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단식, 그 미각 혁명의 길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10일까지 나는 헨미 요가 지은 『먹는 인간』의 주해 리뷰를 썼다. 녹색미각 마무리 글을 쓰려고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었다. 그 책의 부제는 <식과 생의 숭고함에 관하여>다. 삶에서 먹는 일이 무엇인가를 되새긴다는 의도일 터. 그러면 먹는 일에서 미각은 무엇인가? 대뜸 이런 질문이 솟아오른다.


“맛없으면 먹지 않을 것인가?”


어떤가? 먹는 일에서 미각이 무엇인지 묻는 데 이 질문은 적확한가? 미각의 전체 진실에서 보면,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기능도 지니기 때문에, 꼭 먹는 일을 돕도록 발달한 감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5살 미만의 아기들이 한 해 천만 명 넘게 굶어죽는 지구촌에서 향락적 처먹기로 왁자한 인간들을 향한 것이라면 이 질문은 단도직입에 값한다.


물론 기왕 먹을 거라면 맛있는 편이 좋다. 구태여 맛없을 필요까지야 있겠나. 문제는 식욕과 식탐 사이에서 찰나적으로 길을 잃고 마는 인간 현실이다. 위의 70%만 채우는 멧돼지만도 못한 인간 수준에서 맛있음은 곧 타락으로 내려가는 미끄럼틀이다. 한쪽에서는 비만을 병으로 규정하고 치료책을 떠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비만 인기인을 앉혀놓고 ‘먹방’ ‘쿡방’ 해대는 세태가 이를 웅변으로 증명한다. 황홀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맛있는 음식만 흡입해대는 인기인은 ‘처먹교’ 교주다. 맛있음을 부풀리는 온갖 미사여구는 ‘처먹교’ 경전이다. 관음증을 영성으로 공유하는 이 ‘처먹교’ 판에서 미각 인간을 건져낼 길은 무엇인가?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단식을 권한다. 매주 하루, 향락의 음식에서 몸을 해방하여 안식을 주는 것이다. ‘처먹교’ 예배를 거절하고 <식과 생의 숭고함에 관하여> 묵상하는 것이다. 식탐에 저항함으로써 타락 이전의 미각을 복원하는 것이다. 단식으로 아껴지는 식비를 깜냥대로 헤아려 굶어서 죽어가는 아기들에게 건네면 화룡점정. 이 세상 아픈 곳에 기부하면 금상첨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미각은 감각의 우주다


미각은 음식이 혀에 닿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이것은 다만 하나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미각의 80% 이상은 냄새다. 닿는 느낌 없이 미각은 형성되기 어렵다. 음식의 빛깔, 모양, 심지어 그릇의 생김새가 미각을 좌우한다. 씹을 때 나는 아삭거리는 소리가 미각의 한 축이며, 지나친 소음은 미각 형성을 방해한다.


미각을 담당하는 특수내장감각신경은 안면신경(제7뇌신경: 혀 앞부분 2/3), 설인신경(제9뇌신경: 혀 뒷부분 1/3), 미주신경(제10뇌신경: 혀 뒷부분 1/3)이다. 세 신경 모두 자율신경 가운데 부교감신경과 관련이 있다. 부교감신경은 한편으로는 위와 장[장신경]과 닿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뇌[중추신경]와 닿아 있다. 당연히 미각은 위·장 현상이며 대뇌 현상이다. 나이에 따라 다르고, 건강 정도에 다라 다르니 미각은 몸 전체의 현상이다.


나아가 미각은 정신 현상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먹으면 미각은 둔해진다. 자상하게 설명을 들은 뒤 먹으면 더 맛있다. 소울 푸드는 참으로 존재한다. 미각은 기억과 그리움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지평이 넓어지면 미각은 형언할 수 없는 무엇으로 열린다.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을 우리는 광활함spaciousness이라 부른다. 광활함을 뿜어내는 우주space의 감각이 바로 미각이다. 미각 우주를 통해 신과 닿는다.


미각의 시공에서는 그러므로 지성소 사건이 일어난다. 지성소 사건을 향락 스캔들로 영락시키는 백색문명 속에서 우리는 녹색미각을 수탈당하고 있다. 요리 포르노에 중독되어 미각이 거룩한 제의이자 신나는 놀이 사건이라는 진리를 놓치고 있다. 비대칭의 대칭 감각을 복원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0. 미각, 그 여러 겹의 아우라


인류 역사상 맛味이란 말에 가장 웅혼한 미학을 부여한 사람은 단연 원효다. 원효 사상의 결정판인 『금강삼매경』은 일미관행一味觀行으로 요약된다. 일미一味는 일심一心을 실천적·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심은 장엄을 향해 가는 삶의 내용, 방향, 동기, 가치, 효력 모두를 포괄한다. 이 모두를 소미한 것에서 소미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일미라 표현했다. 일심 사상이 거대 관념론으로 흐르는 것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요컨대 가장 광활하면서도 가장 소미한 영성, 그 비대칭의 대칭을 맛, 그러니까 미각에 담은 묘미가 일미에 있다.


원효의 일미와 비할 바 아니거니와, 우리에게 제법 낯설지 않은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의 ‘네가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라. 네가 무엇인지 말해주겠다.’를 거론함직하다. 먹는 음식에서 신분이 드러난다는 취지의 말이 번역 과정에서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로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뭐 왜곡이랄 일만은 아니다. 한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 그러니까 추구하는 맛을 통해 그의 상황이나 성향을 짐작하는 것에는 분명한 일리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그가 하는 말, 사회적 행동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정보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각에 착오는 있을지언정 고의적 위선은 거의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하마 아득히 잊힌 작년 여름 일 하나가 떠오른다. 이정현이 새누리당 대표에 선출되자 축하파티를 열어 샥스핀과 송로버섯 먹인 박근혜의 미각학예회다. 얼마 뒤 국민 손에 쫓겨날 줄 모른 채, 제 속살을 함부로 대놓고 드러낸 천박한 미각적 커밍아웃이랄까. 선거 때 재래시장 가서 어묵 쇼했던 이명박도 실은 뒤에서 저희들끼리는 뭘 처먹는지 역으로 드러낸 것이니 미각의 천박함에서는 도 긴 개 긴이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기품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돈 있으면 근본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개 웃기는 얘기다.


미각의 사유와 실천이 한 사람의 상황이나 성향을 결정한다 하면, 보통 서둘러 무엇을 먹을까 궁리부터 한다. 이 또한 본말 전도다. 무엇보다 여태까지 자신의 미각이 어떻게 형성·지속·왜곡되어왔는지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현실에는 태아 때 어머니의 식성에서 시작하여 지구 기후변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층의 요인이 개입한다.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어떤 미각, 어떤 음식에 원근·호오의 반응을 하게 되었는지 면밀히 살피고 감응하는 치유부터 해야 한다. 미각의 쏠림을 조절하고 대칭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음식을 새로 선택하고 교감하는 일이 흐름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단 맛에 끌리지 않았다. 도리어 쌉싸래한 맛을 좋아했다. 시생대 모유의 절대 결핍이 유발요인이었을 법하고, 강원도 산골의 산나물이 강화요인이었음직하다. 양념 맛이 강한 음식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도리어 원재료의 맛에 예의를 갖추는 한에서 양념을 쓴 담담한 음식을 좋아한다. 시생대 모유 대신 먹은 미음이 유발요인이었을 법하고, 할머니의 백김치가 강화요인이었음직하다. 이런 미각을 삶의 소중한 일부로 받아 안는 과정이 우울증을 깨닫고 치유하는 과정과 겹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뜨르르한 셰프와 장인들이 시전하는 저 맛의 향연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게 높은 맛의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은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경지를 포르노라고 부른다. 포르노를 상락아정으로 구가하는 미각 아라한이야말로 아우라 극단에서 어슬렁거리는 비렁뱅이다. 미각이 거느리는 아우라 스펙트럼에도 중도와 회향의 진리가 통한다. 개인적 상처와 지구의 기후변화를 가로지르는 삶의 통찰과 몸과 맘 전체를 가로지르는 미각의 조절은 중후하면서도 경쾌한, 의미심장하면서도 재미무인지경인 경계 시공을 탄다. 그 경계 시공에서 원효의 일미와 나의 담담 쌉싸래한 미각은 둘이자 하나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0. 비학 선언: 코가 답이다


코, 이것은 가장 처음부터 가장 나중까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이다.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억눌려 있다가

인간이 파멸 위기로 내몰린 상황과 홀연히 마주하게 된

오늘 이 순간 마침내 코의 코됨을 되살려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구원받게 하는 길을 연다.

그렇다.

코가 답이다.


코는 호흡의 관문이다.

하여 몸-생명의 중심이다.

코는 냄새를 맡는다.

하여 감각-생명의 중심이다.

코는 감정 뇌와 직결된다.

하여 마음-생명의 중심이다.

코는 나와 남의 면역적합성을 알아차린다.

하여 코는 관계-생명의 중심이다.

그렇다.

코가 답이다.


코에 치유와 건강의 길이 있다.

코에 참 인간의 길이 있다.

코에 미래의 길이 있다.

코에 자주·민주·통일의 길이 있다.

코에 평등의 길이 있다.

코에 신의 길이 있다.

그렇다.

코가 답이다.


코로 느끼고

코로 생각하고

코로 실천하는 비학을 선언한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 코의 종교학


(1) 신


시각 포르노 시대의 신은 거대 유일신이다. 거대 유일신은 이미지 장엄이어서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이므로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소미 무한신은 은밀 장엄이어서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므로 냄새를 풍긴다. 냄새나는, 냄새나서 냄새 맡는, ‘큼큼쟁이’ 신이야말로 참 신이다. 코의 신이다.


(2) 인간


스스로 크다 여겨 거대 장엄을 제유한 거대 유일신 만들어 아바타로 삼았지만 결국 인간은 수탈하는 인간homo rapiens이 되고 말았다. 수탈하는 인간보다 더 알량한 존재가 어디 있으랴. 수탈을 포기해야만 인간은 참 신 세계의 일원일 수 있다. 참 신 세계의 일원은 작아도 알량하지 않다. 작아도 알량하지 않은 인간은 무한한 냄새의 결과 겹 속에 살면서 후각을 따라 흐른다. 코의 사람이다.


(3) 구원


거대 유일신은 눈의 신이다. 눈의 신은 시각 포르노에 중독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시각 포르노에 중독된 인간을 구원할 신은 소미 무한신, 그러니까 코의 신이다. 코의 신은 지각조차 되지 않는 생명후각으로 스며들어 시각 포르노에 중독된 인간과 그 인간에게 착취당한 모든 존재를 구원한다. 구원은 전지전능의 허장성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작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조그만 냄새를 풍기고 맡음으로써 구원한다. 코의 구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