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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3 - 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 ㅣ 땅의 역사 3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역사 전문 기자의 눈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리즈 <땅의 역사>의 신간이 나왔다. 지난 1권에서는 '소인배와 대인들', 2권에서는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라는 주제로 한반도의 역사를 살펴보았다면, 최근에 출간된 3권에서는 '군상 :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이 땅의 이야기를 다시 쓴다.
나라를 뒤흔든 대표적인 인물 하면 정도전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왕조의 초대 왕은 이성계이지만, 누가 뭐래도 일등 개국공신은 정도전이다. 정도전을 무너져가는 고려 왕조에 거역해 역성혁명을 구상한 혁명가이자, 민본이라는 통치이념과 정부 시스템을 마련한 기획자이다. 그러나 왕자의 난을 거치며 이방원과 충돌했고, 결국 이방원에게 밀리면서 목숨까지 잃었다. 1865년 경복궁 중건을 계기로 사면되기 전까지,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공신이 아닌 조선 왕조를 위기에 빠뜨린 간신으로 평가되었다. 경기도 구리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묘, 건원릉 신도비에 정도전이 공신과 간신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유다.
혁명까지는 아니어도 기존의 부패한 관습 또는 전통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 인물도 있다. 척재 이서구(1754-1825)가 대표적이다. 박지원의 제자인 이서구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홍문관 교리, 한성부 판윤, 지방 관찰사 등을 거쳤다. 이서구는 정조의 명을 받아 왕의 눈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수탈에 고통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크게 신음했다. 마침내 이서구는 환곡과 군정, 노비에 읽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내 정조에게 제안했고, 이에 따라 세금을 거두는 대신 창고를 풀어서 백성들을 먹이고 양전을 다시 해 세금을 재산정하는 등의 성과가 나타났다.
흔히 위정자들이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위정자들이 역사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은 맞지만, 오로지 위정자들만 역사에 관여하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도 위정자가 아닌 개혁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불세출의 천재였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무역과 상공업 진흥의 중요성을 외친 연암 박지원, 중국의 화풍을 모방하는 대신 조선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 몰두했던 겸재 정선, 일제의 고문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만해 한용운 등이 그렇다. 이들의 이야기는 정치나 관직과는 거리가 먼 갑남을녀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는 교훈과 자극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