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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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생활의 언어로 글을 기어가는데 선문답하는 것처럼 담담하다. 우문에 현답하는 사람처럼 삶과 자연의 윤회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준다. 시인은 1980년 광주의 기억과 일본인 어머니를 가진 사람으로의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을 과장되지 않은 말로 사회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정서적으로 전해준다. 평이하다 생각했지만 의외로 필사하고 싶은 시가 많았고, 뒤에 황현산 선생이 달아 놓은 해설이 또 특별하게 읽힌다. 읽기 쉬운 언어로 가장 많은 비밀을 끌어안고 있는 시집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평론가가 말한 특기할 만한 시 외에 나는 <어떤 물음>, <도둑고양이를 위한 변명>, <오래 남는 말>, <국제정치학회 여름 세미나>, <바위>, <서울 지하철 2호선>, <닮다>, <노숙의 집>, <도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영산포 장날>, <인화하지 못한 사진>, <연학이 형 생각>, <안암동에서>, <컵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방법>, <비밀>, <겨울 도서관>, <걸식>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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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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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 김해연은 북간도 용정의 만철에서 일하는 조선인이다. 이데올로기적 각성 없이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남자다. 그는 이정희라는 여자를 만나 연애하고 사랑을 느껴 청혼을 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한 상태다. 어느 날 출근길에 심부름꾼 아이가 편지를 전해준다. 편지는 이정희가 쓴 것이지만, 그 편지를 전해준 사람은 신사였다고 한다. 이정희를 만나야겠다고 사무실을 나선 김해연은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는데, 이정희는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했으며 안나 리라고 불렸던 여자이며 조선공산당의 조직원이라고 한다. 여러 혼란을 겪던 남자는 결국 이정희가 목매달아 죽은 나무를 찾아 자신도 그 죽음을 따라가려 하는데, 자살시도는 실패하고 사진관에 의탁해 살게 된다. 그곳에서 여옥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통영이 고향인 해연은 여옥에게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둘은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한 날, 여옥의 언니 결혼식에 참여했다가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목도하게 되고, 여옥은 총을 맞아 다리를 잃고 해연은 목숨을 부지한다.

어랑촌 유격구에서 삶을 이어가는 해연은 그곳에서 민생단 사건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나에겐 너무도 생소한 민생단 사건. 역사학자 한홍구는 민생단을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의 조선공산당 정권과 김일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꿈을 안고 간도로 떠났던 조선인은 척박한 그 땅을 개척하였으나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이 세워지고, 중국의 이중 핍박에 시달리다가 중국공산당에 편입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국제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혼재해 있었는데, 국제주의자는 모든 인민 해방이 우선이므로 중국 혁명을 완수한 후에 조선혁명을 이루자는 이들이었고, 조선 독립과 조선혁명이 우선이라는 게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이들 중 민족주의자들을 민생단이라 한다. 이들은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는데 중국공산당은 자기들 세력 안에서 커지는 조선 민족주의자들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일제의 토벌에도 간신히 살아 돌아온 민생단을 일제의 첩자라 일컫게 된다. 살아 돌아온 자들은 다시 중국공산당의 핍박을 받게 된다.

복잡했던 민생단 사건을 간도 어랑촌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밤은 노래한다>이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은 일제로부터 살아 돌아온 사람을 중국공산당 내에서 조선인끼리 죽이게 된 순간이 아닌가 싶다. 김해연은 이 사건을 통해 이정희의 과거를 알음알음 알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각성이나 이념의 구호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은 이 가슴 아픈 순간을 사람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여옥. 일제의 총을 맞고 더 이상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연락책도 길잡이가 될 수 없는 여옥이란 여성.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실체를 알지 못했고, 그 운명적 만남이 과연 운명인지 조직의 계획이었는지 의심하게 된 해연과. 항상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그리워하는 식민지 조선의 노예 같은 삶을 사는 조선인들과. 변절자가 되고 한발의 총성으로 뇌수를 흘리며 죽어가는 투쟁가들과. 그들 삶이 비극적으로 그려지며 심금을 울린다. 무엇보다 이념 때문에 구사일생의 상황에서 다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들이 참 아프다.

소설도 참 좋았지만 뒤에 붙은 한홍구 교수의 민생단 사건 개괄이 참 인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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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87
최두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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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분단을 아파한다. 이념으로 아픈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인 삶 속에서 아픔을 함께 느낀다. 그가 호명하는 사람들은 산업화 속에, 육이오와 그 이후의 삶 속에, 광주의 삶 속에, 분단 이후 미군이 주둔하는 엄연한 현실 속에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념을 구호로 외치지 않았으나, 뻘밭에도 길을 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역사는 역사로 동떨어져 있지 않고, 그 원인과 결과로 우리네 삶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한 편 한 편의 시 속에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그의 시가 담담하지만 힘 있게 내 가슴을 치고 가는 이유는 공허한 구호가 아닌 삶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이토록 진실된 증언을 하는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폭력과 정신병의 미쳐 돌아오는 세상 속에 희망을 잃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해서다.

90년에 출판된 책이지만, 온갖 신경증의 감상만 넘쳐나는 어떤 시들과 대비되면서 굳센 언어로 사회를 생각하게 하고 사람의 진실한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 훌륭하고 위대한 시라 감히 말하고 싶다.

소장하고 싶은데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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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창비시선 173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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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에 섬진강변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던 시기의 시집.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시집 안에는 목가적 풍경 안에서 인간의 관계와 욕망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가득하다. 집을 짓고, 여자를 기다리고, 집 같은 시를 쓰며 살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언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어쩌면 너무 어린 나이에 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솔숲을 어느 정도 걸어온 지금, 낙담하고 절망하는 기분을 겪어 본 지금에서야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쫑긋 귀 기울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대 생의 솔숲에서>, <사람들은 왜 모를까>, <생각이 많은 밤>, <세상의 길가>, <푸른 나무>, <노을>이 특히 좋았다. 어떤 시들은 지금 읽기에 다소 투박하고 지나치게 옛된 감성인 것도 있었으나 그런 작은 허물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만큼 다른 시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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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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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는 현직 부장판사의 에세이. 스스로 개인주의자라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하고, 이에 대해 소신 있고 용기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의 근원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하며, 타인의 무언가를 비판하고 침해하게 될 때 그 원하는 것의 출전은 지성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자본주의와 근대적 합리주의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회를 제대로 만들고 나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말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대와 희망, 담담한 낙관성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배울 것이 많은 책이고, 오만하게만 생각했던 판사 직업군에 대해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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