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트립 교과서 여행 : 국어, 문학 - 아이와 인문학 여행
소울마미.이해수 지음 / 얼스마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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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은 고백적이고 서정적으로 시작된다. '아이와 인문학 여행'이라는 책 제목으로 미루어보아 정보부터 쏟아낼거라는 예상을 깨고 작가는 육아의 어려움을 여행으로 극복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떠났던 여행을 통해 아이와 작가가 발견했던 세상을 책 안에 담았다. 특히 이 책은 '교과서 여행'편으로 '국어'와 '문학교과서'에 등장한 여행지를 찾아 아이와 함께 여행한 기록을 따라간다. ⠀

소설 <토지>를 만날 수 있는 '하동'부터 

<소나기>의 무대가 된 '양평',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따라가는 '서울여행', 

<이순신>의 자취를 쫓는 '군산' 등 

다양한 지역과 볼거리가 소개 되어있다. ⠀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을 위한 소울튜터의 해석이었다. 소나기는 몰라도 <토지>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어렵게 여길 아이들을 위해 소울튜터가 쉽고 자세하게 문학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글이 같이 실려있어 유용하게 느껴졌다.⠀

친절하고 다정한 여행실용서를 따라 방학마다 한 곳씩 돌아볼 계획을 세워본다. 지금까지 즉각적인 행복만을 쫓아 여행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수없이 갔던 종로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대입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처럼 전문해설사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에도 아빠는 우리 자매를 데리고 여행지에 있던 박물관에 들러 길고긴 이야기를 해주었다. 본인은 그림에 관심이 없고 잘 알지 못한다면서도 우리를 예술의전당에 데려가고 전시실을 함께 돌던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도 여행이 인문학이란 것을, 정서지능이 상승하는 열쇠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집 떠나는 것이 번거로운 내향인이지만 이제는 내 차례인 것 같다. 언젠가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마주칠 반가운 한 줄, 나이들어 떠올릴 어떤 기억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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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트리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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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았던 여름, ⠀

그 계절이 지난 뒤 우리에게 남겨진 것⠀

온통 산인 시골마을 호타카를 사랑했던 류와 여름마다 호타카로 찾아왔던 친척 릴리.

둘은 기억이 희미한 어린시절부터 함께하며 작고 세밀한 추억,

아프고 쓰라린 상처와 성장의 찰나까지 공유한다. ⠀

둘만의 추억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들을 둘러싼 기쿠할머니, 쓰바루아저씨, 

운명처럼 류 앞에 나타난 반려견 '바다'까지 여름을 채워주는 존재들을 곁에두고 

류와 릴리는 따스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

책에서는 류와 릴리가 함께 보낸 눈부신 여름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작가의 섬세한 문장 덕분에 호타카의 풍경과 류와 릴리의 여름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봤던 이 소설의 가치는 빛나는 여름이 끝난 뒤 남겨진 것들에 있었다. ⠀


릴리와 류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푸른 여름 사랑을 키워가던 그들은 매년 다시 오는 여름처럼 영원할 것 같았는데 소설이 계속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소원한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

류와 릴리를 지지해주던 기쿠할머니의 여름 또한 펜션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기쿠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류가 애정을 줬던 '바다' 역시 화재로 다신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여름을 통과한 주인공들이 사라지거나 저마다의 상실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패밀리트리'를 통해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은 없다고 내게 말하는 듯 했다. 기쿠할머니는 곁에 없지만 여전히 류와 릴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바다 역시 그랬다. ⠀

"살아 있는 건 모두 죽어요. 죽을 걸 두려워했다간 아무하고도, 뭐하고도 관계를 맺을 수 없을거 아니에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있다고, ⠀

우리가 태어나 보내는 시간이 ⠀

결코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고, ⠀

소설은 류와 릴리의 성장과 ⠀

기쿠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보여주었다.⠀



"살아 있는 건 모두 죽어요. 죽을 걸 두려워했다간 아무하고도, 뭐하고도 관계를 맺을 수 없을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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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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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만들어가는 진한 기억들을 여행으로 녹여낸 ‘순도100퍼센트의 휴식’

이 책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도 꽤 많은 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박상영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여행에세이다. 대학생이 되어 떠난 유럽여행, 충동적으로 미국으로 떠나 친구와 함께 브루클린에서 살았던 시절, 작가가 되어 제주 ‘가파도’에서 소설을 완성했던 시간과 친구들과의 우정여행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절이 차곡차곡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있는지 보려고 첫 페이지를 열었다가 앉은 자리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절반을 읽었을 정도로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함이 없던 책이었다. 솔직하고 위트있는 문장으로 써낸 '박상영의 여행시간'은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

이 책은 여행을 말하고 있었지만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힌다. 작가의 삶을 외롭지 않게 채워줬던_ 서로의 인생을 덧칠하며 한 시절을 공유한_친구들과의 우정이야기가 어떤 도시나 화려한 풍경보다 더 진하게 다가왔다. ⠀

성장의 기록이기도 했다. 박상영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첫 에세이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를 읽고 난 후였다. 그는 재치와 솔직함을 오가는 고백적인 에세이로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의 책이 좋았던 것은 그가 단지 재밌고 웃기는 글을 써서는 아니었다. 소설에도 인생에도 진심이었던 작가의 삶의 태도가 책 곳곳에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책 순도100퍼센트의 휴식을 읽으면서도 내내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는걸까, 그는 어쩌면 이렇게도 삶에 진심일까,하고 말이다. ⠀

-당장에라도 휩쓸려버릴 것 같은 성인의 삶, 세차고 고독한 삶의 물결 앞에서 나를 두 발로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여행을 떠나 올 때마다 나는 일상으로부터 도피를 꿈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 재미있는 책은 많지만, 재미만 담긴 책은 마지막장을 덮은 후 헛헛함이 밀려온다.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을 만날 수 있었던 이 책은 좀 다르다. 밀도있는 문장들이 때때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순간, 깨달음을 얻었던 생활밖의 야이기들이 촘촘하고 유쾌하게 담겨있어 페이지가 계속된다면 언제까지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당장에라도 휩쓸려버릴 것 같은 성인의 삶, 세차고 고독한 삶의 물결 앞에서 나를 두 발로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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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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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많은 집에서 태어난 소녀는 또(!) 가족을 늘린 부모덕분에 엄마의 출산기간 동안 먼 친척 집에 맡겨진다. 소설은 소녀가 아빠와 차를 타고 킨셀라부부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친척집에 들어서기 전 첫만남을 미리 예상해보는 귀엽고 천진한 소녀의 모습을 읽자마자 단번에 반해버렸다. 


아빠가 홀연히 떠난 뒤 소녀는 킨셀라부부의 집에서 짧지만 강렬한 날들을 보내게 된다.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는 배려와 따스한 가르침, 훗날 돌아봤을때 친밀함과 사랑으로 기억될 시간의 조각들을 쌓아가며 소녀는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존중받는 경험을 누리고 그 안에서 성장한다.


소녀가 이전에는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경험. 온전히 자신을 바라봐주는 참된 어른들 속에서 소녀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인다. 


이 작가의 문장은 아주 담백했는데 그래서인지 절제된 언어들 속에 감춰진 킨셀라부부의 따뜻함과 소녀가 느끼는 안정이 더 무게감있게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빨간머리앤의 주인공 앤과 소녀의 모습이 여러번 겹치기도 했다.


그러나 킨셀라부부와 소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나는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드러난 예정된 이별을 향해 이야기가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헤어짐은 영원히 기억된다. 결국 어떤 쪽을 선택하든 불완전할 소녀의 인생을 결말에 와서 보게 되면서, 게다가 어린 소녀에게는 선택권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읽게 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좀 아팠다.


아주 짧은 계절, 길고 긴 인생에서 찰나에 불과할 며칠을 선명하고 또렷하게 그려낸 이야기를 읽으며, 있는지도 몰랐던 내 안의 어떤 감정들을 보고 다시 매만질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 어떤 사랑을 주어야 하나, 이런 표면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나조차 알지 못했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까지 소녀의 날들이 진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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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이슬아는 책을 통해 자신이 쓰는 이야기가 모두 진실은 아니다, 라고 줄곧 이야기해왔다. 때문에 그의 수필을 읽을때도 어느정도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는데, 진짜 그의 소설이 나오자 어쩐지 (이 작가가 쓴 글이란 글은 다 읽어서인지) 자꾸 수필로 읽혀 조금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녀장'이라는 기획, 가족들에게 합리적인 가녀장이 되려는 '슬아'의 노력이 빛나는 책이었다. 가녀장의 시대는 가부장제에서 시작된 이미 만연해있는 불합리한 상황과 잘못된 태도를 꼬집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주는 책이었다. 나름 젊은(과연 이렇게 말해도 되는 나이일까 싶지만) 축에 속해서일까, 가녀장에 대해 큰 어색함도 이상함도 느끼지 않아 그저 재밌는 시트콤을 보듯 편하게 읽었다. 아직도 동생애와 노브라가 왜 논란거리가 되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고 재밌게 해서 그저 즐겁게 읽었을 뿐.

이슬아 작가를 '나는 울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로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 반했던 복희씨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진행중이어서 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복희씨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은 더 신나는 마음으로 읽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희씨 같은 엄마는 절대로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동경하는 마음으로, 한번도 본적없는 복희씨를, 하지만 일간 이슬아를 비롯해 이미 많은 이야기에서 만난 아는 복희씨를 생각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부모가 아니라 모부인 복희와 웅이, 서로를 존대하는 가족. 어느정도 서로에게 무심한 태도, 그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던 책이었다.

생각할 수록 이슬아작가는 마케팅능력이 뛰어난 작가다. 그가 자신의 글을 오백원에 팔았을때부터, 엄청난 상상력이 아니라 나와 주변의 이야기로 멋진 메시지를 전하는 장편소설을 만들어 낸 지금까지 천부적인 재능을 갖지 않아도, 엄청난 상상력과 허를 찌르는 반전이 없어도 자신이 가진 것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만들어가는 작가라서 앞으로 그의 책들 역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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