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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두 편의 단편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기 위해 구입했는데, <체스 이야기>가 따라오면서 예기치 못하게 인상적인 소설을 읽게 됐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간혹 이런 즐거움을 준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 같이 수록되어 있어 계획하지 않았으나 재미있고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낯선 여인의 편지>는 지금 관점으로 읽으면 여성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십수 년 간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데 그가 과연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남자였는지, 그 남자가 자신을 기억하고 알아봐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열세 살 때부터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온 여자의 고백이다. 끝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껏해야 수많은 거리의 여자들 중 하나로만 상대하는 남자에게 고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일편단심 순정을 지키며 살다가 아들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에서야 밝히는 그녀의 사랑’(156페이지)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을 섬세하게 서술하고, 부자 남자의 연인으로 살며 아이를 키우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는 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알아봐 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순간의 자존심, 그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화대를 주는 남자에 대한 분노, 긴 시간 순정을 간직하며 살았던 심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짝사랑하는 심정, 그래봤던 경험과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때는 순수한 열정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상이 있었다. 편지를 보낸 그녀는 상호 교류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입장을 굉장히 관대하게 이해한다.
특히, “전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언제라도 자유롭게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134페이지)라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그가 그녀와의 추억을 상기했을 때 책임과 부담이라는 무게로 기억하기보다 자유로운 사랑의 감정으로 그녀를 돌아봐 줄 것을 바란다. 그녀의 기다림은 속박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이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아이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상정한 사랑’에 충실했다.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조각상을 사랑했고, 그 사랑이 깊어 결국 신의 도움으로 인간이 된 자신의 조각상과 사랑을 완성한다. 신화와 소설의 차이점이랄까, 남성과 여성의 사랑의 차이랄까.
가끔 사랑의 진실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다. 이 시대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대일까. 내가 접하는 소식들에는 남녀 사이에 진정한 사랑은 어려운 시대 같은데. 그러나 사랑과 순정, 헌신, 사랑의 숨은 욕망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를 소설이 될 것 같다.
이 단편을 읽어가며 끝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던 주인공 남자(소설가 R)의 결말이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했었는데 급전직하를 느끼진 못했다. 1922년에 발표된 소설이기 때문에 시대적 한계일 수도 있겠다.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그 남자는 미혹한 자신에 대해 반성하거나 통렬히 후회하지 않고 육체 없이도 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정열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짝사랑의 레퍼런스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반면, <체스 이야기>는 기대치 않았는데 흥미롭고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올라가는 작품이었다.
‘뉴욕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배 위에서 닷새간 벌어지는 사건, 즉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와 B박사의 체스 대결 이야기다. ‘체스’라는 상징으로 틀 이야기와 연결되는 내부 이야기의 차원에서는 B박사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데, B박사의 삶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으로, 즉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시기에 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설정하고 있다.’(154페이지)
역자의 설명에 의하면 첸토비치는 히틀러에 비유되고, B박사는 나치 점령 하의 지식인 그룹에 비유된다고 한다. 게슈타포를 중심으로 나치 세력이 저항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고립의 방법, 나치가 그 세력을 확장시켰던 수법을 이야기한다. 그의 ‘“비양심적인 기만 수법”, “천천히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점점 강해져가는 힘으로 압력을 높여가는 전술”로 폭력성을 점점 더 높여 유럽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파멸로 이끌었다고 보는’(156페이지) 츠바이크의 관점이 들어 있다.
그런데 비밀스러운 B박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웅동체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 창작자의 입장이 연상된다. 무엇도 할 수 없는 좁은 방에 갇혀 혼자 머릿속으로 체스를 두며 자신을 분리시키고, 혼자만의 체스 게임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몰두하며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불사르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자신의 모든 열정을 집어넣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더라도, 그것이 3자의 입장에서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인지 좋아할 만한 이야기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이 창작자에게는 필요하다. B박사가 고립된 순간, 책을 훔치던 순간, 체스를 배우며 블라인드 체스를 두는 장면, 분열된 자아고 흑과 백의 말을 움직이는데 최선을 다하는 순간들. 이 모든 장면들이 창작자가 주관으로 작품을 쓰고 객관으로 비판하는 고통의 순간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만 같았다.
“그렇듯 광적인 상황에서는 한 가지 길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새로운 경기들을 만들어내는 거였죠.” 60페이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모든 정상적 상황에서 격리되어 죄 없이 감금된 수감자로서, 수개월 동안 교묘하게 고독으로 고문당하면서 쌓이고 쌓인 분노를 오래전부터 어떤 것에든 터뜨리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64페이지
“제가 관심을 갖고 시도해보려는 건, 오로지 호텔 감방에서 둔 것이 정말 체스였는지 아니면 그게 이미 광기였는지, 당시 제가 위험한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그걸 넘어섰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때늦은 호기심 대문입니다.” 73페이지
B박사는 챔피언과 게임을 하며 다시금 자기 분열과 자기 머릿속 게임으로 들어가 파멸을 초래할 수 있음을 깨닫고 체스를 그만둔다. 딜레탕트(유희)로 즐겼던 체스로 남고 싶어 한 것이다. 이 순간,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파멸을 막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반면, 체스 챔피언은 룰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상대를 교묘히 괴롭히는 방법으로 치졸한 승리를 거머쥐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권위를 치장하는 말을 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아마도 이 소설을 나치 점령하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창작자에게 필요한 열정의 발현, 자기 객관화의 과정, 그 열정을 다스리는 멈춤의 순간을 인상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책에 오점이 있다면, '행성'을 일본식 표현인 '혹성'으로 번역한 것.
전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언제라도 자유롭게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 P134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모든 정상적 상황에서 격리되어 죄 없이 감금된 수감자로서, 수개월 동안 교묘하게 고독으로 고문당하면서 쌓이고 쌓인 분노를 오래전부터 어떤 것에든 터뜨리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 P64
제가 관심을 갖고 시도해보려는 건, 오로지 호텔 감방에서 둔 것이 정말 체스였는지 아니면 그게 이미 광기였는지, 당시 제가 위험한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그걸 넘어섰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때늦은 호기심 대문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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