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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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장을 펼쳤지만, 그 내용의 재미 때문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된다. 어떤 장면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비범함에 숨이 막히고, 전율이 일어나는 행동에 내 마음에 숨어 있던 욕망을 발견하게도 된다.

작가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 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살다가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까지 국경을 탈출한 전력이 있고 그 자전적 경험이 상당 부분 투영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동시대를 경험하고도 이토록 놀라운 문학을 구현했다는 데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1부에서 전율을 일으켰던 내용은 2부에서 쓸쓸함을 일으키다가 3부에서 대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굳이 3부에서 상황과 관계를 정리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1,2부에 나타났던 인물에 빠져들게 된다.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경험했던, 스스로 결정했던 일들과 인간의 어떤 행동을 보고 자신들의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가 이건 소장하고 두고두고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해 다시 읽었다.

비참한 상황에 빠진 두 쌍둥이들의 내면을 서술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냉정하게 그려내고, 그에 대한 인물의 행동을 보여주는 방식이 또한 인상적이다. 사변적이라고 비판받는 한국문학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듯.

쌍둥이들은 시대를 건너기 위해 고통을 참는 방법 훈련, 장애를 가진 인물인 것처럼 훈련하기, 독자적으로 공부하기 등 스스로 단련했다. 나 자신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절을 건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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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Magazine B) Vol.43 : 베를린 (Berlin) - 국문판 2016.1.2 - 합본호
JOH & Company (제이오에이치) 편집부 엮음 / B Media Company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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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매거진 B에서 찾은 도시 베를린. 최근 힙하기로 손꼽히는 도시다. 힙 플레이스로 꼽히는 도시의 구역을 나누어 그곳에서 소개하고 싶은 상점과 특기할 만한 인물들을 상대로 한 인터뷰를 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했고, 지대의 영향으로 옛 동독의 구역에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일군 문화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시민들은 해결책을 모색하고 도시를 재건해 가고 있다. 베를린에는 이제 ‘토종’ 베를리너는 없다. 그런 구분이 무색하다. 베를린에 머물며 자유롭게 편견 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베를리너다. 국적, 인종, 성별, 나이 따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개방된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냐는 것이다. 옛 동독의 감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자유를 사랑한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며 누리고 산다. 내게 허용된 자유는 남에게도 허용된다.

열린 사고방식으로 날로 달라지는 베를린, 낙서와 색과 변화가 있는 이 도시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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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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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초등학생들이 섬에 표류하게 되며 발생하는 일을 그린 소설. 1954년에 발표했고,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재난을 당한 소년들이 원시의 공간에서 인간 내면에 내재하는 잔인함을 드러내는 과정을 섬뜩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랠프, 지성을 상징하는 새끼돼지, 권력의지와 경제적 유능을 상징하는 잭, 2인자로 악행을 서슴지 않는 로저 등을 통해 인간이 잔인해지는 것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연이 갖고 있는 악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시대적 맥락으로는 루소의 낭만주의에 대한 반론, <산호섬>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태어난 소설.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에 경고등을 켜게 된다. 완장과 권력에 대한 의지, 질투는 본능적이라는 전제하에, 막연한 공포를 점화해 대중을 수하로 두어 힘을 키우는 일, 자연을 사냥하며 정복의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는 과정을 씁쓸하게 보게 된다.

어느 인물도 긍정적이진 않아서 시종일관 잔인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인지 원작이 그런 것인지, 작가가 묘사하는 각 장면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작품 해설이 덧붙여져 있어 그 맥락을 보충하여 이해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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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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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와 그를 따른 척화파 김상헌, 주화파 최명길, 산성 안 대장장이 서날쇠, 청나라 역관 정명수 등을 중심으로 삼전도의 굴욕까지를 다루고 있다. 

역사에서도 알다시피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왕과 고매한 사대부는 전투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청과 싸우자고 재촉하고, 최명길은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지만 척화파들은 그를 역적이라 싸운다. 굶어 죽어가고 얼어 죽어가는 산성 안에서 그렇게 왕과 사대부들은 말 잔치를 벌릴 뿐인데, 심지어 우연찮게 발견된 벤댕이 젓을 어떻게 나누어줘야 할지를 왕과 상의하기도 한다. 

한편, 성안에 사는 대장장이 서날쇠는 왕의 피난 행렬이 당도하기 전에 가족을 단속해 성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김상헌의 요청으로 병장기를 만들고, 쇠바늘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대바늘이란 해결책을 내놓고, 삼남의 군을 모으기 위해 스파이의 길을 걷기도 한다. 유일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자 실천주의자인 서날쇠.

흥미를 끌었던 장면 중 하나는, 방편 없이 청나라 군대가 물러가길 바라는 조선은 모욕적인 청나라 칸(홍타이지)의 서신에 답신을 준비한다. 그러나 역사에 길이 남을 문서에 이름을 올리기 싫은 선비들은 임금에게 똥얘기 가득 담긴 문장을 올려 곤장을 맞고 글을 못 쓰는 상태가 되고, 자결에 가까운 심장마비로 죽음 덕분에 오욕을 피하는 사람이 있고, 미친 척하고 안시성의 예를 들어 문장을 짓는 사람이 있다. 보다 못한 최명길은 청나라를 황극이라 칭하며(하늘의 의미) 군대를 물리라는 간곡한 뜻을 지닌 문장을 쓰는데 조정에선 이것은 문장이 아니라며 다시 한 번 말잔치가 벌어진다. 허나 최명길은 말한다. 내가 쓴 것은 문장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글이 아니고 길이다.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을 나가기 위한 길이 될 것이라 말하며 치욕을 견디는 최명길. 그러나 그 문장은 내지르는 문장을 좋아하는 홍타이지의 심사를 건드려 대포로 응징 받지만, 어쨌든 항복의 성문이 열리는 시간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말잔치 속에 빛나는 사람은 실천하는 사람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이토록 무능했던 왕과 권세가들이 청나라에서 눈을 트고 온 소현세자를 독살했을 것이란 역사를 생각하며 암울했던 한 시대를 생각한다. 

김훈의 전작 <칼의 노래>에 비해 인조를 비아냥거리거나 못난 왕으로 그리지는 않는데, 각자의 심사를 묘사하지 않아도 그 상황에 울고 있고 헛된 말을 오가는 모냥 만으로 충분히 무능함을 알 수 있다. 

김상헌이 죽였던 나루터의 사공, 그 사공의 딸 나루가 산성으로 오는데, 나루와 김상헌을 드라마적으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 절제를 아는 작가의 힘이라 하겠으며, 삼전도의 굴욕 이후 청나라 군대보다 더 생존을 위협했던 왕 일행이 돌아가고 봄을 맞이한 서날쇠와 나루, 나루의 미래를 생각하며 혼자 웃음 짓는 평민의 삶으로 마무리한 결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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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Magazine B) Vol.80 : 몽블랑 (Montblanc) - 국문판 2019.10
B Media Company 지음 / B Media Company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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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몽블랑이라는 브랜드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미국으로 출장과 여행이 잦아진 시대에 만년필을 만들며 시작한 이 회사는 점차 제품군을 늘려 시계와 가죽제품, 가방 등까지 생산하고 명품 브랜드로서의 포지션을 잊지 않는다. 만년필도 시계도 만들 때는 장인의 손길을 여러 번 거친다. 명품을 만드는 것은 검수 과정이라는, 단순하지만 실행하지 어려운 브랜드 철학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몽블랑의 현재를 만날 수 있다.

마이스터스튁149는 몽블랑의 첫 제품으로 클래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산하고 있어 몽블랑을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작가들의 이름을 딴 리미티드 에디션, 2억 원대에 달하는 수집가용 만년필도 생산한다.

펜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은데, 몽블랑이 닙(펜 촉)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언젠가 꼭 소장하고, 쓰고 싶은 만년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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