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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평점 :
책은 역사이며 인류 발전의 증거이다. 이과생이라면 지금 배우는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질문은 어떤 사람의 주장으로 해결될 수도 있지만 그 이유가 완벽할수록 여러 사람들의 평생에 걸친 연구 결과일 수 있다.
그 여러 사람이 동시대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책 덕분이다. 기원전 훨씬 이전부터 인간은 글과 책을 통해 인류 지식을 발전시켜 왔다. 그 기록의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가장 오래전부터 발전되어 온 것은 단연 수학일 것이다. 수학은 유클리드의 『원론』으로 많은 공리와 정의가 체계화되었다. 이런 이유로 유클리드를 하나의 인물로 볼 수 있을지, 혹은 여러 사람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 책을 읽어 보면 후자가 더 신뢰가 간다.
책은 시대를 거치며 점차 발전되어 왔다. 그 이유는 당시 옳다고 여겨졌던 내용들이 시간이 지나며 오류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전제로 쓰인 책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학에서도 0을 0으로 나누면 0이라는 식의 오류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가 오히려 더 많은 발전을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완벽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문제들이, 의문을 품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냈다.
이과 대학에서 전공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각 전공 분야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하나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어디서 유래했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는 관심 밖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 의문을 풀어 준다. 실제 책의 사진과 그 이전 시대의 관련 저작들까지 보여준다. 당대에는 책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기이한 삽화들도 흥미롭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수학의 발전 흐름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정수에 국한되었던 수 개념이 점차 확장되어 더 큰 수가 도입되고, 음수 개념이 나타나며 수 체계가 한층 복잡해진다.
무리수 개념이 등장하고, 대수학이 큰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과학 전반의 발전이 본격화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책을 통해 세상은 그의 과학적 통찰을 공유할 수 있었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 진화론의 기초가 되었다. 식물 관련 서적에서 시작된 지식이 유전공학으로 이어졌듯이, 과학은 책을 통해 지식의 지층을 쌓아 왔다.
예전 도서에서 오늘날 널리 알려진 책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흥미롭다. 수학의 역사를 다룬 『백만인을 위한 수학』은 다소 생소했지만, 『침묵의 봄』,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이기적 유전자』 등은 익숙한 스테디셀러로 과학 대중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늘 이전 책들의 영향과 영감이 존재한다. 과학의 발전은 책에서 시작된다. 책에 의문을 품은 누군가가 실험과 연구를 거쳐 새로운 책을 만들고, 그 책이 다시 과학으로 증명된다. 이러한 순환의 핵심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다. 책을 읽고, 써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의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실험물리학을, 랭커스터대학교에서 운용과학을 전공한 후, 영국항공에서 첨단 기술 솔루션을 개발하는 부서를 창설해 활약했다. 이후 BBC, 소니, 영국 재무부 등 다양한 기관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수행했고, 과학 저술에 전념하며 40권이 넘는 대중 과학서를 출간한 저술가이다. 그의 저서는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옥스퍼드대학, 케임브리지대학, 영국 왕립연구소 등에서 강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네이처」, 「BBC 히스토리」, 「월스트리트 저널」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으며, 서평 사이트 ‘파퓰러 사이언스’의 편집자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