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09. 5. 9 ~ 5. 10
같이 간 사람 : 우리 가족, 서 영빈, 서 한빈, 서 두빈, 두빈이 부모님, 정 원호, 원호 부모님, 재봉 아저씨네 가족, 강지수, 강지선, 지수네 부모님
장소 : 수안보 리조트, 충주 투어(2주 b코스)
6학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소망교회 수련원으로 여행을 떠난 후 약 1년이 지나 이제 아버지의 대학 동창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가졌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그런 즐거운 기회가 되었던 때.
첫날에는 고수동굴을 다녀 온 후에 수안보에서 먹어보는 첫 식사를 맞이했다. 바로 꿩도리탕! 꿩은 옛날부터 그 육질이 쫀득하고 국물 맛이 환상이며, 그 깃털도 요긴하게 쓰이는 걸로 유명해서 먹어 보았다. 그 맛은... 기대와는 달라 꽤 실망했다. 고기는 질기기가 훨씬 질긴데 맛은 닭보다 훨씬 없었다. 그래도 국은 시원할까, 하고 먹어보았지만 된장찌개 맛이 훨씬 나은 정도얐다. 꿩에 대해 이리저리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수안보 리조트에서 영빈이 형과 함께 캐치볼과 야구를 해 그날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수안보 온천으로 향했다. 일본식 온천을 기대하고 들어섰지만... 역시나 일반 사우나와 별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우리동네 찜질방 사우나 시설이 훨씬 좋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물도 40도여서 쉽게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뜨거웠고, 그렇다고 해서 온천수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를 보면서 충주가 참 관광지 개발을 위하여 많은 개발이 필요로 하겠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충주시청 - 문화 유적 투어 홈페이지 주소
http://tour.cj100.net/sub01/?menucode=01_06 >
그렇지만 오후 10시에 가졌던 충주시 투어는 참 알찼다고 생각한다. 무료로 제공해주는 버스를 타고서 충주의 온갖 문화재를 도는 것인데, 제일 먼저 간 곳은 충렬사이다. 충렬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과연 그 모습이 웅장했다. 임경업에 관한 미니 박물관도 있었는데, 임경업이 수련을 했다는 경업대와 그의 추련도등 다양한 역사적 유물들과 설명들이 있었다.
500년을 넘게 살아온 노송과 느티나무가 있는 작은 사찰, 단호사. 이 작기 때문에 단아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찰에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보물로 지정된 철불좌상이 있다. 단지 일반적인 절로 보이지만, 내가 봤던 절들중에서 가장 매력을 끌었다. 게다가 거대한 황금부처상은 그 웅장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중원미륵리사지. 월악산국립공원이 포함하고 있는 곳으로, 넓은 원터를 보니 마음이 탁 트였다. 거대한 석불과 함께 아직도 그 정체와 만들어진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석귀부가 있었다. 한쪽 돌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걸로 보아 미완성으로 보이는데, 거북이 등딱지를 기어오르고 있는 새끼 거북이 두 마리의 의미는 무엇인지 전문 역사학자들조차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월악산 국립 공원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사자빈신사지석탑으로 향했다. 사자 네 마리가 석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멋지긴 했지만, 도굴꾼들로 인하여 이 탑이 잠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해졌는데, 아직 그 일부 조각이 발견되지 않아 뭔가 좀 비정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굴꾼들에게서 이 중요한 보물을 되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충주에는 충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주제로 박물관이자 과학관인 곳을 하나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청바지 박물관 등 온갖 신기한 종류의 박물관들이 있다는데 사과를 주제로도 박물관을 만들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박물관에 발을 들였다. 조금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볼거리들은 많았다. 미래에 사과 재배기술은 어떨 것이며, 세계의 사과 재배 현황은 어떤 것이냐는 둥이 나왔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체험하니 벌써 시간이 다 가 버렸다. 어느새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하고, 작별을 하니 벌써 집에 와 있었다. 이런 날이 오는 것은 아마도 짧아봐야 1년 후일 것이다. 그래도 이틀동안 매우 잘 즐겼으니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om<가기 전 아이와 함께 읽은 책들>
<다녀온 후 구입. 읽고 싶은 책 목록>
오늘 해설을 맡아 주셨던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탑에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났던 관계로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억압을 받던 이전 시기 고려시대까지 석탑은 전국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석탑은 우리 나라을 지켜 달라는 기원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목조를 건축한 목탑이 많으며 중국의 경우 검은 회색 또는 회색 벽돌로 쌓아 올린 전탑이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탑에 관해 궁금증이 많이 생겼다.
탑을 건축한데 있어 나라별로 달랐던 것은 환경상의 차이였다는 것을 검색을 통해 좀 더 깊이있게 알 수 있었다.
[출처] 중국엔 전탑, 한국엔 석탑, 일본엔 목탑이 발달한 이유는? |작성자 이스톤
우리 나라 역사를 생생한 현장과 함께 할 때마다 사랑하는 마음도 더 알아야겠다는 마음도 많이 든다. 곧 아이들과 함께 제2차 방문 계획을 세워볼 것이라고 마음먹고 돌아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