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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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이 되어봐, 단 하루만이라도. -p.13​

루시는 불행했다. 여러 이유로.

그녀가 떠나온 고향은 어린 소녀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국의 암울한 역사는 여전히 삶을 가난하게 했고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가 더뎠다. 당시 미국의 이민정책이 없었다면 그녀 역시 고향땅에서 매를 맞거나 목이 베이거나 몸을 팔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죽하면 여자 유다로 낙인찍고 마찰이 일 때마다 증오와 분노와 경멸로 상대했을까.

열아홉, 목덜미를 옥죄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구명보트가 되어준 곳은 미국 상류층의 부엌에 딸린 작은방이다. 그녀는 친절한 미국인 부부와 사랑스러운 네 아이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오히려 지우고 싶던 고향땅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의 삶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었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지? -p.21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p.26

어떻게 하면 그래요? -p.37​

이곳은 루시가 지금껏 경험한 세상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곳이다. 피정복자와 점령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느끼고 흘리는 눈물의 맛은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절대 맛볼 수 없는 차원의 것들이다.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과 풍경을 대하는 태도와 아낌없는 친절과 진심 어린 위안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랐다.

루시는 고향에 남겨진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몇 통의 거짓 안부를 띄운다. 엄마가 전하는 고향의 소식은 그녀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구질구질한 공포는 오래도록 쌓여 온 애증에 증오심만 키울 뿐이다. 결국 그녀는 차단하는 쪽을 택한다. 눈 덮인 세상의 부드러움을 견디고 싶었다. 굉장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 라는 머라이어의 감정에 언젠가는 동조할 수 있는 처지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꽁꽁 봉투를 봉했으리라.

내게 머라이어는 엄마 같았다. -p.89 엄마는 떨쳐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머라이어와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던 엄마의 모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지 않은가. 엄마와의 닫힌 문 대신 또 다른 문이 되어준 머라이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긍정의 기운이 루시에게 옮아감을 보았다.

넌 정말 화가 많은 애구나. 그렇지? 그녀의 화는 자격지심에서 오는 빈정거림이 아니었다. 불평등한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단지 어렸을 뿐이었다. 루시는 새로운 사람과의 첫 대면에서 상대가 내뱉는 첫마디에 예민하다. 페기와 휴는 좋았지만 다이나는 싫었다. 그뿐이다. 머라이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제는 이해하고 진실과 허위를 구별할 줄도 안다. 루이스와 머라이어 사이에 균열이 일고 산산조각이 나는 과정을 보며 삶의 기복의 당연함도 깨닫는다.

하루키 데뷔작에 등장하는 쥐라는 인물도 그렇게 낯선 세상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살면서 익숙해진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일 아닐까?"라는 휴의 말까지 곱씹어 보니 이것은 루시의 입장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루시는 삶을 담는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모습들을 담는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즐거움. 그건 치유다.

멀찍이서 들여다보면 루시는 이제 겨우 스무해를 살았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성장기가 차지하는 비중의 중요성을 알기에 루시의 화에 공감이 된다. 태어나기전부터 성가신 존재였고 태어나서는 귀찮은 존재에게 지속적으로 의지하는 엄마를 보며 같은 여자지만 그점은 참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마지막 돈까지 탈탈 털어 인연을 끊고 싶어했을 루시가 어찌나 안스럽고 외로워보이던지.

다른 건 몰라도 엄마를 보며 보고 배운 교훈의 효과는 확실했다. 남자를 쉽게 믿지 않은 건 박수! ㅎ 스무 살 루시의 독립기는 이제 시작이다. 노트에 적은 문장을 보며 다시 한번 사랑과 증오가 나란히 공존함을 보았다. 혀의 맛이 아닌 오로지 감각으로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마침내 난 여전히 두렵긴 해도 숲속을 걷는 일에 아주 익숙해져서 혼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숲에 근사한 면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금씩 확장해가는 내 세계에 그렇게 또 하나를 덧붙였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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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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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뜬금없이 사달라고 요청한 책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거미 그림의 강렬한 표지에 이런 걸 읽겠다고? 했으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이라 바로 구매해 주었다. 물론 딸아이는 읽다가 중단한 상태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니까. 2월 9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나일 강의 죽음>을 운 좋게 책으로 먼저 만나보게 되었다. 미스터리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잡으면 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애거시 크리스티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다. 책의 두께만 보면 이틀 정도 걸리지 않을까 했으나 몇 시간에 걸쳐 완독이 가능했다. 그만큼 잘 읽힌다. 아니 읽힐 수밖에 없다. 범인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신은 어쩜 그리도 불공평한지. 한 사람에게 몰빵하는 건 아니지 않나.ㅎ 상속녀 리넷 리지웨이는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행운녀였다. 영국에서 제일 돈이 많은 여자이자 아름답고 몸매까지 완벽한 여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녀 주위에는 그녀를 질투와 시기 혹은 원망과 분노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눈부신 미모를 무기로 그녀의 친구인 자클린의 약혼자마저 빼앗게 된다. 떡 벌어진 어깨, 햇볕에 그을린 얼굴 짙푸를 눈, 순수한 미소를 지닌 사이먼 도일을.

누가 봐도 행복한 선남선녀. 그들은 재력가답게 이집트로 긴 신혼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나일 강을 따라 호화로운 유람선에 몸을 싣지만 그들은 내내 불안하다. 리넷의 친구이자 약혼자의 전 여친이었던 자클린을 내내 마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전부였던 남친 사이먼 도일을 빼앗긴 뒤 그녀는 이성을 상실한다. 두 사람을 총으로 쏴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그들 부부의 곁을 맴도는 것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 즐거울 리 없는 리넷은 마침 탐정 푸아로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푸아로는 철저히 자신의 관점에서 변명하는 리넷에게 초연하고 냉정하고 날카로운 태도를 유지한다. 탐정은 심리에도 탁월해야 하는구나. 자클린의 상황이 배제된 감상적인 사실과 진실은 그들 부부의 속 사정일 뿐이다. 푸아로가 지적한 죄책감이란 단어에 리넷은 정곡을 찔린다. 용납하고 싶지 않겠지만.

리넷의 부탁은 거절했지만 푸아로는 자클린을 만나 어떤 선택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길인지를 설득한다. 하지만 오뉴월의 서릿발을 품은 그녀에게 들어먹힐 리가 없다.

마침내 자클린은 사이먼과 마주하게 되고 술에 취한 자클린은 흥분한 채 사이먼을 향해 한방을 날린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선상. 그런데 어이없게도 다음 날 아침, 리넷이 자신의 선실에서 차가운 시체가 되어있다.


저 아가씨는 지나치게 열렬한 사랑을 하고 있군, 그건 위험하지. 그래, 위험해. -p.30

이 사건은 사랑 때문에 벌어진 비극처럼 보인다. 지독하게 자존심이 강했던 자클린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일까. 추리만 했다 하면 헛다리를 짚던 내가 내가 범인의 윤곽을 잡아버린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는 법이니까 말이야 -p.32 역시 모든 사건의 중심은 돈이다.

푸아로는 승객들의 알리바이와 목격자 탐문 수색을 한다. 그 사이로 각자의 음료 취향만큼 각자의 숨겨진 욕망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리넷과 여러 가지로 돈에 얽혀 있거나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의 실마리는 의심과 의심에 의해 거듭 밝혀지는 것이겠지만 배 위에는 그들과는 상관없이 진실한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의심을 거두고 확신을 주는 사람들 말이다.

이건 불공평해요. 몇몇 사람이 모든 걸 다 갖고 있다고요.-p.170

작가는 이 추리극 한편에서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돈 나고 사람 난 자본주의의 폐해와 타락함을 꼬집고 있다. 그 비틀림의 정점은 혐오와 증오를 넘어선 범죄다. 가진 것 덕에 호강을 한다는 이유로 기생충이 되고 가진 것이 많다는 이유로 거드름을 피운다고 여긴다. 가진 것이 많으면 어딜 가나 부러워하고 탐내는 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더 흉측한 자화상은 욕망과 탐욕에 일그러진 우리의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본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 딱 들어맞는다. 사람들은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인 것이다.

사건은 더 복잡해져갔으나 탐정은 예리했다. 범죄의 동기를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이치에 닿는 진실을 찾는 것이 포인트였다. 오랜만에 고전 미스터리물의 맛을 제대로 음미했다. 2월 화려한 영상으로 그들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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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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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책을 덮고 시집을 읽다 이 책이 갑자기 떠올라서 다시 펼쳤다. 영화도 봤기에 줄거리는 대략 알고 책도 분명 읽었었는데 재독하니 새롭다. 바다의 뚜껑이 노래 제목이었단 사실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문장에서 풍기는 감성보다는 장면 장면 남아있는 영상 때문일 수도 있겠다.

미래의 트렌드를 파악하다가 이 책이 떠오른 건 마치 짠 음식을 먹은 뒤 자연스레 오는 갈증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세상의 변화가 나는 버겁다. 나의 성향은 빙수 가게 주인 마리와 비슷하다. 느리지만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삶 말이다.

마리는 초라해져만 가는 고향땅을 보며 내내 아쉬움을 느낀다. 동시에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허탈감에 마음은 수십 번 뭉클거리며 끊어 오른다. 그런 곳에서 빙수 하나로 가게를 차린 건 잃어버린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어떠한 순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는 경우는 많다. 세상의 흐름에 올라타 기회를 잡고 승승장구하는 이들이 성공적인 삶의 표본처럼 보이겠지만 가끔은 마리처럼 세상의 속도에서 이탈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다 할 것 없지만 마음에 남는 풍경을 잊지 못하는 이유 하나로. 그게 바로 행복이다.

'꿈을 이룬' 신비한 반짝거림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p.32

그런 사람들에겐 일상의 균열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리의 뛰어난 공감 능력은 하지메의 흉터에 따스한 바람이 된다. 하지메가 있는 일상이 변화라기보다는 최대한 자연스러움이 되도록 맞춘다. 바다와 빙수가 있는 그 공간에서의 여름은 하지메에게 기적을 선물한다. 마리가 어느 곳에서 먹은 빙수처럼. 그것은 진심이라는 마법이 아닐까.

어쩌면 마리 역시 이곳에서의 삶의 단조로움보다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로 인한 공허감이 걱정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하지메는 추억을 소환하여 옛 감성에 불을 지피게 해 주는 존재였다. 절대로 깨우치지 못할 감각을 다시 불러와 감성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어 보다 커지는 경우도 있다. -p.76

어둠은 어둠에 묻힌다. 어둠이 빛을 만나 점점 옅어지다 밝아지는 이야기를 만나서 나 또한 밝아졌다. 하지메는 돌아갔지만 그들은 친구로 남았다. 똑같은 나날의 반복 속에서 하지메는 가끔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마리의 말처럼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을 지닌다면 어쩌면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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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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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어느 날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쓴다. 그래서 그냥 쓴다. 타고난 끼가 때를 만나 상까지 거머쥔다. 성공이라는 정해진 운명의 룰렛이 끊임없이 돌아갈 때 그의 책들이 내 서가에 하나둘씩 꽂혔다. 두터운 팬층과 대중성을 동일하게 여긴 오만 때문에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여자없는 남자들> 먼지를 털어낸 것도 작년이니까.

두꺼운 장편을 읽을까 하다 하루키의 데뷔작을 소개받았다. 왜 데뷔작부터 볼 생각을 못 한 걸까. 읽은 것이 몇 권 없기에 하루키를 안다고 할 수나 있을까 싶지만 이젠 알겠다. 그의 소설에서 언급되는 상실과 위로가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지를.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p.143

하루키의 글쓰기는 사소한 시도에 불과했다. 자기 요양을 위한. 그래서 글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걸까. '나'라는 인물이 만들어 낸 동경의 작가에게 속은 게 나뿐은 아닐 것이다. 데릭 하트필드의 작품을 뒤질 뻔했으니까. 타고난 작가는 계획이 다 있구나.ㅋㅋ

맥주와 음악만으로도 여름은 젊음을 대변하는 계절로 충분하다. 지루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니까.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만남 같지만 훗날 로맨틱하게 기억될 수도 있다.

'나'와 '쥐' 두 친구는 그저 여름 동안 고향에서 만나 레이의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고작 스무해를 산 청춘들임에도 무언가 삶을 향한 조소가 가득하다. 구린 게 많은 부유한 집안의 쥐는 그런 자신의 집안에 대해 냉소적이고 우울하다. '나'는 그저 시간에 몸을 내맡긴 청춘 같다. 여느 청춘들이 그렇듯 그들이 주고받는 말속엔 무심함과 허무가 깃들어 있고 논리가 없는 말들을 담배연기에 태워 보내며 위안을 삼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마치다 준의 <얀 이야기>속의 고양이와 생선 친구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래? 내가 없으면 쓸쓸할 텐데." -p.66

문득 걸려온 라디오 방송국 전화에 '나'는 추억을 더듬는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신청한 곡이 있다는 사실은 묘한 기분을 선사할 것 같다. 비치 보이스의 <캘리포니아 걸스>를 들어 보았다. 처음 듣는 곡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곡들이 상당히 올드하다. 그럼에도 라디오 DJ의 멘트는<토토즐>을 떠오르게 할 만큼 옛 감성에 젖게 한다. 멋진 토요일 밤보다 불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시대이니까.

'나'는 그녀를 찾아보지만 실패하고 자신을 거쳐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상대들을 떠올려본다. 그러고는 손가락이 네 개뿐인 그녀와의 만남을 드문드문 이어간다. 아무말 대잔치 같은 대화들과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주고받는 관계도 여름과 함께 끝난다.

누구에게나 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절이 있다.-p.106 트렌드 책에서 '쿨하다'라는 의미가 시대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의 쿨함은 그 어느 시대상에도 맞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절반은 감추는 게 쿨한 거라니. 부자라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쥐는 자신의 존재적 이유를 이도 저도 찾지 못한듯하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 '나'는 동경하는 작가의 세계관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간다. 아마 손가락이 네 개뿐이었던 그녀도 짧았던 '나'와의 만남이 시시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에서조차도 분명 진화는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내가 만약 인디언이었다면 나의 이름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할 것이다. '늑대와 춤을'처럼.ㅎㅎ 그의 데뷔작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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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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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듣기를 병적으로 좋아하고 닥치는 대로 읽으면 미친 듯이 쓰고 싶다는 열정만으로도 부엌 테이블에서 이런 글이 써지는구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의 동일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저 다른 이야기로 읽힌다. 우선은 핀볼을 찾아봤다. 오래전 어느 오락실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아직 읽어보질 못해서 철학적 연관이 지어지진 않는다.

'나'는 문득 스무 해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을 느낀다. 나오코의 미소는 '나'에게 끝나지 않을 상실감을 남긴다. 그리고 더 이상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 갈망도 욕망도 바람도 없는 삶. 그는 어떠한 의문도 질문도 해답도 찾지 않는다. 그저 연기처럼 흩어지고 바람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움직임만 부여할 뿐이다. '나'는 온갖 세상의 잡다한 서류들을 번역하며 일상을 산다. 다행이다. 세상이 굴러가는데 필요한 톱니바퀴는 되어 있다. 딱히 의미 있는 번역도 의미 있는 일도 아니지만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로부터 700킬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쥐'는 여전히 섹스와 죽음이 빠진 소설을 쓰고 있으며 빠져버린 계절의 시간을 메우지 못한 채 여전히 고독하다. 시간이 지나가도록 슬쩍 자리를 비켜주기로 작정한듯하다. 한 여인을 만나 사는 모습이란 걸 잠시 떠올려보지만 자신은 그녀에게 기댈 공간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나'와 쥐의 일상을 포개어 본다. 그들은 겉돈다. 나가 쥐 같기도 하고 쥐가 나 같기도 한! 오묘한 기류를 느낀다. 두 사람 모두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쌍둥이와 함께 지낸다. 쌍둥이는 '나'를 보살펴 주는 영혼의 그림자 같다. 혼자서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의지하게 된다. 때로는 커피가 되고 때로는 말동무가 되어주며 균형을 잡아준다. '나'에게 쌍둥이란 존재가 있다면 쥐에겐 제이가 있다. 제이는 맥주 같은 존재로 쥐곁에 묵묵히 존재감을 유지한다.

갑작스레 무언가를 잃으면 급속하게 무언가에 빠지기도 한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인간의 욕망이다. 나오코의 죽음 뒤 '나'는 어느 날 핀볼 게임에 상실감을 쏟아붓는다. 기계가 보내는 미소는 나오코의 미소만큼 행복감을 주었다. 기계의 반짝이는 불빛은 끝없는 해방감마저 선사한다. 최선을 다해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핀볼 기계가 울려대는 소음이 위로의 말로 들린다.

당신 탓이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끝났어요, 모든 것이. ​

어느 날 핀볼 게임기가 사라진다.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았던 존재의 사라짐은 '나'가 느낀 두 번째 상실감이다. 그랬기에 핀볼의 존재에 집착했으리라. 스페이스쉽이라는 한정판에 일본에서는 고작 세대뿐인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존재이자 어쩌면 고철덩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존재지만 '나'에게는 기록 갱신용이 아닌 그저 그리운 존재였을 뿐이다. 나오코처럼.

수소문 끝에 커다란 창고 입구에 도착한 '나'는 핀볼 기계를 보러 가기까지 극심한 긴장감에 놓인다. 마치 죽은 나오코를 만나러 가는듯한 기분이다. '나'가 창고 불을 켠 순간 마주한 건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 늘어서 있는 기계 덩이가 아니라 그 공간을 부유하던 내면 저 깊은 곳의 상실감이었다. 그랬기에 그토록 두려웠으리라.

괴로워?

아니, 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無에서 생겨난 것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인데, 뭐.

'나'와 쥐는 이제 출구를 찾은 듯하다. 입구와 출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그에게 쌍둥이가 머물다 간 것도 그런 의미일까. 의식은 내면의 고립에서 벗어나 어느 방향으로든 줄기를 찾아 흐른다. 때로는 과거의 죽어버린 시간이 불러온 환상에 고립되어 있던 자아가 치유되기도 한다. 불확실한 미래는 그저 '아마도'일뿐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일들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깨달아가며 가벼워져 가는 게 아닐까.

아니. 가벼워져가면 좋겠다.


인간은 어떤 것에서든지 노력만 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야. 아무리 흔해 빠지고 평범한 곳에서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다구.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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