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로 한다. 두물머리로 갈 생각이 있어서다. 일요일 중앙선은 사람은 물론 자전거까지 더해져 매우 혼잡하다. 혼잡을 조금이라도 피하려면 양수역에서 내려 남한강 쪽부터 걷고, 그다음 북한강과 만나는 언저리를 걸은 다음 북한강 물가 길 타고 운길산역으로 가 돌아온다, 이렇게 가닥 잡는다.

 

양수역은 의외로 그리 붐비지 않았다. 아마도 오후에 비 오신다는 예보 탓일 테다. 스마트폰 지도로 용담리 가정천과 남한강 마지막 물길이 만나 이루는 만 모양 물 서쪽 숲길을 찾기 위해 사람 다니는 차선이 그어지지 않은 차도로 들어서다 몇 걸음 못 가고 그만두었다. 급회전하는 지방도는 바위투성이 산등성길보다 더 무섭다.

 

동쪽 둔치에 만들어 놓은 산책로로 방향을 바꾼다. 그 끝에서 서쪽을 향해 난 양수로를 걸어 남한강 큰 물길과 만난다. 6번 국도 경강로와 만나는 곳에서 한참 간 다음 더는 나아가지 않고 높은 언덕에 올라 남한강을 내려다본다. 저 물길 시원인 오대산 우통수 발치 간평리 마을 내 고향을 떠올린다. 언제이든 다시 걸을 곳이기에.



돌아오는 산모퉁이에 무덤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인기척 있어 다가간다. 파평 윤씨 선산이란다. 이 산을 넘어 양수역 가는 길이 있는가, 물으니 그렇단다. 아까 실패를 만회할 양으로 거침없이 숲으로 들어갔으나 이내 길을 잃었다. 그가 있다고 한 산길은 옛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늘 그랬듯 나는 직진했다, 이번엔 물에 닿으려.

 

산은 작지만, 숲이 커서 길 잃은 자는 아뜩해진다. 홀연 길 하나가 보인다. 마치 익숙한 산 사람이 남긴 증거처럼. 그런데 이상하다. 그 산 사람이 아이 또는 난쟁이라면 모르지만, 어찌 기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이토록 많을까? 이제 길이 트이는구나, 하는 찰나 소름이 훅 끼쳐온다: , 바로 이게 짐승 길이구나. 아이고, 맙소사!

 

회룡 계곡 때 사람 발자국과 달리 짐승 길은 끊어지지 않고 샘이 있는 곳과 닿아 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샘에서 물을 받던 등산객들이 놀란다: 거기 워낙 가팔라 길이 없는데요? 내가 웃으며 일부러 물 가까이 걷기 위해 길을 내며 왔다고 하니,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그 와중에 기어이 물에 닿아 손을 담갔음은 똑 사실이다.


 

알고 보니 그렇게 간 길은 처음 무서워 그만둔 그 길과 마주 이어져 있었다. 거꾸로 한 바퀴 돌았으니 목적 달성이 분명하다. 거기부터 내 발걸음은 헤매지 않고 용담리를 관통한 다음, 양수리 물가 길을 샅샅이 돌았다. 두물머리 나루에서 두 한강 물과 손을 맞잡았다. 북한강 물과도 손뼉을 마주쳤다. 네 시경 운길산역에 닿았다.

 

지지난 주 안성 저수지 물·멍에서 물과 만난 뒤 사실 어떻게 숲에서 물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오늘 두물머리로 향했다. 물은 숲과 특성이 달라 뭍 생명 인간을 쉽게 단도직입으로 품어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태초에 숲은 물이었다. 지구 팡이실이 창발로 물기 던 숲을 발현했을 뿐. 숲에서 물로 가는 길은 숙명이다.

 

운길산역 아래 북한강 물에 다섯 번째 손을 담금으로써 내 첫 물나들이는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이 걷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모른다.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 걸음씩만 내디디려 한다. 팡이실이, 그 살아 움직이는 현실에 내가 극진히 참여하는 한, 물은 물로 그 길을 열 터이므로. 바야흐로 새로운 한 시절이 일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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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최근에 들어와서 러시아(이하 러샤)와 우크라이나(이하 우크) 간의 전쟁 양상이 러샤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모양새다. 그 점을 보여주는 한 지표가 최근에 우크군이 내는 사상자 수가 아닌가 싶다. 2024년 5월 5일〜10일 6일 동안 6,460명, 5월 11일〜17일 1주일 동안 9,565명, 5월 18일 하루 1,725명, 19일 1,880명, 20일 1,260명, 21일 1,660명, 22일 1,330명, 23일 1,740명. 이상은 텔레그램 채널 슬라비안그라드에 올라온 우크군의 사상자 관련 보도를 종합한 통계다.

우크군의 사상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5월 5일〜10일 사이는 하루 평균 1,077명, 11일〜17일의 1주일은 하루 1,366명, 그리고 5월 18일 이후 6일간은 하루 1,600명 수준인 셈이다. 우크의 사상자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여기는 사람은 통계를 발표한 것이 러시아 국방부임을 문제로 삼을 수도 있다. 자국의 전과를 내세우느라 국방부가 사상자 수를 부풀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자국의 전과를 축소하는 경향은 있어도 과장하는 경우는 드문 편으로 알려진다(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가 오판해서 확전하지 않도록 전쟁을 매우 조심스럽게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 보도를 한 슬라비안그라드는 친러샤이기는 하지만 우크 전쟁과 관련해 신뢰를 인정받는 매체다.

러샤군의 사상자는 어떨까? 러샤측 사상자가 많이 나온다는 보도는 많지 않다. 러샤의 사상자는 2022년 2월에 시작된 전쟁의 초기에 좀 많이 나왔고, 23년 초 바흐무트 공방이 진행될 때 증가했는데, 그 외에는 높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고 알려진다. 특히 최근에는 전쟁 개시 이후 사상자가 최저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점은 영국의 BBC 방송국과 협동으로 러샤의 전사자 수를 확인해오고 있는, 러샤 반정부단체 미디어조나의 발표로도 확인된다. 미디어조나는 2022년 2월 24일〜2024년 5월 10일 사이 확인된 러샤측 전사자는 52,789명이며, 올 4월 29일〜5월 3일 사이 5일간 전사자를 최소 10명으로 잡고 있다. 사상자는 전사자의 세 배 정도로 잡기도 하니 지금까지 러샤측의 사상자는 15만명 안팎일 가능성도 있다. 우크는? 100만명을 육박하거나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우크 대통령 젤렌스키의 신경질 또는 울화 행동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군 장성들을 만나면 전황 보고가 정확하지 않다고 화를 벌컥 낸다 하고, 6월 15〜16일 예정으로 스위스에서 열릴 ‘우크라이나 평화 회의’와 관련해 키예프 주재 외국 대사들과 준비 모임을 하면서 우크의 입장을 지지해달라 ‘히스테릭하게’ 요구했다는 전언도 있다. 젤렌스키의 그런 태도는 우크가 대 러샤 전쟁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2년 반의 전쟁 중에 우크군이 그래도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였던 것은 2022년 가을에 하르코프 지역과 헤르손 지역을 탈환했을 때뿐이다. 당시 서방 언론은 러샤군이 와해하는 듯 호들갑을 떨었으나 우크가 거둔 ‘승리’는 자국군의 피해가 너무 큰 피루스의 승리였다. 그래도 그때 우크군이 공세를 펼쳐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병력이 러샤군에 비해 훨씬 더 많았고, 미국과 EU 등 나토국가로부터 무기를 많이 공급받았던 덕분이다. 그러나 22년 겨울 이후 우크군은 계속 열세를 면치 못했다고 해야 한다.

러샤군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동원령으로 30만, 자원입대로 월 4만 이상의 병력을 확보해 지금은 우크군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전쟁 기간 광범위한 제재를 받으면서도 러샤 경제는 서방 어떤 나라보다 큰 성장세를 기록했고, 특히 군수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샤의 방위산업이 예상보다 빨리 발전한 것은 미국의 합동참모의장 찰스 브라운도 최근에 인정한 바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우크군에 제공한 탱크나 자주포, 미사일 등은 모두 고가로 처음 제공될 때는 ‘경이의 무기’인 양 선전되었으나 전장에서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반면에 러샤의 탱크, 미사일, 드론, 대포 등은 가격은 훨씬 싸면서도 성능은 나토군 무기를 능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크는 지금 특히 병력이 절대로 모자란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동원령을 내려 ‘대포 밥’이 될 사람들을 찾고 있으나 나라의 부름에 응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동안 징병관들의 무자비한 납치 행위를 목격한 남성들이 숨어서 나오지 않아 도시 거리가 텅 빌 정도라고 한다. 병력만이 아니라 무기가 부족한 것도 큰 문제다. 그동안 무기를 대주던 나토도 이제는 재고가 바닥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우크군의 사상자 수가 급증한 것도 그런 점과 무관할 수 없다. 전투 유경험 병력은 오랜 복무로 다수가 희생되었고 생존해도 피로와 부상이 쌓였을 것이며, 새로 강제로 투입된 병력은 훈련과 경험 부족으로 전쟁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우크군의 사상자가 늘고 있는 것은 열악한 조건으로 군 사기가 크게 떨어진 가운데 갈수록 막강해지는 러샤군을 맞아 싸워야 하기 때문 아닐까 한다.

우크군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연 없다. 남은 길은 항복이나 협상밖에 없는데 젤렌스키의 태도를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우크군을 내세워 대리전을 치르는 미국에서 나온다. 최근에 미국의 국무장관 블링컨이 우크의 수도 키예프를 다녀갔다. 젤렌스키는 블링컨에게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로 러샤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은 우크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러샤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게 러샤 영토 공격은 금지해왔다. 우려스러운 것은 본국에 간 블링컨이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샤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우크의 선택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5월 6일 러샤 외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 나이젤 케이시와 프랑스 대사 피에를 레비를 차례로 초치한 바 있다. 그것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자국군을 우크에 보내겠다고 한 것과 영국 외무장관 캐머런이 자국이 제공한 스톰쉐도우 미사일로 우크가 러샤 영토를 타격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블링컨이 미국의 미사일로 러샤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우크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러샤가 영국과 프랑스에 제기한 경고를 무시한 것인 셈이다.

블링컨만도 아니다. 미국에는 지금 우크가 미국 미사일로 러샤를 타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강경론자가 많다. 우크가 러샤에 하이마스 로켓포와 에이태큼스 미사일을 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등 뒤로 손을 묶는 셈이라고 하는 하원의 외교위원장 마이클 매콜이 한 예다.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의 태도도 비슷하다. 최근에 그는 “나는 우크가 그들이 적합하다고 보는 대로 전쟁을 수행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동안 러샤-우크 전쟁을 관찰해온 전문가들은 지금 미국을 위시한 나토국가들이 우크에 아무리 무기를 많이 제공해도, 또 우크가 러샤 본토에 아무리 효율적 공격을 가하더라도 전세가 뒤집힐 일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젤렌스키가 미국 미사일로 러샤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미국을 전쟁에 직접 개입시키기 위함일 공산이 높다. 하지만 우크가 미국의 미사일로 자국 본토를 공격하면 러샤는 미국이 전쟁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우크가 서방 무기로 러샤 영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미국 주재 러샤 대사가 “위험하고 무모하다”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정치인과 의원이 우리의 인내를 계속 시험하고 있다. 우리는 키예프 정권에 군사원조를 확대하라는 새로운 제안을 매일 듣는다. 키예프의 주안점은 미국과 다른 나토국가들이 성급하게 행동하도록 부추겨 러샤와 나토 간의 정면충돌을 일으키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현재 전황으로 봐서는 우크군의 궤멸은 비가역적으로 보인다. 최근의 전선 상황으로는 여름 지나고 가을쯤 되면 우크는 무조건 항복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우크로서는 나라 전체가 초토화하는 것을 면하려면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러샤와의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젤렌스키를 위시한 우크의 지도부는 이기지 전쟁을 종식해 평화를 얻을 생각은 전연 하는 것 같지 않다. 우크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2014년 우크에 마이단 쿠데타를 일으켜 러샤와의 전쟁을 유발한 서방, 특히 미국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러샤와의 전쟁을 멈추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무장관이 미국의 무기로 우크가 러샤 영토를 공격할 것을 부추기려는 형국이다.

우크가 과연 미국의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로 러샤 본토를 공격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러샤는 미국이 자국을 공격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고, 맞대응할 공산이 있다. 핵무기로 무장한 두 초강대국이 서로 맞붙는다면? 너무나 위험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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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과 백악산 사이, 그러니까 정릉동에서 평창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 이름이 보토현(補土峴)이었다. 보토현(補土峴)은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으로 갈라져 조선 한양성 주산인 백악산으로 오는 주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파악되었다.

 

고개는 보통 두 산 사이 가장 낮은 곳이라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조선 왕실 기록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빗물에 씻기고 헐려 땅 기운 옹근 곳이 떨어져 나갔다. 그 땅에 흙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비변사에서 아뢰었다(정조 8). 그래서 여기가 보토현이 되었다. 보토현 관리를 맡은 보토처(補土處)가 총융청 산하에 있었다.

 

나는 이런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202364일 북한산과 백악산 사이 자락에서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제의를 실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야기 배경을 이렇게 적었다.

 

북한산과 백악산 경계, 동쪽 정릉동과 서쪽 평창동 사이에는 본디 고갯길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지금처럼 북한산 둘레길 제5구간 명상길 일부와 겹치는 길이 아니라, 청학사와 현재 평창동 형제봉 통제소를 잇는 최단구간 고갯길을 상상해 보았다.” (2023.6.6. <북한산과 백악산 사이>)

 

물론 내가 상상한 고갯길과 실제 보토현은 같을 수 없다. 내 상상은 등고선 지도를 보며 찾아낸-청학사와 형제봉 통제소를 직선으로 이은-가장 낮고 짧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상상 속 장소를 찾아 나선다. 작년 내 제의와 보토현 역사적 서사를 한 데 묶기 위해서다. 작년과 전혀 다른 경로를 따라 들어가 청학사와 여래사를 잇는 익숙한 길에 다다랐다. 여기서 갈라져 삼곡사 쪽으로 간다. 작은 골짜기지만 영검을 구한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마애불이든 산신이든 보토현 풍수 서사에 기댄 갈망을 결집한 표지들은 여전히 여기를 떠나지 않고 웅얼거린다. 맞은편 평창동으로 내려가는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비나리와 징 두드리는 소리가 언제든 들려올 듯하다.


 

지도에서 확인한 보토현을 정확히 찾아낸다. 북한산 청담 계곡에서 담아온(2023.10.29.) 흙을 골짜기 양쪽으로 뿌려 보토현 서사가 오늘에 살아 있도록 제의를 실행한다. 구진봉(俱盡峰) 쪽으로 직진하다가 길이 군부대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한순간 사라진다. 아까 그 제의 자리 조금 지나서 내 눈에 길 한가운데 파헤쳐진 구덩이와 나뒹구는 흙더미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누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선명한 삽 자국이 있는 사실로 미루어 작정하고 한 짓임이 틀림없다. 길 한가운데라 귀한 약초나 보석 따위가 있었을 리 없으니 내게는 다만 보토현 서사를 훼손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흩어진 나머지 흙을 다시 모으고 도둑맞은 흙 대신 인근 나무토막들로 덮는다. 온전히 복원하지 못해 아쉽지만, 오늘 여기로 와야 했던 이유가 분명해져 내가 요즘 깊이 주의를 기울이는 범주 인류학적 언어와 실천 탐구에 숲이 보내는 응원이라 여긴다.


 

백악산 동북쪽에서 시작해 북한산을 거쳐 다시 경복궁과 청와대가 자리한 백악산 서남쪽으로 향한다. 보토현 서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북한산 흙을 백악산에 삼가 보탠 다음 정화를 전제로 축원 올린다. 가벼운 발걸음이 삼청동 쪽 숲길 끄트머리쯤에서 멈춘다. 숲속에서 유유히 푸른 잎을 먹고 있는 꽃사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희화화했듯 청와대를 우스개로 만든 부역 주술 통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악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져 뭉클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몰려와 총총히 숲을 나온다.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삼청동 어느 두부 전문점으로 들어간다. 막걸리부터 시켜 벌컥벌컥 들이켠다. 낮술이라 할 만한 시간대인지라 취기가 날렵하게 퍼진다. 오늘 남은 시간일랑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낼 수 있으니 뭐 대취한들 어떤가, 아내와 딸아이가 함께 여행을 떠나서 저녁 약속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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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쯤 나는 생태학과 여성학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공부 모임을 만든 적이 있다. 물론 모든 조건이 열악했던 시절이라 출발역 바로 다음이 종착역이 되었다. 그때 나는 후배와 제자들에게 말했다: 학문 이름에 생태라는 말을 앞뒤로 마구 붙이는 날이 곧 온다.

 

오늘은 말한다: 모든 학문 이름에 인류라는 말을 앞 붙이는 날이 꼭 온다.

 

우리가 익히 들은 바는 무슨 무슨 인류학이라는 허다한 인류학 분지다. 가령 정치인류학, 이런 식이다. 그러나 나는 인류정치학을 말한다. 이는 기존 정치학과 범주 자체를 달리하는 범주 인류학 종개념이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내가 말하는 인류학은 서구 제국이 여태까지 만들어 놓는 모든 학문을 묶어 한 범주로 놓을 때 그 대칭에 놓을 범주로서 인류학이다.

 

범주 인류학은 그 주체가 인류고 방법론도 내용도 실천도 모두 인류적이다. 이때 인류는 제국주의가 모독하고 명명한 바로 그 인류. 이성도 진보하는 역사도 과학도 없는, 미개한, 제국 시민과는 전혀 다른, 죄악 자체로서 제국 시민을 포위하고 있는, 하여 마침내는 멸절 대상일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인류. 인류를 규정한 제국 시민을 나는 인간이라 부른다. 인간이 만든 모든 학문, 예술, 종교, 제도를 총칭해 인간학이라 부른다. 인간학인류학을 능멸하고 파괴하고 급기야는 살해해(버렸다고 믿고,) 없는 존재로 치웠지만, “인류학은 그 참혹하고 처절한 상처 속에서도 살아남아 저 인간학을 품어왔다. 이제 인간학이 인간, 그 세계, 나아가 비인간 세계에 끼친 패악을 치유할 서사와 실천으로 기어이 둥두렷이 인류학을 떠오르게 해야 한다.

 

범주 인류학은 형식논리, 인과율, 분석에 터 한 제국 학문 편협·편파성을 꿰뚫는다. 그 기본적 힘은 이른바 고대 지혜에서 발원한다. 고대라는 말은 단지 아득한 시간만을 가리키지 않고, 인간학 저편이라는 공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고대 지혜는 비단 석기시대 풍속을 그대로 간직한 부족에게만 아니라 인간학 세례를 듬뿍 받은 제국 시민에게도 엄존한다. 평범한 시민은 제국 인간학에 세뇌되어 이성과 과학으로 살아가려 애면글면하지만 결국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고대적 지혜에 기댄다. 체면상 안 그런 척하지만, 지배 집단이 훨씬 더 극단적·중독적이다. 오컬트적 자신을 식민지 주민에게 투사한 음모가 바로 그 인류학이다. 당연하게도 그 인류학에서 제국은 자기 성찰의 근거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날 인류학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제국 시민인 한,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은 범주 인류학 지평으로 들어올 수 없다. “인간에서 벗어나 인류본성을 되찾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본성이란 인간이 결코 지구 생태계 주인이 아니며, 다른 유()와 특별히 다르지도 않으므로 서로 존중하고 지혜 나누어 공존·공생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진실을 그대로 살아내는 생명 바탕이다. 이를 거부하는 도그마, 그러니까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다는 허황한 미신에 터 한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인간학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진리다. 같은 인간인 거북섬(토착민이 북미 대륙을 부르는 이름) 주민을 인간 아닌 존재로 몰아 멸절시킨 장본인인데 하물며 다른 유 생명체쯤이야. 그러나 저들이 얼마나 어떻게 무지하든 다람쥐며 버드나무며 석이며 송이버섯이며 미역이며 시아노박테리아며 레오바이러스가 존중하고 지혜 나누어 공존·공생하는 존재임은 자명하다. 이들과 이루는 팡이실이, 곧 네트워킹이 범주 인류학의 진경이자 전경이다.

 

범주 인류학이 빚어내는 팡이실이 서사는 인간학적 형식논리, 인과율, 분석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팡이실이 서사에는 무엇보다 창발(emergence)이 약동한다. 창발은 인간 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뇌는 받아들일 뿐 창발 자체는 장 점막 바깥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온갖 미소 생명들에게서 온다. 그 미소 생명들은 다시 인간 바깥 미소 생명들, 나아가 비생명 존재들과 이루는 팡이실이 사건에 힘입어서 인간 뇌를 일깨운다. 이렇게 일깨워지는 뇌를 인간학하는 인간은 쓰지 않는다. 그래서 제국주의는 파멸 외길을 달린다.

 

제국주의 파멸은 빠를수록 좋다. 한 찰나라도 그 파멸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제국의 실체를 까밝혀야 한다. 제국의 실체를 까밝히려면 지배 집단이 구사하는 통치 전략에 극단적·중독적 오컬트 인류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 그 진실은 인간학적 어법으로 드러내지지 않는다. 음모론 비판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음모론 덫에 걸리면 아무리 뛰어난 담론도 가십으로 굴러떨어진다. ‘음모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사코 주장하는 지성은 제국주의 통치 전략, 그 음산한 사이비 인류학적 작태 은폐에 동원되는 특권층 부역자로서 당대 일급 엘리트이기 때문에 거의 난공불락이다. 이들을 무찌르고 제국의 추악한 지성소를 엎어버리려면 범주 인류학 고유 어법이 꼭 똑 필요하다.

 

영화 <파묘>부터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나는 본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이 영화 또한 보지 않았지만, 워낙 커다란 화제가 됐던 터라 알라딘 서재에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교수 글을 전재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가 말한 바에 따르면 일제가 음양사를 공식 직책에 올리고 그들이 구사하는 각종 주술을 현실 통치에 동원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임이 분명하다. 풍수설에 의거 쇠말뚝을 박고, 총독부·신궁 자리를 정한 것 또한 모두 사실이다. 1945년 이후는 다를까? 여전히 총리대신과 각료, 국회의원들이 신사를 참배하는데, 무슨. 이는 일제의 높은 인간학수준과 세계적 기술력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제 지배 집단이 저지른 오컬트적 정치 행위를 문제 삼을 때, 과학·기술 운운하며 음모론 차원에서 일축하는 윤똑똑이 지식인은 인간학에 주저앉아 떡고물 받아먹는 한심 종자일 뿐이다.

 

피부에 와닿고 더 엄중한 예로 발 들여 본다. 세월호참사는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문제에 당시 정부가 내린 결론은 정당한가? 과문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당대 일급 지식인 누가 나서서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학너머 지배 집단이 구사하는 오컬트적 정치 행위를 정조준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당연하다. 그런 지식인이 있었다면 음모론자로 매도 아니 매장당했을 테니까. 익히 알기에 알아서 기었을 테니까.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담론 자체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제국에서 베껴온 지식을 장착한 로봇일 테니까. 그러니까 이제 한 생각 크게 돌이켜야 한다.

 

4·16 직후 일부에서 제법 소상한 내용까지 담은 인신공양설을 제시했으나 즉시 도태되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그러면 이 문제의식을 오늘날로 가져와 보면 어떨까?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일 때부터 끊임없이 따라다닌 가십성 정보에 무속인 멘토가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국가적 공식 행위에도 그들 또는 그가 등장했다.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에서 의대 정원 2,000명에 이르기까지 영일 없이 오컬트적 정치 행태가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정말 이것은 구설수인가? 구설수 따위라서 당대 일급 지식인이 입 대서는 안 되는 문제인가? 역시 아무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사회정치적 담론으로 꺼내놓지 않는다. 이유는 전과 동. 앞으로도 영영 이런 일은 전과 동. 언제 우리는 진실을 품을 수 있을까, 그럼? “인간학으로 인류를 묶어 놓고 오컬트 인류학을 구사하는 제국 부역 권력 집단이 존재하는 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원조 제국 지배 집단이 구사하는 오컬트 인류학은 성서에서 발원한다. 성서 자체가 가장 배타적이고 도착적인 음모론이다. 음모론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소문, 그러니까 절대 음모론에서 성서는 출발하고 그 소문이 풀어낸 갖가지 소문에 근거해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그 핵심 세력 시온주의와 개신교 근본주의가 제노사이드로 인류를, 에코사이드로 자연을, 옴니사이드로 지구 전체를 먹어 치우고 있다.

 

음모론으로 구축된 권력이 음모론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투사(projection) 공작정치가 바로 제국주의 전가 보도다. 이는 공정과 극단적 대칭점에 있는 검사 윤석열이 불공정을 조국에게 투사해 개인은 물론 가문 전체를 멸절로 몰아간 난동과 완전히 결이 같은 사건이다. 이런 모순을 부역하는 대중에게 감추는 수법이 둘 있다. 하나는 프레임, 특히 언어 프레임 선점이다. 먼저 치고 달리면(hit & run)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각인 효과로 말미암아 대중은 요지부동이다. 다른 하나는 증거 미형성과 인멸이다. 이 중, 특히 전자가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음모론은 본성상 인과율, 그러니까 이른바 과학적 차원의 증거가 없다. 과학에 닿지 못하거나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예외가 없지는 않으나 대개 사적 이득에 경도된 음모론은 그 증거가 과학에 닿지 못함에도 사람을 매혹하는 것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천공이 구사하는 파자(破字) 술이다. 공적 선의를 추구하는 음모론은 그 증거가 과학 너머에 있다. 초인과적·창발적 팡이실이(networking)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시성(synchronicity)이다. 제국주의나 그 부역자들이 구사하는 음모론 증거는 추종자들에게 쉽게 전파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 증거로 삼을 수 없으므로 빠져나간다. 자기는 빠져나가고 타자 음모론은 같은 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 뻔한 전략인데 대중은 진부해서 속고, 부역 지식인은 알고도 모른 체 한다.

 

증거인멸은 이미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이 보아 온 저들이 협잡질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선체에 있던 물증을 인멸하고, 증인을 매수·살해한 짓 따위다.

 

음모는 있다. 아니다. 음모는 인간 본성에 속한다. 이를 지배 집단이 전유해 오컬트적 일극 집중 체제로 만들어서 음모론은 오늘날 음모론으로 타락했다. 타락 이전, 또는 그 바깥 음모는 내가 말하는 인류학”, 즉 범주 인류학 주체인 인류인간본성과 비대칭 대칭을 이루며 균형 잡아 온 본성이다. 이들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 “인류가 구가해 온 음모는 형식논리 너머에, 인과율 너머에, 분석 너머에, 간직하고 발향해 온 슬기다. 팡이실이 별명이다. 버려졌던 이 운동을, 사건을 되살림으로써 인간인류됨을 되찾을 수 있다. “인류학곧 범주 인류학은 이래서 필수며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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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 줄기차게 해온 숲 걷기를 톺아볼 때마다 아뜩해진다. 아니 할 말로 죽으려고 용을 쓴짓 같으니 말이다. 아이젠, 스틱은 차치하고라도 기본인 등산화조차 신지 않은 평상복 차림으로 혼자서 서울 안팎 산 쉰여 개를 드나들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27)200m 넘는, 그러니까 언제든 다치고 죽을 수 있는 산이었다. 아주 여러 번 길 아닌 곳으로 들어가 헤맸고, 길을 따라가다가 잃었는데, 위험천만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디보다 아찔했던 곳은 도봉산 회룡천 골짜기였다. 첫 번째는 눈 덮인 날 오르다가 길을 잃고 헤맨 끝에 결국 실패했는데 생각할수록 오금이 저린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길 없는 숲으로 작정하고 들어가 내려가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수직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며 폭포 위 암벽 위를 생사 걸어 오른 끝에 결국 성공했는데 생각할 때마다 내몰고 받아준 손길이 느껴져 소름 돋는다. 내가 헤맨 모든 숲은 물론 골짜기였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숲 걷기 초반에는 의식하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스스로 등성이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이 열렸다. 무엇보다 거긴 물이 없기 때문이다. 물소리를 들을 수도, 물을 만질 수도 없다. 게다가 물기운이 있어야 사는 생명들을 볼 수 없다. ‘등산아니라 소통하러 숲 걷기 하는 내게는 등성이 아닌 골짜기가 똑 꼭 맞는다. 더군다나 나는 버드나무 화신이 아니던가.^^ 물길 이루지 못한 습지만 있어도 나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걸었다.

 

그렇게 물기운에 배어든 나는 마침내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다: 이제부터는 숲에서 물을 볼 게 아니라 물에서 숲을 보면 어떨까. 더 굵은 내를 만들고 기어이 큰 강을 이루는 물을 따라가며 숲을 바라보다 보면 마침내 바다에 이르지 않겠나. 본디 숲은 바다니까 바다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디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는 모른다. 물은 숲처럼 곧장 들어갈 수도 없으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른다. 발길을 돌릴 때가 왔다는 느낌뿐이다.

 

마침 이때! 양극성장애에 육박하는 우울장애로 숙의 치유를 했던 분이 스승의날 선물로 물멍을 준비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일요일 아침 일찍 직접 차를 집 앞으로 몰고 와 나를 태우고 경기도 안성 금광저수지로 갔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물 위에 낸 길을 천천히 걸으며 물에서 숲을 바라다보는꿈을 이루게 해주었다. 첫걸음을 이리 예상치도 못하게 내디디도록 이끈 생명 팡이실이, 누가 어떻게 이해하든 오해하든 내게는 경이 그 자체다.


 

꾀꼬리 청아한 노랫소리, 살랑이는 실바람, 그 바람에 까르르 웃는 사시나무잎들,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연보라 오동나무꽃, 거울 같은 수면에 어린 산 그림자, 그 산 그림자를 흔들며 유유히 떠가는 쪽배 한 척··· 스며드는 물기운이 영혼을 정화하고 배어드는 숲 기운이 육신을 보양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마지막 들른 미산저수지. 언덕에서 물을 내려다보는데 물 한가운데서 언덕을 올려다보는 내 모습이 찰나적 환영으로 떠오른다. 어이쿠,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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