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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신자유주의 체제가 초래하는 개개인의 전면적 고립 상태는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
개인적 자유는·······자본의 간계, 자본의 음모로 나타난다.·······자본은 개인적 자유를 수단으로 또 다른 자기 자신과 교접한다.·······
개인의 자유를 통해 실현되는 것은 자본의 자유다. 그리하여 자유로운 개인은 자본의 성기로 전락한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관계의 어휘다. 사람들은 좋은 관계 속에서, 타인과의 행복한 공존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타인과 함께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는 성공적인 공동체와 동의어다.(12-13쪽)
요즘 통속한 TV드라마에는 거물 정치인, 재벌 총수, 스타 연예인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드러나는 저들의 공통적 면모는 자기 자신(이나 그 연장인 일차집단)을 위해서라면 범죄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랑으로 삼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회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오직 자기 자신(이나 그 연장인 일차집단)을 위해서만 야차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설마 저러랴 싶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훨씬 더 심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우리사회의 실제 거물 정치인, 재벌 총수, 스타 연예인들의 면면 일부만으로도 그 증거는 충분합니다.
이들이 지닌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의 자유에 놓여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자기 자신(이나 그 연장인 일차집단)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공적 차원으로 이들의 삶이 번져가야 함에도 철저히 사적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이렇게 고립된 상태에서 무한히 자기 증식만을 거듭하는 것이 다름 아닌 암입니다. 이들이 구가하는 자유란 결국 자기 자신을 사회의 암적 존재로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사회 전체를 죽이고 종당 자기 자신도 죽이는 이것을 자유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은 치명적 중독일 뿐입니다.
자유가 인간의 개념인 한 자유는 사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각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만 자유롭고 한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면 자유로운 사람의 자유를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유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자유롭지 못한 것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인과의 행복한 공존” 상태가 아닙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유는 당최 거론할 수조차 없습니다. 오직 “타인과 함께 자아를 실현”하는 “성공적인 공동체”에서만 자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필경 공공公共 운동입니다.
오늘 여기 대한민국은 매판자본과 독재권력, 그리고 세속종교가 야합하여 세운 저들만의 패거리 정치위원회입니다. 저들은 이른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외치지만 그 ‘자유’란 참 자유를 질곡으로 몰아넣은 가짜입니다. 그 ‘자유’는 “자본의 성기” 노릇으로 대박 난 자들이 환각으로 느끼는 가짜입니다. 세월호를 바다에 빠뜨려 250명의 꽃 같은 아이들을 죽인 '자유'입니다. 메르스를 방치하고 전쟁 위험을 조장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자유’입니다. 그 ‘자유’로 참 자유를 구축驅逐한 이 사회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닙니다. 공동체성이 붕괴된 사회에 무슨 자유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