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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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시간 단위가 10분이라면 책은 없어지는 건가? 우습지만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엘리스 죽이기> 시리즈는 딸아이가 유독 좋아했다. 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작가의 신작이라면 두 손들고 환영할 것 같았기에 이번엔 내가 먼저 읽어 보았다. 소설에 던져진 화두 '기억이 10분마다 사라진다면?'은 분명 아이들에게 수많은 가설과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볼 수 있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측면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유익할 것 같았다.

 

요즘은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때 자동 임지 저장 기능이 있다. 몇 분마다 할 건지 선택할 수 있어 혹시나 컴퓨터가 뻗더라도 작성 중이던 글을 살려낼 수 있다. 이런 편리한 기능이 있기에 인간은 단기기억을 살려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낼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인간은 그런 단기기억들을 잘 모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어느 날 여고생 리노는 방금 전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이 없음을 눈치챈다. 심지어 자신이 적은 메모조차도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상태다. 마치 10분 간격으로 포맷이 되고 있다고 할까. 이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뉴스 앵커는 원고를 읽다 식은땀을 흘리고 119구급 대원은 우왕좌왕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같은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끔찍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 이 노트는 생명 다음으로 중요! 진짜라고! -p.56

 

이는 분명 엄청난 재앙이다. 인간에게 지력이 사라진다는 건 퇴화와 소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가설은 여기서 막을 내리지 않는다. 리노가 메모를 하고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 직감으로 위기를 넘겼듯 인간은 생존을 위한 지력을 다시 쥐어짜낸다. 기억이 사라진 차리. 그 틈을 메우는 역할은 마음(직감)뿐일까.

 

 

 

2부에서는 대망각 이후의 삶이 과연 어떠한 양상을 띄게 될까에 대한 다양한 예시가 등장한다. 인간은 단기기억의 소멸로 기억을 외부에 저장할 메모리칩을 개발하여 생존을 이어간다. 심지어 기억을 보관하기 위해 온갖 곳에 메모를 붙여 놓기도 하는데 과연 기억과 메모에 의존한 삶을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망각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후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설령 기존의 가치관에 위배되더라도 역사 속에서 가치관도 진화하고 발전해왔듯이 삶의 방식은 바뀌기 마련이다. 특히 대망각시대 이후의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시간을 저장한다. 장기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 단기기억에 의한 메모리 기억으로 살아갈 뿐이다.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지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상상의 세계를 떠다녀 보았다. 메모리 회사의 실수로 쌍둥이에게 똑같은 기억이 삽입된다는 설정이나 교통사고로 딸의 메모리를 삽입한 아빠의 이야기나 거액의 돈에 자신의 메모리를 대리시험으로 빌려준 남자의 이야기는 기억이란 저장매체와 마음이 하나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기억이 마음일까? -p.157

 

개인에게 기억이 마음대로 바뀐다면 삶의 기준점이 사라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마음까지 분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정이지만 마음을 분리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육체는 단지 기억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해지자 육체를 뺏는 이들도 생겨난다. 이는 인간의 삶이 아니다. 저장 장치를 단 기계일 뿐.

 

그렇다면 저장매체가 없이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 그들이 문명을 피해왔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공동체 무리에 도착한 나나는 메모리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말한다. 장기기억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생존에 필요한 축척된 생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실수를 바로잡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윤리적 문제와 부딪힘을 알고 또 누군가는 반문하지만 나나는 외부 장치를 써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문명이 저지른 잘못을 또 다른 문명의 힘으로 억지로 수정하지. 그 결과 또 다른 잘못이 일어나고 이런 일을 되풀이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야. 우리는 그 연쇄를 끊겠다고 결심한 거야. 안 그런가? -p.233

 

결국 인류는 인형처럼 누군가의 기억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기억뿐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상까지도 옮겨오게 된다고 설정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당에게 메모리를 삽입해놓고 영혼을 불러온다는 설정이 코믹하긴 했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관은 다시 형성된다. 그래야지만 인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에.

 

이야기가 끝으로 갈수록 김영하의 <작별>과 비스름해져 가는듯하다. 결국 몸뚱이는 없고 목소리만 남은 세상(폐기되지 않은 메모리). 그걸 영혼이라 부르기는 좀 우스운 감도 없잖아 있지만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가 전혀 낯선 결말은 아니다. 기억을 저장한 홀로그램이든 로봇이든, 그 상황이 현실이든 가상이든, 중요한 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할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인간은 지력 있는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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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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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풍이 이런 건지, 아님 일본의 가치관들이 우리를 한참 앞질러가는 건지 궁금해진다.(아님 내가 올드 한 건가? ㅋ) 요즘처럼 혼족 라이프가 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공동체 라이프가 쉽지만은 않다. 나조차도 낯을 가려 하숙은 해본 적이 없거니와 다른 이들과 섞여 산다는 것에 피곤함을 먼저 느끼기에.

 

여섯 편의 이야기가 모여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구조라서 책장은 빨리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읽은 <불운과 친해지는 법>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서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 이 소설은 <시스터>속 동성끼리의 사랑(고등학생과의)도 있고 <벽장 속 방관자>의 당최 이해불가한 설정도 있다. 마지막 <마와타 장의 연인>속 결말에 놀란 독자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마와타 장은 하숙집이다. 한 지붕 아래 모여사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가족처럼 잘 지낸다. 청춘들이 모여사는 곳이기에 첫 만남의 설레임도, 사랑의 밀당도, 이별의 상처도 있다.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옆에서 이끌어주고 이해해 주고 다독여주는 이들의 모습은 늘 그렇듯 독자를 훈훈하게 한다.

 

 

<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이라는 타이들은 사회로 향하는 청춘들이라고 빗대어 말할 수 있겠다. 하숙집에 거주하는 이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이제 갓 피어난 청춘들이 모여 일상을 살며 웃고 운다. 하숙집은 마치 자취생활 이전의 수습 기간 같은 공간이다. 하숙집 주인이 해 주는 따뜻한 밥과 공동체 공간을 위해 서로 배려하며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로 뛰어들기 직전 조금은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처럼 여겨진다.

 

야마토 요스케는 바다(도쿄)로 향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 물론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기도 했고 친구의 독설 따위도 자기 기준으로 멋들어지게 해석한 덕분이기도 했다. 순진하고 눈치 없는 매력이 맘껏 드러나는 친구랄까. 게다 응큼한 구석도 있다. 여학생 아니 여자의 온몸을 훑어보며 야릇한 상상도 한다. 그가 발을 들인 마와타 장에서 벌써 첫눈에 여자애에게 꽂히기도 한걸 보면 본능인 건가? ㅋ 그녀를 보며 천연 공기청정기 같다고 한다. 음. 나도 궁금해지네. 공기청정기 같은 그녀가.

 

시작은 요스케가 열었지만 요스케가 인사를 나눈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둘씩 펼쳐진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들을 순진한 요스케가 이해할리 만무하다. 오죽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여자친구 집에서 동거 중)를 보며 알콩달콩한 모습에 그 사람들만 정상이다. -p.187라고 느꼈을까. ㅎㅎ

하지만 어느새 학교 선배에게 그들을 소개할 땐 다른 감정을 느낀다.

 

"구지라이 고하루라고 체구는 좀 크지만 성격이 좋은 여대생과, 무뚝뚝하기는 해도 사람들을 잘 챙기는 쓰바키 씨, 그리고 진짜 수수께끼에 싸인 주인 여자."

그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가슴속에 따끈한 것이 점차 퍼져갔다. 마치 가족을 소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p.204

 

서로를 알아가면서 알게 된 상처들을 마주한 요스케는 점점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라고 넌지시 건네는듯하달까.

 

상자 속 고양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지만, 고양이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p.219

 

사랑만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싶다가도 그러한 애씀이 있기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17년 전 마와타 장의 전설?에 얽힌 두 주인공, 하숙집 주인(와타누키 치즈루)과 그녀의 내연남(지마 세우)의 러브 스토리가 굵은 줄기를 이루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 않아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다시 보면 그들만의 사랑이고 행복 찾기에 굳이 나의 잣대를 씌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미 상냥하던 쓰바키씨가 한바탕 쏘아붙이기도 했고. "같은 여자로서, 당신을 경멸해" -p.279

하숙집 주인 와타누키의 말처럼 이야기 속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말도 나눌 수 있으니까.

같이 추억을 쌓을 수 없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정말 고문이기에. 그들의 방식에 응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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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걸 -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야 했던 클로뎃 콜빈 미래그래픽노블 4
에밀리 플라토 지음, 이희정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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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여전히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다운 삶, 인간으로서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피부색, 언어, 지역에 따라 인간들은 서로를 차별하고 배척하고 밀어낸다. 아주 오래전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온 흑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흑인운동의 시초가 된 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불씨를 지피고 희생한 이들은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그들의 불씨가 타오르기 전에 곳곳에서 작은 불씨를 피워댄 이들이 있었다. 크게 이슈가 되진 못했지만 그들의 작은 행동은 큰 불씨를 지피는 연료가 되었다. 여기 작은 소녀 클로뎃 콜빈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우선 일러스트가 간결하고 심플하다. 색상은 많이 제한되어 있고 인물의 묘사나 동작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그만큼 역사적 아픔을 강조하려 한 의도가 보인다. 서술 방식 또한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흑인이에요. -p.11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간접적으로 사건 현장에 놓이게 된다. 억울한 상황에서 느꼈을 분노의 크기와 고통의 깊이에 대해 조금씩 와닿게 된다. 나와는 다른 환경의 누군가가 되어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키워볼 수 있다.

 

 

 

 

백인들이 흑인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지배했을 때는 더 참혹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콜빈이 살던 그 시절(더 이상 노예는 아닌)의 흑인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백인들은 노예제가 없어졌음에도 흑인들을 인간 이하 취급을 했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생활권에 흑인들이 함께 하는 것을 불결하게 여겼다. 법적 장치(짐 크로 법)를 마련해 철저히 흑인들과 분리된 삶을 누리려 했다.

 

1950년대 미국 앨라배마주, 이곳엔 '짐크로 법'이 있었다. 그 법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악법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법이 얼마나 부당한지 느낄 수 있다. 백인이 우위인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동네에서 클로뎃은 변호사를 꿈꾸던 소녀였다. 사건은 학교 가던 버스 안에서 벌어진다. 당당하게 요금을 내고 흑인 전용 자리에 앉았음에도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부당함에 저항한다. 하지만 결과는 경찰에게 얻어맞고 모욕적인 말을 듣고 구치소에 갇히고 만다.

 

이에 부당함에 반기를 든 이들이 소송을 하고 몸소 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버스 승차거부와 같은 운동을 시작하지만 법은 백인들의 편이었다. 클로뎃은 좌절했고 변호사의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난다.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클로뎃처럼 버스 승차의 부당함과 싸우게 된다. 그녀는 더 당당했고 많은 흑인 여성들이 반발하면서 버스 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다. 거기에 루서 킹 목사 또한 지지자로 나선다. 반면 백인들의 위협은 더 악랄해지고 비열해진다. 마틴 루서 킹은 39살 나이에 암살당한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클로뎃도 용기를 얻어 다시 증언을 하게 되고 그런 비슷한 일을 경험한 다른 여성들도 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은 현재의 그들보다 미래의 흑인들을 위한 투쟁이었으니까. 비록 그들은 승리했지만 클로뎃의 이름은 지워졌다. 우리는 여기서 기억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힘을 보태었는지를. 인종 분리법의 상처가 아물어 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힘없고 나약한 이들이 있었기에 바뀔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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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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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바다 바람 하늘

바다 바람 하늘 + 언덕이었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겠지만 이곳엔 언덕 따윈 없고 차가운 콘크리트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왜 이곳에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는지 친절한 설명은 없다. 단지 이야기 흐름 속에서 단서를 찾고 추측할 뿐이다. 세상은 대격변(종말)을 겪었고 어떤 무리는 살아남아 벽을 세웠고 그렇지 못한 무리는 세상을 떠돈다. 더 이상 지구촌은 하나가 아니며 생존을 위한 투쟁만 남는다.

 

벽안의 사람들은 벽안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벽을 지키는 일을 중시한다. 세상은 이분법화되었다. 살아남은 자와 떠도는 자, 벽을 지키는 사람들(경계병)과 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상대), 벽 이전(기성세대)과 벽 이후(우리), 빼앗기는 자와 뺏는 자, 작게는 벽 위의 시간(근무)과 이후의 시간(제대).

 

먼 미래 어쩌면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그에 따른 혼란으로 사람들은 분열된다. 망가진 지구에서 더 이상 인간의 존엄과 인간다운 삶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천연자원은 바닥나고 물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귀해진다. 대격변이전 시대의 삶(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사라진지 오래고 가진 것만이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어벽을 치고 지켜야만 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이 그렇듯 출산도 쉽지 않다. 대격변 이후의 가정의 개념 또한 달라진다. 콘크리트 벽만큼의 세대 간의 벽이 세워졌고 남녀 간 사랑보다는 번식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는다.

 

 

 

벽안의 사람들은 벽을 지키기 위해 2년 동안 복무를 해야만 한다. 선택지는 없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카바나도 두려움을 안고 벽 위의 첫 발을 내디뎠다. 추위와 긴장과 싸워야 하지만 진짜는 상대(침입자)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상대들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바다로 추방된다. 상대들을 막지 못했기에 그들과 같은 삶으로 내몬다. 거의 사형선고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기에 사회적 대우도 다르다.

 

 

벽만 바라보고 서 있는 곳. 보이는 거라곤 바다와 하늘 피부로 와닿는 거라곤 바람(추위).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울림은 두려움. 그는 시간을 계산한다. 계산하면 더 빨리 지나갈 것처럼. 12시간 근무를 하고 교대를 서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시간의 흐름만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은 더디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훈련은 긴장감을 주지만 지루하진 않아서 할만하다. 하지만 삭막해 보이는 그 공간에도 온기가 있다. 그냥 인사하고 싶어서 온 거야.-p. 59라며저 온기를 전하는 동료와 근무 시 따뜻한 음료를 배달하는 조리사(그녀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와 썸을 타게 되는 히파는 군 복무 생활을 좀 더 산문에 가깝게 해 준다.

 

그는 대위와 병장의 지도 아래 조금씩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스스로 특별하고 싶었지만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차츰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위안을 얻게 된다. 다만 적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은 의문이 든다. 그가 그들의 고달픈 삶을 잠시 떠올리는 모습은 분명 연민이었으니까.

 

누구보다 대원들을 챙기고 임무에 충실한 대위는 그가 본받고픈 인물이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훈련은 대원들끼리 더욱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격변 중이고 안전을 찾아 떠도는 자들은 벽을 넘으려 한다. 그리고 폭풍이 치던 어느 날, 정전이 되던 어느 날, 벽에서 긴박한 총성이 울리기 시작한다.

 

망가져버린 세상에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어야만 한다면 인간 세상은 나아갈 수 있을까.

벽은 물리적인 의미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더 이상 품어주지 않는, 선택당할지 말지에 놓인 세상은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 대위가 강조한 거짓 없는 세상. 혹은 거짓으로 세워진 세상 또한 서로를 품을 수 없다.

 

카바나는 바다 위에서 해적을 만난다. 치열한 생존의 끝은 동물처럼 본능만 남는다. 그는 눈앞에서 그런 현실을 보았다. 동료를 또 한 번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는 히파와 함께 떠돈다. 희망을 찾아 내려가는 남쪽. 기적과 같이 그들 앞에 도움의 사다리가 내려진다. 그가 벼랑의 끝에서 본 희망의 사다리 앞에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더 이상 인간의 믿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그들이 만난 생존자는 카바나와 히파에게 인간 등불인 셈이다. 그들이 진짜 등불을 밝히며 그 아름다운 불꽃에 온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분명 그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난민, 불법 이민자, 나라 간 장벽,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자국 이기주의, 세대 간 갈등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다. 서로가 잘 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슈들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것이 진정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제임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가 벽을 세울지 말지를 결정했다면 그 벽을 넘을지 무너뜨려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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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초록 - 어쩌면 나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노석미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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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지만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이따 보니 유독 표지에 혹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문학동네 신간 코너는 위험하다. 있는 책이나 열심히 봐야지 했었는데 또 들였다. 오래간만에 그림도 보며 방콕의 답답함을 씻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변명을 덧붙이면서.

 

저자는 홍대 회화과 출신으로 이 책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으며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려서 고양이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글을 보면 작가의 인생 코드가 보이겠지만 우선 그림, 글, 자연, 전원생활, 고양이... 등등 작가의 인생 코드가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반가웠다. 저자는 자신만의 라이프를 일찍 찾았다. 땅을 찾아 집(개집을 뻥 튀긴 거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부럽)을 짓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전원 라이프(고양이를 키우고 잡초를 뽑고 과실나무를 심고 장작을 베는 등)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운명처럼 자신의 터가 되어준 양평의 보금자리에서의 생활이 어디 말처럼 아름답기만은 할까. 집을 세우면서 도 오래전 땅주인이었던 할아버지의 불편한 심기를 느껴야 했고 시골 인심도 예전 같지 않은지 오래되어 텃새와 편견(결혼 안 한 나이 많은 여자의 독신라이프)에 잘 대처하는 법도 알아야 했으며 나이 많은 이웃들의 충고와 잔소리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의 불필요한 시골 인심이라면 오지랖이 아닐까. 고양이 따위를 왜 키우느냐. 잔디는 뭣하러 심느냐. 길냥이들 밥은 왜 챙기느냐. 지면 흉한데 목련은 왜 심느냐 등등 사소한 참견들에 피곤하기 마련이다. 물론 득이 되는 조언들도 있다. 나무는 심는 위치가 다 다르고 토양에 따라 생사가 갈리기에 이웃분의 조언은 고급 정보다. 그렇듯 오래오래 내 터에서 자알 지내려면 동네 분위기에 맞추며 살아야 한다.

 

나는 이제야, 강가에 서서 아까 흐른 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자각하고 있는 이 찰나 역시 계속 다른 찰나로 교체된다는 것을 배운다. -p.62

 

 

 

 

그렇게 시작된 전원생활은 사계절과 함께 무르익어간다. 남쪽을 바라보는 집안에서 느끼는 따스한 햇살과 집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저자의 예술적 감성을 깨우기 충분해 보인다. 그 소박한 창으로 보이는 멋들어진 사계절 풍경이 정말 탐날 지경이다.

 

하지만 전원생활은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저자는 집안 밖을 가꾸는 일부터 농사(소박), 애완묘와 길냥이까지 돌본다. 토마토와 마늘농사에 전문가가 되고 목화까지 도전한다. 게다가 월동준비 리스트를 보니 만만찮다.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사계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리틀 포레스트> 영화도 떠올랐다. 계절 속 저자의 일상이 좀 더 현실적이지만 말이다.

 

전원생활하면 벌레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지인은 모기가 싫어 캠핑도 다니지 않는다. 전원은 모기뿐 아니라 파리, 벌, 뱀, 멧돼지 등 천적들이 활개치는 곳이다. 나는 뱀보다 지네가 더 싫었다. 실제로 보면 그 모양새가 정말 끔찍하다.ㅋ 저자는 파리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는데 진짜 귀찮은 존재긴하다. 잡아도 잡아도 어디서 그렇게 들어오는 건지 파리채에 끈끈이까지 총동원했던 그 옛날이 떠오른다.

 

 

 

 

 

유독 맘을 사로잡은 것은 반려묘와의 시간들이다. 오랜 시간 그녀의 혼족라이프를 함께 한 그 친구들은 그녀에게 있어 반려묘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냥이의 눈빛들을 잘 알기에 그녀가 그린 그림 속 냥이들의 눈빛이 참 좋았다. 다섯 마리의 냥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사연은 남 일 같지 않아 먹먹해졌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하자 애잔함에 한 번 더 쓰다듬게 된다. 첫째냥에게 뚱뚱하다고 구박 좀 그만해야겠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에서 나만 느슨해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연속에서라면 마음만은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 매우 초록하면 초록으로 꽉꽉 들어찬 여름이 떠오르지만 그녀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오전과 오후의 일상이 진한 초록빛같이 싱그럽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유니크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작가님 그림을 보니 나도 울 냥이를 한번 그려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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