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 3부작
알베르토 안젤라 지음, 주효숙 옮김 / 까치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달에 두 번, 운동부족으로 여간해선 뛸 일이 없는 내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알라딘 알사탕 코너의 '틀린그림찾기'다. (이번에 갱신된 퀴즈는 너무 어려웠어요ㅠㅠ 난이도 좀 낮춰주세요ㅠㅠ) 이 코너의 최대 매력은 퀴즈를 클리어하면 알사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퀴즈를 풀면서 새롭게 출간된 책에 대해서 알게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서점에 갔을 때나 온라인서점에서 왠지 낯이 익은 책이 보여서 '어디서 봤더라'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틀린그림찾기'에 제시된 퀴즈 속의 책인 경우가 많다.

 

이 책 <고대 로마인의 24시간>도 '틀린그림찾기'를 통해 알게된 책이다.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꼽을 정도로 고대 로마와 이탈리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의 역사나 정치에 대해서만 알았지, 민중들의 생활과 문화, 풍습 같은 '진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순간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길에서 산책을 할 때는 무엇을 느꼈을까?

길을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땠을까?

발코니에서는 무엇이 보였을까?

음식은 어떤 것이 있었고 맛은 어땠을까?... (p.12 서문 중에서)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안젤라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고고학적 유적지를 탐구하고 조사한 사람이다. 몇 년 간 고대 도시 로마의 유적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방송 제작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로마 제국 당시의 사회상과 관습, 일상에 대한 책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나도 광화문 주변, 특히 조선 시대 6조 관청이 자리했던 광화문 앞 대로와 피맛길 같은 주변로를 걸을 때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상상해보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종종 생각해보는데(남한강으로 이어지는 나루가 있고, 누에고치를 키우는 방이 곳곳에 있었겠지?),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책으로 재현한 것이다.

 

저자는 동이 틀 무렵부터 이튿날로 이어지는 자정까지, 하루 24시간 동안 로마인의 삶을 관찰하는 식으로 고대 로마인의 의, 식, 주생활과 정치, 경제, 예술, 성(性)문화에 이르는 모든 것을 자세히 그려냈다. 로마의 예술은 곧 현대 예술의 기원이고, 로마의 철학은 현대 철학의 원형인 것처럼, 로마의 모든 것이 현대인들의 생활, 학문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그 분야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새롭게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옷에 대해 잘 몰라서 초반에 나오는 로마인들의 의생활에 대한 부분이 특히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즐겨 입었을까? 바지는 언제부터 입었을까?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이 이 책 한 권으로 풀렸다.

 

 

고대 로마의 모습은 현대의 뉴욕, 런던을 방불케 할 만큼 수많은 인구가 몰려 있고 첨단 기술이 밀집해있는 '메트로폴리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엄청나게 복잡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중심에 있는 도시로서 제 몫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에도 튼튼하게 제 몫을 하고 있는 로마 제국의 도로와 잘 갖추어진 상하수도, 최신 공법으로 지은 (당시로서는) 고층 건물 등 인프라가 받쳐주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로마에도, 당시 기술로서는 커버할 수 없는 문제점이 몇 가지 있었다. 아니,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이상하고 불편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예를 들면...  

 

로마에는 건물 밖으로 소변과 배설물을 내버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규가 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법규는 무척 엄중하게 적용된다. 형벌은 위에서 쏟아부은 이 폭격의 피해 상황에 달려 있다. 옷만 버린 상태인지 혹은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신체적 손상을 입혔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은 로마 제국 내에서 배설물이나 소변의 투하 위험이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pp.99-100)

  

소변과 배설물을 창 밖으로 버리지 말라는 법규가 제정되었을 정도라는 것은, 그만큼 그런 일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는 배변, 목욕 등 현대에는 집 안에서 해결되는 일들을 집 밖의 공중화장실, 공중목욕탕에서 해결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집 안에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고, 집 안에 있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저렇게 집 밖으로 배설하거나 내버리는 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변기 시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은 평평한 벤치 위에, 자물쇠 구멍같이 생긴 뚫려 있는 구멍 위에 앉는다. 긴 벤치 아래에는 깊은 수로가 있다. 수로에 흐르는 물이 모든 것을 운반해간다. (p.242)

 

그렇다면 공중화장실의 모습은 어떤가? 나는 책에 제시된 그림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중국 화장실에는 칸막이가 없어서 일 보는 사람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는 얘기가 있는데, (얘기가 아니라, 나도 중국에서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요즘은 아주 깊은 시골에서나 그렇다고 한다)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길고 평평한 벤치가 있고 거기에 엉덩이 사이즈보다 조금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 앉아서 일을 보는 것이다. 모습만 보면 멀쩡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어쩌면 가장 멋스럽고 세련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우리의 어떤 모습을 이상하고 불편하게 여길까?

 

 

고대 로마인들의 모습 중에서 현대에까지 이어진 것들도 있다. 가령...

 

오늘날 공중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수많은 외설적인 낙서도 빠지지 않는다. 아무튼 이 많은 외설스런 낙서 가운데 "마르쿠스는 도미티암을 사랑한다"라는 순수한 사춘기의 사랑의 연시가 돋보인다. 바로 옆에는 균형을 맞추려는 듯이 "아주 세련된 몸가짐의 그리스 여인 에우티키스는 2아스에 몸을 내어준다"라고 외설스런 낙서가 적혀있다. (pp.86-7)

 

두 노인은 모라(제로 게임에 해당/역주)라는 게임을 하는 중이다. 이 게임의 원래 이름은 미카티오이다. 팔뚝을 들었다가 아래로 힘차게 뻗으며 숫자를 외치며 동시에 손가락 몇 개를 펼친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게임하는 두 사람이 펼칠 손가락의 합계를 미리 알아맞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p.135)

 

고대 로마인들도 요즘 사람들처럼 공중 화잘실에 '철수♡영희', '철수 바보' 같은 유치한, 또는 외설적인 낙서를 하며 즐겼다니! 게다가 어릴 때부터 즐겨하던 '제로' 게임의 유래가 고대 로마로까지 거슬러간다니!!! 생활 속의 아주 작은 것,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교훈이 있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고대 로마의 할아버지들은 당신들께서 하고 있던 그 게임이 무려 2천년 후에도 꼬마들이 즐기는 놀이로 이어질 줄 상상이나 하셨을까?

 

 

고대 로마인들의 모습 중에는 현대인들과는 너무 다른 것도 있고, 참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고대 로마 하면 떠오르는 복잡한 정치사나 전쟁사에서 살짝 벗어나,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난 민중들의 생활로서 역사를 접하는 것도 참 의미있는 공부, 의미있는 책 읽기인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로마人 이야기가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3-0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겠어요. 어느 분인가 했는데 이름이 또 바뀌었네요, 키치님. <로마인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매번 중간에서 포기하게 되는데 그래서 인문서도 어려울 것 같은데 리뷰 보니까 믿을만 하겠어요. 잘 읽었어요^^

키치 2012-03-05 15:54   좋아요 0 | URL
제 예전 닉네임을 기억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 이 책은 로마인의 의식주 같은 일상생활 위주로 쓰여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각 챕터를 하루 일과로 구성한 점도 신선했고요.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성격 - 적응하고 진화하고 살아남아라!
한나 홈스 지음, 황혜숙 옮김, 이시형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이제까지 성격, 심리학에 관한 책을 여러권 읽어봤는데, 이 책은 철저히 과학, 의학적으로 접근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과 쪽 머리가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ㅠ ㅠ) 내용의 핵심과 저자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알겠다.

 

인간의 성격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성격이 더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의 성격을 얼마나 이해하고 서로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내가 미련하다 싶을만큼 성실하다고 해서 남에게 똑같이 성실해지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무모하다 싶을만큼 충동적인 사람을 만나서 2인 3각 경기를 하듯이 보조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낫다. 신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고, 인류는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막상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런 생각은 안 나고 화부터 나는 걸까? 그게 진짜 성격심리의 미스테리가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깨어나라, 일어나라
브루스 레빈 지음, 안진이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부 때 이런 과제를 했던 적이 있다. 정치학에는 몇 가지 분석 차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서 실제 사례에 적용해보고 그에 따른 영향을 연구해보는 것이 주제였다. 나는 개인 차원을 선택해서 모 외국 정치인을 대상으로 그의 성장 배경과 학력, 경력 등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심리적인 특징 같은 것을 분석하여 정책에나 정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내용을 제출했다. 학부 차원에서 아주 얕게, 낮은 수준으로 배웠을 뿐이라서 '정치심리학'이라고 제대로 부를 수는 없겠지만, 학부 때 했던 과제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고 재미 있었다. 작년에 <닥치고 정치>를 읽으면서 한국의 유력 정치인 몇 명을 이념이나 정당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분석한 부분을 읽고 그 과제 생각이 났다. 사실 이념, 정당, 출신 지역... 이런 얘기 하면 어렵고 지루하지 않나? 어떤 가정에서 자랐고,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떤 직업을 거쳤고, 교우 관계, 연인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런 걸 알아보는게 그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려줄지 모른다. (물론 가십 수준에 그치면 안 되고, 전문적인 심리학 분석을 거쳐야 하겠지.)

 

비단 정치인 개인뿐만 아니라 대중의 심리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임상심리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사회 비판적인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는 작가 브루스 레빈이 쓴 <깨어나라, 일어나라>가 바로 그런 책이다. 정치와 심리의 만남. 아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분야는 아니지만, 앞으로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나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이 책은 미국판 <닥치고 정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치도 간신히 관심 가지는 정도인데, 미국까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 정치는 한국 정치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게다가 미국 역시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또한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실업난, 사회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년 전 큰 기대를 걸고 뽑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미국인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중들이 더욱 정치에 대해 관심을 잃고, 뭔가 바꿔보겠다는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무관심, 무기력함, 그리고 그것들의 장기화.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인데 말이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미디어는 흔히 미국인들을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중도파'로 구분하는데, 이것은 다분히 기업정치에게 유리한 구분이다. 어떤 집단이 선거에서 승리하든 간에 기업정치의 권력은 변함없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기업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엘리트주의', '반엘리트주의'라는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유리하다. -파편화된 사람들- (p.37) 

 

이 책에서 저자는 정부 관료, 정치가, 대기업 등 이른바 엘리트 집단에 의해 대중이 파편화되고 있는 현실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현대 미국인의 25%가 절친이 없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상대나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가 없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루트는 제한되어 있고, 경제적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학자금 대출과 실업난 때문에 사회에 예속된 노예 상태나 다름 없고, 중장년층은 중장년층대로, 노년층은 노년층대로 세상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의지할 곳을 잃고,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매스미디어와 쇼핑. TV로 남이 돈 쓰는 모습을 보고, 쇼핑센터에서 내 돈을 쓰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것만이 현대 미국인들의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스포츠, 연예인 가십에 온 정신을 쏟느라 정작 내 고민,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런 것들이 없었던 시대, 그러니까 해 뜨면 논 매고 밭 갈고 소 여물 주고, 해 지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했던 조상들이, 어쩌면 마음은 더 풍요롭고, 인생에 대해서는 더 큰 지혜를 발휘하며 살았을런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전보다 더 발전한 것일까, 후퇴한 것일까. 나는 자꾸 후자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사람이 자립 능력이 부족하면 자존감을 잃는다. 현대 사회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간단한 요리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 소비주의 문화에서는 그런 자립능력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 ... 이것이야말로 기업과 정부의 엘리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음가짐이다. 자립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자신감도 바닥이기 때문에 수입이 끊기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어마어마한 공포를 불러일으켜 사람을 망가뜨린다. (pp.145-6)

 

게다가 정신과에서는 이러한 시대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는 사람들을 정신질환을 가진 것으로 분류하여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전 같으면 그저 반골 정신이 투철하다거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사람들이 이제는 정신병을 가진 '환자'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상태가 아닌, 아주 약간의 과잉행동장애, 자폐 등의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도 정신병 환자로 분류하고 약물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애초에 '정상'이라는 상태를 상정한다는 것 자체부터 잘못된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점차 다수와 다른 의견을 말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고 (이상하게 보일까봐), 그러다보면 사회가 다양성을 잃고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얘기지만, 생각해볼만한 지적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장을 정리하다가 이 책 <분노하라>가 눈에 띄었다. 저자 인터뷰에 추천사, 역자 후기, 주석을 합쳐도 채 백 쪽이 안 되는, 소책자마냥 얇은 이 책을 지난 여름에 한창 화제가 되었을 때 바로 구입해서 읽고(그것도 콩국수 집에서 콩국수 나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에 ㅎㅎ) 감상 쓰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이 글은 계절이 두번 바뀐 뒤에야 쓰는, 아주 뒤늦은 감상문이다.

 

저자 스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1917년생이면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에 태어나신 셈이니 저자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진다. 7세 때 프랑스로 이주하여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저자는 선배인 사르트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하는 통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었다. 연합군 상륙작전을 돕는 중에 체포 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종전 후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인권과 환경 문제에 굵직한 종적을 남겼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제일 먼저 저자가 몸담았던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구축한 개혁안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이 개혁안에는 사회보장제도 구축, 언론 독립, 평등한 교육 등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새롭고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종전 후 프랑스는 이 개혁안에 기초하여 사회제도를 만들었고, 그 결과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2008년 무렵부터 프랑스 사회의 근간이기도 한 개혁안의 의지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묵인되고, 사회보장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언론이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장악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며 저자는 분노했다. 나치로부터, 전쟁의 참화로부터, 종전 후 혼란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p.15)

 

저자는 사람들이 좀더 자신처럼 사회에 대고 분노하기를 바란다. 분노는 레지스탕스가 들고 일어섰던 기본동기로서, 미약한 개인을 사회에 참여하게 만들고, 투사로 만들며, 이 투사들이 역사를 만들고 자유를 쟁취한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분노와 상반되는 최악의 태도로 저자는 무관심을 지적했다.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는 것이니 결과 또한 부정적이지 않겠냐는 의구심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분노는 지금 처한 상황을 극복해서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는 반면, 무관심은 상황에 승복하여 아무런 희망도, 보람도 없이 살겠다는, 지극히 수동적인 감정이다. 부정에 일일이 분노하는 사회가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회보다는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전하고자 한 바가 아닌가 싶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p.22)

 

 

나이를 먹을수록 역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경건해진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보다 역사책을 좋아하고, 사극을 좋아했을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내 눈에도 그 때는 역사가 그저 왕들이 나오고 신하들이 나오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생활인으로서 살며 밥과 돈이라는 아주 근원적인 욕구에 나란 사람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가 깨달을 때마다, 그런 욕구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정의, 민족의 독립 등 대의를 위해 싸운 인물들에 대해 더욱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저자 스테반 에셀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2차대전, 나치, 레지스탕스, 드골, 세계인권선언 ㅡ 이런 흘러간 역사가 이 분에게는 삶이었고, 아직도 꼬리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 현실일 터. 그런 저자의 눈에는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수많은 이들이 피땀흘려 얻어낸 정의와 자유가 짓밟히고 있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실까?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한국 사회에는 이런 루트를 따르면 성공한다는, 이른바 고정된 '성공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과거에는 소위 'KS라인(경기고-서울대)'이라고 불리는 학벌에 의한 성공 공식이 있었고(이들은 대개 관료, 판검사, 변호사, 의사 등의 직업을 '독식'했다), 최근에는 특목고와 SKY를 거쳐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런 고정된 패러다임을 흔드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딴따라'로 불리며 천대받던 연예인들이 지금은 주식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큰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사장이나 임원이 되기도 하고, IT, 패션, 서비스업 등 과거에는 없었거나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성공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고정된 성공 패러다임에만 매달리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전처럼 좋은 학벌로 남들이 좋다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고, 심지어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신작 <소셜 애니멀>은 바로 이런 성공의 패러다임에 관한 책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보보스'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칼럼니스트가 쓴 책 답게 배경지식이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고, 글도 재밌다. 이 책은 특이하게 해럴드와 에리카라는 가상의 인물의 일생을, 무려 태아 이전의 시기 -부모님이 만나서 데이트하고 결혼하는 과정- 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소설처럼 그리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배경지식이 담겨 있지만 전혀 어렵거나 지겹지 않다.

 

해럴드와 에리카를 통해 저자는 '성공하는 인간의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구한다. 인간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크게 유전이라는 선천적인 요인과 교육, 가정환경, 또래집단 등 후천적인 요인을 들 수 있는데, 해럴드는 안정적이고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양육과 교육을 받으며 자란 인간을 대표하고, 에리카는 불안정하고 결핍요소가 많은 가정에서 잡초처럼 자란 인간을 대표한다.

 

그 결과 해럴드는 안정적인 정서를 가졌으며 사회적 관계를 잘 형성하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에리카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내는 도전적이고 강인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두 사람은 직업도 다르고, 인간관계도 다르고, 결혼생활에 대한 태도도 다르고, 노년을 보내는 방법도 달랐다.

 

나는 전반적으로 에리카보다는 해럴드에 가까운 인생을 살았지만,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받은 문화적인 충격 등 에리카에게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사회적, 경제적인 위치에서 보면 에리카가 해럴드보다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나 개인의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해럴드가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꿈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남탓, 환경탓 하기 좋아한다. 집안이 별로라서, 학벌이 떨어져서, 직업이 별볼일 없어서, 사회가 안 도와줘서 등등 핑계도 많다. 하지만 <소셜 애니멀>을 읽으면서 성공이라는 것이 하나의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의 조합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의 의지로 충분히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공에 시크릿(secret)은 없다. 패러다임도 없다. 다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끝없는 꿈을 꾸고, 줄기차게 도전하는 것ㅡ 그것이 인류를 관통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간결한 성공 패러다임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