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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책을 오랫동안 좋아해왔고 꾸준히 읽어왔지만, 북클럽에 가입해 읽어본 경험은 없다. 대학 시절 생활도서관이라는 일종의 독서 모임에 속해 있었지만, 다 같이 일정 기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기보다는 생활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책에 관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아리 활동에 가까웠다. 그래서 북클럽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늘 낯설고 궁금하다. 대체 북클럽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국 작가 그래디 헨드릭스의 소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을 읽은 것도, 어쩌면 북클럽이라는 단어에 이끌려서였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냥 북클럽이 아니라 '호러' 북클럽이다. 이 북클럽의 멤버들은 왜 하필 호러 소설을 읽는 북클럽을 하게 된 걸까. 이들이 읽는 호러 소설은 어떤 작품들일까.
시작은 이렇다. 1990년대 미국 남부 찰스턴의 올드 빌리지. 주민의 대다수가 백인 중산층인 이곳에 39세 주부 퍼트리샤가 살고 있다. 퍼트리샤는 의사인 남편 카터와 운동을 잘하는 딸 코리, 역사에 관심 많은 아들 블루를 두었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사실 퍼트리샤는 마음 편히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일상에 갑갑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퍼트리샤는 고민 끝에 이웃에 사는 주부들과 북클럽을 결성한다. 베스트셀러나 고전을 읽는 평범한 북클럽이 아닌, 잔혹한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호러 소설 또는 실화에 기반한 범죄소설만을 읽는 북클럽을 말이다.
그 후 퍼트리샤는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북클럽에서 정한 호러소설을 읽으며 지루한 일상을 잊고, 북클럽에서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우정을 쌓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 저녁, 퍼트리샤는 이웃에 사는 노부인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공격을 당하고, 이를 계기로 노부인의 조카 제임스와 교류하게 된다. 퍼트리샤는 첫인상은 안 좋았지만 외모가 준수하고 매너도 좋은 제임스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제임스에 대해 알아갈수록 불신과 의혹이 커진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남편마저도) 제임스를 이상하게 보는 퍼트리샤가 더 이상하다며 퍼트리샤를 비난하는데...
초반에 퍼트리샤가 호러북클럽을 결성해 멤버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좋았다. 그랬던 퍼트리샤가 제임스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심지어 남편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너무도 화가 났다. 이 과정에서 북클럽 멤버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어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이게 현실의 여자들의 우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견해의 차이에 따라 싸울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여자 마음 여자밖에 모르고, 여자 편은 결국 여자니까. (실제로도 이런 결말이다)
호러북클럽과 뱀파이어를 소재로 사회 곳곳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작품인 동시에 인종 차별(유색 인종 혐오) 문제를 지적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퍼트리샤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철저히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잡아준 사람이 백인인 남편도 자식들도 친구들도 이웃들도 아닌, 흑인인 그린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