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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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병 치유하는 동안 내가 아픈 사람에게 빠짐없이 해온 얘기가 있다. “치유는 접히거나 구겨진 마음을 펴거나 펼치는 일이다.” 어디 마음에서 그치겠나. 마음에 병든 사람은 걷기도 접히거나 구겨져 있기 마련이다. 모진 우울증에 시달리며 스스로 그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걸음을 펴거나 펼치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한쪽 발로 제법 오래 서 있는 동작을 취할 때였다. 우연히 잠깐 눈을 감았는데, 그 즉시 심하게 흔들리며 자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치와 기전은 모른 채, 시각과 몸 평형감각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구나, 깨달았다. 둘 사이에 소뇌가 있다는 사실을 요 며칠 사이 비로소 접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뇌가 시각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해야 맞다. 내 무식 행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시각뿐이 아니다. 소뇌는 속귀에 있는 평형 조절기관에서 정보를 받는다. 청각과 평형감각은 어떤 이치로 결합하는가.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평형감각이 시각, 청각, 촉각 같은 감각 정보에 의존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청각 의존도가 가장 높다는 주장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성은 작지 않다. 실제로 청각 기능 떨어진 노인들은 낙상 위험이 크고, 낙상하면 50% 정도가 1년 안에 사망한다. 이즈음에서 생각한다: 소뇌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무지와 편견이 담겨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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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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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위에 가지와 잎이 많이 달린 부분을 수관tree crown이라고 한다. 포유류 중 이 수관이라는 서식지를 니치niche로 삼은 종이 나타났다. 우리 조상인 원숭이다.

 

나무 위를 니치로 선택한 원숭이류에는 여느 포유류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눈 위치다.......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눈이 정면을 향해 있다.

  두 번째는 손 변화다.......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보고 있어 나뭇가지나 먹이를 잡을 수 있다.......손톱을 납작한 모양인 편조扁爪로 바꾸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 감각으로 가지를 잡게 되었다.(패자의 생명사203~204)

 

나는 이 대목에서 아주 긴박한 시간, 매우 날카로운 의식으로 머무른다. 어느 찰나 직립보행으로, 소뇌로, 신체 뇌 개념으로, 다중 기원 뇌 발생 가설로, 마침내 네트워킹 원리 재구축으로 단도직입 달려간다.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계속 걷는다.

 

무엇보다 먼저,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풍경부터 상상한다. 수관이 인간 진화 발원지라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나무란 인간에게 무엇인가, 정색하고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나무에 기댄 삶 덕분으로 인간은 특별한 눈, 특별한 손을 지니게 되었다. 그 눈, 그 손 덕분에 인간은 직립보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눈은 직립 시 균형감각에 필수적이다. 손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직립은 필수적이다.

 

이 눈, 이 손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연결된 곳이 다름 아닌 소뇌다. 소뇌를 빼놓고 직립보행을 말할 수 없다. 직립보행을 빼놓고 인간을 말할 수 없다. 인간을 말하는 데에 그동안 소뇌가 너무 소외되어오지 않았던가. 대부분 운동과 균형, 뭐 이 정도 알고 넘어갔다. 소뇌 소외를 전복하지 않는 한 인류가 파멸을 피할 길은 없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운명은 무엇이 갈랐을까. 작지만 호모사피엔스 뇌는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기 위한 소뇌가 발달했다. 약한 자는 무리를 만든다. 힘이 약한 호모사피엔스는 집단을 만들어 살았다. 그리고.......자기 힘을 보충하기 위해 도구를 발달시켰다.......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즉시 공유했다.(같은 책 222)

 

공동체 소통에 소뇌라니? 나는 독서를 멈춘다. 대뜸 소뇌를 찾아 나선다. 나만 무식하지는 않구나. 소뇌 연구한 단행본 한 권이 없다. 조각 정보로 떠도는 숱한 이야기 가운데 대다수는 운동에 관한 내용이다. 틈새로 흘러 다니면서 중요한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이 이야기들을 되작거리고 집적거리고 끼적거리면서 이리저리 덤빈다. 변방 사람이 공부하는 기본 방식이다. 어디로 어디까지 갈지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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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 38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것은 항상 패자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3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장수철 감수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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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책 세 권을 연거푸 읽었다. 셰인 오마라 걷기의 세계, 이나가키 히데히로 패자의 생명사, 베론다 몽고메리 식물의 방식이 바로 그들이다. 같은 목적이나 주제를 가진 책들이 아님은 물론이고, 나 또한 그렇게 읽지 않았다. 다 읽어갈 무렵 딱 한군데로 사색이 수렴되더니, 거꾸로 거기서 모든 사색이 발산해 나아가는 전에 없던 경험을 했다. 이상한 느낌에 이끌려 몇 날 며칠을 되작거리고 집적거리고 끼적거리고 덤볐다. 아직 사색이 온전하지는 않으나 일단 쓰기 시작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논리가 생기고 창발이 일어나리라는 네트워킹 신뢰에 턱 하니 맡긴다.

 

셰인 오마라 걷기의 세계는 뇌과학자인 저자가 걷기를 예찬하는IN PRAISE OF WALKING의미로 쓴 책이다. 도구적 의미 넘어 걷기를 중시해온 나로서는 당연히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좋은 책이지만 내게는 썩 좋지만은 않았다. 뭔가 묵직한 메시지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그러나 여태까지 걷기를 정색하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한테라면 매우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패자의 생명사를 쓴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다른 책을 통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식물학자다. 싸우는 식물, 전략가, 잡초와 더불어 생존전략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책은 통속한 상식을 뒤집는 시선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흥미롭고 쉬운데다가 짧기까지 한 글들로 구성되어 여름 독서용으로 아주 알맞다. 그렇다고 결코 가벼운 이야기이지만은 않다.

 

베론다 몽고메리 식물의 방식은 그 내용에 우선한 다른 특별함을 지닌 책이다. 실제 분량이 160여 쪽인데, 미주가 47쪽이나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글쓰기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한 공부가 얼마나 옹근가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몇 가지 빼면 모두 익히 아는 내용이고 내 관지에서는 불철저하기도 하지만, 이 책 또한 식물을 정색하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한테라면 매우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들을 한꺼번에 놓고 한 가지를 사색하도록 이끈 부분은 패자의 생명사에 나오는 니치niche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 니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생태학적 위치인 니치는 생존하기에 꼭 맞는 자기 자리다. 인간 조상인 어떤 유인원이 tree crown에 처음 자리 잡았다. 여기서부터 인류 영욕 역사가 시작된다. 내가 곡진히 관심 둔 부분이 바로 여기인 만큼, 이야기는 이전과 사뭇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리뷰 형식도 그렇고, 이야기 내용도 그렇고, 나 스스로 기약한 바가 없다. 종착지를 정하지 않고 떠나는 여정이므로 그냥 가는 대로 한번 가본다. 그래, 발맘발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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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 양자역학, 불교 영혼 만들기
빅터 맨스필드 지음, 이세형 옮김 / 달을긷는우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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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이 전체성을 향한 트인 소통 양식임을 알아차리고 좀 더 실제적인 접근을 하려고 이 책 주해 리뷰를 시작했다. 저자가 지닌 목적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 작업이 어떤 직접적인 선물을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저자 의도와 무관한 지점에서 나는 근본적 회심을 일으켰고 저자와 다른 방식으로 동시성에 접근해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나를 칼날 위에서 각성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

 

저자에게 미친 영향을 따지면, 적어도 이 책에서는 폴 브런튼이란 인물이 단연 압도적이다. 순수 내용으로 400쪽이 좀 안 되는 책에서 결론을 향해 가는 막바지 300쪽 이후에서만 17회나 그를 인용한다. 책의 맨 마지막도 그를 인용한 글로 장식할 정도다. 그 인용문 맨 마지막은 이렇다.

 

상상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스스로 불멸할 것이라고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불멸을 얻는다.(402)

 

유심론 지도자에게서 나온 결론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주의를 기울인 지점은 이 말이 통속한 자기 계발 선동 문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본의 첨병 노릇을 하는 허다한 영적 지도자들과 폴 브런튼이, 그리고 그를 인용하는 빅터 맨스필드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심지어 불멸이라니. 브런튼과 브라만이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임이 틀림없다.

 

유심론이니 그렇다 친다. 폴 브런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바깥 세계를 경험한다고 믿을 때, 실제로는 내면을 경험하는 것이다.(325) 물론 이 또한 유심론이니 그렇다 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따져보자.

 

문맥 전체를 보지 못해 오해 소지가 없지 않으나 적어도 이 문장만 보면 폴 브런튼은 내면을 통속한 의미에서 쓰고 있다. 바깥 세계와 분리되는 고유한 내면 말이다. 과연 그런 내면이 있을까?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없다. 본디 저들 유심론은 바깥 세계(물질)와 내면(마음)을 대비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후자가 전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혹 대비시킨다 하더라도 대비시키는 한, 바깥 세계 없는 내면은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그때 바깥 세계와 이루는 경계가 바로 내면이다. 결국 바깥 세계를 경험한다고 믿을 때, 실제로는 내면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말은 고매하고 심오한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코웃음을 치며 내게 말한다: 네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그렇다. 나는 그 경지 이르렀다고 하는 거인이 이 지경 된 난쟁이들 바꾸는 꼴을 본 적이 없다. 그 경지로 홀로 나아가지 않고 이 지경으로 더불어 배어드는 난쟁이들이 정녕 신이다. 이 난쟁이들이 꾸는 개꿈, 떠는 수다, 실룩이는 몸짓이 어우러져 동시성을 일으킨다.

 

동시성 공동체, 그 네트워킹은 실로 다양한 난쟁이들로 왁자하다. 유색인종, 여성, 아동, 성 소수자, 장애인, 빈자, 난민, 수드라·바이샤·언터처블, 조센징, 연변족, 절라디언, 빨갱이, 독립운동가 후손, 4·16 아이들, 제주도 원주민, ‘개돼지’, 반려동물, 식용동물, 북극곰, 아마존 숲, ‘얼굴 없는식용식물, 잡초, 돌꽃(지의류), 곰팡이, (조류), 버금바리(박테리아), 으뜸바리(바이러스).......빅터 맨스필드가 말하는 진정한 Soul-making은 바로 이 난쟁이들 냄새 가득한 낮고 후미진 몸-맘에서 일어나는 시시한사건이다.

 

나는 이 시시한 사건을 내 영적 삶 처음 꽃으로 피워내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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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 양자역학, 불교 영혼 만들기
빅터 맨스필드 지음, 이세형 옮김 / 달을긷는우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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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지적 이해만으로는 심오한 영적 진리를 구현하기에 결코 충분하지 않다. 우리 본성이 완전히 변화하는 데는 평생에 걸친 철학적 연구와 명상, 수행이 필요하다. 나는 해방, 성불, 또는 견성이라는 말을 서로 바꿔 쓰거니와, 이 상태는 영적 거인들이 다다른 흔치 않은 성취다. 고맙게도 그들은 고군분투하는 난쟁이인 우리에게 사다리를 내려준다.(396)


강력한 동시성 경험조차 과장될 수 있다. 작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세계가 내 유익과 교육을 위해 의미 있게 자기 배열한다면, 나는 선택받은 매우 앞선 사람이 틀림없다.......

  거의 동일한 문제가 영적 영역에서도 일어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기망상 대가이기 때문에 인간 모두에게는 늘 철학적 규율과 유능한 안내자가 필요하다.(399)

 

왜 인간은 평생에 걸친 철학적 연구와 명상, 수행으로 그것도 거인이 내려주는 사다리에 힘입어 심오한 영적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가? 왜 진리는 그토록 멀리 있는가? 왜 인간은 절대다수가 고군분투하는 난쟁이에 지나지 않는가? 난쟁이 주제에 재수 좋게 동시성 경험을 하면 감지덕지할 일이지 왜 과장하는가? 영성을 추구하면서 왜 자기망상 대가인가?

 

이 의문과 관련해 저자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영적 진리 과잉 숭배 문제인지 인간 능력 과잉 폄하 문제인지, 독자가 나서서 따져볼 일이다. 전에 함께 읽었던 책 가운데 귀중한 참조 지점을 제공해주는 둘이 있다: 스티브 테일러 자아폭발-타락-(2019.01.05.~03.30.), 그리고 찰스 아이젠스타인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2018.06.09.~09.06.)

 

<13. 고매와 심오를 거절함>에서 우리는 이미 이른바 영적 진리 담론이, 있지도 않은 세계 바깥으로 나가버린 정신 기획임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주장하는 영적 진리는 공생 네트워킹으로서 고매와 심오를 단호히 거절한다는 얘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 뒤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생 네트워킹 내용 이야기가 필수다. 대체 그 네트워킹은 뭐란 말인가?

 

네트워킹, 이제 여기부터 혁명이다. 혁명은 관념 인간이 말하는 비범한 초월이 아니라, 평범한 네트워킹이 창발하는 일이다. 문제는 창발의 기원이나 중심에 인간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인간이, 특히 잘나가는 인간들이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가령 유심론을 전개할 때, 다른 존재에게는 심이 없다고 전제하는 실패가 대표적이며 핵심적인 실패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고문당하는 생쥐처럼 고통당한다.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고통당한다. 왜냐하면 쥐와 달리 육체적 고통에 심리적 고뇌를 더하기 때문이다.(391아무리 천체물리학 전공이라 하더라도 생물학에 이렇게 무지를 드러내는 일은 인간중심주의 철학과 영성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피할 길이 없다. 어떻게 쥐가 다만 물질이란 말인가.

 

물질인 쥐로 하는 인간 정신질환 생체 실험이 가능한 이유가 그 물질에게 인간이 정신을 창조해주기 때문이 아닌 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울증에 빠진 쥐의 장에 Mycobacterium vaccae를 넣어 세로토닌 생성을 유도한다. 쥐가 물질이면 Mycobacterium vaccae는 더욱 다만 물질이다. 그 다만 물질은 어떻게 건강한 인간 정신을 만드는가.

 

그보다 더 궁금한 일은 그 다만 물질이 어떻게 인간 장 속에서 세로토닌을 생산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바이러스는 또 얼마나 더 다만 물질인가. 오늘날 바이러스는 생명 세계 헌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물질에서 정신이 나왔다는 말인데, 그럼 이 유물론이 말이 되지 않아 유심론으로 갔단 말인가, 인간 뺀 모든 마음 빛 띠를 깡그리 없애고?

 

좋다.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다 치자. 그 마음이 과연 인간, 그러니까 humanbiont의 마음인가? 무슨. 인간 마음 자체가 공생 네트워킹 창발 과정이자 그 결과가 순환하는 운동이다. 물론 공생의 또 다른 주체는 인간이 물질이라 거침없이 말하는 미소 생명이다. 그 미소 생명이 무의식의 본진이며, 그 본진이 네트워킹을 지휘한다: 신의 나라, 영의 정치다.

 

신의 나라, 영의 정치가 서서히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일은 인간 뇌, 문명, 진보가 음성 되먹임 구조를 이탈하면서부터다. 스티브 테일러는 타락(자아 폭발),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분리라고 규정한다. 발달론 유비든 진화적 윤리학이든 신성한 경제학이든 인간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지, 성숙한 복귀에 얼마나 큰 대가가 따르는지 통렬히 지적한다.

 

이 논의를 누락시킨 맨스필드 유심론 초월은 역사, 공동체, 평범이라는 중대한 축을 놓쳤다. 영적 진리가 개인 수행에 볼모 잡힘으로써 영적 거인의 사다리 근처에조차 가지 못하는 난쟁이들은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잔같은 존재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동시성 사건이 비인과로 다가오더라도 의미로 연결되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만다.

 

분명히 해야 한다. 진정한 초월은 명상이나 요가를 통해 관념적 대극 합일에 이르는 유심론적 환각이 아니다; 평범한 생명이 작디작은 생명에 깃들어 공생함으로써 더불어 번져가는 네트워킹이다. 마음은 몸으로 발현하고, 몸은 마음으로 녹아 흐른다. 둘이 답이 아니라고 해서 하나가 답이라는 생각은 아이 생각이다. 영의 역사는 어른이 되어가는 제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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