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정부의 조직 개편과 김구의 등장-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될 당시 초대 국무총리에 이승만, 내무총장는 안창호가 뽑혔어. 하지만 이승만은 상하이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임지 정부 직제 (직무나 직위에 관한 제도 )에도 없는 대통령 행세를 했지. 그래서 초기 임시 정부는 한동안 안창호가 이끌어 갔어. 그런 가운데 1919년9월 임시 헌법을 개정해 임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자 이승만은 그 이듬해인 1920년 12월에 상하이로 부임해 왔어.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이전부터 국제 연맹에 청원서를 내어 우리나라를 위임 통치해 말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 이러한 이승만의 외교 노선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불만이 매우 많았지. 우리나라를 대신 통치해 달라고 남의 나라에 부탁하다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특히 무장투쟁을 주장했던 이동휘, 신채호 등의 불만은 더욱 거셌어. 신채호는 이승만의 위임 통치 요청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은 존재하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나라를 되찾기도 전에 팔아먹었으니 더 큰 역적이란 말이오.
게다가 이승만은 미주에서 거둔 후원금을 자기 마음대로 썼다는 의혹이 있어 그러니 임시 정부 요인들 사이에서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어기에 이러한 일들로 무장 투쟁론자인 이동휘 같은 사람은 결국 상하이임시 정부를 떠나 본거지 연해주로 돌아가기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