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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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을 다 읽고 다음 권인 <잠자는 숲>을 조금만 읽을 생각으로 펼쳤다가 새벽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책에 빠져 잠을 잊은 게 얼마만인지. 요즘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서 유튜브도 OTT도 안 보고, 트위터도 가끔 들어간다. 이제까지 읽은 소설 중에 최고인지 묻는다면 그 정도는 아닌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된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로맨스도 있고 감동도 있다. 이보다 잘 쓰는 작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만큼 잘 쓰는 작가도 드물다.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사람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재미없다, 지겹다 욕하면서도 계속해서 읽어온 것 아닐까, 라고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잠자는 숲>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9년에 발표한 가가 형사 시리즈 제2권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도쿄의 유명 발레단 사무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피의자인 사이토 하루코는 발레단 소속의 발레리나로, 서류 작업을 하기 위해 밤늦게 사무실에 갔다가 강도를 맞닥뜨렸고 공포에 사로잡혀 손에 잡히는 물건을 휘두른 게 살인에 이르렀다고 진술한다. 발레단 사람들은 물론 경찰 내부에서도 정당방위로 보는 의견이 많았지만, 담당 형사인 가가의 생각은 다르다. 피해자가 정말로 금품을 노리는 강도였다면 발레단 사무실이 아닌 다른 장소를 노리지 않았을까. 이 와중에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작가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흔히 발레단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떤 무용수가 다른 무용수의 재능을 질투하거나 배역을 탐내서 살인을 했을 거라고 짐작하기 쉽다.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를 거라는 선입견 역시 존재한다. 가가 역시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하다 여러 번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가가가 오랜 경력을 지닌 노련한 형사가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신참자>나 <기린의 날개>에서 최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수사에 임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 같은 햇병아리 시절의 경험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 덕분이 아닐까 싶다.


범죄의 동기가 '악의'일 수도 있지만 '선의'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다. 보통 이런 범죄소설에서 범죄자는 누군가를 해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데 반해, 이 소설에서 가해자는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자를 자처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점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죄소설을 읽으면 서늘함, 잔혹함이 아닌 따뜻함, 아련함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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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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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기린의 날개>를 연달아 읽고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매력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요즘 가가 형사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1986년에 출간된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을 시작으로 2025년 현재까지 총 11권이 출간되며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표하는 추리 소설 시리즈이다. 시리즈 제1권인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십 대 시절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완성도와 이야기의 재미 모두를 탄탄히 갖추고 있다.


이야기는 T대학 졸업반인 여섯 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국문과 4학년인 사토코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나미카와 쇼코가 사는 여성 전용 기숙사에 놀러 갔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본다.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쇼코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곧바로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조사하고, 사토코를 포함해 쇼코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모두 경찰의 탐문 대상이 된다. 친구들은 쇼코가 죽은 이유에 대해 저마다 추리를 하는데 이중에는 사토코를 좋아하는 사회학과의 가가도 있다. 대학 검도부 1인자로 손꼽히는 가가는 아버지가 경찰인 만큼 친구들 중에서도 남다른 추리력을 보인다. 하지만 가가 자신은 경찰이 아닌 교사의 길을 지망한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는 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방과 후>로 등단해 2025년 현재까지 40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발표한 작품이 다수이다 보니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점 때문에 한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지 않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그의 초기작을 읽으니 이 때부터 벌써 이렇게 잘 썼구나 싶고 새삼 그의 필력에 감탄했다. 일본의 전통 문화인 다도에서 종종 행해지는 게임의 예법을 활용한 트릭도 (다도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상당히 기발하고 신선하다고 느꼈다.


둘째는 가가 형사의 일반인(?)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신참자>나 <기린의 날개>에 그려진 가가 형사의 모습은 노련하고 예리한 형사 그 자체의 모습이라서 경찰이 되기 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의 대학생 가가 교이치로는 교사를 지망하는 사회학과 학생으로, 몇 년 뒤 경찰이 되어 형사의 길을 걷게 될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가가가 대학 시절에는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으며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했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형사의 길에 조금씩 가까워졌는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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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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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을 여러 번 읽는 경우가 드문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는 두 번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2017년. 이 소설이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소설의 배경이 내가 가본 도쿄 긴자 니혼바시 부근이라고 해서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읽어 보았다. 그 때 쓴 리뷰를 찾아 보니 니혼바시가 배경인 건 반갑지만 내용은 그저 그랬다는 식으로 썼는데, 솔직히 이번에 이 소설을 다시 읽고 느낀 감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직전에 읽은 <신참자> 쪽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1년에 발표한 자신의 데뷔 35주년 기념작 <백조와 박쥐>와 비슷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어떻게 비슷한지는 차차 쓰는 것으로...


소설은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있는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 남성이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시간 후 근처 도로에서 한 청년이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데, 청년의 소지품 중에 죽은 남성의 지갑이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청년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니혼바시 경찰서의 가가 형사는 사건이 보기와는 다를 수도 있다고 짐작하고 피해자와 용의자의 주변 탐문을 꼼꼼하게 진행한다. 그 결과 용의자가 해고 당한 전 직장의 상사가 피해자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용의자가 범인일 수 있다는 설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는데...


앞에서 이 소설이 <백조와 박쥐>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썼는데, 첫째는 도쿄 한복판에서 중년 남성이 살해 당하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되는데, 살해 당한 남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지 않고 남은 힘을 짜내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이는 살해 당한 사람이 자신을 살해한 사람을 고발하기 위해 쓰는 '다잉 메시지'와는 정반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숨겨주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행동인데, 두 소설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숨겨주려고 하는 목적 내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둘째는 사건이 알려지고 언론 보도가 과열되면서 가해자의 가족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도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가족들이 스스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양상은 <백조와 박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기린의 날개>에서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기린의 날개>에서 피해자의 아들인 유토와 용의자의 아내인 가오리가 <백조와 박쥐>에서 용의자의 아들인 가즈마와 피해자의 딸인 미레이에 비해 활약을 못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유토는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이고 가오리는 임신한 상태라서가 아닐까.


셋째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이 난다는 점인데, 이는 두 소설뿐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라서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백조와 박쥐>에서 노인 대상 사기 문제를 거론한 것처럼 <기린의 날개>에서는 일자리 부족과 산업 재해 문제를 거론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린의 날개>를 처음 읽었을 때는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공장 내에서 일어나는 중대 재해를 은폐하는지 잘 몰랐는데, 그동안 몇몇 사건을 접하고 불매 운동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진작에 이를 언급한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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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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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학창 시절부터 일본 소설을 즐겨 읽었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오래 전부터 읽어 왔지만 요즘처럼 좋아한 적은 없다(예전에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에 재미를 느끼다니. 요즘 내 삶이 너무 피폐한가...). 내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매력을 새롭게 알려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 시리즈인 '고다이 쓰토무' 시리즈를 다 읽고(라고 해도 아직 <백조와 박쥐>, <가공범> 두 권뿐이다) 뭘 읽을까 하던 차에, 가가 형사 시리즈가 재미있다는 추천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2025년 9월 현재까지 총 12권이 출간되었다. 이중에 나는 제9권 <기린의 날개> 단 한 권을 읽었고, 이번에 제8권 <신참자>를 읽었다. <신참자>는 2010년에 방영된 아베 히로시 주연 드라마의 원작 소설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정통 범죄 미스터리 소설일 것 같다는 짐작과 달리 도쿄의 오래된 상점가를 배경으로 한 휴먼 드라마 느낌이라서 놀랐다. 같은 시리즈라도 작품의 전개 방식이나 분위기 등에 차이를 두는 점이 신기하고, 이런 식으로 작품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점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써내도 독자들이 매번 새로움을 기대하면서 그의 작품을 따라 읽는가 싶다.


소설은 도쿄 니혼바시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던 45세 여성 미쓰이 미네코가 교살당해 죽은 상태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니혼바시 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신참자' 가가 교이치로는 미쓰이의 전 남편과 아들, 친구는 물론 미쓰이가 생전에 자주 다니던 닌교초 거리의 상점가 사람들을 수시로 탐문하며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가가의 동료들은 가가 형사가 센베이 가게 딸, 요릿집 수련생, 사기그릇 가게 며느리, 케이크 가게 점원 등 사건과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가가의 생각은 다르다.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278쪽)


가가 형사에 따르면, 형사가 하는 일은 범인을 잡는 것만이 아니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려줘서 그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형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는 <신참자>에 이어서 읽은 <기린의 날개>에도 나오는 생각이고, 가가 형사 시리즈는 아니지만 최근에 읽은 <백조와 박쥐>, <가공범>의 고다이 쓰토무 형사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은 대체로 피해자의 가족인데, <신참자>에서도 가가 형사는 미쓰이의 아들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무심했던 것을 반성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라도 어머니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 보탬이 되고 싶어한다. 이는 가가 형사 자신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되는데, 가가 형사가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고 그로 인해 어떤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앞부분을 읽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서 구입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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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 3
토야마 에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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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리즈는 슐리에스 여왕을 지키기 위해 슐리에스 여왕에게 청혼한 옆 나라 레온 왕자의 아내가 되러 간다. 하지만 레온 왕자의 속셈은 따로 있었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리즈는 2권 마지막에 등장한 수수께끼의 남자 길과 함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찾는다. 한편 리즈가 레온 왕자의 꾀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슐리에스 여왕은 군사를 일으키고, 마침내 슐리에스 여왕을 꾀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레온 왕자는 둘만의 자리를 만든다. 이때 예상 밖의 인물이 나타나 슐리에스 여왕을 구하는데, 슐리에스 여왕의 관심은 오로지 리즈뿐이다.


토야마 에마의 만화 <마녀 메이드는 여왕의 비밀을 알고 있다> 3권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주인공 리즈의 과거사가 드러난다. 리즈가 지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특별한 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특별'한 것일 줄이야. 리즈 본인도 잊고 있었던 리즈의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여왕과 5왕자 그리고 길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원래는 슐리에스/브래드-리즈 커플이 최애였는데, 새로 등장한 길이 잘생기기도 하고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해서 길-리즈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ㅎㅎ 어서 다음 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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