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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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미술관
#이진민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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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언니'랑
볕 좋은 가을 평일 낮에 미술관에 놀러간 기분이다.
언니는 미술관에서 조곤조곤 작품과 작가와 얽힌 미술사적 이야기도 해주고,
전시를 보고 나와서는 원목 가구가 깔끔하게 채워진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각자 마시며
고민 상담도 꼼꼼히 들어준다.
카페에서 나와서는 짭쪼롬한 국물 요리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마시며
가게 한켠에서 나오는 티비 뉴스를 보고 함께 얼굴을 붉힌다.
책 한 권으로 이렇게 의미 있는 가을날을 보낼 수 있다.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문장들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하루종일 함께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
동생들에게, 딸들에게.
이런 언니, 이런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언니네 미술관>은 동료 여성들, 즉 세상의 딸들에게 건네고 싶은말을 담은 책입니다.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은 그대로 남성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약 절반씩을 차지하며 함께 걷고 있으니까요.
5p

그냥, 몸을 쓰는 일이 낯설었다. 좁은 공간에서 틀어박혀 조용히 책 읽고 작은 것들을 조물조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어른들은 얌전하다며 칭찬했다. 내 옆구리살은 그런 달콤한 칭찬을 먹고 몽글몽글 불어났다. 팽창하는 옆구리와는 반대로 나의 세계는 작게 쪼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잘 몰랐다. 몸을 움츠리고 어딘가에 가만히 놓인 여자아이들이 얌전하다며 칭찬을 받는 동안, 남자아이들은 넓은 운동장이든 좁은 골목길이든 공간을 점거할 권리를 누렸고 거기서 몸과 마음을 한껏 뻗어보고 있다는 사실도. 그걸 보고 '쟤네들은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하네'라고 생각했던 어린 나의 순진함이 안쓰럽다.
23p

산다는 것은 동사다, 어딘가에 가만히 놓여 있는 명사가 아니라, 걷고 달리고 고꾸라져 넘어지고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서서 발을 내딛는. 그렇다면 이렇게나 무수한 동사로 이루어진 삶을 사는데 어째서 근육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일까. 딸들에게 울퉁불퉁한 근육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너희는 가만히 명사로 살아가라는 얘기다. 나는 세상의 딸들이 몸을 쓰고 움직이며, 휘두르고 걷어차며, 내뻗고 달려가며, 삶의 희열을 느끼기를 바란다. 한껏 최선을 다해 다양한 동사로 살아보기 바란다.
43p

마귀라는 것은 그저 삿된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 받아야 할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마귀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성별을 불문하고 우리 마음속에는 삿된 것들이 찰랑거리는 항아리가 하나쯤 들어 있다. 거기에 든 걸 얼마나 자주 흘리는가의 문제지, 완벽하게 성수만 담긴 금빛 항아리는 없다. 알브레흐트 뒤러의 1514년 작 <멜랑콜리아 1>이라는 작품 속에는 여성인 듯하면서도 남성인 듯한 인물이 천사의 날개를 단 채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성적이기도 남성적이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상대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을 때, 그 손가락으로 내 안의 괴물을 먼저 더듬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녀를 닮은 수많은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슈투크의 그림 속 눈동자를 떠올리면 좋겠다.
마녀라는 단어는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대명사다. 나는 천사보다 마녀라는 단어가 더 사랑스럽다. 그 안에는 눈물과 멍 자국도 있지만 아름다운 불꽃이 들어 있다. 세상이 나를 부당하게 대할 때, 너를 당치 않은 이름으로 부를 때, 우리를 어처구니없게 만들 때, 그 작은 불꽃들이 꺼지지 않고 아름답게 타오르기를 응원한다.
82~83p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를 읽기 전까지는 나는 기쁨의 차가운 이면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시인은 우리가 가난한 할머니에게서 귤값을 깎을 때 느끼는 감정이 기쁨이라는 잔인한 사실을 전한다. 기쁨은 따뜻하고 빛나는 감정일 것 같지만 의외로 차갑고 어두운 면이 있다. 반면에 슬픔은 인간의 감정 가운데 타인에게 가장 무해한 감정이다. 아픈 사람들 곁에 늘 맑게 자리한다. 쓸데없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늘 조용히 따라다니며 세상을 어루만지는 감정이다.
133p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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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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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간의사
#유수연
#믹스커피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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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의식해보지 않은 분야의 관점으로 살펴보니
이미 본 영화들은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기했고,
아직 안 본 영화는 이미 본 영화처럼 애착이 생겼다.

그러려니 하고 봤던 병증들, 그 기원, 신화까지 거슬러 톺아보다 보니
인물에 새로운 드라마가 덧씌워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운디네의 저주'와 '델포이 신전'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신화와 이야기, 이야기와 사실의 관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몰랐던 영화 중 몇 편을 골라 담아두었다.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감상하는 재미가 톡톡할 것 같다😋

🔖
프랑스 작가 장 지로두는 푸케 이야기를 바탕으로 1939년 <운디네>라는 연극을 만듭니다. 이 연극에서 운디네가 내린 저주를 좜 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극 속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연인 한스에게 이렇게 저주를 내립니다.
"당신이 떠난 뒤로 나는 내 몸이 본래 알아서 할 수 있던 일을 억지로 해야만 했습니다. 눈에게 보도록 명령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오감, 30개의 근육, 심지어 뼈까지... 한순간이라도 경계를 늦추면 듣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저절로 움직여지는 몸의 모든 기능이 상실됨을 표현한 것이죠. 이후에 다른 작품들에서도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2009년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던 사이먼 마워의 [유리의 방]에서는 이런 묘사가 나옵니다.
"당신은 깨어 있는 모든 호흡으로 나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했고 나는 그 맹세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숨을 쉬겠지만 잠이 들면 호흡이 멈춥니다."
일련의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운디네의 저주는 '잠들었을 때, 숨쉬기 힘든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하면 깨어 있을 때도 숨 쉬기 어렵고요. 이 전설 속 내용에서 세버링하우스와 미첼은 영감을 얻습니다. 1962년부터 이와 비슷한 증상을 지닌 환자들에게 '운디네의 저주' 또는 '운디네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27~30p

여러 학자들은 델포이 신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했습니다. 사실 신화 속의 다른 예언자들은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예언을 잘 했으니까요. 피티아가 내려주는 신탁의 신비를 풀기 위해 신전 바닥의 바위틈에서 올라오는 그 증기의 성분이 에틸렌가스, 메탄가스, 이산화탄소 또는 황화수소일 것이라는 다양한 의견들이 거론되었습니다.
이러한 의견들 중에서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피티아 신탁의 근원은 '에틸렌 가스 흡입에 의한 신경 독성 증상'이라고 생각됩니다.
2001년 델포이 신전 유적 근처에 있는 케르나 샘물로 성분 분석을 해보니 에틸렌이 검출되었습니다. 현재에는 비교적 농도가 옅은 편이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가스를 들이마시면 피티아에게 환각과 발작을 일으킬 만큼 농도가 높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플루타르코스가 묘사했던 신탁 중 피티아의 모습은 실제 고농도의 에틸렌 가스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도 흡사합니다.
96~97p

한센병에 대한 관념은 서양 역사에서도 그다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균인 마이코박테리아 계통의 DNA, 정확히는 결핵균은 1만 7천 년 전에 영구 동토에 묻혔던 들소의 뼈에서도 발견된 바가 있습니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환자들의 모습은 이걸집트, 그리스, 로마의 기록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중세 시대에 한센병이 유럽으로 퍼지면서 그에 의한 비극이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중심의 사회였던 중세에 한센병 환자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병에 걸렸다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미 현세에서 연옥의 고통을 견디고 있기에 환자들이 사망하면 바로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144~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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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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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즐거움에관하여
#윌리엄해즐릿
#아티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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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
죽음의 공포
질투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
학자들의 무지

어느 것 하나 유쾌한 것에 대해 유쾌하지 않은 태도로 말하는데도
그는 밉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유쾌함을 솔직하게 표출함으로써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다.

특히 죽음과 독서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 읽히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는 태도에서
유약하면서도 강인한 성정이 드러나 재미있기도 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질에 골몰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
인간의 본성은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반감들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혐오할 게 없으면 생각과 행동의 원천마저 잃어버릴 것 같다. 삐걱거리는 이해관계, 제멋대로인 열정으로 계속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삶은 고인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운수에 생기는 흰 줄은 그 주위가 어두울수록 더 밝아진다(또는 잘 드러난다). 무지개의 모야은 배경에 구름이 있어야 선명하다. 그 감정은 교만일까? 시기일까? 대비의 효력일까? 약점일까, 악의일까? 인간에게는 악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쁜 짓을 해도 운 좋게 생각되는 비뚤어진 쾌감을 얻는다. 나쁜 짓은 변함없는 만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순수한 선에 금방 싫증을 내고 변화와 활기를 원한다. 고통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며, 이 맛은 물리지 안흔다. 사랑은 조금만 탐닉해도 무관심이나 역겨움으로 변한다. 혐오만이 죽지 않는다.
38~39p

우리는 개인 생활에서 득세하는 위선과 노예 근성, 이기심, 후안무치와 충돌할 때 겸양은 위축되고 가치가 짓밟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장미꽃 같은 정숙한 여자가 얼마나 자주 매춘부로 만들어지는가! 진정한 열정이 성공할 가망이 있을까? 그 성공은 확실하게 지속될까? 나처럼 이 모든 것을 보고, 인생의 직물을 풀어 비열함과 악의, 비겁함, 감정의 결핍, 이해의 결핍, 타인에 대한 무관심, 자신에 대한 무지라는 다양한 실로 구분하고, 관습이 모든 우수성을 압도하고 악행에 길을 내주는 것을 보고서, 타인을 내 관점에서 평가하되 잘못해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품은 희망이 와오되었어도, 우정에 속는 얼간이이자 사랑에 우롱당하는 바보인 내가 가장 의지하던 것에 낙담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혐오하고 경멸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세상을 충분히 혐오하고 경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59~60p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아무도 이 생각에는 연민이나 유감이나 반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태어나기 전은 우리에게 휴가 기간이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예복이나 누더기옷 차림으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야유를 받기도 하고 갈채를 받기도 하는 이 인생의 무대로 호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해가 없이 안전했다. 우리는 꺠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수만 년 동안 잠을 잤다. 너무나 부드럽고 고운 흙에 감싸여, 갓난아이보다 더 깊고 고요한 잠에 빠진 채, 아직 생명체로 발달하기 전의 상태에서 근심걱정 없이 평온하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이제 찰나의 삶을 안달복달하며 열띠게 산 뒤, 헛된 희망과 하찮은 두려움으로 점철된 삶을 산 뒤, 다시 마지막 편안한 잠에 빠지고 삶이라는 불온했던 꿈을 잊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다니!
65p

내게 비밀을 말하는 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짓이다. 글로 인쇄되어 나올 테니까. 나는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을 내 글에 주목하게 하는 건 내게 굉장히 큰 유혹이다.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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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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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어떻게쓸것인가
#김창석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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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생각에서 명확한 글이 나온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생각은 우선 완성한 뒤에야 비로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명확하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명확한 사고가 완성되는 것"이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처음에는 뚜렷하지 않았던 생각이 글을 쓰면서 분명해지거나, 처음 쓸 떄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이 글을 쓰는 도중에 새록새록 생겨나는 순간을 말이다. 그것은 문자와 사고가 일으키는 변증법적 화학 작용이다. 비관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사려 깊은 글쓰기는 서로를 채찍질하면서 우리의 두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
25p

시각이나 접근법만 달리해도 새로워지는 게 콘텐츠의 세계다. 언론인이라면 글을 쓸 때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 글만이 줄 수 있는 걸 항상 생각해야 한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움이 바로 나의 브랜드를 형성한다.
실사구사, 자연스러움, 솔직함, 설득력, 개성을 지닌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정확, 구체, 명확, 압축, 간결, 객관, 응집, 일관 등은 저널리스트들이 추구하는 문장의 기본 원칙들이기도 하다.
39p

3종 철인 경기를 해도 메모 한 장 남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10킬로미터 단축 마라톤을 뛰고도 책을 내는 사람이 있다. 자기 경험을 작문에 제대로 활용하면 여러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단 글쓴이도 쓰기 편하고, 읽는 사람도 쉽게 수용할 수 있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남의 인생을 몰래 들여다본다는 느낌이 주는 긴장감도 글의 주목도를 높인다. 경험을 소개하는 글이 성공하려면 필요한 게 있다. 개별자의 경험에 담긴 보편적인 진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생각의 깊이나 다양성이 남다르다는 걸 드러낼 수 있다.
3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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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을 잘 써야 하는 이유,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명확한 어조로, 구체적으로 소개해준다.

오랜 시간 동안 취재 기자로 일한 저자 답게
저널리즘과 논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생활 속의 글쓰기-
학교와 회사를 아울러 모든 글쓰기에 적용할 수 있는 뼈대이기 때문에
금방 흥미를 붙이게 된다.

글쓰는 행위 자체를 숭고하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
그때 가졌던 마음과 생각을 상기하고 정리할 수 있는 책이라
책상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손에 잡힐 때마다 돌이켜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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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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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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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모국어
#권여선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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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인데,
술보다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작가는 머리글에서 이유를 밝힌다.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내고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들이
작가가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충고하고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앞으로 당분간은 술이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소설을 쓰겠다고 술김에 다짐'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래서 그다음 소설을 쓰면서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붙은 제목을 지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 내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였다.'

그래서 작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 먹은 음식들에 대한 글을 읽으며-
술 자가 붙어 있더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소주병과 작은 잔이
내 머릿속 작가의 상 위에 기본으로 올라가 있다.

구수하고 매큼하고 자극적이고 슴슴한 음식들이
물 흐르듯 유려한 문체로 그려지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따라 해먹고 싶은 음식들도 많다.
9월이 가기 전에 무조림은 꼭 해먹어야지😋

🔖
다만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내가 혼자 와인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은 주로 순댓국집 단골인 늙은 남자들의 것이다. 때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괘씸함에서 그들은 나를 흘끔거린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 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요절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반세기 가깝게 입맛을 키우고 넓혀온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니까.
26p

"어떡해? 김밥을 안 썰고 그냥 가져왔어."
그러자 그 친구가 태연하게 말했다.
"일부러 그냥 달라고 했어.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있어서."
우리는 그 친구 아버님께 술을 한 잔 올리고 굽은 소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머슴들처럼 한 손에는 막걸리통을, 다른 손에는 통김밥을 들고 마시고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먹으니까 더 맛있지 않냐고 그 친구가 물었는데 정말 그랬다. 손에 쥐고 커다랗고 베물어 먹는 김밥은 더 풍성하고 야생적인 맛이 났다. 다만 앞니가 심하게 부정교합인 한 친구만은 김밥을 어금니로 물어 뜯느라 매우 흉하고 정신 사나운 꼴을 보였다.
그때 나는 그 숙모를 생각했고, 예쁘고 늘씬한 여성들은 모두 김밥을 통으로 먹는가 의아해했다. 그 친구와 나는 몇 가지 일로 사이가 틀어져 이제는 서로 만나지 않게 되었는데, 그 후 어느날 나는 다시금 의아해졌다. 나는 김밥을 통으로 먹는 여자들과는 인연이 끊기는 운명인가.
45~47p

가끔 견딜 수 없이 어떤 국물이 먹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무언가가 몹시 먹고 싶을 때 '목에서 손이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럴 때 내 목에서는 커다란 국자가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당장 그 국물을, 바로 그 국물을, 다른 국물이 아닌 바로 그 국물의 첫맛을 커다란 국자로 퍼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열광적으로 그리워하는 국물 중 하나가 감자탕이다.
162p

술과 음식이 개인 권여선과 작가 권여선한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술과 음식'이라고 하면 안 되고 '술과 안주'라고 해야 합니다. 저에게 그 둘은 달라붙어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데, 그 둘에게 제가 또 들러붙어 삼위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발생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술에 약간 중독돼 있어 위험하고, 작가로서도 술 먹고 깨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려 역시 위험합니다. 하지만 평생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며 살고 싶습니다. 위험은 언제나 의미를 낳기 때문입니다."
230p

※ 이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서평단 활동의 일원으로,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hanibook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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