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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4월
평점 :
최초 식물은 뿌리도 없고 특별한 조직도 갖추지 못한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초록색 덩어리가 응축되어 기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조직이 곰팡이 동지를 수용했으며, 곰팡이는 흙속에서 영양분과 물을 끌어다주었다. 진화 결과 첫 뿌리가 생겨났을 즈음, 균근은 말무리(조류)와 곰팡이가 지상으로 올라온 뒤에 생겨난 모든 생명 뿌리를 이루었다. 균근mycorrhiza이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균mykes에 이어 뿌리rhiza가 생겨났다."
수억 년이 지난 오늘날, 식물은 더 가늘어지고 더 빨리 성장하며 식물이라기보다 곰팡이처럼 행동하는 기회주의적인 뿌리를 갖도록 진화했다.(220~221쪽)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조류를 기르도록 진화한 곰팡이며, 또한 곰팡이를 기르도록 진화한 조류다.(222쪽)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 최초 식물”은 대체 무엇일까? 초록색이라 하니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임이 분명한데 어디서 진화했을까? 기관을 만들어낸 “응축”이란 대체 뭘까? 곰팡이가 “흙속에서 물을 끌어다”주기 전에는 어떻게 물을 얻어 광합성을 할 수 있었을까? 곰팡이라는 “동지를 수용”한 이 초록색 조직 덩어리와 돌꽃무리(지의류)는 어떻게 다른가? 마침내, 근본적으로, 이 초록색 조직 덩어리가 곰팡이무리에 속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말무리에 속하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조류를 기르도록 진화한 곰팡이며, 또한 곰팡이를 기르도록 진화한 조류다.”라는 말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뒤에 모순이 존재한다. 식물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진실 발언이 곰팡이중심주의로 넘어가면서 논리적 오류를 간과한 듯하다. 초록색 조직 덩어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돌꽃무리가 “내전內轉involution”(234쪽)해 식물이 됐다고 봐야 논리적이다.
진실 실재가 어떤지 현재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생명스펙트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다소 무리해 보인다. 이 무리가 전체 진실을 향해 가는 내 공부 도정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임은 물론이다. “식물과 곰팡이가 맺고 있는 관계 통제권이 어느 한쪽에 완전히 장악되지 않는다.......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타협하고 양보하며 복잡한 거래전략을 펼친다.”(233쪽)는 사실을 거쳐 “진화한 뿌리도 땅속을 탐색하는 데에는 곰팡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균근 균사는 가장 가느다란 뿌리보다도50배나 가늘고 그 길이도 식물뿌리보다 100배까지 길어질 수 있다. 균사는 뿌리보다 먼저 생겼고, 더 멀리 나아간다.”(221쪽)는 사실이 과잉 없이 다가와 나는 오히려 안심하고 식물중심주의를 벗어난다.
마침내 곰팡이가 차지하는 “천문학적”(221쪽) 위상 앞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그 보이지 않는 생명을 경외하도록 눈부시게 안내한 식물도 경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