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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평점 :
예전에도 철학 입문서라는 타이틀을 내건 다양한 짜깁기 책은 즐겨 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그런 책을 읽으며 좀 더 깊이 있는 책을 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늘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요즘 세계고전문학을 읽으면서 철학적 사유가 왜 필요한지 많이 느끼고 있다. 덕분에 어려운 철학 책도 도전해보고 싶을 만큼 흥미가 생겼다. 그런데 자유론을 여태 못 읽고 있으니.ㅋ
이 책은 그런 흥미와 깊은의 중간단계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맨 앞쪽 연대표는 철학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책의 장점이라면 챕터를 마무리할 때마다 다음에 나오는 철학자를 연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철학자들이 친분이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서로 적대적 관계는 누구였는지 알게 되고 부딪히던 사상들의 논점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질문 많던 소크라테스부터 현대 철학자 피터 싱어까지 시대를 주름잡던 철학자들을 한 번에 살펴봄으로써 좀 더 철학의 문을 넓힐 수 있다.
수백만 명의 삶을 변화시킨 마르크스가 악필 때문에 아내가 글을 받아 적은 일화나,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외로운 천재였다는 사실, 건강 마니아였던 토마스 홉스(91세까지 살았다),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한 칸트 등의 일생 이야기는 지루한 철학 책에 조미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힌다. 무조건 사상과 철학자의 이름을 연결 지으려 하기보다는 이런 구성이 더 잘 들어와서 술술 잘 넘어갔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에피쿠로스학파부터 철학을 일종의 치유법으로 여긴 점만 보아도 인간은 늘 의심하고 반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치 대 학살의 아이히만처럼 생각 없는 동물로 전락하여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혐오스러운 존재로 남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조차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고, 의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선의 선택은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확신하지 말라. 그러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회의론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 p.28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을 시간이 흘러도 동일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실재는 무엇인가. 등의 물음부터 인간의 본성과 양면성, 신의 존재 유무와 신에 대한 다양한 견해, 영혼과 육체, 죽음, 종교, 행동의 원인과 결과, 행복, 자유 등 철학자들의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또한 여러 사상들 중 일부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옷이 되기도 하고 여전히 현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논쟁거리가 되어 오고 있다.
생은 불합리한 일들 투성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생명, 자유, 행복, 재산에 대한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고 말한 로크의 주장이 여전히 당연시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오래전 그리스철학을 들여다보며 그러한 불합리한 일들 속에서 결국 행복의 주체도 자기 자신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스토아 철학뿐 아니라 키케로와 세네카가 주장한 견해는 요즘 트렌드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은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며 결코 인생은 짧은 게 아니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이처럼 여러 철학자들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자도 있지만 비관론자들도 존재했다. 이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에 기인한다. 인간은 어렵거나 자신이 분리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지 않다. 홉스의 주장처럼 인간에게 무한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사회는 자연상태 즉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야만사회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극단적 비극으로 보기도 했지만 삶을 견딜 만하게 하는 몇 가지의 경험 중 예술을 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의지 그 자체의 모방이기에 최고의 예술형식이라고 했다. 난 그의 견해에 굉장히 공감했다. 음악 하나로 삶의 변화가 일고 그날 하루의 기분도 달라짐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비긴 어게인 프로를 보다가 버스킹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그 느낌이 나에게도 전해지는듯하다.
재밌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육체는 동일할지언정 인격체는 다르다는 견해를 보며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한 인격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고, 영혼과 육체가 하나일까라는 질문에 죽은 사람의 육체를 어떤 의술로 다시 살렸을 경우 그 사람의 영혼까지 돌아올까? 하는 질문은 나를 꽤 혼란스럽게 했다. 정말 한참 떠난 영혼이 제 육신을 찾아올까 아니면 다른 영혼이 들어올까. 무슨 공포영화같이 들리기도 한다.
오래전 질문을 많이 해서 사형당한 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그가 있었기에 철학적 정신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늦더라도 인간들이 벌여온 논쟁과 이슈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미친 영향력이 얼마큼이었는지 한 번쯤은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짧게나마 여러 철학자들과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요지를 들여다보며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