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걸어야지. 미친 소리를 하면서라도 걸어야지, 집으로 가야지. 레지던스에서 우리집까지는 얼마나 멀까. 집에서 이런 걸 잊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쪼그리고 앉아 턱턱턱, 구덩이를 파는 세실리아를, 밤의 골목을 옮겨다니며 이미 버려진 것들을 별처럼 줍는 세실리아를, 누군가에게 엉겨붙고 싶지만 가장 저점의 온도에서도 그러지못하고 홀로 동결해갔을 세실리아를, 나는 별안간 모든 게 수치스러워서 얼굴을 가리며 걷다가, 소리치며 걷다가, 노래를 하며 걸었다. - P97

그랬구나,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울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울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찬호가 내 어깨를 흔들면서 왜 그래, 왜, 하고 물었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파고 또 파고 들어가서 어디까지 파들어가고 싶었을까. 그곳은 어떤 고통의 바닥, 말로도 이미지로도 전할 수 없고 오직 행위로만 드러낼 수 있는 상처들이 엉겨 있는 바닥이겠지. 여기가 바닥인가 싶다가도 또다시 바닥이 열리는, 그렇게 만화경처럼 계속열리는 바닥이겠지. - P100

삶에는 파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야 한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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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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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엄마들이란 슬프고 미련 맞은 족속들이다. - P320

깔끔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어떤 일이 칼로 자른 무처럼 깨끗한 시작과 결말을 갖는 걸 본 적이 없다. 낮과 밤은 분명 구분할 수 있지만, 낮이 밤이 되는 순간을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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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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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상처는 위로가 힘이 되지만, 정말 지독한 상처는 남들이 아는 척만 해도 고통이 된다.

난실의 얼굴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을 갖게 된 슬픔,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을 가져버린 슬픔. - P130

불행은그렇게 일상을 무너뜨린다. 아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불행일지도. - P179

아드레날린이 퐁퐁 솟구쳤는지 공격적이 된 개미는 사방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무너뜨린 원수를 찾느라 바쁘다. 그렇다고 당할 내가 아니다. 멀찌감치 서서 빨빨거리는 개미들을 유유히 내려다봤다. 저들은 죽을 때까지 나란 존재를 모르겠지. 자신들의 삶을 일시에 무너뜨린 이 거대한 존재를, 목적도 악의도없이 나는 개미의 세상을 무너뜨렸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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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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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P245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 P171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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