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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뚱뚱하다 ㅣ 베틀북 고학년 문고
최승한 지음, 한태희 그림 / 베틀북 / 2024년 5월
평점 :
Carpe Diem!
여기 삶의 맛을 (특히 먹는 맛) 즐길 줄 아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문제방. ('문제는 지방일 뿐'으로 읽히는 재미난 이름이다.)
내장산 입구에서 해물파전, 김치전 맛집으로 알려진 집이 제방이네 식당이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은 덕분일까 제방이는 정말 제대로 먹을 줄 안다. 작가님도 음식에 진심인 분임에 틀림없다. 제방이가 먹는 모든 장면을 작가님은 눈에 보이듯 맛깔스럽게 묘사하셨다. 먹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냉장고를 뒤져 뭐라도 찾아 먹었다. 딸도 <나는 뚱뚱하다>를 같이 읽고는 "배고프게 만드는 책"이라고 한 줄 평을 남겼다.
"소고기 미역국은 제방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녹색이지만 녹색 같지 않은, 연두색이지만 연두색 같지 않은, 녹색과 연두색이 걸쭉하게 섞인 소고기 미역국.
약간의 기름방울들이 이 세계를 마법처럼 비추었고, 국물 속 미역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미여 안에서 쫀득쫀득한 맛을 감추고 있는 조용한 소고기, 입속 이 사이에서 질기지 않고 가볍게 씹히고 육즙은 미역의 맛과 뒤섞여 환상적인 맛으로 제방이를 이끌어 주었다."
- 74쪽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제방이가 달라진다. 제방이가 남몰래 짝사랑하는 진아가 체육시간에 뜀틀을 뛴 제방이를 험담하고 있었다. "진짜 웃기더라. 나는 사람 살이 그렇게 떨리는 거 처음 봤어."
수치심을 느낀 제방이는 식단 조절로 다이어트를 하지만 실패하고 내장산 등반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면 생기는 괴로움과 짜증스러움은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절대 쉬운 게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을 정복하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없는 것 같다. 죽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걸었고, 지금 안전하게 집에 돌아왔다. ... 모두 자기 것이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제방이의 혹독한 다이어트기는 어떻게 끝날까? 결말은 <나는 뚱뚱하다>에서 확인해 보시길. ^^
제방이를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얼마 전 읽은 철학 책, <살아가라 그뿐이다>의 모범사례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든 행위를 인생이 마지막 행위인 것처럼 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교훈을 꼽으며 현재에 온전히 몰두하라고 강조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모든 파도에 몸을 실어라."고 말한 메시지를 제방이는 "모든 음식에 몸을 실어라." 버전으로 생생히 살고 있었다.
제방이는 먹는 매 순간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감격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먹을 준비를 하는 과정과 먹는 행위에서 신성함마저 느껴졌다. 먹을 때마다 삶을 음미하는 훈련을 한 제방이는 여느 아이들과 달랐다. 당연한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고, 그 순간을 소중히 하고 그 가치를 만끽할 줄 알았다. 누구보다도 현재를 사는 아이였다.
제방이의 음미하는 삶의 태도는 확장된다. 먹는 것 이외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낸다. 운동을 싫어했지만 온몸의 근육들이 움직이는 것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친구들처럼 빠르지 못해도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아침을 스스로 차려먹고 엄마를 위해 설거지하는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뿌듯함과 기쁨을 느꼈다. 새로운 아침이 돌아온 것에 행복했다.
"제방이는 살아 있었다. 예전에 아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자신이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살아갈 이유를 느끼는 거라고. 제방이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머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마음으로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 138쪽
"제방이에게는 이런 사소하지만 상쾌한 느낌이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150쪽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자신을 아껴 주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사는 것이 제방이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 152쪽
제방이가 현재를 온전히 즐기는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정적으로 해내는 모습이 정말 기특했고, 누구에게 강요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제방이처럼 살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제방이를 본받아 삶을 즐기며 살고 싶다.
아이들이 라면을 먹을 때마다 건강 걱정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이들이 라면으로 그렇게 큰 행복을 얻는다면 조금은 못 본 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음식과 식사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고,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제방이가 스스로 도전하며 시행착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제방이의 부모님처럼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며,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인지 결국 찾아낼 것이다. 제방이처럼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을 응원할 힘이 생긴다.
뚱뚱한 아이의 다이어트 이야기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단순한 다이어트를 넘어, 욕구를 조절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소통이 이뤄지는 스토리였다. 제방이를 통해 현재를 즐기는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고픈 모든 독자에게 <나는 뚱뚱하다>를 강력 추천한다.
*** 출판사 베틀북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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