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물 이야기는 김포시 통진읍 보구곶으로 가면서 출발한다. 지하철보다 갈아타는 횟수가 적다는 이유로 버스를 탔는데 여간 지루하지 않다. 특히 신촌역에서 강화터미널을 왕복하는 버스는 가끔 막히기도 하고, 김포 들어가면서는 마을버스처럼 자주 서는 데다가 외진 마을까지 돌아 나오느라 “직행”이라는 이름과 영 다르게 꾸물댄다. 설상가상 난지 기산지 책임 묻기가 어정뜬 실수로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가 버린다. 그 한 정거장이 물경 강화대교다. 졸지에 강화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니 심사가 사뭇 헝클어진다. 다행히 예상치 못한 발견 하나로 단박에 정돈된다.
처음부터 물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택한 길 들머리께에서 걸어 건널 수 있는 강화교를 본 것이다. 다리 앞에는 “평화의 길”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 좌우로 쳐진 철조망이 그 평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준다. 강화도에 갈 생각은 아니지만 얼마만큼 그 다리를 걸어 물 위에 선다. 직접 닿지는 못하더라도 철조망 사이로 보지는 않으니 한결 낫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이어질 그 시야를 이렇게나마 걷어내면서 출발하니 위로로 삼는다. 물을 따라 난 길로 접어들어 걸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방치와 후패 풍경은 심사를 다른 결로 흔들어 댄다. 철조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철조망은 완고해 보이지만 거기로도 시간은 흐른다. 벙커를 포함한 군사 시설도 모두 녹슬고 삭았으며 인적이 전혀 없다. 걷는 내내 딱 한 번을 빼고는 군인을 보지 못했다. 강과 바다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 분명하지는 않겠지만 여기쯤이다 싶은 지점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느닷없이 군 차량이 나타나 제지한다. 한참 멀어지는 내 모습을 확인한 다음에야 떠난다. 나는 다시 돌아와 기어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물의 정치적 죽음에 애도하며 삼 배를 올린다. 물의 부활을 기원하며 다시 일 배를 올린다. 건너편 개풍군을 바라보면서는 눈물을 흘린다. 가슴이 저려온다.
김포와 강화 사이 좁은 바다(염하강)
한강과 바다가 만나니 여기도 두물머리다. 좀 더 분명히 하자면 임진강도 만나니 세물머리다. 지금 지명으로 남아 있는 조강(祖江)은 옛사람들이 이 부분을 따로 불렀던 이름이다. 한강, 임진강, 조강이 만난다고 해서 삼기하(三岐河)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히면 예성강도 만나니 네물머리다. 네물머리는 백제 건국 때부터 삼국, 고려, 그리고 조선, 심지어 국권 상실기까지 2천 년 동안 가장 중요한 물머리로 위상을 떨쳤다. 제국주의 마수에 걸려 분단되고 내전까지 겪으면서 이 물머리는 돌연한 죽음을 맞았다. 검문소에 막혀 내 물 제의 또한 돌연한 죽음을 맞는다.
세물머리-철조망 밑바닥에 미미하게만 보인다
카메라 초점도 철조망을 넘지 못해 강화도 북단과 개풍군이 희미하게 보인다.
크게 돌아 용강리 쪽으로 나오려던 물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아쉽지만 들어온 길과 최소한으로 겹치게 경로를 다시 구성해 되돌아온다. 들어올 때는 군대가 닦은 길과 간척지 논길을 주로 걸었는데 나갈 때는 대부분 마을 길을 걸었다. 방치와 후패의 풍경은 마을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외지인 전원주택이나 별장 빼놓고는 까부라진 자루처럼 힘없고 지친 듯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한다. 통일되면 무조건 좋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려면 철조망에 막힌 지금 같겠는가. 지도 검색 때 점심 식사를 위해 확인해 둔 음식점은 한 군데 빼고 모조리 폐업 상태다. 이런 세상에···.
영업 중인 그 음식점은 혼자 들어갈 수 없는 전문 음식점이다. 2인분 시키겠노라 하니 그러면 괜찮단다. 허기질 정도로 배가 고프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우주 최강 가난뱅이 한의사로는 여태껏 써보지 못한 거액을 이 절반 실패한 물 제의 현장에서 음식값으로 치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김밥 한 줄 들고 오지 않는 것을 몇 번씩이나 후회했다. 그나마 딸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포장해 가니 조금 위안은 된다. 인간을 떠나온 곳에서 불가피하게 인간 신세를 져야 하는 이런 행로 중 가장 심한 모순 의식에 휘감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실패가 준 넉넉한 시간이라도 잘 써야지.
문수산성에서 본 보구곶, 그 너머 개풍군의 아린 풍경
전화를 건다.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 출신인 한국화가 김구가 내 오랜 벗이다. 여기 왔으니, 오랜만에 만나서 막걸리 한잔하는 게 좋겠다. 마침 화실 작업이 끝나고 나오던 차란다. 막걸리에 파전 한 장 시켜 놓고 그가 아는 김포 이야기를 듣는다. 조강, 전류리, 준치, 건너편 강화도 연미정, 병인양요···마치 오늘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구수하게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제국주의, 부역 엘리트 실체, 그리고 두물머리를 터전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해월 최시형 선생과 후계로 지목됐으나 너무나 일찍이 비참하게 살해된 이수인의 물 이야기를 보탰다.
앞으로 당분간 내 물 제의에서 해월과 이(蝨)로 자칭했던 이수인 이야기가 화두로 등장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필경 이 서사는 김지하가 쓴 『수왕사(水王史)』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김지하가 늙바탕에 보인 일탈 탓에 그를 인정하지 않지만, 저 주체할 수 없어, 누구 말도 듣지 않았던 “신끼”를 짐작하기에 적절히 걷어내면서 범주 인류학 맥을 더듬어 보려 한다. 결코 누락시킬 수 없는 민족지 진실을 품고 있으리라 본다. 거기에는 박경리 문학도 있을 테고. 물론 나는 한껏 절제하고 한껏 더 나아간다. 해월이 안 두물머리, 그 너머 물머리를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너머 물머리는 반제국주의 전선 총 본진이다. 제국주의는 불의 시대를 열어 구가한다. 과학기술과 탄소 에너지로 지구 전체를 불바다로 만드는 중이다. 특히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이 정착형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토착민, 그들과 공생하는 동물들과 숲에 멸절의 총칼을 쑤셔 넣은 짓은 그 생명을 이루는 물에 소진의 네이팜탄을 퍼부은 짓이다. 그러나 불은 물을 이기지 못한다. 물이 마침내 불을 잠재운다. 불을 잠재우는 그 물로 무고히 살해당한 생명들이 모여들어 팡이실이 사건을 한껏 일으킨다. 여성과 아이와 숲이 고요한 함성으로 모여드는 곳을 물머리라 부른다.
삿된 무당 하나가 졸개 둘을 시켜 사적 이득만 노린 해괴한 짓을 기탄없이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수장, 또는 그 부부가 이렇게 대놓고 주술 통치를 하는 데도 한패인 언론이야 그렇다 치고 당대 일급 지성들이 입 처닫고 있는 짓은 그들 또한 특권층 부역자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이번에는 석유 bullshit이다. 석유야말로 제국주의 서사의 백미 아닌가. 모르고 바치는 충성 같은 맹독은 다시없다. 망해가는 나라를 살해당함으로써 부둥켜안아야 했던 해월과 이의 음성이 오늘따라 더욱 아프게 들린다. 그 웅숭깊은 이명이 대취에 갈마들며 내 귀갓길을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