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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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법정 스님이 쓴 산문.

본래무일물에 입각해 무소유와 침묵, 평화, 자비 등에 대한 생각을 썼다.

본래무일물은 만물은 실체가 아니고, 공에 지나지 않으므로 집착해야 할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져주고, 손해 볼 때마다 나는 이 세상을 살기에 적합한 인간이 아닌가.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 마음에 약을 발라주는 것 같은 글이다.

미혹한 인간으로 살면서 느끼는 공허감에 대해서도 답을 준다. 책을 읽고 침묵하며 자신의 마음에서 여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나는 여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여전히 의문이 들기는 한다. 스님의 철학대로 사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서 분투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적합한 행동일까. 아니면, 스님의 말씀대로 유일한 인생을 더 기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살면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스님은 관계 속에 있으라 말했다.

그 조언 먼저 실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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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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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으면서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

사카쓰키 시즈토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다. 신문과 잡지, 뉴스의 기사를 보고 들은 후, 그 사람들이 죽은 장소를 찾아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정 중에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주변에 묻는 것은 세 가지다. 망자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구로부터 사랑받았습니까, 사람들은 망자에게 어떤 것을 고마워합니까.

독자로써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상관없다.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끈질기게 파고들기 때문에 시즈토의 여정을 따라가면 된다. 우발적인 사고,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누군가의 부주의로, 병으로, 스스로 죽은 사람들. 그들이 살아있을 때의 행적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시즈토는 인간을 판단하고 재판할 권리가 자신에게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받았고, 사랑했고, 고마운 일을 했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기억하는 것으로 애도한다고 한다.

사람은 회색 지대에 산다.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언젠가는 찾아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

분량이 꽤 되는 소설이지만 차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시즈토가 애도하는 여정 중에 그의 어머니는 말기 암 환자로서 마지막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봉사하고 좋은 것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아들 시즈토를 기다린다. 어머니 준코가 죽어가는 순간 딸 미시오는 혼전 임신을 하고 생명의 탄생을 기다린다. 죽어가는 어머니와 탄생을 준비하는 딸의 신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불러오는 배, 변비 등으로 고생하는 것은 같다. 탄생을 기쁘게 맞이하고, 삶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는 과정. 그리고 사라진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모든 삶에 대한 애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시즈토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의 죽음에서 그의 삶의 흔적을 알게 되고 그 삶을 기억하며 애도하는 것으로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순간을 소중히, 작은 것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삶의 경중은 없으며 죽은 후에도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것.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고 나누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죽음에 마음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기사는 가십으로 소비되고, 삶과 죽음이 가벼워진 시대에 꼭 읽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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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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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해설서.

실학자로만 알려진 연암 박지원은 혈통으로는 노론 계파의 후손이지만, 자의로 정계 진출을 하지 않았다. 허생전과 호질 등으로 드문드문 절단되어 알려진 <열하일기>는 맥락을 파악하며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을 연구 결과로 해설하고 있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왕이 주도한 반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 그것의 원인으로는 열하일기가 꼽힌다. 당대에 열하일기는 패관잡설이라 저평가되었는데, 이는 ‘사이’에 머무르고자 했던 연암의 정체성과 관련 있어 보인다.

연암은 공식 사절단이 아니라 비공식 사절단으로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연에 따라가게 되고, 중원의 험난한 자연재해를 뚫고 연경(북경)에 도착한다. 건륭제는 몽골의 위협을 방비하기 위해 별궁인 열하로 떠난 뒤였기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연암 일행도 열하로 가게 된다.

그 여정에서 연암은 만주족, 한족, 관리,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필담을 나누거나 관찰하며 견문을 넓히고 이를 세세하게 기록한다. 그것이 열하일기다.

당시 조선 지식인 사회는 인조 이후로 소중화주의와 북벌론에 빠져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민족 자주 자강 노선의 북벌이 뭐가 나쁜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그 좁은 세계관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 물자와 인간이 교류하고, 우열 없이 다양한 세계를 만나지 못한 채 중국 한족을 대신해 인의예지의 좁은 시야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열하일기 이후로 실학사상가들은 북벌이 아닌 북학을 발전시켰기에, 이 기행문의 확장성을 발견한다.

연암은 강과 언덕 사이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중도가 아니며, 어디로든 확장 가능하고 어디로든 가지를 칠 수 있는 길이다. 그가 교류했던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백창수 등 당대의 실학자들과 무인의 면면도 짧게나마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남인 세력의 정약용과 박지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론으로 실었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두 지식인의 면면을 보게 된다. 왕권 강화가 필요했던 정조는 젊은 정약용 등을 중용했고, 그들의 업적 또한 뛰어나지만, 정약용의 권력 중심을 향했던 시선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면이다.

고미숙 선생님은 젊은 연구자의 시선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좁은 지식의 틀을 깨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열하일기> 전문을 읽고 싶어진다. 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을 읽고 싶어진다. 들뢰즈를 읽지 않고서는 지금, 여기의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문체도 특이한 편이다, 연암처럼. 여느 인문서, 대학교재 같지 않고 연암 박지원에 푹 빠져있는 선배가 그 마음을 담아 열정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연암이 문체반정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고미숙 선생님도 기존의 질서에 항변하는 듯 자유롭게 그 지식과 감정을 모두 담아냈다. 교류하고, 변화하고, 영합하지 않으며 틀에 가두지 않는 사상과 포용력과 표현의 책임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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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 - 개정판
닉 혼비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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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울증 엄마를 둔 12살 소년 마커스, 서른 중반에 이르도록 백수이며 미혼이며 쿨한 윌의 성장소설.

마커스는 우울증이 있는 히피 기질의 엄마와 살며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소년이다. 엄마 친구와 소풍을 갔던 날 윌을 만나고, 호수에서 바게뜨 샌드위치를 던져 오리를 죽게 한다. 소풍에서 돌아오니 엄마는 자살 시도 끝에 토사물 옆에 쓰러져 있다. 다행히 엄마는 죽지 않았지만, 이날 마커스는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것,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윌과 가까이 지낸다. 

윌은 독신 육아 여성이 남자에게 훨씬 오픈 마인드라는 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착안해 자신도 아이가 있는 독신 남자라 속이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 모임에 참석해 여자를 꼬신다. 그러다 만나게 되는 마커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이자 수다쟁이 닉 혼비의 인기 소설. 

<하이 피델리티>에 비해서는 읽기가 편했다. 가벼운 듯하지만 외로운 인물들의 내면이 잘 드러나고, 빈정대며 비꼬는 속마음도 수용 가능한 유머로 읽히기 때문이다.

마커스에게는 어린이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줄 어른이 필요했고,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듯한 윌에게는 고독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연결된 삶이 필요했다. 윌이 마커스에게 해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 좋았다.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조언을 해줘서는, 또 매뉴얼대로 처리해서는 마커스가 학교에서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에서 구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외모를 좀 더 그 또래에 맞게 가꿔야 하고, 또래가 관심 있어 하는 커트 코베인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윌이 옆에 있자 마커스는 관계의 폭이 조금 확장되고 그로 인해 성장한다. 

결과적으로 마커스는 이제 학교에서 못된 아이들에게 새로 산 아디다스 운동화를 빼앗겨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가 강요하다시피 한 채식주의와 음악 취향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들은 얽혀있는 삶 속에 있어야 한다고.

영화에서는 보다 또렷하게 표현됐다. 영화 서두에서 “인간은 모두 섬이다.”라고 선언하고 결말에서는 “인간은 모두 연결된 섬이다”라고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대사는 시나리오 작가의 대사다.

혼자 있고 싶고, 고독하고 싶고, 연결되고 싶지 않은데 작가는 윌의 인생을 통해서 허전하고 헛헛한 삶을 그려냈다. 얽혀있는 인간들의 삶 속에서 각자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바라본다. 그러나 내 개인의 바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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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문지 에크리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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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이 깊이 고민한 사랑에 대한 산문집. “사랑을 하고 싶다”라고 했을 때,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로맨스가 주는 설렘을 기대하는 것일까, 사랑 이후 상실의 아픔까지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이런 고민으로 시작된 이 책이 향하는 곳은 ‘나’라는 자아와 사랑함이라는 행위이다.

사랑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오해들, 굳이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방적인 발화와 어긋남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얇은 두께에 쉽게 집어 들었다가 그 생각의 깊이에 압도 당했다.

특히 인상적인 내용은 용서, 용인, 용기에 대한 부분이다. 시인은 말한다. ‘용서’라는 말이 과연 용서하고 싶은 쪽에서 만들어 낸 말일까, 용서받고 싶은 쪽에서 만들어 낸 말일까. 그 의심스러운 정황을 씁쓸하게 생각한다. 용서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깊이 공감했다. 나는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종교는 불완전한 인간이 안정감을 찾기 위해 구축한 허상이라 생각한다. 그 허상 속에 속죄와 용서라는 판타지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믿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내게 상처 준 타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면 깊이에서 신만이 가능한 것, 신이 명령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고민하던 사랑과 용서, 체념 등 다방면을 같이 고민해준 작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섣불리 판단하고 경솔하게 생각하게 될 때,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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