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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더라도 ㅣ 책고래세계그림책 1
디파초 지음, 김서정 옮김 / 책고래 / 2024년 6월
평점 :
땅콩 모양의 귀여운 펭귄 두 마리가 서 있다. 그러곤 말한다. 우리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뒤에 오는 무수하게 많은 문장을 상상해 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뭐? 헤어지지 말자고? 힘내자고? 오늘 이 맛집은 꼭 가자고? 단상을 잠시 뒤로 제쳐둔다.
왠지 모르게 제목에서 중압감이 느껴지는데, 그림은 너무나 앙증맞고 귀엽다. 제목과 그림의 묘한 괴리감 속에서 둘 간의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책을 펼쳐본다.
글과 그림 모두 콜롬비아의 작가 디파초의 작품이다. 콜롬비아 그림책은 생소한데 출판사 책고래에서 다양한 나라의 좋은 그림책을 많은 독자에게 소개하고, 생각의 길을 넓혀 더 멀리 볼 수 있길 희망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큰 뜻이 있다니 독자로서는 너무나 감사합니다!
무수하게 많은 펭귄 중에 혼자인 펭귄이 짝을 만난 건지, 짝이 찾아낸 건지 인연이라는 아름다운 끈에 묶여 둘은 서로의 운명이 되었다. 서로 알아 가고, 즐거워하고, 살아가며 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한다. 고난과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함께 극복하기 위해 애썼고, 고난을 메우는 시간이 생각보다 좁혀지지 않을 때 펭귄 둘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렇다. 운명의 짝을 만나 함께 생활하다 보면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서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그럴 때마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얼른 이 고통의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마음속 다짐을 해보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아직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올 때도 있어서 사과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았던 날들도 있었다.
이제는 10년이라는 시간을 공유하다 보니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겠고,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으면서 희망과 좌절, 체념을 동시에 맛보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냥 서로의 살아온 역사와 시간, 고유한 인격을 존중해 주기로 마음먹어 버린다. 서로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짝이 되어보기로 말이다. 서로가 길들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예뻐해 주고, 배려하면 우리의 인생이 더 아름답게 빛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책 속의 펭귄도 고난의 시간을 고민한다. 작은 몸뚱이를 이끌고 사랑하는 이가 있는 서슬 푸른 바다를 건너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다. 용기도 필요하고, 희생도 필요하고 단단한 마음만이 미래를 축복할 수 있을 것이다. 펭귄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마침내 펭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용기 내서 굴하지 않고, 참아 내고, 견뎌 내면서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사랑하며 펭귄은 서로 함께할 거라고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행복한 시간은 멀리 있지 않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내가 어떤 맘을 먹고 싶은지에 따라 그 시간은 달라지는 것 같다. 서로 행복을 먹어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