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成功)했다라는 말이 예부터 써온 동북아시아 말인지, 본디 무슨 뜻이었는지, 많은 말이 그렇듯 영어 단어를 어느 왜놈이 번역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추정해 본다면, 예부터 써온 말일 경우 지금과는 다른 뜻으로 썼다, 현재는 서구, 특히 영미 제국주의 이후 유통된 뜻으로 쓴다, 왜놈 번역이라면 확실히 그렇다, . 한껏 쉽게 표현하면, 돈 많이 벌었다는 뜻이다. 영미 제국주의 부산물인 자본주의가 유일 이데올로기인 세계에서 모든 성공은 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돈은 자본가 쪽으로만 치우쳐 무한 증식한다. 자본주의가 진행될수록 돈은 극소수 자본가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그 끝은 절대 파국이다. 누구나 성공한다는 주술로 인간을 꼬드기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게 만들어 제국 자본은 자멸한다. 성장이라고 표현하든, 발전이라고 표현하든, 제국 인간이 구가하는 성공은 악귀 본성을 지닌다. 신령 본성을 착취하고 살해함으로써 세계 진실 절반을 강도질했으니, 명백한 실패다. 실패를 성공이라 찬양하며 우리는 맹렬히 중독된다.

 

일제 특권층 부역자로서 제국주의 성공에 중독되고 과대망상에 사이코패스로까지 번진 윤석열, 아니 김명신이가 어젯밤 기어코 비상계엄을 내던졌다가 오늘 새벽 거둬들였다. 비상계엄 카드가 정치적으로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차치하고 당최 이 연놈은 인간 실패다. 실패 인간이 최고 헌법기관으로 주술 통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은 대체 뭔가. , 그야말로 언어도단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개인 차원 글을 쓰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써두었던 글 후반부를 다 지우고 황급히 고쳐 쓴다.

 

어쩌면 당분간 또다시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지 싶다. 저 옛날처럼 거리로 나서야만 할는지도 몰라서다. 70대를 이렇게 출발하지 않으려고 지난 대선 때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짱돌 대신 촛불을 들기야 하겠지만 이러는 내 인생, 지난 80년대부터 오늘까지 성공인가, 실패인가? 개인 아닌 공화국 시민으로서, 홀로 아닌 더불어 사는 팡이실이 생명 공동체로서, 나는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가? 돌아볼 일이 자꾸 생기는 사실로 보아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 사상으로 따지면 처음부터 독립된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동등한 개체 간 상호작용하는 사건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를 부정하고 나선 괴물이 제국주의고, 트럼프가 돌아옴으로써 바야흐로 그 제국은 악귀 초절정으로 치달아 간다. 그 하청제국 왜에 부역하는 허울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무지렁이가 꿈꿀 수 있는 성공은 공포·불안, 가난, 무식, 그러니까 전방위 실패뿐이다. 이 아침 사기로 대박 난 윤석열 상판대기를 보며 쪽박 난 내 인생을 나지막이 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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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대(시인)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불법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 윤석열(김건희), 계엄령을 건의한 국방장관 김용현, 국무회의를 열어 사실상 계엄령을 추인한 국무총리 한덕수, 윤석열 계엄내란에 동조한 국무위원들, 특히 불법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어 국민을 처단하겠다고 공언한 불법계엄사령관 박안수, 국회의원을 당사로 빼돌린 추경호,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 직전 국회를 떠난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 국회의원들, 계엄령에 동원된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특임대,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난입한 불법계엄군과 현장 지휘자, 눈치를 보며 쥐새끼처럼 움직인 경찰청장과 간부들(국회경비대장 포함), 전국 지자체 청사 폐쇄 명령을 구체적으로 내린 행정안전부 장관과 관련 책임자,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계엄내란에 동조한 정황이 있는 네이버 대표, ‘윤석열 3시간 계엄반란’에 sns를 동원하여 적극 동조한 황교안, 민경욱, 전여옥, 김소연 등 이번 '윤석열 6시간 계엄내란' 사태의 모든 관련자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 중 야당 대변인에게 구체적으로 총구를 겨눈 1인의 사병도 반드시 처벌해야 함) 이제 3시간 계엄내란 수괴 윤석열과 계엄내란 관련 범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국민에 의한 국민계엄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이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정상적으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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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2-04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진눈깨비 2024-12-0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복붙해서 다른 게시판에 올립니다...
 


 

국립국어원에 누군가 질문했다: ‘심난하다심란하다는 다른 단어죠? ‘심난하다매우 어렵다”, ‘심란하다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럼, ‘마음이 심난하다.’라는 문장은 잘못된 건가요?

 

국립국어원이 답변했다: ‘심난하다형편이나 처지 등이 매우 어렵다는 뜻이고, ‘심란하다마음이 어수선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심란하다로 쓰시는 것이 알맞습니다.

 

국립국어원 답변 수준은 참담하다. 심란하다는 단어에는 이미 마음이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심란하다는 표현은 마음이 마음이 어수선하다가 돼 잘못된, 그러니까 틀린 겹침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답변에 알맞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국립국어원에 누군가 질문했다:

 

1. 옳은 것을 고르시오.

2. 적절한 것을 고르시오.

3.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셋 다 비슷한 의미인 거 같기는 한데 어떤 차이가 있어요?

 

국립국어원이 답변했다: ‘옳다사리에 맞고 바르다.”, ‘적절하다꼭 알맞다.”, ‘알맞다일정한 기준, 조건, 정도 따위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뜻풀이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적절하다알맞다는 의미가 통하지만, ‘옳다적절하다/알맞다와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당 문항에 비추어 알맞은 단어를 선택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자기 답변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제대로 답변하려면 “‘마음이를 빼고 그냥 심란하다라고 표현하셔야 맞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한국어 연구를 주관하는 국립 기관이 어떻게 이런 지경일까?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수준 전반이 이렇다. 예를 들어본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돌림 풀이가 곳곳에 널려 있다. (이 이야기는 <나는 국립국어원이 그리 그악하다>(2024.3.5.)에서도 했다.)

 

경영: 기업이나 사업 따위를 관리하고 운영함.

운영:조직이나 기구, 사업체 따위를 운용하고 경영함.

 

경영은 운영으로 운영은 경영으로 풀어놓았다. 이는 풀이라고 할 수 없다. 대체 어떤 자들이 모여서 이런 짓거리를 했을까, 궁금하지도 않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이야기한다.

 

지혜-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슬기-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

 

한자 말 지혜와 순우리말 슬기는 서로 대등하게 맞바꿀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은 지혜를 슬기 상위어처럼 풀어 놓았다. “정신적 능력재능을 누가 대등한 표현이라고 하겠나. 재능의 재를 재주라고 해놨으니 말이다. 슬기가 재준가.

 

김명신 국정농단 논란에 윤석열이 사과한다면서 사전을 들먹이자, 누군가 국립국어원에 국정 농단을 질문으로 올렸다고 하는데 답변했는지 모르겠다. 답변하지 못했으리라 추정하거니와 이 또한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을 문체부 예하 기관으로 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이 여전히 식민지임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어( 연구)가 어떻게 문화·체육·관광 개념에 속한단 말인가.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속한 프랑스 학술원 관련 자료를 보면 국가원수가 보호한다.”라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은 대한민국학술원과 전혀 무관하며, 대한민국학술원조차 교육부 예하 기관이다.

 

대한민국은 바탕이 구겨진 나라다. 조선총독부 체제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구겨진 바탕에서나마 애써 꾸려오던 나라를 뉴라이트 정권이 들어서서 대놓고 쑥대밭으로 만드는 중이다.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다. 누구 말마따나 국립국어원도 토착 왜구들이 일부러 들어가 망치고 있지 않나 싶으니 심란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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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습관은 어린 시절 집의 온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어린 시절 겨울철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지, 방이 따뜻해서 티셔츠를 입었는지에 따라 열 기준선이 만들어진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뿌리 박힌 편안함의 감각이다.···따뜻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외부 온도와 무관하게 성인이 되어서도 온도 조절기를 더 높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격 형성기의 습관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_코메디닷컴

 

어디 열 기준선뿐일까. 거의 모든 정신장애, 정신병 또한 어린 시절 받은 자극과 반응에 뿌리를 둔다. 크게 보면 모든 정신장애, 정신병은 발달 불균형 증후군-일본 신경정신과 양의사인 호시노 요시히코(星野 仁彦)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에서 처음 쓴 용어-이다. 미국 정신 요법 가운데 과거 아닌 현재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있는데 이는 그들 특유 제국주의 사고를 드러낸 오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동심원을 그리며 번진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쟁여진다.

 

어린 시절 상처를 문제 삼을 때 흔히, 특히 가해자가 입에 올리는 말은 이렇다: 다 지난 일을 가지고 왜? 틀렸다. 지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입자적, 물적 실재만을 실재라고 하는 제국주의 사고를 일소할 때가 진즉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식민지에서는 주류로 대우하고 있다. 어른인 내 인격 속에 neoteny가 엄존하듯 어린 시절 습관과 상처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한의원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켜기다. 창이 열리면 예쁜 아기가 웃는 얼굴로 나를 맞는다. 심리 전문가에 따르면 아기 얼굴 심지어 그 사진이나 그림을 보아도 어른은 조심 mode에 돌입한다고 한다. 내가 아기 사진을 건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마음 아픈 사람을 치유할 때, 마치 어린 아기처럼 곱고 촘촘한 마음길로 대하려고, 아니, 발달 불균형인 채 성숙이 멈춘 어린 아기 실재(the real)를 다습고 살갑게 대하려고 말이다.

 

고백하건대 내 자신과 한 이 약속을 나는 충실히 지키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기가 내 앞에 있는 아기를 적지않이 질투했다; 어른 흉내 내며 내 앞에 있는 아기를 적지않이 꾸짖었다. 아무리 똑 한 걸음 앞 스승이 실팍한 스승이라지만 이만하면 농익을 법도 한데 갈 길은 아직 아득하다.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컴퓨터 화면 속 아기 눈을 그윽이 들여다본다. 다정한 눈빛에 이끌려 나도 한껏 다정해진다. 부디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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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석식 소주는 일제가 1899년 발명한 저질아니 가짜소주다. 싸구려 원재료를 발효시킨 뒤 연속 증류해 맛과 향을 모두 날려버리고 역한 냄새만 남은 주정에다 물을 타서 만든다. 역한 냄새를 감추려 인공감미료를 섞는다. 그렇게 오로지 취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알코올로 개돼지대중을 순치시킨다. 이 사악한 제국주의 부산물은 그대로 식민지 조선으로 번져간다. 관계법과 조세제도까지 바꿔가며 소주 시장을 석권할 수 있게 해준 조선총독부와 부역 대한민국 권력 덕에 희석식 소주는 소주 본진이 된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한다. 1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이 희석식 소주를 마시며 순치된 개돼지로 살아온 나를 용서하지 못한다. 서둘러 한의원으로 돌아와 비통하게 운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무지렁이 부역자로 살아가는 참담함이 이렇게까지 파고들다니. 가짜 소주, 그 알코올에 온 세포가 절 듯이 내 영혼도 절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 싶으니, 통곡은 여간해서 잦아들지 않는다. 스스로 우는 소리를 감지하는 순간 그 소리는 더욱 크게 꺽꺽대고 만다. (2014.3.7. <개화산 이야기, 그 후렴>)

 

가짜 소주와 헤어지기로 다짐하며 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가짜 아니고 진짜 소주 마시려면 돈이 많이 들어 천하 가난뱅이인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서다. 대신 막걸리 마실 경우도 같다. 값싼 막걸리에는 제국 악질 기업 몬샌토가 독점 공급하는 아스파탐이 들어 있다. 아스파탐 쓰지 않는 막걸리 가운데 왜식 누룩을 넣은 것은 값이 세 배다. 우리 누룩을 쓰는 막걸리는 훨씬 더 비싸다. 맥주 경우도 같다. 국산 맥주는 효모가 거의 없고 맥아만 있는 가짜다. 진짜는 비싼 제국 것들이다.

 

술마저 값싼 가짜가 판치는, 가짜를 거부하려면 더 성공한 부역자가 돼야 하는 모순이 판치는, 이 모진 식민지 거리에서 나는 오늘 저녁도 홀로 술 한잔할 텐데 모욕감 벗어날 방법을 당최 모르겠다. 물론 단순명료한 외길은 금주다. 금주 또한 소담한 반제 병기다. 문제는 술이 없을 때 내 삶 자체가 무엇인가다. 어떤 깊은 결여를 부둥켜안고 사는 내 삶에 대한 기림으로 나는 술을 마신다. 그 결여는 일제가 판 구덩이다. 이 중첩모순을 역설로 달여내는 문제에 금주가 답은 아니다. 큰 악이 작은 선을 무심코 물들이므로.

 

진부한 질문: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 정의로울 수 있는가? 한 사회도 한 개인도 단순하지 않으므로 이 질문은 단순한 답을 얻고자 제기되지 않았다. 답은 복잡하고 모호하다. 복잡하고 모호한 답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복잡하고 모호함으로 그런 사회에서 승리/성공하는 행위가 문제다. 이들을 일러 기회주의,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매판 부역이라 한다. 복잡하고 모호함으로 그런 사회에서 패배/실패하는 행위를 감행할 때 단순한 답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단순함은 불순물이 지닌 정의로움이다.

 

불순물이 지닌 정의로움, 더 정확히 말하면 불순물이기에 정의로운 사태는 큰 악이 작은 선을 무심코 물들이지 못하게 막는다. 자기 삶이 사회 전체 악 앞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진실을 정면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에게 엄습해 오는 개체 악 하나하나와 맞서 싸운다면 지더라도 그 패배 때문에 작은 선은 결코 큰 악에 무심코 물들여지지 않는다. 이 싸움이 제국주의에 부역한 존재론 철학을 갈아엎고 팡이실이 공생 윤리학을 세우는 혁명이다. 참 혁명은 가짜 소주 한 잔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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