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학은 생명 전체에 주의하면서 병에 집중하지 않는다. 백색의학은 의학이라는 범주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각각의 병명에 함몰된 파편 요법들이 모인 덩어리일 뿐이다. 이른바 전문의는 자기 분야 말고는 아는 것도, 관심 두는 것도 없다. 그는 매끈하게 다듬은 요법 포르노를 판매한다. 환자는 자기 병에 관음증 하나 더 얹어 요법 포르노를 구매한다. 이 매매 행위는 포르노사회에서 유력한 신분 인증으로 작용한다. 인증 횟수가 늘어날수록 환자의 생명 전체는 는적는적 허물어져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백색의학은 근본적으로 이종異種의학이다. 이종의학에게 증상은 병이다. 병은 적이다. 적은 죽여야 한다. 통증도 염증도 열도 미생물도 모두 적이니 불문곡직 때려잡으면 갑이다.


이종의학의 이런 적대 자세는 형식논리의 동일률에 터한다. A=A. 동어반복이다. 동어반복의 ‘진리’에서 주체와 맞서는 것은 우수마발이 다 nonA다. 곡절을 묻지 않는다.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 힘을 가하는 것이 치료라고 생각한다.


동종同種의학은 원리상 증상을 병이라 여기지 않는다. 생명이 스스로 병을 치유하는 감응response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감응은 때려잡을 대상이 아니다. 동종의학은 예컨대 열이 나면 열을 내는 천연 약물을 극소량 쓴다. 열을 내는 약물을 극소량 쓰면 어찌 될까? 이치상 처음에는 열이 조금 더 난다. 생명의 감응 작용을 북돋워주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알아서 열이 내린다. 생명의 자연치유력이 증강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동종약물은 힘이 아니라 정보다. 생명의 자연치유력을 깨우는 죽비소리다. 이게 의학다운 의학이다. 녹색의학이다.


백색의학은 감응인 증상을 보고 놀라 적대 반응reaction을 일으키는 방어기전이다. 인도유럽어족이 ‘타락(스티브 테일러)’한 이후 만들어낸 거대이론 가운데 하나다. 자신과 불화하는 거대자아가 생명현상과 자연에 nonA를 뒤집어씌운 결과가 백색의학이다. 이 병든 백색의학부터 치유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구의학의 인류사적 공헌은 외과수술, 링거 둘로 집약할 수 있다. 나머지, 아니 저 두 나머지 이외의 대부분은 치료를 표방하지만 증상만 약하게 만드는 ‘백색’ 화학합성물질이다. 물론 뛰어난 진단 기술이 있지만 진단 아무리 잘해도 치료하지 못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진단기술도 공학기술의 힘이지 그것을 의학 자체로 보기는 어렵다.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인간 생명력을 궁극적으로 사막이 되게 할 것이다. 백색의사들이 아무 생각 없이 뿌려대는 진통제, 소염제, 항생제, 해열제, 기타 백색 화학합성물질 대부분인 차단제의 공통 목표는 통증, 염증, 미생물, 열, 그리고 부정적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증상 자체를 치료해야 할 병으로 보고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은 약이라고 불린다. 과연 증상은 병인가? 과연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병을 치료하는가?


증상은 전체 원리에서 보면 병이 아니다. 증상은 병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메시지를 없애는 것이 어떻게 치료인가. 메시지를 들어야 진짜 병을 밝혀낼 것 아닌가. 병은 모른 채, 증상만 없애는 것이 치료일 수는 없다. 기계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증상과 병이 일치한다. 백색의학은 인간을 기계로 보는 일극 패러다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말하자면 기계적환원주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기 때문에, 증상 제거를 질병 치료로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이치에서 기계적 축은 유기체적 축과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면서 함께 엮인다. 구태여 본지와 경중을 따진다면 후자가 본이고 중하다. 특히 전자로 치우친 폐해가 심각한 오늘 날 상황에서는 이런 역사적 판단이 불가피하다. 백색의학은 도를 넘어 반생명적인 수탈을 자행한다.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전 지구적으로 과다 처방되고 있다.


백색 화학합성물질은 시시각각 인간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통증도 염증도 미생물도 열도 생길만한 곡절을 따라 생긴다. 이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망타진하는 것은, 생명이 지니는 불편하지만 생생한 쌍방 소통 운동을 희생하여 편리하지만 파리한 일방 통제 구조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 생명을 돕는다면서 도리어 해코지하는 백색의학의 몽매에 나는 눈감을 수 없다. 녹색으로 배어들고 배어나서 참 평화의 틈을 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본주의 아래서는 사회 모든 분야가 산업이 된다. 의학이 예외일 리 없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죽음의 신은 목숨밖에 가져가지 않지만 의자는 돈까지 가져갔으니까. 산업의학은 평범한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산업의학은 사회 전체를 의료화했으니까.


오늘 날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병원의 관리를 받는다. 산업출산은 기본이다. 이후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의료 시스템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그 의식까지 병원에서 치른다. 마치 인간의 생사 전체가 질병이기나 한 것처럼 온갖 것에 의료는 촉수를 뻗치고 돈을 빨아들인다. 생사를 볼모로 수탈하는 짓은 얼마나 반의학적인가. 산업의학은 돈에 미친 지배 권력과 엘리트 집단의 야비한 협잡 수단이다.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는 말은 구차하다. 이미 일극집중구조가 굳어진 마당에 ‘조선일보 문화면’ 같은 것이 있다 한들 무슨 정당성을 확보하겠나.


날로 비대해지는 암 병원을 볼라치면 바로 그 암 병원이 암 덩어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죽여가면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향락적 삶을 구가하는 자들에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일 테지만, 내게는 분노와 슬픔을 자아내는 어두운 동굴일 따름이다.


목하 암암리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국가 주도의 정신건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토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구, 특히 미국이 짜놓은 정신의학 체계는 그야말로 장사판이다. 돈이 되면 넣고 안 되면 빼는 식으로 진열한 병명만도 370개가 넘는다. 370여 개의 돈줄 던져놓고 마음 아픈 사람 낚아 올리는 블루오션에 자본이 문어발 뻗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몸도 맘도 백색의학의 돈벌이 수단이 된 오늘을 나 역시 살아야 한다. 불평등한 경제구조에 편승하고 다시 그 불평등을 촉진하는 백색의학의 거대한 힘 앞에서 변방의 ‘한’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인욕하고 진욕進辱하는 길에서 출발부터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녹색의학의 정치적 기치 문제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방향 문제와 의학 내용 문제는 분리 불가능하다. 불의한 권력이 토건으로 병을 일으킬 때에는 의학 이론을 조작하기 마련이다. 진단과 치료에 동원되는 조건 구축 과정 또한 기획한다. 미국을 위시한 이른바 선진국은 이렇게 병과 진단 기술, 그리고 (약이라 주장하는) 화학합성물질 만들어 국제 사회에 유통시킨다. 각기 다른 여러 인종·성별·연령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폭력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의학 토건의 병자로 ‘징발되어’ 수탈당하고 있다. 백색의학은 학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이 악성 이데올로기의 쌍끌이기선저인망이 DSM 정신장애와 암이다. 나는 백색의학의 정치적 정신장애, 정치적 암에 반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