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코는 관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뇌와 통한다.
시각은 각막, 청각은 고막이라는 관문을 거쳐 뇌에 전달되지만 코의 후각은 관문 없이 직통으로 뇌에 전달된다. 다른 감각과 달리 시상을 거치기 전에 후각 수용체가 자리 잡고 있는 변연계부터 거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코는 최전방의 뇌다. 후각은 뇌각惱覺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뇌는 본디 후각세포가 부풀어 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후각의 이런 특성은 아마도 인류의 시원적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맹수나 적이 눈에 띄지도 않고 소리 내지도 않고 다가올 때 공격하거나 도망치기 위해서는 후각을 통한 즉각적 반응 말고 다른 길이 없다. 후각은 생존을 위한 가장 은밀하고 빠른 정보 전달자이므로 냄새-공포반응을 코-변연계감정 뇌의 직접 연결로 시스템화한 것이다. 일단 살고 나서 나중에 해석하고 평가하는 분별절차가 진행된다. 코에서만 정석으로 인정되는 생명의 수순이다.
⑤ 코는 마음, 특히 감정의 안테나다.
후각 수용체가 있는 대뇌 변연계는 감정중추다. 후각에 대한 즉각적 반응에서 인간의 감정이 생겨나 다양한 켜와 결의 감정으로 분화하였다. 다양한 감정들은 거꾸로 코의 느낌을 날카롭게 벼려 냄새로 그 상태를 드러내거나 조절하는 길을 열었다. 코와 대뇌 변연계는 이런 상호작용으로 감정 현상과 감성 퍼텐셜의 선순환을 이끈다.
양자 사이에 악순환도 일어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감정 뇌에 이상이 생기면 코에 그 이상이 반영·증폭된다. 코에 이상이 생기면 감정 뇌에 그 이상이 반영·증폭된다. 예컨대 우울장애 환자가 비염이나 후각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필연에 해당하는 일이다. 비염이나 후각 이상은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후각과 직결되어 있는 감정은 이성과 의지보다 먼저 발생한 마음의 층위다. 그 에너지가 다른 것을 압도한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무엇보다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무엇보다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 진실은 그리스 고전 수사학으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럼에도 근대 철학 이후 심리학은 물론 정신의학조차 감정을 이성과 의지 아래 둔다. 비인간적이다. 진실에 반한다. 감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 돌아가야 한다.
⑥ 코 점막은 발기조직이다.
우리 몸에는 발기조직이 있다. 성기性器가 그렇다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다 아는 바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모르고 있는 중요한 발기조직이 있다. 바로 코 점막이다.
일상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하면 코가 뚫려 상쾌하다. 같은(?) 운동인데 섹스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코가 막힌다. 보통의 운동은 교감신경 자극 상태이므로 혈관이 수축되어 막힘이 풀린다. 섹스는 정반대로 부교감신경 자극 상태, 그러니까 충혈 상태가 유지되어야만 하는 운동이다. 그것이 곧 발기다. 코가 막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의 늘 막힘 상태에 있는 신혼부부의 코를 이비인후과 임상에서는 신혼여행 코 증후군honeymoon nose syndrome이라 부른다고 한다.
후각과 성호르몬 조절 부위는 발생학적 기원이 같다. 후각은 성의 감각과 긍부肯否 양면으로 모두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후각 상실과 성 또는 생식능력 상실이 맞물리는 경우는 성폭행을 당해 이른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장애를 겪는 여성들에게서 실제로 확인되고 있다. 대기 오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다양한 형태의 코 질환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성과 생식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성과 생식의 문제는 인류의 사활이 걸린 근본적인 문제다. 여기에는 후각이 개입해 있다. 코로 돌아가야 할 마지막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