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 장대한 동슬라브 종가의 고난에 찬 대서사시
구로카와 유지 지음, 안선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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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해 배운 기억은 전혀 없다. 구 소련의 위성국가였다는 것과 소련이 해체될 때 독립 국가가 되었다는 것,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린다는 것 정도만 겨우 떠오를 뿐이다. 이는 옆나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쓴 구로카와 유지는 도쿄대학을 나온 엘리트 외교관인데도 주 우크라이나 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문화, 지정학적 중요성을 연구하여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전술한 것처럼 우크라이나 하면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해에 처음 건국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0~12세기에 현재의 동유럽 지역에는 '키예프 루스 공국'이라는 대국이 존재했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수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 있었다. 하지만 이후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 루스 공국이 쇠퇴하고 모스크바가 슬라브 공국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키예프 루스 공국을 잇는 정통 국가의 자리를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가 차지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빼앗긴 것은 역사와 지역의 중심 지위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 예술과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모두 러시아에 빼앗겼다. 일례로 러시아가 자랑하는 문호 고골은 순수 우크라이나인이며,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의 선조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한다.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세르게이 코롤료프 역시 우크라이나인이다.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농업 생산량을 자랑하는 나라인 건 맞지만, 농업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보면, 일본과 중국 등 강대국들을 주변국으로 두어 주권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자연히 떠오른다. 만약 우리나라가 독립을 달성하지 못하고 최근까지 주변국으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지배를 받았다면, 우크라이나처럼 자국의 역사를 빼앗기고, 문화와 예술을 빼앗기고, 속절없이 침공 당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까. 한국이 자랑하는 위인들이 일본이나 중국의 위인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에(2002년) 일본에선 이미 이런 책이 출간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단순히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국방이나 경제 등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문제들에 대해 전직 외교관으로서의 통찰을 담은 분석을 중심인 책을 펴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2000년대 초에 출간된 책이라서 최근에 부상한 문제들이 담겨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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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제로 - 마음의 중심을 잡고 평온을 찾는 시간
박현순 지음 / SISO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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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명상, 마음챙김 등의 키워드에 매우 관심이 많다. 이 책은 예스24 북클럽 인기 도서 목록을 보다가 명상에 관한 책처럼 보여서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 박현순은 고3 때 상담사가 되겠다고 정하고 대학,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 우연히 게슈탈트 심리학에 기반한 상담을 받고 매료되어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저자는 자신의 상담실로 찾아온 내담자와 상담할 때 실제로 행하는 5주 간의 상담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마음의 문제는 과거에 해소되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미해결 과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를 테트리스에 비유한다. 한 칸만 비어도 한 줄 전체가 제거되지 않는 테트리스...) 그리고 그 문제는 지금의 내가 그 문제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해소된다. 알아차리기 위해선 과거의 일들 위에 덮여있는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야 한다. 이 작업을 수월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상담과 명상이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 가정과 학교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저자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20년을 넘게 심리학을 공부해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그러다 상담 과정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교에서 겪은 일을 떠올렸고, 그 일이 바로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힌 미해결 과제임을 깨달았다.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이제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저자는 문제를 해결했다. (감동적인 대목이니 책으로 읽으시길...) 


이 책에 나오는 개념이나 용어들은 사실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알아차림, 내면 아이, 게슈탈트 심리학 모두 예전에 들어본 것들이고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20년 넘게 심리학을 공부하고 실제 상담을 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정리한 내용을 읽으니, 비로소 심리학이 왜 필요하고,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면 아이를 만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의 다음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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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 선택과 모험이 가득한 인류 진화의 비밀 속으로
이상희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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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문학과 인문, 사회 분야의 책을 읽는 편인데, 책 편식(편독?)을 막기 위해 이따금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기도 한다. 이 책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을 쓴 이상희 님은 한국인 최초 고인류학 박사이며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상희 님의 이력은 이다혜 작가님의 책 <내일을 위한 내 일>에 자세히 나온다. 학창 시절 내내 피아노를 치다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한 저자는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미국 유학을 결정했다. 그곳에서 대학에서도 접한 적 없던 고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한 건, '지금의 세계와 완전히 떨어진 별사람들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그러나 고인류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나와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고인류에게서 자기 자신이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뇌의 크기를 비롯해 골반의 넓이와 모양, 송곳니와 앞니, 어금니의 크기까지도 오랜 세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는 것을 알고 나니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인종주의, 제국주의, 성차별에 입각한 편견에 사로잡혀 실제 증거가 있는데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사례들을 보기도 했다. 똑똑한 학자들이 발견된 뼈의 크기가 크면 남성, 작으면 여성이라고 분류했다니. 고인류가 성별 분업을 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남자는 사냥과 전투를, 여성은 채집과 육아를 담당했다고 믿었다는 건,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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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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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고고학자 강인욱의 책이다. 저자의 책 중에서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유라시아 역사 기행>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잘 읽혔고 쉽게 이해되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한겨레>에 연재된 글이라고 하는데(단행본으로 엮는 과정에서 절반 이상을 추가하고 다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주제를 다루며, 내용도 저자의 전공인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유라시아 전역과 고고학 전반을 포괄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 중에는 잘못된 것이 의외로 많다. 대표적인 예가 4대 문명이다. "4대 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활보할 때에 만들어졌다. 문명이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달했고 나머지 지역은 미개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몇몇 선진국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22쪽) 이를 입증하듯, 최근 4대 문명의 발상지가 아닌 지역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터키 남부의 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토기 2만 년 전의 토기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용어를 배우게 된다. 이는 4-6세기에 아시아로부터 밀려 들어온 훈족에 의해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 안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점차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을 일컫는다. 이때의 훈족이 유라시아 동쪽에서 맹위를 떨쳤던 흉노의 후예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 시절 흉노가 워낙 강성했기 때문에 신라에도 흉노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흉노는 유목 사회였기 때문에 단일 민족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식으로 기원이나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차별이나 편견을 조장하고 공존과 평화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와 나치의 티베트 숭배다. 우생학과 인종주의에 경도된 히틀러와 나치는 '순수한' 아리아인을 찾고 찾다가 티베트에 주목했다. 이때부터 서양에서는 티베트를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신비롭고 성스러운 공간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으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묘사되었듯이 서양인들의 무분별한 약탈이 시작되었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정치적, 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역사를 공부하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역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고고학이 막아준다고 하니, 앞으로 역사뿐 아니라 고고학에 관한 책도 계속 읽어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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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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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서평 전문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이하 서리북)를 구독하고 있다. 서리북 덕분에 좋은 필자들을 여럿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쓴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이 그중 하나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박훈 교수가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들을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몇 해 전에 읽은, 21세기북스에서 나온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박훈 교수가 번역한 걸 뒤늦게 알고 반가웠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일본의 역사를 바꾸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지유신 전후를 다룬다. 메이지유신의 결과 약 270년 동안 지속되었던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일왕 중심의 메이지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이후 일본에선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정권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이들은 조선 침략과 한일병합, 식민통치를 이끌었다. 


저자는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던 네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네 인물은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스승 같은 인물이다. 그는 강력한 쇄국정책이 시행되었던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해외의 사상과 문물에 관심을 가졌고, 유학뿐 아니라 병학에도 능통해 해군 육성을 재촉했으며, 신분과 지역의 구분을 넘어서는 협력을 제안했다(초망굴기론).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2010년 방영된 후쿠야마 마사하루 주연 NHK 드라마 <료마전>을 비롯해 메이지유신 전후가 배경인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 반드시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의 대기업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가 존경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관습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국제적인 마인드, 이웃나라들과 반목하지 않고 협력하는 태도를 보인 점 등은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가 메이지유신의 기틀을 다졌다면,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메이지유신을 실행했다고 볼 수 있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둘 다 '유신삼걸'로 불리지만 리더십이나 스타일이 매우 달랐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최후의 사무라이'라고 불릴 만큼 완고한 캐릭터였다면, 오쿠보 도시미치는 유연하고 현실적이었다. 이들과 함께 유신삼걸로 불린 또 다른 인물, 기도 다카요시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다룬다고 한다. 그 책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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