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주를 꿈꾼다 - 가족은 복잡한 은하다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고정아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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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198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지금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훨씬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일 것이다. 왜 시간적 구성이 그 시점으로 옮겨 가 있는지는 1월 1일 버드의 시점이 열리면서 알게 된다. 1986년 1월은 챌린저호 발사로 미국이 부산스러웠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케이블 티브이도 흔치 않았고 게다가 이번 발사 계획엔 민간인 교사 한 명도 탑승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이었다.

그랬기에 학교에서 아이들은 이 엄청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1989년 1월 한 달, 세 남매의 시선으로 매일의 일상을 쫓아가다 보면 안타까운 챌린저호 사건의 뒷면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한 가정의 일상도 보인다.

 

가족은 복잡한 기계다.

 

운동을 좋아하는 첫째 캐시, 기계의 속 사정이 궁금해서 분해도를 즐겨 그리며 누구보다 챌린저호에 온통 정신을 뺏겨있는 둘째 버드, 그리고 버드와 쌍둥이이자 오락게임을 좋아하는 피치. 책을 좋아하지만 아빠와 늘 삐걱거리는 엄마. 오죽하면 버드는 부모님의 소음을 들으며 우주에 떠 있는 상상을 할까.

 

기계의 작동원리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버드는 그만큼 사물과 사건에 대해 눈과 귀가 열려있다. 버드네 가족은 우주 속에서 떠도는 먼지가 되어 각자의 궤도를 도느라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한다. 버드는 각자의 삶으로만 침참해가는 가족 구성원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부모님의 대화는 매번 엉켜셔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캐시는 손에 깁스를 하는 바람에 학점도 위태롭고(운동부에 들어가려면 평균 성적을 넘어야 한다는 규정 아주 좋다.) 전부였던 농구팀에서도 빠질 위기다. 피치 또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여학생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상태다.

 

가족 구성원 누구도 버드에게 무관심이다. 가끔 다른 이가 가족이었으면 하는 예쁘지 않은 생각들로 위안을 얻고 챌린저호 발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우주에 대한 희망은 자신의 꿈과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승무원인 주디스 레스닉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해 있던 상태였다. 1월 하고도 6일이 지난 수업 시간, 같은 반 친구가 주디스와 버드를 비교하며 버드의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말을 흘리게 된다.

너는 별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파동은 생각보다 강력한다. 예쁜 건 아무것도 아니야. 예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예쁜 건 자신이 만드는 거야. -p.148라는 말에도 위안을 얻을 수 없다.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후 너는 별로라는 단어 뒤에 붙일 수 있는 부정적 완결문은 수백 가지의 가지가 되어 뻗어 나갈 것만 같았다.

가족은 가장 예측 가능한 기계야.

버드는 학교 수업 시간에 했던 기계와 인간의 차이점에 관한 생각에 집중한다. 기계에 비하면 인간은 정말 오점투성이다. 챌린저호의 기계 오작동도 인간의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참사였다. (실수를 하고 감정에 휘둘린다)

이처럼 중대한 오작동이 벌어지면 기계는 폭발해버리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세 남매와 가족의 한 달은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별이 우리의 눈에는 정지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인간이기에 회복의 시간도 갖는다.

버드 곁에 캐시와 피치가 발걸음을 맞추어 준 것처럼.

 

챌린저호가 공중분해되었을때 버드의 충격과 슬픔과는 달리 아이들은 단축수업에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일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왜 우주를 꿈꾸는지에 대한 살롱가 선생님의 조언을 한 번 더 새겨본다면 생각의 폭이 달라질 것이다. 요건 책을 통해 만나보시길.

 

​세 남매가 고민하며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현재의 나는 어떤 고민과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돌아본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

 

왜 우주탐사가 필요한지에 대해 친구들이 고민하다 크리스토퍼의 말대답에 빵 터졌다. 요즘 좀 심하게 어이없는 생명체가 눈에 들어오긴 하지.

"우주에 생명이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크리스토퍼가 물었다. "지구에도 어이없는 생명체가 가득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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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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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대 어르신들은 소싯적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한다. 내 인생은 한 권의 책으로도 다 못 쓴다고. 그만큼 고된 삶을 살았음을 강조한 건데 이 책 또한 못지않게 고달프다 보니 시대의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자국에서는 출간을 금지당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시간은 밤>의 안나의 고백처럼 삶의 혹독한 진실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여러 편의 단편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꾸밈이 없다. 게다가 단편이라 더 강렬하다. 이는 작가의 불우한 어린 시절(지옥에 갇힌 느낌)이 투영되어 있다. 앞쪽의 짧은 단편들은 중편 <시간은 밤>을 위한 준비운동과도 같다. 그만큼 <시간은 밤>의 심적 고통이 세다. 결국 앞쪽 짧은 단편들은 한 번 더 읽어야 했다. 가난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정신을 극한 상황으로 쉴 새 없이 몰고 간다. 그러한 상황들을 풀어낸 작가의 글솜씨에 제대로 꽂혔다. 풍자와 해학은 물론이고 한편의 긴 시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웠다.

책을 덮고 나니 우선은 단편적 생각이 먼저 흐른다. 딸아이가 그녀가 되고 그녀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기까지 그녀들을 둘러싼 운명의 색채들은 어둡다. 그곳엔 우리가 듣기에 불편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사실들이 존재했다.

한마디로 욕밖에 나오지 않는 인생이었다. -p.305​​

가난, 병, 어둠, 답답, 짜증, 우울, 고독, 불행이라는 키워드를 끼고돌고 도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들에게 집과 남자와 아이와 희망 같은 것들이 어떤 식으로 존재했었나를 짚어 보았다.

그녀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런 여인들로 불렸고 그냥 그렇게 잊혔다. 그녀들에게 남겨진 건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부채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밤>에서 안나가 남긴 글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 시인이었으며 그녀의 바람대로 시인으로 남았다. 그녀는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집의 비밀>편 그녀의 꿈속에 등장한 아래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현실에서 그는 말 그대로 남에게 해만 끼치고, 자신의 삶과 경박함, 미래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으로 불구가 되어버린 쓸모없는 존재였다. -p.103

다시 말해, 가망이 없는 작자, 규율이나 양심, 의무에 대한 일말의 징후도 없는 인생이었다. 하긴 위인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제멋대로 굴고 강자가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약자를 파멸시키듯 그 여자들을 파멸시켜왔다. 내 잠을 방해한 불쌍한 파리떼를 내가 죽인 것처럼. -p.104​

그런 남자들 곁에서 모든 것이 버려지고 사랑 밖으로 밀려나고 모든 삶이 삶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아주 가끔은 그들의 계산(세 얼굴의 료바같은 놈)에 속아 그들의 삶 속에 합류하지만 똑똑한 그녀(엘비라)처럼 승리자로 남는 경우도 있다. 엘비라 만만세!

알콜중독에 손가락이 꺾인 알리바바처럼 진짜 집을 버린 채 가짜 집(피난 처)을 전전하거나 여기저기 밀그롬같은 여자들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의 사진 한 장에 기대어 아무것도 없이 살다 간다. 독신 여성의 미래는 <어두운 운명>의 그녀처럼 덜떨어진 남자들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려지고 <아름다운 도시로>의 미혼모들의 운명 또한 바늘 위에 앉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행복의 기대감은 간간이 있어 왔다. 이해! 하지만 그녀들에게 이해는 삶 속에 섞여 드는 단어가 아니었다. <성모 사건>속 아들은 엄마와 공통으로 얽히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시간은 밤>의 딸과 엄마는 동일한 삶의 패턴(불행)이라는 공통으로 얽혀 들어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마의 삶(회상)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살아서는 더더욱.

아이에 대한 사랑(모성애)이 당연함에도 단편 속에서 유독 강조되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아니었을까. 아이라는 양심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양심이다. -p.277​

삶이 그녀들에게 가르쳐 준 건 달걀을 부치고, 수프를 끓이고, 기저귀를 가는 일뿐이다. 덤으로 엇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밑빠진 독에 물(사랑, 희생, 헌신)을 쉴 새 없이 들이붓는다. 더군다나 그녀들에겐 최소한의 물품만 있었다. 물려 입고 물려 입고 물리도록 입는 옷처럼 가난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입던 옷의 운명의 끝이 쓰레기통이듯 가난이란 운명의 종착역은 포기였다. 새 생명의 탄생보다 현재의 생명줄 다섯(자신을 포함한)을 책임져야 했던 <파냐의 가난한 마음>편은 죽음의 그림자가 태어날 아기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고통이 밀려온다. <시간은 밤>편의 안나는 끝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그처럼 가난은 모든 걸 지닐 수 없게 한다. 때론 견딤조차도.

하지만 사샤는 왠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그녀로 하여금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울지 않고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분명하게 대꾸해보라고, 이 상황을 끝내라고 무언가가 그녀를 떠밀었다. - p.57​

사샤는 인생을 잘 관찰하면 나름 뜻대로 잘 굴러가리라 여겼다. 그녀는 막이 내리고 문이 열리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언제까지나 인생이 연극이었으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 위에 새 생명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놀랍지 아니한가.

인생은 정말 농담을 잘한다. -p.171 인생은 뜻대로 되질 않는다. 진리다. 고로 인생은 때론 엿 같다. 그럼에도 생의 면역력은 공감과 희생에서 출발한다. 십오분의 소음이 영원한 화음<쇼팽과 멘델스존>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소중한 기억은 이해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즐거움<아름다운 도시로>을 선사한다. <시간은 밤>에서의 안나의 희생은 뭐 거의 숭고할 지경이다.

이 여러 개의 단편들은 여성들의 삶의 여러 단면들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그저 한 여인에게 모두 일어난 일처럼 여겨진다. 밤은 회복과 재생의 시간이다. 수없이 많은 밤이 지났다. 삶의 밑바닥을 억척스럽게 지켰던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가족의 영원함을 기약할 수 있었을까. 또한 '기대를 가져볼 만'한 것들이 있었기에 가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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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빵과 별사탕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이책 찜!☝

건빵과 별사탕 2021-05-07 16:43   좋아요 1 | URL
ㅎㅎ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드밀라 작가님 강츄~~합니다.
 
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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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이 책을 북클럽도서로 만나 e북으로 읽었다. 아마도 내가 모바일로 본 유일한 책이자 마지막 책이 아닐까. 눈이 너무 피로해서 혼났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박서련 작가는 <더 셜리 클럽>으로 먼저 만났었다. 사랑과 연대를 젊은 작가만의 통통 튀는 매력으로 그려냈다면 <마르타의 일>은 화통한 복수극으로 후련함을 선사한다. 마르타(수아)의 철두철미한 일정에 숨이 막혀 오지만 이 정도쯤 치밀해주어야 진정한 복수가 가능한 것이라고 이해했다.ㅎ

어쩌면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자매들은 그리도 성향이 다를까. 우리 집 남매도, 지인들 자매도 극과 극이다. 그런 극과 극의 성향이 한 집안에서 나름의 조화를 이루어주면 좋겠지만 대체로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소설 속 자매 또한 연년생으로 태어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지만 점차 각자의 장점이 두드러지자 삐걱거리게 된다. 주변인들의 말과 말에 오해는 부풀고 그렇듯 말 없는 사이가 되어 지낸다.

첫 장면은 동생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둘의 불편한 관계는 동생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부모님의 모습 앞에서 드러난다. 누워 있는 게 나였어도 엄마 아빠는 이렇게 울었을까? -p.12 이쯤 되니 둘 사이에서 부모님의 역할도 의심스럽다. 동생만 편애한 게 아닐까 하는. 물론 이것 또한 둘의 성향 때문에 생긴 오해일 뿐이었음을 알았다. 수아는 차가운 물이라면 경아는 따뜻한 물같다고나 할까.

암튼 사건은 여기서 시작한다. 착하고 예쁜 게다가 어마 무시한 팔로워를 거느린 SNS 셀럽이었던 동생의 자살. 하지만 절대 자살일 리 없다고 직감한 수아에게 제3의 인물이 등장해 타살임을 알리고 수아는 증거를 찾아 미친 듯이 몰두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후 완벽하게 끝을 낸다. 수아의 찰진 욕도 한몫했고.ㅋ

경아가 마리아라면 나는 마르타가 되어야 했다. -p.260

마르타는 성경 속 인물이다.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이야기를 빗대어 현대판 마르타(수아)가 성경 속 마르타의 억울했던 속 사정을 재해석한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어 맘이 아프지만 마르타의 일은 권선징악이라는 진리를 현실 속에서 확실히 재연시킨다. 마르타의 한다면 한다 정신도 한몫 거들었고.

유명 셀럽의 이면에 그려진 동생의 삶은 유명세에 이끌리다 좌초된 배가 되고 말았다. 미모의 봉사녀라는 타이틀이 동생을 만인의 연인으로 앉혀 놓았지만 시기와 질투 그리고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언니처럼 예쁜 이름이 갖고 싶어 리아로 개명한 경아, 리아의 언니라는 수식어가 싫었던 수아. 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보이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늘 부족함을 느끼며 스스로의 삶을 악착스럽게 몰아가는 수아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럼에도 수아에게 동생의 죽음이 전환점이 된다거나 의식의 변화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의 계획에 죽음의 진위를 파악하는 스케줄을 욱여넣고 더욱 미친 듯이 매달린다. 잠시 동생의 죽음 앞에 112를 부르느냐 119를 부르느냐를 두고 제3의 인물과 관점의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변함없는 건 자매의 사랑은 태어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아 씨는 무섭습니다. - p.188

어떤 방식이 되었든 죽음에는 죽음으로 대갚음해 주었다. 그럼에도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는 섬뜩한 암시를 남기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찝찝하고 소름 돋는 마지막 한 문장에 수아의 화끈한 욕설 한방을 덧붙여야 될 것만 같다. 그래야 완전히 끝난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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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학 -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클라우디아 하르만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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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에 본 영화가 있다. <레이디 버드>는 10대 소녀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지만 삐걱대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모녀는 달리는 차 안에서 <분노의 포도> 낭독 테잎을 함께 들으며 감상에 젖는다. 그러다가 어느새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화가 난 딸은 그만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이 정도면 얼마나 갈등이 심한지 더 말 안 해도 느낄 것이다.

 

작년에 읽었던 단편도 떠올랐다. 메이브 빈치의 <체스트넛 스트리트_돌리의 어머니>에서는 상반되는 모녀관계가 등장한다. 책에도 이런 어머니가 언급되어 있다. 아름답고 주변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던 엄마의 그늘에 가려진 딸. 그랬던 딸은 자신의 생일에 엄마의 이중생활(바람)을 목격하게 된다.

 

이렇듯 영화나 책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딸과 엄마라는 이중 역할 속에서 덕분에 먼지처럼 쌓여 온 그간의 고민이나 문제점들 또한 잘 털어내왔다. 그럼에도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사춘기에 진입한 딸아이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난 대단한 착각을 한 채로 쭉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동안 나의 행동이 딸아이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무조건 옳다는 교만과 언제나 내가 옳아야 된다는 부담과 사랑으로 포장한 간섭을 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책은 개정판이다. 엄마와 딸과의 문제가 문명이 발달하고 세상이 달라진다고 해서 문제의 근본이 변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전쟁의 트라우마나 가난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별개의 사례가 아닐 것이다.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감정의 골은 다른 형태로 유사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엄마도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당연함에도 나 또한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 사십 년이 걸렸다. 딸아이에게 초점을 맞춰 읽기 시작했지만 오래전 엄마와 나와의 관계, 아빠와 엄마와의 관계까지 머릿속에 있던 과거의 조각들이 하나 둘 스쳐갔다. 나 또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있고 훌륭한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역할이 힘들고 때론 내 인생이 더 중하다며 이기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명제 때문에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이 책의 역할은 관계를 치유하고 위로를 주는 데 있겠다.

 

중반쯤 읽는 동안 인간은 정말 감정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공감했다. 심지어 너무나 연약하고 여리다. 애정과 사랑이 조금만 모자라거나 넘쳐도 흔들리고 부서지는 존재다. 인생 초기 경험이 남기는 두뇌의 흔적은 우리 삶의 전반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부정적 단어(결핍, 불평, 한탄, 고통, 갈등, 소외, 거절, 배척, 비난, 냉정, 고독, 자괴감, 방임, 학대, 무시, 멸시, 단절, 변덕)가 월등히 많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 제대로 된 이성과 공감이 발휘된다면 얼마든지 긍정적 단어(지지, 관심, 안정, 수용, 사랑, 존중, 공감, 이해, 호의)를 더 많이 지닌 채 살아갈 수 있다.

 

책에는 다양한 인터뷰와 사례가 등장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아선호사상에 상처를 입은 경우와

첫째라서 짊어진 삶의 무게 때문에 관계가 틀어진 사례는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들이었다. 애착에도 여러 형태가 있고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딸이 엄마의 인생사를 모두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엄마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고 엄마 또한 딸의 인격을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 그보다 더한 상처를 떠안고 살아왔다면 세상과 타인을 향한 비난과 원망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하면서 결핍을 애도하고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바라던 경험을 못했다는 사실 또한 애도해야 합니다. -p.116

 

읽어보길 잘 했다. 엄마의 인생을 존중하고 내 딸의 인생을 배려하고 그리고 내 인생을 토닥여주며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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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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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p.120​

​그저 꿈을 꾸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아만다.

그녀는 지금 열과 싸우며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기 이전의 시간에 대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가 쓰러지기 전 만났던 이웃 여자 카를라와 그 여자와 얽혀 있는 기묘한 사건은 자신의 아이 니나와도 연관이 있다.

 

소설은 아만다와 이웃 여자의 아들 다비드의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의 요지와 과정이 암호처럼 이루어져 있고 원인에 대한 추측도 독자의 몫이다. 목소리로만 들려주는 긴박감과 정체 모를 원인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에 눌린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내가 뭘 읽은 거지?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간이 두 손으로 저지른 끔찍한 결과에.

어린 니나가 엉덩이에 묻은 물을 털어냈을 뿐인데 왜 손이 따가운 건지에 대해 간호사는 일사병 약만 처방할 뿐이다. 결국 그들이 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한 공포감을 불러왔다.

 

짐작하건대 이 마을은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 있다. 원인은 물에서 시작했지만 그런 물은 인간이 땅속에 뿌린 독성 비료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그렇게만 추측하고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 물로 인해 생명체가 죽어가고 기형아가 태어난다. 병원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듯하고 그 사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대책에 관한 내용이 없다. 사람들이 한 거라곤 고작 주술적 행위뿐이다.(그러한 다급함이 주술 따위에 의존하게 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책을 읽다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 팩트임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정확한 순간이 아니에요.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

다비드는 세세한 것의 중요함을 언급하면서도 어떤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자꾸만 다그친다. 아만다는 일어난 일들을 부정하며 마치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의 희생자가 된 것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구조 거리'라고 한다. 다비드 또한 아만다에게 구조 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다비드는 그 구조 거리의 중요성을 부각하려 애쓰지만 아만다와 니나, 카를라와 다비드 사이에서 그 구조 거리라는 게 중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의 삶에서 통하는 구조 거리는 대략 얼마쯤일까. 카를라와 다비드 사이의 구조 거리는 고작 일 미터였고 아만다와 니나가 함께 앉아 있던 그 짧디짧은 구조 거리라고 칭할 수 없었던 거리에서조차도 아만다는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었듯 그런 거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곧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라며 짐작할 뿐이고 예견할 뿐이고 조심하는 것 외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차를 조심하는 것 외에 드럼통을 조심해야 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두 번 읽으면서 굵은체로 이루어진 다비드의 대화만 연결 지어 읽어보았다. 이런 일은 언제나 서서히 일어나고 우리는 정확한 순간을 찾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다비드는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더 이상 가치가 없어요. -p.135​

다비드는 어린시절 자신이 묻어준 동물들의 죽음에 의구심을 품었고 사람들이 쓰려져 가는것에 대한 원인을 찾고자 했지만 아만다에게는 드럼통보다 니나의 생사가 중요했다. 다비드는 드럼통의 실체에 집중했지만 카를라는 저주 때문이라 여긴다.

 

실제 이 사건의 모티브는 아르헨티나의 환경문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야기에서 그 차이의 극명함을 볼 수 있었다.

벌레 같은 거요, 어디에나 다 있는. ​

다비드가 만들어 놓은 스물여덟 개의 무덤과 마을의 아이들이 실체일텐데 그들은 그 볼 수 있는 실체 앞에조차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결국 우리 두 손에 남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그저 따갑고 쓰라린 통증과 공허라는 실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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