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말할 때, 청빈(淸貧)이라 하면 유교, 안빈(安貧)이라 하면 도교, 성빈(聖貧)이라 하면 천주교, 인욕(忍辱)이라 하면 불교가 떠오른다. 그 가운데 맨 나중 인욕은 물론 가난에 국한한 말이 아니지만 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만큼 욕된 일이 없으니 다른 말과 나란히 놓아도 크게 무리는 없겠다.

 

인욕에 관해 나는 진욕(進辱)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자기 삶의 적극 능동 좌표로 삼아두지 않으면 이런 비아냥을 듣기 때문이다: 실패한 자가 늘어놓는 자기변명이다. 제국 자본주의 논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주제에 돈 버는 거 관심 없다 하면 위선이 된다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감히 자기변명을 선택했다. 한의사가 우울증을 상담, 곧 숙의(熟議)로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돈을 벌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오은영이 100만 원을 받을 때 나는 15만 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한의사를 대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나는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만큼 나는 가난을 삶 샅샅이 들여놓았다. 궁상맞은 일을 서슴없이 하고도 쪽팔리지않다. 나는 이런 삶을 청빈·안빈·성빈, 그 어느 말로도 미화하지 않는다. 가난은 항일 무장투쟁 전사 후손으로서 내가 반제 전투에서 쓰는 병기다. 이 병기가 나를 제국적 생활양식에 살해되지 않게 한다.

 

내가 버는 적은 돈, 그 병기 때문에 자원·에너지 집약적인 제국적 생활양식”(울리히 브란트·마르쿠스 비센)이 내 삶 본진을 공략할 수가 없다. 한평생 나는 내 이름으로 집·자동차를 가진 적도, 육식을 위해 음식점에 들어간 적도, 은행 계좌에 단돈(!) 천만 원을 넣어 놓은 적도 없다. 진심으로 고맙다.

 

가난이 고맙다고 하니 누가 묻는다: 불안하지 않나요? 산속 승려가 아닌 이상 목돈 들어갈 일이 돌발할 수도 있는데 전혀 대책이 없다면 불안은 당연하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정도 일이면 운명입니다. 그런 일을 걱정하는 대신 나는 작디작은 틈새에서 죽은 돈을 산 돈 만드는 기회를 찾아낸다.


 

그동안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쓰지 않았다. 중앙 정부가 한의원에 쓰는 방식과 같은 속임수를 쓰는 게 괘씸해서다. 최근에 생각을 바꿨다. 그래도 거긴 도시철도공사고 나는 극빈 한의사이니 같은 급이 아니다. 절약되는 푼돈이나마 기부/후원해 죽은 돈을 산 돈으로 만드는 일도 반제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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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첫 일과인 빨래를 널며 하늘을 보니 심상치 않다. 이 정도 땡볕이면 경강 지천 걷기는 어렵다. 그래도 본류는 곳곳에 버드나무숲이 있어 그늘을 드리우고 물을 증산해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잠시 산책이라면 모르되 몇 시간에 걸친 걷기 장소로 지천은 무리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걸어서 가장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관악산으로 간다. 기슭을 따라 돌다가 나오기로 한다.

 

익숙한 바리궁 주산을 가로지르고 살피재 건너 까치 능선을 따라간다. 관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무렵 홀연히 숲이 물로 다가든다. 그렇다. 강과 바다는 파란(blue)” 물이고, 숲은 푸른(green)” 물이다. 풀과 나무가 뿜어내는 곱디고운 푸른 물방울이 온몸을 휘감는다. 날씨 탓인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마음껏 두 팔 크게 벌리고 기쁜 소리 지르며 푸른 물길을 따라간다.

 

숲이 물 되자 나도 이내 물 클러스터 하나 되어 유유히 흘러간다. 물 행성 지구에서 누가 차마 물이 아닐 수 있는가. 땀도 비 오듯 흘러 살갗과 옷을 적시고 소금 결정을 남긴 다음 증발해 다른 순환에 합류한다. 갈증으로 벌컥벌컥 마신 물도 장 바깥을 타고 흐르다 몸으로 스며들며 또 다른 순환에 합류한다. 사소한 데부터 거대한 데까지 이 물 순환은 지구생태계 전제조건이다.

 

나는 이 평이하고 진부한 숲 걷기에서 찬찬히 작디작은 물과 그 기운을 살핀다. 작은 골짜기 괸 물에 손을 담그고 똘랑똘랑 초르르초르르소리를 듣는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샘 자리와 물길에 주의를 기울인다. 장마 끝나 물길은 끊겼으나 촉촉한 습기 머금은 돌과 이끼를 거룩한 카이로스로 모신다. 생명 간 경계와 생명-비생명 간 경계가 물로써 뭉그러진다. 물이 진리다.



 

물에 소나타 양식이 있을 리 없으니 나도 목적성과 의미 부여, 엄숙한 마무리를 뺀다. 골짜기, 능선, 숲 이름을 잊는다. 시조창에서 마지막 한마디를 허공에 달아두듯 흔적 없이 일상으로 배어든다. 빈둥빈둥 시간을 길거리에 놓아주고 시적시적 장 보아 집으로 돌아온다. 땀에 절인 몸을 씻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맑은 물 한 종지를 모셔둔다. 내일 새벽 이 물이 내 영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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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맑스주의 철학자 이스트반 메자로스를 알게 된 것은 근년의 일이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헌책방에서 샀음이 분명한 그의 1970년 저작 『맑스의 소외 이론(Marx’s Theory of Alienation』이 서가에 아직도 꽂혀 있지만 내가 그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은 4〜5년밖에 되지 않는다. 메자로스는 헝가리 출신으로, 한국의 지식계에 널리 알려진 게오르규 루카치의 수제자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루카치의 후임 교수가 되었으나, 1956년 소련의 침공을 받은 헝가리 정국에서 신상의 위험을 느껴 갓 결혼한 부인과 함께 겨우 책 몇 권만 챙긴 채 망명길로 올라 이후 이탈리아, 캐나다, 영국 등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영국의 에섹스대학에서 20여 년 봉직한 뒤 퇴임했다.


메자로스는 교단에서 물러난 뒤에도 연구 활동을 왕성하게 벌인 것이 돋보인다. 아이작 도이처 상을 탄 『맑스의 소외 이론』도 중요하지만, 정년을 한 해에 펴낸 『자본을 넘어(Beyond Capital』로 그의 이론적 업적은 더욱 빛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론 작업은 계속되어 2017년 사망 시에 남긴 유고의 일부가 2022년에 『리바이어던을 넘어(Beyond Leviathan)』라는 이름의 저작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말년의 메자로스가 진행한 작업을 출간해온 먼스리 리뷰의 존 벨라미 포스터에 따르면 『리바이어던을 넘어(Beyond Leviathan)』 이후에도 후속 단행본으로 펴낼 원고 분량이 더 남아있다고 한다. 메자로스의 ‘넘어’ 연작은 내가 볼 때 인류를 절멸로 이끌고 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극복하고 인류의 지구상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나 지금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자연적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 사회적 물질대사의 재생산을 새롭게 구축하려면 어떤 문제의식과 과제설정이 필요한지 알고자 하는 사람, 진정한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저작이다. 아직 완독하지는 않았으나 시간 날 때 읽으며 느낀 감상으로는 그렇다.

메자로스는 생전에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지도자 우고 차베스와 절친한 사이였다. 메자로스는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에서 추진한 사회주의 혁명에서 자신이 이론적으로 궁구한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의 현실태를 발견했고, 차베스는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 체계도 넘고 국가 체계도 넘어야만 달성될 수 있다는 메자로스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고 알려진다. 차베스는 2013년 59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고, 메자로스는 87세인 2017년에 뇌출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사후에도 그들이 추구하던 볼리바르 혁명 또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전통은 베네수엘라에서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추진되고 중시되고 있다. 나는 메자로스의 저작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와 어떤 식으로 넘어서야 할는지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차베스가 사망한 뒤 베네수엘라는 미 제국주의의 교사를 받는 우파 세력의 끈질긴 훼방에도 불구하고 혁명 세력이 정권을 잡아 21세기 사회주의를 실천해오고 있다. 버스 기사에서 노조 지도자로 또 정치인으로 성장해 차베스의 후계자가 된 니콜라스 마두로가 2013년 4월에 치러진 대선에 당선해 지금까지 대통령을 지내고 있지만, 그동안 베네수엘라에서는 선거를 둘러싸고 우파의 방해 공작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7월 28일 마두로가 3선에 성공한 대선을 놓고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 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선거 과정을 참관한 1,000명 남짓한 국제 선거감시단에 의해 별 탈 없이 공평하게 치러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선거 직후 우파 야당의 흑색선전이 시작되었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력이 일제히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나서 베네수엘라 정국은 지금 매우 뒤숭숭하다.

사실 이런 일은 차베스주의 세력이 선거에서 이길 때마다 계속 벌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1998년 차베스의 대선 승리 이후 베네수엘라는 특히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는 우파 세력의 쿠데타 기도를 계속 겪어왔고, 차베스 사망 이후 마두로가 정권을 잡게 되는 2013년대 중반 이후에도 그런 흐름은 중단되지 않는다. 특히 2018년에 마두로가 재선에 성공한 뒤 미국은 경제제재, 더 정확히는 일방적 강제 조치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내몰아, 베네수엘라가 이후에 사회적 안정을 되찾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가 베네수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2012〜18년 사이 유엔의 국제질서 독립전문가로 근무한 바 있는 알프레드 데 자야스 교수는 8월 30일 카운터펀치(CounterPunch)에 올린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베네수엘라는 엄청나게 풍요로운 나라로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지니고 있고, 금과 다른 주요 광물이 풍부하다. 마두로 정부가 전복되면 미국 기업들에 경제적 기회가 열리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사회 개혁은 모두 바로 폐지되고 차베스와 마두로의 역사는 지워질 것이다. 쿠데타는 사회적 권리의 후퇴를 낳고 미국에 의한 베네수엘라의 재-식민화로 이어질 것이다.” 데 자야스 교수는 2017년 말 베네수엘라의 선거 관리 상황을 현지에서 점검한 뒤 당시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보고서를 2018년에 낸 것 때문에 온갖 협박과 시달림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올해 선거 결과에 대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문제 삼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실험이 성공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7월 28일의 대선 이후 국제사회의 여론은 대체로 미국과 그 영향권 아래 있는 나라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로 갈리고 있다. 비서방의 경우 아메리카에서는 쿠바, 볼리비아, 혼두라스, 니카라과 등이 바로 마두로의 승리를 축하했고, 아메리카 외부에서는 중국, 러시아, 이란, 세르비아, 시리아 등이 베네수엘라의 선거관리위원회(CNE)의 마두로 승리 발표를 인정했다. 반면에 미국과 그에 종속된 다수의 나라는 마두로의 승리가 조작되었다는 우파 야당의 주장을 지지하는 형세다. 최근에는 그동안 비서방 행보를 해온 콜롬비아와 브라질까지 미국 편을 들며 마두로에게 재선거를 치를 것을 요구하고 나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실망하게 했다. 두 나라의 이상한 행보에 대해 베네수엘라 정부가 그냥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는 독립 국가로서 독자적인 선거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며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올해 대선 결과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쉬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은 8월 28일에 EU가 마두로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선 것으로도 확인된다.

우고 차베스가 집권한 뒤로 가동된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또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실험은 계속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차베스와 마두로의 선거 승리를 놓고 우파 세력의 불인정과 저항, 그리고 미국의 우파 지원, 나아가서 베네수엘라 경제에 대한 일방적 강압 조치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를 구출해낸 것은 민중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4월 차베스를 축출하려던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을 몰아낸 것도 그들이었고, 2018년 연 13만%의 인플레 속에서도 마두로 정권을 지지한 것도 그들이었으며, 7월 28일의 선거 직후 우파 세력이 기도한 쿠데타를 막은 것도 그들이었다. 차베스의 집권 이후 차베스주의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는 그만큼 확고했던 셈이다.

차베스주의에 대한 지지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차베스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20세기 사회주의의 전형인,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이 실천한 국가사회주의, 오늘날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 특색사회주의와는 달리 사회 전반의 재생산과 관련한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하려 한다. 메자로스에 따르면 이것은 역사적으로 계급사회의 명령구조를 장악해온 국가를 소멸시키려는 보기 드문 현실적 시도다. 그동안 어떤 현실사회주의도 국가 소멸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면, 베네수엘라에서 시도하는 21세기 사회주의는 ‘국가의 소멸’을 주장한 맑스 이래 레닌 등을 통해 이어져온 자본주의 생산양식 극복의 진정한 변혁 전통을 계승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8월 28일 피플스 디스패치(Peoples Dispatch)에 눈길 끄는 글이 하나 실렸었다. 대선이 있은 7월 28일부터 4주 뒤인 8월 25일에 베네수엘라에서는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론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국내적으로는 대선 못지않게 중요한 선거가 치러졌다고 한다. 이날 선거에서 “4,500개 코뮌이 제2차 전국인민평의회(Second National Popular Consultation)를 통해 도로, 전기, 스포츠, 식수, 가스, 주거, 건강, 교육, 환경, 생산 단위, 공공 운수, 그 밖의 많은 다른 사회 개발 계획과 관련한 24,000개 프로젝트 가운데”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대상을 “뽑는 투표장에 나갔다.” 이 투표 과정에서 선정되는 프로젝트는 각 코뮌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한 것으로 그들 자신이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의 주체가 된다. 이런 자치권을 발동하는 코뮌 단위가 베네수엘라에는 4,500개 이상 조직되어 있고,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 코뮌 체계가 존재함에 따라 베네수엘라에서는 수천여 사회 생산 단위가 전국에 걸쳐 지역별로 어떤 유형의 사회 프로젝트를 협력 속에 수행할 것인지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을 좌절시키기 위해 쿠데타와 선거 마타도어 등 엄청난 외압을 행사하고 있는데도 차베스주의가 그에 맞서 버티고 있는 것은 베네수엘라 인민이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주요 사안에 대해 자율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경험을 쌓은 결과라고 여겨진다. 이에 대해 미국 등 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은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를 근절하려고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실현하려는 21세기 사회주의의 길은 그래서 필시 험난할 것이다. 그러나 아래부터의 혁명을 직접 경험해온 인민대중이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험난한 볼리바르 혁명의 길을 걷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여, 승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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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은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무슨 근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반주 한 잔 어정뜨게 해서 각성 효과가 일어난 모양이다. 길게 뒤척거리다가 어느 순간 극적인 서사를 지닌 꿈 세계로 들어간다. 근래 보기 드물게 아주 세밀하고 다양한 장면은 물론 등장인물 용모, 표정, 태도가 생생하게 나타난다. 인과 앞뒤를 뒤섞기도 하고 문맥을 잘라 편집하기도 하면서 대하소설처럼 박진감 넘치게 흘러간다. 또 다른 어떤 순간 나는 자각몽 상태로 접어든다. 당연히 꿈 바깥에서 꿈 서사를 보완하고 완성하는 비몽사몽(非夢似夢), 정확히는 비몽시몽(非夢是夢) 상태가 이어진다. 마침내 그 꿈에 대한 수용·감사까지 마무리된다. 사부자기 일어나 스마트폰을 여니 158분 카이로스가 오도카니 나를 기다리고 앉아 있다.

 

냉큼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온갖 노폐물을 깔끔하게 내보내고 몸을 씻는다. 내 방으로 돌아와 북쪽 향해 난 창문을 연 뒤 맑은 물 한 종지를 모시고 선다. 한밤중에 일어난 일을 사뢰고 감사를 표한다. 여덟 번 절하고 정좌한다. 가을 아침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말간 서사를 기록한다. 요즘 화두 삼은 반제국주의 전선, 범주 인류학,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이 지닌 관련성을 중심으로 명쾌한 논리가 흘러간다. 나는 한 찰나에 알아차린다: 꿈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뇌가 꾸며대는 허구가 아니다. 소미(小微) 생명들 팡이실이가 펼치는 각성 현실에 대한 비대칭 대칭 반-실재다. 다 기록, 아니 받아 적고 나니 3시 정각이다. 꿈을 꿈답게 꾸기 위해 전과 달리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한다.

 


모든 꿈을 예지몽이라 할 며리도 없고, 모든 꿈을 개꿈이라 멸시할 일도 아니다. 꿈은 의식이 이끄는 낮 삶의 맞은편 삶을 드러내 진실이 지니는 전체상을 구현하는 작용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반드시 꿈을 꾸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꿈을 제대로 꾸기 위해 인간은 잠을 잔다. 꿈 없는 잠은 잠이 아니다. 꿈 잠이 꿀잠이다. 꿀잠 없는 인간은 세계 절반 이상을 잃은 채 살다가 끝내 파멸한다. 그러므로 궁극에서 꿈은 해석 대상이 아니다. 기억하든 못하든, 무슨 얘긴지 알든 모르든 신뢰하고, 의탁하면 된다. 뇌가 모르는 일이 더 많은 삶을 인간은 살아가야만 한다. 그럼에도 살아지는 생명 세계의 관대함에 엎드려 절하며 살면 된다. 극진히 큰절할 때 선물로서 꿈은 꿀처럼 내 영혼을 찾아온다.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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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방글라데시는 인구 17100만 명, 2022년 기준 GDP 4602억 달러로 남부 아시아의 중요한 나라다. 한국은 인구 5천만의 규모로 같은 해 GDP1674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상당히 낙후된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방글라데시는 1인당 GDP20201,888달러로 인도의 1,877달러를 앞서며,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한동안 같은 나라를 이루던 파키스탄의 20221,589달러보다는 상당히 더 많다.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2010년대 이후 발전 속도가 빨라져 201119년 사이에 연간 6.5~8.2%의 성장률을 이루었고,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받았지마는 2022년에는 다시 7.1%의 고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 규모가 큰 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는 상당히 양호한 경제적 발전을 기록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최근에 이 나라에 큰 정변이 일어났다. 85일 셰이크 하시다 총리가 사임한 뒤 인도로 망명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시다는 올해 들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 시위가 일어나자 강경한 태도로 대응하더니 수백 명이 목숨을 잃어도 소요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최근에는 노동자와 시민들까지 시위에 가담하며 사태가 악화하자 퇴로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의 이번 사태는 정권에 맞서 싸운 학생들의 승리,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서방 언론의 평가가 그렇다. 서방의 언론은 방글라데시가 이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학생들의 뒤에 미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이번 정변은 독재에 저항한 민주 혁명의 승리라기에는 미국이 개입하여 색깔 혁명을 일으킨 정황이 너무 분명하다.

 

인도로 망명한 한 뒤 하시다 전 총리는 그곳 유력 경제일간지 더이코노믹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사임한 것은 시체 행렬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학생들의 시체를 넘으며 권력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총리직을 사임했다. 세인트마틴섬의 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이 벵골만을 지배하게 했더라면 나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 나라 국민에게 호소한다, ‘제발 과격파에 조종당하지 말라’.” 하시다의 발언은 그녀가 민주주의를 짓밟다가 학생들의 저항에 밀려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전하는 일각의 소식이나 평가와는 사태를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방글라데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서로 정반대되는 관점이 팽팽하게 맞서서 어느 쪽 말이 옳은지 선뜻 결론을 내리기 주저된다. 그래도 상충하는 관련 보도나 분석을 종합해보면 진상을 전혀 모를 바는 아니다. 하시다 정권이 실책을 저질렀고 반민주적 지배를 자행한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그렇기는 해도 지난 1월 총선을 거치며 합법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대학생들의 항의 시위로 무너진 것은 미 제국주의가 개입한 결과임이 분명한 것 같다. 다시 말해 학생 노동자 시민이 하시다 정권에 맞서 거리에 나선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 보이나, 대중 시위가 수많은 희생자를 내는 폭력 사태로, 그리고 정권 붕괴로까지 이어진 것은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정변을 일으키기로 유명한 미국의 공작 효과로 볼 점이 농후한 것이다.

 

하시다 정권을 붕괴시킨 시위는 방글라데시가 1971년에 파키스탄에서 분리 독립할 때 공헌한 유공자들의 후손이 공직 취업 시 받아오던 특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제도개혁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으나 정부가 이를 무시하자 학생들의 항의 시위가 그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수백 명이 생명을 잃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한 학생들은 주로 다카대학의 정치학과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시위에 나선 것은 취업 할당제 개혁을 요구한 학생들이었지만 국가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노동자계급과 중산층이 참여하며 대규모 봉기로 이어진다.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의 동력이 오히려 더 커지는 것을 보고 그동안 정권을 옹호해오던 군부가 하시다 총리에게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며 최후통첩을 하면서 사태는 일단 종결되었다. 하시다는 자기의 인척이기도 한 육군참모총장 와케르 우즈 자만 장군의 권고에 따라 총리직을 사임하고 인도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한다.

 

한편으로 보면 방글라데시 사태는 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난 듯하다. 국가의 특정 세력이 누리던 특혜가 불공정하다고 여긴 학생들의 불만과 항의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군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 모양새다. 방글라데시 군부는 노동자는 배제하고 시민과 학생 대표 등 17명으로 구성된 과도정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그들의 추천을 받아 교수 출신 은행가 무함마드 유누스를 수석 고문으로 인정했다. 과도정부가 떠맡은 임무는 불안한 정국을 수습하고 폭력을 진압해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차기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다. 수석 고문이 된 유누스는 가난한 이들이 자활 사업을 할 수 있게 돈을 빌려주는 소액대출운동을 벌인 공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하시다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탄압을 받아 외국에서 체류하고 있던 그가 과도정부의 수장이 된 것은 시위를 주도한 다카대학 학생들의 요구가 군부에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한다. 이렇게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것은 독재 정부의 잘못을 물어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는 셈이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사태는 민주항쟁의 승리로만 볼 수 없는 측면들이 많다. 우선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 가운데 다카대학 그것도 정치학과 출신이 많다는 점이 수상하다. 다카대학의 정치학과는 미국과의 관계가 매우 긴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학과는 수상쩍은 방글라데시에서의 역정보 대처(Confronting Misinformation in Bangladesh)’ 집단의 재정지원을 받는 교수들로 가득 차 있다. 그중 두 사람이 아주 후한 NED [미국의 국립 민주주의 기금]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프로젝트를 지휘한다. 그리고 무함마드 유누스를 차기 방글라데시 정부의 수석 고문으로 제안한것도 다름 아닌 이들 정치학과의 항의자/선전-선동 요원들이다.” 페페 에스코바르의 이 발언은 방글라데시의 민주항쟁이 미국의 NED 지원을 받는 다카대학 정치학과의 정치공학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하시다 정권의 전복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외국 정권의 전복은 미국이 전매특허로 자행하는 외교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색깔 혁명을 일으켜왔다. 남아시아만 놓고 봐도 방글라데시 이외에 최근에 파키스탄에서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여 합법적 정부를 꾸리고 있던 칸을 2022년 퇴출했고, 지금도 최근에 대통령선거가 끝난 인도네시아에서도 색깔 혁명을 진행 중이다(인도네시아의 2월 대선 당선자는 국방부 장관 출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로, 1020일 취임할 예정이며, 대선 당선자 신분으로 731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바 있다.).

 

인도의 전 터키 주재 대사 M. K. 바드라쿠마르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방글라데시 쿠데타의 배경에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현재 미 국무부의 남중아시아 담당 차관보를 맡은 도널드 루가 개입했을 공산이 높다. 루는 5월 중순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고위 정부 관료, 시민사회 지도자들과 만났고, 그의 방문 뒤 미국은 당시 방글라데시 육군참모총장 아지즈 아마드 장군에 대해 부패 연루를 언급하며 제제를 발표한 바 있다. 바드라쿠마르는 루가 200306년 사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 주재 대사관의 부대사로 근무하며 거기서 튤립 혁명이 일어나도록 공작했고, 이후에 알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색깔 혁명을 지휘했다고 말한다.

 

다음은 루가 방글라데시 방문 직후 미국의 소리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하는 일은 우리의 우선 사항이다. 우리는 시민사회와 저널리스트들의 중요한 작업을 계속 지원할 것이고 세계 다른 나라에서처럼 방글라데시의 민주적 과정과 제도를 계속 옹호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1월의] 선거 사이클이 폭력으로 훼손된 것을 공개적으로 규탄했으며, 방글라데시 정부에 폭력 사태를 신뢰성 있게 수사해 가해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들 문제에 계속 관여할 것이다.” 이 발언을 놓고 보면 이달 초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하시다 정권이 무너진 것은 미국이 방글라데시 내정에 계속 관여한것이 성과를 거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큰 시야에서 보면 방글라데시의 이번 정변은 세계사적 변동 과정에서 제국의 역습이 성공한 사례로 보인다. 쫓겨난 하시다 전 총리가 세인트마틴섬의 주권을 양도했더라면 미국이 자신을 축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벵골만에 있는 그 작은 섬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비행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눈독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진다. 지리적 요충지에 있는 세인트마틴섬을 장악하면 미국은 중국이 인도양으로 나갈 길목을 막을 수 있고,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인도로 이어지는 통로를 장악해 중국이 진행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서 그동안 인도와 우호 관계를 맺어온 하시다 정권과는 다른 외교 노선을 펼치면, 최근에 브릭스의 주요 국가로 비서방 편향을 보이기 시작한 인도에 대해 친서방 외교 행보를 하도록 압박할 여지도 생긴다.

 

이번에 과도정부의 수장이 된 유누스는 전형적인 친미 신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 유학했고, 미 대통령이 주는 최고 훈장인 자유 훈장, 의회가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황금 훈장을 받은 바도 있다. 그는 소액 은행을 운영한 것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 등 신자유주의자들의 로비에 힘입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마는 자신이 대출해준 방글라데시 시골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액의 이자를 물려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유누스는 21일에 NED와 함께 세계 전역에서 친미 색깔 혁명에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대표 서맨사 파워와 만나 인권, 거버넌스, 경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과도정부를 어떻게 가장 잘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서방세계는 최근에 들어와서 과거의 영광을 급격하게 잃어가는 중이다.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 등 서방이 주도한 G7이나 나토에 대항하는 국제기구가 만들어져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서방의 제국주의적 지배는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이 자신이 그동안 누리던 권력을 순순히 내놓을 리는 없다. 제국주의적 제국은 헤게모니의 위기에 봉착하면 할수록 대세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려 든다. 방글라데시의 사태를 보면 그런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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