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족 이야기 1 - 비밀의 샘 신비도서관
김춘옥 지음, 김완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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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주니어에서 아이들을 위한 의미 있는 책이 나왔다.

<길족이야기>라는 제목의 판타지 동화인데 꽤나 철학적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세상은 길에서 시작되고 길로 완성되는 것


아주 먼 옛날 사람 사이에 길이 없던 시절.

위태롭게 살아가던 인간 세상을 하늘나라 선녀가 개입하면서 길족이라는 종족이 생겨난다.

길을 만드는 길만족, 그 길을 다지고 돌보는 길찾족,

길찾족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족, 길만족의 발자국을 먹는 발먹,

길족이 만든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인 걸음족.

안타깝게도 하늘의 규율을 어긴 대가로 선녀는 샘물 지킴이가 되어 평생 노래를 해야 했고 그 대를 길만족이 이어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샘은 길족들의 생명수로 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서로의 다리가 되어주어야 될 길이 그렇지 못하면서부터다. 길을 소유하고 통제하길 원했던 길찾족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길찾족의 족장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새로운 길을 찾는 길만족들이 평화와 안정된 삶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겨 그들을 잡아 가둔다. 죽어라 일만하는 길만족과 그들의 발자국을 먹고 사는 발먹들은 길족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이 희생되는 불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졌고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비도덕적인 질서가 자리 잡은 것이다. 전반적인 줄거리를 보면 우리가 걸어왔던 잘못된 역사를 반추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열려고 하는 자들은 늘 그 길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맞서야 했다. 그들의 투쟁이 오래되면 될수록 희망의 가치는 빛이 났지만 희생은 컸고 아픔도 오래갔다.


그런 길찾족들의 눈을 피해 엄마와 살고 있었던 길새는 열세 살이 되던 해 운명이 달라진다. 길족은 열세 살이 되면 길만족 혹은 길찾족으로 DNA가 결정된다. 생일날 엄마와의 약속을 마지막으로 길새는 혼자가 된다. 길새는 누군가의 쫓김을 피해 길족 마을에 들어선 뒤 자신의 숨은 능력을 만나게 된다. 나무와 풀을 움직여 길을 연 것이다. 길새는 예상대로 길만족의 아이였다.

그런 길새곁을 맴돌던 길포는 사냥꾼임에도 길새를 돕는다. 궁금한것 투성이던 길새는 의심을 조금 걷어내고 길포를 따라나서다 사냥꾼들에게 붙잡히게 되고 어떤 동굴에 갇히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길새와 길찾족 족장 길모아와의 운명. 그리고 앞으로 길새의 활약으로 길만족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2권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길새가 길족마을에 들어섰을 때 길새는 유독 신발만 도드라졌던 길족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각각의 신발 분위기와 발자국이 닮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각자의 걸음으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각자의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살아간다. 가끔은 제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은 과욕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으나 어떠한 신발이든 제발에 맞추는 능력을 지닌 길만족의 능력만큼은 나도 물려받고 싶다.

길만족의 발자국을 신나게 먹어치우던 발먹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끼리 책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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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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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세계 원유 생산 10위를 자랑하지만 여러 부족간의 다툼과 종교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슬람교(북부)와 기독교(남부)로 나뉘어 대립을 하고 있으며 식민 체재에서 급격한 변동을 겪은 이보족들은 여전히 토착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96년 1월, 이보족이었던 벤저민 가족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은 그 어이없는 예언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미치광이의 주절거림이 불러온 비극에 고개를 절레절레하다가도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드는 그러한 일들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이 비극의 핵심은 아이들의 덜 영근 영혼 속으로 파고든 두려움이 문제였다. 파멸을 향한 예언의 화살은 정확하게 이켄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켄나의 운명은 이미 설계되어 있었다. -p.192 분명 보았다. 우리는 그 불행을 이켄나가 쏘아 올렸음을.


미래란 우리가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미래란 상상한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는 텅 빈 캔버스였으니까. -p.15


폭도와 학살이 난무하는 불안한 터전이라면 희망은 올챙이가 되고 증오는 거머리처럼 기생한다. 불안한 현실을 피해 갈 수 있는 곳은 종교뿐이다. 현실 부정과 종교 밖의 일들이 점점 무관심으로 밀려난다. 생명의 줄이 되어 줄 오미알라강을 버린 것도 그들이었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음험한 소문에 잠식돼 버린 것도 그들이었다. 화자인 벤저민의 아버지가 타지역으로 발령받은 후 여섯 아이들의 삶은 어머니의 손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가 쳐 놓은 안전망이 점점 끊어져 버린 뒤 아이들은 어부가 되어 자유를 만끽했다. 금지된 강에서 행해진 그 단순한 놀이에 끝없는 기쁨과 충실한 열성만 가득했다. 들키기 전까지.

1990년대 그 살 떨리는 나이지리아의 경제 속에서 아버지의 꿈은 거창했다. 아버지가 그린 아이들의 미래는 서구식 교육에 걸맞은 직업인으로 점쳐져 있었다. 그런 꿈과는 전혀 상반된 어부라는 단어가 주는 야만성에 모멸감을 느낀 아버지는 채찍을 휘두른다. 아버지가 원한 건 그런 어부가 아니었다.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닌 성공이라는 대어를 낚는 어부.

우리는 위협적이다.

우리는 거대 조직이다.

우리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p.54

아이들은 불완전한 존재다. 게다가 미약하다. 아버지의 채찍질은 엉뚱한 복수심을 낳고 아불루의 예언은 이켄나를 불안의 광기로 내몬다. 한낮 미치광이에 불과했던 아불루의 헛소리가 지나가는 비행기 소음에 완전히 묻혀버렸다면 미래의 캔버스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귓속으로 들어온 말들은 달팽이관을 지나 이켄나의 정신을 지배해 버렸다. 자신의 비참한 죽음이 두려웠던 나머지 두려움의 근원을 향한 분노가 결국 한 가족의 미래를 망쳐버렸다.

예언대로 끝났다. 작가는 한 가족을 무너뜨림으로써 광기의 처절한 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낱 미치광이에 불과한 아불루를 리바이어던으로 만든 건 그들이었고 두 아이의 죽음으로 끝났어야 할 불행의 불씨가 다시 오벰베과 벤저민에게 옮아 붙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했다. 두 아이가 다시 어부가 되어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갈고리를 보며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말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벤저민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나방이 되었고 데이비드와 은켐은 무해한 왜가리가 되었다. 어리석은 광기에 휩쓸려 찢겨버린 가족들의 모습에 착잡함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광기에 눈이 멀어버린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런 상흔을 남겼는지를 보았다. 신들이 파괴하기로 선택한 자에게 광기를 안겼다면 살기로 선택한 자들에겐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남은 무해한 아이들로 인해 회복이라는 가능성의 에너지를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에너지가 서로를 굳건하게 지탱해 줄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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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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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다. 침묵은 나의 무기였고 솔직할 자신이 없으면 피했다. 재빠르게 얼굴을 숨기는 거북이처럼 내 감정을 숨겼다. 고로 난 감정싸움을 극도로 싫어한다. <밝은 밤>에서 유독 신경이 거슬린 건 지연과 엄마,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였다. 반투명 막을 쓴 사연들은 그저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 하나면 충분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그녀들.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꼬일대로 꼬여버린 그 풀리지 않는 관계가 내내 명치를 건드렸다. 그들은 현재의 감정에만 집착하거나 포기하거나 잠복한 상태로 상대를 위한답시고 거리를 이~~따만치 벌려둔다. 끝내 할머니가 들려준 과거사가 그녀들의 거리를 좁히고 그 사이에 기름칠을 할것이라는 믿음이 어느 정도 통하긴 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피로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의 안타까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별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반짝이는 걸까. 어린 지연은 눈부신 희령의 밤하늘을 품었었다. 다시 희령을 찾았을 땐 엄마와 할머니가 벌려놓은 거리만큼 건너뛴 뒤였고 지연은 분풀이를 하듯 다시 엄마와의 거리도 벌려놓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 이혼 후 망가져버린 회로를 겨우 이끌고 내려온 이곳에서 지연은 할머니를 만났다. 어린 지연이 그랬듯 서른두 살의 지연도 할머니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지연은 당장 내 편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지연에게 최대한 예를 갖춘다. 쓸데없이 묻지도, 아픈 곳을 찔러보지도 않는다.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오히려 묻는 쪽은 지연이다. 할머니는 지연에게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다. 사진속에서 자신과 닮은 여인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던 지연은 처음으로 할머니의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증조모(삼천)와 그런 백정의 딸을 거둔 증조부. 백 년 전 시간을 거슬러 온 문턱에서 나는 한 남자의 순정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으나 그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증조모의 삶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정의 딸이라는 굴레와 아픈 어미를 버렸다는 죄책감과 남편의 무심함까지 견뎌야 했다. 그 외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건 서로의 처지를 헤아려 준 새비 아주머니였다는 걸 알게 된다.

지연은 그렇듯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다. 지연은 마음을 꺼내 씻어서 널어 두었다 다시 넣고 싶을 만큼 마음을 덜어내고 싶어 한다. 오랜 시간의 상처가 딱딱한 퇴적층이 된 지연은 과거에서 이유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의 삶을 이해하면 자신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이들의 뻔뻔함을 납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다시 혼자가 된 지연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자신이 개새끼 같다고 느낀다. 삼천과 새비 아주머니의 사연을 듣다 보니 감정 분출이란 걸 제대로 해 본 적 없던 지연은 그녀들과 어딘가 닮아 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삼천에게 외로움과 체념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가세가 기울때마다 시댁 사람들의 타깃이 되고 원폭 피해자가 되어 돌아온 남편이 죽자 쫓겨나게 된다. 곪아 있는 건 언제든 터질 준비가 되어 있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 반기의 시작은 새비 아주머니였고 자연을 포함한 통쾌함의 삼종세트가 반가웠다. 당신이 기러고도 인간이냐며 속시원히 시모에게 쏘아부치던 새비 아주머니, 한번만 더 그런말 했다간 당신 내손에 죽는다며 남편에게 날을 세운 삼천의 분노, 늘상 엄마를 무시하던 삼촌에게 지연이 쏘아올린 마지막 한방까지.

모든 관계가 한결같을 순 없다. 삼천과 새비아줌마, 희자와 할머니와의 관계 역시 전쟁의 굴곡에 휘둘린다. 그럼에도 그들의 관계는 어려울수록 빛을 발했다. 살뜰했던 편지와 애틋한 몇 장의 사진을 뒤로하고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은 안타깝지만 서로를 웃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사람들과 죽음의 그림자를 달아나게 한 따스한 손길들은 그녀들을 어디에서나 지탱해 주었다. 그러한 우정이 없었다면 그녀들의 과거는 온통 암흑이었으리라.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p.258

만남과 헤어짐 그 연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연은 헤어짐을 견디지 못한다. 그녀에게 이별은 늘 갑작스럽게 왔다. 언니의 죽음과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헤어짐, 그리고 남편과의 이혼. 자신의 감정은 늘 배제된 채 이루어진 이별 때문에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 늘 혼자였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는 지연에게 고백한다.

"내 얘기 들어줘서,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p 251

할머니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준 지연이 고마웠겠지만 오히려 지연은 마음의 동토층이 녹았음을 체감한다.

왜 우리는 그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주변과의 관계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찰나 같고 그 먼지 같은 시간들을 외롭게 버티도록 방치하는 것일까.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비 없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혼녀라는 이유만으로 침묵하고 감내해야 했던 여인들은 그들끼리 소통의 다리가 되어 그 험난한 시간을 지났고 지나가고 있다.

엄마와 지연의 대화는 매번 서로를 후벼파는 것으로 끝난다. 꼬여버린 관계 뒤틀리고 비꼬인 대화. 지연은 이해받지 못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엄마의 치부를 건드리는 방식을 택한다. 정작 자식에게 쓴소릴 들어야 하는 건 아빠 같은데 말이다. 딸 앞에선 욕설을 남발하는 아빠라니. 지연은 그 사이 길강아지 한 마리를 떠나보냈고 위험천만했던 사고도 당한다. 그녀들의 선택과 후회를 떠올리다 문득 이 지겨운 감정싸움의 끝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깨닫는다.

암호학자가 된 희자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을 잘 견뎌내기 위한 암호는 '내게 누군가가 있다'라는 믿음이 아닐까. 그러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의 밤은 점차 밝아질 것이다. 지금 내게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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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혜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9
크누트 함순 지음, 안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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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를 지나 숲으로 통하는 기나긴 길.

그 길을 낸 것은 누구였을까? -p.9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터놓은 길을 걷는다. 희미한 발자국 위에 포개어진 수많은 발자국들 덕분에 조금은 덜 고된 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땅의 혜택>은 그저 제목 하나 믿고 들인 책이다. 무언가 아주 바르고 정직한 삶의 흐름을 보여주리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역시 이야기는 그런 기대에 정점을 찍는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명제에 걸맞은 삶. 변수와 오차는 있을지언정 인간 삶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뿌리박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삶의 향수도 시대가 낳은 것이겠지만 지금도 그 가치를 찾아 도시를 떠나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한 남자가 황무지 위에 선다. 그는 그곳이 최적의 땅임을 안다. 흙을 만지며 사는 일. 그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의 거친 손은 자신이 정착할 곳을 알아차린다. 하루 또 하루 그의 노동이 황무지에 뿌려진다. 그렇게 잔뿌리가 퍼져가고 살림은 불고 운명의 짝까지 합세해 가족도 이룬다. 이제 그의 땅은 누가 봐도 탐이 날 정도의 폼새를 갖춘다. 그에겐 늘 계획이 많았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집을 짓고 헛간을 짓고 제재소를 짓고 그가 흘린 땀의 가치를 환산한다면 백만장자감이다. 이사크가 지나온 발자취를 부정할 이는 없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게 그만의 노고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잉에르를 보며 알게 된다. 인적이 드문 산속이지만 이사크의 흔적은 오가던 사람들의 눈과 입으로 전해지고 어느 날 그의 바람대로 집안일을 도와줄 처자가 찾아온다. 묵묵히 두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각자가 맡은 일을 척척해나가며 마음을 맞춰나간다. 그의 허풍과 그녀의 장단이 보통 농촌 부부의 모습이라 웃음이 났다. 작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똑똑한 사람도 바보로 만들고 바보도 똑똑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정의를 덧붙이면서.

이사크보다 사회성이 있었던 잉에르덕에 살림의 질은 나아지고 달달한 애정표현하나 없이도 순풍 순풍 태어난 자식들로 인해 황무지에 삶이 한가득 들어찬다. 분명 그녀는 굴러들어온 복덩이였다.

그럼에도 돈은 오로지 이사크의 주머니에서 들고나갔다. 첫째 아들에게 보낼 돈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내던져지다니. "두드려 패지 않으면 길을 들일 수가 없다니까."-p.180 순간 화가 났지만 이후 이사크는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만 보면 참으로 안정적이고 잔잔한 삶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일구어놓은 땅의 소유권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고 인근 광산을 개발한답시고 사람들이 꼬인다. 더군다나 잉에르는 셋째 아이를 낳자마자 죽이게 되는데 그 일로 형을 살게 된다.

그럼에도 감자가 없으면 목재가 있었고 목재가 없으면 가축이 있었고 잉에르의 노동의 빈자리를 대신할 여인도 있어주었으며 정직하고 성실한 그의 성품 때문인지 주변엔 좋은 이들이 더 많았다. 농장이 커져갈수록 아들들은 힘이 되었고 더 늙어 기운이 빠져갈 땐 잉에르가 손을 맞잡는다. 아들과 예초기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역시 웃음이 난다.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역전극이다.



이사크가 주의를 기울이며 씨앗을 뿌리고 경외심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을 때 밀레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그림들의 숨은 의미와 이 목가적인 삶이 일치하진 않지만 그림만 보았을땐 <만종>과 <이삭 줍기>속에 이사크와 잉에르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같았다. 그의 이름이 이삭과 닮아 있는 것이 의도한 것이겠지. 그런 정성이 통해서일까. 그의 땅은 날씨의 변덕에도 다른 땅보다는 상황이 좋았고 훗날 그를 영주라는 지위까지 올려놓는다.

1부가 끝나고 2부로 넘어가면 이사크가 일군 땅, 셀란로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또 한 여인의 영아살해 사건이 등장한다. 1부에 이어 2부까지 다룬 걸 보면 그 당시에도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이 한 문장은 잊히질 않는다. 왜 남자들은 벌을 받지 않느냐는 겁니다. -p.378

왜 지금도 남자는 책임을 지우지 않는 걸까. 함께 책임을 묻는다면 저출산 시대 이런 끔찍한 희생은 줄어들지 않을까.

잉에르의 변화 역시 눈여겨볼 점이다. 그녀의 삶은 언청이였던 삶과 후의 삶으로 나뉠 만큼 변화가 두드러진다. 수술 후 달라진 삶의 시선과 욕망의 크기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녀는 흉한 얼굴 때문에 봄을 빼앗겼다. 여름에는 자연의 것이 아닌 공기로 숨을 쉬었고, 그 바람에 육 년을 도둑맞았다. 하지만 아직 피가 뜨거웠기 때문에 가을에 이리저리 열기를 내보내야 했다.-p.448

그녀의 일탈로 이사크의 불안감은 커져갔지만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듯 그녀 역시 정상궤도를 찾는다. 어쩌면 언제나 큰 동요 없이 지내온 이사크때문이 아닐까. 감옥에 간 잉에르를 기다릴 때의 그의 마음은 순수 그 자체이기도 했다. 착하게 지내면 그녀가 빨리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정말 어린아이 같지 않은가.

평생을 땅을 일구는 자로 살아간 이사크. 그는 그야말로 몸이 닳도록 일을 하여 기적을 보여 준 인물임엔 틀림없다. 그의 주위로 모여든 자들은 땅을 사고팔기도 하고 땅을 견디지 못해 떠나기도 한다. 작가는 의도대로 땅을 선택하고 뿌리내린 자들의 삶을 축복하는 쪽을 택한다. 도시가 아닌 땅 위에서의 삶이야말로 허영과 분수를 일깨우고 단정한 숨결을 불어놓는 곳임을 깨우친다. 땅의 혜택이라 하면 부동산과 투기로 연결 짓는 지금 시대에 이사크와 땅의 혼연일체가 살짝 부담스럽지만 강조하고자 하는 건 진실되고 정직한 삶의 모습일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옳다고 인정해 주며, 서로 경쟁하거나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대신 손을 잡고 가지. -p.469

안타깝게도 지금은 자연과 상부상조할 것이 아니라 떠받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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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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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브로디는 1930년대 초 마샤 블레인 여학교 선생으로 재직중이었다. 그녀는 40대 초반의 독신 여성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과시하며 스스로 열린 교육을 지향하는 참교육자라고 여긴다. 노골적으로 선생이 아이들을 선별해서 무리를 만든 건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지만 학교에서 진 브로디 선생을 주축으로 한 브로드 무리를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그들은 이 위험한 브로디 선생을 따라 안전한 느릅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섰다. -p.15

근대와 현대 사이에서 오는 괴리와 혼란함이 진 브로디 선생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어쩌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충성과 배반도 혁명의 과도기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1930년대는 성별에 따른 노동의 차별이 심해지는 시기였으며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여성의 지휘가 상승하던 시기이자 전쟁 전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던 시기였다. 그러니 진 브로디 선생같이 진취적이고 독립된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가능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생겨난 전체주의는 여성들의 지지를 얻고자 달콤한 말로 여성들을 꾀어낸다. 진 브로디 선생의 파시스트 옹호가 이해될 수밖에. 브로디 무리를 전체주의라고 본다면 브로드 무리들에게서 그 허상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았다.

특이한 건 이름 앞뒤로 따라다니는 꼬리말이다. 이는 무리 속에서 각자의 색채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사주팔자를 보는듯해서 재밌다.

성적 매력으로 유명해질 로즈 스탠리, 돼지 눈같이 작은 눈을 지닌 샌디, 미모로 유명해질 제니,

아둔함으로 유명하고 언제나 욕을 먹던 스물세 살의 나이에 호텔 화재로 죽게 될 메리 맥그레거, 산술 능력이 뛰어난 모니카 더글러스, 체조 실력과 수영 실력이 월등한 유니스 가드너, 전학생으로 무리에 끼고 싶어 하는 조이스 에밀리. 그렇게 '브로드 무리'들은 튀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렇다면 진 브로디 선생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여학생들이 추종할만큼 신여성이자 진정한 교육자였을까.

통찰력이 뛰어난 샌디를 주축으로 무리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진 브로디 선생의 행적을 보면 그녀는 열린 교육을 지향한답시고 아이들에게 생활형 교육을 했다. 자신의 일상, 연애담, 미용, 예술 등 수업외의 것들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운다. 자신은 밀가루 반죽을 부풀릴 효모 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자신을 따르기만 하면 크림 중의 크림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저 나만 따라해~^^

자신의 전성기를 거들먹거리며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교양인임을 자처한다. 이미 학교장은 그녀가 탐탁지 않아 쫓아낼 구실을 연구 중이지만 브로디 선생은 언제나 한 수 위다. 하지만 오를 대로 오른 자존감은 자만심으로 변질된다. 브로디 선생은 점점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행동을 용납하지 못한다. 자신은 끄집어내는 교육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던 셈이었다.

내 선생님. 교양 넘치는 여자였지. 그 여자 자체가 에든버러 축제나 다름없었다고나 할까. 자기 아파트에 불러 차를 내주고 전성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

..

하지만 미친 사람은 아니었어. 미치긴, 말짱했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연애 이야기도 전부 해줬거든. -p.36


무리가 주는 희열감은 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진 브로디 선생의 모든 것들이 소녀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중에도 '의심'이란 감각이 유독 발달한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무리 중에서 통찰력이 뛰어났던 샌디는 진 브로디 선생의 허상을 마주한다. 샌디는 중등부 과학수업과 브로드 선생의 수업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고 도덕적 판단 앞에서 갈팡질팡한다. 한 무리의 파시스트를 보며 우리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혐오감이 일다가도 그마저도 브로디 선생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렇지만 결정적 진실이 드러나고 만다. 훗날 수녀가 된 샌디는 그의 에든버러와 다른 사람들의 에든버러가 달랐음을 깨닫는다.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이제 끝이 난 것 같아. 계속 누가 자기를 배신했는지 알고 싶어 하거든. -p.167

대부분 인생의 가치관은 청소년기 때 형성된다. 샌디가 좋든 싫든 자신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람을 진 브로디 선생이라고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러하다. 브로디 선생을 향한 반항이든 질투든 미술 선생과 연애를 하고 수녀가 되어버린 샌디가 여전히 그녀의 영향력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의 열정이 결국 삐딱한 방향으로 흘러간 듯 보이지만 자유롭던 그녀의 삶은 확실히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누가 크림 중의 크림이 된 걸까.

샌디?!

로이드 선생이 그리는 그림마다 브로디 선생이 보인다고 말하는 샌디. 브로드 무리를 그린 그림에서조차도 브로디 선생 하나로만 보인다고 말하는 샌디. 그만큼 브로디 선생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전성기를 맘껏 드러내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배신자를 색출하지 못한 억울함이 남아 있어 보인다.

샌디, 언젠가 넌 선을 넘고 말거야. -p.31

하지만 난 배신자가 나오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 -p.52

누가 날 배신했는지 알면 좋겠는데. 내 제자 중 누군가 날 배신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야. -p.79

언젠가 넌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고 말거야.-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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