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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평점 :
섬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건너편에 있는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늘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고 완전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일이다. - p.309
아조레스 제도 : 북대서양 중부에 있는 포르투갈령의 화산 제도. 상미겔, 산타마리아, 파이알, 코르보, 피쿠, 상조르, 플로레스, 그라시오사, 테르세이라의 9개 섬으로 되어 있다. 카조레스 해대(海臺)상의 여러 화산이 해면 위로 돌출하여 생긴 섬들로 화구(火口)나 온천이 도처에 있다. 과일 · 포도주를 수출. 휴양지로서 유명함. 주민은 포르투갈계를 주로 한 혼혈이 많음.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누구나 자신만의 섬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섬처럼 두는 이도 있고 자아를 찾아 섬을 찾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합류하길 권한다. 일상과는 동떨어진 특별한 경험은 분명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소비의 가치를 매기자면 여행만 한 것이 없으니까.
저자는 플리처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진 기자다. 이력만 보고서는 뭔가 대단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섬 여행기를 들춰보니 그녀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물론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상 몸이 조금 자유로워 보인다는 것 외엔 캘리포니아의 가뭄처럼 그녀의 일상도 어딘가 결핍되어 있는듯했다.
그녀에게 아조레스 제도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동료 사진 기자가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이야기를 찾기 위해 그곳을 찾기 전까지 말이다. 단순히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은 곳, 그곳에서 소를 모는 한 남자는 "저는 이렇게 삽니다"라며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도시에서 살다 아조레스 땅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그 땅이 전하는 기운을 사랑하고 있었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저자는 아조레스에 대해 찾아보게 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섬에 이름을 올린 것만 보아도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섬의 역사와 전통, 전설을 찾다 보니 그리움을 표현한 한 단어 '사우다지'가 궁금해진다.
얼마 전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에서 포르투갈의 파두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었고 노래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네 '한'이나 '정'에 담긴 무수한 의미처럼 '사우다지'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는 이 섬 체험을 통해 사우다지를 경험하게 된다.
처음 이 책이 섬 여행기+ 에세이라고 생각했던 의도는 조금 빗나갔다. 작가의 섬사람 체험기 + 사랑 찾고 자아 찾은 이야기가 더 맞겠다. 나처럼 여행에 목말라있거나 섬과 소와 새와 수국을 좋아하는 자연인에 가깝다면 아조레스에 대한 환상이 충분히 깃들만한 곳이다.
그러나 가보지 않은 모든 길,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모든 삶 역시 우리 인생의 일부가 아닐까? 사람이나 장소, 기회, 변화를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열망하는,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리움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의 깊숙한 구멍을 만든다. 사우다지가 번역할 수 없는 온전한 포르투갈 단어일지는 몰라도 가슴 아픈 열망은 보편적인 마음일 것이다. -p.297
인생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럴 때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녀가 회사에서 잘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대신 살고 싶어 아조레스로 떠난 것처럼 말이다.
아조레스가 그녀의 열 번째 섬이 되기까지 그녀는 섬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혼자 산책해도 안전한 곳,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곳, 신선한 치즈 맛을 잊을 수 없는 곳, 지천으로 피어 있는 수국에 섬 전체가 정원 같은 곳, 교통체증 없는 곳, 하늘, 바다, 와인, 빵... 그리고 뒤늦게 깨달은 사랑까지.
그렇다고 그녀가 섬의 좋은 면만 본 것은 아니다. 섬이라 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생활, 떠나고 떠나오는 이들의 헛헛한 마음, 구세대와 신세대의 충돌 등 섬사람들의 아픈 마음도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그녀의 천방지축 개 머피와 함께 한 일상도 사랑스럽다. 온 동네 빵을 다 먹어치울 만큼의 먹성이 놀랍기도 하고 아무도 못 말리는 사고뭉치라 때론 감당하기가 버거워도 그녀 곁에서 함께 머물며 섬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아조레스는 저자에게 잊고 살았던 진정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섬만이 발산하는 매력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저자처럼 삶과 사람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만 같다. 저자도 그랬기에 한 번, 또 한번, 다시 그곳을 찾았을 테지만.
나를 안고, 내가 기댈 섬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