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코의 정치학
일본 교토에 있는 코 무덤鼻塚을 아는가? 물론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승전의 ‘인증 샷’으로 조선인의 코를 베어 가져다 만든 무덤이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12만이 넘는다 하니 당시 인구를 감안할 때, 실로 엄청난 숫자다. 물론 처음에는 수급首級, 그러니까 목을 베어 오라 했을 테.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그 일부로 코를 택한 것이다. 왜, 하필 코일까?
단순히 간편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코가 인간 존재 자체의 상징이라는 이미지와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가령, “콧대를 세우다.”, “콧대가 꺾이다.” 따위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바와 마찬가지로 코가 한 인간의 사회적 존재 의의를 좌우하는 표지標識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패망의 시그널로서 그 백성의 코를 베어 땅에 묻고, 그 영혼의 기운을 제압하기 위해 돌탑으로 찍어 누른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잔혹하고도 칼날 같은 사회정치적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짓을 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의 대접을 받으며 금칠한 사당에 누워 있는데, 코 하나로 남은 조선 백성의 고혼孤魂은 조국으로 돌아가지도 못 하고 수백 년 동안 잡초 무성한 무덤 위를 떠돌고 있다. 지금이라도 미련 없이 그 “코” 버리고 제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겉 이름만 대한민국이지 속 알맹이는 아직도 대일본제국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구천을 헤매는 동안 그들의 조국은 매판 귀족 서인 노론 손에 농락당하다가 결국 그들을 죽인 제국주의 일본에 팔려버렸다. 35년 동안 국권을 잃고, 그들의 동족은 살았으나 죽은 채 버텼다. 1945년 일제는 패망했다. 그러나 일제의 패망이 곧 우리의 독립은 아니었다. 점령군인 미군이 통치를 시작했다. 미군의 관심은 일제 부역자 처단, 우리의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다. 자국의 이익과 편의에 맞추어 향후 대한민국의 통치 기조를 만들었다. 미국 식민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던, 권력과 돈만을 탐했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매판집단이 정권을 장악하고 자주민주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죽임으로써 반공주의가 김춘추 세력이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동원했던 통일신라 내러티브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1960년 4·19민중혁명으로 이승만이 축출되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쿠데타로 매판을 극적으로 건져냈다. 독립군 잡는 만주군 장교였던 그가 극대화한 반공주의, 산업화, 그리고 경상도 패권으로 매판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통일신라 내러티브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박정희는 18년 독재 끝에 심복의 총탄을 맞고 죽었다. 자주민주의 꿈이 되살아나려는 순간 그가 키운 정치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두환 노태우가 이어간 매판군부 통치는 이 땅을 더 지저분한 식민의 그늘 아래로 처박아버렸다. 천신만고 끝에 김대중과 노무현은 부족하나마 이 땅에 진정한 정치, 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야말로 잠시 숨통만 튼 것일 뿐이었다. 매판독재집단의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깨뜨리지 못했다. 일천오백 년에 십 년은 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뼛속까지 매판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은 단군 이래 최고의 수탈통치를 감행했다. 공적 권력을 철저히 사적 이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했다. 매판 재벌의 마름에서 출발하여 매판독재 상속자의 마름으로 화려하게 끝을 맺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박정희의 딸이 일천오백 년 매판 역사의 정점에 등장했다. 대중의 공포, 탐욕, 무지를 극대화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부추겼다. 매판이면 어떻고 독재면 어떠냐고 속삭였다. 콧대를 팔아 배를 두드리라고 꼬드겼다. 그렇게 협잡질을 하다가 쫓겨나 감옥에 갇혔다.
박근혜를 벤 자리에 자주와 민주, 그리고 통일의 꽃이 피었나? 촛불정부라는 새 정권이 매판독재세력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여전히 코 무덤 위를 떠도는 백성이 돌아올 조국은 없다. 돌아오면 다시 한 번 그 코를 베일 것인데, 어찌 돌아올 것인가. 더더욱 수치스럽게 일제의 마름, 아니 개들의 손에 베일 것인데, 어찌 돌아올 것인가. 살아 있는 사람의 “콧대를 꺾어”버려 자살자가 OECD국가 가운데 1위인 식민지 조국에 돌아와 그 원한이 어찌 풀리겠는가.
코 무덤의 저 영령들이 시간을 가로질러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열쇠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각성이다. 역사 속에서 왜곡된 정치의 진실을 밝혀 이제라도 자주·민주·통일의 길을 열어갈 때, 산 자의 콧대와 죽은 자의 콧대가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 어울려 대동大同을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