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보다 3 -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조선사 여행, 숙종~순종 조선왕조실록을 보다 3
박찬영 지음 / 리베르스쿨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의 역사속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층의 사리사욕에 대한 욕심으로 무수한 인재들이 모함으로 사라진것을 볼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훌륭한 개혁정치를 했던 조광조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도망간 왕을 대신해 백성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 선 이순신 장군 그리고 의병들 그들은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들의 뛰어난 업적에 두려움을 느낀 기득권들의 배척을 당했다는 사실에 조선의 미래가 어두웠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전쟁과 부정부패로 백성들은 점점 피폐해가고 있었지만 그런 백성을 돌보아야할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워 당쟁에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자신들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하고 위험하지 모르고 자신들끼지 아웅다웅 다투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속에 자주 나왔던 숙종은 왕권강화를 통해 당쟁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인과 서인은 서로 권력을 잡을때면 상대편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는데 숙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장희빈과 인형왕후의 이야기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당파싸움의 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정치적 안정 속에서 국정운영에 제도 개편과 더불어 문물의 정비와 민생안정을 꾀할수 있었습니다.
숙종때 상업활동을 하면서 특산물 대신 쌀과 동전을 내는 대동법이 시행되어 독점도매 상업인 도고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대동법 시행은 상평통보가 보급되면서 상인들의 활동도 활발해질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있는 드라마 상도에서 의주의 만상 임상옥은 청과 인삼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도시설계도를 맡겼는데 서양의 여러 도시에 관한책을 참고해 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은 거중기를 이용해 비용과 시간을 절약했습니다. 정약용은 유배 생활중에 수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목민심서,경세유표등이 대표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후사를 남기지 않은 철종이 죽은 후에 지명된 고종은 12살이었고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하게 된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확립하고 삼정의 문란으로 일어났던 민란으로 어수선해진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개혁을 서두드게 되었습니다. 먼저 당쟁의 근원이 되었던 서원을 철폐하고 호포제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조선을 둘러싸고 호시탐탐하게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강대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은 조선에게 문을 두들렸지만 천주교의 확산과 외국문물에 대한 거부감으로 쇄국정책으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일제는 조선을 향해 한발자국씩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발달한 서양문물 대신 안으로 더욱더 문을 잠궜던 조선은 점점 고립되었고 일본은 그런 조선을 돕는다는 구실로 우리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조선을 둘러싸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주변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우리 민족은 어이없게 일본의 침략에 그대로 당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와 반대로 일본은 서양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조선에 대한 자신들의 역할을 키워나갈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읽으면서  집권층의 한치앞도 보지 못하고 사리사욕만 내세우는 모습과 외교의 부재가 가져오는 비극이 무엇인지를 배울수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다를 읽으면서 단순히 한 시대의 우리의 역사이야기를 보는 것을 떠나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역사는 이미 끝났지만 왜 그들이 무너졌는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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