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한 개 빙고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튼 동물 이야기 7
우상구 글.그림, 어니스트 톰슨 시튼 원작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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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다면 내 개를 사랑하라

 

며칠 전에 아역 연기자가 고양이를 학대했다며 비난을 받았다. 영상을 보니 액션이 다소 과해 보이긴 했다. 뭐 아이니 그럴 수 있고 앞으로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다. 문제는 부모다.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영상부터 올리고픈 맘이 앞섰나 보다. 그 한 번의 행동으로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나 아이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동물이 인간과 상상이상의 교감을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하는 놀라운 사연들 말고도 실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이들은 자신의 동물과 놀라운 경험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언어체계를 모른다 뿐이지 온몸으로 인간과 교감한다. 실로 그들의 행동에서 보이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섬세하다. 오랜 시간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기에 그 점은 정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시 영상 얘길 하자면 어떤 이는 그 정도로 밀치고 던진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며 오버하지 말라는 이도 있었다. 물론 죽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도 그 순간을 안다는 사실이다. 장난인지 폭력인지.

 

 

 

 

이 책은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튼 동물 이야기'시리즈의 7번째 책이다. 표지를 본 순간 작년에 본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건>의 저자는 보더콜리를 키웠었다. 유독 그녀의 남다른 반려견의 사랑에 인상 깊은 감동을 받았었고 마당 너른 집이라면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개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ㅎㅎ

나를 사랑한 개 빙고는 보더콜리 종이다. 보더콜리는 “농장의 양치는 개”로 불린다. 이 종은 영특하고 활력적이고 민첩하며 의욕적이다. 사람의 일을 잘 돕고 다정하며 냉철한 면도 있다. 그림만 보아도 멋지고 영리해 보이지 않는가.

책의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하며 그림을 그렸고 박물학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훗날 글을 쓰며 많은 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알렸으며 '동물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시튼 동물기는 사실적 동물문학을 그리며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다. 그만큼 인간들이 동물과 함께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빙고도 저자의 그런 마음이 더 드러난 책이다. '나'는 이웃의 개 프랭크의 용맹함에 반해 프랭크의 새끼를 입양한다. 이 개다! 싶은 생각에 이름도 빙고라 짓는다. 그 시절 농장에서는 주로 개들은 가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천방지축에다 너무나 강한 충성심에 일을 자꾸 그르치게 된다. 하지만 빙고는 그 어떤 개보다 동물적 감각이 뛰어났고 용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빙고를 잘 돌보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땐 이미 빙고는 초원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뒤다.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암컷 코요테와 함께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코요테뿐 아니라 빙고까지 미워하게 되고 인간과 동물의 보이지 않는 복수전이 오간다. 코요테를 죽이는 사람들, 인간을 보며 으르렁대는 빙고, 죽은 말에 독을 넣어 먹이로 던져놓은 사람들. 책 속 어느 인디언 부족 간의 전쟁은 확대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빙고는 늑대처럼 살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덫에 걸린 빙고를 '나'가 구해주고 돌봐주게 된다. '나'는 야생동물을 포획해 보상금을 받는 일에 빠져 있다. 평소처럼 여기저기 덫을 놓다 그만 제 덫에 손과 발이 걸리게 되어 꼼짝없이 코요테 무리의 식사가 될 신세가 된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빙고를 본 것이다.

 

빙고는 어떻게 '나'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동물의 본능적 감각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빙고는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으며 늘 자신을 신경 쓰는 마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이 이야기에서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한계가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는 죽을 때 주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친다고 한다. 하지만 빙고는 자신의 마지막은 자신이 제일 행복했던 공간에서 마치고 싶었다. 반면 마지막까지 인간의 이기심으로 빙고가 죽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절대 이 지구상에서 자연과 동물은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진심 어린 맘으로 돌봐주어야겠다. 중요한 건 반려견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겠지만.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 '나'가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끝까지 함께 있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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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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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모습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며 흘러간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성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상황과 변화를 유추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섬세하고 민감하고 예민하며 감성적이고 이성적이다. 어쩌면 남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태곳적부터 알고 있었기에 종교와 사상으로 억눌렀던 것은 아닐까.

 

과거 역사에서 여성의 출산 즉 생산능력을 더 중시하던 때가 있었다. 한차례 큰 전쟁을 치르고 나면 급격히 인구가 감소한다. 그럴 때면 아주 은밀히 출산장려를 독려하며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전략을 폈다고 한다. 이는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과정에서도 있었다.

 

전작 <시녀 이야기>는 워낙 화재성을 몰고 왔던 작품이기에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더군다나 충격적인 소재와 tv 매체의 절묘한 조합, 화려한 붉은 컬러가 주는 영상미 때문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했고 많은 이들이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뭐, 거의 다 여러분의 질문 덕이다!라며 후속작 증인들의 공을 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길리어드는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기형아 출산율이 늘어나자 어느 날 갑자기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남성들은 여자들의 이기적인 선택에 의해 줄어드는 출생률과 과도한 방종 및 과도한 허기로 인해 절제가 없어진 사회에서 절제를 위해 여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애초에 여자들에게 평등을 약속한 것 자체가 잔인한 짓이었어요. -p.256

 

우선 전편의 내용을 알면서도 내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성과 권력을 하나로 묶을 생각을 했으며 이렇게 잔인한 설정을 구상한 것일까. 더 이상 여자들에게는 그들을 나타내고 드러 낼 이름도, 문자도, 자유도 없다. 여자는 그저 정상적인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만 있으면 된다. 구멍의 역할은 들고나는 것이다. 여자는 그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된다. 아~~ 정말 소름 끼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원죄! 즉 태어날 때부터 여자인 몸뚱이는 남자의 욕정을 취하게 하기에 처음부터 온실 속 화초 같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반항적인 여자는 간음하는 음부가 될 뿐이다. 그저 한 떨기 꽃이 되어 최고의 신붓감으로 정상아를 순산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사회에서 남녀의 역할은 정확히 구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전편과는 달리 증언들에서는 길리어드 체재가 붕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희망을 안고 보았다. 붉은색이 아닌 안정감을 주는 녹색 컬러의 표지를 펼쳐보니 두 여인이 보인다. 모자를 쓴 여인과 머리를 질끈 동여 맨 두 여인. 띠지를 들춰내야만 볼 수 있는 소녀들의 내면까지도. 그녀들은 길리어드를 붕괴시킬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증언들>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의 녹취록과 수기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들의 삶 전반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일 윗 계급인 '아주머니'의 리디아 아주머니, 부모를 한순간에 잃은 캐나다 소녀 데이지, 이 책의 표지 모델이자 길리어드의 소녀 아그네스.

 

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자신들의 삶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은 길리어드의 시작점부터 다시 올라간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어떻게 아주머니 계급이 되어 그 자리에까지 올랐는지의 과정을 보며 엘리트 집단이라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훈련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덜 본능적이고 전투적이다. 그녀는 인간 본성의 밑바닥과 최상위 모든 것들을 맛보았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려면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자아를 찾는 일 따위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떨쳐버릴 수는 없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 p.49

 

 

결국 리디아 아주머니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치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길리어드의 눈을 속이고 또 속이며 더 철저하고 똑똑하게 속이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것이 단 1퍼센트의 가능성일지라도! 희망을 걸어본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아주머니, 시녀, 소녀, 아내들로 위치가 나뉘며 그들이 입는 옷 색깔로 구분 짓는다. 녹색 옷은 결혼을 앞둔 소녀의 복장으로 아그네스도 곧 녹색 옷을 입을 것이다. 대부분 철저한 세뇌교육 탓에 결혼을 당연시 받아들이지만 아그네스는 출생의 비밀과 급우의 자살 소동 등으로 혼란에 빠진다. 무엇보다 성인 여성의 몸이 할 수 있는 역할의 가치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피하거나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체념할 때쯤 리디아 아주머니가 찾아온다.

 

반길리어드 시위에 참가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데이지는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피살과 출생의 비밀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길리어드 안팎을 잇고 있는 끈이 자신임을 안 순간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는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엄마가 못다 한 임무에 대한 연장선에 서서 메이데이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진주 소녀(선교사업 임무를 지닌) 들과 접촉 후 길리어드로 숨어들게 된다.

 

 

 

 

 

사상과 종교가 변질되어 인간을 타락시키거나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교묘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길리어드에서 하느님과 성경 말씀은 여자들의 옭아매기에 최적의 시스템이었다. '아주머니'같은 충직한 성직자들이 필요하고 모든 공은 하느님을 향한다. 운명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열두 조각으로 잘린 첩'과 같은 성경 말씀으로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렇게 지상에 세운 하느님이라는 전체주의는 보이지 않는 '눈'의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리디아 아주머니는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그 견고한 전체주의를 흔들 수 있는 적임자임을.

 

철저히 길리어드의 체제에 길들여진 여자들은 순종적 삶에 익숙해지지만 그 속에서도 질투와 시기로 서로를 경계한다. 누가 더 높은 계급에게 간택 받는지, 누가 더 보란 듯이 정상아를 생산하는지, 누가 더 길리어드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지로 말이다. 음모와 살인이 조용히 일어나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소리 없이 데려간다. 저드 사령관의 성적 취향 때문에 조용히 죽어나가는 아내들을 보면서 버려지는 영혼들이 불쌍했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 모든 사건사고들을 보며 심경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길리어드 이전의 그녀의 직업은 가정법원 판사였다. 여성들의 성 착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베카와 아그네스를 아르두아 홀로 데려온 것이다. 계획대로 데이지까지 아르두아 홀에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비밀 파일들은 하나씩 열리고 긴장과 두려움은 배가 된다. 제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타이밍은 한 번뿐이다. 이제부터 모든 속임수와 친해져야 한다. 장벽에 내걸리거나 총알받이가 되는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모든 것들이 묻힌 채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치 꽁꽁 숨은 출생의 비밀들처럼.

 

전편에서 길리어드가 저지르는 만행 때문에 누적된 심적 스트레가 어느 정도 풀린다. 그 중심인물이 철면피 리디아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에 연민도 생긴다. 그녀는 안면 근육이 저릴 만큼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분노의 통증에 속은 타들어갔으리라. 석상은 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이 더할 나위 없이 귀하게 여겨지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의 디스토피아는 나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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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자들 -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미래그래픽노블 3
오언 콜퍼.앤드류 던킨 지음, 조반니 리가노 그림, 민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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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해 바다와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난민이라 부른다.

전쟁과 가난을 피해 떠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우리는 안타까워하지만 불법자라며 밀어낸다. 하지만 그들은 불법자들이 아니다.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밀어낸다.

뉴스에서 접하는 실상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우리들. 언제까지 그들의 삶을 외면하고만 있을 것인가. 정말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아이들은 난민들의 실상을 거의 모른다. 몇 권의 난민 관련 책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이 얼마큼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가늠하지 못한다. 심지어 내 아이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도 했었다. 뭐 성장하면서 몸과 마음도 함께 자라나겠지만 세상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에 밝은미래에서 출간된 그래픽노블책을 보면서 아이들에게도 효과적인 독서가 될듯했다. 이 책은 그들이 살기 위해 떠나지만 그마저도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는 힘겹고도 안타까운 고난을 담아내고 있다. 그림으로 보는 장면도 이런데 실상은 얼마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울까.

 

 

 

 

 

이보는 형과 함께 유럽으로 향하는 보트를 탔다. 하지만 그들을 배에 태운 일당들은 인간의 목숨보다 돈이 먼저인 놈들이다. 보트는 인원 초과에다가 연료도 얼마 없으며 심지어 물까지 새고 있다. 망망대해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보트 위의 사람들. 이러한 상황을 그림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건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이다.

 

이야기는 챕터별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이보가 현재 유럽행 보트를 탄 시점에서 어떻게 보트까지 타게 되었는지를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보는 가나 태생으로 삼촌과 형과 누나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가 먼저 떠나고 형마저 누나를 찾아 떠나면서 자신도 형을 찾아 떠난다. 그만큼 이곳에는 희망이 없었다. 오히려 이보에게는 형이 희망이었다. 열두 살 아이가 낯선 길 위에서 겪을 고난이 벌써부터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보는 누구보다 씩씩했다. 노래를 곧잘 부르던 이보는 자신의 재능으로 행운을 부른다. 버스도 공짜로 얻어타게 되고 결혼식 축가도 부르게 된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그곳에서 형을 만난 것이다.

 

혼자보다 둘이었기에 서로 의지가 되었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 21주가 걸렸고 건너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둘은 유럽으로 떠날 뱃삯을 모아 배를 탄다.

 

 

 

 

그렇듯 이보와 형이 탄 배가 가라앉을 위기에 처했다. 꼼짝없이 차가운 바다가 집어삼키는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그들에게 다시 한번 행운의 여신이 돕는다. 때마침 그들 주위에 난민을 태운 큰 배가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배도 이미 인원을 초과해서 운항 중이었다. 자칫하면 배가 가라앉거나 뒤집힐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지만 그들은 보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사막 위 트럭 안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과 물위 배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생과 사의 갈림길이 너무나 위태로워 보인다. 이보와 형을 태운 저 배가 무사히 유럽에 도착할 수 있을까.

 

 

 

 

지금도 난민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사연들뿐이다. 그들은 밀폐된 트럭에서 질식해서 죽거나, 바다를 건너다 배가 뒤집히고 폭풍으로 인해 배가 부서져 죽거나, 사막을 건너다 쓰러져 죽거나 누군가의 총에 쓰러져 죽기도 한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은 그들이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도착한 곳에서도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다. 난민을 더 받을 수 없다는 그들의 현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난민들의 여정에서 생과 사는 온전히 운에 달린듯하다. 이보를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의지가 먹히지 않는 현실을 보며 좌절감이 밀려든다. 그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불법자로 취급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원하는 건 안정된 터전이었을 뿐인데.

 

가난을 벗어나는 국가는 점점 늘어나지만 대신 그렇지 못한 이들을 포용하려는 마음들은 점점 줄어만 가는듯하다. 모두가 잘 살기는 힘들겠지만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불균형은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되어 인류를 위협할 테니까.

실상에 가상의 이야기를 더했다지만 분명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헬렌의 여정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 될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그들의 삶과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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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트 트립 - 일생에 한 번은 중세 미술 여행
김현성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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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불렀던 가수 김현성이 쓴 책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가수였던 그가 글을 쓰다니. 그것도 미술 책을! 그렇다면 나도 더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덤으로 하며 표지를 들여다보았다. 기억 속에서 오래된 그의 노랫말이 자동 재생되었다. 마치 옛 연인을 본 것처럼. 참 좋아했던 가수였기에~~^^

 

나도 그림을 좋아하지만(보는 것만.ㅋ) 중세 미술은 솔직히 그다지 아는 인물도 없거니와 종교 그림에는 그다지 감흥을 못 느꼈었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김현성의 글이 궁금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 적힌 그의 부탁 한 문장에서 작가의 진심을 보았다. 그런 작가의 고운 마음에 나도 진심을 다해 한 장 한 장 넘겼다.

 

“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귀하게 봐주기 바랍니다. ”

 

중세의 재발견, 조토 루트! 아마 역사와 중세 미술 책 어딘가에서 그의 그림을 보았겠지만 성당 안 벽화들을 보듯 감탄사만 내뱉었을 것이다. 작가는 그의 그림을 알기 전 그가 활동하고 꽃피웠던 땅으로 갔다. 아시시와 피렌체를 지나 파도바로의 여정 계획을 세우고 독자들을 이끈다. 마치 순례길을 걷듯 그의 발걸음에는 중세 시대를 향한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다. 미술사에 역사 이야기가 많이 배제될 수가 없기에 초반은 중세 역사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성당을 중심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미네르바 성당을 시작으로 성당 안에 작은 성당이 인상적이었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대성당, 조토의 벽화가 인상적인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따라가디보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들에 오래 머물게 된다.

 

 

 

 

 

조토는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을 그린 후 지금으로 말하자면 스타가 된다. 피렌체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 덕에 그림이 더 잘 보인다. 물론 회화의 뛰어난 기법이나 섬세한 묘사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사실적이고 정교한 배경 묘사도 볼거리다. 무엇보다 각각의 인물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마치 그림동화를 보듯 한 장씩 넘기면 이야기가 보인다.

 

피렌체 태생이었기에 이곳에는 조토의 초기 작품이 가득하다. '조토의 종탑'은 이미 유명하지만 그가 르네상스 예술의 최초 설계자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피렌체에서 꽃피웠던 조토의 작품들은 그 이전보다 훨씬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무교인 내게 십자가상은 예수의 희생이라는 관점보다 인간의 잔악함이 더 느껴진다. 조토의 십자가상은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들 정도로 무게감이 밀려와서 실제 저 앞에 선다면 몇 배는 더 그런 기분에 휩싸일 것 같다. 그만큼 조토의 열정이 보이는 작품으로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확연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조토의 뒤를 이은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안드레아 디보나이우토의 벽화 <구원의 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모의 일대기>등 피렌체를 대표하는 그림들에 연신 입을 다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화풍을 본받아 자기 것으로 만든 수제자들의 작품도 눈여겨볼 만했다. 산타 크로체 성당의 중앙 제단의 엄숙함과 웅장함 속에 서면 조토주의자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우피치 미술관은 그 규모도 놀랍지만 약탈한 작품이 없다는 사실도 높이 살만하다. 역시 피렌체구나 싶은 생각도. 정말 제대로 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눈여겨볼 작품도 있었다. <마에스타>의 세 개의 다른 그림을 보면서 역사에 따른 중세 회화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조토의 그림에 이르면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안정적인 구도뿐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이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우며 화려한 색조에서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이탈리아 북부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도바에서 꼭 보아야 할 장소는 스크로베니 예배당과 성 안토니오 성당일 것이다. 조토주의 양식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할 만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서른여덟 점의 벽화를 보면 조토가 무엇을 중시하며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인물의 자세, 표정, 옷 주름뿐 아니라 상상의 경계를 넘어선 표현들에서 창의력 넘치는 면모를 볼 수 있다. 동물의 표정과 주인공 외 하인들의 얼굴 표정까지도 놓치고 있지 않다. 마리아와 예수그리스도의 가족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예수의 탄생과 부활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며 종교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다. 종교인이라면 감상하기 더 좋은 책이 아닐까한다. 조토의 벽화 하단에 띠처럼 이어진 미덕과 악덕을 표현한 벽화도 흥미롭게 보았는데 절망을 어찌나 극적으로 표현했는지 무섭게 느껴졌다.

 

중세 미술 하면 주로 건축이나 조각을 주로 접했었고 중세 미술 관련 책에도 이처럼 벽화나 회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드물다. 저자의 열정 덕에 조토주의에 대해 제대로 감상하고 책을 덮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 쓰는 일이 꿈이었던 그가 이제서야 제 자리 찾은 듯하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보며 내 속에서도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좀 더 열정을 가지고 그림을 대해야겠다. 저자의 소망대로 다음 책에서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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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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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낯익었다. 지난 가을 내 휴대폰 배경화면을 꽉 메우고 있던 그림이었다. 지난 가을 전시회 때 오아물 루(Oamul Lu)의 작품을 처음 만났었다. 그때 많은 관람객이 그의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무르는 모습을 보며 다들 느끼는 게 비슷하구나 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의 자유로운 관찰과 감성을 들여다보며 낭만을 걷는다라는 것이 이런 것임을 느꼈었다. 그랬기에 표지만으로도 이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책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시는 입으로 전해져왔기에 시는 읽고 쓰는 능력보다 훨씬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보다 시는 우리의 감성을 깨우는데 더 필요한 것이다. 요즘처럼 시를 글로만 만나는 시대에 많은 이들이 점점 그 감흥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있다. 나조차도 시집을 몇 권씩 사들이지만 정작 외우고 있는 시가 거의 없으니.(안 외워진다는 핑계를 대긴 하지만 ㅎ)

 

시보다 문학을 더 들여다보아서 시를 접할 기회가 잘 없었지만 나를 풀꽃 앞으로 끌어당겼던 그의 유명한 시 때문에 50주년 기념 시집은 읽고 싶었다. 요즘 출간되는 시를 몇 편 읽으며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 허나 나태주의 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연 속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말들은 따뜻하고 말랑하다. 시인의 시선이 가닿는 곳에는 시인의 살뜰한 돌봄이 느껴진다.

 

 

 

 

 

총 214편의 시가 실려있다. 1부는 신작 시 100편, 2부는 독자들이 사랑하는 애송 시(대표 시) 49편, 3부는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결한 시들이 많아서 그만큼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읽다 보면 일상의 내 심정을 대신 누가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세상을 향해 불편했던 심정과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내 마음도 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2020년대 키워드가 외로움이라고 한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든, 고립된 외로움이든 현대인들에게 외로움은 위험하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은 '너와 함께라면'이라고 먼저 운을 뗀다. 이제는 진짜 사람을 만나 가슴이 벅찬 하루를 즐겨야 한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에서 순례길에 오른 70대 노인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때 정말 별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울컥함이 밀려왔었다. <살아줘서 고맙습니다>를 읽으며 그때의 감정을 또 느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라는 말에서 전해오는 진심은 세상에 대한 관점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풍경

 

이 그림에서

당신을 빼낸다면

그것이 내 최악의 인생입니다.

 

 

네가 살아있어 고맙고, 내가 살아있어 고맙고, 네가 곁에 있어 더 고마운. 좋다고 하니 좋고, 좋아서 좋은.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을 나누기에도 모자란 시간임을. 훗날 나라는 사람이 너에게도 살아갈 이유가 되어 있길.

이처럼 시인의 시는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남은 자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듯하다.

 

전시회 때 담아 온 오아물 루의 그림들을 다시 꺼내보며 내가 그 풍경이 돼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강쥐와 산책을 나갔다. (그의 일러스트에는 반려견이 항상 등장한다.) 인생이 '고행'이 아닌 '여행'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내 일상의 발걸음에 올려놓고서.

 

 

바람 부는 날

 

너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니?

구름 위에 적는다

 

나는 너무 네가 보고 싶단다!

바람 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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