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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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우리가 늘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뭐 그게 더 흥미를 끌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만큼 현재가 불안정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불안정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성은 파괴되고 그 모든 것을 다시 인간들이 감당해야만 한다. 불합리한 것들로부터 계속 싸워야만 하는 세상. 제어할 수도 제어되지도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삶. 그 끝이 무엇이 되었든 한방 세게 터지고 나면 끝없는 암흑의 세계가 다시 그들을 기다린다. 가도 가도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세계. 그렇지만 인류는 그 희망을 찾아 계속 싸워왔다. 생존 그 이상을 넘어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부서진 대지 3부작 시리즈를 드디어 시작한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고 있자니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완벽해 보여서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허나 작가는 지금의 차별과 편견에서 더이상 기댈곳을 찾지 못한듯 하다. “흑인 여성으로서, 나는 현상 유지에 딱히 관심이 없다. 내가 왜 그러겠는가? 지금의 현실은 해롭다. 상당히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데다, 그 외에도 바뀌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한가득이다.” (- <가디언>지 인터뷰중에서) 그랬기에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SF 장르를 좋아하나 상상력이 좀 딸려서 영상으로 보는 걸 더 선호한다. 뭐 영상으로 봐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들도 많긴하지만.ㅋㅋ 작년 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얼핏 본 적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놓쳐버렸는데 2020년 남은 한 달을 이 미래 세계에 쏟아부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종말을 맞이한 세상. 하지만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행성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누군가의 삶은 시작된다. 물론 이전 세계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곳은 늘 위험이 도사린다. 과거의 흔적이 사라진 대지는 불안정하고 지금의 인류와는 다른 존재도 태어난다. 그들은 태생부터 초인적 힘(오로진)을 지녔다. 미드 <플래시>에 나오는 것처럼 특정 종족들에게 초능력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많고 그들은 위험하다. 즉 스스로 욕망을 제어 못하는 자들과 뜻하지 않게 발현되어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들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오로진을 관리한다. 펄크럼은 오로진을 육성하고 관리하지만 실상은 철저한 훈련을 통해 이용한다. 그들의 잠재력은 대지를 잠재우고 대지를 뒤흔들 만큼 강력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을 로가라고 부르며 천대시한다. 마치 불량한 존재를 보듯 혐오하고 배척한다. 확실히 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막강한 힘을 지닌 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세계에 진실은 감추어져 있다. 오로진 그들 스스로 자초한 세계에서 그들이 찾는 희망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곳에 인간애는 존재할까. 에쑨의 자식 사랑을 보면 남아 있는 듯하고 에쑨을 돕는 자들을 봐도 언뜻 살아있는 듯하다. 다만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해서 미약해 보인다. 키우던 개가 주인을 무는 상황은 흔하게 벌어진다. 그렇기에

계속되는 두려움과 공포가 내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생명체와 그렇지 못한 생명체 간에 존재하는 간극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세계는 뒤집혔으나 차별받는 종족은 여전하다. 대지의 안정을 위해 누군가의 지속적인 희생이 요구되고 죄 없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오로진의 힘은 그들을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안착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다.

 

 

 

  

이야기는 세 여인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오로진의 힘을 지녔으나 그 힘을 숨긴 채 살고 있는 여인 에쑨.

오로진의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인 다마야.

이미 펄크럼안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여인 시에나이트.

 

에쑨은 아들을 잃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남편. 아이는 처참한 몰골로 파괴되었고 남편은 나머지 한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아이에게서 위협적인 힘을 감지한 남편은 그 싹을 잘라버렸다. 이 세상은 인간애보다 더 강한 게 있다. 두려움과 공포. 에쑨의 남편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에쑨의 분노를 흡수한 채 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남편을 죽이기 위해 대륙을 지난다.

보통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법이거든. -p.134

 

다마야는 부모에게 버려서 수호자의 손에 맡겨진다. 그를 따라 펄크럼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수호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거짓 없는 신뢰와 믿음을 느낀다. 허나 독자들은 그런 독함에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소름이 돋는다. 다마야가 스스로의 힘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에 잔악성이 느껴진다.

 

펄크럼안에서 시엔이 해야 하는 임무는 생산과 신분 상승이다. 그들이 획득해야 하는 반지의 수는 힘을 의미한다. 네 반지 시엔과 열 반지 알라베스터. 그들은 의무적으로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 섹스를 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한다. 시엔보다 알라베스터는 내면의 동요가 심하고 인간애를 갈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최고의 힘을 지녔지만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가 알던 가치관이 흔들린다. 씁쓸한 비난과 조소 어린 미소 안에서 그의 평범한 욕망이 드러난다. 그저 그에게도 삶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것은 결코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임을 안다. 그들을 위해 스스로 부서져버린 그가 제일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에쑨은 그런 능력에 대해 회의적(그건 저주지 재능이 아니에요.)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전엔 계절을 잃었다. 그녀는 또다시 잃을 것들이 두렵다. 딸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한다. 그녀의 분노가 어찌나 강렬한지 남편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일 것만 같다.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으면 재능이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면 재주고.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너다. 교관도 아니고 수호자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야." -p.552

 

대지를 쥐고 흔드는 능력은 마을 하나를 집어삼킬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에쑨은 그러한 능력 때문에 배척되기도, 환영받기도 한다. 세 여인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면서 이 세계의 두 번째 시리즈가 열린다.

곳곳에 등장하는 석상의 글귀와 그녀의 수호신 역할이 되어주는 스톤이터는 여러 판타지물에서 유사하게 보아온 플롯이라 다음 편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을까 한다.

 

방랑의 계절, 광기의 계절(산제 제국), 이빨의 계절(펄크럼), 질식의 계절, 붕괴의 계절

 

다섯 번째 계절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인간들앞에 찾아온 계절의 모습 말이다. 그것은 인간들 스스로가 망쳐놓은 대지의 모습이었다. 곧 닥칠 미래라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시엔은 곁에 있는 이들을 또 잃었다. 펄크럼과 어떻게든 엮이고 싶지 않아 독한 맘도 먹는다. 슬프다.

2부에서는 그녀의 딸과 그녀의 활약상이 더 두드러지겠지. 좀 더 깊이 있는 해석을 하고 싶지만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포기.ㅎ

에쑨 곁을 따라붙은 호야(스톤이너)의 정체가 궁금하다.

 

아버지 대지의 표면이 달걀 껍질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의 사납고 맹렬한 분노가 다섯 번째 계절, 즉 붕괴의 계절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발현되어 거의 모든 생명들이 죽었다. -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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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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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시선을 잡았다. 분명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펼쳤는데 여태 읽어왔던 책들과는 결이 달라 좋았다.

막 찢어지게 아프고 열받고 그런 건 없다. 흑인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장면에서 충격을 먹긴 했지만 이 남자가 지속적으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는 장면은 없다. 유색인종이라고 굳이 흘리지 않으면 백인처럼 묻혀 지낼 수도 있고 그의 타고난 능력으로 인해 선택의 폭 또한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가 유색인이었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내적 갈등을 들여다보면서 답답하고 씁쓸한 마음은 털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아무리 부유해도,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있더라도 아프리카 피가 섞였다는 사실에 움츠러들고 주눅들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로 시끄럽다. 왜냐하면 책에 등장하는 텍사스 인과 같은 사고를 가진 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들과 사실 그대로 부닥치고 있는 거예요 우리 깜둥이가 백인과 동등하다거나 동등하게 될 거라고 믿지 않아요. 우리는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을 겁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p.157

 

자신이 백인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한 소년은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사실 백인 귀족과 흑인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 어머니와 이웃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고 두어 번 만난 아버지도 파렴치한은 아니다. 게다가 그의 남다른 재능은 그에게 차별과 편견의 그림자를 쉽게 덮어 씌우진 못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하버드를 선택했다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표지 때문에 음악가로서의 삶과 고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가 래그타임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인생을 겉돌다 다시 흑인 음악에 전념하겠다며 남부로 돌아올 때만 해도 그가 음악가로 성공하나 보다 했다. 영화 <그린북>이 살짝 오버랩되다 말았다. 그의 부푼 희망이 세상의 속임수에 차츰차츰 무너져 갈 때마다 음악은 번번이 그를 도박과 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유색인이라서 겪은 차별의 정도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은 그에게 흑인의 삶을 벗어던지게 한다. 그는 두려움보다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견딜 수 없었다. 그들과 같은 인종이라는 사실, 그런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민주국가라는 사실은 그를 음악가가 아닌 한 그릇의 죽을 택하게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두 인종 사이의 상대적인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책 속 노군인의 말처럼 백인의 오만함은 인종차별만큼이나 사라져야 할 태도이다.

인간의 오만함으로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인종들이 희생을 당했는지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위대한 인종이죠.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종임에 틀림없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과거 인종들의 더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날의 이 지위를 덜 오만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할 거요. 우리는 그저 게임에서 승자의 순서를 누리고 있을 따름이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오랫동안 익숙해진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인종적 우월성이란 역사의 시기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p.155

 

한때 흑인이었던 한 남자. 그가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보다 산 채로 불태워진 남자가 자꾸만 떠올라 괴롭다. 인간은 언제까지 오만방자할 것인가. 인간은 언제까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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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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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팬케이크, 도넛, 무지개, 서핑, 훌라춤.

할머니의 십 주기 제사 때문에 모인 장소라는데 나는 그냥 이런 것들에 시선이 꽂힌다. 이런 제사라면 백 번도 더 환영이고 이런 제사를 받는 입장이라면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려면 나의 생은 할 말이 많아야 하고 자식들도 많아야 한다.

심시선처럼.

 

<시선으로부터,> - 제목에 쉼표가 빠지면 절대 안 된다!! -는 온라인 독서 모임이 있어 부랴부랴 읽었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 한아뿐>도 오프라인 독서 모임 때문에 읽었으니 으찌되었든 정세랑 작가와 나의 인연은 반강제적 만남인 셈이다.^^ 한아도 사람 이름인 줄 몰랐었는데 시선도 사람 이름일 거라고는 일도도 생각 못 했다. 작가의 독특한 언어유희가 맘에 든다.

 

우선 책장을 넘기면 현기증 나는 가계도 - 등장인물이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져서다 - 가 등장한다. 우쨌든 심시선을 따라 좌우하를 대충 훑고 바로 들어갔다. 어차피 읽다 보면 정리가 되니까. 심시선은 화가이자 작가로 활동한 여성 예술가이자 당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자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제사 따윈 지내지 말라는 부탁을 하고 떠났다. 하지만 십 년 뒤 맏딸 명혜는 가족들에게 색다른 제사를 제안한다. 하와이에서 각자 엄마를 추억할만한 것들로 딱 한 번만 지내자고.

 

시선은 예술가로서 많은 조각들을 남겨놓았다. 그녀의 책, 방송, 인터뷰, 그리고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까지. 그랬기에 여러 시선들이 존재했다. 그녀는 여성 예술가로서의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삶이 환영받지 못한 시절에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그러한 시선으로부터 파생된 자녀들은 달랐다. 확실히.

자녀들은 시선의 조각을 재조명하여 자신들의 삶에 비춰본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은 건강한 정신력을 지녔던 시선의 삶이 유독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던데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강하면서도 서로 조화롭기 때문이었다.

 

시선은 여성 예술가로서, 이민자로서 차별과 편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한 마우어에 대한 묘사가 뚜렷하진 않지만 시선의 주변인들 중에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시선의 팔에 남은 나이프의 흔적에서 짐작하건대 예술가로써 질투한 점은 확실해 보인다. 그녀의 인생에서 군림하다 훼방꾼으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자살로서 그녀를 파렴치범으로 몰았다. 붓 대신 펜은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붓을 완전히 내려두게 된 이유도 그간의 시간을 잊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번 책에서도 역시나 환경에 대한 경각심과 사회문제를 빼놓지 않았다. 해림이 새에 관해 나누는 대화(외래종), 우윤이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서퍼 강사의 피부를 보며 환경이냐 피부암이냐를 고민하던 모습을 보며 자연을 대하는 시선에 경각심을 더하게 된다. 염산테러를 당한 화수의 사연과 규림과 한빛의 단톡방 합성사진 사건, 그리고 마우어의 자살 속에 얽힌 피해자와 피의자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보면서 진실과 사실 사이의 올바른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유조선 침몰 소식에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 쓰고 죽어가는 새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야말로 절실하게 필요할때다.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

 

시선으로부터,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심시선으로부터 파생된 가족들의 삶을 보여준다는 의미와 심시선의 시선으로 본 당시 사회상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의미가 있겠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쉼표는 시선의 안과 밖에서 스스로를 어찌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혹은 시선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모두 시선으로부터 숨 좀 돌리고 살기를.^^

 

시선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를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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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입속에서
마이클 모퍼고 지음, 바루 그림,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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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지 아직 7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이 남긴 여러 증거자료를 통해서 전쟁을 기억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전쟁의 참혹함을 대신할 언어는 없겠지만 이렇듯 전쟁의 기억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아픈 일이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평화주의자였던 한 남자가 비밀 요원이 되어 늑대의 입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랜시스 카마츠에게 아흔 번의 해가 뜨고 아흔 번의 해가 졌다. 그가 기억하는 전쟁은 두렵고 무서웠던 감정보다 전쟁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마음이 더 커 보인다. 자신의 선택으로 혼자서 가정을 지켜야 했던 아내 낸시, 누구보다 용감했던 동생 피터, 작전 중 잃은 동료 폴, 극적으로 그를 구출했던 크리스틴, 그리고 끝까지 함께 살아남은 오귀스트.

 

 

 

 

  누구보다 큰 키와 큰 발을 가졌던 그는 동생 피터와는 생각이 달랐다. 평화주의자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려 했으나 전쟁이 동생을 집어삼키자 생각이 바뀌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들 모두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 놓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평화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견딜 수 없는 의무감이 그의 큰 발을 전쟁 속에 들여놓게 된다. 그는 훈련을 받고 레지스탕스 요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비열하고 위험하고 악랄한 자들을 피해 살아남아야만 했던 그들은 서로를 위해 철저히 신분을 숨긴다. 그와 함께 활동하는 동료와 끊임없이 그를 돕는 또 다른 동료들은 나치의 집요한 감시망을 뚫고 작전에 투입되지만 그들의 희생보다 민간인의 희생은 그보다 열배 또는 백배 이상이 되는 걸 목격하기도 한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전쟁터, 죽고 죽이고, 보복에 더한 보복만이 남은 곳에서 죄책감 따위로 흔들릴새가 없다. 꼭 다시 되찾을 거라는 희망 하나로 그의 큰 발은 쉴 틈이 없었다. 언덕을 넘고 산을 오르내리고 강을 건너며 몇 번의 행운이 따르는 동안 희망의 불빛은 조용히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가 죽음을 불사한 순간보다 그들을 도와준 민간인들의 용기를 더 높이 칭찬하는 모습에 먹먹함이 밀려온다.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그는 자녀들에게 동료의 이름을 붙여 삶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맨 뒷장 그의 사진 속에서는 전쟁의 두려움 따윈 느낄 수 없지만 그의 기억 속을 채웠던 시간들 중 전쟁의 상처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뻥 뚫려버린 가슴한켠의 조각들을 온전히 메우지 못하고 떠났겠지만 그들이 존재했기에 평화는 왔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어린이 도서로 출간된 만큼 프랜시스의 입장에서 쓴 편지글 형식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전달하기에 더 효과적일듯하다.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프랜시스 또한 자신의 안전보다 타인의 안전을 위해 큰 희생을 치렀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금처럼 따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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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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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계몽사에서 나온 어린이 세계명작동화를 즐겨 보았었다. 물론 책장에 꽂혀 있는 몇 권 되지 않는 책이기도 했지만 유독 다른 책보다 세계명작을 좋아했다. 동화에 동화되어 철저하게 권선징악의 논리를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 종이 인형놀이를 할 때만큼은 서로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되겠다고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 그녀들은 아름다웠으며 갖은 구박과 고난 따위에도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었으니까. 그렇듯 갖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얻은 온갖 교훈들이 진리인 것처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명작동화의 결말처럼 되기에는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렇듯 나는 구전 이야기의 힘을 의심해왔다.

 

   각종 설화나 우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야기의 원형에서 닮은 구석이 많다. 인간들이 추구하던 선과 배척하던 악의 근원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심지어 놀랍게도 마치 표절한 것처럼 흡사한 얘기들도 있어 신기할 정도다.(네이버 지식IN에 보면 표절이냐는 질문도 있다.ㅋ) 대체적으로 옛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는 공식이라면 착하고 정직해야 복을 받고 이기적이고 욕심부리고 남을 해코지하면 벌받습니다, 이러이러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야기가 죄다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한정된 이야기 주머니안에서였음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났다.

 

   저자는 10여 년 전 <그림형제 민담집>을 펼쳤다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야기에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자 이야기가 다시 보였고 그렇듯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파고들어가자 그야말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엄청난 이야기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 순간 여태껏 내가 읽어왔던 이야기들 속에서 지나치거나 간과한 대목이 무수히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쳤다. 옛이야기에서 뽑아낸 통찰력에 감탄은 당연하거니와 동시에 자괴감도 들었다. 난 왜 이렇게 독서를 못할까 하고.^^ 난 원래 이야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재주가 없다. 통찰력이 부족한 건 그만큼 깊이 사유하는 걸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와 그의 학생들이 내놓은 다양한 관점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책은 두껍지만 다양한 민담을 만나볼 수 있어 내겐 정말 뜻깊은 독서가 되었다.

 

 

 

 

   저자는 그 많은 민담들을 다섯 가지 챕터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볼거리가 아주 풍성해서 며칠 동안 신나게 읽었다. 단순하게 읽고 넘겼던 부분을 세세하게 짚어주며 각 인물들의 내면과 행동에서 인간 본연의 진리와 삶의 목적을 찾고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이해한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타협과 방향을 찾고 나아가 인생과 행복의 패러다임을 분석하며 진리를 찾아간다.

아니나 다를까 옛이야기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와 비유가 숨어 있을 줄이야!

 

   그림형제가 처음 민담집을 냈을 때 잔인하고 끔찍한 내용 때문에 반발과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던 시절, 무심코 읽어주던 명작동화 앞에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빨간 모자는 왠지 잔혹동화 같고 헨젤과 그레텔 또한 비교육적인듯했다. 또한 신데렐라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답답했고(아이에게 읽어주었던 동화에는 신데렐라가 두 언니의 만행을 용서하는 결말이었다) 남의 도움만 받는 백설공주는 자립심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신데렐라의 다른 버전에서는 뜬금없이 두 언니가 불쌍하다고 하질 않나, 늑대와 일곱 마리 양에서 늑대가 호되게 당하는 장면에서도 좀 안되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야기의 원형을 읽고 나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곱씹어 보니 당시 동화는 아이들을 위해 많이 다듬어진 것들이었기에 어쩌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게 비쳐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시련은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악행의 강도가 셀수록 결말도 통쾌하게 다가오는 것일 테니까. 나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보며 가졌던 생각이 달라졌다. 진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였단걸.

 

   앞서 언급했듯 이야기의 원형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들이 많다. 오래전에 잔혹동화에 빠져 이야기의 원형을 알게 된 경우도 있지만 우리 고전 <콩쥐팥쥐>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때 <장화홍련전>을 읽고 잠을 설친 기억이 있는데 이보다 더 무섭다. 콩쥐의 결혼 뒷이야기가 더 있었다니. 이건 뭐 이야기가 엽기 공포물이 따로 없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이 너무나 그럴듯해서 이건 어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한다.

 

 

 

 

   대체적으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행동과 배경은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빨간 모자의 사냥꾼은 냉철한 이성으로, 마녀의 흉하게 묘사된 형상은 노인을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회의 낡은 관습과 억압이 얼마나 흉측한지를, 난쟁이처럼 작고 비루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가 실로 커다란 능력자로 보이기도 한다. 마법에 걸려 동물로 변하는 존재들은 관계로 인한 상처를 짐작해볼 수 있고 주인공의 험난한 시간은 인생이 그만큼 힘듦을 시사한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마는 사회적 폭력으로, 숲은 세상 또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단순해서 의미가 금방 전달되는 반면 뒤죽박죽 얽혀 있어 생뚱맞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풀이를 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의 힘을 믿어야 한다. 이야기의 원형이 비슷해도 주인공의 작은 행동하나에 결이 달리 지듯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채로워야 인생을 다각도로 볼 수 있다.

역시 이야기는 원형 그대로 읽어야 제맛임을 알았다. 이야기를 사랑한다면 개구리 왕자의 반전, 라푼젤의 원뜻, 콩쥐팥쥐의 뒷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민담집에 수록된 신선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에 흠뻑 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끼는 책인 <어린이 세계의 명작>을 다시 꺼내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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