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
김희영 지음 / 문학공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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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북스타그램 #서평단 #에세이 #문학공방 


분야: 에세이

부제: 우리는 빠듯한 인생을 사느라 위로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낡은 일기를 펼친 이유는, 새로운 다짐을 쓰기 위해서였다.

무엇이 될까 고민하며 걸어왔던 길,

돌아보니 그 길에 상처 입은 내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무엇이 되고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꿈을 이뤘지만, 누군가는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꿈을 놓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상 앞에 하나둘 포기해 가던 어느 날, 문득 제 미래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무엇이 될까?'

시간이 흐를수록, 꿈도 그 무엇도 이뤄나가지 못하는 제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를 옭아매고 아프게 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지 못한 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채찍질을 견디지 못한 마음이 쓰러져버렸을 때, 저는 다 내던졌습니다.

'꿈 따위, 열심히 해봤자 이룰 수 없다. 그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렇게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비로소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 저는 그때야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이 될까 고민하며 걸어왔던 길, 그 길 위엔 멍들고 상처 입은 제가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자신을 지키기로 합니다.

이 책은, 꿈을 좇으며 눈물로 써왔던 2년간의 일기입니다.

책 속의 기록들이 여러분의 가슴 한편에 공감으로 맺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머릿말

20대에서 30대 방황하는 누군가를 위한 에세이, 김희영 작가의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신자유주의체제 하에 적응해 온 '요즘 세대'의 내적 압력에 대한 불안을 잘 보여주는 에세이다. 현대 사회에서 번아웃은 너무나 흔하고 '갓생'살기에 대한 집착은 더욱 흔하다. 

그런데 꼭 갓생을 살아야 좋은 삶인가? 

이 책은 그에 대한 답변 같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다시는 예전처럼 당당하게 달려가지 못할 것이란,

다시는 활짝 웃지 못할 것이란 걱정들이 더 괴롭게 만들었다.

...

웃으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는데.

친구를 만나 한 번 털어내 버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대화_가슴에 새긴 것들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는 꿈을 위해 달려온 저자의 분투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 끝에는 '지난한 과정을 견디고 목적을 달성했다'는 종류의 해피 엔딩은 기다리고 있지 않다. 

모든 노력이 보상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공유한다. 

무언가 쓰기 전에 항상 나는 연필을 먼저 깎는다. 꼭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버릇처럼 연필과 연필깎이를 결합시켰다. ... 늘 나의 연필깎이는 언제나 한 번에 잘 깎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연필이 잘 깎이지 않았다. 부드럽게 돌던 연필이 문득 제자리에서 헛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래, 한 번은 뭐, 그럴 수 있지. 나는 심을 빼고 연필을 다시 깎았다. 그러나 연필은 자꾸만 부러지고 깎이지 않는 것이었다. 계속 부러지고, 부리지고, 부러졌다. 한 번은 제대로 깎일 법도 한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말썽이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이 울컥해졌다. 겨우 연필 따위였다. 그런데 잘 깎이지 않는 것이 꼭, 뭔가 술술 풀리지 않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제자리걸음인 공부, 깎이지 않고 헛도는 연필, 쓰다만 공책, 식어가는 떫고 쓴 아메리카노. 모든 게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끝이 뭉툭한 연필을 들었다. 얼마나 계속 깎았던지, 길쭉했던 연필은 어느새 반 토막이 났다. 떨떠름한 기분, 불편한 마음.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무언가를 정리하고 써 내려갔다. 뭉툭한 연필이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집중이 꽤 잘 됐다. 공부가 잘되니 깎이지 않아 망연자실했던 시간도 금세 잊혔다.

뭉툭한 연필이어도 나는 괜찮았다.

글자를 쓸 수 있었다. 밑줄을 그을 수 있었고 중요한 부분을 표시할 수 있었다. 완벽하게 깎이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쓸모없는 몽당연필이 아니었다.

무소의 뿔처럼_마음이 싸워 온 것들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 

우리 모두가 내심 알고 있는 사실을 저자는 자신의 기록을 공유하며 일깨워준다. 사실 '뭉툭한 연필'이어도 괜찮다고. 꿈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꿈을 이루는 건 멋진 일이다. 그렇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과정에도 즐거움과 배움은 존재하니까.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그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은 나였다]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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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
산다 치에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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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해피엔딩에서너를기다릴게 #소설추천 #일본소설 #청춘 #로맨스소설 #북스타그램

분야: 로맨스, 일본 장편소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그와 함께한 열두 달 동안의 이야기.

한 가지 미리 말해두고 싶은 건, 이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것.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동화의 상투어로 끝나지 않아도 이 이야기는 분명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인 내가 최고의 행복을 손에 넣었으니.

최고의 가족과 절친, 연인과 함께 보낸 근사한 청춘의 나날들.

이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딱 한 가지만 더 기도하고 싶다.

신이시여, 그의 이야기도 부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해주세요.

3월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그녀와 함께 걸었던 열두 달 동안의 이야기.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 이야기의 결말은 배드엔딩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나쁜가?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라스트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건 누가 정했지? 초반부에 최고의 절정을 맞고 이후로 약해지며 끝을 맺는다. 끝부분은 인상에 안 남을지 모르지만 진한 감동을 주는 멋진 장면이 분명히 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이야기로서 완성도는 낮을지 몰라도 이게 내 이야기다.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니까.

3월

이 책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리나와 쇼타 두 사람의 서술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의 서술구조는 독자가 주인공 둘 모두의 마음속을 긴밀하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 여자친구 이야기], [내 남자친구 이야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애들은 이런 책 모를지도...)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의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차 서술만의 매력을 보여준다. (자세한 것은 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만의 또 다른 매력은 '보석병'이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불치병 설정이다. 

이 책에만 등장하는 '보석병'이란, 심장 부근에 생기는 불치병으로 재발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사후에만 보석을 채취할 수 있다는 독특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후 채취되는 보석은 개인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보석병에 걸린 개인이 생전에 살아온 삶을 반영하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런 개성 덕분에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장르 소설 헤비 리더인 나는... 왠지 보석병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았지만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는 로맨스 청춘 성장물이므로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이어간다.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는 보석의 설정은 주인공인 '리나'의 목표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첫째, 수술을 받지 않고 죽어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자. (리나의 집은 화재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둘째, 기왕이면 아름다운 보석을 배출해 비싼 가격을 책정 받도록 최고의 청춘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보석이 개인의 인생을 반영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응축된 삶 = 보석)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에서는 어린 나이의 주인공이 불치병을 겪게 되면서 유독 두드러지는 요소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에서 10대와 20대를 가장 아름다운 나이로 묘사하는 이유는 그 시기에 삶에서 이뤄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와 즐겁게 놀고, 절친과 대화를 나누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하고.

근사한 청춘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별로 특별한 것 없이 흔한, 적당한 이미지일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만화에서도 흔히 보는 '청춘'. 그게 내 이상이었다. 

리나, 시작하는 4월, 행복한 5월

리나가 아름다운 보석을 만들기 위해 달성하려는 목표들-진정한 우정, 꿈을 위해 노력하기(M 대학 입학) 그리고 진정한 사랑 등-은 우리가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보편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저자는 두 주인공의 나이를 고등학생, 특히 수험생으로 설정함으로써 독자에게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삶의 가장 중대하고 보편적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는 영리한 설정과 구조들을 이용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서 빛나는 것은 독자를 향한 저자의 분명한 메시지다.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슬픔이라면 슬퍼할 시간에 노력한다."

"요즘 들어 깨달은 건데.....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손에 넣을 때가 있거든. 그건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한테 신이 주는 선물인 것 같아."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이 메시지들은 너무나 분명해서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의 두 주인공 리나와 쇼타의 이야기는 책을 덮는 순간 끝나지만, 독자의 이야기는 저자의 응원을 받으며 이어질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살고 있다.

내 이야기는 오래오래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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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
생명평화아시아 엮음 / 참(도서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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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제: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

분야: 사회문제, 인권문제

이주노동자의 한국 사회 유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이주노동자는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주로 가사도우미와 단순노무자로 취업을 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이주노동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노동의 이주가 발생한 것은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고학력화,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저숙련 인력난이 심해진 한국 사회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3D 업종에서 일할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노동의 이주가 발생했지만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따뜻하지 않았다.

머리말: "외국인도 사람이다"이주노동자의 한국 사회 유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당시 이주노동자는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주로 가사도우미와 단순노무자로 취업을 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이주노동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노동의 이주가 발생한 것은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고학력화,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저숙련 인력난이 심해진 한국 사회는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3D 업종에서 일할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노동의 이주가 발생했지만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따뜻하지 않았다.

머리말: "외국인도 사람이다"


이 책은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회/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제목인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는 2017년 5월 12일 군위군 우보면의 ㅇㅇ종돈(돼지 사육장)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네팔에서 온 테즈 바하두르 구룽(1992년생)과 차비 랄 차우다리(1992년생), 두 외국인 노동자가 돼지똥통에 들어갔다 사망한 사건이다.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에는 다섯 편의 인터뷰, 두 건의 사건 사례와 두 건의 법률 사례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 사회는 아직 이주노동자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자신들을 단순히 노동력 상품으로 보지 말고 사람으로 보고 사람으로 대우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호소가 이윤과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초래한 불평등 문제의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그동안 숱하게 외쳤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들려드리고자 한다.

머리말: "외국인도 사람이다"

책의 제목과 책소개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다. 

근데 비정규직 내에도 또 계층이 있어요. 한국인 비정규직을 보면, 제 1순위 A급 클래스가 계약직이에요.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사업주가 직접 고용하니까 그나마 낫죠. B급은 간접 고용 비정규직으로 LG타워에서 청소하시는 분들과 같이 그 사업장에서 일은 하는데 소속이 달라요. 소위 용역, 파견, 도급 등 희한한 명칭으로 불리죠. C급은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처럼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돼 있어요. 4대 보험도 안 되고 노동자성을 인정 못 받는 거죠. 지금 많이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 배달 노동자 이런 분들도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어요. D급은 노동자성을 인정 못 받는 가사 사용인과 같은 분들을 얘기하는 거겠죠.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예요. 이주노동자 중에서 제일 괜찮은 A급을 고용허가제 노동자라고 해요. 고용허가제보다 더 취약한 제도가 외국인 선원제 또는 선원취업제(E-10)이고요.

고용허가제 내에서도 비자별로 나눠지는데 제조업(E-9-1)이 최고 순위고, 두 번째가 건설업(E-9-2), 세 번째가 농축산업(E-9-3), 네 번째가 어업(E-9-4)이라 할 수 있어요. 비자를 순서대로 잘도 만들어 놓았네요.

제조업은 요새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사업주가 이탈하라 해도 이탈 안 해요. 건설도 지금 거의 정착이 됐고요. 근데 농축산하고 어업은 언제 이탈할까 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어요. 사실 이탈이나 불법은 사업주가 하는 말이에요.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는 마지막 저항의 수단이죠. 사업주에서 제기를 할 수도 없고, 제기해봤자 욕설만 듣고 안 돼죠. 노조를 만들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저항 수단이 이탈이라 볼 수 있죠.

SPC 끼임사고, 근무 중 추락사, ktx 열차사고 등 근래 많은 산재 사고들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처우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보다 더 아래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누가 더 힘든지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가 개선되어야 하는 시급한 사항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야갓: 스리랑카에 비해 한국은 다 든든하게 살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든든하게 살 수 있는 문화가 있어요. 한국 사람 사이에 차별 없잖아요. 월급도 똑같이 받고 식당 가서도 똑같이 밥 먹을 수 있잖아요. 스리랑카에는 그런 거 없어요. 그리고 한국은 안전하고 깨끗해요.

차민다: 스리랑카에는 일하는 사람보다 일 안 하는 사람이 더 많고 도둑이 많아요. 무서워요. 한국에서는 여성분들이 밤새 술 먹거나 재밌게 노는 거 괜찮은 거잖아요, 안전한 거잖아요. 스리랑카에는 그런 거 없습니다. 여성들 차별 많이 해요.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잘 살면 나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야갓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종종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부당한 처우를 받는 사례를 보며 함께 분노한다. 만약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타 국가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직장 내에서 부당한 처우를 당해서 항의했음에도 상사가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일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영주권 받고 싶으면 감수해야지.'라고 윽박지른다고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살 수 있다. 한국이라는 국가적 차원이 아닌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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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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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분야: 장편소설, 북유럽 소설

『세 형제의 숲』은 2년 전에 있던 일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형과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문득 형이 여자친구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형은 연애를 오래 했고, 나는 형의 여자친구와 인사할 때마다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

"우리 헤어졌어."

형이 이별을 겪은 줄도 몰랐던 나는 당황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괜찮냐고, 속상하진 않냐고 다시 물었다.

"괜찮지, 그럼. 헤어진 지 반년 정도 되었거든."

어떻게 이럴 수가. 어렸을 때 나는 우리 세 형제가 한 몸처럼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로의 근황도 모르는 채로 소원해지다니. 언제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이후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마침내 이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 살아남는 것에 대한 소설이다.

...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출처는 다 나에게 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이며, 모든 것을 서로 나누던 형제 동생 그리고 나를 생각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냐고.

작가의 말

『세 형제의 숲』의 이야기는 작가가 경험한 형제로부터 느낀 단절감에서 시작되었다. 단절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연결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남자 세 명이 별장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다. 서로를 안고 울고 있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춘 차림이다. 그 옆, 잔디 위에 유골 단지가 놓여 있다. 경찰관의 눈이 세 남자 중 한 명과 마주치자 그가 일어선다. 나머지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 부둥켜안고 앉아 있다. 피투성이에 심하게 두들겨 맞은 모습이기에 경찰관 역시 앰뷸런스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다.

 

"베냐민입니다. 신고 전화를 건 사람이 접니다."

 

경찰관은 주머니를 뒤져 수첩을 찾는다. 이 이야기가 종이 한 장에 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방금 자신이 수십 년간 이어진 이야기의 결말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경찰관은 모른다. 오래전 이곳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세 형제의 이야기라는 것도,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무엇도 단일한 사건이 아니며 별개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모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무게는 어마어마하고, 당연하게도 사건의 대부분은 이미 일어났다. 여기 돌계단 위에서 펼쳐지는 세 형제의 눈물과 부어오른 얼굴, 피의 이야기는 그저 수면에 남은 마지막 파문이자 돌이 떨어진 자리에서 가장 먼 곳에 일렁이는 잔주름일 뿐.

 

1장: 오후 11시 59분

『세 형제의 숲』은 총 2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방식으로, 하나는 과거('베냐민'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시간순으로 서술되고 다른 하나는 현재(어머니의 장례식)의 이야기로 역순으로 서술된다. 현재의 이야기가 역순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재미있는데 소설의 첫 장면부터 형제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져서 과연 이런 파국적인 관계가 회복가능할지 의문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챕터가 진행될수록 독자들은 형제들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알아차리게 되고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 같은 관계가 얼마든지 회복될 수도 있다는 것을 또 이런 난장판이 평화로운 일상과 마찬가지로 세 형제에게는 단지 지나가는 한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형제의 포옹은 잠깐이었지만, 아무리 짧더라도 포옹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강풍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리느라 엉켜버린 그물을 풀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하게 엉켜서 절대로 풀 수 없을 테니 처음에는 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의 매듭 하나를 풀자 그 뒤로는 저절로 그물이 술술 풀려 벽에 붙은 고리 위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 것처럼 말이다.

9장: 오후 4시

역순의 이야기 진행방식 덕분에 읽는 내내 '이 자식들 (이 시간대부터 저 시간대 사이에)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하며 궁금해했는데 작가의 플롯 짜는 솜씨가 뛰어난 것 같다. 


『세 형제의 숲』의 또다른 재미는 매우 현실적인 모습의 인물들이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출처는 다 나에게 있다.'고 했던 <<작가의 말>>, 또 작가 소개의 '알콜 중독자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룬 회고록'을 쓴 이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에르뿐 아니라 실은 가족 중 그 누구도 개와 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몰리는 좋은 놀이 상대가 아니었다. 늘 불안하고 몸도 약한 데다가, 틈만 나면 깜짝깜짝 놀랐다. 몰리를 키우게 된 뒤에 맞이한 첫 여름엔 다들 이런 일은 머지않아 지나가리라고, 시간이 지나면 몰리도 적응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몰리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이 무서운지, 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듯 누군가의 품에 안겨 다니는 쪽을 선호했다. 아빠가 어색하게 따뜻함을 표현하려고 다가가도 겁을 먹고 물러났다. 닐스와 피에르도 몰리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어쩌면 엄마가 자신들보다 개를 더 아낀다는 생각에 질투를 느낀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몰리를 몹시 사랑하면서도 내킬 때만 사랑을 표현했기에 몰리는 더 불안해했다. 엄마는 몰리를 다른 가족과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몰리에게 쌀쌀맞을 때도 있었다. 때로 베냐민은 몰리가 외톨이 같다고 생각했다. 이는 피에르와 닐스의 무관심, 아빠의 체념, 엄마가 보이는 돌연한 무심이 낳은 결과였다.

베냐민은 몰리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그해 여름, 엄마와 아빠가 시에스타를 즐기던 기나긴 오후 내내 둘은 유대관계를 만들어 갔다. 베냐민은 속으로 몰리는 자기 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같이 호수에 가서 돌을 던지고 놀았다. 숲속을 산책했다. 함께 쏘다녔다.

8장: 식품 저장고

엄마의 말이 끝나고 침묵이 이어지자 베냐민은 눈을 들어 엄마를 쳐다보았다. 이야기가 끝난 게 분명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 교훈도 없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일 뿐이었다.

...

"식품 저장고에 들어가서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라."

"식품 저장고요?"

처음 받는 벌이었다. 예전에는 늘 불 꺼진 사우나에 들어가 있으라는 벌을 받았다. 사우나 안에 혼자 앉아서 잘못을 반성해야 했다. 엄마의 육아 방법은 엄격하고 규칙 중심이었지만, 일관성은 없었다. 엄마는 결단력 있는 동시에 애매모호했다. 사우나에서의 벌칙이 언제쯤 끝나는 건지, 언제 나와도 되는지 알려준 적이 없어서 베냐민이 알아서 결정해야 했다. 결국 사우나에서 나온 뒤에도 너무 일찍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8장: 식품 저장고

베냐민은 쉬는 시간마다 몰래 피에르를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멀리서 동생을 지켜보고 나서야 그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컴컴하고 혹독하게 추운 한겨울 오후 2시였다. ... 베냐민은 아주 얇은 재킷을 입고 모자도 쓰지 않은 피에르가 놀이를 하는 아이들 한구석에서 벌겋게 얼어붙은 손을 청바지 주머니에 꽂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베냐민은 문득 화가 치밀었다. 왜 엄마 아빠는 쟤한테 더 따뜻한 외투를 안 사준 거지? 왜 쟤한테는 모자도 장갑도 없는 거야?

다시 교실을 향해 돌아가던 길에야 베냐민은 자기도 몸이 꽁꽁 얼었다는 사실, 자기가 입고 있는 재킷 역시 동생이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얇아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서서히 모든 단서를 하나로 꿰어 맞췄고, 그렇게 주변을 관찰함으로써 점점 자기 자신을 알아갔다. 불결하기 짝이 없는 집 안. ... 베냐민은 집뿐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다 보니 차츰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15장: 졸업 파티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이야기에 현실성을 탄탄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상징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의 경험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었음이 분명한 알콜중독자 부모님에 대한 묘사,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일관성 없는 가정교육 아래서 자라 어딘가 불안정한 세 형제와 몰리의 모습.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정말 스웨덴의 어느 도시에 인물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의 육아 방법은 엄격하고 규칙 중심이었지만, 일관성은 없었다. 엄마는 결단력 있는 동시에 애매모호했다. 사우나에서의 벌칙이 언제쯤 끝나는 건지, 언제 나와도 되는지 알려준 적이 없어서 베냐민이 알아서 결정해야 했다. 결국 사우나에서 나온 뒤에도 너무 일찍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와 같은 부분들, 베냐민의 마음 속 이야기에서 상징성은 특히 두드러지는데, 『세 형제의 숲』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만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핵심인 과거의 특정 사건과 연관지을 때 그렇다.

 

이 이상은 스포 가능성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할 생각이다.

햇빛에 눈을 찌푸린 채 찍힌 사진 속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찬란하다. ... 그러나 기억을 처음부터 찬찬히 되짚어가면 별장에서의 어린 날은 사진 속처럼 다정하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 별장에서의 여름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끝을 맺고, 베냐민은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기억들에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섞여든다. 어른이 된 베냐민이 마침내 형제들과 함께 오래전의 별장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어린 시절은 선형적으로 전개되지만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순이다. 타임머신을 묻듯이 뚜껑을 덮어 가슴 깊은 곳에 밀어 넣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천천히 더듬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 형제의 숲』은 어린 시절을 갑작스레 무너뜨린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억을 다시금 방문하며 그 기억과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묻혀 있던 기억을 꺼내지 않고서는, 비극적인 사고 이후에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찬찬히 풀어헤치지 않고서는 자라날 수 없으니까. 

...

이 책의 스웨덴어 원제인 'Overlevarna'는 '생존자들'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복수형으로 쓰인 이 표현은 베냐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을 형성한 역기능逆機能 가족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폭력의 흐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낸 세 형제 모두를 가리킬 것이다. 어쩌면 생존이란 한 차에 올라 흙길을 달려 어린 시절로 되짚어가는 과정 자체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은 끝나고, 불가해한 사건에 관해 끝까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 어른들은 사라진다. 늘 함께이던 형제들은 각자의 삶으로 떠나 길에서 마주쳐도 돌아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누구나 언젠가 유골 단지에 담긴 낯선 빛깔의 재가 된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제자리에 멈춰 힘껏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그곳에 묻힌 끔찍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세 형제의 숲』은 어린 시절의 비극을 마음 한 켠에 묻어둔 채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왜 베냐민의 가족들에게 그 사고가 그토록 큰 상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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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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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분야: 인문 에세이

부제: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소설 <<은밀한 결정>>에서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는 이름 없는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서술한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물들이 사라진다. 사물과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

<<은밀한 결정>>은 우리의 현재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오늘도 계속해서 사물들이 사라진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사물 인플레이션은 정반대가 사실인 양 우리를 속인다.

오가와 요코의 디스토피아와 달리 사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소통 도취와 정보 도취다.

정보 곧 반사물Unding이 사물의 앞을 가로막고 사물을 완전히 빛바래게 한다.

우리는 폭력의 지배가 아니라 정보의 지배 아래 산다. 정보의 지배는 자유로 가장된다.

사물과 기억이 사라진 이름 없는 섬은 여러모로 우리의 현재를 닮았다. 오늘날 세계는 비워지며 정보에게 자리를 내준다.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사물화하고 탈신체화한다. 또한 기억을 없앤다. 기억을 되짚는 대신에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한다.

오가와 디스토피아와 달리 우리의 정보사회는 그리 단조롭지 않다. 정보는 사건Ereignis인 척한다. 정보는 놀라운 일이 주는 흥분Reiz der Uberraschung을 먹고산다. 그러나 흥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흥분을, 놀람을 목적으로 실재를 자각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정보 사냥꾼으로서 우리는 고요하고 수수한 사물들을, 곧 평범한 것들, 부수적인 것들, 혹은 통상적인 것들을 못 보게 된다. 자극성이 없지만 우리를 존재에 정박하는 것들을.

서문

[사물의 소멸]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인문 에세이다.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모든 지식들을 잘 이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정보는 넘쳐나는데 나에게 남는 건 추상적인 단편들뿐이다. 나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 한병철은 디지털화로 인한 사물의 소멸에 주목하며 이것이 사람들의 관계와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3D 프린터가 '사물이 존재의 차원에서 지닌 가치를 없앤다'라는 문구를 보고 철학적인 사고는 여기까지 나아가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보통 상태의 내 사고는 이 세계의 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찌들어있기 때문에-의식적으로 이렇게 사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생각해버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평소의 나는 3D 프린터를 보며 그저 기술 발전에 감탄하고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할 뿐이다. 

이과 출신이긴 하지만 평소 내가 뼛속까지 이과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애초에 이런 이분법을 별로 안 좋아한다.) 이과 그룹에서는 내가 문과에 가장 가까운 쪽에 속했으니까. 그런데 [사물의 소멸]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 이과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현실 세계에 구현하고 싶다는 욕망,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생각은 한다. 나에게는 신기술이 주는 꿈과 희망이 훨씬 크기 때문에 부작용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 무엇이든 부작용은 존재하는 게 당연하니까. 

디지털화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화의 혜택이 막대하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 사회가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비대면 소통 방식에 대체로 순응하고 심지어 열광한다면, 그 찬란한 새로움의 뒷면에 밴 어둠을 들춰내는 것이 그 사회를 위하여 철학자가 해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역자 후기

철학자인 저자는 그 부작용에 집중한다. 여태까지 나한테는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그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 [사물의 소멸]을 읽으면서 나는 그 경이의 뒷면에 신경 쓰게 되고 그렇게 그 문제들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물론 저자 역시 디지털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인정한다. 다만 그 흐름을 탈 때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이 책은 이야기한다.


 철학 이야기지만 난해하고 어려운 책은 아니다. 앞부분에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과 기술 비판에 대한 주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개념 정도만 잠깐 언급되는 정도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명료한 편이지만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된다면 맨 뒤 부록 인터뷰 대담과 역자 후기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물의 소멸]을 통해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를 경험했기 때문에 김영사의 다른 현대철학 책들도 도전해 볼 예정이다. (표지가 비슷한 책들이 있어서 시리즈인 줄 알았으나 시리즈는 아닌 듯. 시리즈/세트 구성 원해요.. plz) 


+ 처음 [사물의 소멸]이라는 제목을 보고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이 떠올랐는데, 두 책 모두 디지털화로 인한 세계의 변화와 이것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사물의 소멸]이 디지털화가 사람의 관계 형성과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는 반면 [소유의 종말]은 비즈니스적, 경제적 측면에 집중하는 점이 다르다. 두 책 모두 읽어보고 비교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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