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 학생들의 일본여행
꿈꾸는 과학과 떠나는 일본 대답사

일시 : 2009년 7월 20일 ~ 24일 (4박 5일) 

장소 : 일본 => 기타큐슈, 후쿠오카, 오사카, 교토, 아소, 벳뿌, 하라즈루, 사가 등 

주최 : 대진대학교 해외과학 영재캠프, 명성 여행사 관리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떨리는 가슴을 겨우 가라앉히고,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마침 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했기 때문에 출국은 매우 쉬웠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배웅을 받고서, 비행기를 탔을 때 곧 이어 세상이 점점 작아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가 기대한 비행기는 흔들리지도 않고 매우 편안한 것이었는데, 상승 기류가 나쁘다면서 비행기가 거침없이 흔들렸기에 토할것만 같았다. 





일본에 도착하고 비행기에서 내려서야 겨우 멀미가 가라앉았다. 느낌은... 외국같지가 않았다. 동양인이어서 그런가? 모두가 한국 사람처럼 보였고, 가끔 가다가 어설픈 말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이 사람이 과연 일본인인가? 하고 헷갈릴 정도였다. 맨 처음 간 곳은 오사카 성이었는데, 성의 느낌도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다를 바 없었다. 차이점은 오사카 성의 벽은 매우 커다란 벽돌로 지어졌는데(그 크기가 집 한채 크기이다.) 이 커다란 벽돌을 사람들이 직접 힘을 써서 옮긴 것이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겠는가? 





오사카 성을 다 둘러본 후에, 오사카 과학 기술관을 가려 했으나 문이 닫혀 있는 관계로 NHK방송국을 먼저 견학했다. 방송국도 기대한 만큼이 전혀 아니었다. 영화 촬영장면을 직접 살펴보는 그런 걸 기대했지만, 단지 1층에 견학온 사람들을 위한 간소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힘들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이동해 겨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다음날 교토에서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았다. 금각사, 청수사, 헤이안 신궁, 미미츠카(귀 무덤) 등을 들렀는데, 비가 와서 금각사를 둘러볼 때 우산이 있어도 무용지물이었던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금각사는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건물 전체가 순금이어서 금빛으로 반짝거렸는데, 이 금각사를 제작하는 것을 담당한 회사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간다. 청수사는 절인데, 청수사의 세 가지 낙숫물을 마시면 각각 다른 것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장수, 건강, 재물운이었던가? 기다란 막대가 달린 바가지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경쾌해보였다. 그러나 미미츠카에 도착하자마자 절로 숙연해졌다. 매우 커다랬었는데(그 크기가 왠만한 집 한채를 훨씬 능가한다.) 그 속에 조선인 수십만의 귀와 코가 묻혀있다고 하니, 그들이 편안한 안식을 취하기를 바랄 뿐이다. 



일본에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지만, 일본은 모든 면에서 물가가 비싸다. 우선 자판기에서 캔콜라 하나가 700원이 정상이지만, 120엔으로 1500원 정도의 가격이다. 물도 콜라와 가격이 거의 다를 바 없다. 기념품도 라면 1인분이 3000원 정도에 이르르니, 무언가를 살 엄두도 못내겠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다음 날 매우 기쁘게도 스페이스 월드라는 이름의 과학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유원지로 놀러 가게 되었다. 자유이용권과 1000엔짜리 식권을 받았는데, 입구에서부터 하늘 높이 치솟아오른 자턴이라는 롤러코스터가 보였다. 각도가 89도라는데, 일단 타고 나면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단연 들었다. 규모는 서울랜드 비슷한 수준이었고, 오랜만에 놀이기구를 타게 되어 매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소에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화산이 있다. 커다란 화산 속에 작은 화산이 있는 형태이다. 로프웨이 편도를 타고 화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그 모습을 보았는데, 기묘한 초록색이 하얀 연기를 펑펑 뿜어내는 것을 보면서 금방 폭발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워낙 평온해 보였기 때문에 금방 그런 생각을 접었다. 다행히도 화산 과학자들이 언제든지 CCTV로 화산을 근접하게 관찰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폭발할 기미가 보이면 바로 사람들을 대피시킨다고 한다.    

<아소산>

>> 접힌 부분 펼치기 >>



화산 박물관에서 아소 화산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한 후, 벳뿌의 바다지옥과 유노하나, 곧 유황 재배지를 보러 갔다. 바다지옥은 말그대로 온천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어떤 곳은 밀크 커피를 잔뜩 부어놓은 것 같았으며, 김이 나오는 것에 담배 연기를 불어넣자 금방 반응해서 훨씬 더 많은 연기를 펑펑 쏟아내는 모습이 매우 신기했다. 온천의 푸르고 맑은 색깔을 보니 금방 뛰어들고 싶었지만, 90도라는 말을 듣자 바로 포기했다. 

마지막날 사가의 과학관과 후쿠오카의 과학관을 마지막으로 둘러본후, 후쿠오카 국제공항에서 우리나라로 입국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여행이었다고 할지라도 역시 우리집이 제일 편하고 좋은 것 같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7-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경험이었겠어요.
집이 최고라는 것, 떠나보면 알지요.^^

최상철 2009-07-31 09: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프레이야님 ^^
네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학중1-6강선오 2009-07-3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철아 재미있었겠다.
나도 빨리 일본 가보고 싶네

조선인 2010-01-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토여행 준비중인데, 생각해보니 청수사가 빠졌네요. 덕분에 좋은 참고 되었습니다.

최상철 2010-06-18 07:15   좋아요 0 | URL
아~ ㅠㅠ 댓글을 오늘에사 봤습니다
 
프리즐 선생님과 떠나는 고대 이집트 여행
한권으로 체험하는 이집트 이야기
제로니모, 이집트로 떠나다!

일시 :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 기획전시실 & 도봉구청 

같이 간 사람 : 표 진성, 김 상훈, 강 선오, 어머니, 아버지

학습 내용 : 이집트 문화와 그 유물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 도봉구청의 과학 체험전에서 학생 작품의 다양한 발명품들의 전시를 보고서 과학적 지식을 습득 



 점심은 차 내에서 돈까스로 해결한 후, 용산의 국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파라오와 미라라는 특별 기획 전시였다. 이집트 유물을 직접 보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직접 그 신기한 것들을 보게 된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되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관람이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했던 관람이라도 유물들이 모두 신기해보이긴 매한가지였다. 어찌 이다지도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이집트 인들은 세계 4대 문명중의 하나로 나일 강을 중심으로 그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다. 이집트에서도 물론 신화가 존재하는데, 신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이들이 오시리스와 호루스이다. 특히 오시리스는 저승을 관장하는 신으로, 동생 세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가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에 의해서 오시리스가 부활, 그 후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보통 파라오를 연상하면 파라오가 양손에 준 도리깨와 지팡이를 떠올리게 된다. 이 도리깨와 지팡이가 실제로는 오시리스의 상징이라고 한다. 

이집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미라다. 원래 이집트는 죽은 시체를 사막에 구덩이를 파서 묻었는데, 이렇게 하면 자연적인 미라가 만들어졌다. 그 후 벽돌로 세운 건물에다가 시체를 안치하는 전통이 생기면서,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체를 부패하지 않고 만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다가 장기를 빼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된다. 



이집트에 관한 다양한 지식들을 습득하고, 이번엔 도봉구청으로 향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우주 체험전이라면서 그냥 발명품 전시회같아 보였다. 물론 무료로 보는 데다가, 수익도 없는데 높은 수준의 전시를 기대하는게 아니었지... 그래도 이런 발명품들도 있구나, 하면서 좀 더 많은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한번에 두개를 다녀왔지만, 그렇다고 전혀 피곤하지 않다. 이집트에 관한 놀라운 유물들도 보았고, 과학 체험전도 그리 피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에도 이런 체험을 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짜 : 09. 6. 7. 일 

장소 : 통영시 

같이 간 사람: 최 승재, 강 선오, 표 진성, 어머니, 아버지

고성에서의 2박 3일을 통영 시티투어로 끝냈다. 통영 시티투어란 버스를 타고서 통영의 유명한 문물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이다. 특히 통영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충무사와 한산도, 케이블카와 유람선 등을 잔뜩 관람하고 왔다. 



 

<한산도 제승당> 

제일 먼저 유람선을 탑승했다. 이름은 신태양호. 물론 약간 낡아서 그리 멋진 호화 여객선은 결코 상상할 수 없으나, 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나아가서 도착한 한산도에서 충무공 이순신의 그 깊은 뜻과 영웅정신의 기를 받을 수 있었다. 한산도의 만은 잘 보면 하트 모양이다. 해설자가 설명하길 이는 조국과 임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효율성을 위해 이렇게 만들었을 뿐, 실제로 그런 뜻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후 몇 백년된 정자에 앉아서 해설자에게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통영이 이순신의 도시이므로 가기 전에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다. 이 책 속에서 이순신이 얼마나 훌륭한 위인이었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순신은 뛰어난 병법가임과 동시에 수완 좋은 정치가였으며 쉽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학자였다. 그런 만능인인 이순신이 백성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씨까지 가졌으니 과연 대단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또 이순신의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에 속한다고 한다. B.C 480년경 테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해전때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에서 그리스라는 한 국가의 패망이 걸려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열심히 싸운 덕택에 기동성이 약한 페르시아의 거대한 배들은 스스로 무너져 엄청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또 영국의 칼레 해전에서 드레이크 제독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 아래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다. 또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이 있는데, 넬슨 제독은 이순신과 비슷한 점이 많은 장군이다. 전략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또 이순신과 같이 선상에서 저격을 당해 해전이 모두 끝난 후 '나는 20세의 약속을 지켜 행복하게 죽는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선상에서 죽었다. 

그러나 이 모든 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이다. 이 대첩에서 일본군이 자기 군의 피해를 문서로 8600명 넘는 사망자를 보고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실을 두려워하여 적게 보고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상대적으로 조선 수군 사망자는 최소 1000명은 되어야 한다. 그럼 실제로 몇명일까? 사망자는 19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배 한척 깨지지 않고서 상대방을 전멸시킨 이순신은 전세계적으로 해군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나 또한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존경하며 닮고 싶다.  

<전혁림 미술관>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돌아와 통영을 빛낸 예술인인 전혁림 할아버지의 예술관을 둘러보았다. 현재도 살아계시는데, 올해 나이가 95살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장수하시는 예술인이니, 아주 오래 오래 살아계셔서 좋은 작품을 하시면 좋겠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거친 붓결에서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모두 만나고서, 바닷가의 식당에서 먹는 아구찜을 먹었다. 아구양이 매우 적었기에 거의 콩나물 무침이라 생각하면서 밥과 반찬만 먹었다.   

<미륵산 케이블카>

그 후 케이블카를 타고서 산의 전경을 둘러 보았다. 높은 곳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니 참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좋은 구경을 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온 후, 버스를 타고 충무사로 향했다.   

<해저터널>  

입구와 그 내부 모습 - 바다 밑으로 이런 터널을 냈으니 그 때 일했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마음이 아팠다.

<착량묘,거북선> 

충무사는 400년도 넘은 것인데, 어떻게 일제 시대에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냐 하면 일본이 경외하는 조선의 장군이 바로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세종로에서 나쁜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동상의 주인공도 이순신인 이유가 이것이다. 충무사에서 영웅 이순신에게 참배를 한 후, 바로 앞에 위치한 거북선을 둘러보았다. 몇 번 온 곳이긴 하지만,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거북선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겼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이 웅장한 배에게 감사해했다. 

<세병관, 향토역사관> 

마지막으로 세병관을 들렀다. 원래 이 세병관은 통제지의 중심인데, 그 주변이 일제 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세병관이 컸기 때문에 서당으로 쓰여서 겨우 보존될 수 있었다. 얼마나 잘 만들었던지 400년 전에 건물 상층벽에 새겨진 선녀의 눈썹조차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람의 손이 다 닿을 수 있는 곳은 문양이 거의 지워져 좀 안타깝게 여겨졌다. 

 

통영 곳곳에서 사람들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바다의 도시이자 충무공의 도시인 통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디오스 2009-06-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최상철 2009-06-09 1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 내용 꼼꼼하게 써주신 <한려수도 이순신이 싸운 바다>
배송되면 잘 읽겠습니다~
 

날짜:2009.06.05. 금요일 

장소: 경남 고성 '공룡 세계 엑스포' 

같이 간 사람: 어머니, 아버지, 승재, 선오, 진성, 나 

아침 6시, 일찍 일어나 출발할 준비를 했다.  학교까지 빠지고 3일간의 빽빽한 일정이 계획된 앞으로가 매우 기대되었다.  그렇게 붕~뜬 마음을 품고서 고성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 설에는 눈이 많이 와서 경기도를 채 벗어나지도 못하는데 13시간씩이나 걸려서 못갔지만, 이번에는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다. 중간에 어머니가 나와 승재 선오의 핸드폰을 모두 걷어갔는데 그 사실 때문에 나중에 위기에 처한다.  고성 할아버지댁에 도착해서 절을 한 후 점심은 짜장면을 먹고서 경남 고성 공룡 세계 엑스포로 향했다.  

 

 

재작년에도 오고, 초등 4학년 때도 온 적이 있으나, 그 때는 번번히 엑스포 행사기간이 아니었기에 이번에 관람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우리는 거북선 열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팜플랫에 3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기본 코스와 심화 코스를 적절히 섞어 관람키로 하였다. 

 


제일 먼저 가 곳은 백악기공원관이었다.  지붕에 앉아 있는 브라키오 사우루스의 웅장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동굴로 들어가기까지 좋았는데, 원시인들을 보고서 바로 유아들을 위한 곳이란 걸 알았다.  공룡은 중생대에 출현했고,  인간은 그보다 훨씬 후인 신생대에 출현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공룡을 사냥하고 있는 모형은 말이 되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백악기공원을 빠져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고성문화체험관.  

이 곳에서 우리는 솟대 만들기 체험을 하였다.  반동으로 움직이는 파랑새가 완성이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4명이서 계속 가지고 놀았다.  또 각자의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려고 압화를 이용한 꽃누르미 열쇠고리 만들기 체험도 하였다.  




다음으로 중생대 공룡관을 관람했다.   중국에서 온 온갖 종류의 공룡들이 전신되어 있었다.  



그 후 출구로 나와서 한반도공룡발자국화석관으로 갔다. 한반도의 공룡발자국화석관을 구석 구석 살펴보며 함께 전시되어 있던 세계화석.광물도 살펴보았다. 

우리는 간식을 먹고 한숨을 돌린 후 멀티미디어관으로 향했다.  레이져를 이용한 3D 영상쇼인데, 폭포와 레이져 빛으로 공룡 영화 한편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광경을 안고 올 수 있었다.     

옛날부터 공룡과 함께 해왔다는 철갑상어전시관도 둘러보았다. 작은 상어가 둥근 수조에 담겨있었는데 왠지 손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옆에는 철갑상어를 이용한 요리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철갑상어 알(캐비어)가 250000원. 세계 3대 요리 중 하나에 입맛만 다시며 살아움직이는 상어들을 구경하고 나왔다. 

  

  

 

  

 

 

대망의 쇼.  4D주제관이 남아 있었다.  멀티미디어관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으 정도로 재미있었는데(물론 레이져쇼가 훨씬 아름다웠다만)의자 앞 뒤에서 강한 바람과 물줄기가 나왔고 이리저리 흔들려 실제로 영화 속 중생대 백악기 그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 그대로를 가지고 나와 각 층에 설치된 소리와 움직이는 거대 공룡 모형을 보니 정말 살아움직이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곳을 나와서 (산비탈길에 설치되어있다) 자연사 박물관 앞까지 아주 길게 연결이 된 미끄럼틀을 신나게 타고 내려왔다.  엉덩이가 약간 타는 듯 했지만 정말 신나는 체험이었다.  파랗게 아름다운 해안가를 끼고 펼쳐진 인도와 차도.  우리는 인도로 주차장까지 맹렬히 경주를 하며 이 날을 체험을 마무리 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짜 : 2009. 5. 9 ~ 5. 10 

같이 간 사람 : 우리 가족, 서 영빈, 서 한빈, 서 두빈, 두빈이 부모님, 정 원호, 원호 부모님, 재봉 아저씨네 가족, 강지수, 강지선, 지수네 부모님 

장소 : 수안보 리조트, 충주 투어(2주 b코스) 

6학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소망교회 수련원으로 여행을 떠난 후 약 1년이 지나 이제 아버지의 대학 동창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가졌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그런 즐거운 기회가 되었던 때.  

첫날에는 고수동굴을 다녀 온 후에 수안보에서 먹어보는 첫 식사를 맞이했다. 바로 꿩도리탕! 꿩은 옛날부터 그 육질이 쫀득하고 국물 맛이 환상이며, 그 깃털도 요긴하게 쓰이는 걸로 유명해서 먹어 보았다. 그 맛은... 기대와는 달라 꽤 실망했다. 고기는 질기기가 훨씬 질긴데 맛은 닭보다 훨씬 없었다. 그래도 국은 시원할까, 하고 먹어보았지만 된장찌개 맛이 훨씬 나은 정도얐다. 꿩에 대해 이리저리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수안보 리조트에서 영빈이 형과 함께 캐치볼과 야구를 해 그날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수안보 온천으로 향했다. 일본식 온천을 기대하고 들어섰지만... 역시나 일반 사우나와 별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우리동네 찜질방 사우나 시설이 훨씬 좋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물도 40도여서 쉽게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뜨거웠고, 그렇다고 해서 온천수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를 보면서 충주가 참 관광지 개발을 위하여 많은 개발이 필요로 하겠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충주시청 - 문화 유적 투어 홈페이지 주소  

 http://tour.cj100.net/sub01/?menucode=01_06  >

그렇지만 오후 10시에 가졌던 충주시 투어는 참 알찼다고 생각한다. 무료로 제공해주는 버스를 타고서 충주의 온갖 문화재를 도는 것인데, 제일 먼저 간 곳은 충렬사이다. 충렬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과연 그 모습이 웅장했다. 임경업에 관한 미니 박물관도 있었는데, 임경업이 수련을 했다는 경업대와 그의 추련도등 다양한 역사적 유물들과 설명들이 있었다. 

500년을 넘게 살아온 노송과 느티나무가 있는 작은 사찰, 단호사. 이 작기 때문에 단아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찰에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보물로 지정된 철불좌상이 있다. 단지 일반적인 절로 보이지만, 내가 봤던 절들중에서 가장 매력을 끌었다. 게다가 거대한 황금부처상은 그 웅장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중원미륵리사지. 월악산국립공원이 포함하고 있는 곳으로, 넓은 원터를 보니 마음이 탁 트였다. 거대한 석불과 함께 아직도 그 정체와 만들어진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석귀부가 있었다. 한쪽 돌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걸로 보아 미완성으로 보이는데, 거북이 등딱지를 기어오르고 있는 새끼 거북이 두 마리의 의미는 무엇인지 전문 역사학자들조차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월악산 국립 공원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사자빈신사지석탑으로 향했다. 사자 네 마리가 석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멋지긴 했지만, 도굴꾼들로 인하여 이 탑이 잠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해졌는데, 아직 그 일부 조각이 발견되지 않아 뭔가 좀 비정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굴꾼들에게서 이 중요한 보물을 되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충주에는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주제로 박물관이자 과학관인 곳을 하나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청바지 박물관 등 온갖 신기한 종류의 박물관들이 있다는데 사과를 주제로도 박물관을 만들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박물관에 발을 들였다. 조금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볼거리들은 많았다. 미래에 사과 재배기술은 어떨 것이며, 세계의 사과 재배 현황은 어떤 것이냐는 둥이 나왔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체험하니 벌써 시간이 다 가 버렸다. 어느새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하고, 작별을 하니 벌써 집에 와 있었다. 이런 날이 오는 것은 아마도 짧아봐야 1년 후일 것이다. 그래도 이틀동안 매우 잘 즐겼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om<가기 전 아이와 함께 읽은 책들>  

 

<다녀온 후 구입. 읽고 싶은 책 목록>  

오늘 해설을 맡아 주셨던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탑에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났던 관계로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억압을 받던 이전 시기 고려시대까지 석탑은 전국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석탑은 우리 나라을 지켜 달라는 기원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목조를 건축한 목탑이 많으며 중국의 경우 검은 회색 또는 회색 벽돌로 쌓아 올린 전탑이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탑에 관해 궁금증이 많이 생겼다.  

탑을 건축한데 있어 나라별로 달랐던 것은 환경상의 차이였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좀 더 깊이있게 알 수 있었다.  

[출처] 중국엔 전탑, 한국엔 석탑, 일본엔 목탑이 발달한 이유는? |작성자 이스톤 


우리 나라 역사를 생생한 현장과 함께 할 때마다 사랑하는 마음도 더 알아야겠다는 마음도 많이 든다.  곧 아이들과  함께 제2차 방문 계획을 세워볼 것이라고 마음먹고 돌아온 하루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