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돌로지 - 전복과 교란, 욕망의 놀이
스큅 외 지음, 연혜원 기획 / 오월의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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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읽은 책이다. H.O.T부터 NCT까지 25년 넘게 케이팝을 좋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거쳐온 팬덤 내의 문화와 변화가 이 책 한 권에 응축되어 있는 느낌...! 


이 책은 케이팝이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현상의 기저에 퀴어 프렌들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책에는 "Speak yourself"라는 제목으로 UN연설을 한 BTS, 개인 SNS를 통해 "LGBT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라고 밝힌 선미, "LGBT+ 팬덤을 향해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 이달의 소녀 등의 사례가 나온다. 당장 유튜브만 검색해 보아도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LGBT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영상이 다수 나오고, 이에 대해 다수의 해외 팬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낸 것을 알 수 있는데, 한국 언론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수상 실적이나 판매량에는 주목해도) 구체적인 인기 요인이나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 책은 케이팝과 팬덤 문화의 퀴어적인 속성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단순히 케이팝에 게이 문화 또는 레즈비언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는 정도를 넘어서, BL, 팬픽션, 알페스 등 팬덤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퀴어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를테면 게이가 여자 아이돌(을 비롯한 여성 아티스트)을 좋아하는 경우는 흔한데, 레즈비언이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진짜 레즈비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뭘까. 남돌 팬픽은 성애 묘사의 수위가 높은데 반해 여돌 팬픽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알페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 


이성애 독점 관계만을 '정상적인' 성애의 형태로 인정하고, 성인이 되면 모든 사람이 (이성 간의) 연애-결혼-임신-출산-육아를 해야 한다고 믿는 한국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케이팝을 중심으로 모이고 연결되는 현상에 대한 분석도 흥미로웠다. 나는 이성애자 여성이지만 결혼-임신-출산-육아를 하지 않아서 동년배의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운데, 이로 인한 소외감을 팬덤을 통해 해소한다. 성소수자의 경우 원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BTS의 <화양연화> 시리즈에 나오는 대안가족 콘셉트처럼 혈연이 아닌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감동적인 대목도 있었다. 소녀시대는 원래 성인 남성 소비자층을 주요 타깃으로 만들어진 걸그룹인데, 2016년 이화여대 시위에서 학생들이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후로 이 노래가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노래로 재해석/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티스트들을 상품화하는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는 팬들의 활동이 나는 너무 재미있고, 이것이 결국 케이팝의 인기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전 세계로 퍼지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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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9
박상진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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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서양 문학의 4대 시성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생애를 박상진 작가가 직접 단테의 고향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돌아본 내용을 담은 책이다. 단테는 대표작 <신곡>을 비롯해 여러 권의 작품을 남겼으나 정작 단테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저자는 단테가 태어나고 자란 피렌체를 비롯해 훗날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망명 생활을 할 때 거쳐간 곳을 하나씩 직접 돌아보며 당시 단테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을 만한 것들을 대리체험한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단테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유능한 정치가이자 행정가, 철학자, 자연과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살았던 13세기 말과 14세기 초는 이탈리아가 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고, 피렌체가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한 때였다. 어려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의 사상을 수학한 단테는 현실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실천적 지식인이 되고자했고, 그러한 소망은 정치가, 행정가가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뜻을 이루기도 전에 정치적 분쟁에 휘말려 1301년 망명길에 올랐고 1321년 타계하기 전까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저자는 단테의 망명이 단테에게는 불운이자 비극 같은 사건이었을지 몰라도 인류 전체에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망명길에서 단테가 대표작 <신곡>을 구상하고 완성했기 때문이다. <신곡>에는 당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은 물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단테의 생애를 짐작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이 숨겨져 있다. 오랫동안 단테를 연구한 저자 박상진은 적절한 인용과 이해하기 쉬운 해설로 <신곡>과 단테,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북부 도시들의 문화와 역사를 연결한다. <신곡>을 읽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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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김후영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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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힘든 시대에 '대리 여행'하기 좋은 책을 만났다. 바로 전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유산과 관련 있는 역사 지식, 여행 정보 등도 담고 있다. 여행 정보를 원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여행을 통해 세계 역사와 문화를 학습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저자 김후영은 지난 30년간 전 세계 135개국을 여행했다. 그중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 상당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유엔의 전문기구 중 하나인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인류가 창조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적 아이템으로서 보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지역 또는 유적을 일컫는다. 현재 전 세계 195개국 중 124개국 721군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자연유산 포함). 


이 책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만리장성, 마추픽추처럼 전 세계인이 다 알 만한 유명한 곳도 많지만, 아이티의 상수시 궁전이나 말리의 도곤 카운티, 니제르의 아가데즈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접근성도 좋지 않은 곳도 상당수 있다. 그만큼 관리와 보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행 마니아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여행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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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토라 :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
W. 데이비드 막스 지음, 박세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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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미스테리아> 35권 덕분이다. 편집자 서문(editor's letter)에 이 책과 함께 이 책에 나오는 '미유키족'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데, 오랫동안 일본 문화를 공부하고 연구해 왔지만 '미유키족'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건 처음이라 정확히 무슨 뜻이고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말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서둘러 이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가슴이 뛰었다. 놓쳤으면 땅을 치며 후회했을 뻔!!! 


이 책을 쓴 W. 데이비드 막스는 일본 패션, 음악, 문화 연구자다. 저자는 우연히 최근 글로벌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본 디자이너들이나 유니클로의 성공이 60년대를 풍미한 아이비 패션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패전 직후 일본에선 승전국인 미국의 제도, 사상, 문물 등을 전폭적으로 도입했고 이는 패션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복에 비해 남성복은 미국화가 더디게 진행되었는데, 이 속도를 크게 앞당긴 인물이 VAN의 창업자 이시즈 겐스케다. (이 시절 VAN 재킷을 입고 긴자 미유키 거리에 모였던 젊은이들을 '미유키족'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유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성세대와 충돌하기도 하고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미국식 스타일은 결국 일본의 주류 패션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다양한 스타일이 도입되었다. 90년대에는 우라 하라주쿠에서 출발한 일본 스트리트 패션이 'A Bathing Ape' 같은 브랜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꼼데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등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자리 잡으며 미국 패션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일본 패션이 미국을 넘어 세계 패션의 중심에 섰음을 보여줬다. 


일본의 패션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출판, 영화, 광고 산업이 함께 성장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패션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옷 잘 입는 사람들을 촬영해 잡지에 게재한 것이 오늘날의 스트리트 패션모델, 독자 모델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60년대만 해도 미국 사진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일러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탄생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 일본 잡지 POPEYE의 역사도 알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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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 땅의 역사 4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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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연재 중인 박종인 기자의 책 <땅의 역사>에는 우리 역사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의 알려진 역사와 숨겨진 역사 이야기가 다채롭게 실려 있다. 특히 최근에 출간된 4권에는 우리가 그동안 역사적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사건들의 실체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단연 충남 예산군에 있는 남연군묘에 관한 이야기다. 남연군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선친이 묻힌 곳이다. 가문의 부흥을 염원하던 흥선군 이하응은 지관에게 가야사 석탑 자리에 묏자리를 쓰면 2대에 걸쳐 왕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선친의 묘를 가야산 석탑 자리로 옮겼다. 실제로 이하응의 아들(고종)과 손자(순종)가 왕이 되었으니 지관의 예언이 맞은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이다음부터다. 순조 때 역관이자 시인인 이상적이 남긴 문집 <은송당집 속집>에는 흥선대원군이 남연군 묏자리에 있던 탑에서 용단승설 네 덩이를 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용단승설은 송나라 때의 명차(名茶)로, 이상적은 이 귀한 차를 대원군으로부터 얻어 스승인 김정희에게 선물했다. 차가 유행했다는 것은 차를 담는 다완이 유행했다는 뜻이다. 특히 일본에서 조선 다완의 인기가 좋았는데,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이 조슈, 사가, 사쓰마 3번에서 경쟁적으로 다완을 비롯한 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판매해 산업 발전을 이뤘고, 이는 메이지 유신과 정한론,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경복궁 석물의 비밀, 서점 없는 나라 조선과 책쾌들의 대학살, 혐한론자 소동파와 그를 짝사랑 한국인, 역관 집단의 밀수 행각과 산업스파이 사건 등 역사 수업 시간에는 배운 적 없지만 알아두면 쓸모 있을 역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을 읽고 흥미를 느낀 독자가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도록 각 장별 주요 답사지의 주소 및 검색어를 정리해둔 페이지도 있다. 팬데믹 상황이 개선되면 몇 곳은 직접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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