간 봉인돼 있던 비밀에서 풀려났다(解脫). 깨달음은 곧장 치유력으로 작동했다. 사실에 터 잡은 진실 서사가 장엄한 의학이 되어 내 생애 전체를 화쟁으로 관통했다. 70년 통틀어 속이 이리 안온한 나날은 바이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중이다.  &nbsp;  내력도 이치도 시종도 “모르는” 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절망한다. 그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의학이다. 이 행위를 하는 의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구조 병을 수리하는 외과 기사, 기능 병을 개선하는 내과 기사만 판을 친다. 삶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을 서사로 치료하는 고갱이 의학을 내다 버린 거다. 서사로써 “모르는” 상태를 걷어내는 시간이 제국 자본에 반역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이기에 무거워지는 고통이 기사질로 가벼워지는 고통보다 모름지기 더 많다. 의자가 본디 알려주는 자였다는 역사를 신화에 내어주면 찐 손해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30/pimg_781606115513897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30584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부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link><pubDate>Wed, 27 May 2026 12: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guid><description><![CDATA[<br>  &nbsp;  부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 남녀가 지하철 노약자석 셋을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다. 가운데 좌석을 비우고 양 끝에 떨어져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가운데 좌석에 앉자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구태여 그 의아함을 풀 까닭까진 없어서 이내 눈길을 돌리다가 여자가 하는 행동 때문에 멈칫한다.   &nbsp;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뜯고 까는 손길 더한 다음 남자에게 건넨다. 초코파이를 비롯한 음식물이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받아 우물우물 먹는다. 다 먹고 남은 봉지를 여자에게 준다. 봉지를 받아 든 여자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거두어 먹는다. 이런 행동을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20분가량 지났을까, 남자가 잠을 청한다.  &nbsp;  여자는 봉지 포함 이런저런 쓰레기를 정리한 뒤 등을 젖혀 기댄다. 아주 잠깐 허공을 향한 그 눈빛이 보였다. 현실에서든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든 그렇게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그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내 시선에는 여전히 그 아득한 눈빛이 걸려 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저들 행동이 내 심사를 흔들어댄다.<br><br>모든 진실을 다 알 듯도 하고 대체 어쩌면 저렇게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교조화된 조선 후기 유교 사회를 거쳐 왜 식민지, 미군정, 내전, 다양한 형태 독재를 겪으면서 내재화된 가부장 심리 기제라고 설명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우라 잘못 불리는 쓰레기들한테 온 나라가 휘둘리는 이 뒤틀린 현실에서.  &nbsp;  저녁 식사 때 충분히(!) 마신 반주로 얼얼했는데 그 아득한 눈빛에 찔려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지고 만다. 우환에 나로 말미암아 내 옆지기가 그런 눈빛을 지은 적은 없을까, 까지 살을 파고드니 발걸음이 아연 허든댄다. 따지고 보면 결이 같아서 내가 자꾸 되작거리는 거다. 가리산지리산 헤매는 내 삶부터 아득한데 무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81606115513613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670</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또다시, 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link><pubDate>Wed, 27 May 2026 09: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guid><description><![CDATA[<br>  &nbsp;  부처님오신날이다. 골짜기마다 절집이 있는 우리나라 풍경을 떠올린다면 오늘 같은 날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더군다나 절집 앞까지 포장도로가 있다면 두말할 여지조차 없다. 한 주 뒤로 미룰까, 잠시 고민한다. 주초 하루 가웃 비 온 사실이 기억나자, 가기로 한다. 회룡천과 아우라지 특히 아우라지 앞뒤 마른 내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몹시 궁금해서다. 복잡해질 교통 상황을 고려해 이른 아침 먹고 서둘러 나서보지만 벌써 지하철부터 빛 다른 날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노약자석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아뿔싸  &nbsp;  회룡사 들머리에 순찰차가 서 있다. 금세 까맣게 잊고 뭔 사고 났나, 한다. 뱀처럼 늘어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서야 아이고 다행이다, 한다. 개인 승용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그나마 숨 막히는 일은 없을 테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들 소리 때문에 쏠 동영상을 더러 포기한다. 회룡사 안내방송, 독송, 종성이 골짜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비구니 독송이 낭랑은 한데 그리 유장하지 않아 귓등만 때리고 되돌아간다. 예불문(禮佛文)도 나올 뭣이 안 나오고 지나가는 듯하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내가 메운다.  &nbsp;  그만한 비에도 회룡천 수량이 확실히 불어나고 물때들도 대부분 걷혀 있다. 물소리도 제법 우렁차다. 회룡사 지나서부터는 물소리가 아연 잦아든다. 아우라지 직전에 이미 마른 내 상태가 된다.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아선지 내 바닥 특성 때문인지 고요한 복류 상태를 유지한다. 복류는 어디쯤에서 비롯했을까. 아우라지에 이르러보니 사패산 쪽 물은 아예 적요다. 도봉산 쪽 불길을 따라 들어간다. 작은 섬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아, 저 소리 내는 물 마지막 지점이 복류 진원지이겠구나. 궁금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만다.<br>  &nbsp;  물을 발견하고는 곧장 합장하고 동영상에 담는다. 손 종지 만들어 물을 마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접지한다. 발이 시려 더는 견딜 수 없어 일어서면서 내려다보니 발 담근 작은 웅덩이 밖으로 물이 흘러 나가지 않는다! 위에서 좔좔거리며 세찬 물이 내려오는데 작은 웅덩이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기이하다. 나는 얼른 물 밖으로 나온다. 가만히 웅덩이를 들여다본다. 미세한 소용돌이 여러 개가 무작위로 나타난다. 물이 빠르게 밑으로 빠져나간다는 증거다. 땅 밑 물길이 이미 있지 싶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넋 빠뜨린 채 바라본다.   &nbsp;  몰입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나는 찬찬히 섬 주위를 다시 살핀다. 병꽃나무를 포함해 몇 가지 나무를 더 확인한다. 이 작은 섬 안팎에 내가 아는 식물만도 15종이 넘는다. 이끼나 돌꽃까지 헤아리면 여기도 어엿한 생태 단위임이 틀림없다. 다음 주에는 더 큰비가 온다 하니 어떤 변화를 지을까 자못 기대된다. 아우라지에 인사하고, 마른 내 바위를 이리저리 건너뛰어 백여 미터 내려오다 보니 용천이 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 경계를 이렇게 무작위로 넘나들며 회룡 물은 중랑천 거쳐 한강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바다 되어 지구늪을 이룬다.   &nbsp;  지구늪에서 구름으로 올라간 물방울은 바람 타고 도봉산 회룡계로 되돌아올 테니 참으로 queer networking 그 자체다. 작디작은 아우라지가 빚어내는 묘하디묘한 변화에 겸허히 참여하는 찰나마다 내 상(相)은 사라지고 공생 이행 과정, 잠정 실재로만 진동한다; 이 장엄을 약탈하는 사악한 제국 앞에 무릎 꿇은 무지렁이 부역자임을 통감하고 무고히 희생당하는 숭고 존재와 늪 재생 항쟁 동지이기를 차마 앙망한다. 바리데기들이 “끝까지 웃으며 다 함께!” 싸우는 일 없이 장엄은 오지 않는다. 장엄은 지극 헌신이다. 부처님오신날 참뜻이다.<br><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7/pimg_781606115513603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99344</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다시, 인생 아우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link><pubDate>Wed, 20 May 2026 1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guid><description><![CDATA[<br>  &nbsp;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어 다시 회룡천 아우라지로 향한다. 다시 가는 며리가 아우라지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오가는 골짜기 풍경 또한 거기 포함된다. 경험 횟수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숲과 물이 달리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건네고 내음을 피워서 내 감각을 두드리는지 살피며 천천히 들어간다. 사진으로 담아낼 때도 전과 달리 색깔보다 빛살에 더 유념한다. <br>지난주 진입한 지점을 조금 지나자, 금지선이 해제되어 자연스럽고 쉽게 물길로 접근할 수 있는 샛길이 나온다. 스마트 지도로 미리 확인한 바와 다르나 가시에 찔리거나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사패산 쪽 물줄기로 내려간다. 큰비 온 뒤를 상상하며 더 안전한 경로를 눈대중해 둔다. 내 조그만 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잡아챈 변화 하나: 돌탑이 허물어져 있다.  &nbsp;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 손이나 발길질 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든 아니든 문득 든 생각은 여기가 돌탑 있을 자리는 아니다, 다. 좀 더 맑은 마음으로 엄밀한 자리 보아 새로운 돌탑을 쌓는다. 앉아서 무작위로 기이하게 펼쳐질 존재 향연을 호흡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든다. 섬과 물길 둘레 땅을 돌며, 나무와 풀을 깜냥대로 살핀다. 생태가 대강 들어온다.<br>  &nbsp;  물가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버드나무가 전혀 없다. 물살이 거센 상류라서 뿌리를 얕게 뻗고 나뭇결이 부드러운 버드나무는 살기 어렵다. 도린곁이라 땅이나 물을 정화하는 버드나무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당연하게 여기는 물오리나무 영지다. 물 좋아하는 본성을 같이 지녔으나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와 달리 깊게 뿌리 내리고 나뭇결이 단단하므로 딱이다.   &nbsp;  물오리나무는 참 특별하다.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때때로 거센 물에 시달릴지언정 뿌리가 진흙을 어느 만큼만 품을 수 있다면 모래땅이라도 다른 식물이 살 조건을 만들어준다. 이 섬 중 가장 큰 식물로서 층층나무가 늠름히 서 있는 근거다. 그런 보익 작용은 물론이고,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뭇과 식물도 아니면서 해독 작용까지 한다.  &nbsp;  전천후 능력을 지닌 물오리나무 힘입어 이 아우라지에는 무작위로 기이하게 인연 맺은 싸리나무, 국수나무, 뽕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나무, 머루나무, 누리장나무, 개옻나무까지 한껏 어울려 살아간다. 칠십 년 버드나무로 살았으니 인제부터 우리로 살아보라고 물오리나무가 빙 둘러서서 권하며 응원한다. 물오리나무 꽃말이 “장엄”이다. 두 손 모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0/pimg_781606115512952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7177</link></image></item><item><author>bari_che</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대한민국 만악 뿌리에는 언제나 왜놈 제국이 있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link><pubDate>Tue, 19 May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guid><description><![CDATA[<br>*주강현(민속학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그대로 싣는다<br><br><br>정용진의 뿌리. 그의 할배 정상희는 메이지대학 출신으로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체육회이사. 대학 시절의 일본인 인맥이 그의 출세에 도움을 줌. 1936년 손기정선수가 동백림마라톤에 우승하도록 돕고 베를린까지 갔다. 전쟁 막바지에 만주로 사업차 떠났는데 그의 송별식이 반도호텔에서 거창하게 열려 정무총감 등 당대 조선을 지배하던 발군의 인물이 모였다.친일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 이상이었던 인물. 연전 &lt;양정인물평전&gt; 발간하면서 대선배인 그를 인물군에서 뺐다. <br>해방 이후 정치계에 투신,국회의원으로 리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에 가담,감옥을 다녀온다. 일제말기부터 이병철과 가까운 사업파트너로 사돈을 맺게되며, 이병철의 딸인 이명희가 정상진의 아들 정재은과 결혼하여 정용진의 모친이 된다. 사람들은 막연히 신세계가 삼성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만 알지만 정용진의 조부가 일제말과 자유당정권의 막강한 실세로 이병철에 막강한 도움을 주었고 딸을 시집 보내어 사돈을 맺은 것은 생략한다. 한마디로 정상희는 친일에서 미군정을 거쳐 자유당정권 부패신화의 조연으로 활약했다. 그 손자가 정용진으로 5.18에 탱크데이를 선포하고 도마뱀 꼬리자르기로 스타벅스 사장만 사표받고 끝. <br>평소에 멸콩을 부르짖던 정용진 ‘가문의 영광’이 이처럼 오랜 뿌리를 지닌 것이니, 5.18탱크데이로 흥분할 거 하나도 없다. 한국근현대사의 모순이며 근현대 재벌의 부의 축적이 이루어진 적나라한 정경유착의 과정, 그리고 어쩌면 하나도 변치않게 손주에게까지 유전된 친일 반민주 사업가의 전통이 멸콩놀이 일베놀이로 이어지는 DNA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9/pimg_781606115512852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1606115/1728533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