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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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순천 KBS에서 제정한 김승옥문학상을 2019년부터 문학동네에서 주관하게 되어 소설집이 발간되었다. 김승옥은 1960년대 초반 암울하면서도 폭발적인 젊음의 세계를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로 형상화해 단숨에 한국 현대 소설의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한 작가로, 예외적으로 생존 중에 상이 제정되었다.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작품만이 심사위원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7편의 작품이 선정되었고, 작가는 모두 여성이다. 작가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들은 노년의 여성(70대), 전통의 결별과 변화한 세계에서의 연대, 일본과 재일한국인과의 관계라고 감히 요약해 본다.

7편의 작품 모두 훌륭했지만 나는 몇몇 작품에 시선이 머문다. 윤성희의 <어느 밤>은 훔친 킥보드를 타는 할머니라는 도발적인 시작과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서사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된다.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우물에 빠져 죽게 한 것이 틀림없는 주인공이지만, 작가는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그 노골적이지 않은 행간에 감탄하게 된다. 정갈하게 늙고 싶은 바람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고, 가계의 미래에 대한 짐을 짊어진 청년은 쉽사리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 얼음땡의 땡을 해주며 짓누르는 아픔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마지막 장면이 참 아름다웠다. 권여선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천대받던 지주 딸이 파독 간호사로 갔다가 쫓겨나다시피 한국에 돌아와 남은 생을 어딘가에 헌신하는 마리아를 그린다. 마리아의 주변에는 성당의 비슷한 또래 여성들이 있지만 연대할 듯 안타까워하는 듯 마리아를 그리는 주변 인물들은 그러나 언행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 사이에서 마리아는 죽음 이후에도 쓸쓸하고 고귀하다. 김금희의 <마지막 이기성>은 작가 특유의 연애소설 구조를 취하면서도 재일 코리안과 재한 코리안의 인식차, 일본과 한국의 관계 등을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구세대의 유물이 되고 만 투쟁을 덤덤한 가드닝이라는 새로운 연대 방식을 보여 준 것이 감동적이었다.

또, 서로 다른 작품에서 ‘옥수수’가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에서도 등장했던 옥수수인지라 이에 대한 메타포를 생각하게 된다. 남미 전설 중에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옥수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온다.

어떤 작품들에서는 과거 회상 방식의 서술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생각해 보면 많은 단편들이 그런 방식을 취하기는 한다. 각각의 단편들이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시대와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 확장되어 튀어버리는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다.

젊은작가상과 더불어 해마다 주목해 봐야 할 작품집이라는 생각을 한다.

... 가장 강조한 부분은 학생들의 가드닝이 가지고 있는 그 느리고 비전문적이고 헛수고에 가까운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이러한 완고한 아마추어들의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고정된 세계를 뒤흔드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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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야생 소녀 문학동네 시인선 12
윤진화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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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존재를 소환하고, 인식하고, 용기 내게 만드는 시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시는 전사가 되어 투쟁하고 싶게 하지만, 어떤 시들은 사라지고 마는 것들에 대해 깊은 허무를 느끼게 한다. 시집 뒤에 평론가는 자궁과 무덤을 오가며 재탄생을 꿈꾸는 시라고 했지만, 그것은 평론가의 말일뿐, 한 명의 독자로서는 삶에 깊은 회의를 갖게 만든다. 이렇게 스러지고 사라지고 앗아가는 세상에, 그런 투쟁은 무슨 소용이냐는. 


그러다가 마지막 즈음 <초상>이라는 시에서는 섬뜩함을 느낀다. 고인의 살과 뼈와 뇌로 만든 음식을 내어주는 상주가 화자가 된 시. 숱한 역사의 순간들에서 아니, 역사도 아니고 그냥 일상인 줄 알았던 하루 중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그들은 희생양이 되고 열사가 되고 도화선이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죽은 자들은 누군가에겐 팔아 먹힌다. 언론에서 SNS에서 참칭하는 자들에 의해서. 입으로만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들, 입으로만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초상>은 섬뜩할 정도로 그 죽음을 각인시킨다. 


어찌 되었든 시집을 덮고 허무하고 삶을 회의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갖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제목 때문에, 나는 누구인지 세계와 사물과 스스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지 묻게 된다.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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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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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부도덕한 생활지침을 설파하는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처음엔 반어적으로 말하는 줄 알았다. 이를테면,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거짓말을 많이 하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은혜는 잊어라 같은 명제를 두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와 반대급부에 대해 일러주니까. 그런데 몇 장 읽다 보면 이것이 인간 세상의 커다란 역설임을 알 수 있고, 이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1958년에 일본에서 연재된 산문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통상의 행동양식과 그에 대한 작가의 명제가 빛난다. 소설에서는 탐미주의라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다룬 작가이지만, 산문에서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접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여성에 대한 관점과 극우주의자로서의 역사인식이다. 이런 것들을 걸러들을 수 있다면 충분히 참고할 만한 관점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책의 마지막에서 자살을 경계하고 자살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지만 스스로는 몇 년 후 할복자살했다는 것,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 극우가 활개를 치게 되고 자민당이 만들어졌다는 점. 작가도 자신이 적은 글처럼 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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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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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찬란한 순간을 찾고 싶었으나 서운하고 쓸쓸한 삶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지나온 것이 아픈 것만은 아니라는 시인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인다. 삶의 모든 순간이 찬란했다고,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저쪽이 아닌 이쪽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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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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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이 책은, 한동안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웠다. 출판사를 옮겨 재발간 된 것이 여간 반갑지 않다. 각각의 단편에서 화자는 살금살금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끝이려나 싶을 때 급전직하하여 각 이야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한다. 각 소설에는 각자가 숨기고 살아가는 삶의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덤덤하게 끌어안고 가는 사람들 혹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 나만 혼자 알고 있는 것이 타인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마냥 처연하게 시선만 마주치고 서글프게 웃는 사람이 산다. 10편의 단편소설에서 인물들이 감춘 비밀은 분명 삶의 짐이지만 자기 삶의 결정이기에 끌어안고 가는 것이 성숙해 보인다.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이 책의 편집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 흔한 저자의 말, 옮긴이의 말없이 오롯이 작가의 작품만 있을 뿐이고, 마지막 책장을 넘긴 이후에도 급전직하 그 상태로 있게 한다. 담백하지만 그 맛을 휘감고 있는 대단한 무게의 비밀들이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으로 만든다. ‘비정상적’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데, 일관된 특질을 지칭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섬세하고 예민하게 관계와 생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부여된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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