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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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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일본 소설. 경계인 강상중 교수가 자주 인용하곤 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었다. 1914년 아사히신문에 단편소설로 연재를 시작해, 290여 페이지의 장편소설로 나왔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는 어느 날 해변에서 ‘선생님’을 보고 은근한 관심을 갖게 된다. 삶과 인간과 현실에 거리를 두고 사는 선생님은 비밀을 간직한 인물로 보인다. 삶에 초연한 듯한 선생님과 우정을 키우다가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한다. 예상과 달리 도쿄에서의 ‘나’는 사유와 공부를 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만, 오히려 고향에서는 의무감과 체면과 대학 졸업자로서의 기대를 만족시켜줘야 하는 불편한 환경에 처한다. 그러던 중 ‘선생님’의 유서에 해당하는 편지를 받고 다시 도쿄로 향한 ‘나’는 선생님이 간직했던 비밀을 읽는다.

‘나’는 관찰자처럼 담담하게 선생님의 인생을 서술하고, 소설에 연재했던 길이 때문인지 각 장의 길이가 호흡 빠르게 읽을 수 있게 한다. 한 번 책장을 열면 궁금해서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마지막 선생님의 유서에서 밝혀지는 인간의 비루한 내면과 질투, 시기, 비겁함, 이상과 현실 자아의 거리, 돈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는 악인의 모습 등이 무척 밀도 있게 다뤄진다.

‘선생님’의 숙부와 관계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다. 그렇다, 결백하고 순백하게 살았던 사람은 아직 유혹 받지 않았던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경험 속에 ‘선생님’은 염세적이고 사람을 의심하는 인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유일하게 친구 ‘K’를 신뢰했다. 그런 K가 마지막 선택을 하는 순간으로 이끌었던 ‘선생님’의 선택,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해 예상치 못했던 선택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내에게만은 비밀로 간직하길 바라는 유서에서 ‘선생님’의 거리를 두었으나 지극했던 사랑을 표현한다.

시대가 변해도 유의미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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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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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역사 서술의 역사 르포르타주.

유시민 작가가 들려주는 친절한 역사서의 역사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븐 할둔, 랑케, 마르크스,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에드워드 카,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 다이아몬드, 하라리까지 거의 최초의 역사가로부터 최근의 역사가까지를 망라했다. 개별 역사가가 가지고 있던 사관, 역사가로서의 태도로 인해 그들이 서술한 역사가 어떤 것을 놓쳤는지까지 꼼꼼하고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한 학기 교양수업을 들은 기분이 들 정도인데,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그에게 참 고마워진다. 개별 역사가 자체가 어렵고 난해한 문장을 쓴 경우나 번역이 어렵게 된 경우 등까지 고려해 일반 독자를 위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권의 역사서와 역사학자를 이해하기 위해 갖춰야 될 철학적 인문학적 소양까지 그가 보완해 준다. 어떤 지식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전파해주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쓴 역사서에 대한 르포르타주는 패키지여행에 정도에 해당하니 더 깊은 맛을 느끼고 싶다면 개별 서적을 읽어 자유여행에 도전해 보라는 따뜻하고 겸손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역사관 뿐만 아니라 개별 사관으로서의 인물들에게도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인간으로서의 사마천과 토인비가 제시한 시각, 헌팅턴과 다이아몬드가 제시한 사관이었다. 이들 각각의 이론을 심도 있게 살펴보면서 나만의 시각을 갖출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되었고, 또한 어떤 권력자가 역사에 획일화된 편찬을 꾀한다면 그것을 왜 반대하는지 이론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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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1 - 박재범 대본집
박재범 지음 / 비단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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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방송된 드라마 김과장의 대본집. 2017년 KBS 드라마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국정 농단 세력과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시대와 맞물려 성공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하긴, 지금 방송된다 해도 부패와 기업 비리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상황에 긴 시간을 두고 소환될 드라마다. 소시민 김과장, 정직하게 일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김과장은 삥땅 쳐서 덴마크로 뜨는 게 목표인 사람이다. 덴마크로 뜨기 위해 10억을 삥땅쳐야 하는데, 목표액에 못 미친 실적 때문에 TQ 리테일에 입사한다. 분식회계 뒤처리를 맡기기 위해 김과장이 필요했던 악의 무리 쪽에서는 삥땅 전문가 김과장을 채용했고.

정의감이 있는 비현실적 인물이 아닌 김과장은 현실감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지만 얼떨결에 의인이 되고 억울하게 당하는 건 싫어서 회사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하나씩 타개해 나간다. 그의 행동 동기는 결코 정의감이 아니며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되고, 방식도 으리으리한 것이 아니라 개김과 깡, 삥땅의 세계의 유능함을 바탕으로 처리한다. 그것이 웃음을 유발하고 통쾌함을 선사한다. 경리부 동료들을 통해서는 연민을 느끼게 하고, 김과장을 통해서는 통쾌함을 선사하는 방식, 악당들에게선 비릿한 현실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 20부작이기 때문에 대본의 분량이 많은데, 맛깔나는 말의 힘, 유머, 대체로 감정이입이 되는 추부장을 비롯한 경리부 직원들 그리고 그들이 이겨내려는 불의로 인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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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해변의 길손 - 1988년 제1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한승원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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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인 임기섭은 평상과 다름없이 한심스러운 푸념을 늘어놓고 출근한다. 버스를 놓치면 지각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가던 길에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남자들에게 납치되듯 어딘가로 옮겨져 13시간 구류된다. 자술서 한 장을 작성한 후 끌려간 붉은 방, 그곳에서 만나게 된 고문 기술자 최달식. 사상범을 일주일 간 집에 재워줬다는 이유로 자백을 강요당하며 최달식에게 고문을 당한다. 선연한 핏빛의 그 방에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생각을 이어간다.

최달식은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가 최고의 적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유진영이 수복한 고향에 돌아와 빨갱이 둘을 처형하던 아버지의 모습, 그럼에도 온 집안의 철천지 원수는 빨갱이라고 천명한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결국 철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 누추한 마지막 모습에서 최달식도 빨갱이를 인생 최대의 적으로 받아들인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자신은 대학에도 가고 원하던 은행장이 되었을 텐데.

임기섭은 군대에서 발목을 다쳤던 자신을 살뜰하게 챙겨줬던 지인의 부탁으로 수배범을 며칠 집에 재워준 것이 전부인데, 다만 월북한 큰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질까 두려웠을 뿐이다. 고문당하는 숨 막히는 순간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외면했던 사람들은 지하의 어느 곳에서 이렇게 고문당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도 자신의 실종을 기억하지도 관심하지도 않을 것이며 오로지 가족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최달식이 원하는 대로 자술서를 작성했을 덕분이겠지만 끌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영문도 모른 채 풀려난 그의 가슴에는 깊은 분노감이 남는다.

최달식은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는 순간에도 노망든 그의 모친을 수용소 같은 기도원에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과 가족을 염려하고, 심방 온 목사의 인도로 기도에 들며 안식을 찾기를 기대한다. 임기섭을 풀어주고 그는 깊은 허탈감에 빠지는데, 붉은 방 안에서 신을 향해 기도하며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영화 <박하사탕>처럼 고문기술자의 입장을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다. 선연한 핏빛의 그 방에 마주한 둘. 아무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이념 갈등이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고 망가뜨리고 싶은 욕망과 이유도 없이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 평범한 사람의 자각이 있다. 연대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으면 관심 갖지 않으면 개인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각인을 준다. 붉은 방에서 풀려난 임기섭은 아파트 9층 집을 바라보지만,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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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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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덮고 간기면을 보면서 놀랐다. 2013년에 초판 1쇄를 찍었는데 2014년에 11쇄를 찍었다. 내가 읽은 책은 초판 11쇄다. 시인이 인기가 많았던 것인지, 한 권의 시집을 이렇게 여러 번 찍었다니 놀랍다.

최근에 함민복 시인의 시집을 서너 권 읽었는데, 이 시집은 예전의 시보다 더 현실로 내려와 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담담하게 현실을 보는 시선과 분노를 토해내는 울분도 느껴졌다. 대체로 동의하는 감정이다. 어쩌면 이 책이 이토록 많은 쇄를 인쇄할 수 있었던 것은 시 「이가탄」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씻고 뜯고 즐기고’ 시구에서는 나도 모르게 치가 떨렸다.

이 책에서 마음을 두드렸던 시는「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나침반」, 「폐타이어3」, 「양팔저울」, 「안개」였다. 어떤 시는 시어이기 보다 시로 된 칼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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