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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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는 둘 사이 틈새를 지배한다. 곰팡이 한 살이 일부는 식물 내부에서 일어나고, 나머지는 흙속에서 진행된다. 곰팡이는 탄소가 식물 생애주기로 진입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서 대기와 대지 관계를 공고히 한다.(222)

 

인류 건강과 안녕은 균근연합 효율성에 달려 있다.” 현대 유기농운동 창시자이자 균근 곰팡이를 열정적으로 대변하는 앨버트 하워드는 말한다.......“인류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 비옥한 토양을 보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문명 미래를 결정한다.”(245)

 

식물이 먼저 곰팡이 기르는 법을 배웠는지, 반대인지 알 수 없지만, 식물과 곰팡이가 함께 함으로써 농업은 시작되었다. 어느 쪽이 먼저였든, 식물과 곰팡이가 서로를 더 잘 길러낼 수 있도록 우리는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251).

 

식물만 눈에 넣고 곰팡이 눈 밖에 두기는 농업인도 한의사 못지않다. 자기가 거둬들이는 작물만큼이나 비옥한 토양도 소중한 자산인 줄 알지만 함부로 화학비료, 농약 뿌려 땅을 죽인다. 땅 죽이면 곰팡이도 죽는다는 사실 또한 여전히 눈 밖에 있다.

 

대부분 농업인이 가담한 관행농, 산업농은 당장 소출 이외에 다른 관심 있을 리 없다. 하기는 화학비료, 농약을 기적으로 경험한 세대가 아직도 살아 있으니, 모순이 엄습한 속도가 너무 빠른 셈이다. 그만큼 현대, 엄밀히는 서구 농업혁명파괴력이 가공할 수준이라는 말이다.

 

어떤 보존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은 이미 종말론적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췌론 여지없이 농업인, 나아가 인류는 긴급히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기축은 곰팡이다. 곰팡이가 대기와 대지 관계를 공고히함으로써 둘 사이 틈새를 지배하는 관건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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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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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에서 식물과 곰팡이 사이에 정확히 무엇이 오가는지는 어떤 식물과 어떤 곰팡이가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식물이나 곰팡이가 되는 데도 여러 방법이 있으며, 균근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곰팡이 파트너는 식물 생장, 목질, 엽육, 과육 모두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229)

 

뇌에 관해 3%나 알까, 하면서도 현대과학은 마음=뇌라는 등식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장미생물 축에 관한 지식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 그러면 대체 얼마나 많은 기존 마음 담론이 폐기될까. 여태껏 식물학자들이 써내려온 식물 담론에는 거의 대부분 곰팡이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곰팡이 지식과도 연결되지 않았다면 기록조차 되지 않은 남은 90% 이상 곰팡이 이야기와 결합시킬 때 얼마나 많은 기존 식물 담론이 폐기될까. 물론 과학 발전 역사가 으레 그렇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사실 우리는 늘 오류 구렁텅이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참담한 기분이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지식 뒷문은 항상 열어놓아야겠다는 각성을 새삼 하면서 하는 말이다.

 

곰팡이가 식물 생장, 목질, 엽육, 과육 모두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직업인이 바로 한의사다. 자신이 다루는 한약재가 대부분 식물인데, 그 식물에 전방위·전천후 영향을 미치는 곰팡이에 대해 거의 전혀 모른 채 한약재 식물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일은 얼마나 피상적인가. 개인 차원 문제가 아님은 물론이나 어차피 공부가 협소했다는 진실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같은 한약재라도 균근을 형성하는 곰팡이가 다르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다양하게 연구해 정확하면서도 폭넓은 쓰임새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다양한 약재를 발효시킬 때도 사용하는 곰팡이가 다를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이 일은 특정인이 특정화할 사업문제가 아니다. 한의학 전체 문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곰팡이를 직접 마주한 한의학이 요구된다. 이는 기존의 사유를 전복시킨 곰팡이 한의학이다. 백색의학을 혁파할 새로운 꿈길, 멀지만 설레고 흥분되는 여정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가느냐는 우리가 어디까지 상상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가 어디까지 상상하느냐는 우리가 우리 편견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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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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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식물은 뿌리도 없고 특별한 조직도 갖추지 못한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초록색 덩어리가 응축되어 기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조직이 곰팡이 동지를 수용했으며, 곰팡이는 흙속에서 영양분과 물을 끌어다주었다. 진화 결과 첫 뿌리가 생겨났을 즈음, 균근은 말무리(조류)와 곰팡이가 지상으로 올라온 뒤에 생겨난 모든 생명 뿌리를 이루었다. 균근mycorrhiza이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균mykes에 이어 뿌리rhiza가 생겨났다."

  수억 년이 지난 오늘날, 식물은 더 가늘어지고 더 빨리 성장하며 식물이라기보다 곰팡이처럼 행동하는 기회주의적인 뿌리를 갖도록 진화했다.(220~221)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조류를 기르도록 진화한 곰팡이며, 또한 곰팡이를 기르도록 진화한 조류다.(222)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최초 식물은 대체 무엇일까? 초록색이라 하니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임이 분명한데 어디서 진화했을까? 기관을 만들어낸 응축이란 대체 뭘까? 곰팡이가 흙속에서 물을 끌어다주기 전에는 어떻게 물을 얻어 광합성을 할 수 있었을까? 곰팡이라는 동지를 수용한 이 초록색 조직 덩어리와 돌꽃무리(지의류)는 어떻게 다른가? 마침내, 근본적으로, 이 초록색 조직 덩어리가 곰팡이무리에 속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말무리에 속하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조류를 기르도록 진화한 곰팡이며, 또한 곰팡이를 기르도록 진화한 조류다.라는 말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뒤에 모순이 존재한다. 식물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진실 발언이 곰팡이중심주의로 넘어가면서 논리적 오류를 간과한 듯하다. 초록색 조직 덩어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돌꽃무리가 내전內轉involution”(234)해 식물이 됐다고 봐야 논리적이다.

 

진실 실재가 어떤지 현재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생명스펙트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다소 무리해 보인다. 이 무리가 전체 진실을 향해 가는 내 공부 도정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임은 물론이다. “식물과 곰팡이가 맺고 있는 관계 통제권이 어느 한쪽에 완전히 장악되지 않는다.......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타협하고 양보하며 복잡한 거래전략을 펼친다.”(233)는 사실을 거쳐 진화한 뿌리도 땅속을 탐색하는 데에는 곰팡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균근 균사는 가장 가느다란 뿌리보다도50배나 가늘고 그 길이도 식물뿌리보다 100배까지 길어질 수 있다. 균사는 뿌리보다 먼저 생겼고, 더 멀리 나아간다.”(221)는 사실이 과잉 없이 다가와 나는 오히려 안심하고 식물중심주의를 벗어난다.

 

마침내 곰팡이가 차지하는 천문학적”(221) 위상 앞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그 보이지 않는 생명을 경외하도록 눈부시게 안내한 식물도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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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는 존재했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의류입니다.(165)


 

어제 사목하는 벗이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 그 아내는 우리사회 개신교 풍경이 그려내는 전형적 어둠 한가운데 있었다. 사목 현장 한 축을 지탱하는 동안 입은 깊은 상처를 견디느라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정신건강과 양의사한테서 받은 알약을 먹으면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듣고 정신병리, 양약 본질, 숙의치료, 수면·음식·운동요법을 초군초군 일러주었다. 한편, 내 벗에게는, 설교할 때 풀·나무·돌꽃(지의곰팡이·버금바리(박테리아으뜸바리(바이러스) 소식을 전하도록 당부했다. 개신교 도시 영성이 소미생명소외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내 말을 그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을지 알 수 없다. 근본주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한국 개신교 걱정을 내 할 바 아니되, 벗이 몸담고 있어 건넨 충고 한마디였다. 신앙·구원 실재를 한사코 외면하는 집단에게 소미생명, 설마.

 

인간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포·불안, 탐욕, 무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종교는 영속한다. 생리와 병리를 오가며 끝 날까지 인간 본성을 파고든다. 종교는 신앙을 조건으로 성립한다. 신앙은 믿음을 조건으로 성립한다. 보통은 구분하지 않지만 신앙faith과 믿음belief은 다르다. 믿음은 인식 문제고, 신앙은 윤리 문제다.

 

엄밀히 말하면 본디 둘은 하나다. 예컨대 고대 헤브라이어에는 영어 식 ‘I believe in God.’ 같은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아 또는 개체인 주체가 있어 그가 인식 행위를 한다는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행위 자체가 주체를 포함한다. 나아가 인식과 실천, 곧 윤리 또한 하나다. 이를 신앙이라 한다. 결국 믿음은 자아 또는 개체 개념이 팽창 또는 폭발하면서 실천에서 떨어져 나온 근대적개념인 셈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개신교 일부 교리는 이런 역사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 개신교가 거대한 표리부동을 낳은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신자유주의에 바친 헌정은 개체적 이신득구以信得救 망상이 자초한 저주다. 고립된 자아가 독립적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서사는 관념에 갇힌 실재다. 관념적 믿음이 낳는 구원은 당연히 관념적 구원일 테고, 관념적 구원은 관념 주체가 관념을 멈추는 순간 소멸된다. 그뿐이다.

 

그뿐이면 허구다. 개체는, 개체 믿음은, 믿음에서 비롯하는 구원은 당최 존재한 적이 없다. 우리 모두는 신앙 네트워킹으로서, 으로써 관념 너머 구원실재를 찰나마다 일으킨다. 구원은 공생 창발과정을 달리 일컬은 이름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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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생명체라고 해서 유토피아일 수는 없다. 공생에는 경쟁과 협력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모든 공생 주체 요구가 다 잘 조율되지는 않는다.(164)

 

진리 진술은 진리에 관해말한다는 점에서 모두 옳다皆是. 진리 자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모두 그르다皆非. 화쟁, 그러니까 경쟁과 협력이 필수인 소이다. 쉽사리 다 잘 조율되지는 않는까닭에 화쟁은 무궁무진무량한 도정이다. 도정이므로 유토피아일 수는 없다.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에 '통'생명체”, 그러니까 일심一心세계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ᄒᆞᆫ 풍경이어서 애달프고도 즐겁다. 애달프지 않다면 무슨 의미며, 즐겁지 않다면 무슨 재민가.

 

의미도 재미도 다 잘 조율되지 않는 어긋남에서 일어난다. 완전하지 못한 틈새 누리에서 울고 웃는다. 울음과 웃음을 초월한 유토피아라면 나는 꿈꾸지 않겠다. 가보지 않아서 그런다고 할지라도 나는 끝내 가보지 않을 테다. 불완전한 채로, 미완성인 채로, 한껏 펼치는 삶을 실컷 살지조차 못하면서 그리는 유토피아란 한갓 허욕 아니겠나.

 

오늘 1130일 탄생화가 낙엽이란다. 게다가 꽃말도 있단다, 기다림.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낄 때 대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막연히 기다리게 된다. 그 막연한 기다림이 각자 유토피아다. 불만인 오늘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토피아 기다리는 상태가 다름 아닌 중독이다. 기다림이란 마약에 의존하지 않고 사소할지라도 새로운 경쟁과 협력을 일굴 때 재미로우며 의미롭게 생명체를 살아갈 수 있다.

 

결곡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니라고 하면서 나는 아직도 유토피아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협력 뒤에 숨어 경쟁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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