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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dy. (ステディ) 2015年 06月號 [雜誌] (月刊, 雜誌)
寶島社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부록으로 주는 스누피 가방은 도시락 가방 정도의 크기입니다. 책 내용은 괜찮습니다. 너무 어리지도 않고 너무 성숙하지도 않고, 딱 20대 중후반 스타일이네요. 읽을 거리고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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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고객 백번 오게 하라
타카다 야스히사 지음, 김미선 옮김 / 아르고나인미디어그룹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업무에 필요한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구입했습니다. 잘 익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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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보다>도 좋았는데 <말하다>는 더 좋다. 이런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니, 대체 그는 여태껏 어떻게 읽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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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소설가 김영하의 TED 강연 영상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을 보았다. 소설가라고 하면 과묵하거나 눌변이리라는 편견이 있던 내겐 그야말로 신선한 발견이었다. 물론 김영하가 소설가 말고도 교수, 라디오 DJ, 팟캐스트 진행자 등으로 활약하며 다양한 재능을 보여줘 왔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긴 시간 강단 위에 서서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가슴을 울리며 청중을 휘어잡는 모습을 보며 그가 물건을 팔았다면 내 살림은 거덜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다행히 그는 소설가이고, 현재 내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엔 그의 책이 가득하다). 



김영하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강연, 대담 또는 인터뷰를 모은 책 <말하다>를 읽었다. 말 잘하는 작가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좋았다. 말만 좋은 것이 아니다. 강연, 대담 또는 인터뷰를 그냥 엮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는 말을 갈무리해 엮은 책이라서 생각외로 깊이가 있고 내용이 깔끔하게 연결된다. 이십 년 가까이 한 강연, 대담, 인터뷰를 정리한 수고도 대단하지만, 이십 년 가까이 소설과 문학, 창작 같은 심오한 주제를 최전선에서 고민하며 자신만의 답을 내기 위해 노력해온 노고도 굉장하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p.21)



저자는 먼저 오늘날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사인회 같은 자리에서 저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몇 년째 취업 준비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젊은 독자들을 보면서 '그들이 자기의 존엄성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결코 낙관할 수 없는 현실을 살면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정신이 사람들을 책으로 이끈다. 나 역시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취업 준비를 하는,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맹렬히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글쓰기란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남의 이야기를 그저 소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쓸 때 인간은 즐거움을 느끼고 사는 보람을 느낀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매체가 디지털로 바뀌고 140자의 제한이 생겨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텍스트를 쓰고 이야깃거리를 찾는 이유다.



우리 마음속의 예술적 충동은 억눌렸을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억눌린 충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중략) ... 연기가 저게 뭐냐, 발연기다, 노래도 못하는 게 무슨 가수냐, 댄스가 아니라 에어로빅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채널을 돌립니다. 우리 마음속의 시기심은 우리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린 예술가가 마음 저 깊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p.74)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세상과 거리를 두는 행위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하고 주목받고 싶어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둠이'다. '친구들 만나서 낄낄거리고 웃고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면 당시에는 그 어둠이 사라진 것 같지만 실은 그냥 빚으로 남'을 뿐이다. 글쓰기는 '한 인간이 자기의 과거라는 어두운 지하실의 문을 열어젖히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씀으로써 사람은 강해지고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는 힘을 가진다. 이걸 억압당하거나 스스로 억누를 때 인간은 타인을 비방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악에 기울어지기 쉽다.



그렇다면 김영하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설이란 무엇일까.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 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p.92) 



소설은 아니지만, 내겐 이 책이 꼭 그렇다. 김영하라는 작가가 키워온 아름다운 것을 몰래 훔쳐본 느낌, 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며 그 속에서 어떤 세상을 보았고 꿈꾸었는지를 알게 된 느낌이다. 소설이라는 광활한 우주에 비해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지를 느끼는 일이 쓸쓸하고 비참하기는커녕 오히려 행복하고 황홀하다는 고백도 아름답다. 



아마도 칼 세이건의 말일 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내 생애에 우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저와 소설의 관계도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전 세계의 소설에 역사가 있잖아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소설들이 있고, 제가 쓰는 건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죠. 앞으로 남은 생애 안에 제가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밤하늘의 어떤 흔적도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 세계의 일부라는 것, 내가 그 작가들 중 한 명이라는 것, 그게 어떤 기쁨을 줄 때가 있어요. (pp.89-90)



그 누구와도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느낀 적 없고, 그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도 완전히 물들어본 적이 없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일체감을 느끼고 어딘가에 푹 빠졌다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소설(을 비롯한 책)이 전부다. 이런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니, 대체 그는 여태껏 어떻게 읽어온 것일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 지, <보다>, <말하다>에 이은 김영하의 산문집 삼부작의 마지막권은 <읽다>라고 한다. 어떤 책일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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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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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에 접속하면 원하지 않아도 친구나 선후배 소식을 알게 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기도 한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내가 그들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실감한다. 아르바이트 수준의 급료를 주는 직장에 다니면서 (팔리지 않는) 글을 쓰고 (통과되지 않는) 기획서를 보내는 나날, 만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나날을 그들은 알까. '내리막 세상'을 탓하다 못해 스스로 내리막을 자처하고 일찌감치 '일하는 노마드'가 된 삶을 그들은 이해할까.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는 저자 제현주가 오늘날의 '일'에 대해 연구하고 고찰한 결과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맥킨지, 크레딧스위스, 칼라일 등에서 기업경영 및 M&A, 투자 분야 전문가로 10년간 일하고 현재는 협동조합 롤링다이스 대표이자 사회적 경제 분야의 경영 컨설턴트, 번역가, 작가로 일하고 있다. 여러 직장과 직업, 일의 형태를 경험한 저자에 따르면 더 이상 아버지 세대가 누린 종신고용, 평생직장은 없다. 경제성장은 물론 직장과 직업의 발전 또한 기대할 수 없는 내리막 세상에서 그래도 밥벌이를 해야하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노마드가 되어 여러 직장과 직업을 표류하는 것뿐. 여기까지는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의 설명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은 저자가 대안으로 공동체의 삶을 제시하는 점이다. 직장 생활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글쓰는 모임을 이끌었던 저자는 퇴사 후 친구들과 공동으로 출자하여 공동으로 경영하는 협동조합 롤링다이스를 세웠다. 롤링다이스는 전자책을 출판하고,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위한 컨설팅과 연구 사업을 한다. 조합원 대부분이 퍼스트 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래의 관점으로 보면 롤링다이스는 직장이 아니며, 협동조합이니 회사도 아니다. 각자 업무외 시간을 할애해 롤링다이스 일을 보고, 롤링다이스를 통해 개인적인 꿈을 성취하고 서로의 꿈을 지지한다. 이런 형태의 일도 가능하다니! 직장을 그만두면 사업을 하거나 1인 기업,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는 줄만 알았는데 사업을 하지 않고도 여럿이 함께 일하는 방법이 있다니 신선하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로서 솔깃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혹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한 번쯤 해보았을 고민에 대한 저자의 답도 흥미롭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 뭔지,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 중에 어떤 걸 직업으로 택할지 고민하거나, 막상 해보니 자신의 적성과 안 맞는 일임을 깨닫고 후회하거나, 보수가 좋으면 근무 조건이 나쁘고, 근무 조건이 좋으면 보수가 나빠서 갈등하는 등 일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이 허다하다. 여기엔 사회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않거나 욕망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 개인의 문제도 있다. 스스로 '일하는 노마드'가 된 건 좋은데, 기왕이면 그냥 노마드가 아니라 돈 잘 벌고 남들 보기에도 어엿하게 사는 노마드가 되고픈 나의 마음은 욕심일까. 아무래도 나의 표류는 꽤 길어질 것 같다. 




노동은 화폐로 환산되는 한에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가치가 높아야 자신과 가족의 배를 채운다. 그러나 밥벌이야말로 귀하다지만, 누구든 밥벌이만으로 인생을 채우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을 둘러싼 모순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한 욕구를 일 하나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p.10)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일하기 싫다'고 말하지만 싫은 것은 대개 일 자체라기보다 일이 놓인 조건이다. 그저 싫다, 괴롭다 토로하는 대신 정확히 어떤 부분이 싫은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무엇이든 하나씩 지금과는 '다르게' 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가 드러난다. ... (중략) ...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았기에 그들은 기꺼이 '다르게 사는' 비용을 치를 수 있었다. 그 덕에 그들은 일의 주인 자리에 뚜벅뚜벅 오를 수 있었다. (p.49)




요리는 요식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만화와 소설을 좋아한다고 출판업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ㄷ씨와 그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 만화와 소설은 일이 아니다. 요식업의 일에는 진상 손님과 승강이를 벌이는 것도 포함된다. 재료비와 인건비를 따져서 음식 값을 정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것도 들어 있다. ... (중략) ... 그에 반해 "가르치러 왔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어 좋은 일이 현실에선 오히려 진짜 좋아하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pp.55-6)




마지막 두 해 (물론 당시에는 그게 마지막 두 해가 될지는 몰랐지만) 갑작스레 시간이 많아졌다. 해야 할 일의 양이 줄어들었고 회사에 앉아서도 이른바 '딴짓'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여유를 즐겼다. 그렇지만 그 상태로 시간이 조금 흐르자 오히려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이 없음에도,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장소에 내 몸을 가져다 둬야 한다는 사실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일의 대가를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시간을 판 대가, 즉 내 자유의 일정 부분을 포기한 대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 둘은 스스로 내 일상을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내 자유에 아무리 비싼 값이 매겨진다 해도 그걸 팔아서 살고 있다는 실감은 뼈아팠다. (p.168)




많이 일하고, 많이 괴로운 사람이 능력자로 인정받는다. 아니, 정확히는 많이 일한 것처럼 '보이고' 많이 괴로운 '티'를 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보여주기 위해 쓸데없이 만들어내는 일이 난무한다. 일종의 군비경쟁인 셈이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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