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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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는 지성적이고, 지성은 신체적입니다.(134~135)

 

우리사회에서 예술인 가운데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진보지향인 사람을 찾기 힘들다. 흔히 예술은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쓰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우치다 타츠루가 들으면 물론 그 반대라고 대뜸 지적하리라. 신체는 지성적이고 지성은 신체적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머리로, 아니 머리통으로 예술해서그렇다.

 

프랑스 음악가 에릭 사티는 음악 자체보다 다른 음악가에게 미친 영향으로 더 유명한 음악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음악이 진보적이니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일은 자연스럽다.” 예술 자체가 진보 또는 보수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과학이 정치적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맥락이다. 비정치적이면 순수라고 일컬었던 우스운 시절이 있었거니와 이런 도피처를 통해 수많은 예술인들이 악에 부역했다.

 

프랑스에서 음악하며교육하는 분이 최근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Pays d'un chaman, d'anti-feministe, d'anti-travailleur etc.... la honte... la honte.... pour les gens qui habitent à l'étranger, le pays natal est comme son visage. Je ne sais pas quoi dire de mon pays.” (샤먼, 반여성주의자, 반노동자주의자의 나라.......수치.......수치.......외국 사는 사람에게 모국은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내 나라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위로했다. “Je vous donne une tapeJe me lamente tous les jours”(다독다독.......저는 허구한 날 통곡합니다.......) 물론 위로가 되지 않는다. 된다 해도 위로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대선 얼마 전만 해도, 그의 트위터에는 한국인임을 알아보는 이웃이 친절하게 말을 걸어와 자랑스러웠다는 글이 올라왔었다. 대체 이 기막힌 영락을 지성적 신체로 음악하는그의 신체적 지성은 어찌 감응하고 있을까. 나도 매일 우는데 하물며.

 

한의사인 나도 신체로 의학한다.’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복부진단은 기계나 기구를 전혀 쓰지 않고 손으로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침은 연장된 손이다. 내가 가장 어렵게 여기는 탕약 본초 구성도 최종적으로는 신체감응에 따른다.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숙의치유까지도 신체로 듣고 신체로 말한다. “머리통으로 하면 이 모든 일은 본성을 벗어난다.

 

신체는 의학적이고 의학은 신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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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5 18: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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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6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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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안으면 일반적으로 왼쪽 어깻죽지 부분에 아기 옆머리 부분이 닿게 되지요. 이곳이 딱딱하게 경직돼 있으면 아기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머리 위치도 안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게 동작을 취합니다. 이두박근이 베개가 되니까 이 부분에 알통이 있으면 아기가 편히 잘 수 없으므로 팔 근육 긴장도 풀고 부드럽게 합니다. 가슴이 펴져 있어도 안정이 안 되니까 살짝 오므립니다.

  어깨 막힘을 풀고 가슴을 편하게 하고 위쪽 팔을 부드럽게 해.......아기를 안을 때 신체 자세야말로 생명체로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자세 중 최강 아닐까 합니다.......

  바깥쪽 방어는 강고하고 어디에도 급소가 없지만 아기를 품은 안쪽은 부드러운, 그리고 신체가 어떻게 움직여도 이 안쪽만은 별로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이 신체 탁월성에 대해 인류는 진화 이른 시점부터 이미 알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기를 지키는 신체형이 맨 처음 발견되었고, 다른 신체 조작은 모두 거기서 전개되는 식으로 발달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상상합니다.

  .......가장 섬세해서 가장 강인한 자세, 이야말로 최고 신체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129~130)


우크라이나 어두운 소식이 시시각각 들이닥치던 와중, 아기를 폭탄 파편에서 보호하다가 크게 다친 엄마 올가(27) 모습이 전해져, 지구촌 사람들 심금을 울렸다. 애써 상상하지 않아도 엄마가 아기를 어떻게 끌어안았을지 눈앞에 선하다.



나는 딸아이가 태어나고 만 1년 동안 모유 수유 제외한 모든 육아를 맡아했다. 아기를 안는 방법은 안는 목적에 따라, 아기가 자라가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가령 생후 1주일 무렵부터 아기는 머리 뒷부분을 내 손바닥에 대고 나머지 신체는 내 아래팔 위에 실은 채 내 눈동자를 보며 옹알이를 하곤 했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안기가 가장 일반적인 안기이긴 하지만, 내 경우 아기가 잠을 청할 때는 턱을 내 어깨 언덕에 고이거나 얼굴을 내 얼굴 쪽으로 돌린 다음 나머지 신체를 내 가슴 지형과 부드럽게 맞닿게 해 평안을 찾는 방식을 주로 택했다. 사실 이 선택은 내 신체와 아기 신체가 집단무의식 속에서 더불어 찾아낸 방식이었다. 한번 그렇게 자리 잡자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되었다. 아기는 칭얼거림 없이 이내 잠들곤 했다. 오히려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신기방기를 연발했다. 그 자세와 자리가 좋다는 사실을 기억한 아기는 잠을 자는 상태가 아닐 경우도 그렇게 안기기를 좋아했다. 이후 다른 아기를 안을 때 나 역시 그 자세와 자리를 택했다.

 

아기를 안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섬세한 일이다. 섬세함의 다른 이름이 강인함이다. 아기이기 때문에 섬세하게 접촉함으로써 강인하게 보호해야 한다. 강인하지 않을 때, 섬세함은 섬약함이다. 섬세하지 않을 때, 강인함은 강력함이다. 섬약함이나 강력함으로 분열되어 한쪽으로 치우치면 병 또는 악이 된다. 섬약함과 강력함이 한 인격에 분리공존하면 더 큰 병 또는 악이 된다. 이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 부모가 자식을 망가뜨린다.

 

근대 이후 우리사회는 이런 부모가 망가뜨린 자식이 다시 그 자식을 망가뜨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제5세대에 이르렀다. 그들이 관건적 정치세력이 되었다. 그들이 오늘 이 참담한 정치지형을 만드는데 날카롭게 작용했다. 물론 0.73% 차이에 불과한, 섬세해서 강인한 제5세대도 존재한다. 나는 그들을 기리며 이 땅 어미 아비들에게, 그리고 또 어미 아비 될 사람들에게 올가 자세를 상상하고 기억하기를 삼가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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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나타내는 어휘가 하나 늘면 표정도 하나 늘고, 발성도 하나 늘고, 신체 표현도 하나 늘고.......그렇게 인간 신체는 쪼개지고 쪼개져서 치밀해집니다.(124)

 

사용할 수 있는 기호가 그렇게 하나하나 늘어 가면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이나 억양에서 아주 섬세한 심리 상태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 종류가 점점 늘어납니다. 정서가 풍부해집니다. 정서란 어휘나 표정, 발성, 몸짓으로 얼마나 다양한 감정을 구별해서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125)

 

내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켜기다. 의료기관 청구프로그램 열기와 글쓰기, 둘을 위해서다. 내 손 닿은 화면 들머리에는 딸아이 아기 때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사진을 걸어 놓은 이유는 아기 사진을 보면 내 감정과 태도가 섬밀해지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어린 아기처럼 섬밀하게 대한다는 다짐 실은 제의적인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

 


섬밀하다섬세하다치밀하다를 결합한 말이다. ‘섬세하다곱고 가늘다. ‘치밀하다곱고 촘촘하다. ‘촘촘하다가늘거나 작아서 사이가 좁다. 그러므로 섬세하다는 쪼개진 무엇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치밀하다는 쪼개진 무엇 사이를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동사적으로 쓰일 때도 그러하다. 섬밀하다는 사뭇 귀한 말이다.

 

섬밀한 어휘, 표정, 발성, 신체 표현, 마침내 신체 자체를 섬밀하게 섬밀할 때, 그 섬밀함이 번져가 정서 네트워킹을 일으킨다. 네트워킹이 꽃필수록 정서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풍요 정서가 찰나마다 곳곳마다 장엄을 감촉할 수 있게 한다. 장엄 감촉은 행복이라는 통속한 표정을 쓰다듬고 넘어간다. 넘어서 소소소소騷騷蕭蕭 창발 생명이 어울려 춤춘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감정을 제압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 내게 온다. 다른 모든 입구를 닫고 그 감정 하나를 위한 출구만 연다. 그는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과연 그런지, 묻고 살피는 일 없이 한사코 감싸서 키운다. 타인의 억울함에는 무감하다. 어떤 숙의도 허사다. 최후로 나는 그 감정 어휘를 섬밀하게 흔들고 있다.

 

어휘가 감정을 모두 포박할 수 없음에도 대개 어휘에 힘입어 격정을 구축한다. 그 어휘를 흔들어 민낯을 드러내줘야 격정이 무너져 다른 감정을 해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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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회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유아화 현상은 교양 붕괴라는 또 하나 징후와 근본에서 연결되어 있는 듯합니다. 교양이 지닌 가치가 이 정도로 폭락한 일은 근대 이후 처음 있는 사건 아닌가 싶습니다.......교양이란 쉽게 말하면 어떤 사실을 그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또는 어떤 사실을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사실과 맥락지어 다시 배치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교양은 넘쳐흐르는 무엇입니다. 수습되지 않고 제어되지 않아 자기 지적 구조 자체를 무너뜨릴 만큼 밖으로 향하는 근원적 외부지향성을 띠고 있습니다.......교양은 많을수록 수습이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교양은 자기 지적구조에 끊임없이 변경과 버전 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교양은 항상 한계를 넘어서려 합니다. 교양은 늘 미지 영역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교양은 인간이 조용히 만족하는 짓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교양이 방해한다는 말은 정말입니다.(121~122)

 


표준국어대사전은 교양을 이렇게 정의한다.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고려대한국어대사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가? 우치다 타츠루가 제시한 정의와 비교하면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결국 잡학다식을 뜻하니 대뜸 걷어내야 할 판이다.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는 흔히 교양 있는 사람이라 말할 때 풍기는 통속한 뉘앙스를 그대로 따른 사전답지 못한정리-정의가 아닌-이므로 이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전 만드는 자들 태도가 영 시답지 않아 보인다. 사전은 언어공동체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태도를 결집한 메타텍스트다. 메타텍스트를 구성하는 자들 태도 또한 메타적이어야 한다. 자기 위치와 직업을 다만 도구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위상을 중심으로 윤리적 존재론적 차원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능력이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교양이다. 교양 없는 자들이 만든 사전이 오죽하랴 싶으니 서글플 따름이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교양은 그가 줄기차게 논의하고 있는 복잡한 세계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견디는 지성을 향하고 있다. 그 지성은 비대칭대칭 운동에 끊임없이 참여한다. 그 참여는 다른 맥락과 엮이고 다시 다른 맥락과 엮이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무한나선순환 네트워킹을 열어간다. 화석으로 수습되기를 거부한다. 기계로 제어되기를 거절한다. 내적 침잠과 경지 등극에 저항한다. 내파와 탐색과 동요를 거듭 일으켜 주저앉은 영혼을 들쑤신다. 삶이 배움 또는 자람의 동의어임을 증명한다.

 

교양은 그리하여 어른의 길이다. 어른 가치가 폭락한 사회는 아이 참주가 접수한다. 아이 참주 사고와 언어는 외 방향 파편이다. 그 파편을 생산하고 유포해 사회를 장악하는 유아 집단이 바로 언론이라는 맹랑한 이름을 가진 지라시·팸플릿 공장이다. 현대문명이 망한다면 오로지 지라시·팸플릿 공장 탓이다. 특히 우리사회는 매판 지라시·팸플릿 공장 카르텔이 사회 유아화를 주도하고 그 과실을 독식한다. 교양 붕괴 시대를 선도하는 유아 과두가 유아 대중을 착취해 찬란해진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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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사춘기를 어찌어찌 극복해서 어른 되는 길을 가기보다 아이로 퇴행하는 길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착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듯합니다. 병원에 우리 아이가 좀 이상해요.’ 하면서 자녀를 데리고 오는 부모 중에 아이보다 훨씬 더 정신적으로 이상한 부모가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은 모릅니다. 정말 미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어른인데 속은 아이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아무 문제없이 사춘기를 통과할 리 없습니다. 단순하고 평평하고 그래서 강고한 정체성을 지닌 부모 슬하에 있는 아이가 그 영향을 뿌리치고 사춘기 정신·신체적 위기를 극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120)

 

 


유형幼形성숙neoteny은 어른이 되어도 아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우치다 타츠루를 따라 문제 삼는 상황은 겉모습은 어른인데 속은 아이인, 그러니까 신체는 어른인데 감정·정신·행동이 아이인 경우다. 문제의식 없이 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개 그냥 성격이나 기질이라 치부하고 넘어가버린다. 틈새를 파고든 병리, 또 그 너머 악이 실제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음을 직시할 때가 지금 막 지나간다.

 

숙의치유를 하는 내게 이 문제는 매우 절실하고 심각하다. 서구 정신의학 관지에서는 장애, 질병이라 명명하고 화학합성물질을 처방해 증상 완화하는 짓을 치료 이름으로 자행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치유는 아이인 사람을 어른으로 성장 또는 발달시키는 일이다. 화학합성물질로써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 숙의를 통해 감각을 깨우고, 감성을 키워, 자라가는 감화를 일으킴으로써 성숙한 감정·정신·행동을 구성해야 한다. 실로 지난하고 지루한 씨름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지치면 진다. 절망하면 절대 진다.

 

지치고 절망하게 만드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이들이 처음 의료기관을 찾는 까닭은 대부분 다른 목적에서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뜨르르한질병에 걸린 고통을 호소한다. 아프다는 사실과 어리다는 사실 사이가 본인에게는 엄청난 격절로 다가온다. 자신은 아픈 어른이지 자라지 못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인 상태가 왜 치료 대상인지 수긍할 수 없다. 아이인 상태 자체가 아니라, ‘성인이어야 하는데아이인 상태가 심각한 문제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더 엄중한 문제는 정말 미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데 있다. 여기 해당하는 사람은 단순하고 평평하고 그래서 강고한 정체성을 지닌다. 자신에게는 그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 거의가 그렇다. 그러니 부러움, 심지어 존경 대상이기까지 하다. 이들은 스스로 도착倒錯에 휘말려 사회 전체를 도착으로 끌고 간다. 이들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정치적으로도 치료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전체가 삽시간에 아이 상태로 퇴행하고 만다. 요즘 우리가 똑똑히 목도하고 있는 바다.

 

어른과 아이는 어떻게 다른가? 노희경 어법으로 표현하면 아이는 자신을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어른은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치다 타츠루 어법으로 주해하면, 아이는 단순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어른은 복잡한 상황에 자신을 걸어놓고 견딘다. 내 방식으로 주해하면, 아이는 일극집중에 매몰되어 있고, 어른은 비대칭대칭 모순을 역설로 달여 낸다. 아이가 길을 잃는 까닭은 뒤돌아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아이에게 축복인 까닭은, 아프지만 뒤돌아보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애어른과 긴 씨름을 하고 있다. 그는 지쳤다 하면서도 집요하게, 절망한다 하면서도 적대적으로 몰두한다. 단말마 접신이 그를 주기적으로 접수한다. 생명에 깃든 모순을 받아 안고, 역설로 달여 내는 일을 아이가 얼마나 혐오하는지 그를 통해 여실히 본다. 혐오로써 대박 나는 삶을 그는 한사코 꿈꾼다. 그런 삶 사는 사람 몇이 나라를 통째로 먹어치운 광경 앞에서 그럴 수 있다 싶기도 하다. 그와 숙의할 시각이 다가온다. 나는 통곡으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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