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예측 -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 2021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젠더·어펙트 총서 1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지음 / 산지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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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정동> 을 읽고 - 여성의 몸과 몸적 행위가 공간화되는 방식에 대하여 


2 <공간과 정동> 이루는 개의 논문은 공간과 정동의 관계를 여성공간과 트랜스여성, 박완서 소설의 집이라는 공간과 여성의 , 부산 수산가공업과 여성노동,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와 여성의 애도라는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탐구한다. 우선 권영빈 선생님의 글은 집을 몸으로앓기라는 분석을 내놓는데, 이는 신체화된 주체로서의 여성이 피난 선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서울의 집이라는 장소를 공간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특히 알렉시예비치의 글을 시작으로 전쟁과 젠더화의 문제를 다루고, 이를 한국전쟁과 여성경험의 특수성으로 연결하는 도입이 매우 매끄럽고 흥미로웠다. 여성의 전쟁경험을 공동체에 기투하지 않고 개별적 비평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선생님은 여성의 몸이 어떻게 집이라는 공간에서 신체화되는지에 주목한다. 전쟁이 몸으로접한다 표현이 적절하게 주제를 말해주었고, 이를 통해 어떻게 집이 몸의 물질성에 각인되는지 이해할 있었다. 집은 피난을 가장하는 연극적 무대이자 자체가 특정을 유보한 이데올로기적 접경지대로 작동하고, 이때 오빠의 죽음을 팥죽으로 섭취하는 여성 통해 이러한 중첩적 의미가 체현된다. 다시 말해, 여성의 몸은 전쟁상태를 체현하는 존재가 된다. 오빠의 죽음을 논하는 부분에서 나는 아직 읽지 못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인용되었고, 그래서 글의 말미에서는 앞에서 제시한 이론적 토대가 문학적 비평을 통해 뚜렷하게 가시화되었다는 점에서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번째, 신민희 선생님의 글은 그동안 육지 중심, 남성노동자의 개발사업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노동에 대한 연구를 돌아보면서 이와는 사뭇 다른 결로 부산의 수산가공업과 여성노동을 논한다. 글은 우선 부산의 산업과 수산가공업의 비가시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여기서 선생님이 읽어낸 개발 중심의 단선적 시간성과 거리를 두려 한다. 또한 제조업의 분류에도 맞지 않는 여성의 수산가공업에서, 이것이 어머니의 노동 등으로 치환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노동과 노동자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는 의미를 찾아낸다. 노동집약적이고 지역 산업적인 수산가공업이 부산의 산업구조에서 계속해서 선진화되지 못한 것으로, 여성의 비주류 노동으로 비가시화된다면, 글은 이에 대해 여성의 노동을먹고 살기 위한억척스러운, 따라서 먹고 있다면 해소되어버리는 가사노동의 연장선에 희생의 공간이 아닌 노동 자체로 재의미화하기를 요청한다. 때의 노동은 임시적이지도 일시적이지도 않으며, 전근대적 형식으로 격하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전환은 수산가공업의가공 주목하여 가공이 단지 기능적이고 기술적이며 수량화된 발전을 꾀하는 것이 아닌 보다 정동적 의미에서의 추구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로 달리 생각하자고 신선하게 제안된다. 


꼭지의 특히 김보명 선생님의 글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이다. 여성성과 트랜스여성, 공간과 몸이라는 주제가 나의 연구주제와 가장 가깝거나와, 선생님이 정동이론과 함께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이 매우 명료했다. 특히 트랜스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학자들인 수전 스트라이커가 속한 애리조나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셨는데, 영향력이 글을 통해서도 읽혀서 (나중에 이력을 찾아보고는 역시 그렇구나 했다)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있는 지금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글은 2020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변희수 하사의 강제제대 사건과  트랜스젠더 여성인 A 숙명여대 입학을 둘러싼 논의를여성공간이라는 화두로 모으며 시작한다. 여성에 대한 배제는 모두 안전과 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으며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는데, 이는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이 얼마나 뿌리깊게 시스젠더 정체성을 페미니즘에의 참여자격이자 특권적 조건으로 삼는지를 보여주었다. 선생님은 논의를 20세기 중후반 미국의 맥락에서 여성공동체의 분리주의 경향과 연결하는데, 여성에 대한 차별이 오히려 활동의 자원이 성별 영역분리는 그러나 한편 생물학적 성이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실체로 여겨지는 문제를 드러냈다. 유사한 양상으로 일어나는, 한국사회에서의 트랜스 여성을 적대의 대상으로 삼는 여성공간의안전 대한 수사는 다시 국가와 법의 책임과 보호를 요구한다는 (청원과 제정에 대한 예시를 생각해볼 있다) 에서 신자유주의적이며, 차별과 배제를 다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김보명 선생님은 여성공간이 어떻게 혐오를 바탕으로 담론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정동적 공간인지를 다루면서, 생물학적 성이라는 논리조차 어떻게 특권을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지적했다. 신체의 문화적이고 담론적인 구성을 논했다는 점에서 글은 연결신체 이론에 매우 충실하게 쓰여졌으나, 뿐만 아니라 젠더연구의 Femonationalism 같은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삼기도 했다. 이를 통해 글은 지금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어쩌면 당사자와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때로는 피로감이 들기도 하는트랜스여성을 배제하는 여성공간이 어떻게 담론적으로 형성되고 어떤 기반을 통해 비판될 있는지 문제를 치밀하게 다루며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탈정치화와 보수화에 대해 설득력있게 지적하고 있다. 다만 선생님께서는 때때로 정동을 언어 바깥에 위치시키는 했는데 (이를테면언어가 이성이 아닌 힘들에 의해 어떻게 좌우되는지라는 구절에서 나는 정동을 이성이 아닌 힘으로 규정하신다고 느꼈다) 부분에 대해 보다 자세히 다뤄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혐오가 작동하는 공간으로써의여성공간 담론적 구성이 사회문화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지적과 이러한 표현은 종종 상충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의 구성과 전개가 매우 촘촘하고 섬세해서 관련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이부터 동료 ,박사생 친구들에게도 모두 추천하고 싶은 글이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문장을 옮긴다. (여성 공간에 대한) “배타적 경계짓기와 개별적 자기방어의 전략을 넘어서는 안전과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에 대한 상상과 고민은 여전히 부족하다.” 과연 촌철살인이다. 

이시다 게이코 선생님은 야스쿠니 신사의 위령 행위를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이 네셔널리즘과 어떻게 연관되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전물자에 대한 위령은 애도행위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과 연관을 갖지만, 특히 근대국가로서 일본의 국가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상징적 의미인 야스쿠니 신사의 위령행위에서 과도한 슬픔이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읽혔다. 여성적인 것으로써의 감정적 애도는 남성적 원리를 바탕으로 가부장제 국가질서를 무너뜨릴 있는 위협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이코 선생님은 오늘날 전몰병사를 추모하고 위령하는 있어 여성적인 것이 귀환하고 있다고 보면서, 영웅적이고 신화회된 전몰자가 아니라 희생자를 추모하고 위로하는 문화적 형태의 예시로 영화와 신부인형을 든다.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의 야마토> 대한 비평을 통해 게이코 선생님은 여성성의 귀환이 다시 국가주의의 회로로 환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부인형은 가부장제 권력구조를 재생산하고 영화는 결국 반전의 메세지가 아닌 전쟁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전쟁세대에 대한 이해를 통해 구축되는 세대간의, 따라서 국가 내부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네셔널리즘을 위협할 있는 여성적인 것이 오히려 신화를 강화한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지적하면서, 글은 여성성이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위령의 형태를 탐구하는 씨앗이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로 마무리된다. 나는 석사논문을 통해 여성성이 퀴어, 트랜스, 유색인종적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인 여성성의 형태가 어떻게 문화적 가시성 프레임에 한정된 레즈비언 여성성이나 트랜스여성성에 대한 비좁은 규정을 넘어서, 단순히 정동이나 연결신체(Somatechnics) 가시성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는 움직임에서 벗어나, 문화정치와 정동이론을 통합할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지에 대해 썼다. 이와 같은 배경을 두고 읽은 글에서 내게 남은 의문은 게이코 선생님이 다루고 있는여성성 모습이 꽤나 모호하다는 것이었다. 여성성은 남성성에 대비되는 규범적 여성성을 포괄하기보다는, 모성에 더욱 가깝게 읽혔다. 시스젠더의, 이성애적이고 가부장제 구조 하의 여성성이 네셔널리즘에 어떻게 포섭되는지를 비판한 글이라면, 밖의 다른 여성성들이 국가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남긴다. 다시 말해, 글의 서두에서 쓰셨듯 여성성이 사회적으로 규정된 가변적인 것이라면, 여성성 내부의 다양한 결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국가주의를 위협하는 여성성과 대안으로 제시되는 여성성의 차이를 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만 놓고 어떻게 다시 국가주의적으로 회귀하는 여성성이 말미의 낙관적으로 제시한 국가주의에 대한 전복으로 주어진 여성성과 연관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주의를 다루면서 2 세계대전과 야스쿠니신사, 그리고 글이 발표된 한국의 맥락에서 뗄레야 없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문제는 다루지 않고 일본 내부의 남성적 국가주의로 비판의 지점을 한정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2 전체를 두고 고려할 가장 공간과 정동이라는 주제로 느슨하게 수렴된다는 인상이 있었다. 일본 내부의 국가주의가 팽배하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공간에서 여성성을 다룬 논문이 보다 명시적으로 정동이론의 문제의식들, 이를테면 애도의 일부로써 눈물을 흘리는 행위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떨까 한다. 


내가 젠더 정동이론을 공부한 장소가 영국이었고, 따라서 개념들을 영어로 먼저 습득한 지금 1언어인 한국어로 옮겨 적고있다는 점은 책을 읽는 내내 영향을 미쳤다. 서론에서 연구소의 선생님들께서 적었듯 연구소에서,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정동이론의 결은 다양하고 복수적이므로 하나의 정의를 내놓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지만, Affect 정동으로 번역하는 , 또는 Somatechnics 연결신체 이론으로 번역해서 쓰는 작업의 개념적 고민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론 안에서 이루어진 논쟁의 지점들 (이를테면 세즈윅의 정동과 아메드의 정동은 어떻게 다른 대상을 두고 다른 결로 펼쳐지는지) 간략하게나마 서론 서두에 제시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2년만에 한국어로 학술적 글을 읽는 재미와 치열한 고민을 선물해주신 출판사와 연구소 선생님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젠더와 정동연구가 어떻게 한국 동아시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분들께 자신있게 책을 추천드린다. 특히 관심있는 주제의 꼭지가 있다면 글을, 이를테면 여성공간과 트랜스여성이나 박완서의 소설에 대한 글을 먼저 읽고 이를 통해 이해한 정동이론의 관점을 바탕으로 다른 글들도 함께 읽어보십사 제안하고 싶다. 이론이 다양한 분야에서 어떻게 비슷하고 다르게 활용되는지를 공부할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것이라 확신한다. 


해당 게시물은 젠더·어펙트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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