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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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을 뜻하는 라틴어 ‘intelligence''~중에서 선택하다라는 의미에서 기원했다. 뇌 없는 여러 유기체들도 유연한 방식으로 환경에 반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한 여러 가지 행동 대안 중에서 선택한다. 복잡한 정보 처리가 뇌 내부 작용에만 국한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뇌 없는 유기체 문제 해결 행동을 군집지능swarm intelligence’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이런 네트워크 기반 생명체들은 최소또는 기본인지작용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질문은 어떤 유기체가 지능을 가지느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유기체가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느냐여야 한다고 한다. 역동적이고 감응적인 네트워크만으로 인지는 이미 시작된다.(123)

 

내게는 자신이 쓴 글을 거듭해서 되새김질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몇 가지 이득이 돌아온다. 우선 사소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수정할 기회가 된다. 심지어 조사 쓰임새, 맞춤법까지 톺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사유와 글쓰기가 변화하는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늘 발전하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급격한 노화를 목격하고 탄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경험은 아무래도 이 글은 혼자 쓴 게 아니야.” 하며 놀라는 일이다. 해석 불가 한시漢詩는 물론 처음 보는 단어도 있으니 글쓰기 네트워크가 작동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난 1119, 10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비몽사몽 헤매며 뒤척였다. 돌연 일어나 확인하니 11200128. 정좌하고 전날 쓰다가 생각이 풀리지 않아 중단했던 글 뒷부분부터 생각을 이어갔다. 막혔던 부분을 풀어주는 생각들이 샘물처럼 솟아나왔다. 정리된 느낌이 드는 즉시 메모를 시작해 끝냈을 때가 0204. 다시 잠자리에 들면서 되짚어보니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동안 머릿속 가득했던 이야기들이 부족근사치를 맴도는 현실정치 문제였다. 그 맥락 일으킨 지능 네트워크가 심야숙의로써 나를 깨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고마워할 일이다. 그렇게 마무리한 글이 <8. 거의>.

 

하버드 정신과 교수인 스리니 필레이는 우리들 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생물학적 현실이라고 말했다.(멍 때리기의 기적296) 개별 뇌, 그 뇌들 사이 연결, 모두 네트워크다. 그 네트워크는 필경 뇌 없는 유기체 문제 해결 행동을 일으킨 군집지능swarm intelligence에서 진화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군집지능은 군집생명에 기반을 둔다. 생명인 한, 여기서 이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능도 생명양식이므로 생명 자체가 그러하듯 유무 문제가 아니라 정도 문제, 정확히는 특성 문제, 즉 스펙트럼 문제다. 개별 인간 생명체가 고립된 고등 지능체일 확률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다 멈출 확률과 비슷하다. 작은 지능 하나에도 감사하고, 언제나 공손히 질문하는 자세로 생명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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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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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4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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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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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는 자신이 위치해 있는 세계를 소화해 자기 몸속으로 흡수한다.......동물은 먹이를 자기 몸속에 집어넣지만, 곰팡이는 자기 몸을 먹이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100)

 

한의학 수천 년 전승은 장부臟腑를 구분하고 관계 지을 때, 표리表裏로 규정했다. 장은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으로 속, 부는 담소장위대장방광膽小腸胃大腸膀胱으로 겉이다. 인간 신체를 대롱으로 파악하여 대롱 바깥쪽 겉, 곧 피부와 안쪽 겉, 곧 소화관을 모두 겉으로 분류했다고 단순화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관지에서 보면 동물은 먹이를 자기 몸속에 집어넣지않는다. 동물, 특히 인간이 그렇게 여길 뿐이다. 자기가 먹이를 먹어 속으로 집어넣고 자기 힘으로 소화·흡수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실제로 먹이는 여전히 밖에 있고 많은 부분이 그 밖에 사는 소미 생명들 덕에 소화·흡수된다. 동물, 특히 인간도 본성상 곰팡이 생명 이치에서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 저자는 서구 전승사 한 줄기에 서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인간 생명체human biont는 곰팡이 생명체fungus biont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인다. 그러나 자기 몸을 먹이 속으로 들어가게자신이 위치해 있는 세계를 소화해 자기 몸속으로 흡수하는 곰팡이 원리를 따르는 미소생명체들 무리swarm 현상인 실재가 엄존한다. 무리 현상임을 알아차린 인간은 자기 생명감각을 작디작게 갈아서 세계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내 세계는 거대하고 광활한 우주가 아니라 내가 무심코 먹는, 아니 내 몸이 유심히 들어가는 조그만 곤드레 한 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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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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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서로 이어진 한 존재다. 균사 정단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복수 개체다.(95)

 

균사체 조율작용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균사체는 통제센터가 없기 때문이다. 목을 치거나 심장을 적출하면 인간은 죽는다. 균사체 네트워크는 머리도 없고 심장도 없다. 곰팡이도 식물과 비슷하게 탈-중앙 유기체다. 곰팡이에게는 운영센터도 없고, 수도首都도 없고, 정부도 없다. 통제기능은 분산되어 있다. 균사체 조율은 동시에 모든 곳에서 일어나며 어느 특정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균사체 조각 하나만으로도 균사체 전체를 재생할 수 있다. 즉 개별 균사체 하나는감히 말하건대거의 불멸이다.(99)

 

식물과 비슷하게란 말 없어도 대부분 그대로 식물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치대로 한다면 식물과 비슷하게가 아니다. 식물이 곰팡이에게서 그 생명 원리를 이어받아 진화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조각 하나만으로도.......전체를 재생할 수 있불멸성만은 퇴화되었다. 이 경로 경사는 동물을 거쳐 인간에 이를수록 더욱 가팔라졌다. 그 반대 경로가 낳을 결과를 상상해보면 깊은 이해 없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최근에야 인간은 곰팡이와 식물이 지닌 놀라운 진실을 어려운 연구 끝에 알아냈고, 더 놀라운 진실을 향해 갈 길이 여전히 먼 상태다. 그런데 조각 하나만으로도 전체를 재생할 수 있는 불멸성이 아닌 몸 생명인 인간은 곰팡이 진실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수천 년 전에 어떻게 서로 이어진 한 존재복수 개체를 일치시킬 수 있었을까? 화엄경이 설파한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지혜는 어떤 경로로 인간에게 들어왔을까?

 

과학이든 사유든 모든 진리진술은 진리에 대해 근사치(언저리값)임을 면하지 못한다. 과잉근사치(부풀린 언저리값)든 부족근사치(모자란 언저리값)든 진리 주위를 서성이기는 마찬가지다. 전자가 대개 명상이나 환각물질로 도달한 직관 소산이라면, 후자는 분석적 연구로 도달한 추론 소산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전자는 자신이 포착한 진리근사치가 부풀려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실재세계가 그렇다고 믿는 신비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후자는 자신이 포착한 진리근사치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모른 채 실재세계가 그렇다고 우기는 환원주의에 빠지기 쉽다. 화엄경이 드러낸 진리 명제를 서구 과학이 밝혀낸 그것보다 수천 년 앞섰다며 자랑하는 일이 어이없는 이상으로 과학만이 진리를 드러내는 바른 길이라며 자부하는 일도 가소롭다. 이 극단을 버린 中道, 正道거의라는 말 한마디에 있다.

 

거의는 어떤 기준에 매우 가까운 정도[명사] 또는 정도로[부사]로 사전적 의미가 매겨진다. 지나친 천착과 완벽을 물리고 확률분포 상태에 머문다는 뜻과 근사치라는 뜻을 함께 지닌다. 비슷한 우리말은 얼추. 물론 이 두 말의 어미 말은 ᄒᆞᆫ이다. 한자로는 혹이다. 영어로는 ABOUT. 이들 어휘가 세계 진실을 실재로 드러내는 가장 근사한표현이다. 이 근사한(!) 경지에 도달한 삶과 생각 체계가 다름 아닌 ᄒᆞᆫ 사상이다.

 

ᄒᆞᆫ 사상은 전문화된명상이나 환각물질에 의존하지 않은 경험 직관과 전문화된과학에 터하지 않은 풀뿌리 과학이 만나 화쟁으로 빚어낸 진리진술이다. 원효 사상이 그 결실이며, 원효 사상은 유구한 ᄇᆞ리전승에 젖줄을 대고 있다. ᄇᆞ리전승은 비정比定된 장엄진리와 거의닮아 있는 우아함, 거기 거의닿으려는 숭고함이 비대칭대칭으로 드러나는 ᄇᆞ리 도정에다 비애와 골계를 짜넣어 거의 불멸내러티브가 되게 했다.

 

시인 이영광은 시는 어떻게 오는가<진실에 불과하지 않은>에서 말했다.

  정확한 것을 부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오류지만,

  부정확한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정확한 것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능력이라면,

  부정확한 것을 부정확하게 정확히 말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초능력일 것이다.

 

정확 불멸 화엄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정확 불멸 곰팡이세계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거의참여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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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아닌 유기체 생명을 이해하려고 인간 개념을 적용하면 의인주의 함정에 빠진다. 반면에 '그것it'이라 하면 유기체를 사물로 전락시켜 또 다른 함정에 빠진다.

  생물학 현실은 결코 흑과 백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말하는 데 언제나 입이 필요하지는 않으며, 듣는 데 언제나 귀가 필요하지는 않으며, 해석하는 데 언제나 신경계가 필요하지는 않으므로 우리 개념 중 일부를 변용할 수 있다. 편견과 조롱으로 인간 이외 생명 형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84~85)

 

백인이 노예로 만들려고 아프리카에서 끌고 간 흑인이 6천만 명이다. 우리나라 역시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 민족을 노비로 부렸으니 남 얘기할 일 없다. 같은 인간조차 사물취급하는데 하물며 다른 생명체임에랴. 인간만 이런 짓을 한다. 인간만 이성을 지니고 그 이성 덕분에 윤리와 도덕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만큼 반이성적이어서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수렁에 빠지기 때문에 그런 장치를 자구책으로 애써 만들었을 따름이다. 자부가 수치를 증강하는 줄도 모르고 인간은 여전히 함정에 빠진그대로다.

 

다른 생명체를 사물로 취급하는 일과 의인주의로 이해하는 일이 대칭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한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의인법을 쓰는 행위 자체가 편의주의다.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도구적 선택 중 하나로 그저 인간 개념을 적용할 뿐이다. 인간 아닌 어떤 유기체 생명을 이타적이라고 표현하든 사악하다고 표현하든 인간 관지에 따른 편파일 수밖에 없다. 이는 그 생명을 사물로 취급해 기계적으로 표현하는 편파와 본질적으로 같다. 참 대칭은 인간 관지를 버리느냐 여부로 형성된다.

 

말하는 데 언제나 입이 필요하지는 않으며, 듣는 데 언제나 귀가 필요하지는 않으며, 해석하는 데 언제나 신경계가 필요하지는 않으므로인간은 입, , 그리고 뇌 개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동시에 입, , 그리고 뇌 아닌 무엇으로 말하고 들으며 해석하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받아들여야 한다. 말이 쉬워 있는 그대로받아들인다지만 딱히 좋은 방법은 없다. 그래서 우리 개념 중 일부를 변용할 수 있다.고 했다. 변용은 본디 번역에서 확장이었다. 그 말이 주는 의인주의 연장 느낌이 께름해서 변용으로 바꾸었다.

 

변용은 어떻게 하는가? 어차피 인간 언어는 자체로 은유다. 그 은유는 인간 신체와 그 움직임에서 발원한다. 인간 언어인 한, 이 한계를 불식하기 어렵다. 다른 유기체의 생명 활동이 생태계 전체 속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 판단해 편견과 조롱으로 인간 이외 생명 형태를 무시하지 않으면서정밀히 스펙트럼 조절을 하면 흑백 함정에서 떠날 수 있다. 생명 스펙트럼은 그 실상을 인정하고 들어와 보면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다양한 결을 지니므로 막연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섬세함만으로도 결곡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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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균사가 균사체 네트워크가 되는 데에는 두 가지 핵심적 변화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가지 치기, 두 번째는 문합anastomosis이다.(74)


 

우선 번역 문제부터 살피고 넘어간다. 번역자는 붙여 써서 가지치기로 했는데 이는 실수다. 붙여 쓴 가지치기는 cut off로 잘라낸다는 뜻이다. 띄어 쓰면 branch out으로 계속 다른 갈래가 생긴다는 뜻이다. 사전에서도 둘을 혼동하는 예가 있고, 아래아 한글에서는 띄어 쓰면 빨간 줄이 그어진다. 저자가 영어 단어로 무엇을 썼는지 궁금하다. anastomosis는 혈관이나 신경 관련 언어로 일반적인 융합으로 번역하면 포괄적이라 뜻이 모호해진다. 낯선 단어여서 번역자도 고민했겠지만, 문합吻合으로 고쳤다.

 

두 단어는 시각화하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 가닥이 갈라져 두 가닥으로 나뉘는 모습이 가지 치기. 두 가닥이 만나 입술이 꼭 들어맞듯 한 가닥으로 모이는 모습이 문합이다.

 

두 단어는 상호모순이나, 아니 그러므로 어느 하나가 없으면 네트워크는 성립하지 않는다. 네트워크는 역설이다. 이 역설 진리를 1400년 전에 꿰뚫어보고 가장 적절히 표현해 탁월한 사상체계로 만든 파천황 스승이 바로 원효다. 가지 치기는 쟁이며, 문합은 화. 하여 화쟁사상이 성립되었다. 예측 불허, 규칙 불문으로 화쟁하는 균사 모습이 무애无㝵. 그렇게 이루어지는 네트워크 세계가 일심一心이다.

 

일심一心은 일통一統이 아니다. 화쟁사상 해석 대부분이 신라 삼한일통 이데올로기를 원효가 불교적으로 지원했다고 모독하지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그 반대다. 우파 아류들 눈에는 화쟁에서 만 보이겠지만, 그런 무리에게 들이민 이야말로 원효가 의도한 역동적 맥락 강조다. 쟁을 세우고立諍 세운 쟁을 부수는 일破諍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화해和諧는 허울뿐이라는 진실 설파다. 이는 매판적 정복전쟁에 혈안이 된 당시 신라 지배층을 겨눈 통렬한 꾸짖음이었다. (김형효 원효의 대승철학주해리뷰(2010. 9. 19.)에 상세한 논의가 있다.)

 

곰팡이 균사체 네트워크 이야기에서 이런 사회정치적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일은 결코 견강부회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당위다. 인간으로서 곰팡이 이야기를 이리도 곡진히 하는 까닭은 그 생명 원리를 인간 사회정치 윤리에도 투영시키기기 위해서다. 원효가 맞닥뜨린 현실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한, 이 이치를 떠날 수 없다.

 

저 옛날 원효 앞에 삼한일통 깃발 세우고 당나라 불러들여 제 곳간 불린 신라 매판족속이 있었듯, 오늘 우리 앞에도 여전히 일제에 나라 팔아먹고 부역해 제 곳간 불린 신라 매판족속 후손이 국가권력 한복판에서 날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매판 지식인 전형인 윤기중의 아들 윤석열과 그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아우성치는 무리다. 저들은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반생명적 패거리다. 저들은 가지 치기와 문합으로 어우러지는 민주주의를 잘라버리는 폭도다. 곰팡이 생명 이치를 곰곰 생각하는 시민 사람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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