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니 대학 시절에 겪은 일화가 떠올랐다. 방학을 맞아 모 지역의 아동센터로 교육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그중 한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봉사가 뭐예요?" 당시 나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전부 다 '00봉사단'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그 아이는 그저 '봉사'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 물어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와 봉사자들은 아무도 봉사가 무슨 뜻인지 말할 수 없었다. 봉사가 무슨 뜻인지 말하는 순간,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나와 봉사자들은 '봉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최 측에 건의했다.)
저자 역시 비슷한 일화로 서문을 연다. 저자는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저자가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가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왜 사용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얼굴이 빨개지는 경험을 했다. 문제가 된 표현은 '결정 장애'였다. 유행하는 말이니까, 남들도 다 사용하는 말이니까, 괜찮을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썼다가 본의 아니게 '차별주의자'로 몰렸다. 하필 그 자리에는 장애인도 많이 있었다.
이 책의 1부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나오고, 2부에는 차별이 숨겨지는 작동원리가 나온다. 마지막 3부에는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선량한 차별은 주로 주류 또는 다수자인 사람들의 무지 또는 무관심에서 발생한다. 만약 자신이 비주류 또는 소수자라면 차별과 혐오가 반영된 말 또는 행동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장애인이라면 '결정 장애' 같은 말을 쉽게 쓰지 않을 것이고, 동남아 사람이라면 "요즘 얼굴이 너무 타서 동남아 사람 같아."라는 말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한 사회의 주류 또는 다수자인 사람이 그 사회로부터 벗어나 비주류 또는 소수자가 되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한국 안에서만 살면 '한국인이라서' 차별받는 경험을 할 일이 없다. 외국에 나가면 다르다. 당장 미국이나 유럽에만 가도 '칭챙총' 같은 동양인 혐오 표현을 쉽게 들을 수 있고, 여성이라면 외국인 남성들로부터 '캣콜링'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여학교) 때 나는 수시 면접을 보러 모 대학(공학)에 갔다가 여자 화장실을 찾지 못해 곤란했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후 나는 여대에 진학했는데, 학점교류 수업을 들으러 온 남학생들이 남자화장실 찾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걸 들으며 그때의 기분을 떠올렸다.
차별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차별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나만 해도 봉사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함부로 사용했고, 지금도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차별 - 예를 들면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나 성 정체성, 이민, 난민 등으로 인한 차별 -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사회에 차별이 없다거나 차별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고 지금도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별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진 특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발견한 다음에는 그러한 특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로서는 편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불평등'을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고 개선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특권(을 가장한 차별)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 공정과 평등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