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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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줄거리

중부 유럽에 위치한 약소국 그랜드 펜윅.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군주제 국가로 와인 생산이 국가 수입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원조를 받길 원한다. 공산주의 국가 혹은 패전국에 경제 원조를 하는 것을 발견, 방법을 모색하다가 전쟁에 지기 위해 미국에 선전포고한다. 범선을 타고 14세기에 머무른 듯한 구식 무기와 갑옷을 걸친 소규모 병력이 뉴욕에 도착해 승전, Q폭탄을 전리품으로 챙겨 고국으로 가져간다. 핵폭탄보다 위력이 더욱 세다는 Q폭탄을 가진 그랜드 펜윅에는 냉전시대 강대국들이 줄을 선다. Q폭탄 처리에 고심하던 그랜드 펜윅은 약소국 연합을 제안하여 세계질서를 재편한다.

감상

아일랜드 출신 작가의 책이기 때문에 기대를 안고 읽었고 발랄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풍자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후반부 Q폭탄 처리 문제와 결말에서는 1953년에 연재된 소설의 한계가 드러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쾌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의 공습경보 훈련을 하는 장면이다. 정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을 국민에게 경고하다가 훈련경보를 발효하고 국민들은 방공호에 숨게 된다. 이 때문에 뉴욕에 상륙한 그랜드 펜윅의 병사들은 전과를 올리게 되는데, 이들의 모습을 본 뉴욕 경찰은 기이한 갑옷 때문에 그랜드 펜윅을 화성 외계인이라 착각한다. 

때마침 이유도 모른 채 지하 방공호에 숨어 있어야 했던 시민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으므로 경찰발 가짜 뉴스를 받아들인다. 화성 외계인이 침공했고, 자신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라 믿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책과 비합리적인 자신들의 상황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가짜 뉴스, 부정확한 정보, 소문을 믿게 되는 메커니즘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강렬하게 남는다.

이 소설이 연재된 것이 1953년이기 때문에 현재 관점에서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약소국 명단에 이스라엘이 포함된다든가 하는. 팔레스타인이 포함돼야 옳지 않은가. 과연 UN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약소국 연합이 해낼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강하게 따라온다. 당시의 미국 정부를 그리는 작가의 시선이 상당히 순진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수많은 전쟁을 만들었던 미국이기에 미정부에 대한 시선은 동의하기 어렵다. 또, 약소국 군주 글로리아나와 승전을 올린 배스컴과의 청혼 장면도 동화 플롯을 따랐다는 점에서 오글거리는 면이 있다. 그마저도 풍자와 유쾌한 상상력을 위한 작가의 의도였겠지 선해하게 된다. 

요즘의 감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말과 논의 과정이지만, 이런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오늘날 같은 소재로 글을 쓴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강대국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논의 과정, 최소한의 인명피해로 승전하는 약소국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지켜보며 약체인 다윗이 그의 꾀로 승리하는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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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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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두 편의 단편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기 위해 구입했는데, <체스 이야기>가 따라오면서 예기치 못하게 인상적인 소설을 읽게 됐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간혹 이런 즐거움을 준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이 같이 수록되어 있어 계획하지 않았으나 재미있고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낯선 여인의 편지>는 지금 관점으로 읽으면 여성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십수 년 간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데 그가 과연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남자였는지, 그 남자가 자신을 기억하고 알아봐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열세 살 때부터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온 여자의 고백이다. 끝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껏해야 수많은 거리의 여자들 중 하나로만 상대하는 남자에게 고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일편단심 순정을 지키며 살다가 아들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에서야 밝히는 그녀의 사랑’(156페이지)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을 섬세하게 서술하고, 부자 남자의 연인으로 살며 아이를 키우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는 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알아봐 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순간의 자존심, 그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화대를 주는 남자에 대한 분노, 긴 시간 순정을 간직하며 살았던 심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짝사랑하는 심정, 그래봤던 경험과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때는 순수한 열정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상이 있었다. 편지를 보낸 그녀는 상호 교류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입장을 굉장히 관대하게 이해한다.

특히, “전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언제라도 자유롭게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134페이지)라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그가 그녀와의 추억을 상기했을 때 책임과 부담이라는 무게로 기억하기보다 자유로운 사랑의 감정으로 그녀를 돌아봐 줄 것을 바란다. 그녀의 기다림은 속박하지 않는 사랑의 감정이 극대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는 아이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상정한 사랑’에 충실했다.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조각상을 사랑했고, 그 사랑이 깊어 결국 신의 도움으로 인간이 된 자신의 조각상과 사랑을 완성한다. 신화와 소설의 차이점이랄까, 남성과 여성의 사랑의 차이랄까.

가끔 사랑의 진실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다. 이 시대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대일까. 내가 접하는 소식들에는 남녀 사이에 진정한 사랑은 어려운 시대 같은데. 그러나 사랑과 순정, 헌신, 사랑의 숨은 욕망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를 소설이 될 것 같다.

이 단편을 읽어가며 끝까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던 주인공 남자(소설가 R)의 결말이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했었는데 급전직하를 느끼진 못했다. 1922년에 발표된 소설이기 때문에 시대적 한계일 수도 있겠다.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그 남자는 미혹한 자신에 대해 반성하거나 통렬히 후회하지 않고 육체 없이도 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정열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짝사랑의 레퍼런스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반면, <체스 이야기>는 기대치 않았는데 흥미롭고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올라가는 작품이었다.

‘뉴욕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배 위에서 닷새간 벌어지는 사건, 즉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와 B박사의 체스 대결 이야기다. ‘체스’라는 상징으로 틀 이야기와 연결되는 내부 이야기의 차원에서는 B박사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데, B박사의 삶을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으로, 즉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시기에 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설정하고 있다.’(154페이지)

역자의 설명에 의하면 첸토비치는 히틀러에 비유되고, B박사는 나치 점령 하의 지식인 그룹에 비유된다고 한다. 게슈타포를 중심으로 나치 세력이 저항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고립의 방법, 나치가 그 세력을 확장시켰던 수법을 이야기한다. 그의 ‘“비양심적인 기만 수법”, “천천히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점점 강해져가는 힘으로 압력을 높여가는 전술”로 폭력성을 점점 더 높여 유럽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파멸로 이끌었다고 보는’(156페이지) 츠바이크의 관점이 들어 있다. 

그런데 비밀스러운 B박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웅동체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 창작자의 입장이 연상된다. 무엇도 할 수 없는 좁은 방에 갇혀 혼자 머릿속으로 체스를 두며 자신을 분리시키고, 혼자만의 체스 게임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몰두하며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불사르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자신의 모든 열정을 집어넣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더라도, 그것이 3자의 입장에서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인지 좋아할 만한 이야기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이 창작자에게는 필요하다. B박사가 고립된 순간, 책을 훔치던 순간, 체스를 배우며 블라인드 체스를 두는 장면, 분열된 자아고 흑과 백의 말을 움직이는데 최선을 다하는 순간들. 이 모든 장면들이 창작자가 주관으로 작품을 쓰고 객관으로 비판하는 고통의 순간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만 같았다. 

“그렇듯 광적인 상황에서는 한 가지 길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새로운 경기들을 만들어내는 거였죠.” 60페이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모든 정상적 상황에서 격리되어 죄 없이 감금된 수감자로서, 수개월 동안 교묘하게 고독으로 고문당하면서 쌓이고 쌓인 분노를 오래전부터 어떤 것에든 터뜨리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64페이지

“제가 관심을 갖고 시도해보려는 건, 오로지 호텔 감방에서 둔 것이 정말 체스였는지 아니면 그게 이미 광기였는지, 당시 제가 위험한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그걸 넘어섰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때늦은 호기심 대문입니다.” 73페이지

B박사는 챔피언과 게임을 하며 다시금 자기 분열과 자기 머릿속 게임으로 들어가 파멸을 초래할 수 있음을 깨닫고 체스를 그만둔다. 딜레탕트(유희)로 즐겼던 체스로 남고 싶어 한 것이다. 이 순간,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파멸을 막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반면, 체스 챔피언은 룰에는 어긋나지 않지만 상대를 교묘히 괴롭히는 방법으로 치졸한 승리를 거머쥐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권위를 치장하는 말을 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아마도 이 소설을 나치 점령하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창작자에게 필요한 열정의 발현, 자기 객관화의 과정, 그 열정을 다스리는 멈춤의 순간을 인상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책에 오점이 있다면, '행성'을 일본식 표현인 '혹성'으로 번역한 것.

전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언제라도 자유롭게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 P134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 모든 정상적 상황에서 격리되어 죄 없이 감금된 수감자로서, 수개월 동안 교묘하게 고독으로 고문당하면서 쌓이고 쌓인 분노를 오래전부터 어떤 것에든 터뜨리고 싶어 했다는 겁니다. - P64

제가 관심을 갖고 시도해보려는 건, 오로지 호텔 감방에서 둔 것이 정말 체스였는지 아니면 그게 이미 광기였는지, 당시 제가 위험한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그걸 넘어섰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때늦은 호기심 대문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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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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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잃은 소년 오스카가 상처를 극복하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9.11 테러에서 아버지를 잃은 오스카는 영리하고 걱정이 많은 소년이다. 혹여 테러의 타깃이 될까 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엄마가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불만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의 화병을 깨뜨리며 ‘Black’이라 씌어있는 편지봉투에 담긴 열쇠를 발견한다. 이후 뉴욕시에 거주하는 모든 Black 씨를 찾아다니기로 한다. 

사건의 발단은 9.11 테러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레스덴 폭격,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자 인터뷰 등을 삽입하며 모든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난다. 작가는 그 사건을 정치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전쟁과 테러가 주는 상처를 세심하게 그려나간다.

주인공 오스카의 엉뚱한 상상력과 그의 여러 시도들(103세 블랙 씨와 친구가 되고, 스티븐 호킹에게 편지를 보내고, 아프리카 탐험가의 조수가 되길 희망한다는 편지를 보내는 등)은 비극적 사건 이후의 삶을 연민과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역자는 이 소설을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 해석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것 같고, 나는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상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타인도 아픔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상처를 회복시켜줄 수는 없지만 꼭 끌어안아주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되는 따뜻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이상한 건 아저씨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난 항상 울고 있단다.” _441페이지


한편,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아주 먼 훗날의 일 일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아끼는 말, 아끼는 감정들이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말한다.

... 오늘을 내가 기다려왔던 날로 만드는 것입니다. _425페이지, 스티븐 호킹의 편지(진짜일까?) 중 


오스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죽음 외에도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에게 해주지 못한 행동이다. 그 빌딩에서 네 차례나 집으로 전화했던 아버지가 자동 응답기에 남겼던 말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얼어붙어 전화를 받지 못했던 오스카는 그날 그 순간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_439페이지


인간 사회는 언제나 난리 법석이었다. 갈등과 투쟁, 반목이 계속되었다. 인류 역사상 평화로웠던 시기는 23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서 보듯, 인류는 항상 전쟁 중이었다. 전쟁을 걸어오는 자가 있으면 응전하고, 항전하며 인류는 죽음에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애쓰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전쟁이란 것은 일부 세력에게만 이득이 될 뿐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 득이 되지 않는다. 상처와 상흔, 고통을 남길 뿐이다.

호전적인 누군가 타자를 응징해야 한다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감정에 휩쓸리기는 쉽단다. 법석을 떠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지.” 

“간단해. 고래고래 마구 소리를 질러대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 중요한 건 뭐예요?” “신뢰감을 주는 것이지. 선량해지는 것.” _415페이지


선량하게 사는 것이 바보 같고 사회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는 요즘,

미국의 젊은 작가가 ‘선량해지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깊은 위로를 받는다. 


소설책 속에는 여러 사진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타이포그라피적 실험들이 담겨있어 신선하다. 마지막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빠르게 넘기다 보면, 문장보다 더욱 선명하게 전달되는 소망을 만난다. 

죽지 말자,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서로 죽이지 말자, 같이 살자는 말이 떠오르는 소설.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었는데, 좋은 소설을 참 잘 각색했다는 생각이다. 원작이 훌륭하면 영화가 훌륭하지 못할 경우도 있는데, 보기 드물게 두 작품 모두 훌륭하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어서 내러티브를 이해하는데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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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작가가 될 수 있어 - 30일 완성 글쓰기 습관 프로젝트
이동영 지음 / 경향BP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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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이자 글쓰기 강의를 하는 이동영이 글쓰기 장벽을 낮춰주는 책이다.

30일간 실천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1일 1챕터로 구성했는데, 한 번에 읽고 내게 필요한 부분을 알맞게 적용하면 좋겠다.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독서량도 적은 사람이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자기 글을 이제 막 쓰려는 사람뿐이 아니다.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쓰고, 자유롭게 발상하는 과정을 거쳐 독자를 염두에 두고 퇴고하고 피드백까지 받는 것을 제시한다. 학교에서부터 배우는 글쓰기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마음 자세를 다르게 한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20분씩 글 쓰는 과제가 있었는데, 수행하기 위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자 내 글을 마구 쓰고 싶어졌다. 목표로 하는 글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내게 필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충족감을 준다.

장기간의 슬럼프, 완벽주의에서 비롯한 공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해서 집어 든 책이다.

쉬운 접근법, 쉬운 실천방법을 알려줘서 용기가 생긴다. 먹물 근성 때문에 어려운 말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도 했다. 후반부는 완전히 새로운 정보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정보라도 주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책을 덮으니 일단 산책을 가고 싶어진다. 나만의 ‘새벽 시간’을 기분 좋게 맞이하리라.

그런데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네...

시작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위대해지려면 시작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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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젠씨, 하차하다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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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생과 작품 모두 흥미로웠던 독서.


야콥 하인은 유년기에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청소년기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보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의 2006년작 <옌젠씨, 하차하다>는 실업문제와 노동정책을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옌젠씨는(성이고,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대학생 때 임시 아르바이트로 구했던 우체부 일을 10년간 계속했다. 그러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때문에 대학생 신분이 아닌 그가 해고된다. 합당한 이유를 설명해 줄 사람도 없고, 그의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는 꿈이 없고, 눈에 띄는 능력을 갖추지고 않았고, 인간관계가 유연하지도 않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그는 실업 급여라도 받기 위해 노동조합(한국의 고용안정센터와 비슷)을 찾아간다. 조합에서 요구하는 재교육과 상담 등은 전혀 실질적 도움이 되지도 않고, 부조리한 구석이 있지만 상담을 계속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옌젠 씨는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되고, 당시 정부에서 변경한 노동정책(소위 ‘하르츠IV’라 불리는 경제 노동정책. 실업수당 지급 기간 단축, 비정규직 고용 규제 완화, 실업부조와 사회부조 축소 등 노동자 보호 정책에서 퇴보했다)을 조근조근 비판한다. 우리 삶은 실체적으로 변화가 없는데, 왜 어떤 통계와 자료, 뉴스들은 경제가 위험하다며 자본가를 대변하는 정책이 확대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결국 옌젠씨는 자신의 요구와 상관없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멀어지고, 확증편향에 빠지고 급기야 세상과 단절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어떤 대목들에서는 옌젠씨를 통해 거울을 보는 듯했고, 세상이 요구하는 보편적 욕망이라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량 실업 시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고용시장은 더욱 불안정할 것이고, 서구 유럽과 다르게 한국은 사회적 부조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런 사회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까에 대한 실마리를 옌젠 씨를 통해 생각해 본다.

불필요한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세상의 시선이 과연 나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는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묻고 더 진중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겠다. 옌젠씨가 TV에서 얻었던 보편적 인간상에서 나는 너무도 멀리 있다. 생각해 보건대, 내가 원하는 것은 말랑말랑한 생각들,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 누구도 설득할 수 있을 개연성, 이를 성취할 수 있는 사고력이다. 그런 점에서 세상의 요구를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겠으나, 그것을 내 외적 조건에 탑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되겠다. 그 사고력을 통해 원하는 것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니까.

이 소설에서 다행이었던 점은 비록 옌젠씨가 세상을 향해 문을 닫고, 문패를 떼어 버렸지만 공동체에서는 여전히 당신을 지켜보겠다고 했다는 점이다. 옌젠씨의 자유와 비주류 인생을 받아주지 않았던 사회이지만,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고꾸라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회의 의지가 느껴졌다.

과연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도 그런 의지를 가져본 적이 있을까?

그 의지를 장착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해서도 개별성을 무시하는 수천 가지 분석 모델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체라는 사실에는 어떤 의혹도 없었다. - P114

우편물들이 와르르 그를 향해 쏟아졌고, 구겨지거나 우편함 바닥에 달라붙은 것도 허다했다. 옌젠 씨는 산책하려던 맘을 고쳐먹고 우편물을 모아든 후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대부분은 곧장 쓰레깃감이었다. 옌젠 씨가 어떻게 자기 돈을 소비할 수 있는지 다양한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들이었으니까. 이런 것들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우선 필요한 것이 전혀 없었고, 둘째 가진 돈이 적었고, 그래서 그는 그의 돈을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지 않았다. - P102

"어째서 당신은 이차, 저는 삼차 수용자에 불과한 뉴스가 우리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실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겁니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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