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느와르 M 케이스북 - OCN 드라마
이유진 극본, 실종느와르 M 드라마팀.이한명 엮음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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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좋은 장르물을 만들어내는 이승영 감독. 드라마 2회를 보고 금세 매혹되었다. 그래서 찾아 본 책이다. 감독뿐 아니라 드라마를 쓴 이유진 작가의 노력과 사회에 대한 인식까지 느껴져서 좋았다. 재미있는 드라마 뒤에 그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어떤 이들의 창의적인 도움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었다. 알게 된 내용보다 그런 사실들을 대하는 감독과 작가의 태도 때문에 감동을 받게 된다.

실종느와르 M은 하나의 큰 사건 아래에서 3가지 갈래의 작은 사건들이 뻗어 나가다가 하나의 소실점에서 만나게 된다. 그 만나게 되는 지점에 주인공들의 딜레마가 자리 잡는다.

사건을 다루는 시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솜씨, 사건을 추적하는 재미, 매 순간마다 발생하는 호기심, 진상이 드러났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의 해소와 생각할 과제가 정밀하게 잘 짜인 설계도 같았다. 

인기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작품을 힘 있게 만드는 것은 역시 극본이다.

여타의 대본집과는 다르게 회별 제작 의도까지 기술되어 있고, 그 대본을 바라보는 협업자들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어서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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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1
크리스타 볼프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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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능력을 지녔지만 신 아폴론의 잠자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불신의 저주를 받은 카산드라.

트로이의 패망을 예언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아 결국 트로이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고 아가멤논의 포로가 되어 죽었다. 신화 속 카산드라는 그런 여성이지만, 동독에서 활동했던 작가 크리스타 볼프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카산드라뿐 아니라 트로이 전쟁에 등장했던 대부분의 인물을 재해석했다.

호메로스는 파리스의 심판 이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헬레나를 납치하면서 자존심을 건 영웅들의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그렸다. 문학가의 상상력이다. 그러나 카산드라에서는 다르다. 헬레스폰토스 해협 통행권을 가진 트로이에 그리스의 여러 국가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해협 통행권에 대한 야심을 헬레나 구출로 포장한 것이라 설명한다. 헬레나 이전에 트로이에는 공주가 그리스에 납치된 상태였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책 없이 파리스가 나선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파리스는 트로이로 돌아오는 길에 이집트 왕에게 헬레나를 빼앗겼고, 있지도 않은 헬레나가 있는 것처럼 민중을 기만했다. 카산드라는 신으로부터 예지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기에 관찰했고, 관찰했기에 통찰할 수 있어 정세 판단이 가능했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서술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관점이라 설득이 된다.

한편, 전쟁이 시작되자 남자들의 본성이 드러난다. 영웅으로 그려졌던 그들은 그리스는 물론 트로이의 모든 남자들의 야비하고 비겁한 속성을 드러낸다. 강인했던 아마조네스 전사가 죽자, 몸에 상처를 입었던 아킬레우스는 앙심을 품고 시간하고 능욕한다. 이미 죽은 존재에게까지, 또한 가장 연약한 존재, 중립지역이라 할 수 있는 신전에서 야만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트로이의 남자들은 정치력이 뛰어났던 왕비 헤카베를 정사에서 배제시키고 무능한 왕과 남자들만이 모여 쑥덕 거린다. 왕의 딸을 이용해 아킬레우스를 기만하는 계획이었다. 그 결과 아킬레우스를 죽일 수는 있었으나, 사전에 비밀을 공유하지 못했던 딸은 미쳐버렸고, 전쟁 이후에는 아킬레우스의 추종자들이 그의 무덤에 그녀를 바치겠다며 짐승처럼 끌고 간다.

가부장제의 폭력성과 비합리성, 남성들의 비겁과 야만성, 치졸함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카산드라 역시 자신의 판단과 말을 민중에게 섣불리 말하지 못한다. 그 역시 왕의 딸이며, 가부장제에 속한 이이며, 그 지위 덕분에 사제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갈등하던 카산드라는 모든 야만성을 멈추길 바라며, 여성과 남성은 물론 트로이와 그리스인들이 공존할 수 있는 모두 살 수 있는 제3의 길을 주장한다. 결과는 아버지로부터의 감금이다.

모든 비극을 살아서 지켜봐야 했던 카산드라. 처참할 정도로 적나라한 인간의 비겁과 나약함, 내면의 공포를 지켜봤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포로의 신분으로 능욕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

그녀는 탈출의 기회가 있을 때, 후에 로마를 건국하게 될 사랑하는 아이네이아스가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그 역시 ‘영웅’의 길을 걷게 될 것이고, 그것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전쟁 포로로 죽는 것을 선택한다.

여성의 삶은 역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져 왔다. 그러나 이런 작가들의 작업이 당대의 인물들을 살려내고 재해석함으로써 오늘의 내게 반면교사가 된다.

호기심, 알려는 욕구를 멈추지 말 것. 응시하고 관찰하여 통찰하는 사람이 될 것. 자신의 말을 할 것. 침묵하지 말 것. 비겁한 동조자가 되지 말 것. 야만의 시대에 주눅 들지 말 것. 거의 3,300년 전의 야만성과 현재를 비교해 본다. 과연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전쟁의 위협은 상주하며, 누군가는 전쟁을 부추기고, 전쟁의 위협을 과장하며 기만하려 든다. 외부의 위험은 불합리한 체제의 순종을 내재화한다. 거창하게 전쟁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작금의 대한민국 사법부는 성범죄자와 공범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반성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지향하며 일궈가야 한다.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화자가 고백하고 사색하는 것을 기록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읽는데 속도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편년체 식도 아니거니와 사건에 대해 선명하게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트로이 전쟁과 각 인물에 대한 기본 지식을 연결하며 읽어야 해서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독서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긴가민가하며 읽은 뒤 역자의 해설을 보면 사건의 흐름에 대해선 옳게 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호한 것이 있다면 카산드라와 그녀가 호명한 인물들의 감정선인데, 내가 상상하며 채워나갈 수밖에 없다. 특히 카산드라의 어머니이자 트로이의 현명한 통치자 헤카베, 사제가 되고 싶었으나 카산드라에게 밀리고 아킬레우스의 제물이 되어야 했던 폴릭세네의 감정은 독자의 적극적인 상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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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 개정판
팀 버튼 지음, 임상훈 옮김 / 새터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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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즐기지도 않거니와 이 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선생님의 추천도서 목록에 있어 읽게 되었는데, 첫 몇 장을 넘길 때 당혹감을 느꼈다.

어른을 위한 동화, 메타포가 녹아 있는 짧은 이야기. 그러나 서사라기에는 어딘지 미흡한 구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세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기형을 가진 외형 때문에 주인공들은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고통당하고 죽임 당한다. 그들을 대하는 외부인 심지어 부모까지도 폭력적이다. 나와 다른 모습, 취향을 가진 이에게 나는 어떻게 대하고 사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른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포용하며 사는지 묻는다. 그런데, 그 포용이란 단어마저 시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른 형태, 다른 내용의 삶을 포괄하는 것이 세상이고, 내가 그 세상에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부두 소녀와 응시하는 소녀는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내면이 무척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깊게 감각하고 그 끝에 더 짙은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내면에만 남기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종국에는 개인의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 고통을 잠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비정하고 폭력적인 시선과 행태를 기발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삶은 고통을 건너고 감내하는 길일 것이다. 그것에 항상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극적인 눈물과 헛웃음 나는 아이러니와 한 걸음 물러선 조롱이 있을 수도 있다. 고통의 곁에 다양한 감정과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고통을 건너는 길 역시 다채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굴 소년이 할로윈 데이에 사람으로 변장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가면을 바꿔 쓸 수도 있고 짐짓 타인과 다르지 않은 척해 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위선과 위악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겠다.

고통을 경험하고 견디고 건너는 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품을 수 있다. 세상을 볼 수 있는 만큼의 크기가 나의 크기라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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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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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사숙하는 영역과 범위는 우주만큼이나 넓다.

작고하신 허수경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이 시집이 더욱 그러하다. 모국어를 쓰지 않는 독일에 살았던 시인이 5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생각하고 기록했던 시들이다.

시인은 ‘나’와 ‘당신’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무엇입니까를 물었으며, 시간에 대해, 떠나온 것에 대해, 사이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이 시들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거니와 그저 시인이 고민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나 역시 내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당신’이라 칭하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이 내게 지니는 무게는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여름 속에 서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수 년 전의 여름이 고대 빙하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벌레를 털어버리듯 내가 떠나보낸 것들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얼마나 긴 어둠 속에 있어야 나는, 언어로 집을 짓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같은.

내게 시인들은 시를 통해 해답을 일러주기도 했고, 답 없는 끈기와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내 마음속에서 한 꺼풀 더 아래로 내려가라는 가르침을 주기도 했는데. 시인의 이 시집은 내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틈새와 사이, 극과 극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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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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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대혁명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 그중에서도 인텔리겐챠 계급을 다룬 소설. 문화혁명을 10년 대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인텔리 계층을 다루고 있다.

위화의 <인생>이 농민계층의 중국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대약진 운동의 고통과 실패를 보여준다면, 다이허우잉은 지식인들이 겪은 문화대혁명의 고통을 그려낸다.

작가 자신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부르주아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수정주의자로 낙인찍히고 비난받은 경험이 있다. 격동 속에 무수히 경험하고 관찰했었기에 인간 만상이 핍진하게 그려졌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인물, 회피하는 인물, 패배를 받아들여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는 인물, 사상적으로 뛰어나지 않지만 모략을 만들어 반대자를 위협하는 모습 등.

그러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투쟁, 노선투쟁, 문화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아니다.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보여주고, 인간의 삶은 역사처럼 간략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영혼을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마르크스주의가 휴머니즘과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방관자, 기회주의자, 패배를 경험한 현실주의자, 사상적 기반은 약하고 복지 부동하는 당 고위 인사 등의 부정적 인물조차 안쓰러운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들이 겪은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진실’과 ‘마음 부칠 곳’은 각자 다른 법이다.

이 책의 재미는 긍정적 인물보다 부정적 인물을 관찰하는 데에 있었다.

자신이 상처 준 사람에게 ‘용서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뻔뻔함, 그가 최후에 흘리게 되는 눈물, 잃을 것을 잃고 되찾을 것을 되찾았다고 하는 자오젼후안의 서사는 흥미롭다. 방관자, 배신자, 이기주의자인 자오젼후안은 소설의 시작과 끝을 차지하는데, 이 배치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오젼후안에게는 반성과 심판이 필요했고, 그 이후에는 이런 인물조차 끌어안는 인간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었을지. 휴머니즘을 깊게 고민했던 작가는 이 배치를 통해 더 많은 인간을 끌어 안는 방향을 긍정했다고 본다. 그 인간은 물론, 수용 가능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인공 쑨위에와 허징후는 아물지 않는 상처가 남은 이들임에도 타인에 대한 마음을 닫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지키며 역사와 인민과 관계를 맺고 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잃어봤기에 도전에 응전할 수 있으며, 문화대혁명의 상처로 인해 ‘얼굴이 두꺼워져’ 어떤 모욕도 이겨낼 수 있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마다에 격동이 느껴졌다. 우리 시대는 이런 격동과 치열함을 촌스러운 것이라 조소한다. 그러나 인물들의 철저한 고민과 처절한 경험은, 사회는 물론 역사와 종횡으로 관계를 맺은 개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하다.

쑨위에의 15살 딸 한한은, 왜 우리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역사는 어깨에 짐을 지우는지 한탄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돌리고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오늘보다 나은 미래와 관계할 것이라 소망한다. 이 소설이 중국에서 발표된 것이 1980년. 한한이 성장해 89년 천안문 사태를 맞았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한한이, 부모 세대의 고뇌와 삶을 보며 자기 인식과 생각의 개성을 키워나갔다면 천안문 사태에서 자기만의 입장을 가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곧 한한의 삶이 되고 개인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나도 한한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것, 역사는 물론 나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나만의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들 격동적인 인물들을 보면서 어떤 순간에든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전적으로 내게 있다는 것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된다.

역사의 격동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고민하고 그 결과를 삶으로 증명했던 인간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신영복 선생의 번역이라 더 부드럽게 읽을 수 있었다.

이루어 내려면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돼.

허징후가 쑨위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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